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홈리스 및 넷카페난민의 실태일본학과 3학년 변경민, 일본학과 4학년 신혜준Ⅰ. 홈리스1. 홈리스의 정의홈리스란,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자신의 집을 가지지 못하고 공원, 노상, 공공시설, 강가, 다리 밑 등의 장소에서 천막이나 종이박스를 이용해 텐트나 오두막 등의 가건물을 짓고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노숙자, 노상생활자와 임시시설주거나 집값체납, 재개발 등에 의해 집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 등 집을 잃을 위기에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최근 일본에서는 홈리스가 급증하여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고 예전에는 걸식 ? 부랑자 ? 룸펜)으로 불렸지만, 차별적 용어라는 지적을 받아 해외에서와 같은 상황을 가리키는 영어의 the homeless에서 온 ホ?ムレス라는 호칭이 매스미디어를 중심으로 외래어로써 정착되었다.2. 홈리스의 발생배경홈리스의 발생배경은 크게 경제적배경과 개인적배경으로 나눌 수 있다. 경제적 배경으로는 실업이나 사업의 실패, 도산등으로 인한 가정경제파산으로 최종적으로 주거를 잃은 경우가 많다. 홈리스의 증가에는 경기의 장기악화에 의한 영향(경기변동)외에, 제2차산업의 단순노동 수요의 감소나,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따른 제2차산업노동에 의한 파견사원(아웃소싱))이나 업무청부등록노동자, 외국인노동자의 증가, 게다가 일용노동의 아르바이트화에 의해서, 젊고 싼 안정노동력이 제공된 것이다. 그 결과 나이가 많은 단순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어 홈리스가 되는 경향이 있다. 실업이나 도산을 한 경우, 예전 같은면 건설일용직이나 숙직 점원이 되는 것이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그러한 길이 닫혀버린 것이 홈리스의 증대를 초래하고 있다. 개인적배경으로는 가족관계의 고민이나 도박중독, 알콜중독 등 정신질병을 안고 있는 경우, 스스로 집을 뛰쳐나가 가족과 이별하는 경우, 남편의 바람이나 이혼, 배우자의 폭력, 부모로의 의절 등의 경우가 있다.3. 홈리스의 실태경기의 상황에 의해 홈리스의 인구는 증감이 있다. 버블경제 붕괴후의 불황아래서 그 수는 증가하고 2003년 1자도 포함하기때문에, 도시에서만 한정되어 분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대도시에 많다. 일본에서 비교적 겨울이 추운 동일본에 9,225명, 비교적 겨울이 따뜻한 서일본에 9,339명으로 거의 비슷하여,) 기후조건과 분포와의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홈리스에 이르기까지의 경위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고 시대에 따라 그 전체상이 변화하고 있다. 일본의 홈리스는 아무리 가난하여도 구걸은 부끄러운 짓이고, 노상에서 구걸을 하는 홈리스는 적다. 고작해야 담배 한개피를 빌리는 정도이다.고이즈미 전 총리는 재임중에 [걸식하는 홈리스라도 신문을 읽을 수 있다]라는 놀라운 실언을 했던 것처럼 일본의 홈리스는 비교적 교육정도가 높다. 또한, 그 수는 고정화된 사회계층을 형성하고 있지 않다.조사 결과의 개요Ⅰ. 노숙자의 수 조사1. 전국의 노숙자 수2003년: 25,296人2007년: 18,564人(1) 홈리스가 많은 도도부현?大阪府 4,911人 (7,757人)?東京都 4,690人 (6,361人)?神奈川? 2,020人 (1,928人)(2) 홈리스가 많은 시구?東京都23? 4,213人 (5,927人)?大阪市 4,069人 (6,603人)?川崎市 848人 ( 829人)?福岡市 784人 ( 607人)?名古屋市 741人 (1,788人)??浜市 661人 ( 470人)?京都市 387人 ( 624人)2. 노숙자가 생활하고 있는 장소?도시공원 5,702人 (10,310人)?강가 5,653人 ( 5,906人)?도로 3,110人 ( 4,360人)?역사 910人 < 4.9%> ( 1,254人< 5.0%>)?그 외 시설 3,189人 ( 3,466人)Ⅱ. 생활실태 조사의 상황1. 홈리스의 연령상황?55세~64세가 약40%이상을 차지?40~54세의 비율이 줄고 있고 55세이상의 비율이 증가?평균연령은 57.5세(55.9세)로 전회보다 1.6세 상승2. 노상생활에 대해(1). 노상생활의 형태?생활하고 있는 장소가 정해져 있는 사람이 84.4%?생활장소로서는 [공원]이 35.9%, [하천]를 차지(2). 노상생활에 이른 이유?「일이 줄었다」 31.4%(35.6%)?「도산 ? 실업」 26.6%(32.9%)?「병?부상?고령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21.0%(18.8%)4. 건강상태?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 호소하는 자 50.2%(48.4%)→ 이 중 치료 등을 받지 않고 있는 자 65.8%(68.4%)5. 복지제도?「순회상담원을 만난 적이 있는 자」 62.3%→「만난적이 있고 상담한 자」 35.9%?「셀타)를 알고 있는 자」 61.9%→「알고 있고 이용한 적이 있는자」 13.1%?「자립지원센터를 알고 있는 자」 66.3%→「알고 있고 이용한 적이 있는 자」 9.1%?「생활보호를 수급한 적 있는 자」 24.3%6. 자립에 대해서(1). 앞으로 어떠한 생활을 바라는가?「제대로 취직해서 일하고 싶다」라는 자 35.9%(49.7%)?「지금 이대로 좋다」라는 자 18.4%(13.1%)(2). 구직활동상황?「구직활동을 하고 있는」자 19.6%(32.0%)?「지금도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구직활동을 할 예정은 없다」라는 자 59.8%(42.0%)(3).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질병, 장해, 고령」39.5%(34.2%)?「희망직 없음」19.1%(24.4%)?「현재일에 만족」19%(12.7%)7. 생활력(1). 최종학력?중학교 졸업 55.5%?고등학교 졸업 32%(2). 결혼력?결혼한 상태 9%?이혼이나 사별, 미혼 등으로 혼자인 경우 91%(3). 가족과의 연락?가족과 연락두절 75%4. 문제점치안최근 홈리스 습격사건이 끊이지 않고 청소년등이 가담한 홈리스 살해, 상해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가해 청소년등은 죄악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도쿄 키타쿠아카바네에서는 가끔씩 공원에서 누워 자고 있던 넷카페난민인 남성을 홈리스라고 믿은 청소년들이 라이타 오일을 뿌리고 불을 붙인 사건이 일어났다. 또한, 겨울철 동사등 매년 수백명이나 노상에서 죽어나가고 있다.시민권주소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주민표)가 삭제되거나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도 영향을 미치고, 취직하는 것이 힘든 상황이 동반되어 있어, 직업훈련이나 새로운 고용창출등의 대책이 요구된다.Ⅱ. 넷카페난민1. 넷카페난민과 인터넷카페의 정의넷카페난민은 홈리스의 일종으로 정주하는 주거를 가지지 못하고 숙박하는 장소로서 인터넷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가르키는 새로운 형태의 용어로서 2007년경부터 사용되고 있다. 이 신조어를 만들고, 알린 것은 일본테레비의 [NNN다큐멘터리] 2007년1월28일 방송분 [넷카페난민 표류하는 빈곤자들]부터라고 생각되어지지만 정확한 기원은 불명이다.인터넷카페(Internet cafe)는 유료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를 이용가능한 시설을 말한다. 한시간당 몇백엔 정도의 요금, 또 장시간 이용할 경우 정액요금이 적용되어 더 싸게 할 수 있는 점포가 많다. 자동적으로 정액요금으로 적용되는 점포도 있지만 입점시 신고가 필요한 점포도 있다. 주 이용자는 젊은 남녀나 장년 남성등으로 일이나 오락, 취미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외에, 사람을 기다리거나 시간 때우기, 호텔 대신에 휴면을 취하는 비즈니스맨이나 개인여행객, 그 중에는 일용직 노동자)도 있다.손쉽게 이용가능한 인터넷카페에서의 상시접속환경을 자택에서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나, 여행?출장중의 사람이, 이메일 확인이나 웹페이지 열람을 하는 것에 자주 이용된다. 좌석은 오픈석 같이 옆사람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이용가능한 개인석과 남녀 2인이 커플로 사용가능한 커플석, 맛사지의자를 이용 가능한 리크라이닝석, 여러사람이 함께 이용 가능한 오픈석 외 금연석과 흡연석 등 다양한 좌석이 있다.2. 넷카페난민의 발생배경일본의 넷카페난민의 발생배경으로 전후 일본경제는 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농가의 차남, 주부 등을 파트타임 노동자로서 고용하게 되었다. 그 후 버블경제붕괴 뒤의 헤이세이 불황에서는 원가절감의 압력에서 정규고용인 정사원을 줄이고, 비정규고용의 비정규직사원을 늘려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경향은 경기가 회복 된 후에도 변화지 않고 파트타임 아르 증가했다. 전고용자에서 점하는 비정규고용자의 비율은 1980년대부터 증가 추세를 보이며, 2005년에는 전고용자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이렇게 정사원이 되지 못한 비정규사원들은 정수입을 보장받지 못하고 정사원에 비해 경기동향에 의한 고용조정에 영향을 받기 쉬워 이제까지 지내온 자택이나 기숙사를 집값 체납이나 가정상의 사정 등으로 쫓겨나와 24시간 영업의 인터넷카페나 만화방에서 밤을 지새는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3. 넷카페난민의 실태일본 후생노동성은 2007년 8월 28일 [주거상실불안정취업자의 실태에 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주거를 잃고 인터넷카페나 만화방 등에서 숙박하며 불안정한 취업을 하고 있는 일명 “넷카페난민”이 전국에 약 5,400명이상 달한다고 추산되고 있다.) 조사에서는 먼저 6월 상순에서 중순에 제1차 조사를 실시, 전국의 24시간영업의 넷카페 및 만화방 등 전점포 3,246점에 대해 전화조사를 실시하여, 1,173점에서 얻은 유효결과를 토대로 평일 하루당 평균적인 올나이트 이용자는 전국에 약 60,900명으로 추정했다. 다음으로 6월 하순부터 7월중순까지 146점의 올나이트 이용자를 대상으로 제2차 조사를 실시하여 이 동안 87점에서 1,664명의 회답을 얻고 올나이트 이용의 이유 등에 대해서 정리했다. 이것에 의하면 올나이트 이용의 이유는 [컴퓨터 등을 이용하기위해]가 52.8%, [일이나 놀이 등으로 늦어져귀가가 귀찮다]27.8%로 많았고 [당분간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와 [집이 없어 숙박하기 위해 이용](=주거상실자)는 11.7%였다.조사결과의 개요올나이트 이용자넷카페난민1. 성별남자: 77.9%여자: 22.1%2. 연령19세이하: 9.5%20~24세: 30.0%25~29세: 21.2%30~34세: 15.6%35~39세: 4.5%40~49세: 9.4%50~59세: 4.1%60세이상: 1.4%3. 올나이트이용 빈도주5일이상: 17.8%주3~4일정도: 20.1%주1~2일정도: 15.8%월1~2일정도: 12.1%가끔씩: 26.0%이3.1%
太宰治(다자이 오사무)다자이 오사무는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에서 11남매 중 10번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로 쓰시마 집안은 대대로 성(性)을 갖지 못했던 일본의 농민 계급 출신이다. 메이지 첫해 호적 작성 무렵에 쓰시마 집안의 기본 재산을 축적한 증조부 소스케는 대금업과 소지주라는 조건을 교묘히 이용하여 토지를 담보로 잡고 높은 이자의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업으로 해마다 돈을 갚지 못한 영세농민의 토지를 흡수함으로써 더욱더 많은 부를 축적해간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지주로 급성장한 쓰시마 집안은 다자이 오사무의 아버지대인 쓰시마 겐우에몬(津島原石衛門)에 이르면 다액 납세에 의한 귀족원 의원 자격자에 속하게 되고, 중의원 의원 나아가 귀족원 의원에 이르게 된다. 토지를 수탈당하는 농민의 원한이 깊어갈 수록 쌓여가는 집안의 부를 바라보면서 다자이 오사무는 이것을 자신의 치부로 여기기 시작했고 그의 여러 습작들에서 이런 자신의 부친을 모델로 대지주를 고발한 자서전적 작품들이 쓰이게 되었다.다자이 오사무는 1929년 히로사키 고교시절부터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아 〈지주일대〉를 집필하고 자신의 출신 계급에 대한 혐오를 더해간다. 그가 출신 계급을 절망해 최초로 수면제 자살 시도를 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30년 동경제국대학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이부세 마스지’를 만나 이후로 평생 동안 사제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유머감각과 풍자적인 어조를 다듬어 나가게 된다. 이 해에 긴자 카페의 호스티스인 다나베 아츠미와 투신자살을 기도하여 여자만 죽고 자신만 살아남아 자살 방조죄 혐의를 받았으나 기소유예를 처분을 받게 된다. 이 사건은 후일 반제국주의 학생 동맹에 가담하여 비합법 운동에 투신하나 자수한 일과 함께 그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게 된다. 1935년 [역행]으로 제1회 아쿠다가와상 차석으로 문단에 데뷔하게 된다. 1939년엔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하였고, 1947년 12월엔 [사양(斜陽)]을 발표하며 전후 일본 작가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지만 1948년 3월에서 5월 사이에 [인간실격(人間失格)]을 집필하고 그해 6월 13일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강 수원지에서 투신자살함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몇 차례의 약물중독과 네 차례의 자살 미수 만에 성공한 죽음이었다. 이 시기 그는 폐의 질환이 악화되어 각혈은 물론, 계단도 제대로 오르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동거 중이었던 도미에와 함께 투신자살한 지 닷새 후인 19일 아침 짓무른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날은 그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 환경지표는 유럽 등 선진국에서 환경과 경제를 연결시켜, 지속 가능한 개발을 달성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90년대부터 개발돼온 정책수단이다. 우리나라의 이번 환경지표는 지난해 개발에 착수, 올해 처음 핵심 사항에 대해 시범적으로 만든 것이다.(환경지표의 개발과 보급)※ 녹색계정: 환경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와 경제 부문별 환경성을 나타내는 환경지표를 단계적으로 개선하고 개발하여 궁극적으로 녹색국민소득계정을 구축하여 합리적인 정책결정과 국민여론 형성에 도움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환경상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 할 수 있도록 대기질, 수질, 폐기물 배출, 대기·수질오염 물질 배출 등에 대한 기초통계 작성방식을 개선하고 새로운 통계체계를 개발해야 될 것이다. 경제 부문의 환경오염 기여도와 각 부문의 경제 정책이 환경에의 영향을 나타낼 수 있는 경제 부문별 환경지표를 개발해야 될 것이므로 우선 주요 오염유발 및 자연자원의 소모산업인 농업, 광업, 에너지, 수송 부문의 환경지표와 산업별 환경지표를 개발하여 활용하여야 될 것이다.장기적으로는 환경상태지표, 경제부문별 환경지표 및 녹색국민소득 계정체계를 연결한 새로운 국민 후생지표체계를 개발하여야 될 것이다.ex) 통영시※ 생활환경지표: 2016년 통영도시 기본계획 에서는 목표연도인 2016년 통영시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생활환경지표를 가구당 인구수 3.2인, 주택 보급률은 100%, 도로율 25%, 상수도 보급률 97.0%, 1인당 1일급수량 470ℓ, 진개 수거율 100%, 분뇨 수거율 100%로 설정하고 있다.※ 복지환경지표: 2016년 통영시의 복지환경지표는 다음과 같이 설정되어 있다.의료부문에서는 종합병원 1개소, 의사수 60명/만명, 보건소 1개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문화부문에서는 문화회관 1개소, 도서관 3개소, 박물관 2개소, 청소년 수련관 2개소의 개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복지부문에서는 경로당 90개소, 청소년회관, 양로원, 여성복지회관, 장애자 복지회관, 선원회관이 각각 1개소 개설될 것으로 전망이다.※ 도시경제산업지표: 21C 통영시의 산업구조는 계속적인 도시화 추세에 따라 1차 산업의 비율은 다소 감소하고, 안정국가공단 등의 개발과 더불어 2차 산업은 점차 증가할 것이며, 관광도시로서의 서비스 기능의 강화에 따라 3차 산업의 비율은 지금보다 증가 할 것으로 예상된다. 목표연도인 2016년에는 경제활동 참가율은 1994년말 현재보다 훨씬 높은 75%에 이르고, 취업률은 현재와 비슷한 수준인 98%정도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한강수질 악화-환경지표 조사)93년부터 97년까지 한강유역에 4612억 원의 환경개선 재원이 사용됐으나 90년대 들어 현재까지 수질이 1.5배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세계적인 감소열풍이 부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10년 동안 2.3배나 증가해, 국제적인 압력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환경지표에 따르면 한강 팔당 상수원의 경우 90년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 1ppm이었던 수질이 인구, 음식-숙박업소, 축산 농가 등의 증가 때문에 97년 1.5ppm으로 떨어졌다. 오존을 발생하는 전국 질소 산화물(NO ppm)은 자동차가 5.1배 증가함에 따라 지난 88년 98t에서 97년 128만 톤으로 늘어났다.
일본 고대사회 불교고대국가는 아시아적 사회 및 국가와는 달리 혈연원리에 의해 조직된 국가가 아니라 법 원리에 의해서 조직된 국가이다.또한 초월적인 신(神) 그 자체로서의 종교원리에 의해 조직된 국가이기도 하다. 고대국가는 사적 소유자들이 모여서 만든 공동체이긴 하지만,이 공동체는 또한 사적 소유자들이 아무 가진 것 없는 노예와의 대항이라는 필요에서 어쩔 수 없이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던 공동체이다.따라서 이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에 대해서 무조건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이기도 하였다.인간에 대해서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란 신(神)으로서의 존재이며, 따라서 고대국가는 법 원리와 함께 신(神) 그 자체에 종교원리를 갖게 된다.일본의 아시아적 사회에 있어서는 아마테라스를 정점으로 하는 신들의 세계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호족은 사적 소유자들의 정치적 세계가 같이 혈연원리에 의해 편성되고,양자(兩者)는 또한 겹쳐져 있었다. 일본의 아시아적 사회에서 천황을 정점으로 하여 혈연원리에 의해 연합해 있던 호족간의 정치적 세계는 일본의 아시아적 사회구조의 특질로 인해 점차 동요하게 된다.천황가 내부에서의 정권쟁탈전이 종종 되풀이되고, 이를 둘러싼 여러호족들은 각각 거취를 달리하여 투쟁하기 시작한다.그 결과는 단순히 천황가 내부만의 투쟁에 그치지 않고, 천황가와 유력한 호족간의 투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아시아적 사회에서의 사적 소유자들 사이의 투쟁이 이처럼 천황가를 정점으로 하는 정치적인 편성을 뒤흔들게 되면,지금까지의 혈연원리는 동요하고, 정치적인 안정을 구하는 새로운 호족들 사이의 연합원리가 필요하게 된다.대외전쟁이 일시적인 정치적인 안정을 실현시켰다고는 하지만, 그 성공과 실패에 관계없이, 재차 호족단의 투쟁을 격화시키게 된다.그렇지만 사적 소유자 즉 지배자들은 권력을 둘러싸고 각각 대립하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각각 아무 가진 것 없는 사실상의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눈에 보이지 않는 지배당하는 사람들과의 대립이, 결국에는 지배자들에게 정치적 안정을 추구하게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연합을 만들게 한다.고대사회 성립의 필연성이, 그들로 하여금 법에 의한 연합을 추구하게 함과 동시에, 이런 새로운 연합을 상징하는 신(神)을 추구하게 만든다.그러나 이런 사회변동의 시기에는, 언제나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낡은 원리에 매달리게 되는 사람들이 나타나, 양자 사이에 대립이 생겨난다.일본에서의 이런 새로운 종교원리가 한반도로부터 도입된 불교이며, 불교의 채택을 둘러싼 여러 가문들의 대립이 생겨났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불교의 도입은 혈연적 사회의 종교원리에 대신하는, 보편적인 법으로서의 종교원리의 도입이며, 따라서 또 아시아적 혈연연합에 대신하는 고대의 법적인 연합의 종교적 형태이며,따라서 또 아시아적 혈연연합에 대신하는 고대의 법적인 연합의 종교적 형태의 도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아시아적 사회의 지배자들의 투쟁이 결국은 혈연원리에 대신하는 법적 원리에 의한 불교가 고대사회에 받아들여지게 된다.불교는 일본 고대국가의 종교원리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도입되었다. 불교의 도입은 천황가와 여러 가문과의 고동, 다시 말하자면 연합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며,
일본신화와 신도신도라는 명칭은 '일본서기' 제31대 요메이천황의 즉위 전기에 처음 등장한다.즉 거기에는 "천황이 불교를 믿고 신도를 존승했다"고 나오는데, 이 때 우리는 '신도'하는 말이 '불법'의 대비어로서 나온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다시 말해 이는 일본인들이 외래의 종교문화와 만남으로써 비로써 자기 자신을 의식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해 준다.신도는 일본민족 고유의 종교이다. 그것은 일본열도의 풍토 환경과 거기서 살아온 일본인들의 생활습관이 만들어낸 것이다.즉 신도는 일본이 역사 속에서 발생한 소박한 종교적 정조와 영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여, 외래 정신문화를 섭취 융합하면서 성장해 왔다.신도가 과연 종교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것은 일본의 풍토에서 생겨났고, 일본민족의 역사와 함께 성쇄해온 종교문화의 일단면으로서,일본인의 생활감각에 밀착된 전통문화일 따름이다. 따라서 그것은 종교로서의 고유한 성격이나 역사를 지니고 있지 않다. 신도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의 풍토와 사회가 그 자체고 종교의 세계라 할 수 있다.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서라 말해지는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記)는 역사서이면서 가공의 신화시대를 설정하고 있다.이 양서에 기술된 신화를 통상 기기신화라 하는데, 그 신도 신화는 고대왕권의 확립기 뿐만 아니라 중세 및 근세,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의 자기 정체성 형성에 있어 가장 지속적이고 강렬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이 기기신화의 내용은 천지개벽?국토창생신화, 이자나기?이자나미황천신화, 아마테라스·스사노오신화, 오오쿠니누시·국토창생신화, 천손강림신화, 오데리·호오리신화 등의 여섯가지 주요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그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천기개벽·국토창생신화: 태초의 우주는 카오스 상태였는데 이윽고 맑은 기운이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탁한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되었다.이를 '아메노치노하지메노도키'라 한다. 이때 하늘의 다카마가하라(高天原: 신들이 사는곳)에 조화삼신 즉, 최고 근원신인 아메노미나카누시노가미가 나타났고,이어서 우마시아시카비히고지노가미와 아메노도코다치노가미가 나왔는데, 이 다섯신을 고토아마츠가미라 한다.또한 구니도코다치노미코토 이하 칠대에 이르는 천신 가미요나나요가 나타났는데,이 중의 한 쌍인 남신 이자나기와 여신 이자나미가 결혼하여 일본 국토와 신들을 낳았다.즉 아메노미나카누시가미는 아자나기와 이자나미에게 "이 말랑말랑한 국토를 튼튼하게 굳혀라"는 신칙을 내린다.이를 천지초발의 신칙이라 한다. 이 신칙에 따라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천부교에 서서 아메노누호코라는 창으로 바다를 휘젓자 그 창 끝에 묻은 것들이 굳어 섬이 되었다.이자나기는 이 섬을 '오노고로시마'라고 이름지었다. 두 신은 이 섬에 내려가 아메노미하시라라는 기둥을 세우고 부부의 연을 맺는다.이리하여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생식행위를 통해 낳은 것이 아와지시마, 혼슈, 시코쿠, 큐우슈우를 비롯한 8개의 섬 즉 오오야시마이다.그런 다음 두 신은 바다와 강의 신들, 바람과 비의 신들, 산과 들의 신들, 초목의 신들을 낳았는데, 끝으로 불의 신 가구츠치를 낳다가 이자나미는 성기가 불에 타버려 죽고 만다.이자나기·이자나미의 황천신화: 이자나기는 죽은 이자나미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오려고 황천국으로 내려간다. 그 때 절대 자기 모습을 보아서는 안된다는 이자나미의 신신당부를 잊고 이자나기는 몰래 불을 켜보니 여신의 몸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고 얼굴은 무시무시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이에 놀란 이자나기가 도망치자 모역 당했다고 느낀 여신은 황천의 온갖 귀신들을 불러내어 그 뒤를 쫓았다.가까스로 지상으로 빠져나온 이자나기에게 여신은 "지상의 사람을 하루에 천명씩 죽이겠다."고 저주했는데 이에 대해 이자나기는 "그러면 난 하루에 천오백 명씩 태어나게 하겠다."고 대답한다.아마테라스·스사노오신화: 황천국에서 도망쳐 나온 이자나기는 부정을 씻기 위해 히무카의 다차바나노오도에 있는 강물로 몸을 씻어 낸다.그러자 많은 신들이 생겨났는데 마지막으로 왼쪽 눈을 씻자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오오미키미가, 오른쪽 눈을 씻자 달의 신 츠쿠요미노미코토가, 그리고 코를 씻자 폭풍의 신 스사노오노미코토가 태어났다.이 신들을 삼귀자(三貴子)라 한다.이자나기는 아마데라스에게 다카마가하라를, 츠쿠요미에게 밤의 나라를 그리고 스사노오에게 바다를 다스리라고 명했다.그러나 어머니 이자나미의 나라인 황천국으로 가고 싶어한 스사나오는 이 명령에 불복을 했으며,또한 아마데라스의 영역인 다카마가하라에 올라가 온갖 폭행을 일삼았다.이에 화가 난 아마데라스는 아마노이와토라는 굴속에 숨어 버렸고 세상은 암흑에 빠지고 만다.그러자 신들은 의논 끝에 제사와 춤을 통해 여신을 다시 굴에서 나오게 하는 한편 스사노오를 다카마가하라에서 추방했다.오오쿠니누시·국토이양신화: 이 후의 이야기는 이즈모라는 곳을 중심 무대로 전개된다.진상으로 추방된 스사노오는 머리가 여덟 개인 거대한 뱀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한 후 산신의 딸과 결혼한다.거기서 태어난 딸 스세리비메의 남편 오오나무치 혹은 오우쿠니누시가 아시하라노나카츠구니 즉 일본 땅을 통치하는 지배자로 군림하게 된다.그러나 다카마가하라의 신들은 아마데라스의 직계 자손이 지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 수 차례 사자를 파견하여 결국 오오쿠니누시를 설득함으로써 국토이양의 동의를 받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