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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신도-무당들이 받들고 모시는 여러신들을 그린 그림.몸 주신을 신단에 모시는 중부와 북부지방에주로 그려졌고, 여러 탈춤이 크게 발전한 황해지역의 무신도들이 제일 다양하다. 무신도는 오늘날 종이에 인쇄한 것들도 있지만, 당채(唐彩)나 석채(石彩) 등적색 · 청색 · 황색 위주의 진채(眞彩)를 사용하여 그렸다.바탕은 무명 또는 한지이며 형태는 세로로 긴 것이 일반적이다.이를 그린 화가는 거의 무명으로서 밝혀져 있지 않다.무속신앙은 토착종교로서? 불교나? 유교 이전부터?있어?왔고,?불교와?유교가?도래한?이후에 그?종교들과 섞이면서?민간신앙으로?꾸준히?내려왔다. 고대사회가?제정일치 시대였던 점을? 감안한다면?단군이래? 무속화는?종교화로서? 상당히? 많이? 그려져?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무신도는?? 종교화로서의? 상징적인?도상을? 지니고? 있었을 뿐아니라,?샤머니즘의?성격상? 부적 같은? 기능도? 함께 지니고?있다. 그리고?? 무속신앙의? 주술적인? 측면이?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그림임을?암시한다. 무신도는 종교화와 민화의 특징을 두루 갖추고있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영역의 그림이다. 즉 종교화가 갖지 못 한일상의 삶 속에 녹아있는 기층민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으며 익살과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신(神)을 묘사함으로써 직설적이고 소박한민중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다. 무신도는 그림 수업을 전문적으로 받은화가나 불화(佛畵)를 그리는 스님이 일종의 본그림인 '초(草)'를 가지고 그리는 경우와 무당이 직접 경험한 신(神)을 초(草) 없이 그리기도 한다. 이것을 전문으로 그리는 화인(畵人)의 말로는 본그림을 '뽄'이라고도 하는데, 무신도는 무신의 성격이나 신격(神格), 외모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 진다.그림으로서 무신도의 성격회화사상으로 종교화라는 한계를 지녔으면서도, 우리의 종교, 신화, 예술을 용해시킨 예술품이라는 점이 중요하고, 불교, 도교, 무속의 문화사적인 복합을 파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료라 하겠다.민간신앙의 틀 안에서 만들어진 원시적 회화요, 조형적인 의 기념일로? 우리민족의 아주 오랜 세월과 같이 해 오고 있다, 우리조상의 할머니, 어머니들은??칠월 칠석날 밤에 장독대나? 뒷 곁 또는 물이 흐르는 청정계곡 등에서 가족들의 건강과 안위를 빌고 무병장수를 바라는 기도를 드린다. 이러한 습관이 몸에 배인 우리의 아낙네들이 불교신도가 되어 부처님 공부를 하지만?기복을 바라는 그 마음은? 예부터 오랜 관습 때문이다.무속화에? 등장하는 인물가운데에는? 시대적인?변천이나? ,? 전쟁으로? 인하여? 나타나는?인물들도?있다. 임진왜란? 당시? 관운장을 모셨던?사당은? 왜적들이? 쳐들어가지? 않아? 피해를?입지?않았다. ? 소문이 난 후 부터? 삼국지에는??등장하는? 장군들이? 무속화에? 대거? 등장? 크게?유행하였다. 그 외에도? 최영장군을?비롯하여? 임경업,? 오장군,? 장장군 등이? 무속화에서? 신봉되고있다? .성수는 살아 생전에 도를 닦고 도력을 행사한 이나 영매(무속인), 역학인, 법술 등을 공부한 이가 죽어서 그 혼이 신격화 되어남성수, 여성수(대신, 대신마누라, 성수마누라, 대신할머니, 조상대신) 등으로 불러지며 그 영험 함이 높으면 그 제자의 신통력도 높게나타난다. 또한 집안의 재앙을 막아주며 자손을 보호하고 그 신의 공명을 자손에게 주니 그 복이 크다고 하겠다. 남 성수는 남자무당(박수)의 죽은 혼이고 여 성수는 여자무당의 죽은 혼이 신격화 되는 것이다. 무신도는 무당들이 한 곳에 걸어두고 정성스레 다루기도 했지만굿이 벌어질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접거나 둘둘 말아서 보관했다.그리고 굿 청에 걸어둔 그림도 초나 향의 그을음 때문에 지저분해지거나 혹은 그림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무당들은 금세 새로운 무신도를그려서 바꾸고, 옛것은 태워서 없애버리는 습속이 있어서 불화와 달리 몇 백 년이 지난 오래된 무신도는 남아있지 않은 형편이다.고려청자:고려청자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조형의 결정이다. 세계에서 고려청자만큼 자연을 아름답게 응용한 도자기는 없을 것이다. 자연을 세련화 시킨것이 고려청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제1기 된다. 제4기 말기 청자시대-황색을 띠는 청자가 많아지고, 탁한 회색조가 되기도 한다. 단순하고, 기계적 무늬가 생명을 마치 잃은 듯 청자가 쇠퇴한다(청자오리,원숭이연적)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분청자기(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 넘어가는과도기)분청사기란? 청자바탕에 흰 흙으로 분장한 뒤 푸른기가 도는 청자 유나 황색을 띤 백색유약을 입혀 구워 만든 도자기를 일컫는다. 분청사기가 끝나는 16세기의 경우를 보면 오히려 백자에 가까워진다. 그러한 의미에서 청자와 백자의 과도기적인 도자기로 해석하기도 한다.그러나 기법상의 변화를 보면 그러한 해석은 타당하지만 그 미의식에있어서는 청자와 백자가 전혀 다른 독특한 조형세계를 보여준다. 분청사기는 왕실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이용한 '국민자기'였다.꽃도장을 꼼꼼히 찍어 가는 인화기법-경상도지방의 분청사기분청사기는 다른 도자기와 달리 지방적인 특색이 뚜렷하다.경상도에는 인화무늬 분청사기가? 주로 제작되었다.질서정연한 인화 무늬는 경상도의 보수적인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인화무늬 기법의 분청사기는 궁정이나 상류층의 수요 그릇에 주로사용되었다.분청사기 인화무늬병 분청사기 인화무늬 장군분청사기 상감 용무늬 항아리-궁정에서 사용섬세한 무늬가 정교하게 사용백상감, 흙상감, 일부 인화문 장식정교하고 사실적 표현-왕실의 권위를 나타냄박지 조화(선각) 분청사기 단순화된 선과 면의 조화(2) 전라도 지방의 분청사기는 선각기법과 박지기법을 좋아하는 경향을 발견하게 된다. 선각기법은 선을 파내어 무늬를 내는 기법으로귀얄로 하얀 분칠을 한 뒤 뾰족한 도구로 선각의 무늬를 그린다.이 두 기법으로 새긴 무늬는 세부를 자세히 그리지 않고 대체적인모습만을 간략하게 표현하는 특징을 보인다. 자연스러운 생명감과어떤 규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맛 볼 수 있다.조화/선각기법분청사기 조화무늬 편병/분청사기 조화(선각)무늬 편병분청사기 귀얄무늬 편병/분청사기 귀얄무늬 병충청도지방의 분청사기-충청도 지방은 양반답게 분청사기의 무늬를붓질로 나타내었다. 바로 철화 중 수요의 자기에만 주로사용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청화의 유행이 사그라지다가 18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청화백자가 꽃피우면서 일반 서민에게까지 저변화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철화백자-(민간백자)임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피폐해진 경제사정때문에 고가의 청화백자 제작이 어려워지자 대신 철화 백자와 진사백자의 제작이 증가하였다. 이들 백자에 그려진 무늬들은 세련된 화원풍이 아니라 간략하고 변형이 심한 민화 풍의 그림이 대부분이다. 철화백자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용이다. 용은 상상의 동물로철화 백자에 그려진 용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것이 많다.진사백자-진사백자는 18, 19세기에 유행하였다. 진사의 붉은 색은 중국의 진사처럼 붉은 색이 선명하지 않고 팥죽색에 가까운 빛깔이다.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진사를 선묘나 일부 장식에만 베풀어 적극적으로사용하지는 않았다. 진사백자는 도자기 바탕에 산화동, 채료로 그림을그리거나 칠한 뒤 백자유약을 입혀서 구워내면, 산화동 채료(진사)가붉은색으로 발색되는 자기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사기그릇을 주점사기, 진홍사기라고도 불렀다투각백자(백자의 다채로움)-18세기 백자는다양화의 길을 선택하여 가게 된다. 우선 형태 면에서 다양해지고,청화에 진사, 청화에 진사와 철화등 기법이 다양해지며, 세련된 무늬와 변형된 민화풍의 무늬도 다양해 졌다. 형태에 따라 떡 메병(무게의 중심을 어깨에 두는 다른항아리와 달리 밑둥에 쏠리게 하고 둥글게 처리한 병), 모 깎이병(모를 깎았음), 무릎연적(여인의 무릎을 연상케 함) 등 재미있는 이름을 붙였다. 고려청자에서 다양하게 제작된바 있는 문방구류는 18, 19세기에 들어 그 수량 및 종류가 급격히 증가한다. 19세기 백자에는 세련미와 민화의 변형미가 공존한 시기이다.술과 화가술을 사랑한 화가들 조선시대 화가 중에서 기행(奇行)과 술로 인한 일화를 많이 남긴 이로 세 사람이 꼽힌다. 그 하나가 17세기의 김명국(金明國)이고, 18세기의 최북(崔北)과 19세기의 장승업이 나머지두 황(1712~ 1791)과 자기 눈을 찌르는 기행 덕분에 '조선의 고호'로 일컫는 중인출신의 괴짜화가 '칠칠' 최북(1712~). 서로 통하는 것이 전혀 없을 듯한 두 그림대가가 함께 놀러가 유유자적하며 그린 그림첩 이 2백여 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19세기 자유인 장승업(취명거사(醉暝居士)라는 별호를 가질 정도로술과 여자가 없으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한다."얼굴 모습은 약간 갸름한 편인데 한국 사람으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노란 눈의 사나이였다는것이다. 주독 때문인지 코끝이 약간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었다. 우뚝한코밑에 난 까무잡잡한 수염은 요샛말로 '카이제르(kaiser:라틴어로 군주의 뜻)'수염과 같았다는 것이다."조선시대 금주령- 양식이 줄어들기 때문에 영조,오미자차를 마셔 오해영조 38년인 1762년, 남병사 윤구연 남대문에서 참형에 처해짐16세기 화가 이경윤수하취면도 시주도 김후신, 대쾌도(大快圖)지장미가도-단원 김홍도(크로키)송하담소도 이인문-그림 , 단원김홍도-글기방난투 국화옆에서(삼추가연)신윤복(주사거배) 밤길안내(야금모행)형벌 태형(苔刑)-가장 가벼운 형벌(10대~50대까지 치는 형매의가는 편 끝으로 볼기를 친다.장형(杖刑) 은 태형보다 중한 벌 (60대에서 100대, 길이는 3척(30.30cm) 5촌(3.0303cm)큰회초리)도형(徒刑)은 오늘날의 징역형 관아에 구금하여 두고 일정한 노역에 종사시키는 자유형의 일종 유형(流刑)은 중죄를 범한 자에 대하여 먼지방으로 귀양 보내는 형벌.1.유부녀와 화간했을 경우 화간한 자는 장형 80대에 처했다.2.양반의 아내나 딸을 겁탈했을 경우 참형.3.여자를 유혹하여 긴통했을 경우 장형 1백대, 강간했을 때는 교형.4. 강간미수 장형 1백대와 함께 3천리 밖으로 유배.5. 절개를 지키는 여자를 간음했을 경우 장형 1백대와 도형 3년.6. 12세 이하의 어린 소녀를 간음한 자는 사형.7. 처첩을 종용하여 다른 남자와 간통하게 하는 경우 남편과 간부를각각 장형 90대, 만약 강제로 다른 남자와 간통하게 한 경우유배.
    인문/어학| 2010.07.20| 2페이지| 2,500원| 조회(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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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가주택 캐드파일입니다.
    치과 상가 캐드파일입니다.
    캐드| 2010.05.28| 1,000원| 조회(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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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설공사 체크,관리도
    건 설 공 사 의 관 리 도(one page system)공사명①공공 공종 : 건축 세부공종 : 기타 현장소재지발주자 □공공기관■민간 대 표 자 주 소수급인 상 호 대 표 자 영업소소재지도급방법 ■단독도급 □공동도급(□공동이행방식 □분담이행방식 □주계약자관리방식)계약성질 □장기계속공사 ■기타공사②계약일 2010/01/01 ③착공일 2010/01/08 ④준공예정일 2010/03/30⑤도급 금액관 리 도 (체크현황)항 목 신고처/제출처 제출서류 및 신고방법 제출기한 통 보 및 결 과 (개시번호) 비 고 담 당 자1.착공계 확인 해당없음 설계사무소 착공계 서류 2010/01/08 신고날짜기입 본사2.사업개시신고 확인 해당없음 관 할 고용지원센터 공사계약서사본 및 2010/01/15 개시번호기입 본사☎ 사업개시신고서 (팩스로 제출)3.기술지도계약 확인 해당없음 발주처(경리계,감독관) 공문, 계약서 사본2부 2010/01/15 신고날짜기입 본사4.퇴직공제부금 확인 해당없음 퇴직공제회 가입신청서,드급계약서,내역서중 명시된부분 2010/01/15 신고날짜기입 1년미만 일용근로자5.비산먼지,특정공사 확인 해당없음 관 할 (시. 군. 구)청 비산먼지,특정공사 서류 2010/01/15 필증수령날짜기입 현장소장6.키스콘개시신고 확인 해당없음 https://cws.kiscon.net/ 직 접 입 력 2010/01/31 신고날짜기입 본사7.직접시공계획서 확인 해당없음 키스콘 또는 발주처 직접시공계획서,내역,예정공정표 2010/01/31 신고날짜기입 본사공 사 계 약 변 경 사 항항 목 계약금액 공사기간 키스콘신고현황 비 고신고날짜기입신고날짜기입신고날짜기입신고날짜기입
    건설서식| 2010.04.20| 8페이지| 500원| 조회(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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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적인 화일앞에 붙이는 제목(태그)
    2006-05 부산대학교 사대부고 특별교실 증축공사2007- 지케이주변 하수도 공사외토목부대공사2006-12 초량1동 1069-1번지 일원도로개설공사 중 구조물공사조 강 종 합 건 설 ㈜2006 1/4 ~ 4/4분기 세금계산서㈜ 녹 천 종 합 건 설56-2 덕원중학교 운동장 배수로 정비공사2007-02 유류탱크 교체공사2007-03 전포1동 지역 도로정비공사2007-04 수안동 반도보라아파트주변준설공사㈜ 세 하 건 설2006 1/4 ~ 4/4분기 세금계산서조 강 종 합 건 설 ㈜2006 일용근로소득 지급조서 (국세청)2006 공과금 관계철 [전기,전화]2006 갑근세 근로소득 원천징수2006 근로내역 확인서2006 퇴직 공제2005 세금계산서 수수경위건㈜ 세 하 건 설2007-01 2007년 상수도 급배수관 시설공사남부사업소 3구역2007-02 연산동 50블럭 상수도 정비공사2007-03 2007년 관내 긴급 도로소파보수공사(단가계약)㈜ 세 하 건 설2006 일용근로소득 지급조서 (국세청)2006 공과금 관계철 [전기,전화]2006 갑근세 근로소득 원천징수2006 근로내역 확인서2006 주민등록 사본 및 등본철2004~2005 세금계산서 불부합거래 자료㈜ 녹 천 종 합 건 설2004-06 연산동 조강빌딩 기타 서류2003 주민등록 등본철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 0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7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7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7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7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7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 0분류번호 작성연도 2007 보존기간엘엠티엔시증축공사 작업일보 제 목(보존종료) 엘엠티엔시증축공사 작업일보분류번호 작성연도 2010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보존기간㈜영남숏트공장 신축공사 제 목(보존종료) ㈜영남숏트공장 신축공사분류번호 작성연도 2010 보존기간㈜에스엔피공장 신축공사 제 목(보존종료) ㈜에스엔피공장 신축공사분류번호 작성연도 2010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 0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제 목(보존종료)분류번호 작성연도 2009 보존기간관리번호 관리번호 관리번호 관리번호 관리번호 관리번호 관리번호 관리번호 관리번호 관리번호 관리번호 관리번호 관리번호작성연도 작성연도 작성연도 작성연도 작성연도 작성연도 작성연도 작성연도 작성연도 작성연도 작성연도 작성연도 작성연도2009 2009 2009 2009 2009 2009 2009 2009 2009 2009 2009 2009 2009보존기간 보존기간 보존기간 보존기간 보존기간 보존기간 보존기간 보존기간 보존기간 보존기간 보존기간 보존기간 보존기간분류번호 분류번호 분류번호 분류번호 분류번호 분류번호 분류번호 분류번호 분류번호 분류번호 분류번호 분류번호 분류번호제 목 제 목 제 목 제 목 제 목 제 목 제 목 제 목 제 목 제 목 제 목 제 목 제 목0 0 0 0 0회사명 회사명 회사명 회사명 회사명 회사명 회사명 회사명 회사명 회사명 회사명 회사명 회사명한평종합건설㈜ 한영종합건설㈜
    부서별서식| 2010.04.19| 8페이지| 300원| 조회(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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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딩조감도(2D)
    벽체를 덮어서 조감도 느낌ㅇ ㅣ되게 만든 파일입니다.요청하시면 PSD파일도 드리겠습니다.
    포토| 2009.09.28| 무료| 조회(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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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3-004등록일자2003. 09.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4-001등록일자2004.05.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4-002등록일자2004. 08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5-01등록일자2005. 02.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5-002등록일자2005. 04.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5-003등록일자2005. 05.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5-004등록일자2005. 09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5-005등록일자2005. 11.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5-006등록일자2005. 12.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6-001등록일자2006. 03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6-002등록일자2006. 03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6-03등록일자2006. 03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6-004등록일자2006. 09.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6-005등록일자2006. 05.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6-006등록일자2006. 10검 토보관부서공무부승 인문서/도면명문서/도면번호페이지관리식별▣관리본 ㅁ비관리본ㅁ무효본(구본,지식보존용)관리번호 : D/S-2006-007
    건설서식| 2009.09.15| 1페이지| 무료| 조회(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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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면지처리 파일.
    이미지 파일 입니다.
    기타| 2009.09.15| 무료| 조회(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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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구조-새순에서 뿌리까지(요약정리) 평가A+최고예요
    뿌리에서 새순까지 -요약 정리-1. 건축구조와 H2O외국에서는 건축구조설계에서 물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하로 2층 이상을 파고 내려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만 주차창법, 대피소, 민방위용수탱크, 정화조 설치규준 등의 강화로 지하실의 소요면적이 커졌다. 이렇게 지원시설이 늘어남에 따라 공사비의 증가를 보상하기 위해, 지하 1,2층에 판매시설이나 유흥업소를 유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지하실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이다.우리나라는 다행히 10여 미터 이하부터 경질지반이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단단해진다.그러나 수압은 1미터 내려 갈 때마다 1tf/m2가 증가한다.지반 보고서에 보고된 지하수위는 지하조사를 하기 위하여 뚫은 보링 공에 물을 채우고 24시간 후에 측정한 수위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그러나, 물이 잘 빠지는 지반에는 그 반대로 물이 쉽게 들어온다. 잘 빠지는 지반이면, ‘지하수위: 측정되지 않음’이라고 기록하는데, 이것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실정인 것이다.U자관 현상은 건물 내의 우물 수면은 건물 외부의 수면과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위 지반이 불투성 토질이면, 우물 통을 잘라내야 하는 결과가 생긴다. U자관 현상을 가장 잘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목수들이 갖고 다니는 비닐호스이다.2. 지하구조의 계획우리나라는 건축대학에서 구조기술자를 배출하는 실정이다.2.1.1.지내력과 침하모든 기초는 전혀 침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알 수도 있으나 사실, 모든 기초는 침하한다는 것이 맞다. 지름 20~30cm 철판을 땅바닥에 놓고 그 위에 적당량의 무게를 단계적인 늘려가면서 땅이 꺼지다가 항복하는 때의 중량을 측정한다. 예컨대 침하량 절대치가 2.5cm이거나 항복지지력의 1/2또는 극한 지지력의 1/3 중작은 값을 장기허용치로 판정하는 것이다. 즉, 15tf/m2,30tf/m2 의 하중이 작용 했을 때, 2.5cm 이내의 침하는 일어남을 인정하며, 이를 전제로 한 설계라는 뜻이다. 위 2.5cm라는 것도 시험당시의 짧은 기간의 것이는 일은 없다.배는 물에 떠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배가 물 위에 떠 있을때는 배 밑창 아래로 물 깊이가 10m건, 1000m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것은 배 밑창을 바치는 것이 땅이 아니라, 물의 압력 또는 부력이기 때문이다. 하중과 반력의 크기가 평형을 이루지 못하면, 집은 기울어지는 현상을 보인다.2.2 설계용 적재 하중 책정방법우리나라 땅은 건축공사 하기에 좋은 땅을 가지고 있다. 웬만큼 자재를 쌓고 화물차가 다녀도 침하하는 일이 없다. 빈 땅에 조경공사를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건축주라 해도, 공사완료되기 전까지는 구조상의 문제를 삼아 현장소장 허락없이는 공사현장을 드나들 수 없는 것이다.2.3 베토중량 응용 방식별 탈 없는 땅을 일부러 도려내고 도려낸 자리에 건물을 신속하게 넣으면 어떻게 될까, 아무변화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이 도려내는 작업이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연약지반을 잘못 건드리면 사방에서 ,밑에서 솟아올라 흐트려져서 낭패로 돌아갈 수 도 있기 때문이다.2.4 지하수 부력 대응 방식.물의 압력은 깊이가 1m깊어짐에 따라 수압이 1tf/m2 씩 늘어난다. 이 불균형 하중을 어떤 방법으로 잠재울 것인가?2.5 고정하중 부가불균형 하중으로 남아있는 부력의 크기가 크지 않으면 고정하중을 일부러 늘려서 해소하는 원시적 방법을 적용할 수가 있다. 구조물 상부에 화단을 만들어 쌓아둔다든가, 2중 슬래브 사이에 모래나 잡석을 채워두는 간단한 방법을 쓰기도 한다. 바닥 슬래브 좌우에 날개를 달아두면 그 위에 올라탄 흙이 눌러줘서 떠오름이 방지되기도 하나, 건물 지하실은 여러스팬이 넓게 퍼져 있으므로, 그 방법의 적용이 불가능하다. 지하 수압이 클 경우에는 고정하중을 부가하여 부력과 싸우게 하는 것만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별로 지혜롭지 못하다.2.4.2 앵커링고정하중 부가 방식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것은 앵커링은 밑에서 끌어 당기는 방법이다. 지하실에 부착하는 닻이라고나 할까? 앵커링을 설계함에 있어 많은 구조전문가들기초 두께나 지중보도 건물 규모에 알맞다. 그래서 고안 한것이 U-자관을 활용한 오버플로 배수 방식이다. 즉 일단 수압이 작용하여 오버플로 파이프를 넘쳐 흐른 물만을 배수한다는 뜻이다.연속벽 공법에 의한 지하실 외벽 강화를 활용하여 지하수 강제영구배수공법을 지하실 바닥에서만 시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지하실 바닥만을 배수하는 공법은 이와 반대로 배수량도 저어지고 주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이 공법이 활용되고 있다.방수공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바늘구멍으로도 물이 새 들어오지 못하게 설계하려고 노력하는 기술자들이 강제영구배수공법 설계에 필수적인 도수관 설치에서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의 이견을 제시해 온다. 이는 도수관에 흙탕물이 들어오면 막하셔 배수가 안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이다.2.5.3. 시공중 배수.침수시공중에는 구조물에 작용하는 하중이 수시로 변하며 이를 사전에 감지하여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안전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구조설계자는 완성된 상태에서의 힘의 평형조건을 감안하여 구조계산을 한다. 지하실이라는 거대한 그릇을 흙파기 공사로 파놓은 웅덩이 속에 넣어두었는데, 그 웅덩이에 물이 들어가면 당연히 떠오르게 된다.이 방법 저방법이 다 불가능할 때는 자동유입공을 마련해 두는 것이 합리적이다.2.6. 편측토압, 수압감소만원버스를 탔을 때, 앞에서만 밀어주기보다, 뒤에서도 밀어줄 때, 훨씬 편하다. 구조체에서도 똑같다. 양 쪽에서 밀어주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2.7 내구성 및 보수어느 지하실에서는 물이 새는 것이 상식이었고 지하2중 슬래브 사이에는 통수관을 설치하여 흘러 들어오는 물을 배수하게 하였다. 지하 7~8층까지 내려가서 지하수압이 30tf/m2 에 육박하면 어느 한 곳에서라도 하자가 발생하여, 구멍이 나면 그 물줄기를 틀어막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강제영구배수공법 도입이 유리하다.인장력을 받고 있는 강재는 녹이 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한다. 영구앵커는 한번 설치하면 보수가 불가능하다고 되면 수맥은 지하구조물을 감싸고 돌면서 다른 통로를 찾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갈길을 찾지 못해 해매는 지하수의 정체현상은 지하수위의 상승이라는 악영향으로 이어진다.탈수: 댐처럼 막아선 하부구조로 인하여 인접건물 하부의 지하수 유입이 차단되어 우물이 말라버리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이는 물을 머금었던 흙의 탈수현상으로 인하여 지내력에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물은 낮은데로: 수맥을 잘라 노출시키면 레벨이 낮은 곳으로 지하수가 유출된다. 따라서 빈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 해야 한다.단 한번의 실수: 50년만의 장마 때 단 한번 올라가는 수위라도 충분히 하부구조에 위협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계의 질서에서는 에누리가 없다수요와 공급: 밑이 빠졌느냐의 여부가 결국, 채워질수 있느냐의 여부이다지형 변화: 멀리 떨어진 곳의 유수지매립으로 인해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믿는 도끼에: 물을 퍼냄으로서 일시적으로 지하수위가 내려 갈수 있게 된다. 그 시점에 물 한방울 푸지 않고 지하공사를 완성할수 있지만, 물푸기를 중단하면 예상치 않던 지하수가 건축주와 시공자를 괴롭히기도 한다.[2] 대책전문가에게- 지반조사 보고서만으로는 신빙성이 의심된다. 토질 전문분야의 기술자가 모든 상황을 판단.유비무환- 콘크리트배도 물에 뜰 수 있다. 웅덩이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항상 준비해야 한다강제영구배수공법(De - Watering)일정 수위 이상 올라오는 물은 즉시 퍼내야한다. Preloading 방식이란 부력에 대응해서 건물의 무게를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2중 슬래브 내에 모래나 잡석을 채우거나 건물 자체의 중량을 의도적으로 늘리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다.3.5.2 기초의 침하원인모든 기초는 움직인다.기초와 지정사이에 불순물이 끼어 들게 되며 이에 부가 하여 기초 자체의 콘크리트도 경화과정에서 다소간 축소하게 마련이다. 즉, 기초란 원래부터 다소간 움직이는 것을 전제로 하여 설계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음을 기억한다.어떤 건물에서 어느 특정 기초만 튼튼하게, 설계되었다고 좋아할 일이단, 잘못된 설계로 인한 것은 말로 할 필요도 없다. 특히 기계기초를 설계할 때, 한쪽에 치우쳐 있으면 무거운 쪽으로 기울어지므로 무게중심이 일치하도록 모양을 찌그러뜨려 설계하는 것이 진동을 수반하는 기계 기초설계에 해당한다.부동침하의 대표적 예는 ‘피사의 사탑’ 이다. 이제는 거의 바로잡아 300년을 보장한다고 한다.4.3 말뚝기초의 침하아무리 단단한 못이라도 그 못크기에 알맞은 망치를 사용하여 충분한 깊이까지 꿰뚫어박아야 제 구실을 할 수가 있다. 땅에다 박는 말뚝도 필요한 깊이만큼 박아야 한다.4.4 동일 건물에 2가지 이상의 기초 방식의 채택은 필수적일 수가 있다.하나의 건물에 두가지 종류 이상의 기초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부동침하의 원인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반조건과 상부하중의 크기 및 기초레벨에 따라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기초방시을 선택.적용하는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4.5 기초의 안정성과 보강기초는 지반과 기둥 사이의 응력 정거장이다. 기초가 기둥 하중을 잘 받아서 지반에 알맞게 전달시키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5.기초의 종류기초는 직접기초와 간접기초로 나뉜다.5.2 독립기초 - 한식집의 주춧돌, 자동차의 네바퀴, 책상다리가 방바닥과 만나는 면, 아가씨들의 높은 굽, 비행장에 내린 비행기의 바퀴 도 독립기초의 형태이다.잡석은 일본에서온 기초의 형태가, 일본의 연약지반을 대변하는 것이다. 장화를 신고들어가야할 정도의 일본 지반에서는 잡석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는 대게 잘 다져지지 않은 잡석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5.3 복합기초두 개 이상의 기둥이 한덩어리의 기초에 얹히도록 설계하는 방법인데 두 개 이상의 기둥이 가깝게 배치되어 서로 겹쳐져 면적을 확보하지 못할 때 활용하는 것이다.5.4 편심기초기둥간격이 멀때는 편심기초 형태를 적용할 수 밖에 없다.5.5 연속기초1~2층 짜리 조적조 건물기초는 연속기초가 경제적이며, 내력벽 중간 중간에 개구부가 생겼다고 해서 일일이 끊어 주진 않음. 지하실 이벽이나 코어월 등은 의도적으로 사용5.6다.
    공학/기술| 2008.12.23| 9페이지| 2,000원| 조회(1,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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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das/Gen 실습파일.마이다스,구조
    근린생활 시설로 5층짜리 건물을 상정하고, 적재하중,고정하중,풍하중,지진하중,빔하중등을 입력하여 제작.
    기타| 2008.12.09| 2,000원| 조회(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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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문화유산답사기-불국사편- 평가A+최고예요
    -불국사 안마당에는 꽃밭이 없습니다 (상) 요약우리나라 문화재의 얼굴대한민국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국사를 들어봤을 것이고, 또 알 것이다. 혹시 아직 경주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경주를 간다면, 다 불국사를 보고 올 것이다. 그만큼 불국사는 인지도가 높고, 가장 높은 지명도를 가지고 있다.필자의 주관적 견해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건축을 논하라면 사찰건축을 논하게 되는데 그 중 뛰어난 절집이라면, 영주 부석사/순천 선암사/경주 불국사를 꼽는다. 부석사는 백두대간의 여맥을 절 앞마당인양 끌어안는 장엄한 스케일을 보여주고, 선암사는 조계산 자락이 사방에서 감지되는 아늑한 산중에 자리잡았으며, 불국사는 산자락을 타고 올라있으면서도 비탈을 평지로 환원시켜 반듯하게 경영되었다. 이밖에도 불국사는 돌축대의 기교와 가람배치의 묘가 압권이다. 참 많은 절이 있지만, 불국사처럼, 자연과 인공을 대비시키면서, 조화를 구한 절은 달리 찾아 볼수 없어, 독창적이며, 독특한 건축이다.불국사 역대기와 사적의 허구불국사의 창건과 역사에 관한 기록은 역대기)와 사적) 둘이 있다. 우리는 이 두 문서를 통해, 불국사의 역사와 김대성 창건 당시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그러나 이것은 거짓말과 오류가 곳곳에 있어서 불행이라고 할수 있다.민영규선생이 지적했듯이 화엄에 관계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억지로 끌여붙였다는 혐의를 면할수 없다. 이런 일들은 비단 불국사 뿐만 아니라 임란 이후 불교가 다시 일어나면서, 각 사찰은 그동안 끊겼던 전통과 권위를 되찾는 작업으로 무작정 고찰로 끌어올리는 풍조가 있었던 것이다.그 와중에 불국사 역대기는 불국사 창건을 법흥왕때로, 사적은 눌지왕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해 놓았으나 그것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김대성 창건설의 의문우리가 지금 믿을수 있는 것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대성이 부모님께 효도하다”는 것뿐이다.“이에 현세의 부모님을 위하여, ...이하생략”.-고향전-“....김대성이 천보 10년 신묘에 불래서 딸을 아들로 바꿔달라고 했더니, 나라가 위험하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아들을 얻고 싶다고 한 경덕왕은 정말 말대로 나라의 어려움을 당한다. 태자가 8살 때 왕이 세상을 떠나서, 왕위에 올랐다. 이가 혜공대왕인데, 나이가 어려 태후가 대신 정사를 살폈다. 하지만, 도둑이 벌떼처럼 일어나 막을수 없을만큼 정치가 어렵게 되었고, 말이 딱 들어맞았다. 왕은 여자로서 남자가 되었으므로, 하는 짓도 여자였다. 비단주머니차기를 좋아했고, 도사들과 함께 희롱했다. 그리하여 나라에 큰 난리가 생겨 마침내 선덕왕이 된 김양상에게 죽임을 당하고, 표훈 이후에는 신라에 성인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경덕왕의 치세와 문화대통령불국사,석불사,석가탑,다보탑,에밀레종,남산의 불상들,안압지 출토의 판불들 등, 국립경주박물관의 불상과 뛰어난 유물들은 전부 이시기의 것이었다. 경덕왕은 이러한 문화적 난숙속에 감지되는 불안과 위기를 느꼈는지 일련의 관제정비와 개혁조치를 취했다. 기틀을 확립하기위해 에밀레종을 만들었고, 아들을 얻기위한 대불사를 또 만들었다. 이렇게 함으로 무리한 토목공사는 국력을 쇠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은 죽임을 당하고, 불국사도 그의 때에 완성을 하지 못했다. 불국사는 이런 역사의 정점에서 세워졌던 것이다.불국사의 안마당엔 꽃밭이 없습니다.불국사는 삼국시대 이래 여러 가람배치중 하나뿐인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때의 절들은 대개 시내에 있었고, 회랑이 있었다. 후에 건축된 대웅전이나 극락전은 전당안이 예불공간 이었지만, 그땐 회랑안이 곧 성역이었다.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목탑이 곧 성역이었던 것이다. 거기엔 당탑외엔 어떤 장식도 허용하지 않았다.그리고 중대신라 이후로는 주변의 산세가 회랑역할을 하게되고, 하대신라부터는 구산선문의 선종사찰이 심심산골에 개창되면서 절집은 엄격성보다도, 선종의 개방성이 요구되니, 점점 평지사찰에서 산지사찰로 옮겨갔다. 크고 작은 자연석들과 장대석들을 자유롭게 쌓아올린 석단의 짜임새의 안정과 율동,인공과 자연의 멋진 회화의 조화예술이 과학적 근거를 갖추지 않는다면, 즉 비례적 관계를 가지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수 있다. 불국사도 석불사 못지않은 그런 비례관계를 지니고 있다. ‘불국사 조영계획에 관하여’라는 논문에는 수치와 도면으로 있고, 이것이 조화와 균제의 근거가 된다. 불국사는 다보탑과 석가탑 사이간격의 1/2을 단위로 하고 있고, 일정한 배수로 배치했다. 회랑의 너비는 4배. 길이는 단위의 5배. 금당의 북벽중심은 4배로 이루어지는 정삼각형의 정점과 일치한다. 석등을 중심으로 대웅전,석가탑,다보탑이 동일한 거리에 있으며, 대웅전 지붕높이와 자하문의 거리는 1:2의 비율로 되어있다. 석가탑 높이를 반지름으로 하여 원을 그리며 대웅전 앞뜰 전체 공간이 포함된다. 다보탑,석가탑 하층기단의 폭은 대웅전 한 변의 1/3이며, 석가탑의 평면크기는 대웅전 평면의 1/10이다. 이런 정연한 관계 때문에, 어느 절에서도 볼수 없는 엄정한 기품이 살아나는 것이다.불국사 건축의 세부 관찰필자는 이책에서, 불국사의 아름다움을 낱낱이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답사객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제시하고자하였다.첫째, 대웅전 정면으로 오르는 돌계단의 소맷돌 측면의 살짝 공그른 곡선의 아름다움을 볼수 있다. 마치 옷깃의 선맛을 낸 것 같기도 하고, 소매 끝 곡선 같기도 한데, 날카로운 듯 부드러운 아름다움이 있다고, 같이 간 우드관장은 믿을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둘째, 석가탑의 탑날개 직선의 묘가 있다. 석가탑의 전체인상을 즐기는데 그치지 말고, 세부적관찰을 해볼필요가 있다. 바로, 지붕돌이 상큼하게 반전한 맵시가 일품인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지붕돌은 기울기가 직선으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처마를 직선으로 뻗게 하다가 추녀부분에 살을 두툼이 붙여 급하게 깎아낸 것인데, 그것을 올려다보니, 이것이 착시현상을 일으켜 반전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세 번째는 석축에서 그랭이법으로 장대석을 자연석 모양에 따라 깎은 것이다. 외국인들은 이것을 보며 자지러지게 놀란다. 외국에작은 구멍을 내 놓은 용도 미상의 석물이 있는데, 환자용 변기 모양새를 하고 있다. 용도를 알수 없는 이 버들잎모양의 홈돌을 8세기비데라고 유머러스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놓쳐서 안 될 가장 중요한 것은 작은 일각문 너머로 뒷간을 다녀오는 것이다. 여기선, 멀리 불국사 강원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이렇게 여섯 가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장면들을 통해, 불국사가 그냥 지어진 것이 아니란것을 독자는 알 수 있었고, 필자는 문화답사의 초급코스가 불국사라고 말하지만, 중급이 초급을 더 가고 싶고, 결국 고급자는 초급의 진가를 알수 있다고 말하면서, 불국사가 답사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고 말하면서 상권을 마무리한다.독자는 읽게 되면서, 불국사에 안마당이 없는 이유는, 중 신라이후엔, 산세가 회랑역할을 하게 되고, 점점 산지사찰로 올라가게 되면서, 꽃과 나무를 배치하는 정원이 생기면서, 안마당이 없어진 것으로 알게 되었다. 자연의 묘리가 더욱, 절경을 아름답게 했다는 생각도 들면서, 산지사찰이 더 와닿게 되었다.믿기는 뭘 믿었단 말이냐 (하) 요약불국사 수난의 역사신의 노여움이나 질투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불국사는 일제시대 때부터 3공화국에 이르는 기간을 통해 온갖 수난을 당하고 지금은 무엇이 잘못 된 것인지도 모른 체 답사객들은 일없이 거기를 다녀오는 지경에 이르렀다.역대기 와 사적을 통해 우리가 마지막으로 불국사의 영광을 볼수 있는 것은 1976년 정조대왕이 하사품을 내려 준것이며, 마지막 기록은 1805년에 비로전을 수리했다는 사실이다. 그 이후 100년간 불국사가 어떻게 유지 되어왔는지는 어떠한 기록도 없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문화재를 귀중하게 여기고 지킬줄 몰랐으며, 그 결과, 1904년 새끼노의 조선건축조사보고 라는 책을 통하여 유물을 약탈해가는 일이 일어난다. 을사조약 이듬해인 1906년 ‘광학부도’를 일본으로 반출해갔다.광학부도가 어떻게 돌아왔나일본으로 반출된 광학부도는 ‘정양헌’이라는 요릿집 정원에 있었다고 한다. 세끼노는 1909년 난 당하게 되는데 이것조차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키무라라는 사람이 ‘조선에서 늙으며’라는 글 중, 다보탑의 돌사자 한 쌍을 찾는 것이 소망이라고 1924년에 쓴 것이 있으니 그 이후가 아닌가라고 추정된다.고한다. 지금의 돌사자 한 마리는 얼굴에 난 상처 때문에 남아있게 되었다. 1924년 일제는 불국사에 대한 대대적인 개수공사를 시작 했다고 한다. 공사내역은 석축과 석교의 복원, 법당의 중수, 그리고 다보탑의 전면 해체작업이었다. 그러나 사진이나 기록을 남기지 않아, 엄청 고생했다고 당시의 실무자들이 말하고 있다. 1924년 공사로 불국사는 폐허를 면했다. 그러나, 회랑은 다 없어지고, 범영루만 있어서 휑한 느낌은 감출 수가 없다. 그 공사에서 결정적으로 피해를 본 것은 다보탑의 해체 수리였다. 이에 대한 보고서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여기에 있어야할 사리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불국사 보수공사의 감독이었던 타케우찌가 ‘발견물 이송의 건통지’라는 공문에 단서를 남겼다. 그리고 1924년 개수공사때 석축을 보수하면서 장대석으로 엮은 네모칸에 자연석을 끼운다는 것이 , 일본인들답게 반듯반듯한 돌로 짜넣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꾀한 석축이 인공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왜색이 짙어졌냐는 악평에 다시 일제는 망치로 깨트려 자연석느낌이 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수난을 겪고 5.16 쿠테타를 지나 66년 9월, 지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1966년 9월의 도굴 훼손66년 9월, 세상은 시끌벅적했다.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야당후보의 단일화를 위하여 박순천민중당 대표최고위원과 무리들이 신한당의 윤보선후보를 압박하고,유진오 총장을 정계로 끌어올려는 작업이 관심사로 진행되고, 한국비료의 사카린밀수사건, 파월장병에게 신문보내기 운동, 이런 연일 어수선한 사건가운데, “불국사 석가탑 위태”라는 제목아래 3단 기사가 실렸다. “불국사 대웅전 앞에 있는 국보 제21호 석가탑이 8월29일 동해남부에있었던 미진으로 흔들려, 탑이 한다.
    독후감/창작| 2008.04.23| 6페이지| 2,000원| 조회(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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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23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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