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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어문학] 유럽 지역학 평가B괜찮아요
    @ 유럽의 개요유라시아 대륙 북서쪽에 돌출한 여러 개의 반도와 섬으로 구성된 주(洲).@ 유럽의 내용오세아니아주보다 약간 큰, 세계에서 두번째로 작은 주이다. 북쪽은 북극해, 서쪽은 대서양, 남쪽은 지중해로 둘러싸이고, 동쪽은 우랄산맥 ·우랄강 ·카스피해 ·카프카스산맥 ·흑해 ·보스포루스 해협을 경계로 아시아 대륙에 접한다. 지형적으로는 유라시아 대륙의 커다란 반도에 불과하나, 정치적 ·인종적 ·언어적 개념으로는 아시아 대륙과는 다른 하나의 뚜렷한 특성을 갖는 지역이다. 유럽이라는 명칭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단순히 ‘서쪽의 땅’ ‘해가 지는 곳’이란 뜻의 ‘에레브(ereb)’에서 유래한다.아시아와 유럽의 지형적 경계는 우랄 산맥으로 상정하는 관습이 오랫동안 고정화되어 왔고, 따라서 우랄산맥 서쪽의 러시아 영역을 유럽 러시아라고 불러 유럽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구분 방식으로 되어 왔다. 그러나 유라시아 대륙 북부의 넓은 영역을 차지한 러시아는 면적 ·인구에서 하나의 대륙으로 볼 수 있을 만하므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유엔에서도 우랄 산맥 서쪽의 러시아 영토를 제외한 좁은 뜻의 유럽을 유럽 대륙으로 보는 구분 방식을 취하고 있다.좁은 의미의 유럽 대륙은 면적이 490여 만 km2로 오세아니아 대륙의 1/2이 약간 넘고, 러시아의 1/4, 캐나다 ·중국 ·미국 ·브라질의 1/2보다 큰 정도의 작은 대륙이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 러시아를 구성한 7개국을 빼고도 36개의 크고 작은 나라들이 있고, 대부분이 육지를 국경으로 삼고 있어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오랜 동안 정치적 ·군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유럽을 지리적 위치 ·정치 ·인종 ·문화적 지표에 의해 다시 나누면 서부 유럽(영국 ·프랑스 ·베넬룩스 3국), 북부 유럽(아이슬란드 ·스칸디나비아 3국), 중부 유럽(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남부 유럽(지중해 연안 국가), 동부 유럽(러시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체코 ·불가리아 등) 등으로 구분할 어져 있다. 따라서 면적에 비해 해안선의 길이가 대단히 긴 것이 특색이다. 유럽의 어떤 지점도 해안에서 500 km 이상 떨어진 곳은 없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마케도니아 ·벨로루시 등 8개국만이 내륙국으로 대양과 직접 접해 있지 않을 뿐이고, 그 밖의 나라들은 바다와 직접 접해 있다. 따라서 유럽인과 바다는 떼어놓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왔으며 그리스와 로마의 항해기술을 이어받은 유럽인들이 신대륙 발견과 더불어 과거 500년 동안 세계 곳곳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만 ·갑(岬) ·섬이 많은 해안지형의 영향을 받았다.해안선의 길이뿐만 아니라 평야비율이 높은 것도 유럽의 지형적 특색의 하나이다. 유럽은 해발고도가 345 m로 아시아의 960 m보다 훨씬 낮고, 200 m 이하의 평지가 전체의 1/2 이상을 차지한다. 프랑스 ·에스파냐 사이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피레네산맥 북동쪽을 기점으로 유럽 대륙의 북부를 거쳐 러시아에 이르는 북유럽 대평원은 다른 대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연속적인 넓은 평야로 유럽 대륙의 역사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평야 면적이 넓은 반면 알프스산맥을 중심으로 해발고도 4,000 m에 이르는 높은 산맥이 대륙 남부를 동서로 달리고 있고, 이베리아 ·이탈리아 ·발칸의 세 반도는 평야지역보다 산지면적이 넓어 남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산업근대화가 늦어진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한편 중부 유럽 지역은 여러 개의 작은 산지와 분지 지형이 교차된 복잡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또, 북부 유럽 지역은 남북방향의 스칸디나비아산맥이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종주하고 있어 반도의 중추를 이루고 있으나 고도는 오랜 침식으로 그렇게 높지는 않다. 이러한 유럽의 지형은 지질과 지체구조(地體構造)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결과이다. 스칸디나비아에서 영국 북부에 이르는 고지대는 고생대 실루리아기(紀) 말에서 데본기 초 사이에 있었던 칼레도니아 습곡운동(褶曲運動)으로 형성된 산지로, 3억 년간의 오랜 침식으로 현재는 준평원화지 촌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괴촌(塊村)과 교통의 요지나 가로에 발달하는 가촌(街村)이 있고,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원촌(圓村)과 기반촌(棋盤村)도 있다.엘베강 서쪽으로는 괴촌형의 촌락이 탁월하나 그 동쪽의 슬라브족이 거주한 지역에는 가촌과 원촌 등 비교적 규칙적인 계획 촌락이 발달되어 있다. 가촌은 중심 도로 양쪽에 가옥이 배열되어 있고 그 후면에 각 농가의 농경지가 분포되어 있다. 중앙에 원형에 가까운 형태의 초지를 가지고 있는 원촌은 엘베강 하류의 양안(兩岸)에 잘 나타나 있다. 슬라브족에 의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원촌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가축을 공동방어하려고 중앙에 초지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중앙 초지에는 교회가 건축되거나 봉건 영주의 장원(莊園)이 건립되기도 하였다. 중앙 초지는 가축 보호지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시장이나 축제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기반촌은 도나우강 중하류의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괴촌이나 원촌에 비해 그 역사가 짧은 기반촌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도나우강 중하류 지방에 인구를 재배치하면서 1750년경에 세우기 시작한 계획 촌락이다. 바둑판 모양의 직교하는 도로로 구성되어 있어 촌락이 규칙적인 것이 특색이다. 1920년대 초 그리스 정부가 터키인을 추방한 지역에 최근 위와 같은 기반촌을 세웠다.유럽 농촌의 대부분은 집촌을 형성하고 있으나 다음 몇몇 지역에서는 산촌이 탁월하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영국의 북서 산지, 알프스 산지 및 기타의 여러 산지의 촌락은 대부분이 산촌이고, 플랑드르지방, 보덴시호 연안, 루아르강 하류 유역의 일부 촌락도 산촌을 형성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유럽의 도시화는 급속히 진전되었다. 18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도시 인구율이 10 % 안팎이었으나, 영국은 1850년대에 도시 인구율이 50 %를 넘었고, 독일, 베넬룩스 3국 등이 그 뒤를 이었다. 1930년대까지 북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그 수 되었다. 한편 이슬람교를 믿는 터키족에 의해 중동지방을 통하여 이루어지던 정상적인 동방 무역로(東方貿易路)가 봉쇄됨에 따라 유럽인들에게는 새로운 무역로 개척이 필요하였고 이는 곧 15∼16세기에 걸친 인도 항로와 신대륙 발견으로 요약되는 지리상 대발견 시대를 열어 놓았다.신대륙을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의 다양한 문물을 접하게 됨으로써 유럽인들은 그들의 세계관(世界觀)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발견한 지역으로부터 경제적 이익과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16∼17세기 근세 초기의 유럽의 팽창은 기본적으로는 무역의 성격을 띤 것으로 볼 수 있었으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에 의해 시작된 식민지 개척은 그 후 서부 유럽 여러 나라에 의해 확대되었다. 루이 14세가 죽은 후(1715)부터 빈 회의가 개최될 때(1815)까지 1세기 동안의 유럽은 근대적 특징을 가진 혁명의 시기였다. 이 시대는 정치 ·사회적으로는 프랑스혁명(1789)과 같은 시민혁명이 일어나 절대주의 군주체제를 타도하고 근대 시민사회를 수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18세기 중엽(1764년 하그리브스의 제니 방적기 발명)부터 19세기 초까지 진행된 산업혁명은 경제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 생활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유럽의 산업혁명은 르네상스 운동과 지리상 대발견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신대륙을 비롯하여 기술이 뒤떨어진 세계 각 지역에서 유럽의 공업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과거의 생산수단으로는 그 수요를 충족시켜 줄 수 없게 되었다. 1769년 J.와트의 증기기관의 발명과 새로운 동력원으로 석탄이 이용되면서 종래 가내수공업식 방직공업은 급속히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전환되었고,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와 유럽인들의 물질적 부를 전반적으로 향상시켜 주었다.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공업 원료의 획득과 공업 제품의 소화를 위해 해외 식민지 쟁탈전을 치열하게 전개하였다.나폴레옹을 퇴위시킨 유럽 열국(列國)의 대표들은 프랑스혁명 및 나폴레옹 전쟁 이5세 이하의 유 ·소년 인구비가 25 % 안팎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보다 훨씬 적은 반면, 60세 이상의 노년 인구비는 15∼20 %로 4∼5배나 많다. 이러한 연령별 인구 구성의 특징은 낮은 출생률(1.0∼1.5 %)과 사망률(0.8∼1.2 %)에 주로 기인되지만 그 밖에도 인구이동 ·전쟁 ·인구정책, 사회적 제도 등과도 관련이 있다.남녀별 인구 구성도 연령에 따라 다르고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제1 ·2차 세계대전과 이민 등으로 여자 인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남자 인구가 많은 나라로는 알바니아와 아일랜드가 있을 뿐이고 그 밖의 모든 나라가 여자 인구가 많다. 산업별 인구 구성을 보면 서부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제1차 산업인구가 20 % 미만인데 비하여 제2,3차 산업인구비는 30∼50 %를 넘고 있다. 그러나 남부 유럽과 동부 유럽 국가들은 아직도 제1차 산업인구비가 10 %를 넘고 있다. 특히 알바니아는 제1차 산업인구가 47 %로 가장 높다.15세기 말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인구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그 수가 적었으나 19세기 이후 교통과 통신 수단의 발달로 그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인구 이동의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으나 과거 150여 년간에 적어도 6000여 만의 인구가 유럽을 떠나 신대륙으로 이동하였고, 1700여 만 정도는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로 이동하였다. 신대륙으로 이동한 6500만 중 4500여 만은 미국과 캐나다로, 나머지 2000만 정도는 중 ·남미 지역으로 이동하였다.이들 유출 인구의 1/3 정도는 영국인이었고, 이탈리아를 비롯한 에스파냐인과 포르투갈인이 1/3 정도, 그리고 나머지 1/3은 러시아를 비롯한 동부 유럽과 북부 유럽 여러 나라가 차지하였다. 1620년 청교도(淸敎徒)의 이주와 같이 종교적 이유 때문에 유럽을 떠나 신대륙으로 이동한 인구도 있었으나, 그들 이동인구의 대부분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유럽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이상과 같은 유럽 인구의 대이동은 유럽 문화를 다른 지역에 전파하는 었다.
    인문/어학| 2002.05.10| 16페이지| 1,000원| 조회(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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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어문학부] 유럽지역학 사진자료 평가A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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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어학| 2002.05.10| 36페이지| 1,000원| 조회(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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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문학사] 레싱과 민나 폰 바른헬름에 대해 평가A좋아요
    2001. 11. 23.독문학사 발표자료레싱 [ Lessing, Gotthold Ephraim ]독일의 극작가. 비평가.국적 : 독일활동분야 : 문학출생지 : 독일 작센주주요저서 : 《라오콘》(1766) 《미나 폰 바른헬름》(1767)작센주의 그리스도교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향 마을의 장학금을 타서, 라이프치히대학 신학과에 들어갔다. 여기서 ‘세계의 축도’에 접하고 이 무렵부터 연극에 열렬한 관심을 보였다.1748년 베를린에서 저널리스트로 출발, 1755년에는 독일에서 처음으로 정통 비극에 시민생활을 도입한 《미스 사라 삼프슨》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1759년 동인들과 문예비평지 《현대문학 서간(書簡)》을 창간, 주로 연극비평을 통해 민중과는 별 인연이 없는 궁정 주변에 위집(蝟集)하는 문화의 우열성과 허식적인 의상에 가차 없는 필봉을 돌렸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 고전극의 권위에의 맹신을 타파하고, 그리스 비극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평가, 셰익스피어극의 평가에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였다.1759년에는 독일 봉건제도와 그 의식비평을 위해 효과적인 무기로서 간결한 산문체의 우화집도 발표하였다. 그러나 끊임없는 문필활동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상황은 작가의 작품 활동만으로는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하여, 1760년 군인이 되어 시인인 E.C.von 클라이스트의 추천으로 브레슬라우의 프로이센군 사령관의 비서로 발탁되었다.그러나 언뜻 보기에 일탈(逸脫)로도 여겨지는 이 시기에도, 잡지의 편집 ·발행 ·번역 ·번안 ·비평 ·소개(1760년 디드로의 이론과 작품을 소개하여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등 바쁜 일상생활이었고, 그의 최고의 업적으로 꼽히는 《라오콘 Laokoon》(1766) 《미나 폰 바른헬름 Minna von Barnhelm》(1767) 등의 구상에 기여하고, 소재를 제공하였다는 의미에서는 다작(多作)의 시기였다.1764년 베를린으로 돌아가,1766년 함부르크에 창립된 국민극장의 고문으로 취임하였다. 이 극장은 그의 기대와는 반대로 곧 경영부진 때문에 해산되었지만, 매호마다 그의 평론을 실은 기관지를 통해 불후의 유산을 후세에 남길 수 있었다. 오늘날 《함부르크 연극론 Hamburgische Dramaturgie》(1767∼1769)으로 알려져 있는 이 평론집은 이미 《현대문학 서간》에서 밝혀진 입장을 한층 세밀하게 발전시킨 것으로 독일 근대극에 큰 영향을 끼쳤다.1770년에는 브라운슈바이크공국의 볼펜뷔텔 도서관장에 취임하여, 생애를 마칠 때까지 그 직에 있었다. 1776년 그 곳에서 6년여 동안 사귄 애인 에바와 결혼하였으나 1년여 만에 사별하였다. 그 후 불우한 3년 간은 정통파 그리스도교의 목사 괴체와 열렬한 논쟁을 벌였으며, 관용의 정신과 양심의 자유를 확립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현인(賢人) 나탄 Nathan der Weise》(1779)과 《인류의 교육》(1780)에 나타난다. 진리의 소유보다도 진리탐구를 위한 성실한 노력을 하려는 태도가 그의 모든 행동과 저작에 일관되어 있다.만년은 몰이해한 영주(領主) 밑에서 제약이 많았으나, 1772년에는 희극 《미나 폰 바른헬름》과 쌍벽을 이루는 비극 《에밀리아 갈로티 Emilia Galotti》를 완성하였다. 그의 생애는 부단한 사상투쟁의 연속이었으나, 독일의 계몽사상가 중에는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확고부동한 확신과 명석한 지성의 소유자였다. 독일 근대 시민정신의 기수로 평가된다.미나 폰 바른헬름 [ Minna von Barnhelm ]@ 작품 배경 및 의도독일 근대극(近代劇)의 길을 열었던 G.레싱의 5막 희극.저자 : G.레싱장르 : 희극발표 : 1763년1763년에 써서 1767년에 초연하였다. 젊은 프로이센 군인 텔하임(Tellheim)이 주인공으로 설정된 것은 작자가 7년전쟁과 사회 변화에 강한 자극을 받은 때문일 것이다. 그의 약혼자인 여주인공 미나 또한 귀족 출신이지만 극 전체는 선명한 시민정신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단역들까지도 각기의 성격에 따라 인간적으로 행동한다. 이 점에서는 도덕적, 미적 앙시앵 레짐(구제도)의 속박을 받고 있는 재래의 독일극과는 큰 차이가 있다. 연인들 사이의 의견 대립, 거기서 생기는 행위의 뒤얽힘을 주축으로 전개되는 줄거리의 진행도 명쾌하다.@ 줄거리성실하고 명예를 중히 여기는 프로이센의 군인 텔하임 소령이 7년 전쟁 시 작센에 주둔하고 있을 때 뇌물을 받은 혐의로 퇴역을 당하고, 재산 몰수 처분을 받아 부하 유스트와 같이 베를린의 어느 여관에 투숙하고 있었다. 그는 작센의 어느 귀족의 딸인 민나(Minna)와 약혼한 사이였으나, 전쟁 때문에 외팔이가 되었고, 명예와 재산까지 잃었기 대문에 결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민나와 연락을 끊어 버린다. 한편 민나는 행방이 묘연한 텔하임을 찾기 위해 시녀와 같이 헤매다가 우연히 베를린에서 같은 여관에 투숙하게 된다. 이 때 텔하임은 돈이 떨어져 주인에게 약혼반지를 저당하고 돈을 빌려 쓰고 있었다. 민나를 맞이한 주인은 방세도 제대로 못내는 텔하임을 상등실에서 쫓아내고, 민나를 그방에 안내한다. 우연히 주인이 보여 주는 저당 잡힌 반지를 본 민나는 텔하임이 같은 여관에 있다는 것을 알고 당장 만나 보았으나, 그는 명예와 재산을 잃었기 때문에 민나와 결혼할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약혼 해약을 통고한다. 난처해진 민나는 꾀를 내어 주인에게서 그 반지를 사서, 그에게서 받은 결혼 반지를 돌려주는 척, 산 반지를 내주면서 "당신의 생각이 정녕 그러하다면 나도 약혼 못하겠소"하고 돌아선다. 그리고 시녀를 시켜 텔하임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숙부로부터 의절을 당하고, 자기도 거지와 같은 신세가 되었노라고 말하게 한다. 이 말을 들은 텔하임은 고결한 마음이 발동하여 사정이 그렇다면 민나와 결혼하여 그녀를 보호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다시 결혼 신청을 한다. 이 때 마침 그의 혐의가 풀려, 명예와 재산을 찾게 되었다는 전갈이 온다. 이번에는 민나가 강력히 결혼을 거절하면서 신분이 맞는 것만이 굳은 사랑을 보증하는 법이니까 단신도 신분에 맞는 좋은 상대를 찾아보라고 말한다. 이때 저당한 반지를 찾으러간 부하가 돌아와서, 민나가 벌써 사갔다고 보고한다. 화가 난 텔하임은 변심한 여자가 인연을 끊는 방법이 고작 이런 짓인가 하면서 민나를 힐책한다. 일의 진행이 공교롭게 된 민나는 당황하여 돌려 준 반지가 누구 것인지 확인해 보라고 한다. 텔하임은 그제야 사건의 진상을 알고 오해가 풀려 결혼한다.
    인문/어학| 2001.12.05| 3페이지| 1,000원| 조회(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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