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를 통해다시 보는 낙산사과 목 명 : 삼국유사의 이해학 번 : CAU9715102961성 명 : 문 광 수담당교수 : 신 동 하 교수님제 출 일 : 2004.11.14공동 답사: 조 일목 차제목: 삼국유사를 통해 다시 보는 낙산사1. 출발하면서2. 낙산사에서* 사진1- 낙산사 입구에서* 사진2- 낙산사 입장표3.낙산사의 창건 연기 설화1) 삼국유사2) 신증동국여지승람4. 해수 관음상1) 삼국유사의 내용2) 느낀 점 * 사진3- 해수 관음상 앞에서5. 관음송1) 삼국유사의 내용2) 느낀 점 * 사진4- 관음송 앞에서6. 의상대1) 삼국유사의 내용2) 의상대의 역사3) 느낀 점 * 사진 5,6- 의상대 앞, 뒤에서7. 홍련암1)삼국유사의 내용2)느낀 점 * 사진 7- 홍련암 앞에서8. 답사를 마치면서* 사진8- 의상 기념관 안에서9. 참고 문헌답사를 다녀와서1. 출발하며처음에 교수님에게 제출한 답사 계획서의 내용대로, 중간고사가 끝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남은 11월 5-6일, 1박 2일의 계획을 잡고 낙산사로 출발했다. 이 수업을 같이 듣는 같은 과 동기인 조일학우와 함께 토요일 5시에 출발했다. 처음에는 고속버스를 이용해 가기로 했는데, 친구에게 차를 빌리게 되어 직접 차를 몰고 낙산사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어디론가 떠난다고 하니, 비록 리포트 때문에 가기는 하지만, 맘이 약간은 들 떠 있었습니다. 매일 수업을 듣고, 공부하고, 시험보고, 이런 학교생활 속에서 항상 언젠간 한번 바람 좀 쏘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이런 기회에 가게 되어 너무 좋았습니다. 처음 운전을 하고 가는 길이라,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지만, 미리 인터넷에서 길을 조사해 특별한 어려움 없이 도착하였습니다. 약 3시간 30분정도 소요되었습니다.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자 동해의 바다 냄새가 코끝으로 밀려들어왔다. 도착하여 친구와 낙산사에서 차로 약 10분 떨어진 모텔에다 방을 잡고 그날은 이미 낙산사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낙산사를 답사할 수은 없. 날씨 또한 우리의 답사를 돕는 것 같았다. 약간 쌀쌀하기는 했지만, 맑고 푸르른 전형적인 가을의 날씨였다. 낙산사에 있는 모든 곳을 답사하였지만, 삼국유사와 관련된 곳에 대한 설화와 느낀 내용을 위주로 레포트를 작성하였습니다.3. 낙산사 창건 연기설화낙산사에 대한 창건 연기 설화는 삼국유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두 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답사 계획서에는 삼국유사에 대한 부분만 언급 하였는데 여기서는 두 부분 다 언급하겠다.1) 삼국유사: 예전에 의상법사가 처음 당나라에서 돌아와서 대비진신이 이 해변의 굴속에 계시기 때문에 낙산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대개 서역에 보타낙가산이 있는데 여기서는 소백화라고 하고 백의대사의 진신이 머무는 곳이기에 이를 빌려서 이름 한 것이다.의상은 재계한 지 7일 만에 좌구를 물 위에 띄웠는데, 천룡팔부의 시종이 그를 굴속으로 인도하여 들어가서 참례함에 공중에서 수정염주 한 벌을 주기에 의상은 이를 받아서 물러 나왔다. 동해룡이 또한 여의보주 한 벌을 주기에 의상은 이를 받아서 물러 나왔다. 다시7일 동안 재게 하고서 이에 진용을 뵈니,"이 자리위의 꼭대기에 대나무가 솟아났다. 이에 금당을 짓고 소상을 봉안하니 그 원만한 모습과 아름다운 자질이 엄연히 하늘에서 난 듯했다. 대나무는 다시 없어졌으므로 바로 진신이 거주함을 알았다.이로 인하여 그 절을 낙산사라 하고서 법사는 그가 받은 구슬을 성전에 모셔두고 떠났다.이상은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전하는 낙산사의 청건연기 설화이지만, 이보다도 약 50년 전에 기록된 설화도 있다곧 13세기 전반에 활동한 석익장의 낙산사기가 그것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인용되어 있는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2)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주 동쪽 강선역 남쪽 동리에 낙산사가 있다. 절 동쪽 몇 리쯤의 바닷가에 굴이 있는데, 높이는 백 척 가량이고 크기는 곡식 만 섬을 실은 배라도 드나들 만하다. 그 밑에는 항상 바닷물이 드나들어서 측량할 수 없는 구멍이 되었는데 세상에서는 관음대사가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창건했다는 내용만은 일치한다. 따라서 서역의 보타낙가산에 관음진신이 항상 머문다는 설에 따라 동해의 낙산에도 관음진신이 상주한다는 신앙이 정착되는 것은 의상법사에 의한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이런 설화를 읽고 느낀 점은 낙산사가 불교신앙이 깃들어져 있는 신성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삼국유사의 제 3권인 탑상편은 각각의 탑과 불상에 대한 설화가 대부분 불교신앙과 관련이 있고, 신성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4. 해수 관음상1) 삼국유사의 내용-위의 삼국유사 내용 중에 잠깐 살펴보면 “ 이에 금당을 짓고 소상을 봉안하니 그 원만한 모습과 아름다운 자질이 엄연히 하늘에서 난 듯했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을 을유 문화사에서 편찬한 김원중의 삼국유사를 보면 “그래서 금당을 짓고 불상을 모시니, 그 둥근 얼굴과 고운 모습이 엄연하여 하늘이 내려준 것 같았다.” 라고 내용을 담고 있다.이 해수관음상은 우리나라에서 양질의 화강암 산지로 손꼽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약700여 톤을 운반해와 조성한 것으로 1972년 처음 착공되어 5년 만인 1977년 11월 6일 점안했다고 한다. 해수관음상의 크기는 높이 16m, 둘레 3.3m, 최대 너비 6m이며, 관음상의 앞부분은 쌍룡상, 양 옆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고 한다.2) 느낀점(사진3- 낙산사의 해수 관음상 앞에서)이 낙산사의 해수 관음상은 아주 유명하며, 수학여행의 코스이기도 하다. 올라가는 길에 가을꽃과 아름다운 식물들이 낙산사의 답사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이 해수관음상에 갔을 때 많은 분들이 이 관음상 앞에서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는지 관음상 앞에 절을 하는 자리는 반짝 반짝 거렸다. 그 모습들이 아주 정성스러웠으며, 참 보기 좋았다. 예전에도 관음상을 본적이 있지만, 이번에도 한 번 더 그 크기에 놀랐다. 정말 사람의 힘 아니 불심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5년 만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더 그 힘이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관음상에도 아픈 사연이 원효는 그 물을 쏟아 버리고 깨끗한 물을 떠서 마셨다.그 때 들판에 있던 소나무 위에서 한 마리 파랑새가 "제호스님은 그만두시게!!" 라고 하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 소나무 아래에는 신발한 짝이 벗겨져 있었다. 원효는 비로소 앞에서 만났던 여인이 곧 관음보살의 진신임을 깨달았다. 이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관음송이라고 불렀다. 원효는 관음성 굴에 들어가 그 진용을 보려했지만 파도가 크게 일어 들어가지 못하고 떠났다.이상은 삼국유사에 전하는 설화이며 12세기 후반 임춘이 낙산사를 찾아 갔을 때도 관음송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효 스님이 빨래하던 여인으로부터 물을 얻어 마시고자 했던 그 우물을 냉천이라고 했는데 이는 오봉산 곧 낙산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조선 초기까지도 냉천은 이 지방의 중요한 고적으로 기록되었다.2) 느낀 점: 예전에 낙산사에 갔을 때는 관음송이 있는 지도 몰랐다. 그냥 낙산사에 있는 소나무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삼국유사의 내용을 파악하고 보니 같은 소나무라도 다르게 보였으면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현재의 관음송이 그때의 관음송은 아니라고 하지만, 다른 소나무와는 좀 다르다고 느껴졌다. 그 점은 바로 소나무의 크기였다. 폭은 두껍지 않았지만 그 크기는 상당히 컸다. 의상대를 넘어서는 그 키는 고개를 끝가지 젖히게 했다. 또한 이 관음송의 절반 밑 부분까지는 가지가 전혀 없었다. 원래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어떤 영험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서 꺽어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관음송은 이 뒤에 소개할 의상대를 더 빛나게 해주는 좋은 친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사진4. 관음송 앞에서)더 놀라운 점은 스님에게 들은 얘기인데 2004년 5월에 낙산사에 이 관음송과 관련이 있는 파랑새가 실제로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석가탄신일 일주일 전에 나타났다고 하니, 관음송이 이 낙산사에서 정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삼국유사의 모든 내용이 더욱더 신비롭다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대 위에 있던 소나무 한 그루가 넘어졌고, 스님은 그 소나무로 들보를 만들어 육각형의 정자를 완성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이 곳을 의상대로 불러 왔으나 이 때 정식으로 의상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그러나 1936년 폭풍으로 무너졌다가 이듬해 중건되었으며1974년에 강원도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었고 1975년에도 한 차례 중건되었다. 근래는 1994년 11월 강원도에서 의상대를 점검한 결과 기둥·기와 등 구조체가 10도 가량 기울었고, 기둥이 썩는 흔적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등 붕괴 위험이 있어 해체되었다가 1995년 8월에 육각정으로 복원되었다.3) 느낀 점: 의상대의 경치가 유명하다는 말은 예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그 모습은 정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넓은 동해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 주변에 있는 많은 소나무가 의상대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그 끝이 어딘지 모르는 수평선의 모습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 같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이런 곳에서 수행을 한다면 정말 세상의 모든 시름과 고통을 잊고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왜 의상대사님께서 여기서 수행을 하셨는지 알 수 있었으며, 내가 꼭 여기서 수행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망상조차 들기도 했다. 오른쪽으로는 바다와 직접 연결되어있는 절벽이 있었으며 그 앞을 지나가는 어선들의 모습은 참 한가롭게 보였다. 그리고 항상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서울의 문화만 접해 오고 현대적인 문화에 길들여져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내가 사는 곳이 아닌 낯선 고장을 방문하여 그곳 과거의, 우리 선조의, 조상의 문화, 유적을 조심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이번 의상대의 추억은 다시 한번 회상하고 싶은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의상대의 일출이 장관이라고 하는데, 이왕이면 일출까지 보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서울까지의 거리와 그리고 다음날의 수업이 이 장관인 일출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런 아쉬움을 뒤다.
{REPORT-판타지와 온라인 게임-(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중심으로){과 목 명 :판타지문학의 이해학 번 :CAU9715102961성 명 :문 광 수담당교수 :이유선 교수님제 출 일 :2004.06.12-목 차-1. 들어가며..2. 본론 11.온라인 게임의 정의2. 한국 온라인 게임의 현황3. 온라인 게임의 세계관3. 본론 2-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대해서1. 게임의 전반적인 특징2. 게임의 내부-즐기는 측면에서의- 특징3. 게임의 종족4.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역사적 세계관4. 끝맺으며...들어가며이번 판타지 문학의 이해 수업을 듣고 나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은 새로운 영역에 대해서 좀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며, 실로 그 하부 영역이나, 내용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판타지는 아주 단순한 마법 이야기에서부터 배경이나, 캐릭터, 그리고 스토리, 등 한 편의 책이나, 게임, 영화 안에서도 아주 다양한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 판타지 문학에 있어서도 얼마나 다양한가! 소설, 만화, 민담, 전설, 등등 아주 많다. 즉 인간의 상상력은 그만큼 다양하고 위대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또한 판타지가 많은 부분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응용되고 있다. 오히려 판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영화에서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고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TV 광고 선전에서도 이용되고 있다.(스피드 011, SK Telecom 등) 그만큼 이제 판타지는 우리 일상 생활의 일부분이 된 것이다.이러한 이유 때문에 판타지에 관련된 어떤 주제를 잡아 어떤 레포트를 쓸 까 많이 망설여졌다. 솔직히 판타지 문학을 많이 읽은 건 아니다. 무협소설 몇 편과, 드래곤 라자 그리고 반지의 제왕 정도를 읽은 것 같다. 그렇다고 판타지 문학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를 정한 부분이 게임이다. 개인적으로도 게임에 관심이 많으며 특히 스타크래프트를 자주하고 있으며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한번 정도는 호기심에 해보는 편이다. 게임은분야로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말한다. 현재 수많은 게임회사들이 온라인 게임을 서비스 제공하고 있고 게임 사용자 수도 엄청나다. 각 게임회사들이 자신의 게임 사용자 수를 어느 정도는 과장하여 이야기하는 면이 있어 정확한 사용자 수의 파악이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한 달에 리니지 게임 사용료가 29000원 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와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세계 어느 나라의 게임 이용시간 보다 많은 양이다.3. 온라인 게임의 세계관현재 국내에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온라인 게임의 세계관은 크게 보아 주로 판타지 소설적인 기본 구성에 신화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 대부분이다. 흥행에 성공한 온라인 게임들의 대부분이 서양 판타지 소설을 모티브로 게임이 구성된다. 그리고 동양적의 환상적인 면도 가미되어 있다. 신화와 전설, 로맨스, 신비주의뿐만 아니라 도교, 불교 등의 많은 종교성으로부터도 그 소재를 얻어 발전하였다. 동양적 판타지는 신비주의적 경향에 더하여 주술적인 성향을 갖는다. 이 역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할 수 있었던 동양만의 특수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온라인 게임의 세계관은 서양 위주의 세계관뿐만 아니라 서양에서 신비롭고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동양적인 세계관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세계화된, 통합된 세계관이 게임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본론2-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대해서1. 게임의 전반적인 특징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워크래프트 세계를 무대로 하는 MMORPG 게임이다. 게임의 주체는 워크래프트의 영웅 중 한 명이 되어 세계를 탐험하고 드넓은 대지에 펼쳐진 각종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대규모 멀티플레이어"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같은 세계 안에서 동시에 수 천명의 플레이어와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함께 모험하기도 하고 서사시적인 전투에서 서로 싸우기도 하면서 플레이어는 우정을 쌓아가고 동맹을 형성하며 권력과 명예를 위해서 적과 싸우는 게임이다. 즉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을 하면서, 자신의의 시 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최근 북쪽의 인간 왕국인 로데론을 폐허로 만들어 버린 버닝 리전의 침입으로 인해 스톰윈드는 인간 왕국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전설적인 로써 경과 레이네 국왕의 뒤를 이어 스톰윈드의수비대는 이 땅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들 중의 하나로 그들은 어둠이 드리 워진 세상에 인류의 힘과 명예를 지켜나갈 굳은 결의에 차 있다.{2 나이트 엘프-고독한 나이트 엘프는 워크래프트의 세계에서 가장 먼저 깨어난 종족이다. 베일 에 싸인 이 불멸의 존재는 제 1 워크래프트 시대가 있기 만년전부터 마 법을 연구하고 세상에 널리 전파하였다. 나이트 엘프의 무분별한 마법 사 용은 버닝 리전을 이 세계로 끌어들여 강력한 두 종족간의 비극적인 전 쟁을 낳게 되었다. 나이트 엘프는 간신히 리전을 추방시켰지만 그들의 신 비스런 고향은 산산히 부서져 바다에 잠기게 되었다. 최근까지 나이트 엘 프는 세상과 그들 자신을 단절하고 수 천년간 그들의 성지인 하이잘 산 맥에서 은둔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리전의 침략은 나이트 엘프가 오랜 운둔 생활을 청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그들은 세상을 본래 상태로 복원시키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오랫동안 존속해온 아제로스를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다른 종족과 동맹하게 된다. 나이트 엘프 종족은 일반적으로 고귀하고 공정하지만 세상의 다른 약소 종족들에겐 강한 불신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본래 야행성이며 나이트 엘프의 베일에 쌓인 힘은 다른 종족들로 하여금 그들이 필멸의 운명을 지닌 이웃 종족들에게 품은 것과 같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3 드워프-아이언포지의 냉철한 드워프들은 카즈 모단의 눈 덮힌 산맥 아래에 살던 강인한 고대 종족이다. 드워프는 일찍이 인간과 동맹을 유지해 왔으며 전투와 같은 무용담을 나누길 좋아한다. 과거에 드워프는 그들의 산장에서 안전하게 머물며 지내곤 했지만 전쟁의 북소리가 들려오면 용기와 용맹을 떨치며 자신의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한다. 드워프들은 자신들의 고대 근원{일부를 밝힌 최근의 발견피부를 가진 포악한 오크들은 아제로스에서 가장 번식력이 강한 종족이다. 그들은 야 만 적이고 무지하며, 다른 종족에게 인정이나 자비심을 베풀지 않는다. 지옥을 방불케 하는 드래노어에서 탄생된 오크들은 다크 포탈로 알려진 차원의 문을 통하여 아제로스 왕국으로 건너와 인류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크는 한 때 드래노어 세계의 주술사 상류집단에서 품위 있는 귀족이었다. 하지만 고귀한 오크 일족은 버닝 리전에 의해 타락하여 아제로스의 침략에 가담하게 된다. 그러나 오크는 반란을 꾀하고 있으며 마침내 그들의 주인인 데몬에 대항하여 독립을 꾀하였다. 마침내 젊은 족장 스랄이 이끄는 오크족은 그들의 힘과 명예를 되찾았고 이제 오크는 정복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그들의 생존 권리를 위한 싸움을 시작하려 한다.{2 타우렌- 칼림도어 중부의 광활한 불모의 땅에 살고 있는 거대한 야수 종족이다. 그들은 자연을 섬기고 야생 생물과 정령들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거대한 체구와 야수와 같은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평온한 타우렌은 평화로운 부족 사회 유지에 힘쓴다. 하지만 이들을 자극하면 그들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상대를 짓밟아 버리는 무자비한 적으로 돌변한다. 케르네 블루드후프 족장의 지휘아래 타우렌은 버닝 리전의 침입 때 오크들과 동맹을 맺었다. 그 이후로 이 둘은 확고한 동맹으로 남게 되었다. 오크와 마찬가지로 타우렌은 그들의 전통을 유지하고 고귀한 주체성을 존속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3{언데드-리치 킹의 폭정에서 해방된 언데드의 변절자 무리는 자신들만의 자유 의지를 지키기 위해 그들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포세이큰으로 알려진 이 집단은 자신들의 지도자인 밴시 여왕, 실바나스 윈드러너에게 헌신적으로 복종한다. 이 어둠의 전사들은 한때 로데론의 수도였던 곳의 폐허 아래 비밀 요새를 건설하였다. 저주 받은 티리스팔 숲 깊숙히 자리잡은 미궁과도 같은 언더시티는 덩굴처럼 넓게 퍼진 악의 요새이다. 이 어둠의 베일 다. 다소 고집이 세고 거만하긴 하지만 끝없는 용기와 성취욕으로 수많은 영웅적인 업적을 달성한다. 그의 이름은 아터스이다. 현명한 테레나스 왕의 아들이자, 지상에서 가장 이름 높은 왕국, 로데론의 후계자이다. 비록 몇몇 왕국이 이탈하긴 했으나 드워프 왕국을 비롯한 여러 세력의 지지 아래 아제로스의 중심으로서 로대론이 굳건한 위치를 유지하는 가운데 아버지의 신뢰와 실버핸드 기사단의 영웅, 우서 경의 지도 아래 나날이 성장해 가는 아터스의 모습에서 세계의 미래는 더 없이 밝게만 생각되었다.대이주 오크의 젊은 족장 트랄은 조금 전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반 신반의 하고 있었다. 특히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에게 주어진 불길한 예언을. 그러나 그에게 흐르는 고귀한 샤면의 피는 모든 진실과 함께, 위대한 전사들의 지도자로서 그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었다. 하늘이 불타오르기 전에 그를 따르는 모든 오크들을 이끌고 저 멀리 서쪽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인식한 젊은 샤면에게 인간의 방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분노한 그의 발길은 대지를 올리면 방벽을 무너뜨리고 전사들의 빠른 행보로 연합군이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인질들을 구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하여 서쪽 해안에 집결한 오크들은 그들이 신뢰하고 따르는 젊은 지도자 트랄의 명에 따라 인간들의 배에 탑승했다.갈까마귀의 예언자- 한편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위대한 로대론의 왕궁에서는 계속해서 들어오는 흉보 속에 수많은 격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최근에 시작된 오크들의 동향에 우려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북방 노스랜드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사태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서 대두되기 시작하는데... 신하들의 논쟁을 지루한 얼굴로 듣고있던 테레나스 왕은 그의 눈앞에 내려앉은 한 마리 갈까마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그것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모되었다. 어둠의 군대가 다가오고 있소, 살아남을 길은 오직 이 곳을 떠나는 것뿐이오. 서쪽 칼림도어의 땅을 향
미메시스(Mimesis)에 대하여....미메시스란(mimesis) 단어는 모의, 모방, 흉내의 뜻과 함께 예술적 표현-재현-도 의미하는 수사학(그리스, 로마에서 정치연설이나 법정에서의 변론에 효과를 올리기 위한 화법의 연구에서 기원한 학문), 미학 용어이다. 처음으로 사용된 때는 BC 5세기경 피타고라스파가 음악은 수의 미메시스(모방물) 라고 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 즉 이시기의 미메시스는 예술이 현실을 담는 방식으로 포괄적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말은 플라톤에 이르러 비로소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플라톤은 여러 가지 개체는 개체가 되도록 한 형상(idea)을 흉내낸다고 하여, 이에 의해서 현상계의 열등성을 증명하는 이유로 삼았다. 플라톤은 현상계는 원형의 모방이다. 라고 하였다. 즉 미메시스는 플라톤이 이데아와 개물의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플라톤은 미메시스를 예술의 인식적인 측면과, 사회적 기능적인 측면의 두 가지 측면으로 보았다. 하지만 플라톤은 미세시스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문화 예술 분야에서 한 예로 플라톤은 연극을 '현실의 모사'라고 봤기 때문에 아주 저질의 예술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아도르노는 이와는 반대로 예술이 현실이상의 무엇을 흉내내고 있다고 보았다. 즉 아도르노의 예술 개념에서 '미메시스'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건 단순히 '현실의 모방'으로서 예술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이상에 대한 모방'으로서 미메시스를 바라봤다. 아도르노의 이런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이어 받은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현대에도 미메시스에 대한 논란이 많다. 특히 미술, 문학 분야에 많은데 모방을 창조의 전 단계(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이다. )로 보느냐 아니면 저질 예술로 쓰레기에 불과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많다. 르네상스 시대의 저술가들은 모든 모방이 예술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선한 모방 , 예술적인 , 아름다운 모방만이 예술에 기여한다고 하였다. 프랑스의 고전주의자들은 모방이 자연적인 결함을 보완하는 기능을 하지만 모방에도 선택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렇게 미메시스에 대한 태도, 해석도 학자들마다 다르다. 하지만 해석과 주장이 분분한 가운데 이를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람이 루카치 이다. 그는 모방은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그 현실의 본질적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여 하나의 세계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고 수용의 측면에서 볼 때 수용자는 이렇게 창조된 세계를 통해 현실은 추체험함으로써 감정 환기와 카타르시스를 갖는 다 고 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론을 계승하였다. 현대에도 이와 비슷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론을 창조적으로 재평가 해석하여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한편 현대 사회에서는 미메시스를 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생물 분야에서는 의태(imitation)"의 개념으로, 의학에서는 동감병 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문학에서는 사실주의 개념으로도 사용이 된다. 또한 진화론, 인류학, 종교학, 사회학, 예술사, 심리학, 생리학, 교육학, 철학 그리고 영화, 그림, 연극, 판타지 등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에 해당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미메시스라는 이름의 기업도 있으며, 책도 출간이 되었고, 단체-특히 예술, 문학 분야의, 그리고 최근 유행하는 인터넷 온라인 카페-의 이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그렇다면 심리학에서는 미메시스가 어떻게 사용될까? 심리학에서는 미메시스라는 단어보다는 이와 유사단어인 라틴어 imitation(모방) 과 conformity(동조) 의 뜻으로 사용 될 수 있을 것이다.심리학에서 모방은 크게 다른 개인이나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이에 자극되어 그와 닮은 행동을 하는 과정(H.C.워랜의 견해), 또는 타인의 존재에서 지각된 행동양식을 적극적으로 재현하는 일(H.피에롱의 견해)로 해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 내용은 매우 다양해서, 다른 개체의 행동을 보고 이와 닮은 행동을 무의식적, 반사적으로 반복하는 경우에서부터 더욱 복잡한 행동과 사상적 내용을 의식적, 자성적인 방법으로 흉내내는 경우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가지가 포함된다. 이런 모방의 개념에서 미메시스와 특히 관련이 있는 것은 모방학습 이라고 할 수 있다. 모방학습은 관찰학습 과 동일한 말로 사용되는데 관찰학습(observational learning)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그 사람의 행동과 같은 행동을 학습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관찰학습은 학습자가 관찰하거나 모방하는 대상인 모델이 있으며, 그 모델의 행동을 관찰하는 경험이 있다. 관찰에 의한 학습은 1960년대에 들어 A.밴두라의 연구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새로운 반응(행동)을 학습할 수 있기도 하고, 특정의 행동을 억제하거나 회피하게 되기도 하며, 때로는 새로운 행동의 형성이나 억제를 촉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관찰은 인간의 행동에 여러 면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관찰학습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개, 비둘기)에게서도 관찰이 된다. 이런 관찰 학습을 실재 상황과 연관시켜보면 처음 가는 식당에서 주문 방법을 잘 모르면 같이 간 일행의 행동을 모방한다거나 그 식당에 있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여 그대로 따라한다. 또한 장례식장에 처음간 사람은 앞사람이 어떻게 하는 지를 보고 따라하기도 한다. 이는 한국인의 의례성과도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예의를 갖추어야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이런 모방 학습이 잘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잘 나타내주는 이론이 있다.N.E.밀러와 J.달라드는 모방을 동일행동, 대응 의존 행동, 카피 행동의 세 경우로 나누었다. 동일 행동은 2명이 표지판을 보고 같은 버스에 타는 경우처럼, 같은 계기에 의해 독립적으로 자극되어 같은 반응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학습은 모방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카피 행동은 타인의 행동을 본떠서 자신의 행동방법을 학습하는 경우인데, 이 경우에는 학습자가 자기와 남의 행동의 같고 다른 점을 판별하는 규준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 대응 의존 행동은 리더와 모델이 되는 개체의 지식과 행동방법에 의존하여 따름으로써 적응해 가는 경우의 모방을 말한다. 이러한 모방행동은 사회생활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위에서 든 예는 카피 행동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들어가며..미래학자들이 전망하는 사회변화의 방향은 여성에게 유리하며, 여성의 리더십을 요구한다. 정보사회로 변화되는 미래사회는 모든 사회구성원의 의식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며, 이에 따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변화가 수반된다. 수직적 사고에서 수평적 사고로, 고정적 사고에서 유연한 사고로, 집결적 폐쇄적 행동양식에서 분산적 개방적 행동양식으로, 획일적 사고와 행동양식에서 다양한 사고와 행동양식으로의 변화 등이다. 이러한 미래 사회의 관리자로서 여성의 리더십이 더 적합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그러나 현재 한국 여성의 사회적 리더십의 대표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정치·행정분야의 여성 참여는 매우 미미하다. 여성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반 이상이며, 유권자수는 남자보다 50만 8,000여명이 더 많은 다수이지만 특히 정치분야에서는 무권력의 다수일 뿐이다. 여성의 정치. 행정분야 참여가 저조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이지만 우리사회의 남성 중심적 정치문화, 고용, 교육 등에서의 사회구조적 불평등 남성 중심적 정치·행정제도의 제도적 장애 4한국정치의 민주적 제도화 미비 등이 주요하게 꼽힌다.그 증거로 우리나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여성 국회의원 3.7%, 여성장관 11.8%, 정부의 각종 위원회 여성위원 11.1%, 5급 이상 여성공무원 2.5%, 50대 기업과 장급이상 여성관리자 0.7% 등으로 표현되며, 최근 유엔이 발표한 국제적 통계에 의하면 여성권한척도(GEM)가 세계 94개국 중 73위라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수준과 49.5%에 달하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그리고 여성의 비교적 높은 교육 수준과 비교해 볼 때 저조한 정도가 극히 심하다. 또한 관리직급 중 임원의 경우 1998년 전국의 10인 이상 사업체의 전체 임원 중 여성은 4.3%, 부장 중 여성은 2.7%, 과장은 4.8%이다. 전체 여성 근로자 중에서 과장 이상의 직급을 가진 여성은 1.74%로서 남성의 15.36%에 비해 극히 낮은 수준이다(한국여성개발원, 2000). 이와 같은 통계는건의 형성 속에서 우리나라 여성의 사회적 대표적인 주자라고 할 수 있는 박근혜, 추미애, 한상궁 (대장금- 최고상궁)의 리더십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리더십에 대한 간단한 개관을 한 이후에 분석에 들어가고자 한다.본론Ⅰ-이론적 배경1. 리더십의 정의리더십은 사람들이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이고 열성적으로 노력하도록 그들에게 영향을 행사하는 과정이나 기술을 말한다. 이상적으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열정과 신뢰를 가지고 일하도록 하는 자발성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다.1) 리더십이란 집단이나 조직의 목표를 결정하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 지 방법으로 집단이나 조직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2) 리더십은 지배가 아니라 설득, 진정한 리더십이란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서 남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스스로 집단의 목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도 록 만드는 것.3) 즉, 리더십은 응집력 있고, 목표 지향적인 팀을 만드는 능력에 관한 것2. 리더쉽 유형의 분류-다양한 학자들을 중심으로1.Fiedler 의 상황이론Fiedler 는 리더십이 이루어지는 상황의 호의성에 따라 다른 유형의 리더쉽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즉 리더십 유형은 상황적 특성에 따라서 다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1 상황의 특성Fiedler 는 리더십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리더에게 얼마나 호의적인가에 따라서 효과적인 리더십 유형이 다르다는 주장을 하였다. 상황이 리더에게 호의적인가 비호의적인가를 결정하는 리더십의 상황적 특성을 보면 다음과 같다.. 리더와 구성원과의 관계집단의 구성원들이 리더를 지원하고 있는 정도를 나타낸다.. 과업구조구성원들이 맡은 과업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는가의 정도를 의미하며, 이는 목표의 명확성, 목표에 이르는 수단의 다양성, 의사결정의 검증가능성 등에 의해 결정된다.. 리더의 직위권한리더의 직위가 집단 구성원들로 하여금 명령을 수용하게 만들 수 있는 정도로써 구성원들에게 보상이나 처벌을 줄 수 있는 재량, 그에 따라 적절한 리더십 유형도 변해야 한다.2. Blake와 Moutond의 리더십 격자 이론.1.1유형(무기력형): 이러한 관리자는 인간 혹은 생산성 중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고 자기 직무에 최소한의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자기의 직무를 포 기하고 단지 시간 때우기 식이거나 최고경영자로부터 부하에 이르는 심부름꾼으로 행동한다.9.9유형 : 1.1유형의 극단적인 유형으로 이러한 관리자는 인간 및 생산성에 모두에 대하여 가능한 최고수준의 헌신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그들은 진정한 팀 의 관리자로서 기업의 생산 욕구와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1.9형(친목형): 이 관리자들은 생산성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고 단지 인간에 대 해서만 관심을 가진다..9.1형(독재적 과업위주형 관리자): 이들은 오직 효율적인 경영을 촉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어, 인간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아 리더십 유형에 있어서 는 매우 독선적인 사람이다.Blake와 Moutond은 9.9형의 리더십이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왜 그러한지에 대해선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을 알아내려면 기초적인 원인 즉 리더 혹은 부하의 성격, 관리자의 훈련정도와 능력, 기업환경, 그리고 리더와 부하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기타의 상황적 요소들을 살펴보아야 한다.3. Lewin-Lippit-White이들은 리더가 그들의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근거로 하여 분류하였다.. 독재적 리더명령을 내리고 거기에 대한 복종을 기대하는 사람독단적이고 단정적이며 제재 또는 보상이나 처벌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하여 지도 하는 사람. 민주적 리더제한된 행동이나 결정에 대하여 부하들의 의견을 참작하고 또한 부하들의 참여를장려하는 리더이다.. 자유방임형 리더자신의 권력이나 영향력을 거의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부하들이 하는 일에 고도의독립성과 행동의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자신의 역할을 부하들에게 정보를 나누어주거나 주로 그 집단을 둘러싼 외부환경과의 중개자로 행동한다.4. Vroom적리더로서의 경향이 강하 고, 남성은 과제중심적 리더로서의 경향이 강하리라는 성고정관념적 기대와는 다르게 두 리더십유형에서 남녀간의 차이는 없었다. 민주적 대 독재적 리더십유형에서는 조 직 연구나 실험연구에 상관없이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민주적이거나 부하의 참여를 유도 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반면에 독재적인 경향은 약했다.지금까지 리더십에 대한 간단한 정의와 다양한 학자들을 중심으로 리더십의 유형을 살펴보았다. 또한 추가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리더십의 차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위에서 언급한 추미애, 박근혜, 한상궁의 리더십에 대해 분석해 볼 것이다.본론Ⅱ-위 여성들의 비교1. 박근혜그녀는 1952년 2월 2일(음) 서울 출생으로 전 박정희 대통령의 딸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한국전자산업의 대부 김완희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는 조국을 부강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여성으로는 드물게 전자공학과를 선택하였다고 한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께서 문세광의 흉탄에 맞아 돌아가신 일은 박근혜 의원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으며 갓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 중이던 박근혜 의원은 급히 귀국하여 당시 22세의 나이로 5년여 동안 어머니를 대신해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였다. 지난 97년 IMF 경제위기 때 박근혜 의원은 그 동안 거절해왔던 정계입문의 결단을 내리고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의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서 당선된다. 2002년 4. 13 총선에서 엄삼탁 후보와 재대결한 박근혜 의원은 16대 재선의원의 고지에 오릅니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사당화를 막고 금권정치와 계파 정치를 극복하는데 앞장서겠다는 각오로 같은 해 5월 한나라당 부총재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다.당시 당내에서는 여성 몫인 지명직 부총재직을 주겠다는데 왜 굳이 출마하느냐는 반대 여론도 많았지만 이를 정면으로 거부했고, 8명의 후보가 각축을 벌인 부총재 경선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함으로써 정치 입문 3년 만에 전국적 정치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적, 지도적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녀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상황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는 이렇지만 그녀는 한나라당의 대표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는 Blake와 Moutond의 이론의 9.9형 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또한 Lewin-Lippit-White의 민주형과 Vroom의 집단 Ⅱ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즉 그녀는 과업적이면서 민주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추미애 의원과 비교를 하자면 그녀는 열활(role)측면에서는 위원장을 한다는 면에서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녀가 가진 기반 세력과(Status), 그녀가 가진 파워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즉 그녀는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야당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추미애 의원은 한나라당 보다 기반이 적고 이에 따라 파워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박근혜 의원에 대해 복종이기보다는 동조에 가깝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추미애 의원에게 어쩔 수 없는 복종 같은 경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당 화합측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면도 두 여성들의 기반과 파워의 차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2. 추미애1958년 대구출생으로 신학대학을 중퇴해야 했던 아버지와 시골 중농의 맏딸로 태어난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무척 가난하였다고 한다. 이 어렸을 때의 배경도 박근혜 의원과는 다른 면이다. 그녀는 고 3때 법대 진학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하지만 가정 환경 상 대학진학이 사실상 힘든 형편이었다. 그러던 중 한양대학교에서 전학년 수업료/기숙사비 면제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법대 장학생을 모집, 한양대 진학을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원하던 대로 서울의 공기를 마시며 법학도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녀도 이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고, 나이도 벌써 4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그녀가 처음 정치 입문 제의를 받은 것은 1995년 여름이었다. 인천지방법원에 근무할 때 상관으로 모신 적이 있는 모 변호사가 당시 창당준비에 있던 새정치국민지향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