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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윤리] 주리주기논쟁 평가A좋아요
    Ⅰ.서론Ⅱ.주리주기의 개념틀에 타당성 여부1.주리·주기의 개념틀은 잘못되었다.2.학파로서 주기론은 존재하였는가?Ⅲ.퇴계학파의 이기론1.사림파 이후 조선 성리학의 리기론적 특징2.이황의 학문세계3.'리선기후'의 리일원론4.퇴계학파Ⅳ.율곡학파의 이기론Ⅴ.결론Ⅰ.서론주리주기문제가 조선유학사에서 중요한 논쟁의 하나로 지금까지 논의된 까닭은 주리주기를 범주적 개념으로 사용하여 조선유학을 재구성하려 한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 시학관 다카하시의 역할이 컸다. 조선철학을 사단칠정을 기준으로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로 나누며 그들의 차이점을 각각 주리와 주기로 파악하려는 다카하시의 시도는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이에 다카하시의 개념틀에 타당성의 여부를 파악하고 이황의 리기론과 이이의 리기론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Ⅱ.주리주기의 개념틀에 타당성 여부1.주리·주기의 개념틀은 잘못되었다.'주리주기'라는 개념은 이미 이황에서 언급이 되고 있다. 그는 사단을 주리, 칠정은 주기로 파악하여 "리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경우가 있는 것은 리를 주로 해서 말한 것이며, 사단이 이것이다. 기가 발하여 리를 타는 경우가 있는 것은 기를 주로 해서 말한 것이며, 칠정이 이것이다"라고 말한다. 사단과 칠정을 분리해 보려는 퇴계학파는 이를 근거로 사단과 칠정을 분리를 반대하는 율곡학파의 주장을 주기론으로 규정 짓는다. 그러나 율곡학파는 주기론으로 자신들의 동일성을 확보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퇴계학파를 주리론이라고 규정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개념규정은 퇴계학파에 의해 내려진 일방적인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주리주기문제가 조선 유학사에서 주요한 논쟁의 하나로 지금까지 논의된 까닭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주리주기를 범주적 개념으로 사용하여 조선 유학을 재구성하려 한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 시학관 다카하시의 역할이 크다.조선유학을 주리파와 주기파로 나누는 기준은 사단칠정이며, 그것은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서 일어난 사칠논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그리고 기대승의 주장을 이어받은 이이가 이황의 학설에 극복하고, 리의 순수성으로 돌아가는데 있기 때문이다. 기가 올바르면 기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하는 것이 주자 학파의 기본적인 사고이다. 이러한 사고는 그들 모두에게 공통적인 기반으로서 그들은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다카하시의 주리주기식 구분은 아베 요시오와 배종호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아베 요시오는 「일선명에서 주자학, 그 두 계통과 주자학의 제특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주리주기를 조선 유학뿐만 아니라 일본유학과 중국유학을 분석하는 틀로 확대시킨다. 아베 요시오는 주희 철학을 '주리적 리기 철학'이라고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주기파는 기를 주로 하기 때문에 수양법에서 그 기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이와 같은 수양법은 일본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기에 그는 기를 리의 운동법칙로 파악하여 사물의 법칙성을 탐구하고 외적경험을 쌓으며 박학을 강조하는 주지주의 입장을 주기파라고 한다. 그 반면에 도덕 실천을 강조하는 입장을 주리파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분도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주기파든 주리파든 도덕 실천에 중점을 두는 것은 다 기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실천의 강조를 단지 주리파의 고유한 특성이라 놓는 것은 잘못이다.조선철학을 사단칠정을 기준으로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로 나누며 그들의 차이점을 각각 주리와 주기로 파악하려는 다카하시의 시도는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비록 기에 대한 관심은 율곡학파나 퇴계학파보다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율곡학파 역시 기에 대한 리의 우월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율곡학파를 이이의 사단칠정으로 묶어서는 안된다. 다카하시와 같이 주리주기론이란 개념틀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2.학파로서 주기론은 존재하였는가?리 개념의 등장은 중국철학사에서 하나의 혁명이었다. 송대에 이르러 리는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성립된다. 리와 기라는 두 개념을 통해 자연과 인간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체계가 성리학이고, 이는 마침내 주희에 의해서 집대성이 된다. 주희는 리와 기를 두 축으로 하면서도 경향성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기철학은 "리는 기의 운동법칙이다"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렇다고 기철학이 봉건도덕과 윤리를 부정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욕망을 인정할 줄 아는 인간만이 현실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조선에서는 중국에처럼 기 철학이 학파로서 성립되지 않았다. 우선 왕안석의 기철학은 정도전을 통해 어느 정도 수용이 된다. 정도전은 흔히 주자학자로 언급되는데 이는 그가 불교를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다른 저술에서는 주자학의 특징이라 할 만한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주자학은 기본적으로 마음의 수양에 관한 이론이다. 즉 관료의 인격을 양성시켜 국가질서를 확립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정도전의 사상에서는 이런 부분을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정몽주의 경우에 그런 요소가 명백하다. 정도전은 인격수양보다는 국가제도의 확립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가 혁명을 일으킨 것도, 조선의 제도를 수립한 것도 고려의 불교를 비판하는 것도 다 그런 맥락이다.기철학의 또다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 욕망을 긍정하는 기 철학은 조선에서는 이단시되었다. 기철학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도 전에 이황은 이런 사상적 경향을 진작부터 이단으로 단죄하였다. 여기에 명나라의 멸망이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는 공포로 다가왔다. 조선학자들이 보기에는 개인의 욕망을 긍정하였기 때문에 사회질서가 무너졌으며, 따라서 욕망 긍정론은 명나라 멸망의 주범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다 양명학은 당파를 공격하는 데 더할나위 없는 논거가 되면서 더욱더 배척을 받았다. 양명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소론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대다수 소론은 양명학을 자기 학파의 이념으로 삼지 않았다. 그럼에도 집권층은 노론은 양명학이라고 규정,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하였다. 따라서 양명학은 조선에서 실제로 생명력을 지닌 학문으로 정착할 수 없었다.조선에서는 욕망의 긍정을 의미하는 '주리론'은 학파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현실의 기 존재에 대한 리의 원인성을 긍정한다. 실재인 기에 앞서 존재하는 것, 실재인 기의 원인이 되는 것은 그 자신 실재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리의 본체론적 실재성을 긍정하는 주리적 성향은 이황 이래 조선 성리학의 일반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16세기 이후 조선 성리학의 주리적 성격은 리의 운동을 긍정하는 데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황 등 주리적 조선 성리학은 리를 '사물일 수밖에 없는 것', 따라서 자동(自動)·자도(自到)·자기발현·자기발현·기 생성등의 능력을 지닌 절대자로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운동과 변화는 절대성의 속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이황의 생각이다.사림파 이후 성리학이 지닌 특징들의 밑바닥에는 리·기가 분리될 수 없는(佛相離), 개별 사물에 세계에 비해 리와 기가 서로 혼동될 수 없는(佛相雜), 본체의 세계가 더욱 중요하다는 先관념이 깔려 있다. 다시 말해 리와 기의 결합으로 성립하는 현상세계보다 리가 기에 앞서는 형이상학적 세계가 더욱 우월하다는 것이 사림파 이후 성리학의 일반적 발상이다. 이러한 발상은 또한 "본체계없는 악이 있을 수 없다"는 이론 이전의 실천적 요청을 수반한다. 16세기 이해 조선 성리학의 일반적 관점에서는 현실세계에서 도덕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기 위해서는 본체계의 실재인 리가 순수히 선하다는 것이 그 리가 운동한다는 것과 함께 선험적 필연 명제로 확신되었던 것이다.2.이황의 학문세계애당초 우리게 친숙했던 의미들도 성리학과 리기론의 논리로 재조립되고 재구성되면서, 그것들을 형해화되어 버려 순전히 하나의 부호 논리로만 남게 되었다. "四端은 리가 발함에 기가 그것을 뒤따르고, 七情은 기가 발함에 리가 그것을 탄다"느니, "리와 기가 합하여 마음이 있게 되는 것"이라느니, 또는 "인의를 性의 관점에서 말하면 모두 體요, 情의 관점에서는 모두 用이며, 음양으로 말하면 의체인용이요, 마음과 일의 관점에서 말하면 인체의용이 된다"는 등의 말은, 그것으로 인간의 도덕성이나 마음, 정을 감각하고 체험하기에는 현실로부터 너무나도 는 그의 철학에서 최고범주이며 객관 관념론의 절대관념이다.이황은 천지만물을 낳는 까닭이 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이황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리가 움직이면 기가 따라서 생겨 나온다"는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는다. '리'위에서, 즉 만물의 본원에서 말하자며 단지 리 만이 가장 높고 영원하며 유일한 절대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物'위에서, 즉 구체적인 사물의 형성이라는 점에서 말하자면 리와 기는 서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고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천지 사이에 리가 있고 기가 있다"이황의 리일원론은 그의 윤리·도덕관과 사회·정치관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바로 정신세계를 물질세계 위에 정초해 두려는데 있기 때문에 그는 자연세계를 도덕화해서 말한다. 이황은 도덕을 자연의 문제와 동일한 궤에 올려 놓은 정주의 관념론적 관점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군신·부자등의 관계와 같은 봉건 윤리규범을 자연계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만고불변의 '천리'로 만들어 버린다. 즉 지극히 선하고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는 철학적 세계관을 통해 조선왕조의 봉건적인 중앙집권제에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기에 그가 말하는 천리란 따지고 보면 조선 봉건사회의 윤리도덕을 개괄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4.퇴계학파영남의 퇴계학파는 기호의 율곡학파에 대칭하여 쓰인 명칭이기도 하다. 이는 이황과 이이간의 리기심성론의 대립에 기인한다. 그것은 주로 이황의 리기호발설에 대해 이이가 기발리승일도설로써 비판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두 학자 사이에 직접적인 논쟁이 벌어졌던 것은 아니며, 이이의 비판은 이황의 사후에 행해진 것이다. 이황의 직전 제자들은 이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이이의 그와 같은 비판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적어도, '퇴계학파'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말해 는다.
    사회과학| 2001.11.27| 8페이지| 1,000원| 조회(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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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윤리] 태극논쟁 평가A좋아요
    서론유교 또는 유학은 좋든 싫든 우리들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유학이 차지했던 위치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며, 우리들의 정신 문화와 의식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하지만 오늘날 유학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서구 문화의 범람과 물질 문명의 홍수 속에서 유학은 한갓 골동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대인은 신에 의한 인간소외와 물질에 의한 인간소외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시대에 유학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가 각박하면 각박할수록 우리에게 유학의 필요성은 더욱 요청될 것이다.우리는 여기서 한국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태극 논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태극논쟁은 송대 북송오자 중에 한사람인 주돈이에서 시작되어, 주희와 육상산의 논쟁에 이어 이언적과 조망보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는 논쟁의 발단부터 논쟁의 내용을 살펴보고, 결론으로 한국철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본론Ⅰ. 주돈이의 『태극도설』주렴계는 송학의 선구자로서 도가와 불교의 사상을 창조적으로 융화한 사상가이다. 렴계의 태극사상은 주역의 태극설과 도가의 무극설을 상호 모순적·대립적 관계에서 파악하지 아니하고 조화의 관계에서 파악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태극도설은 유무의 제2성을 근거로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묘합관계를 음양이기陰陽二氣와 오행설로써 풀이하였다.모든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무극은 그에 있어서 모순과 대립을 지양한 완전한 조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의 편협한 오관을 통해서 인식될 수 없는 존재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그는 무극을 무형無形·무성無聲·무취無臭의 존재라고 말하며, 무시無始·무종無終한 존재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무극은 생성의 근원자로서 파악되는 동시에 그에 있어서 생성의 단초로도 이해된다. 이 생성의 단초를 태극이라 말한다. 태극밖에 무극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극 밖에 태극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관계는 보편자와 개체의 동질성을 의미한다. 보편자인 무극은 노자가 지적한 것처럼 명상할 수 없는 어떤 인하는 계기를 제공하였을 뿐이며 본격적인 논쟁은 아호사의 모임 이후에 전개되었다. 이 논쟁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 네 차례에 걸친 논쟁은 비록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일관된 주제를 중심으로 한 것은 아닌 듯하지만, 그들의 기본적인 사상적 편차의 연속적인 충돌이었다. 네 차례의 논쟁에서 사상사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호 논쟁과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논쟁인데, 이 중 우리 조가 다루고자하는 주·륙간의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논쟁은 주로 본체론本體論에 대한 양자간의 이견에서 전개되었다. 주자朱子의 '태극도太極圖' 해석에 대하여 맨 먼저 의문을 보인 사람은 육상산陸象山의 형인 육구소(子美)였다. 그는 주겸계周 溪의 핵심 저작인 '통서(通書)' 의 이론과 차이가 있다하여 그의 저작이 아니라고 하였고 또한 태극도설'太極圖說'자체의 논리도 성립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 이러한 이유로 주자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대한 감상을 적어 보낸 것이 최초였다. 주자에 의하면 태극太極은 음양陰陽안에 있다. 사물에 나타난 것으로 보면 陰陽이 太極을 함유하고 있다. 그 근본을 미루어 보면 太極이 陰陽을 낳는다. 그러므로 太極이라는 것은 음양리기陰陽理氣와 오행五行의 이치일 뿐이며 달리 어떤 사물이 있어서 太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만물을 생성하는 이치는 사물 중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지 사물의 바깥에 또 하나의 다른 어떤 것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太極의 바깥에서 따로 太極을 구하는 사물에 갖추어져 있는 이치 외에 또 다른 이치를 구하려고 한다. 그런 것을 막기 위하여 無極이라는 말을 덧붙여 無極이면서 太極이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太極과 無極은 일체에 대한 방경사의 지칭에 불과한 것으로서 太極이 실사實詞이고 無極이라는 말은 太極에 관한 허사虛詞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무극無極을 태극太極에 관한 허사虛詞로 정의하여 노장老莊의 무극無極과는 단절시킬 수 있다. 그래서 朱子는 주렴계周濂溪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찬성하여 그의 체계를 자신의 이론. 첫째로 태극도설太極圖說의 저작에 관한 의문인데 육상산陸象山은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通書가 같은 서술적 맥락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周濂溪의 저작이 아닌 것이 아닌지 혹 어렸을 때 저작이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전한 것인데 후세 사람들이 그것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 아닌지 주장했다. 둘째로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 만화萬化의 근본이 된다는 것인데 무릇 太極이라는 것은 실實의 理로서 성인들이 밝혀 놓은 것이다. 太極이 萬化의 근본이 되는 것은 고유한 것으로서 그것이 萬化의 근본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 아닌가? 과거過法의 성현들이 無極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太極이 萬化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충분히 밝히고 있으므로 無極이라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無極이라는 말을 쓰려고만 했었다면 문맥상 충분히 쓸만한 곳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은 것은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증명한다. 셋째로 太極圖說의 연원이 유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朱子는 周濂溪가 太極圖를 穆伯張에게서 얻었다고 말하는데 穆伯張은 老子의 계통인 진희이陳希夷에게서 얻은 것이다. 그래서 태극도太極圖의 연원은 도가적인 것이다. 넷째로 無極而太極에 있어서의 極자의 개념을 形자의 의미로 해석한데 대하여 陸象山은 無極은 곧 無形이고 太極은 곧 理인데 周濂溪가 사람들이 太極을 또 다른 하나의 사물로 오해할까 걱정되어 無極이라는 두 글자를 덧붙여 그것을 명백하게 한 것이라고 한다. 주역대전周易大傳에서 형이상자形而上者를 道라 하고 또 한번 음陰하게 하고 한번 양陽하게 하는 것을 일러 도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번 陰하게 하고 한번 양陽하게 하는 것은 이미 형이상자形而上者이다. 그러므로 太極이 形而上者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太자를 形자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陸象山은 황극皇極의 極을 의미하는 中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무극無極은 곧 무중無中이라는 말이니 의미가 없는 말이 되고 만다. 이처럼 육상산陸象山의 無極而太極論이 朱子의 견해에 완전히 대립하고 있는 것은 사실 두 사람이 朱子는 道 대한 견해를 조한보가 먼저 편지를 통해 보내 오면서 논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4회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조한보의 문집이 불에 타 없어졌기 때문에, 「망재와 망기당의 무극과 태극에 대한 주장 뒤에 붙여쓴다 書忘齋忘機堂無極太極說後」와 이언적이 조한보에게 보낸 편지 4편을 통해서 태극 논쟁을 살펴볼 따름이다. 따라서 태극논쟁을 명확히 이해하는데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즉, 이언적의 입장에서 태극논쟁을 서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언적의 사상에 대해서는 그의 글을 통해서 알 수 있으나, 조한보의 사상에 대해서는 이언적이 조한보를 비판하기 위해서 조한보의 글에서 발췌한 일부분밖에 알 수 없기 때문이다.2. 이언적과 조한보이언적(1491∼1553)은 사화士禍의 격동기를 살면서 한국 성리학의 기초를 다져 간 철학자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외삼촌 손중돈孫仲暾의 도움으로 공부하였다. 24세 때 벼슬에 나아간 뒤 중종의 신임을 받기도 했지만,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강계에 귀양가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그 뒤 명종 때 복권되어 문원文元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광해군 2년에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과 함께 문묘에 모셔졌다. 이언적은 주희의 호인 회암晦菴에서 따다가 스스로 회재晦齋라고 호를 붙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주희의 학문에 충실함으로써 한국에 주자학이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애쓴 사람이며, 이런 점이 『태극논변太極論辯』에 잘 드러나 있다.조한보의 생애와 사상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일찍이 진사 시험을 거쳐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성종 때 유생들의 동맹 휴학사건 주모자로 지목되어 장형杖刑을 받고 낙향한 뒤, 경주 부근에 들어앉아 홀로 학문을 닦던 사람으로 추정할 따름이다.3. 태극논쟁의 전개①첫째논쟁조한보가 "태극이 곧 무극이다"라 한 것은 옳다. 그러나 그가 "어찌 유有·무無를 논하고 내內·외外를 갈라서 명수名數의 말단에 집착하겠는가?"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은 조한보의 태도는 통합하는 것을 좋아하고 분리하는 것을 싫어하며, 근실한 것을 버리고 허원한 것에 빠지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것은 '눈금이 없는 저울이나 마디 없는 자'와 같은 것이라고 비판하였다.'멸滅'자로 태허太虛의 본체를 설명하는 것은 결단코 우리 유학의 학설이 아니다. 상천上天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니, '적寂'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이른바 어목불이於穆不已한 것이 있어서, 화육化育이 유행流行하여 위와 아래에 밝게 드러나니, 어찌 다시 '적'자의 아래에 '멸'자를 덧붙일 수 있겠는가?유학에서 말하는 리理는 무성무취無聲無臭 하지만, 온갖 존재 및 온갖 조화의 추뉴근저樞紐根 가 되어 끊임없이 유행하는 것이므로, 결코 '멸'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이제 망기당의 학설은 중정인의中正仁義 등의 공부를 버리고, 급히 무극·태극의 본체로 내 마음의 주를 삼아, 천지만물이 나에게 모여들게 하여 운용運用에 막힘이 없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에 오르려하면서 계단이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바다를 건너려 하면서 다리가 없는 것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니, 끝내 허원虛遠한 경지에 떨어져 소득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이언적은 유가의 진리는 궁극적으로 상달上達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비근卑近한 현실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상기시키고, 하학下學의 절차를 중시한 것이다. 그는 조한보의 논리가 노老·불佛의 허무적멸론虛無寂滅論이나 선가禪家의 일초직입一超直入의 돈오법頓悟法에 흡사한 것이라는 점을 경계한 것이다.이언적은「답망기당제1서」에서 조한보의 적멸론과 존양론存養論을 비판하였다. 그는 유가의 이理는 지극히 무無한 가운데 지극히 유有가 있기 때문에, 즉 이는 무성무취하지만 천지만물의 근저가 되기 때문에 "무극이면서 태극이다"라 하였던 것이다. 이언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사람과 사물은 형질形質이 있으나, 이는 형질이 없다. 형질이 있는 것은 생사生死와 시종始終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생사와 시종의 소이所以는 사실 형질이 없
    인문/어학| 2001.11.27| 7페이지| 1,000원| 조회(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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