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소설을 쓰거나,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혹은 연극, 모든 이야기에빠질 수 없는 것이 플롯이다. 그렇다면 플롯이란 무엇인가? 또 어떤 플롯이 가장 효과적이며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까? 본고에서는 소설의 플롯과 방송프로그램의 플롯이 어떻게 다르며 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살펴보고, 효과적인 플롯에 대한 연구를 하고자한다.서론1. 플롯이란 무엇인가플롯은 흔히 뼈대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작품을 분석해보면 플롯이라는 뼈대를 추려낼 수 있다. 잘 쓰여진 평론이나 작품 분석의 글을 보면 플롯을 짧게 요약한 대목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시나리오를 상품화 시키기 위하여 플롯을 1~2분 정도로 정리하는 솜씨가 있어야 한다. ‘당신의 작품은 무슨 이야기입니까?’에 대한 가장 단순한 대답이 바로 플롯이 된다. 뼈대를 빼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플롯을 뼈대라고만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플롯은 붕괴를 방지하기 위하여 조립한 아이 빔 같은 구조가 아니다. 플롯은 모든 페이지, 문장, 단어에 고여 있는 힘이다.뼈대보다 더 좋은 플롯에 대한 비유는 전기자장력이란 용어이다. 이야기의 모든 원자를 함께 엮는 힘이다. 플롯은 이미지, 사진, 등장인물을 서로 연결시킨다. 플롯은 과정이지 대상이 아니다. 플롯은 작품의 방향을 잡아가는 나침반이기도 하다.2. 플롯은 몇 개나 될까?픽션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패턴은 두 가지 뿐이다. 이 둘은 서로 의지하고 있는데 바로 플롯과 등장인물의 패턴이다. 플롯의 패턴을 만들어 낸다면, 등장인물의 행동 전체를 이끌어갈 역동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새로운 이야기들은 항상 새로운 패턴을 가지고 있을까? 모든 작품이 항상 새로운 플롯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플롯은 몇 개나 될까?연극 이론의 할아버직 격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거의 3천년 동안이나 변하지 않고 있는 최소공배수격인 기본적 원리를 제공하였다. 그가 말한 연결된 행동의 개념은 플롯의 핵심에 놓여있다. 원인과 서 이야기와는 무관하게 작가가 혼자서 사랑하는 부분을 말한다. 체홉은 만일 1막에서 총이 관객에게 선보인다면 제 3막에서는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또한 결정적인 부분이 결정적으로 보여서는 안된다. 대사나 등장인물에도 같은 법칙이 적용된다. 결정적인 문제를 사소하게 보이게 함으로써 관객은 작품이 바로 인생과 매우 닮았다는 오랜 관습을 받아 들일 수 있게 된다. 또한 관객은 작품 속에서 우연을 용납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클라이맥스에서는 주인공이 중심적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4. 등장인물과 플롯의 관계등장인물은 세명이 적당하다. 작가로서 모든 가능한 관계를 다 그려야 할 책임은 없다. 그러나 등장인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인물들을 그려내고 행동을 다루는게 더 어려워진다. 아주 크게 대립하는 장면이나 클라이맥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장면은 세 사람의 관계를 넘지 않아야 한다. 플롯과 등장인물, 이 둘은 함께 작용하며 뗄 수 없다. 이야기를 발전시키는데 독자들은 주인공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동기에서 우러나는 행동이다. 등장인물이 다른 선택을 하지 않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한다는 것은 논리적 연결, 즉 원인과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예측할 만한 행동을 하는 등장인물은 설정하지 말아야 한다. 플롯은 등장인물의 기능이며 등장인물은 플롯의 기능을 지닌다. 이 둘은 나누어 보려고 해도 나누어지지 않는다. 행동은 둘의 공동기반이다. 행동 없이 인물 없고, 행동 없이 플롯 없다. 작가가 사건이나 행동을 쓰는 데 더 관심이 있다면 행동이 일어나도록 등장인물을 창조할 것이며, 등장인물이 플롯보다 더 중요한 요소라면 인물 중심의 플롯을 갖게 되는 것이다.본론1. 스무가지 플롯의 플롯①추구- 돈키호테는 사랑을 얻을 것인가추구의 플롯은 주인공이 사람, 물건, 또는 무형의 형태의 대상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추구의 플롯에서는 탐색 대상이 주인공의 인생 전부를 걸 수 있는 대상이어야이고, 적극적이고 독특해야 하며, 등장인물과 상황은 고정된 인물상을 벗어나야 한다. 추적하는 장소가 좁으면 좁을수록 긴장은 더 커진다.④ 구출- 흑백논리도 설득력이 있다.구출의 플롯은 추구의 플롯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찾아야 하며 추적의 플롯처럼 상대방을 추적한다. 특징이 있다면 구출의 플롯의 제3의 인물에게 심하게 의존한다는 점이다. 프로타고니스트, 희생자, 안타고니스트는 제각기 특별한 기능을 가진다. 이 플롯은 등장인물의 인간형보다는 그 들이 겪는 행동이 더 가치가 있다. 흥미있는 이야기일수록 희생자의 구출은 불가능하게 보인다.⑤ 탈출- 두 번 실패한 다음에 성공하라.추적과 구출은 탈출의 플롯과 공통점이 많다. 탈출의 플롯은 붙잡힘과 탈출에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된다. 여기에는 마음의 플롯 따위는 포함되지 않는다. 탈출의 플롯은 확연하게 구분되는 세 단계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 프로타고니스트는 붙잡힌다. 범죄는 사실일 수도 있고 꾸며진 것일수도 있다. 주인공은 죄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주인공이 탈출 계획은 언제나 좌절되다가 세 번째 대목에서 성공하게 된다.⑥ 복수- 범죄를 목격하게 만들면 효과가 커진다.문학에서 이 플롯의 지배적인 동기는 분명하고 당당하다. 안티고니스트가 가한 실제적인 또는 상상의 상처에 대한 프로타고니스트의 복수이다. 이는 본능적인 플롯인데. 인간 내면의 깊은 곳까지 정서적으로 침투한다는 의미이다. 독자는 불의에 격분하고 이를 바로잡고자 한다. 그런데 복수는 항상 법의 지배 밖에서 일어난다. 처음에 주인공은 법에 호소하지만 그런 노력은 소용없게 된다. 그래서 베이컨이 야생의 정의라고 불렀던 것이다. 복수는 범죄와 맞먹어야 설득력이 있으며 복수의 플롯에 있어서 주인공이 범죄를 목격하게 만드는 것으로 더욱 공포를 가중시킨다.⑦ 수수께끼- 가장 중요한 단서는 감추지 않는다.수수께끼는 추측하는 게임이며 함정도 있다. 재치있고 영리해야 하며, 때로는 통찰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수수께끼의 핵심은 영리함에 있다. 아주 개된다. 프로타고니스트에 미치는 영향이 설정되고 프로타고니스트가 행동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투쟁하는 단계를 보여준다. 프로타고니스트가 유혹에 빠져서 만족하는 짧은 기간의 생활을 보여줄 수도 있다. 프로타고니스트는 유혹의 행동을 저지른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한다. 프로타고니스트는 유혹에 빠진 다음 이 사실을 부정하는 기간을 갖는다. 두 번째 극적 단계는 유혹에 빠진 영향을 반영한다. 짧은 기간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부저적 측면이 부상한다. 유혹의 대가를 모면하기 위하여 잘못된 결정을 또 내린다. 프로타고니스트는 책임과 처벌을 피하기 위한 방법과 수단을 찾고, 프로타고니스트가 저지른 행동의 부정적 영향은 두 번째 극적 행동의 분위기를 두 번째 극적 행동의 분위기를 더 커다란 긴장 상태로 몰아간다. 세 번째 극적 단계는 프로타고니스트의 내면적 갈등을 풀어준다. 이야기는 참회와 화해와 용서로 끝이 난다.⑪ 변신- 변하는 인물에는 미스터리가 있다.변신의 플롯은 변화에 관한 플롯이다. 이 플롯이 다루는 영역은 넓으나 변화는 아주 구체적이다. 이는 신체적 변화를 가져오면서 정서적으로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변신의 플롯에서 주인공의 신체적 특성은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실제적으로 변한다. 가장 잘 알려진 변신의 형식에서는 주인공이 동물의 몸에서 결혼할 나이에 있는 아름다운 젊은이로 변하는 패턴이 나온다. 변신은 보통 저주의 결과이고 저주는 자연의 질서를 어겼거나 잘못을 저지른 결과로 나타난다. 늑대 인간과 흡혈귀는 사악함을 내포한다. 저주의 치료에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바로 사랑이다. 변신의 플롯이 교훈을 준다면 사랑은 인간을 본능적 차원으로부터 구원한다는 내용이다. 플롯의 핵심은 주인공이 변신의 과정을 겪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데 있다. 그리고 주인공의 생활은 보통 금기사항과 의식절차로 묶여 있다. 안타고니스트는 고의적인 희생자였으나 나중에는 선택받은 자가 되며 주인공의 저주가 풀어지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⑫ 변모- 변화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변신과 가까이 연되었다. 그래서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며 지금까지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을 바꾼다.⑭ 사랑- 시련이 클수록 꽃은 화려하다.두 주인공이 소개되고 사랑의 관계가 시작된다. 첫 번째 단계는 관계가 이룩하는 과정을 다룬다. 첫 번째 단계 끝에 가서는 깊은 사랑을 하여 결혼을 하거나 어떤 상징적 일을 저지른다. 그러나 첫 번째 단계가 끝나기 전에 무슨 일이 벌어져서 둘을 헤어지게 만든다. 종종 둘의 관계를 시기하는 안타고니스트가 꾸며낸 일이기도 하다. 연인들이 상황이나 운명으로 헤어지기도 한다. 두 번째 극적 단계에서 서로 헤어진 연인 중의 한사람은 다른 사람을 찾거나 구하려는 노력을 한다. 한쪽에서 다른 이를 구하려고 노력할 때 다른 쪽에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거나 노력을 부정한다. 세 번째 극적 단계에서 적극적 입장을 지닌 애인은 두 번째 극적 단계의 모든 장애 요소를 극복한다. 마지막 결과는 두 사람의 재회이며 첫 번째 단계에서 있었던 정서적 긴장의 회복이다.⑮ 금지된 사랑- 빗나간 열정은 죽음으로 빚을 갚는다.사랑의 힘 또는 사랑의 개념은 연인들이 넘어서는 안될 선을 쉽게 넘게 만들고 금지된 영역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이야기는 종종 사회적 인식처럼 작용을 하며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을 때는 받는 벌이 무엇인지 경고하는 주장을 담고 있다. 금지된 사랑의 가장 공통적 형식은 간통이다. 간통 이야기에서 등장인물의 삼각관계는 항상 같다. 아내와 남편과 애인이다. 금지된 사랑의 또다른 형식은 근친 상간이다. 근친상간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끔찍한 금기이다. 또한 동성애는 시대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고 있는 금지된 사랑이다. 첫 번째 극적 단계는 두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고 사회적 범위 안에서 둘의 위치를 알려준다. 그들이 위반한 금기는 무엇인가? 그들은 이를 어떻게 다루는가? 주변의 인물들은 이를 어떻게 다루는가? 두 번째 극적 단계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관계의 핵심에 도달하게 만든다. 연인들은 이상적인 관계를 시작하지만, 사회적 심리적 압박을 받아 둘의 관계는 해체될.
중세 국어 차용어에 대하여1. 서론한 언어의 어휘 체계가 변화하는 원인으로 가장 먼저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어휘의 증가이며 또한 어휘의 증가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차용어이다. 완전히 고립되어 다른 언어들과 한번도 접촉을 가져본 일이 없는 언어란 생각하기 어렵고, 어떤 식으로든 언어간의 접촉이 이루어지면 차용 현상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용어는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본고에서는 차용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짚어본 후에 인근 나라들로부터 차용어가 많이 유입되었던 시기인 중세의 차용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2. 본론2.1. 차용어란 무엇인가?차용이란 한 언어의 음운, 어휘, 통사 요소가 다른 언어에 수용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언어 차용의 원인으로는 수동적, 소극적 원인과 능동적, 적극적 원인을 들 수 있다. 수동적, 소극적 원인은 민족 이동이나 외침, 식민 지배 등을 들 수 있는데 과거 우리 나라가 일제 식민 지배를 거치면서 많은 고유어를 잃어버리고 일본어나 일제 외래어를 받아들인 경우가 이에 속한다. 반면에 능동적, 적극적 원인으로는 선진 문물의 수용에 따른 필요적 동기와 모방적, 과시적 동기 도는 진취적 국민성, 국제화에 다른 교류 증대, 유행 심리 등을 들 수 있다.차용의 양상은 음운, 형태, 어휘, 통사론적 차원으로 나뉜다. 그러나 음운, 형태, 통사론적 차원은 그 예가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대부분 언어의 차용이라 하면 어휘 차용을 가리킨다. 이렇게 차용된 어휘를 차용어 또는 외래어, 들온 말이라고 한다. 어휘 차용은 국어의 구조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데 우리의 고유어에서는 어두 ‘ㄹ’을 꺼려 왔는데 서구 외래어의 차용으로 ‘라디오, 리본’과 같이 두음법칙에 예외가 생기기도 하였다.차용어의 연구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 외래어와 차용어의 문제이다. 외래어와 차용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보통 외래어와 차용어는 구별이 어려워 동의적으로 보는 편이다. 그러나 ‘차용어’라는 말은 수용자의 관점에서 빌어온 능동적, 적극적 의미가 담겨 있고, ‘외래어’라는 말은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결과적으로 외국에서 흘러온 말을 총칭하는 뜻이 있다고 구별할 수도 있다. 한편 김민수(1974)에서는 외래어의 하위 개념에 차용어, 귀화어를 두고 있다.ㄱ. 고유어(본래어) 단계: 고대 단계 이전부터 형성된 고유어ㄴ. 귀화어(융합어) 단계: 이른 시기에 차용되었지만 차용어 의식이 없어진 경우ㄷ. 차용어(조화어) 단계: 고유어와 다르다는 차용어 의식이 남아있는 경우ㄹ. 외국어(미조화어) 단계: 차용어의 발음, 뜻이 원래 외국어 원어 모습 그대로인 단계여기에서는 외래어의 분류를 고유어와 대비하여 위와 같이 나누었는데 이런 각 단계의 변별은 쉽지 않아 상대적이다.본고에서는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외래어와 동의적 의미로서 차용어를 지칭하기로 한다.2.2. 몽고어 차용어13세기 초 테무친이 칭기스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몽고는 비로소 하나의 통일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270년 고려 수도가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면서부터 1367년 원나라(이전의 몽골)가 망할 때까지 몽고는 약 100여 년 가까이 고려를 지배하였다. 지배족인 몽고족과의 언어 접촉은 많은 몽고어 차용어들이 유입되었던 원인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또한 고려 말 이성계가 전남 운봉에서 왜구를 물리칠 때 소년 적장을 ‘아기바톨(阿其拔都)’이라 불렀다는 내용이 『용비어천가』52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 주석에서 ‘바톨’을 ‘拔都或作拔突蒙古語勇敢無敵之名也’라고 풀이하고 있어 중세 몽고어 ba'atur(勇士)에서 온 ‘바톨’이 국어에서 사용되었음을 알려준다. 오늘날 몽고의 수도 ‘울란바토르(붉은 영웅)’에도 ‘바톨’은 남아있다.몽고어 차용어 중에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말이나 매에 관한 어휘들이다. 유목민족인 몽고의 특성에서 비롯된 바로 보인다. 특히 제주도에 몽고군의 목장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ㄱ. 말에 관한 어휘들아질게?(새끼 말) ajirγa morin, 악대?(악대말, 불깐 말) aγta morin, 가라?(가라말, 검은 말) qara morin, 졀다?(절따말, 털이 붉은 말) je'erde, 고라?(고라말, 등에 검은 털이 난 누런 말) qula morin, 굴헝?(구렁말, 밤색 말) kureng morin, 간쟈?(간자말, 이마와 뺨이 흰 말) qaljan morin, 부루?(흰말) buγurul morin, 얼럭?(얼럭말, 얼룩말) alaγ morin, 가리운?(가리온, 몸이 희고 갈기와 꼬리가 검은 말) qali’un morin, 셜아?(서라말, 흰 바탕에 거뭇한 점이 섞여 있는 말) sirγa, 기?마/기르마(길마, 말안장) golme, 加達(?頭) qaola'ar, 업지운(업진, 소의 가슴에 붙은 고기) eb?i'un, 가탈(발을 저는 말) qatar, 간지개(간지개, 앞뒤의 길맛가지와 둥우리를 꿰는 띠) γanjuγ-a, 오랑(오랑, 뱃대끈의 제주도 방언), olang, 祿大(녹대, 고삐의 제주도 방언) noγto
토끼전의 다양한 의미의 내용은 당시 사회의 여러 문제를 압축해놓은 축도로 읽혀진다. 특정 계급이나 계층, 또는 신분, 직업, 성, 지역, 나이 등의 시각이 내재되는 것인데, 그 중 서민적인 시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서민적인 시각이 중심에 위치하면서 지배계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가능케하는 인자로 작용하는 것이다.에서는 이러한 서민이식이 지배층의 무능과 알력, 그리고 모순된 정치현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나타나고 있다. 작품에서 용왕으로 투영된 왕은 매일 주색에 빠진 결과 병을 얻었다. 그리고 토끼의 교묘한 간출입론에 간단하게 속아넘어가서 오히려 토끼의 단죄를 요구하는 신하의 충간을 물리치고 대연을 베풀어 토끼를 극진히 대접한다. 결국 어렵게 잡아온 토끼를 대책없이 육지로 다시 돌려보내 자신의 유일한 생존지책을 허망하게 날려버리고 마는 판단 마비자이다. 왕뿐만 아니라 왕을 보좌하는 주석지신들도 자기보신적인 행위만 일삼으면서 조정전체가 무능하고 부패했음을 드러낸다. 자신의 이익과 안전만을 추구하고 상대방을 중상모략하고 파쟁만을 일삼는 이러한 어전회의의 모습을 통해 서민의식은 썩을대로 썩어있는 중앙 정치풍토를 마구 공격하고 있다.의 풍자는 지방 관료계급 및 서리계급의 가렴주구와 부정부패에도 향해져 있다. 은 서민들의 경제적 파탄과 생활의 참상을 모족회의를 통해 잘 그려내고 있다. 비참한 서민 상은 토끼의 생활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토끼의 이생의 삶은 팔난세상(八難世上)으로 묘사된다. 토끼의 삶은 온갖 착취와 수탈을 당하여 고픈 배를 틀어쥐고 유랑하며 사는 당시의 서민 생활상 바로 그것이다.이와 같이 은 지배계층의 무능과 사회적 모순을 점점 강하게 인식했던 피지배층의 시각을 탐지해 내고 있으며, 그들의 지배층에 대한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형성된 작품임을 분명히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시대의식과 풍자성이 진하게 배어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을 우유를 통해 시대의식과 풍자성만 드러내는 대에만 지나치게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의가 온통 풍자적 목적을 지향할 경우, 그것은 진정한 문학적 중심을 갖지 못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의 풍자적 우의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의 문학성을 자칫 훼손할 우려가 있고, 사상사적 기록자료로 폄하할 위험이 있다. 그렇지만 은 그처럼 풍자적 우의만을 추구하는 소박한 작품이 아니라 다층적인 의미가 혼재되어 있는 복합적인 작품으로 판단된다.자라에 대한 해석 및 우의적 대응의 문제이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갈등과 대립의 구조로 되어 있고, 피지배층의 시각에서 지배층의 부정한 행태와 사회구조적 모순들을 비판 풍자하고 있다고 할 때, 이는 토끼 중심의 관점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 도 하나의 주인공인 자라를 어떻게 보아야하는지의 문제에 직면한다. 자라가 에서 다루어지는 비중이 토끼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한다. 서술 분량도 그러하지만 서술의 주체가 되어 작품의 구성을 주도해 나가는 힘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그리고 이념을 현시하는 주체적 초점이 상당부분 자라에게 적재되어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자라는 작품 초두에서부터 결말까지 작품 전면에 등장해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단순히 자라에 대한 서술 분량 때문에 자라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자라에 대한 주체적 의존이 적지 않다는 점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산중 모족 회의에서 호랑이와 여우, 그리고 사냥개에게 수탈당하며 사는 동물들의 참담한 생활상은 자라의눈을 통해서 보고되고 있고, 토끼를 유인할 때 지상적 고난을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서민생활의 참상을 드러내는 것도 자라의 입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용왕의 우매함, 수궁대신들의 파벌 싸움, 관료들의 이기적인 보신제일주의 등을 폭로하는 것도 일정부분 자라를 주체로 하는 초점화를 통해 이루어진다.자라는 용왕의 병환을 고치는데 긴요한 토간을 구하기 위해 파견된 신하로서 피지배층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지배층에 속하는 인물이며, 따라서 서민적인 시각에서 볼 때에는 부정되고 타파되어야 하는 대상인가? 자라는 충과 같은 봉건적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구태의 화신인가?자라는 마치 유교적 규범의 운반체와 같다. 그러나 봉건적이고 유교적인 이데올로기를 적재하는 존재라고 해서 자라의 행위와 이념이 그동안 무시되고 폄하되어 온 듯하다. 물론 문학적 해석이란 시대의 변화와 시대정신의 요청에 의해 탄력있게 수행되는 것이므로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반유교적 성향을 강조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을 왜곡하는 수준까지 해석을 자의적이고 선택?제한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에는 자라의 집안일을 가지고 갖가지 유교적인 윤리 규범을 내세우고 있다. 자라의 충성과 의리는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전통과 가족 구성원 전체의 공감대 속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에 개인 발생적인 규범이기보다는 집단 발생적인 규범임이 강조된다. 에는 충성의 문제와 더불어 간언의 문제도 심각하게 제기되어 있다. 왕이 제대로 판단하게 하게 돕는 것은 신하의 역할이다. 그렇지만 자라만이 토끼의 궤변을 믿지 말라고 충심에서 우러난 간언을 올린다.또한 에는 효와 열, 그리고 자식 양육과 같은 문제도 자라의 가정문제를 통하여 제시되어 있다. 자라가 육지사신으로 결정되고 나서 곧바로 집으로 오는 이야기 설정 자체부터가 기정윤리의 국면을 조명하고자하는 작자츤의 의도와 결부된다.우리는 지금까지 토끼 못지 않게 자라 또한 의 주인공으로서 작품 속에서 중요한 주제적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실펴보았다. 그렇지만 의 풍자적 우의성을 강조하게 되면 자라의 이러한 위상을 파악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의 의미 중에서 반정도를 그냥 덮어버리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음을 논증한 것이다.한편 토끼의 서민적 대표성이 작품에서 시종일관 유지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토끼는 보통 전형적인 서민상을 대표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토끼의 행위에도 일관성이 부족한 점을 규지할 수 있다. 토끼가 용궁에서 위계를 부려 죽을 고비를 빠져 나오는 것은 서민의 지혜를 보여주고 서민층의 승리로 보아 마땅하지만, 용왕의 신임을 얻어 진수성찬의 주연을 대접받고 수궁미색을 탐하며 나아가 자라의 아내를 빼앗아 동침하는데 이른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토끼의 행위는 전형적인 서민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서민의 약점을 잡아 등쳐먹는 오리배의 행패가 아닐 수 없다. 토끼의 간교한 행위는 이본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결말부분에서도 보인다. 이와 같이 토끼가 교묘하게 남을 속이는 행위가 반복되면서 그것이 토끼가 세상을 얕게 살아가는 방식임이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처세술이 삶의 특수한 국면에서는 더러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되 그것이 전형적인 서민의 삶의 방식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연행술에 따른 초점화 방식과 이본별 편차 이본들은 세부내용에 있어서는 상당한 편차를 보여주고 있지만 전체적인 삽화구성방식이나 표현 방식은 어느 이나 유사하다. 그것은 이 판소리적 관습에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판소리에는 일정한 연행적 관습 내지 연행술이란 것이 존재한다. 완미한 형식을 갖추기 전까지 과정은 지속적인 변개와 윤색을 거쳤던 것이다. 판소리 창자들은 관객 앞에서 공연하고 관객의 반응을 수렴하여 그것을 자신의 판소리에 반영하여 내용과 형식을 변개하고 윤색한 다음 다시 관객들 앞에 서게되는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했을 것이다.판소리는 현장 연행 예술이다. 일정한 형태로 고정된 판소리라 할지라도 판소리는 현장 연행을 통해야 하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 유동성이 개입하게 마련이다. 먼저 판소리는 시간적인 제약이 가해진다. 하나의 토막소리를 마치고 시간이 있으면 하나를 더하는 식으로 공연을 이끌어 나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토막소리마다 어느 정도의 독자성과 자족성을 구유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판소리 연행술에는 부분창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이 장기로 하는 대목들을 선정하여 그것을 가지고 연창을 진행해나가는 방식이다. 토막소리는 유기적인 구성으로 짜여져 있다 하더라도 부분간이 이어지면 유기적인 맥락이 파괴되는 것은 흔히 벌어지는 현상이다. 대목들간의 유기적인 관계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서술의 초점화가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판소리 등장 인물은 모두가 이념적인 현시체들인데, 이들을 통해 이념적 서술을 선택할 때 자기자신의 상황과 외부적 상황이 개입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판소리에서 초점화의 혼란은 판소리 청중의 다원화에서 기인하는 바 클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판소리 창자는 청중의 취향에 맞는 사설의 선정과 표현기법에 고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청중의 성격에 따른 연행술의 차이는 필연적으로 서술시각의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아마도 창자는 일원화된 서술시각을 위해 노력했을 터지만 그것은 조화로운 통섭과 융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존주의 (實存主義 , existentialism)19세기 덴마크의 철학자 쇠안 키에르케고르가 불안의 개념, 무서움과 떨림, 죽음에 이르는 병 등의 저서에서 그 개념을 명확히 종합하기 이전에 실존주의적 사조는 파스칼, 중세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 초기 기독교의 성자 바울, 고대 이스라엘의 임금 다윗 등의 글에서 발견되는 하나의 전통이며, 일부 분석가들은 그러한 사조의 표현을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등 문인들에서도 발견하고 있다. 그 근본 전제는 합리주의 철학(데카르트, 칸트, 헤겔사상)이 규정하는 인간에 대한 추상적 이론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실제로 존재하는 체험적 개인의 상황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개인의 구체적 실존은 합리적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것이므로 합리 이외의 다른 방식에 의한 질문과 해답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20세기의 대표적 실존주의 철학자는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와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 등인데, 특히 문학 활동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이는 사르트르이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합리주의에 의한 낙관적 세계관이 불신되자 개인의 실존의 비합리성이 두드러지게 느껴졌고, 이것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작가들의 가장 중요한 테마가 되었다. 이들 실존주의적 사조를 띤 문인들에 의하면, 사람의 실존은 기존의 이론, 신학, 사회, 과학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다. 사람은 자기가 성취하는 바 그대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만큼 그는 자유롭다. 이 자유에 의하여 사람은 남이 자기를 규정하려 드는 것을 완강히 뿌리치고 자기를 스스로 정립할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의 자유 의지를 발휘해서 행동해야 한다. 이처럼 자유롭게 자기의 실존을 성취하기 위한 행동을 앙가주망이라고 부른다. 인생은 한시도 쉴 수 없는 행동의 연속이어야 한다. 실존은 결국 앙가주망인 것이다.한편 실존주의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한 세계 속에 인간이 실존한다고 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궁극적무신론적이지만, 키에르케고르의 전통을 이어받아 가브리엘 마르셀 등은 허무의 저 너머에서 만날 수 있는 궁극적인 존재, 즉 신을 인정하였다.실존주의적 사조 중 세계에 대한 절망과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 등 불안과 허무의 정서는 현대 문명에 대한 공포 및 반감과 합하여 카프카 류의 소설이나 부조리극 등에 잘 표현되고 있지만, 실존주의의 보다 핵심적인 강령인 허무를 받아들이고 성실한 앙가주망으로 나간다는 생각은 문학 속에서는 그렇게 큰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듯하다. 그것은 결국 로마의 영웅주의의 근본이었던 견인주의(스토이시즘)의 현대판의 하나라고도 볼 수 있으며, 견인주의가 모든 사람에게 다 매력적일 수는 없다. 1940년대와 1950년대 초기에 누렸던 인기를 실존주의 문학은 계속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참고문헌 : 문학비평용어사전, 김윤식, 민음사, 1999문학용어비평사전, 이상섭, 일지사, 199919세기의 합리주의적 관념론 또는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과 도전으로부터 시작된 사상으로, 주체적 존재로서의 실존의 본질과 구조를 밝히려는 철학적 입장이다. 최초의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인간은 합리적 체계 속에서는 해소될 수 없는 구체적 개별적 단독자로서의 존재이다. 실존이란 그러한 현실 존재 또는 참된 진실 존재로서의 참된 본래적 자기를 가리킨다. 이 참된 본래적 자기를 어떠한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각기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지만, 대체로 신을 인정하는 유신론적 입장과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적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에는 키에르케고르, 야스퍼스, 마르셀, 베르자예프 등이 있고, 후자에는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 카뮈 등이 있다.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대지(大地:現實)에 충실을 기하고 현실적 생에 대한 긍정적 사랑을 역설하는 무신론적 실존을 주장하며, 그 목표는 운명애와 '권력에의 의지'를 원리로 삼는 초인의 이념이다. 야스퍼스는 실존을 밝혀 주는 독특한 방법을 실존해명(實存解明, Existenzerhellung)에서 찾는다. 실존 해명은 은 죽음에 이르는 존재(Sein-zum-Tode)이며, 절대적 한계점으로서의 죽음을 직시하는 현존재이다.20세기 전반(前半)에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 사상.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생(生)의 철학 이나 현상학의 계보를 잇는 이 철학 사상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문학이나 예술의 분야에까지 확대하여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한 유행사조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 성립 당초의 실존주의의 주장 내용이 희미해져 실존이란 말뜻도 애매해진 감이 없지 않다. 실존주의 철학을 초기에 수립한 야스퍼스나하이데거를 오늘날 실존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할것이다. 실존이란 말은 원래 철학용어로서 어떤 것의 본질이 그것의 일반적 본성을 의미하는데 대하여, 그것이 개별자(個別者)로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여, 옛날에는 모든 것에 관해그 본질과 실존(존재)이 구별되었다. 그러나 하이데거나 야스퍼스에서는 실존이란 특히 인간의 존재를 나타내는 술어로 사용된다. 그것은 인간의 일반적 본질보다도 개개의 인간의 실존, 특히 타자(他者)와 대치(代置)할 수 없는 자기 독자의 실존을 강조하기 때문인데, 이와 같은 경향의 선구자로서는 키르케고르나 포이어바흐를 들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헤겔이 주장하는 보편적 정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 정신을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으로 보아 개인의 주체성이 진리임을 주장하고(키르케고르), 따라서 인류는 개별적인 나 와 너로 형성되어 있음을 주장했으며(포이어바흐), 바로 이와 같은 주장이 실존주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야스퍼스의 실존 을 예로 들면, 실존이란 내가 그것에 바탕을 두고 사유(思惟)하고 행동하는 근원 이며, 자기 자신에 관계되면서 또한 그 가운데 초월자(超越者)와 관계되는 것 이지만, 한편 그러한 실존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실존과의 관련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궁극의 진리는 좌절하는 실존이 초월자의 다의적(多義的)인 언어를 지극히 간결한 자유에 관한 사상을 오해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로는 이 밖에 L.셰스토프, N.A.베르자예프, 부버를 들 수 있고, 문학자로는 사르트르 이외에 카뮈, 카프카 등을 들 수 있으며, 실존주의의 시조(始祖)로서는 F.W.니체나 도스토예프스키, 나아가서는 B.파스칼까지도 거론되는 경우가 있다.또한 바르트나 불트만 등의 변증법 신학자가 실존주의 신학자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개인의 실존을 중시한다는 점일 뿐, 그 사상 내용에는 상당한 차가 있음에 주의하여야 한다.키에르케고르(1813.5.5~1855.11.11)덴마크의 철학자. 코펜하겐 출생. 아버지는 비천한 신분에서 입신한 모직물 상인으로 경건한 그리스도교인이었고, 어머니는 그의 하녀에서 후처가 된 여인이었다. 7형제의 막내로, 태어날 때부터 허약한 체질이었으나, 비범한 정신적 재능은 특출하였으며 이것이 특이한 교육으로 배양되어 풍부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변중(辨證)의 재능이 되었다. 소년시절부터 아버지에게 그리스도교의 엄한 수련을 받았고, 청년시절에는 코펜하겐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연구하여 1841년에 논문《이로니의 개념에 대하여》로 학위를 받았다. 그 동안에, 1837년경 그가 스스로 대지진(大地震) 이라고 부른 심각한 체험을 하였다. 그 내용은 아버지가 소년시절에 유틀란트의 광야에서 너무나 허기지고 추운 나머지 하나님을 저주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과, 바로 자기자신이 결혼 전에 아이를 밴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것 등을 안 사실로 죄의식이 심화되었고, 인생을 보는 눈과 그리스도교를 보는 눈에 근본적인 변혁이 생겼다. 한편, 37년 당시 14세의 소녀 레기네 올센을 알게 되자, 곧 사랑의 포로가 되어 약혼까지 하였으나, 애정의 상극과 내면의 죄의식 때문에 41년 가을에 약혼을 파기하였다. 이른바 레기네 사건이며, 이 때에 체험한 정신적인 갈등이 훗날 미적 저작의 주제가 되었다. 그 후 한때 베를린에 나가 당시 명성을 떨치던 철학자 F.W.셸링의 강의를 듣기도 하고,《돈 죠반니》는 대중의 비자주성과 위선적 신앙을 엄하게 비판하였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단독자(單獨者)로서의 신(神)을 탐구하는 종교적 실존의 존재방식을《죽음에 이르는 병》(49)《그리스도교의 수련》(50) 가운데에서 추구하였다. 그는 기성 그리스도교와 교회까지도 비판하였으며 《순간》 등의 팸플릿을 통한 공격은 매우 격렬하였다. 그런 와중인 55년 10월 갑자기 노상에서 졸도한 후 다음달 병원에서 죽었다. G.W.F.헤겔의 범논리주의를 배제하여 불안과 절망 속에 개인의 주체적 진리를 탐구한 그의 사상은 20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국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1909년부터 독일에서 C.슈램프가 키르케고르의 번역집을 내어 당시 신진이었던 P.바르트, J.H.하이데거, K.야스퍼스 등의 변증법 신학자와 실존주의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그로부터 그의 명성은 현대 그리스도교 사상과 실존사상의 선구자로서 세계에 알려졌다. 1995년 기독교한국루터회가 뽑은 세계를 빛낸 10인의 루터란 의 한 사람이다.니체(1844.10.15~1900.8.25)독일의 시인 철학자. 레켄 출생. 쇼펜하우어의 의지철학을 계승하는 생의 철학 의 기수(旗手)이며, S.A.키에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지칭된다. 목사인 아버지를 5세 때 사별하고 어머니 누이동생과 함께 할머니 집에서 자라났다. 14세 때 프포르타 공립학교에서 엄격한 고전교육을 받고 1864년 20세 때 본대학에 입학하여 F.리츨 밑에서 고전문헌학에 몰두하였다. 다음 해, 전임하는 스승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겼다. 이 대학에 있을 때, 쇼펜하우어의《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에서 깊은 감명과 영향을 받았고 또 바그너를 알게 되어 그의 음악에 심취하였다. 69년 리츨의 추천으로 스위스의 바젤대학 고전문헌학의 교수가 되었다. 70년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에 지원, 위생병으로 종군했다가 건강을 해치고 바젤로 돌아왔다. 그 이후 그는 평생 편두통과 눈병으로 고생하였다. 28세 때 처녀작《비극의 탄생》(1 특히
규방 가사의 서사 지향성 연구- , , 의 서술 시점을 중심으로목 차Ⅰ. 서론 ………………………………………………………… 11. 연구 목적 ………………………………………………… 12. 연구사 검토 ……………………………………………… 23. 연구 대상 ………………………………………………… 5Ⅱ. 본론 ………………………………………………………… 61. 서사 구조 및 서술 방식 분석 ………………………… 6⑴ 노처녀가 ………………………………………………… 6⑵ 복선화음가 ……………………………………………… 8⑶ 신가전 ……………………………………………………102. 서술 시점 분석 …………………………………………… 12⑴ 노처녀가 …………………………………………………12⑵ 복선화음가 ………………………………………………27⑶ 신가전 ……………………………………………………403. 각 작품에서 나타나는 3인칭 객관화 형식 ……………54Ⅲ. 결론 ……………………………………………………………56참고문헌 ……………………………………………………………58Ⅰ. 서론1. 연구 목적조선 후기는 두 차례의 전란의 후유증과 그로 인한 정치적 혼란으로 사회적 붕괴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당대를 이끌었던 봉건구조의 붕괴와 이로 인한 탈중세의 움직임은 문학 담당층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창작물도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이 글에서는 이러한 조선 후기에 일어난 다양한 문학적 변모 양상 가운데 가사의 서사 지향적 변모 양상을 몇 가지 작품을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조선 후기 가사는 서사적 기법을 대폭 받아들여 장편화하는 것을 비롯하여 가사가 소설화한다든지, 소설 속에 가사를 차용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가사 중 소설 지향을 보이거나 소설로 전환 양상을 보이는 것은 규방 가사들이다. 서인석(1994). 「가사와 소설의 갈래 교섭에 대한 연구 : 소설사적 관심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 논문.가사 일반이 산문적 성격을 갖고 있었으며, 또 서사적 경향을 보여 주었는데, 유독 규방가사가 이러한 양상의 주류를 질서를 갖춘 서사적 작품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서영숙(1996), 「복선화음가류 가사의 서술구조와 의미 : 를 중심으로」, 『한국 여성가사 연구』, 국학자료원.복선화음가류 가사 중에서는 , , , , 등 서술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본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 중 전기적 서술 양식을 보이고 있는 는 변형 계녀가사로 전형적인 계녀가사와는 달리 교술적인 각 조목을 축조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소설적 구성 위에 하나의 스토리를 도입하여 계녀하는 방식을 취하여 보다 서사성에 근접하고 있어서 본고에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Ⅱ. 본론1. 서사 구조 및 서술 방식 서술방식이란 작품 내 서술자가 작중인물의 이야기를 서두에서 결말까지 전개해 나가는 방식으로서, 서술 시점과 방법, 작품의 구성 방식을 아우르는 용어로 사용한다.분석⑴ 노처녀가(老處女歌)Ⅱ노처녀가는 크게 두 부분, 즉 도입부와 결말부의 산문적 진술과 작품의 핵심인 노처녀의 독백으로 처리되어 있는 가사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일종의 액자구조라 할 수 있겠다. 김유경(1988), 「서사가사 연구」,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이러한 전, 후반부의 ‘산문적 진술’은 가사가 지닌 정형적 율격을 파괴하면서 그것을 소설로 인식되게끔 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도입부의 진술은 고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으로, 형식적으로는 도입부의 화자가 전반적으로 줄거리를 이끌면서 다만 노처녀의 독백이 첨가되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역시 작품의 중심이 되는 것은 ‘노처녀의 독백’으로 되어 있는 가사 부분이다.도입부와 결말의 설정은 제3의 서술자가 이 작품의 배경과 분위기를 설명하면서 ‘허구적인’ 또 다른 인물(화자인 노처녀)의 등장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이 부분은 가사 일반의 율격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율격이 흐트러져 있으며, 마치 소설의 도입부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러한 점들은 작품을 당대의 독자들에게 ‘서사적 양식에 상당히 근접한 가사의 앞뒤에 약간의 해설을 첨가하여 읏듬이니본시 총명키로 무 노릇 못할숀냐기억(字) 나냐를 십년만의 쳐니효녹(孝行錄) 열녀전(烈女傳)을 무슈이 슉독(熟讀)모를 실 바이 업고 구고(舅姑)보양 못할숀가즁인(衆人)니 모힌 곳의 방귀 여 본 일 업고밥쥬걱 업허 노와 니를 쥭여 본 일 업장독소 벽겨여 뒤물 그릇 일 업고양치를 집어여 츄목허여 본일 업이 실 이만면 어가셔 못 숀가실 랑 이만고 죠(才操) 랑 드러 보쇼도포 짓 슈품 알고 홋옷시며 핫옷시며누비상침 모를숀가셰 폭 부치 홋니불을 삼일만의 맛쳐고치마 지어졔 다시 곳쳐 본 일 업함박족박 아지면 숄리로 기워고보션본를 못어드면 닛뷔로 졔일이오보를 지을 제는 안반 노코 말나니슬긔가 이만고 죠가 이만하면음식 슉셜 뭇 숀가슈슈젼병 붓칠졔 외지를 닛지말며상치을 먹을졔 고초장이 졔일이오쳥국장을 담을 졔는 무근 콩이 맛시 업쳥콩을 삼지 말고 모닥불의 구어먹쇼음식묘리(飮食妙理) 이만 알면 봉져(奉祭祀)를 못할숀가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어지는 이 부분은 불구인 자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애써 자위하고 있다. 노처녀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희화적인 대상으로 인식되게끔 하고 있다.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슬픈 상황을 즐겁고 유쾌하여 표현해 냄으로써 독자들은 노처녀의 입장에서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연민의 정도 느낄 것이다. 이 부분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설정함은 독자가 곧 작중인물로 감정이입이 되어 마치 스스로가 그러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또한 자신의 행실과 재주를 자랑하면서 작품의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작중인물의 말을 통한 ‘자기희화’는 독자에게 작품의 흥미를 제공해주는 기능을 하지만, 이어지는 부분의 행실과 바느질 그리고 음식솜씨자랑은 노처녀의 진지한 현실태도를 엿보게 만든다. 이것은 당대 유교적 사회의 일반적 부녀자의 모습을 연상시키게 한다. 노처녀 역시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따라서 노처녀는 결혼을 통해 정상적인 봉건 사회에 들어가의 목소리이며, 이러한 설정으로 인하여 독자와 작중인물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그리고 ‘이런 모양 이 거동을 신영(神靈)은 알시니 지성이면 감천이라’ 라는 부분을 주목해보자. 이 부분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노처녀 즉 작중인물의 목소리이며 둘째는 전지적 작가의 목소리이다. 노처녀가 스스로 독백한 부분이라 여길 수도 있으며, 흔히 고소설에서 엿보여지는 작가의 논평적 어조로 여길 수도 있겠다.⑩부모들도 의논고 동들도 의논여김도령과 의혼(議婚)하니 첫 마의 되는고나혼인일 갓가오니 엉덩츔이 졀노 난다줌어귀를 불근 쥐고 죵죵 거름 보살피며삽살 귀의 고 넌즈시 니른 말이나도 이졔 시집간다네가 을 던 날의 원슈 갓치 보와더니오날이야 너을 보니 니별 날 머지 안코밥 쥴 사 나 이랴이쳐로 말 후의 혼인 날이 다다르니신부의 칠보단장 과 갓치 거룩하고신낭의 모풍 더고나 보기 죳타젼안초레 맛츤후의 방치년 더욱 죠의신낭의 동탕과 신부의 아남미등(差等)이 업셔시니텬정필인쥴 오날이야 알거고나이러 시 온 일을 엇지여 지완(遲緩)턴고신방의 금침 펴고 부뷔 셔로 동침니원앙은 녹슈의 놀고 비 연니지는 길드림 갓흐니평 소원 다 풀니고 온갓 시름 바히 업이전의 잇던 이졔록 각니도로혀 츈몽 갓고 가 혈마 그러하랴이졔는 긔탄(忌憚)업다화자는 자신의 결혼에 대한 의지를 ‘지성이면 감천’이기에 신령이 그것을 들어주었다고 말한다. 가족들의 의논으로 김도령과의 결혼이 이루어지게 된 후 보여 지는 노처녀의 행동은 독자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엉덩츔이 졀노 난다 줌어귀를 불근 쥐고 죵죵 거름 보살피며 삽살 귀의 고 넌즈시 니른 말이 나도 이졔 시집간다’ 와 같은 표현에서 엉덩이춤을 추고, 심지어 삽살개에게 속삭이며 좋아하는 노처녀의 행동을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은 결혼으로 모든 것을 해소하고 기뻐하는 당시 여성들의 모습도 심화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이 장면에서의 시점을 살펴보면, 역시 앞에서와 같이 시점의 혼재양상이 일어난다. 1인칭 주인공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다가 노처녀의 결려노니 잔드리난 이마음일언일도 한빈지사 이모양이 한심하다불효 저일피라모두 1인칭 시점으로 어려운 시집살이로 인해 힘든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가세가 극빈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손님이 들어 술상을 차리라하는 부분은 간접화법의 인용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도 밑줄 친 부분과 같이 전당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상세화되어 하나의 장면처럼 제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또한 시집의 가난이 물정 모르는 글쟁이 남정네들로 말미암아 더욱 깊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삽화가 제시되어 있다. 아울러 반가의 뿌리 깊은 인습이 며느리의 삶을 얼마나 고단하데 하는 지를 체험적 실감으로 그려 내고 있다. ‘한 때 굶어 두 때 쉴시 치마끈을 졸라맨들 글로 어찌 당할소냐 눈이 캄캄하올 적에 헛두통을 앓노라니’같은 표현은 굶주림으로 인한 두통기를 겪어 본 이의 실감이 배어 있는 표현이다. 이렇게 그려진 부엌의 곤경과는 달리 사랑방의 술 사오라는 호기는 절묘하게 대비를 이루며 표현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 역시 다른 이본들과는 달리 사랑방의 호기와 허세를 그린 텍스트는 거의 없고 대비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배치는 이 작품만의 탁월한 전략적 배치를 구성함으로서 좀 더 서사화에 밀접하게 다가갔다고 볼 수 있다.⑦사사이 생각니 업난거시 한이로다분한심사 다시먹고 곰곰각 다시하니김장자 이부자난 근본적 부자련가슈족이 다셩하고 이목구비 온젼하니힘써 먹으면 그무엇을 부려하리ㄱ비단치마 입던허리 자치마 들너입고운혜당혜 신든발 석집신 졸여신고단장안 무근처마 갈고고 간하여외가지를 굴기길너 성시 팔아오고ㄴ을 누처서 오당 고은실을유황갓튼 큰비틀 필필이 닐젹쌍원앙 공작이며 기린봉황 범나라문도 찰난하고 슈법도 기이하다오회월여 고은실은 슈노키로 다진하고호상 돈천냥은 비단갑시 부족다이이 틈을타셔 칠십노인 슈의짓고쳡상복근 고은의복 녹의홍상 쳐녀치장어린아 옷이며 신입난 조복이라저녁 켜는불노 벽조반 얼런짓알알이 헤여먹고 준준이 모아보니이씨 부인은 혼수로 해 온 물건을 팔아 생활하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 재산을 늘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