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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식용어정리
    {주식용어 모음{* 가격역지정 주문(stop order)투기성 투자를 즐기는 투자자가 시세가 매매위탁 당시의 시세보다 상승하여 자기의 지정가격을 넘어설 때는 지체 없이 해당 주식을 매도할 것을 위탁하는 것. 역지정가주문이라고도 한다. 역지정가주문은 투자자의 시세관에 따라 어느 종목의 주가가 어느 일정한 가격 주문을 넘어서면 폭등할 것으로 믿거나 일정 가격 수준 이하로 내려서면 폭락할 것으로 예상되었을 때 그 큰 장세에 의한 이익을 얻기 위하여 이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공정가격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 증시에서는 법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다.* 가격우선의 원칙(priority of best quotation principle)증권시장의 경쟁매매에 있어 호가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으로서 파는 경우는 낮은 가격을, 사는 경우는 높은 가격을 우선한다는 말이다. 시간우선의 원칙, 수량우선의 원칙과 함께 쓰인다.* 가수급주식을 사려는 자금이나 팔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자금이나 주식을 빌려 사고 파는 이른바 공매를 말한다. 이는 신용거래를 통하여 적절히 도입되면 매매량과 환금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주가의 안정에도 크게 도움을 주지만 가수급이 과다하면 과당 투기를 유발할 부정적인 측면을 역시 가지고 있다.* 가장매매(wash sale)실제로 주식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면서도 주가를 조작하거나 투자자 자신의 손실을 회피할 목적으로 하는 매매 거래. 이는 일반투자자들을 속이기 위하여 매매거래가 활황인듯이 보이게 조작하는 시세조종으로서 사고 파는 행위를 혼자 했을 경우 가장매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다른 경우를 통정매매라 한다. 법으로 금지됨.* 간사회사(manager)유가증권의 발행인으로부터 의뢰를 받고 유가증권의 인수와 모집, 그리고 매출주선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회사로서 증권회사, 은행, 단자회사, 종합금융등이 있다. 발행되는 유가증권은 전량 혹은 일부만을 인수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주간회사와 공동간사회사로폭상승을, 약보합세는 소폭하락을 뜻한다.* 부동주(floating stock)단기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의 매매거래 때문에 매매유통되는 회수가 빈번한 주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부동주는 대형주에 많고 소형주엔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둥둥 떠다니는 주식.* 부분전환사채(partial convertible)채권으로 발행되었으나 일정기간이 지나면 주식으로 전환되는 전환사채의 일종이지만 전환되는 액수가 액면금액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채를 말한다.* 부자시세주가의 인기가 고가권에서 일어남으로써 자금력이 적은 소액투자자들은 선뜻 나서기 어려운 시세를 말한다.* 분산투자(diversified investment)투자자금이 어느 한 종목에 집중되었을 경우의 위험을 줄이기 위하여 2종목 이상의 주식에 나누어 투자함으로써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 분산 portfolio라고 도 하는 투자방법이다.* 분식결산(window-dressing settlement)회사의 경영실적이 나빠 수익이 없거나 적은 규모일때 경영자나 회사에 대한 비판을 줄이기 위해 실제보다 이익을 크게 보이게 하는 이른바, 이익의 과대표시를 말한다. 이에 반대되는 용어는 '역분식'이다.* 블루 치프(blue chip)미국에서의 우량주를 부르는 말. 영원한 우량주도 영원한 불량주도 없다. 투자자는 주가변화에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불효시세구주와 신주가 함께 유통되고 있는 경우, 어떤 특별한 경우에 구주보다 신주의 가격이 높게 형성될 때가 있다. 신주는 구주 보다 배당기간 관계로 배당금이 적다. 그래서 가격도 낮게 형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정상의 관계를 무시하고 신주의 가격이 더 높게 형성될 때 불효시세라고 한다.* 사업보고서(annual report)회사가 매 사업년도말 결산기에 재무상황이나 사업내용을 공시자료로 만든 보고서.* 사채(debenture)주식회사가 필요한 자금조달을 위하여 불특정다수인 일반투자자들로 부터 기채를 하는 경우에 발행하는 채무증서ookvalue ratio)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1 경영권 지배를 위한 출자증권 2 차익을 노리는 이익증권 3 재산권으로서의 물적증권 이라는 주주권을 사는 것이다. 주가순자산비율은 이들 가운데 특히 물적증권을 크게 고려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부도사태가 빈발하고 있는 현실에서 회사가 망하고 나면 회사는 총자산에서 부채를 우선 변제해야 한다. 그러고도 남는 자산이 순자산이란 것인데 이것이 큰 회사는 그만큼 재무구조가 튼튼한 것이고 안정적이다. 주당 순자산은 (총자산-총부채)/발행주식수 가 된다. 그러므로 △ 주당순자산비율(PBR)=주가/주당순자산 이 되고 배수가 낮을수록 기업의 성장력, 수익력이 높다는 말이다.* 다우이론1929년 주가대폭락 1930년대의 대광황의 예측으로 유명해진 C. Dow에 의해 제창되었으며 주가변동을 경기변동과 이익의 함수관계로 보고, 증권시장을 경기의 직접적인 척도로 생각한 이론이다. 다우는 주가의 흐름을 주동향, 2차동향, 일일변동 세가지로 파악하고 주동향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자신이 선정한 다우공업주 30종과 철도주 20종만 가지고 비교분석을 해도 전반적인 경기파악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다우이론은 다음과 같은 원칙 때문에 오늘날 까지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1. 경기변동은 주가와 기업이익에 영향을 준다.2. 전체 증권시장은 주가평균으로 나타낸다.3. 주가는 주동향, 2차동향, 일일동향이라는 세가지 추세로변동한다.주동향, 2차동향의 특징은;♠주동향:최고가를 주가평균이 뚫고 올라갈때 상향한다.♠2차동향:최저가를 갱신하기 직전에 멈춘다.4. 주동향은 다음의 경우에 활황♠경기가 호전되면서 기대매입이 성하다.♠증권전문가들이 저가주를 매입한다.♠활황국면 중간부를 지나면서 투기가 일어난다.5. 주동향은 다음 경우에 하향기세를 보인다.♠경기가 나빠진다.♠증권전문가들이 보유주식을 매각한다.♠말기에 이르면 우량주들의 투매현상이 나타난다.6. 시장을 주도하는 한종목의 상하향에 따라 다른 종목도 이에 따르려는 추세를 보인다. 이런 추세할 때.·매도신호1. 장기추세선이 내려가고 있는 경우 도중에서 U 마크 출현시.2. 하락을 계속하고 있는 추세선상에 최초의 D 마크 출현시.3. U 마크가 나타난 며칠 후 만약 OBV선이 중요한 저항선 아래에 있을 때. 4. D 마크가 하나 혹은 둘 나타나면서 OBV선이 지지선을 하향돌파시.* 보장형 수익증권1990년 9월 증시의 장기하락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개발된 3년만기 금융상품으로 투자신탁회사들만 취급토록 되어 있다. 투신사들은 이 수익증권을 팔아 모은 돈(보장형 펀드)으로 주식등에 투자해 운용실적이 공금리(은행 1년만기 정기예금 복리수익률)에 못미칠 때는 자기 돈을 헐어서라도 고객들에게는 공금리선까지의 수익을 보장해주며 공금리보다 많이 남았을 때는 운용실적대로 배당한다.* Q 비율미국 예일대학의 토빈교수는 설비투자와 기대이윤의 관계를 설명하는 지표로 Q비율을 제시했다. 이는 기업의 시장가치 (수익가치)를 기업자산의 대체비용으로 나눈 비율이다. 여기서 수익가치는 주식과 부채의 시가총액으로서 기대이윤을 반영하고있다. Q비율이 1보다 클때에는 수익가치가 자산가치보다 크기 때문에 자본재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설비투자가 촉진된다. 반대로 Q비율이 1보다 작을 때에는 증권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주가가 상승한다. 토빈의 Q비율은 기업의 실제 자산가치로 주가의 상대적인 고저를 판단하는 지표가 된다.* 베어마켓(bear market), 불마켓(bull market)일반적으로 증권의 가격이 하락하고 있거나, 또는 하락이 예상되는 사장을 bear(bearish) market이라 하고, 그 반대의 경우를 bull(bullish) market 이라고 함.* 배당기산일(record date of dividend pay-out)각 주식에 대하여 배당금이 계산되는 최초의 일자를 말함. 구주의 경우에는 회계년도 개시일이 배당기산일이 되나, 회계년도의 중간에 신주발행이 있는경우에는 주금납입일이 배당기산일이 된다.* 부가가치세(value added tax)부가가치를 과세표준으로 이 사업보고서를 거래소에 내면 거래소에서 심사해 결정한다. 12월 결산법인의 경우 3월31일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4월중에 소속부 심사를 거쳐 4월말께 소속부변경이 공시된다. 시장2부종목이 1부종목으로 승격하기 위한 기준을 보면;1주식분산요건을 충족해야 한다.1. 소액주주의 소유주식수가 유동주식수의 40%이상이 되고2. 소액주주의 숫자도 일정수이상이어야 하며3. 자본금이 50억원 이상이 돼야 한다.2재무구조측면에서는1. 납입자본이익률이 최근 3년연속 10%이상이고2. 유보율도 150%이상이어야 하며3. 최근3년중 2년에 걸쳐 5%이상의 배당을 실시하며4. 부채비율도 최근3년간 동업종평균 이하여야 한다.3유동비율이 최근 3년간 동업종(시장지의 중분류) 평균 이상이어야 한다.4상장기간은 1년 이상이어야 하고5시장성면에서 당해사업연도의 월평균거래량이 상장주식수의 1%이상이 돼야 한다.6최근3년동안의 감사의견이 적정 또는 한정일것 등이다.한편 1부에서 2부로 탈락해야 할 경우는;납이자본이익율이 최근2년 연속 5%미만이고 유보율100%미만인 기업, 최근2년 연속 무배당이거나 부채비율이 동업종평균의 2배초과 또는 유동비율이 동업종평균의 반 미만인 기업이 이에 해당한다.* 감리종목특정상장주식의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할 경우 증권거래소는 이 주식을 감리종목으로 지정, 투자자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주가급등세를 완화시켜 시장안정을 꾀하겠다는 뜻과 함께 주가상승속도가 빠른만큼 투자판단에 신중을 기하라는 경고의 의미가 있다. 증권거래소는 최근10일간의 주가상승액이 가격제한폭의 8배이상인 경우가 3일간 연속으로 지속되는 종목으로서 3일째 되는날의 종가가 최근30일중의 최고주가이면 감리종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간중의 주가상승률이 종합주가지수 또는 당해기업이 속한 산업별주가지수 상승률의 4배 미만인 종목은 감리종목으로 지정하지 않는다. 감리종목으로 지정되면 이 주식에는 신용거래가 중지되고 위탁증거금률도 100로 높아지며 대용증권으로도 활용이 안되며 증권저축계좌는로 β
    금융/회계/경영| 2010.09.14| 21페이지| 1,500원| 조회(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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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의 권력승계
    김정일의 권력승계서론80년대 사회주의권의 급격한 몰락은 북한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군사-안보적 차원뿐만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차원에서도 소련과 중국에 상당한 정도로 의존하고 있던 북한으로서는 체제의 위기에 대한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남한의 경제성장과 국력의 신장을 북한과 비쳐봤을 때 북한의 열악한 현실은 북한체제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북한은 체제의 안정과 권력유지를 위해 우리식 사회주의 를 내세우며 인민대중의 체제결속을 이끌었다.이와 같은 과정속에는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인 김정일의 등장이 있다. 김정일이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김일성의 후계자가 되어 새로운 북한의 지도자로 부상하였는가와 자신의 권력유지와 체제옹호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에 대해 알아보도록하겠다.1. 권력부상1961년 7월 로동당에 입당한 김정이의 정치권력은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조선 로동당 중앙 위원회에 배속되는 1964년부터 시작된다. 그는 4월 1일에 당중앙위원회에 배속받았으며, 6월 19일에 본격적인 당사업을 실시하였다. 그의 최초 보직은 김일성의 호위를 담당하는 호위와 지도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조선로동당 내에서 김정일의 위상은 1967년 5월에 열렸던 당중앙위원회 제 4 기 15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급격히 상승하였다. 이 회의에서 박금철, 이효순, 허학송등 갑산파 고위간부들과 당내 선전·문화를 담당하던 간부들이 유일사상을 위배하는 정책을 전개해왔다고 비판받고 숙청되었는데 이 회의에서 숙청을 실무적인 차원에서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당조직 지도부장으로 있던 삼촌 김영주의 핵심측근들을 일부 제거하면서 김영주에 대한 견제를 시도하였다.김정을은 당 4기 15차 전원회의 뒤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한다는 명목으로 계속 당내사상투쟁을 벌여나갔으며 김일성 개인숭배 캠페인을 주도하였다. 김일성의 모든 저작들을 편집, 재출판하였으며 피바다 , 어는 자위단원의 운명 과 같은 영화제작에도 관여하였으며 선전, 선동의 주요수단인 문학예술부문과 출판보도부문에 대해서 직접 지도하면서 주체사상의 유일사상화에 노력하였다.2. 권력강화1972년 10월 당중앙위원회에서는 조선로동당의 헌법개정문제, 당증교환사업을 토의하기 위해서 중앙위원회 제5기 5차 전원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김정일이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70년대 김정일의 당내 활동의 폭은 점차 넓혀지기 시작했다. 식물신경불화증에 걸려 업무를 보지 못하던 김영주를 대신하여 당조직에도 관여하였다. 또한 1972년 말부터 당내 이색적 사상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당증교환사업 을 전개하였다. 1956~57년에 실시되었던 당증교환사업 이래 처음 실시된 이사업은 사실상 1967~70년의 당간부들에 대한 대량 숙청을 기층 당 조직으로 연장시키는 성격을 띠고 있다. 즉, 당 기층조직에 부식되어 있는 반유일사상적 요소등 이색적 요소를 철결하는 것이 이 사업의 중요목적이었다. 따라서 상당수의 당원이 유일사상체계 위반드을 이유로 당에서 축출되었다.이어 김정일은 1973년 9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비서국 조직, 선전담당 비서로 선임되었다. 곧이어 1974년 2월에 열린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는 당내 핵심권력기구인 중앙위원회에 선출되고 6년 뒤 1980년 후계자로 공인되었다.3. 주체사상의 활용북한에서 주체사상은 정치·외교·경제·사회등 모든 분야에서 유일한 지도이념이며, 북한이 소련과 중국의 수정주의 및 교조주의를 배격하고 주체를 세워 자주노선을 지향하기 위해 만든 정치적 지침이다. 당규약 전문에는 조선노동당은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사상·혁명사상에 의해 지도된다. , 사회주의헌법 제3조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을 자기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 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체사상의 형성배경은 김일성 1인동재체제의 구축과 권력강화에 있어고 김정일은 이를 자신의 후게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주체사상을 발전시켜 자신의 정권유지에 유용한 지도이념으로 활용하였다.1950년대에는 사상과 경제에서의 주체와 자립을 의미하다가 1960년대에는 군사에서의 지위, 정치, 외교에서의 자주를 구현하는 지침으로 활용되었다. 북한의 정치사전에는 주체사상이란 한 마디로 말하여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사상이다. 라고 교시하였으며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는 철학적 원리에 기초한다고 하였다.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 김정일은 주체사상에 대해 수령의 지위와 역할을 절대화, 구체화한 혁명적 수령관과 사회정치적 생명체 이론을 추가시켜 주체사상은 수령의 올바른 영도를 받아야 하고 사람이 자주성·창조성·의식성을 가지고 자기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는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밝혔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혁명의 주체는 수령·당·대중의 통일체로 사회전체가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생사운명을 같이 한다고 하여 북한 사회를 배타적인 이념적 혈연집단으로 결속시키고 있으며 나아가 세습체제의 정당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문/어학| 2003.12.27| 3페이지| 1,000원| 조회(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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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의 외향적 내포적 발전전략
    대만의 외향적 내포적 발전 전략대만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과잉인구와 저소득, 그리고 빈약한 자연자원을 가진 전향적인 후진 농업국으로 출발하여 수입대체형 공업화와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통해 세계경제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고속 고도성장을 이룩하여 동아시아 경제 모델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대만은 확고한 안정정책 속에서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지면서도 경제 안정 속에서 고도성장과 고속성장을 지속해 1인당 GNP가 이미 1만 달러를 넘어서 1990년대 중반 선진국 수준에 육박했고, 무역수지는 흑자 기조를 줄곧 유지해 왔다. 급속한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적 불평등 정도와 세계3위의 외환보유고(2000년 현재 1,600억 달러), 산업간 기업간 유기적 분업구조의 유지등과 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대만 경제 발전은 매우 내실있게 진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근대이후 대만의 경제사는 크게 보아 개항기(1853-1894), 식민지시기(1895-1945), 전후 성장기(1945-현재)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지만 자본주의 적 경제 체제를 확립하고 경제 발전을 추진한 국민당 지배이후의 국한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대만은 청일전쟁의 결과 시모노세키조약에 의해 1895년 일본에 할양됨으로써 1945년 종전되기까지 51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 경제체제로 편입시키기 위해 10년동안 대대적인 기초작업을 통해 토지제도의 개혁, 화폐금융제도의 정비, 철도, 항만, 도로와 같은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실시했다. 1930년대 중반 이후는 태평양 전쟁을 위한 남진기지로 기능하기 위한 식민지공업화가 이루어졌다. 그결과 1930년대 말에 이르면 공업 생산액이 농업 생산액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종전후 대만은 다시 귀속되어 국민당 정부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만 경제는 대륙과의 경제적 결합이 이루어졌지만 공산당과의 내전으로 국민당 정부는 재정확보를 위해 대만으로 부터의 잉여수탈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본토로부터의 물가 폭동이 전염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1949년 내전에서 공산당에게 패한 국민당 전권이 대만을 최후의 거점으로 삼고 이후 분단이 고착되면서 대만은 하나의 국가체제로 변모하게 된다. 이후 국민당의 정권을 중심으로 경제 질서를 확립해 나가고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초기의 경제개혁은 화폐개혁과 토지개혁으로 이루어졌다. 화폐개혁으로 본토와의 경제관계를 단절시킴으로써 악성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토지개혁을 통해 내수형 산업화를 위한 물질적 토대를 마련했다. 대만의 토지개혁은 자작농의 창설을 통해 농업 생산성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농산물 수출을 활성화시킴으로써 국가재정 확충과 산업자본 축적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토지개혁과 동시에 대만정부는 1953년부터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여 수입대체형 공업화를 추진하게 된다. 이에 따라 산업구조도 농업중심에서 공업구조로 개편되었다. 하지만 농업부문으로부터의 잉여수취와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바탕으로한 수입대체형 공업화(1953-1957)는 협소한 내수시장과 미국무상원조의 중단(유상원조로의 전환)등으로 국면전환이 불가피해졌다. 필요한 원자재의 수입에 필요한 달러의 확보를 위기 위해 수출주도형 공업화 전략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강력한 외자도입 정책을 펼치게 된다. 수출주도형으로 정책전환을 실시한 이후 성장의 견인차가 내수에서 수출부문으로 이전되었다. 1955년에서 1961년 사이에 내수시장의 성장기여도는 66.1%였으나 1971-76년 사이에는 34.7%로 줄어들고, 같은 기간동안 수출확장의 성장기여율은 22.5%에서 무려 67.6%로 늘었다. 따라서 전기간을 통하여 수입대체정책의 성장기여 효과는 무시할 정도이다. 대만은 수출주도형 공업화에 힘입어 1964-64년을 분기점으로 공업부문의 생산총액이 농업부문을 앞서기 시작했고, 수출에서도 공산품의 비중이 1차상품의 비중을 상회하였다. 이시기에 가장 급속히 성장한 산업은 섬유, 합판, 플라스틱, 전지?전자등과 같은 노동집약형 경공업이었으며, 이들이 주력 수출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저임금 노동력은 농촌의 잠재적 실업인구로 충당되었다. 대만은 저임금과 풍부한 노동력 그리고 화교자본과의 네트워크를 토대로 OEM(주문자상표생산) 방식에 의한 World Supplier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통적인 수출주도형공업화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 내부적 원인은 ①소득수준의 향상으로 인한 내구재 소비재 수요의 증대 ②미숙련 단순 노동력의 부분적인 공급부족과 급속한 임금상승 ③중화학공업 부문을 중심으로한 제2차수입대체 산업화의 필요성 및 기간산업 및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 증대 등과 같은 산업구조를 고도화할 필요성이 증대되었고, 외부적요인으로는 ①제1차 오일쇼크로 인한 선진국 경제의 침체와 세계경제의성장 둔화 ② 노동집약적 수출상품에 대한 격화된 개발도상국간의 경쟁과 선진국의 수입격감으로 무역수지의 축소 및 적자 ③선진국의 시장수요가 노동집약적인 단순 조립 가공제품에서 보다 기술집약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변화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내부와 외부요인에 의해 대만정책은 수출산업의 구조조정과 인적자원 개발에 주력하는 한편, 석유화학 ? 철강 ? 조선등 3개 중화학공업을 전략산업으로 지정 육성하기 시작했다.다소 불안정성을 노출하기는 했지만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70년대 말까지 다시 한번 고도 성장을 기록했다. 대만의 중화학공업화 전략은 국유기업이 주체가 되어 추진되었다는 특징이있다. 대만정부는 일본 식민지로부터 재귀속될때 주요 기간산업을 국유화하였고, 이들 국유기업들이 정부의 재정과 금융지원을 받아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였던 것이다.1980년대 역시 대만경제는 국제 경제 환경의 변화와 국내 경제 구조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구조조종을 요구 받게 된다, 제 2차 오일쇼크로 세계경제의침체가 계속되고 선진국의 보호무역정책이 확산되는 한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과 같은 신흥 아시아 공업국가들과의 추격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또 1988년 슈퍼301조를 발동하여 대만의 수출기업을 압박하였을 뿐만아니라 내수시장의 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특히 지속적인 무역흑자로 외환보유고가 1981년 110억 달러에서 1990년에는 730억 달러로 급증하게 되면서 선진국으로부터 시장개방압력과 수출기업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원 중단 압력이 강화되었다. 또한 무역수지 흑자에 따른 과잉 외화자금은 증권시장과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어 거품경기를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자본의 해외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에 대응하여 대만 정부는 1980년대 후반 이래 수출 산업의 고부가가치화, 하이테크화를 추진하고 국유기업의 민영화와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완화를 통한 자유화 등의 정책을 추진하여 산업구조를 한층 고도화하고 고부가가치화하게 된다. 자유화의 일환으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이 크게 낮아지게 된다.대만 산업정책의 전개과정을 공업화 과정에 따라 5단계로 나누어 볼수 있다.첫째 단계는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 정착한 이후부터 수출주도형공업화로 전환하기 이전인 50년대 말까지로 안정과 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비내구적 소비재의 수입대체형 공업화를 추진하였다. 이때 대만정부는 화폐개혁과 토지개혁을 단행하였다.
    경영/경제| 2003.11.10| 3페이지| 1,000원| 조회(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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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신체제의 성립배경 및 특징
    유신체제의 성립배경 및 특징Ⅰ. 들어가는 말유신체제란 1971년 12월 6일의 국가비상사태 선언에서 1972년 말 유신헌법의 제안 및 선포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조치들을 통하여 성립되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살해사건까지 지속되었던 국가의 제도 변형 및 강압적인 지배체제를 일컫는다. 즉 5·16에서 3선 개헌까지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대내외적 명분 때문에 할 수 없이 유지해와TEjs 선거방식과 관제 동원에 의존하여 재집권을 확보해 온 권위주의적 지배의 제도적 골격, 그리고 그때까지 유지되어 온 권력중심부가 더 이상 자신의 지배를 지탱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 박정희 와 그의 측근세력에 의해 감행된 궁정쿠데타 였다. 이에 본 발표에서는 이러한 유신체제를 박 정권은 어떤 이유에서 국민들에게 선택을 강요하였는가? 그의 끝없는 권력욕 때문인가 아니면 정권구조의 모순 때문에 필연적으로 일어난 것인가? 라는 문제의 식을 갖고 70년대의 한국정치를 대변하는 유신체제에 대해, 유신조치가 취해질 당신의 배경과 그 특징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고자 한다.Ⅱ.본문1. 유신체제 성립의 배경유신선포 직전 박정희 정권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차원의 중대한 대내외적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첫째, 내부적으로 박대통령의 권위와 집권세력의 헤게모니가 1971년의 양대선거, 특히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보듯이 야당으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둘째, 외부적으로 닉슨 독트린과 미국의 불투명한 안보공약 등 국제정치환경의 변화에 기인한 심각한 안보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이 두 영역의 위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1) 국제적 요인먼저 당시의 국제적 상황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한국을 둘러싼 4강 관계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다. 미·소·일·중의 4강 체제로 다원화되어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이른바 해빙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동북아 냉전구도의 급격한 변화가 생겼는데 우선 과거의 맹방이었던 중국과 소련간의 중소분쟁이 심화되어 이들의 관계가 소원하여졌고, 달러위기로 해외기지 축소와 방위비 감축을 계획하였다. 그를 위해 동맹국에 방위비 부담을 전가하고, 핵무기를 중심으로 해군과 공군력의 현실적 전쟁 억제력을 증대시킨다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미국은 한반도 미군철수계획을 발표하고 남북대화를 종용하였다. 이런 미국의 권유에 의해 1970년 8·15선언, 1971년 남북이산가족 찾기 운동, 1972년 7·4공동성명이 발표되기도 하였다.그러나 1972년 박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한 또 다른 직접적 이유는 당시 긴장된 국내정치상황과 병행되고 있던 주한미군의 부분철수에 있었다. 이런 미국의 전략변화에 따라 당시 한국내에는 주한미군의 부분철수가 전면철수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다. 특히 북한과 군사적으로 정면 대치하고 있던 한국에서 주한미군 제 7사단의 철수에 이어 잔여 주한미군이 휴전선 이남으로 이동한 새로운 병력배치는 급박한 군사적 위기감마저 초래했다. 또한 미·중화해로 대변되는 새로운 강대국간 데탕트에 적용하기 위해 추진된 것이 남북대화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북대화도 결코 박 체제의 외부적 안보위협을 완화시켜주거나 감소시켜 주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부분철수를 받아들이되 한국의 안보가 보장되는 선에서 점진적으로 이뤄져야하며 미군철수로 약화되는 전력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한국군의 현대화에 대한 지원, 그리고 유사시 한국방위를 위해 미군이 재투입된다는 문서상의 공약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한·미간의 협상은 단지한국군의 현대화계획에 1971∼75년간 약 10억 달러의 추가군원을 제공한다는 선에서 끝났다. 닉슨 독트린은 한국의 방위에 대한 미국의 공약이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은 자주적인 외교노선과 자주국방을 위한 노력을 가속화 시켰다.(2) 국내적 요인우선 첫 번째는 국제적인 데탕트 기조가 기존의 한국지배권력과 미국과의 관계변화를 초래한 점이다. 남북한의 긴장완화는 군부정권의 기반인 냉전논리·안보논리와 선건설 후토일론 의 명분을 0년대 초에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국제수지의 지속적 악화, 경기침체 등으로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 위기는 우선 박 정권의 물질적 기반을 동요시켰고, 또한 자본축적의 조건들을 보장해줌으로써 자본측이 원활한 축적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자본주의 국가로서의 본연의 역할에 위기를 초래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박 정권이 8·3조치라는 초헌법적 조치를 통해 파탄에 빠진 축적기조를 구제한 것은 바로 이러한 위기에 대한 대응이었다.세 번째, 위와 같은 경제적 위기는 사회적 위기를 현재화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하여 민중들의 생활을 악화시켰고 여러 민중운동이 고양되는 계기가 되었다. 즉, 1969년 이후의 경제위기는 잠재된 계급갈등을 분출시키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고, 도시의 근로대중들은 1970년대 초에 이르러 보다 공정한 부의 분배와 정치참여를 위해 상당히 적극적인 방식으로 투쟁하기 시작했다. 먼저 노동운동은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재단사인 전태일 분신자살사건, 같은해 11월 25일 조선호텔 이상찬 분신기도, 1971년 2월 2일 한국회관 김차호으 l분신기도, 8월 16일 신진자동차노조원 900여명과 가족 1천여 명의 대규모 파업 농성, 9월 15일 한진상사 파월 노동자 400여명의 대한항공빌딩농성사태 등이 계속 일어나면서 급격히 고양되었다. 또한 도시빈민의 생존권투쟁도 활성화되어 1971년 6월 28일 시민아파트 주민 3천여 명으 ltlcjd 앞 대규모 시위, 8월 26일 동대문 시장 상인 400여명의 철거시위, 8월 31일 평화시장 동회시장 통일상가 등 1천여 점포상인의 철거시위, 9월 27일 대구 서문시장 50여 상인의 세무서 앞 시위 등이 일어났다. 이렇게 기층운동이 폴발적으로 고양되는 가운데 1971년 양대선거를 전후하여 지식인들의 반독재 운동도 활성화 되었다. 이상과 같은 노동운동, 도시빈민운동, 중간층운동의 활성화는 군사정권에게 상당한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위기는 1960년대의 경제 개발의 강행에대중의 예상을 초월한 득표율과 5월에 치뤄진 국회의원 선거는 당신 민심이 얼마나 박 정권으로부터 이반되어 있었는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것은 박정희에게 장기 집권에 대한 실질적인 위기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이상의 논의를 요약해본다면 r5uf국 1972년 유신체제의 성립원인은 변화된 통북아전략을 순조롭게 달성하기 위한 미국의 필요성과 1970년 초 일련의 위기상황에 대응해서 정권을 계속유지 강화하려는 박 정권의 필요성이 서로 맞물려서 이룩된 것이었다.2. 유신체제 성립과 특징(1) 비상조치(유신)선포10월 유신의 내용을 이루는 비상조치의 구체적 서곡은 1971년 12월 6일 국가 비상사태 선언 에서 나타난다. 그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나는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자유를 수호할 대통령의 책임으로써 최근의 국제 정세와 북괴의 동향을 면밀히 분석·검토한 결과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안전 보장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판단되어 오늘 전국민에게 이를 알리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합니다.···지금 이 시각에도 백기 북쪽에 공산 마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태평무드에 적어 있는 오늘의 우리 사회의 단면을 눈 여겨 볼 때 나는 6·25사변의 전야를 회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이 내용의 핵심은 안보제일주의였다. 그래서 1 정부의 시책은 국가 안보를 최우선으로 하고 조속히 만전의 안보태세를 확립한다. 2 안보상 취약점이 될 일체의 사회불만은 용납하지 않아면 또 불안요소를 배제한다. 3 언론은 무책임한 안보논의를 삼가야 한다. 4 모든 국민은 안보상 책임 수행에 자진 성실해야 한다. 5 모든 국민은 안보위주의 새 가치관을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6 최악의 경우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자유의 일부도 유보할 결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정권의 안위를 위해 국가 안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둘렀다.이어 12월 27일 여당 단독으로 국가 보의에 관한 특별조치법 을 날치기 통과시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비상대권을 박정희에게 부여하였다. 이 법은 노동운모든 권한을 집중시키는 유신을 위한 헌법제정, 시기, 방법이 연구되었는데, 일명 풍년사업 인 이 작업은 진행결과를 매주 대통령에게 보고·수정되었다 이는 1972년 8월경에 기본설계가 마무리되었고, 그때부터 신직수 법무장관 등에 의해 새 헌법의 구체적인 골격이 짜여지기 시작되어 드디어 10월 17일 세상에 드러났다.1971년 12월의 비상사태선언과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과 준비과정을 거쳐 1972년 10월 17일 비로소 그는 급박한 내외 상황변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는 명목하에 비상조치(유신) 을 단행하였다.이로부터 열흘 후 개최된 국무회의에서 10·17 대통령 특별선언을 10월 유신 이라 부르기로 결정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작업에 들어갔다. 1972년 10월 27일 유신체제를 뒷받침할 헌법 개정안을 비상국무회에 회부하여 가결시킨 후 공고하였고, 이 유신개언안은 11월 21일 국민투표에 부쳐 91.9%의 투표율에 91.5%의 찬성을 얻어 유신헌법으로 확정되었다. 이어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행하여졌고, 12월 23일에는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박정희가 당선되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는 12월 27일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제 4 공화국이 출발하였다.3선 개헌 직후 유세에서 그가 다시는 여러분 앞에서 표를 찍어 달라고 나서지 않겠습니다 라고 공약한 말은 거짓이 되었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게 됨으로써 국민에게 표를 구걸 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2) 유신체제의 특징유신체제의 가장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는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킨 즉 3권위에 군림하는 지위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쿠데타를 통해 도입한 유신헌법을 비롯한 정치제도는 기존의 의회민주정치제도의 형식적인 기구가 부과했던 구조적인 제약을 제거하고 자신의 개인통치를 강화시키는 것이었다.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비경쟁적인 대통령선거제도를 도입하여 박정희의 영구집권이 가능해졌다. 이를 위해 유신 이전의 대통령직선제를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형식적인 선거인단었다.
    인문/어학| 2003.10.31| 5페이지| 1,000원| 조회(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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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정출산
    원정출산에 대한 의견원정출산을 떠나는 임산부들이 부유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확산되고 있어 사회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임산부들은 주로 태어날 2세들의 교육문제 등을 이유로 들고 있으나 남자아이의 경우 병역문제 등이 가장 큰 원인으로 나타났다.지난 5월 26일자 LA타임스에 따르면, 원정출산으로 태어나는 한국 아기들은 5000여명. 이 수치는 괌, LA, 뉴욕, 하와이, 보스턴 등지의 병원을 이용한 원정출산 산모들을 합친 결과이며 이는 연간 한국 신생아의 1%에 이른다.친척이나 친구 집 등에서 출산하거나 유학, 연수, 해외 지점 발령 기간에 맞춰 출산하는 한국인 산모를 감안할 때 실제 원정출산의 숫자는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원정출산 전문 여행사들은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보도된 숫자가 심하게 과장된 것 같지는 않다"면서 "특히 이회창씨 며느리 파문이 보도된 이후 원정출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희망자가 대폭 증가했다"고 말했다. - Ohmynews中 발췌 -원정출산, 그 실태는 지금 어떠하며 무엇이 문제인가?위 기사에서 보듯이 원정출산을 하는 임산부들의 첫째 목적은 남아일 경우 병역을 기피하기 위함이다. 그 다음으로 원정출산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은 교육비절감과 살인적인 생존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나는 원정출산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지금부터 원정출산을 왜 반대하는지 그 까닭을 살펴보도록 하겠다.첫째로, 인권적 측면에서 볼 때 원정출산은 태어날 자녀의 국적선택권을 앗아가는 것이다.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미국에서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는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된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이중국적으로 살아가게 되고, 18세가 되면 하나의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 한국인인 엄마, 아빠로부터 태어난 자녀는 당연지사로 한국인이어야 할진데 두 개의 국적을 갖고 살아야 하며, 그로도 모자라서 내가 미국인이 될 것인지 한국인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니… 이는 선택의 갈등을 지나쳐 그 이상의 심각한 정서적 장애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국적에 대해,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자의가 아닌 부모의 의지로 이루어진 원정출산이란 것 때문에 말이다.둘째로, 원정출산의 가장 큰 목적이 병역기피에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일이기에 그러하다. 원정출산을 한 아이들 대부분이 남아라는 점, 그것은 태아의 성감별을 암암리에 받고 있으며 그 아이의 병역기피를 위해서 미국까지 가서 아이를 낳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두고 LA타임즈에서는 "향후 한국의 군복무는 가난한 사람들만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사회적 책임과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려는 우리나라 부유층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이 기사가 그렇게 씁쓸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나아가서 이는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체면과 위상이 달린 문제인 것이다. 모국의 병역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이유로 남의 국적을 취득한다는 것이 어느 나라에나 흔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셋째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다. 앞서 잠깐 전술했듯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부모의 의지로 이중국적을 갖게 된 자녀가 과연 한국인으로서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 훗날 미국시민이길 선택한다 해도 온전한 미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정체성이라는 게 우리가 삶을 사는데 있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땅에서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데 어떤 소속감, 일체감을 주는 소중한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정체감 없이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조금의 혼란도 없이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가 물어보고 싶다.
    인문/어학| 2003.10.31| 2페이지| 1,000원| 조회(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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