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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음악]모차르트 완결판 평가B괜찮아요
    1. 들어가며.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는 하이든과 더불어 고전파의 양식을 확립한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그의 일생과 음악, 많은 일화 등은 음악에 대한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잘 알 수 있을 정도이며 특히 영화 ‘아마데우스’는 그를 더욱 더 잘 알 수 있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처음에 이 레포트를 위한 작곡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의 비교적 유명한 작곡자가 아닌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를 선정하여 연구해 보려고 하였으나, 그러한 작곡가들은 일반적으로 자료가 많지 않아 한계가 있었으며, 평소에 모차르트의 작품을 좋아하고 아인슈타인이 그의 작품 체계를 정리하기도 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이번 기회에 다른 작곡가보다는 모차르트의 생애와 음악을 체계적으로 분석해보고 싶어 작곡가를 모차르트로 선정하게 되었다.2. 모차르트의 생애.(1) 유년기 (1756~1762)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 악단의 부악장인 아버지 레오폴트와 장크트길겐 출신의 공무원의 딸인 어머니 아나 마리아의 사이에서 1756년 1월 27일에 태어났다. 그들 사이에는 7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 1751년에 태어난 모차르트의 누이 마리아 아나와 모차르트 만이 살아남았다. 그의 부친은 볼프간의 출생 이후에도 궁정작곡가의 칭호를 받았으며, 부악장의 지위에 취임하기도 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비록 바이올린 연주자나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볼프강이 태어나던해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처음 출판한 그의 이론서는 그가 죽고 오래지 않아 세계각국어로 출판되기도 하였다.1778년 2월 16일에 레오폴트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어린시절 너는 어린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어른스러웠으며 네가 클라비어에 앉아 있거나 음악에 몰두하고 있을 때면 아무도 감히 너에게 농담조차 걸 수 없었다. 심지어 너무나 엄숙한 너의 연주와 일찍 개화여행을 떠난다. 1772년 10월 24일에서 1773년 3월 13일까지의 3번째 이탈리아 여행에서 모차르트는 밀라노의 레조 극장 의뢰로 오페라 세라아인 k.135를 작곡하여 1772년 12월 26일 초연했다. 이 오페라는 그의 음악 양식 발전에 있어 중요한 경계선을 이루는 작품으로 세부적인 표현과 처리가 적절하며 특히 과현악 처리가 적절하며 특히 관현악처리가 풍부하다. 한편 슈라텐바 에로니무스가 그 자리를 계승하게 되었는데 모차르트와 새로 부임한 대주교의 관계는 결코 이전의 대주교와의 관계처럼 친밀하지 못했다. 1772년 4월 29일의 대주교 취임식을 위해 모차르트는 축전 오페라[시피오네의 꿈]k.126을 작곡했다. 밀라노에 있는 동안 그는[루초 실라]에 출연했던 뛰어난 가수인 라우치니를 위해 유명한 모테트[춤추라. 기뻐하라, 너의 행복은 영혼이여] k.165를 작곡했다.(4)빈, 짤츠부르크 여행(1773~1777)1773년 7월 14일부터 9월 26일가지 모차르트 일가는 다시 빈을 방문했다. 이때 모차르트는 빈에서 하이든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1773년 후반과 1774년 한해 동안 모차르트 일가는 찰츠부르크에 머물렀고 볼프강은 작곡에 몰두했다. 대표적인 그 시기의 작품은 아마도K196을 작곡했는데 이것 역시 대 성공을 거두었다. 만약 모차르트가 선제후 밑에서 일하려고만 했다면 그럴수도 있었으나 그는 찰츠부르크로 돌아가 1777년 후반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이 기간동안 엄청난 양의 곡을 작곡했으며 그 가운데는 다른 작곡가들이 이미 많이 써 먹은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에 곡을 붙인 매혹적이고 세련된 오페라 [양치기 임금]K.208이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모차르트는 몇몇 그의 미사곡에서 대중적이고 민속적인 미사를 시도했으며 그 가운데 크레도 미사가 특히 뛰어 났다. 이 밖에도 유명한 5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위한 매혹적인 [세레나타 노투르나]를 포함한 여러곡의 세레나테와 디베르티멘토를 작곡했다. 후에 모차르트는 [하프너 세레나테]를 기초로새로운 교자신의 자택 이외에 장소에서 모차르트가 연주하는 것을 금했으며 하인과 함께 식사하도록 강요했다. 두사람 사이의 긴장 관계는 곧 극에 달아 대주교는 모차르트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썼고 모차르트는 사임했다.(6) 후기 생애 (1781~1791)이 일로 1781년 모차르트는 고향의 궁정음악가를 포기하고 빈에서 독립된 음악가로 나섰다. 당시의 음악가는 궁정이나 교회에서 근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이러한 직업이 없는 음악가의 생활에는 빈곤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몇 년간의 기다림의 세월이 지난 끝에 1787년 12월 황제 요제프 2세는 모차르트를 궁정 작곡가로 임명하였고 많은 연주회에서 황제의 갈채를 받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와는 별도로 그는 1778년 황제가 설립한 굴립 징슈필을 위한 독일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유괴]의 작곡을 청탁을 받았다. 1782년 7월 16일의 초연은 대 성공을 거두었고 그러는 동안 모차르트는 뮌헨으로 빈으로 이사한 베버가와 함께 살게 되었으며 이 때 일루지아의 동생인 셋째딸 콘스탄체와 사랑에 빠졌다. 아버지 레오폴트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782년 강쿠트슈테판 성당에서 결혼했다. 콘스탄체에 대해서는 변덕스러운 성격에 악처였다는 등 비판이 있지만 두 사람은 서로 깊이 사랑했으며 모차르트는 일생 동안 콘스탄체에게 애정이 담긴 편지를 썼다.모차르트는 곧 부르크 극장이나 멜그루베에서 자신의 예약 연주회를 열기 시작했다. 모차르트는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으며 즉흥 연주도 했다. 모차르트의 K.413-595의 위대한 피아노 협주곡은 대부분 이러한 연주회를 위해 작곡된 것이다. 모차르트는 위대한 피아니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피아노의 구조와 기계적 장치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발전과 완성에 크게 이바지 했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지만 그의 경제사정은 안정적인 때가 결코 없었다.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하기 직전에 모차르트는 그의 생애중 가장 많은 수입을 올렸으며 장크트슈테판 성당 뒤쪽의 안락한 거처에서 살았다. 의학적 연구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이미 어린시절 퓨마티즘열로 심장에 무리가 있었으며 1791년 12월 같은 병으로 인한 심장의 충격과 과다한 출혈로 사망했다고 한다. 1791년 12월 5일 빈에서 사망했으며 다음날 모를 파는 인부들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크르마르크 묘지에 묻혔다. 홀로 남은 콘스탄체는 엄청난 빚더미 속에서 절망과 신경쇠약으로 고통받았다. 그녀는 후일 덴마크의 외교관 게오르크 니콜라우스 폰 니센과 결혼했으며 1842년 잘츠부르크에서 죽었다.(8) 여러 가지 사망원인설1) 독살설죽기 6달 전에 그는 독살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1829년에 있었던 콘스탄체의 회고는 다음과 같다.“나는 곧 죽을 것이요. 누군가가 나한테 아쿠아 토파나라도 먹인 거요. 내가 정확히 죽을 때도 계산했소. 그들은 이를 위해 레퀴엠을 의뢰했겠지만, 이걸 쓰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요”또한 모차르트가 콘스탄체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귀하의 권고에 따르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오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겠습니까?저는 이제 머리도 혼란하고 기분도 나지 않고, 또한 예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나이의 모습이 끊임없이 환상으로 나타난 고통스럽습니다. 저도 작곡하는 편이 쉬는 것보다는 덜 피로하기 때문에 계속 일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아무 것에도 흥미가 없고 때때로 가까워진 나의 종말을 의식합니다.정말로 숨이 끊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즐기기도 전에 죽고마는 것은 한없는 슬픔입니다. 생존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것이지만 천명을 인간이 어쩌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종말이 가까워온 인생은 체념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이 곡은 신이 섭리하는 대로 이루어질 뿐 입니다. 이 곡은 저의 백조의 노래로서 생명과도 바꾸어 완성시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이렇듯 콘스탄체의 회고와 모차트르의 서신에 의해 그의 죽음이 타살이고, 레퀴엠과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끊임없는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제시된 용의자들은 안토니오 살리에리와 프란츠 호프데멜이 있는데, 당에 페스트가 대유행하였기 때문에 그도 페스트로 죽었다는 것이다.- 휘라리아 설모차르트가 1771년에서 1772년까지 머물렀던 이탈리아의 시칠리섬은 휘라리아의 유행지였기 때문에 이에 감염된 것으로, 말년에 다리가 부은 것은 휘라리아에 의한 임파관성종창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내막염설모차르트와 잘 아는 사이였고 사후 콘스탄체 부인과도 친교 관계에 있었던 빈 대학 의학부의 게라데나 교수가 주장한 것이다. 그의 병력에 1763년에서 1764년에 걸친 독일 여행 중 상기도염으로 2주간 치료한 사실이 있고, 그 후 류마티스성 슬관절염이 발병한 것으로 보아 그의 사인은 류마티스성열에서 심내막염, 특히 대동맥 판막 협착이 야기된 상태에서 사혈을 계속함에 따라 이것이 더욱 악화되어 결국은 심부전으로 사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신부전설모차르트의 짧은 생애 동안 되풀이되는 연쇄상구균의 감염이 원인이 된 것으로,목과 피부의 만성 연쇄상구균은 자기 면역의 교차 반응을 일으켜 신염을 유발하였다는 것이다. 세균의 항원은 신의 유상피 세포의 단백질과 유사하기 때문에 신체가 세균을 제거하려는 교차 반응이 일어나면 신은 망가지게 된다. 그래서 약물을 다량 사용하였을 때와 같이 고혈압, 빈형, 만성의 감염때문에 신부전은 악화된다는 것이다.- 수은 중독설이 설은 베르다(1953)와 케르너(1969)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그들은 모차르트는 만성 수은중독의 증상으로 두통, 현기증, 구토, 체중 금소, 노이로제, 우울증, 불안, 초조 등을 보이다가 마침내 요독증상을 유발하게 되고, 오늘날 정확하게 알려져 있는 감흥 중독의 증상인 발열, 발진, 뇌막 자극 증상 등은 모차르트의 임종시 모두 나타났던 증상이며, 특히 한랭감도 수은 중독 때 보이는 증상이라고 주장했다.- 돈까스최근에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가 돈가스를 잘못 먹고 요절했다는 주장이 나왔다.그동안 폐렴, 심장질환, 신장결석, 류머티즘열병, 독살 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던 모차르트의 사인에 선모충병이 새로 추가된 것으로, 선모충병은 기생충에 감
    예체능| 2005.11.10| 14페이지| 3,000원| 조회(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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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과 글]여친 감동 데이트 작전!
    한양 유학생을 위한 서울 가이드북- 개 요 -1. 서울, 서울, 서울 우리의 서울 (편집자의 변)2. 함께하는 문화의 도시 서울-인사동, 대학로3. 아름다운 역사의 도시 서울-경복궁, 덕수궁4. 너와 함께라면 서울도 파라다이스! - 서울 야경 파헤치기-63빌딩, 서울타워, 서울야경 관광열차, 윤중로5. 서울서 꽃단장하자-이대 앞, 홍대 앞, 압구정 로데오거리, 아울렛, 백화점6. 이제 내 발아래 놓인 서울 (맺음말)1. 서울, 서울, 서울 우리의 서울!내 고향은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점잖게 부르면 지방이요 생각 없이 뱉어버리면 시골이다. 사실 소 먹이고 보건소에서 약을 타서 먹어야하는 시골이 고향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제일의 도시 서울에 비하면 내 고향은 시골일지도 모른다.시골에서 올라온 유학생인 나는 지하철만 타도 뭔가 해냈다는 만족감과 함께 이제 내가 서울 시민이 되어가는 구나라는 생각에 들떴던 것 같다. 이제 대학교 생활도 적응되어가고 지하철, 버스, 어색하던 서울말도 익숙해지니 금요일에 술 마시고 오후뿐인 주말을 보내기엔 날씨가 너무 화창하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요, 문화와 역사가 숨쉬는 도시이다. 또한, 서울은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이며, 패션의 선두 도시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여러 테마에 걸쳐 발로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서 지방에서 올라온 한양인들이 고향의 친구, 연인, 가족에게 ‘언제든지 올라오면 서울 구경 제대로 시켜주겠다’고 소리칠 수 있게 할 안내서가 되었으면 한다.2. 함께하는 문화의 도시, 서울■ 인사동문화와 예술의 거리라하면 인사동 아닌가? 찾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안국’역에서 내리는 것이다. 종로에서 가까운 곳이라 찾아가는데 그렇게 어려움은 없었다. 인사동은 흔히 우리나라 전통거리라 불린다. 그래서 그런지 지하철 입구를 나오자마자 외국인이 눈에 많이 띄었다. 겉으로 봐서 우리나라 사람 같은 사람들도 말은 일본말이나 중국말을 했다. 이렇게 한국의 전통과 문화, 예술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돈이 좀 넉넉할 때 친구들에게 선물하면 정말 좋을 거 같았다.그리고 인사동 거리에서 매우 눈에 띄는 것은 ‘쌈지길’이라고 하는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지하2층, 지상4층으로 되어있고 공예작가의 공방과 매장, 골동상과 전통 가구점, 생활용품점, 갤러리, 전통 식당과 떡집, 각종 디자인 전문점이 있었다. 이곳에도 정말 예쁜 것들이 많았다. 가게와 공간들은 나선형으로 구성된 길들에 위치해 있고 건물의 곳곳에는 기존에 쓰던 오래된 간판과 주춧돌, 오래된 한옥 구조에서 나온 잘 마른 나무 등이 분위기를 한껏 멋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쌈지길’은 건물이면서 동시에 500m에 달하는 길이었다. 건물을 휘감고 도는 경사로가 4층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완만한 기울기의 통로를 따라 건물 전체를 구경할 수 있었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서, 벼룩시장이 서고 각종 공연이 열릴 중앙 마당을 내려다보거나 인사동 전체 거리를 한눈에 구경할 수 있었다. 사람이 정말 많았고, 보이는 사람들마다 거의 대부분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만큼 볼 것도 많고 느낄 것도 많은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인사동에서 또 가볼만한 곳은 ‘사과나무’라는 음식점이다. 이곳에는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장소이다. 인사동 거리에서 수도약국 골목으로 들어가면 경인 미술관이 나온다. 경인 미술관 정문으로 들어가서 후문으로 나오면 바로 옆에 ‘사과나무’가 있다. 메뉴는 치킨 달, 불고기 비빔밥, 치킨 카레, 해물 덮밥이 있다. 특히 치킨 달밥이 가장 인기가 좋다고 한다. 인사동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음식점이다.인사동은 정말 한국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예술을 맛볼 수 있는 거리였다. 비록 예술과는 거리가 먼 나였지만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함께 구경하고 느끼는 게 재밌었다. 그리고 갈 때는 꼭 디지털 카메라를 가져가라고 당부하고 싶다. 맘대로 찍으면 안 되는 것들도 있지만 정말 찍어서 담아두고 싶은 것들이 많은 곳이었다.■ 대학로 (혜화동)이곳은 연극·영화·콘서트·뮤지컬 등의 각종 문화예술 단체있다고는 하나 공연안내소에서 어디에서 무슨 공연을 하는지 알아보고 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럼 자기가 원하는 공연을 여유 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대학로에는 차 없는 거리가 있었다. 정말 차가 안다녀서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맘 놓고 활보할 수 있었다. 이 거리에는 각종 가게와 음식점등이 정말 많았다. 그만큼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차가 안다니는 거리를 만든다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도로하나가 사람들만으로 꽉 찬걸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대학로에서 또 하나 가볼만한 곳은 아프리카 미술박물관이다. 이곳은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가보고 싶었고 매우 이색적이어서 소개한다. 여기에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가면, 조각, 장신구, 옷감, 의자, 창, 활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며, 전시된 작품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다양한 형태의 가면들이라고 한다. 가면은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만들어진 미술품으로서, 중요한 의식에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야외 전시장에는 대형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기념품 판매소에서는 아프리카 장인들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각종 조각상, 목걸이 등이 판매 중이며, 박물관 엽서와 카드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탄자니아산 원두를 직접 갈아 만든 커피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도심에서 이렇게 아프리카의 문화를 접해볼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을 것이다.대학로의 느낌을 한단어로 표현한다면 ‘젊음’이다.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인 만큼 우리 젊은이들도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친구들이나 연인과 함께 문화를 가까이 접하고 싶다면 이곳을 꼭 추천하고 싶다.3. 아름다운 역사의 도시, 서울서울은 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의 수도이다. 고궁에 가서 우리민족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며 따뜻한 햇살아래 산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독도를 자기땅이라 우기는 망측한 일본에 어떻게 대응할지 조선의 왕자, 공주가 되어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떤 기발한 아이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큰 규모와 사극에서 본 듯한 낯익은 장소들에서 또 한번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덕수궁경복궁이 아니면 덕수궁은 어떨까? 덕수궁에 가려면 지하철 1호선, 2호선 시청역에서 1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특히 덕수궁에는 국립 미술관이 있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에 갔다가 고궁에서 먹는 도시락 맛은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또한 모 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에 나오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분위기를 잡는데 최고이다. 경복궁처럼의 웅장함보다 덕수궁의 아담함에 나는 더 끌렸다. 아직은 앙상한 가지가 조금은 쓸쓸했다.■ 조선시대부터 서울의 중심지 종로고궁을 돌아다니고 가볍게 영화를 볼 생각이 있다면 종로3가에 가는 것은 어떨까? 지금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득세를 해서 예전만은 못하지만, 종로3가에는 유명한 영화관들이 많다. 서울극장, 단성사 등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골목 구석구석마다 음식점들이 있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보신각종을 보러 갈 수도 있다. 보신각종은 1호선 종각역에 위치해 있다. 연말연시에 재야의 종 타종식을 연인과 같이 보며 새 기분 새 뜻으로 출발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인과는 묵은 감정이 좋겠지만 말이다.4. 너와 함께라면 서울도 파라다이스바야흐로 봄이다. 봄에는 젊은 남녀의 마음에 사랑의 기운이 싹트기 마련이다. 이성친구와 데이트를 하려는데 매일 왕십리에서 어슬렁거릴 수 없지 않은가. 사실 왕십리는 지방의 시내 분위기와 흡사해 나에게 안도감을 주기는 한다. 하지만 이제부터 다가올 100일, 200일 기념일을 위해 왕십리를 벗어나보자.■ 63빌딩서울은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이다. 이색적인 기념일을 준비한다면 아니면 이색적인 프러포즈를 준비한다면 63빌딩 러브티켓도 괜찮을 것 같다.‘러브티켓‘은 두 사람이 60,000원이면 된다. ’러브 티켓‘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단 수족관 관람을 한다. 63빌딩하면 수족관 아니던가. 수족관에서 날이 에는 서울타워도 좋다. 어쩌면 대학생인 우리에게 더 어울리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서울타워를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서울의 명물 케이블카를 타지 않는 것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은 것이 아닐까?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3번 출구로 나와 퍼시픽 호텔 오른쪽 길로 걸어서 약 10분 정도 올라오면 케이블카 정거장을 발견 할 수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을 올라가며 본 서울의 야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면 서울타워에 도착하는데 지금은 보수중이라 오를 수 없지만, 11월부터는 보수작업을 완료하고 갈 수 있으니 서울타워에 올라가 서울을 봤으면 한다. 맑은 날 잘 보면 북한까지도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학교도 보인다.ㅡㅡ;; 그리고 올라가는 길에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극장도 있다. 2주에 한번씩 상영작을 바꿔준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가보는 것도 좋다.■ 서울 야경 관광 열차야경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의 최종편으로 서울 야경 관광열차를 소개한다. 매일 매일 숙제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보는 것이 사범대 앞에서 보는 서울 야경인데 왜 또 야경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특별한 날의 데이트를 위해서는 서울의 야경이 가장 분위기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다.서울야경 관광열차는 서울역에서 출발한다. 승무원들의 호텔급 서비스를 받으며 로맨틱한 분위기를 한껏 만끽할 수 있어 특히 여자들이 더 좋아한다. 무엇보다 한강을 따라 흐르는 야경은 열차 여행의 백미이다. 열차 안에는 조용한 클래식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불빛이 반짝이는 한강 다리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아름답다. 지방엔 이런 넓은 강이 없지 않은가.열차는 원목을 개조해 전체 객차의 바닥과 인테리어를 자연친화적으로 꾸며놓았다. 외부 풍경을 더욱 쉽게 볼 수 있게 맨 앞과 맨 뒤는 전망차로 되어 있다. 연인과 함께라면 어디든 맨 뒤가 좋은 법이다. 열차에는 간단한 먹을거리를 살 수 있는 카페테리아도 마련되어 있어, 열차 안에서의 특별한 식사도 경험할 수 있다.꽃피는
    인문/어학| 2005.04.03| 9페이지| 1,000원| 조회(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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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종교]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Jesus christ superstar
    Jesus christ superstar작품 정보뮤지컬/ 미국감독 : 노만 주이슨출연 : 테드 넬리(예수), 칼 앤더슨 (유다), 이본느 엘리만(마리아), 칼 멘더슨원작 : 팀 라이스 , 앤드류 로이드 웨버각본 : 앤드류 로이드 웨버, 노만 주이슨, 팀 라이스, 멜빈 브라그각색 : 노만 주이슨, 멜빈 브라그제작 : 노만 주이슨, 로버트 스티그우드촬영 : 더글라스 슬로콤브편집 : 앤토니 깁스음악 : 앤드류 로이드 웨버, 안드레 프레빈, 허버트 W. 스펜서이 영화는 예수가 보낸 마지막 1년 정도에 일어난 일들을 토대로 예수의 십자가형 전후의 상황을그려낸 영화였다..영화의 분위기나 배경이 이럴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현대 예수라고 표현 해야되나..음악또한 귀에익은 음악들이었고 좀 오래되긴 했지만 모든게 다 새로운? 황당스러운? 영화였다..영화가 시작되면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달려오는 버스가 보인다. 영화의 엑스트라들과 스탭들, 모든이들이 사막한가운데로 와서 하차하면서 세트들이세워지고, 끝에는 예수가 자신의 의상을 입으면서 나타난다. 개구리바지에 딱 붙는 러닝셔츠나 탱크탑을 입고 손에는 총을 든 젊은이들이 검은 복장을 한 카이아파스의 일당에 대항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젊은 반군들은 이내 카이아파스 일당을 제압하고 뒤이어 나타난 예수에게 환호한다.유다스가 등장하고 그는 고뇌하기 보다는 지저스를 비난하는 쪽으로 기운다. 그는 도무지 지저스를 이해하지 못한다.유다와 사도 예수의 갈등이 점점 증폭되고, 한편으로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은 예수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를 맞이하는 군중들을 보며 이 음모는 무르익어 가고 유다는 핏값을 받고 예수를 팔아 넘긴다. 하지만 유다를 인간의 모습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I don't need black the money 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지극히 인간으로 나타나는 그, 때로는 더듬거리고, 긴장한 모습으로, 방황과 고뇌를 하며 예수님을 돈으로 팔아야 하는 유다스의 모습. 인간이였기 때문에 흘리는 괴로운 눈물, 예수를 팔았던 유다스. 악인으로서의 그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그를 다시 한번 나타낸 것 같았다. 또한 절대적인 인간으로 나타난 예수님과 몸을 파는 창녀이긴 하지만, 그런 인간적인 남자로서의 예수를 사랑하는 마리아, 이런 설정은 적지 않은 충격이였으며, 오히려 신선하기 조차하였던 것 같다. 마리아가 표현한 I don't know how to love him! 그녀가 인간으로서의 신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잘 나타나는 대사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버린 I love him so ...인간의 사랑에 대한 부분을 잘 묘사한거 같았다.마지막 만찬은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였던거 같다. 죽어야만 하는 예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표현하였는데(조금은어이없었다..), 그 때 흐르는 음악과 그의 노래는 절규하고 미치는 것 같았다. 만찬에서 Judas와의 싸움은 예수님의 인간으로서의 절규라고 말하고 싶다. 마치 어릴적부터 죽마고우로 지내왔던 둘의 싸움와 화해, 매우 인상적 이였다. 신으로 믿었던 예수님에게 왜 Judas, 그 자신이 그렇게 까지 되게 마냥 내버려 두었는지, Judas 그 자신이 얼마나 Jesus를 사랑했는지 고백하는 그......인간을 잘나타내는 것 같았다..이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은 그 둘의 관계를 굳이 말로, 대사로, 가사로 전달하는 것보다 단지 음악의 근본적인 성격의 선율로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장면 이였다..Jesus & Judas of Kiss..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용서하는 Jesus의 모습은 신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드디어 최후의 만찬이 있은 날 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고 있는 예수는 체포된다..그뒤에 나오는 헤로즈의 코믹한 춤과 말투..주위의 여자들..술..등도 등장하는데..이는 꼭 현대사회의 높은 자리, 또는 돈, 권력 등을 비판하는듯한, 아니 너무나 잘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유다의 죽음' 에서는 자신이 예수를 배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자살로밖에 해결할 수 없었던 인간적 고뇌를 무겁고 처절하게 보여준다. '빌라도의 재판' 에서는 예수를 죽이고 싶지 않으나 총독의 위치에서 백성들의 요구를 받아 들여야 하는 빌라도의 고뇌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그를 몰아치는 군중들이 잘 표현되고 있는데 39번의 채찍질은 오히려 빌라도 자신의 자학으로 표현되어지며 무고한자를 죽인다는 괴로움에 쌓이는 빌라도의 마지막 대사 '내가 죽이는 것이 아니야' 네 멋대로 죽는 거야' 에서의 샤우트 창법은 그심정을 내가 느끼듯이 표현되어진다..
    인문/어학| 2004.10.18| 4페이지| 1,000원| 조회(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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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짜르트 완결판 평가A+최고예요
    1. 들어가며.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는 하이든과 더불어 고전파의 양식을 확립한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그의 일생과 음악, 많은 일화 등은 음악에 대한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잘 알 수 있을 정도이며 특히 영화 ‘아마데우스’는 그를 더욱 더 잘 알 수 있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처음에 이 레포트를 위한 작곡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의 비교적 유명한 작곡자가 아닌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를 선정하여 연구해 보려고 하였으나, 그러한 작곡가들은 일반적으로 자료가 많지 않아 한계가 있었으며, 평소에 모차르트의 작품을 좋아하고 아인슈타인이 그의 작품 체계를 정리하기도 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이번 기회에 다른 작곡가보다는 모차르트의 생애와 음악을 체계적으로 분석해보고 싶어 작곡가를 모차르트로 선정하게 되었다.2. 모차르트의 생애.(1) 유년기 (1756~1762)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 악단의 부악장인 아버지 레오폴트와 장크트길겐 출신의 공무원의 딸인 어머니 아나 마리아의 사이에서 1756년 1월 27일에 태어났다. 그들 사이에는 7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 1751년에 태어난 모차르트의 누이 마리아 아나와 모차르트 만이 살아남았다. 그의 부친은 볼프간의 출생 이후에도 궁정작곡가의 칭호를 받았으며, 부악장의 지위에 취임하기도 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비록 바이올린 연주자나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볼프강이 태어나던해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처음 출판한 그의 이론서는 그가 죽고 오래지 않아 세계각국어로 출판되기도 하였다.1778년 2월 16일에 레오폴트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어린시절 너는 어린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어른스러웠으며 네가 클라비어에 앉아 있거나 음악에 몰두하고 있을 때면 아무도 감히 너에게 농담조차 걸 수 없었다. 심지어 너무나 엄숙한 너의 연주와 일찍 개화여행을 떠난다. 1772년 10월 24일에서 1773년 3월 13일까지의 3번째 이탈리아 여행에서 모차르트는 밀라노의 레조 극장 의뢰로 오페라 세라아인 k.135를 작곡하여 1772년 12월 26일 초연했다. 이 오페라는 그의 음악 양식 발전에 있어 중요한 경계선을 이루는 작품으로 세부적인 표현과 처리가 적절하며 특히 과현악 처리가 적절하며 특히 관현악처리가 풍부하다. 한편 슈라텐바 에로니무스가 그 자리를 계승하게 되었는데 모차르트와 새로 부임한 대주교의 관계는 결코 이전의 대주교와의 관계처럼 친밀하지 못했다. 1772년 4월 29일의 대주교 취임식을 위해 모차르트는 축전 오페라[시피오네의 꿈]k.126을 작곡했다. 밀라노에 있는 동안 그는[루초 실라]에 출연했던 뛰어난 가수인 라우치니를 위해 유명한 모테트[춤추라. 기뻐하라, 너의 행복은 영혼이여] k.165를 작곡했다.(4)빈, 짤츠부르크 여행(1773~1777)1773년 7월 14일부터 9월 26일가지 모차르트 일가는 다시 빈을 방문했다. 이때 모차르트는 빈에서 하이든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1773년 후반과 1774년 한해 동안 모차르트 일가는 찰츠부르크에 머물렀고 볼프강은 작곡에 몰두했다. 대표적인 그 시기의 작품은 아마도K196을 작곡했는데 이것 역시 대 성공을 거두었다. 만약 모차르트가 선제후 밑에서 일하려고만 했다면 그럴수도 있었으나 그는 찰츠부르크로 돌아가 1777년 후반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이 기간동안 엄청난 양의 곡을 작곡했으며 그 가운데는 다른 작곡가들이 이미 많이 써 먹은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에 곡을 붙인 매혹적이고 세련된 오페라 [양치기 임금]K.208이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모차르트는 몇몇 그의 미사곡에서 대중적이고 민속적인 미사를 시도했으며 그 가운데 크레도 미사가 특히 뛰어 났다. 이 밖에도 유명한 5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위한 매혹적인 [세레나타 노투르나]를 포함한 여러곡의 세레나테와 디베르티멘토를 작곡했다. 후에 모차르트는 [하프너 세레나테]를 기초로새로운 교자신의 자택 이외에 장소에서 모차르트가 연주하는 것을 금했으며 하인과 함께 식사하도록 강요했다. 두사람 사이의 긴장 관계는 곧 극에 달아 대주교는 모차르트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썼고 모차르트는 사임했다.(6) 후기 생애 (1781~1791)이 일로 1781년 모차르트는 고향의 궁정음악가를 포기하고 빈에서 독립된 음악가로 나섰다. 당시의 음악가는 궁정이나 교회에서 근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이러한 직업이 없는 음악가의 생활에는 빈곤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몇 년간의 기다림의 세월이 지난 끝에 1787년 12월 황제 요제프 2세는 모차르트를 궁정 작곡가로 임명하였고 많은 연주회에서 황제의 갈채를 받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와는 별도로 그는 1778년 황제가 설립한 굴립 징슈필을 위한 독일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유괴]의 작곡을 청탁을 받았다. 1782년 7월 16일의 초연은 대 성공을 거두었고 그러는 동안 모차르트는 뮌헨으로 빈으로 이사한 베버가와 함께 살게 되었으며 이 때 일루지아의 동생인 셋째딸 콘스탄체와 사랑에 빠졌다. 아버지 레오폴트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782년 강쿠트슈테판 성당에서 결혼했다. 콘스탄체에 대해서는 변덕스러운 성격에 악처였다는 등 비판이 있지만 두 사람은 서로 깊이 사랑했으며 모차르트는 일생 동안 콘스탄체에게 애정이 담긴 편지를 썼다.모차르트는 곧 부르크 극장이나 멜그루베에서 자신의 예약 연주회를 열기 시작했다. 모차르트는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으며 즉흥 연주도 했다. 모차르트의 K.413-595의 위대한 피아노 협주곡은 대부분 이러한 연주회를 위해 작곡된 것이다. 모차르트는 위대한 피아니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피아노의 구조와 기계적 장치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발전과 완성에 크게 이바지 했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지만 그의 경제사정은 안정적인 때가 결코 없었다.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하기 직전에 모차르트는 그의 생애중 가장 많은 수입을 올렸으며 장크트슈테판 성당 뒤쪽의 안락한 거처에서 살았다. 의학적 연구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이미 어린시절 퓨마티즘열로 심장에 무리가 있었으며 1791년 12월 같은 병으로 인한 심장의 충격과 과다한 출혈로 사망했다고 한다. 1791년 12월 5일 빈에서 사망했으며 다음날 모를 파는 인부들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크르마르크 묘지에 묻혔다. 홀로 남은 콘스탄체는 엄청난 빚더미 속에서 절망과 신경쇠약으로 고통받았다. 그녀는 후일 덴마크의 외교관 게오르크 니콜라우스 폰 니센과 결혼했으며 1842년 잘츠부르크에서 죽었다.(8) 여러 가지 사망원인설1) 독살설죽기 6달 전에 그는 독살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1829년에 있었던 콘스탄체의 회고는 다음과 같다.“나는 곧 죽을 것이요. 누군가가 나한테 아쿠아 토파나라도 먹인 거요. 내가 정확히 죽을 때도 계산했소. 그들은 이를 위해 레퀴엠을 의뢰했겠지만, 이걸 쓰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요”또한 모차르트가 콘스탄체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귀하의 권고에 따르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오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겠습니까?저는 이제 머리도 혼란하고 기분도 나지 않고, 또한 예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나이의 모습이 끊임없이 환상으로 나타난 고통스럽습니다. 저도 작곡하는 편이 쉬는 것보다는 덜 피로하기 때문에 계속 일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아무 것에도 흥미가 없고 때때로 가까워진 나의 종말을 의식합니다.정말로 숨이 끊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즐기기도 전에 죽고마는 것은 한없는 슬픔입니다. 생존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것이지만 천명을 인간이 어쩌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종말이 가까워온 인생은 체념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이 곡은 신이 섭리하는 대로 이루어질 뿐 입니다. 이 곡은 저의 백조의 노래로서 생명과도 바꾸어 완성시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이렇듯 콘스탄체의 회고와 모차트르의 서신에 의해 그의 죽음이 타살이고, 레퀴엠과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끊임없는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제시된 용의자들은 안토니오 살리에리와 프란츠 호프데멜이 있는데, 당에 페스트가 대유행하였기 때문에 그도 페스트로 죽었다는 것이다.- 휘라리아 설모차르트가 1771년에서 1772년까지 머물렀던 이탈리아의 시칠리섬은 휘라리아의 유행지였기 때문에 이에 감염된 것으로, 말년에 다리가 부은 것은 휘라리아에 의한 임파관성종창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내막염설모차르트와 잘 아는 사이였고 사후 콘스탄체 부인과도 친교 관계에 있었던 빈 대학 의학부의 게라데나 교수가 주장한 것이다. 그의 병력에 1763년에서 1764년에 걸친 독일 여행 중 상기도염으로 2주간 치료한 사실이 있고, 그 후 류마티스성 슬관절염이 발병한 것으로 보아 그의 사인은 류마티스성열에서 심내막염, 특히 대동맥 판막 협착이 야기된 상태에서 사혈을 계속함에 따라 이것이 더욱 악화되어 결국은 심부전으로 사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신부전설모차르트의 짧은 생애 동안 되풀이되는 연쇄상구균의 감염이 원인이 된 것으로,목과 피부의 만성 연쇄상구균은 자기 면역의 교차 반응을 일으켜 신염을 유발하였다는 것이다. 세균의 항원은 신의 유상피 세포의 단백질과 유사하기 때문에 신체가 세균을 제거하려는 교차 반응이 일어나면 신은 망가지게 된다. 그래서 약물을 다량 사용하였을 때와 같이 고혈압, 빈형, 만성의 감염때문에 신부전은 악화된다는 것이다.- 수은 중독설이 설은 베르다(1953)와 케르너(1969)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그들은 모차르트는 만성 수은중독의 증상으로 두통, 현기증, 구토, 체중 금소, 노이로제, 우울증, 불안, 초조 등을 보이다가 마침내 요독증상을 유발하게 되고, 오늘날 정확하게 알려져 있는 감흥 중독의 증상인 발열, 발진, 뇌막 자극 증상 등은 모차르트의 임종시 모두 나타났던 증상이며, 특히 한랭감도 수은 중독 때 보이는 증상이라고 주장했다.- 돈가스최근에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가 돈가스를 잘못 먹고 요절했다는 주장이 나왔다.그동안 폐렴, 심장질환, 신장결석, 류머티즘열병, 독살 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던 모차르트의 사인에 선모충병이 새로 추가된 것으로, 선모충병은 기생충에 감
    예체능| 2004.06.06| 14페이지| 3,000원| 조회(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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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 중앙인사관리의 이원화
    1. 중앙인사위원회의 조직구성과 기능1-1. 중앙인사위원회의 구성중앙인사위원회는 인사행정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1999년 5월에 설치된 행정부의 중앙인사기관장기관으로서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이에 따라 중앙인사위원회는 행정부 소속 공무원의 인사행정에 관한 기본정책 수립, 인사행정 분야의 개혁에 관한 사무 및 3급 이상 공무원의 채용·승진심사와 행정기관 인사운영의 적정 여부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공무원 인사운영을 총괄하고, 중앙인사위원회는 인사행정의 기본정책수립 및 개혁사무를 총괄함으로써, 공무원 인사관리에 있어서 정책과 집행이 분리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중앙인사위원회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1인, 비상임위원 3인 이내로 구성된다. 위원장 및 위원의 임기는 3년이며, 1차 연임이 가능하며, 위원장·상임의원·사무처장은 정부위원으로 한다. 또한 중앙인사위원회의 특징으로 위원장 및 위원의 정치적 중립과 신분보장을 들 수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정치인은 아래 사유 해당시 위원장 또는 위원자격에서 배제·임용일전 3년이내에 정당법에 의한 정당의 대표자 또는 간부이었던 자·선거에 의하여 취임하는 공직에서 퇴직한 날로부터 3년 미경과자·소신있는 직무수행을 위해 위원장 및 위원의 신분보장 강화·장기간 심신쇠약으로 직무수행 곤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사에 반한 면직 불가1-2 중앙인사위원회의 기능중앙인사위원회의 주요기능은 다음과 같다.◎인사행정에 관한 기본정책 수립·공무원 인사정책 및 인사행정운영의 기본방침 마련·인사행정분야의 개혁에 관한 사무·인사·보수 등 인사관계법령의 제 · 개정 심의◎고위직 공무원 인사심사·1∼3급공무원의 채용·승진임용에 관한 기준 및 절차 마련·1∼3급 일반직·별정직·계약직공무원의 채용 및 승진심사* 각 부처가 심사결과에 응할 수 없을 때에는 재의(再議) 요구 또는 심사결과를 첨부 하여 직접 임용제청 가능◎공무원 처우개선 추진·공무원의 처우개선에 관한 종합계획의 수립·공무원의 직종 및 직장예비군·민방위대의 관리, 행정심판 및 송무 업무의 수행 등을 담 당한다.▷ 정책지원과: 국가인력정보 종합관리정책의 수립, 국가인재활용시스템의 운영 등에 관한 사항, 인재정보 및 인력교류 정보제공에 관한 사항, 인사정책지원시스템의 개발과 활용에 관한 사항, 인사정책 관련정보 및 자료의 수집·관리,국제협력에 관한사항 등을 수행한 다.▷ 인사심사과: 3급 이상 공무원으로의 채용 및 승진심사에 관한 사항, 인사심사와 관련된 자료·여론등의 조사에 관한 사항, 위원회의 의사 및 회의 기록관리 등 운영에 관한 사 항, 개방형 임용제도 및 그 운영에 관한 사항, 직위공모제도의 운영에 관한사항 등을 수 행한다.▷ 인사정책과: 공무원 인사제도 개혁에 관한 정책의 수립, 공무원 인사행정운영의 기본방침 수립, 공무원 인사관계법령의 심의에 관한 사항, 공무원 직급체계 개편에 관한 사항, 공 무원 인사감사 및 지도·지원, 외국의 공무원제도 연구 등을 수행한다.▷ 급여정책과: 공무원의 처우개선에 관한 종합계획의 수립, 공무원 보수제도의 연구·개선 및 운영에 관한 사항, 공무원의 직종별 봉급 및 제수당 · 여비 등의 조정, 기업체·외국 공무원 등의 보수제도·실태의 조사 등을 수행한다.▷ 직무분석과: 직무분석과 직무평가에 관한 사항,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개발·도입 등에 관 한 사항, 능력주의 인사제도 도입에 관한 사항, 직위분류제도의 연구·도입에 관한 사항 등을 수행한다.2. 행정자치부 인사국의 조직구성과 기능2-1. 행정자치부 인사국의 구성행정자치부는 정부조직법상 대통령 통할 하의 중앙행정기관의 하나로서, 과거 총무처의 법령 및 조약의 공포·인사·조직관리·정부청사관리 등의 기능과 내무부의 지방자치지원·민방위재난관리 및 소방 등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행정자치부 장관은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국무위원의 지위를 가진다.행정자치부는 1실, 1본부, 6국, 12개 소속기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가운데 다음 와 같이 인사국, 복무감사관, 소청심사위원회 등이 인사담당 부서라고관 리 및 교양·정서함양 등과 관련된 업무도 담당한다.▷ 인사국 교육훈련과: 공무원의 국내·외 교육훈련제도를 연구·개선하며, 국내·외 교육훈 련에 관한 협의·조정 및 평가를 수행한다. 그리고 교육에 관한 각급 행정기관 및 공무원 교육훈련기관을지도·지원하며, 국내위탁교육을 실시한다.▷ 인사국 고시과: 시험제도를 조사·연구 및 개선하고, 시험계획을 수립·집행하며, 공무원 시험 감사의 실시 및 시험사무를 지도·지원한다. 시험위원의 위촉과 그 명부관리를 담당 하며, 시험문제를 편집·관리한다. 5급 이상 일반승진시험요구서를 심사하고, 5급 이상 지 방공무원 임용시험을 운영한다.▷ 복무감사관: 복무감사관은 산하에 복무조사담당관실, 감사담당관실, 윤리담당관실 등을 두어 다음과같은 업무를 관장하게 하고 있다.① 복무조사담당관실: 공무원의 복무 및 비위관련사항을 담당하며, 제1·제2 중앙징계위원 회를 운영하여 징계업무를 수행한다. 또한 복무제도의 조사연구 개선 및 운영에 관한 업무를 담당한다.② 감사담당관실: 행정감사제도의 운영과 행정감사계획의 수립 및 조정을 담당하며, 행정 자치부 및 그 소속기관과 산하단체에 대한 감사업무를 수행한다.③ 윤리담당관실: 공직자 재산등록심사 및 공개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며, 퇴직공직자의 유 관영리사기업체 취업제한에 관한 업무를 담당한다. 또한 정부공직자 윤리위원회의 운 영을 담당한다.▷ 소청심사의윈회: 소청심사위원회는 차관급 위원장 1인을 포함한 5인 이상 7인 이내의 상 임위원과 필요시 약간의 비상임위원을 두는 상설 합의체기관으로, 상임위원은 별정직 1급 공무원으로서 임기는 3년이고 1회 연임할 수 있다. 소청심사위원회는 행정부 소속 공무원 의 징계처분과 기타 그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분에 대한 소청사건을 심사 · 결정하며, 동 위원회의 결정은 처분행정청을 기속한다. 그러나 소청심사위원회는 행정자치부 내에 설치되어 있고, 국회의 동의 없이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독립성이 강하지 않으며, 동 위원회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인정될 때는 행정자치부은 인사기관이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공무원 인사가 정치적 영향을 과도하게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중앙인사위원회의 위상은 독립성을 확보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우선. 우선 중앙인사위원회의 위원들이 임기가 보장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 기관장들 중 법으로 정해진 기관장들이 임기를 채운 전례가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독립성이 보장될 가능성은 낮다. 또한 1명의 상임위원이 사무처장을 겸임함으로 인해 위원장과 상하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나머지 3명의 비상임위원들은 전문성이나 정보력에 있어서 위원장이나 상임위원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독립성의 기본이 되는 합의에 의한 인사정책이 어려운 실정이다.3-3. 행정자치부의 인사 전문성 문제현재 행정자치부는 정부의 조직과 인사관리를 담당하던 과거의 총무처와 지방행정을 관장하던 과거의 내무부를 통합시킨 것이다. 총무처는 기본적으로 행정부 내의 인적자원을 관리하는 참모 기능을 담당하였고 내무부는 전국의 국민을 대상으로 일선행정을 펼치는 계선 기능을 수행하였는데 인사관리 기능이 공정성을 중시한다면 지방행정은 신속성과 효율성을 중시한다. 전자는 중앙정부 관리 차원이고 후자는 지방정부 관리 차원의 문제이다. 그래서 행정자치부장관은 그만큼 정치적이고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으며 장관의 1차적 관심은 인사 업무가 아니라 민심과 직결되어 있는 지방 행정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사의 전문성 차원에서 과거의 총무처를 비판했던 것인데 지금도 그 비판을 벗어나기 힘들게 되었다.한편 과거의 총무처와 내무부를 인위적으로 합치다 보니 소청심사기능까지도 행정자치부에서 책임지고 있다. 공무원에 대한 사용자의 입장에 있으며 중앙징계위원회를 관할하고 있는 부서와 동일한 부서에서 소청심사 기능까지 담당한다는 것은 공무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하는 본연의 기능과 성격을 상실하고 있다는 논리적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3-4. 특정직 인사 관련 공정성 문제우리나라의 정치문화적 특성과 관련하여 엽관제적 정실인사의 비판을 가면, 대부분의 국가는 중앙인사기관을 독립합의형의 조직형태에서 비독립단독형의 조직 형태로 설치하여 운영하지만, 몇몇 국가는 독립합의형의 조직 형태와 비독립단독형의 조직형태의 장점을 취하며 인사행정의 정치적 중립성과 개인의 권익보장, 그리고 인사행정의 막료적 성격을 고려하여 인사행정의 효율화를 도모하기 위해서 중앙인사기관을 복수로 설치하여 양자가 적절히 인사기능을 분담하여 수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그 동안 총무처로 대표되어 온 중앙인사기관의 독립성이 결여되어 정치상황의 변동에 따라 인사제도 및 운영의 안정성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며, 인사운영의 객관성 및 공평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또한 실적주의에 입각한 공무원제도를 운영하면서도, 정실인사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이에 대한 해결을 모색하여야만 한다. 인사행정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도 부처형태의 인사행정기관보다는 인사기능을 총괄하는 인사원이나 준입법·준사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인사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안이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지역감정의 문제와 사회 전반에 걸친 인맥중심의 운영에 대한 비판을 감안할 때 일차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가 효율성보다 중립성과 공평성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에따라 현재는 중앙인사관의 조직형태를 합의제형인 인사위원회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4-2, 인사개혁과 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체계지금까지 거론된 중앙인사기관의 주요 문제점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중앙인사기관의 독립성이 결여되어 정치상황의 변동에 따라 인사제도 및 운영의 안정성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며, 인사운영의 객관성 및 공평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 둘째, 중앙인사기관이 인사기능 이외에 이질적,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인사제도와 그 운영의 전문성 확보가 곤란하며, 또한 인사관장기관이 공무원의 종류별로 다원화되어 있어, 공무원 인사제도의 종합성 유지와 직종간의 형평성
    사회과학| 2002.12.11| 9페이지| 1,000원| 조회(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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