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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오신화
    Ⅰ. 서 론금오신화는 한국의 소설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소설의 효시이냐 아니냐를 떠나 기존의 문학적 토양과 외래의 영향 아래서 나온 한국 소설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 의해서 금오신화에 대한 연구가 작가, 작품, 전등신화와의 비교 등 많은 연구가 이루어 졌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작품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하여도 아직까지 금오신화를 최초의 소설로 인정해야 하는지, 문학사적으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금오신화는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의 5편이 수록되어 있다. 원래는 이 5편이 작자가 지은 전부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이 5편밖에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그것도 국내에는 필사본밖에 없고 일본에서 간행된 것이 1927년 계명(啓明) 제19호에 최남선에 의하여 소개되었다. 금오신화의 소설적인 특성은 첫째,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재자가인적(才子佳人的) 인물이라는 점, 둘째, 문장 표현이 한문 문언문(文言文)으로 사물을 극히 미화시켜 표현한 점, 셋째, 일상적 현실적인 것과 거리가 먼 신비로운 내용을 그린 점 등인데, 이는 전기소설(傳奇小說)의 일반적인 성격이며 이런 점에서 중국소설 전등신화(剪燈新話) 의 영향이 있었음을 보게 된다. 나아가서 이들 작품 세계는 인간성을 긍정하고 현실 속에서 제도(制度) ·인습(因襲) ·전쟁 ·인간의 운명 등과 강력히 대결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여기에서는 금오신화의 창작연원 및 배경, 금오신화에 수록된 5편의 내용, 금오신화에 나타난 해학미와 그리고 중국의 전등신화와의 구성 비교등에 대하여 말해보려고 한다.Ⅱ. 금오신화 작품의 전래 및 창작시기김시습이 석실에 감추었다는 금오신화는 4세기 이상이나 그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조선조에는 이황이 읽었고 송시열이 그것을 구른바 금오신화가 성립된 15세기 후반을 전후한 시기에는 패설문학 이 아주 성행했었다. 성임이 편찬한 태평광기상절 , 태평통재 가 바로 이 시기에 나왔으며, 서거정의 골계전 , 태평한화 를 비롯하여 강희맹의 촌담해이 , 성현의 용재총화 등이 모두 이 시기의 소산이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민간의 언어와 사유, 민속적 관념과 신앙이 지배층의 언어, 지배층의 문화와 활발하게 교섭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금오신화는 열녀설화 와 관련하는데 가령 만복사저포기 나 이생규장전 의 여주인공은 정절을 지킨 여인으로써 당시 민간에 떠돌던 열녀담 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모델로 삼아 소설적 변형을 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취유부벽정기 의 기씨녀 역시 죽음으로 절개를 지키고자 한 점에서 열녀적 인간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또한 금오신화의 창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 시대 한문학의 전통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즉 금오신화에 실린 다섯 편의 작품은 그 제재나 성격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한문학의 시문을 수용하고 활용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그리하여 심회의 묘출이 필요하거나 낭만적 정조나 분위기의 조성이 필요한 작품에서는 시사(時詞)가 활용되고 있으며, 간절한 기구(祈求)나 애도(哀棹)가 필요할 경우에는 축문이나 제문이, 노래하고 춤추는 궁중 연회의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사(詞)나 가행체(歌行體) 한시가 구사되며, 따지고 논변하는 등 설리적(設理的)인 의논이 요구될 경우에는 논(論)이나 문대(問對)가 활용되고 있다. 금오신화 창작에 있어서의 외재적 요인으로는 명 구우의 전등신화 와의 교섭 양상을 지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정도의 영향을 분명히 주었을 것이다.금오신화가 단순히 문학적인 면만을 지닌 것은 아니다. 이것은 김시습 개인의 삶과도 관련되는 중요한 양태의 하나이며, 당시 사회의 특성과도 맞물리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금오신화는 매월당 김시습이 중년에 경주의 금오산에서 은거할 때 지어진 것으로, 세계의 횡포와 갈등하는 자아의 양상이. 하루는 그 처녀의 혼이 나타나서 '당신의 공덕으로 이제 선국에 환생하게 되었다'는말을 하였다. 이에 양생은 지리산에 들어갔는데, 그 뒤에 그를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ⅱ). 이생규장전송도에 사는 이생이라는 총각이 학당에 다니다가 노변에 있는 양반가의 딸인 최씨를 알게 되어 밤마다 그 집 담을 넘어 다니며 밀연을 계속하였다. 아들의 행실을 눈치챈 이생의 부모가 이생을 울주의 농장으로 보내버리자 둘은 설 만나지 못해 애태우다가 최씨녀의 굳은 의지와 노력을 양가부모의 허락아래 둘은 혼인을 하였다. 이생이 과거에 급제함으로써 행복이 절정에 달하였으나 홍건적의 난으로 양가 가족이 모두 죽고 이생만 살아남았다는 슬픔에 잠겨있는데 홀연히 최씨녀가 나타났다. 이생은 그가 이미 죽은 여자인 줄 알면서도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는 나머지 의심하지 않고 반갑게 맞아 수년간을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날 최씨녀의 이승의 인연이 끝났다며 사라지고 이생은 최씨녀의 뼈를 찾아 묻어준 뒤 하루같이 그리워하며 지내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ⅲ) 취유부 벽정기송도 부호의 아들 홍생이 유람을 겸한 장사를 하기 위해 평양으로 가서 친구들과 같이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취흥을 이기지 못하여 홀로 작은 배를 타고 부벽정 아래에 이르러, 정자 위에 올라가서 난간을 의지하고 고국의 흥망을 탄식하며 시를 지어 낭랑히 읊고 삼경(三更)이 되어 돌아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발자국소리가 들려 온다. 홍생은 영명사의 중이 찾아오는가 생각했으나, 뜻밖에도 한 미인이 좌우에서 시녀를 거느리고 비단 부채를 들고 나타나는데, 그 위의(威儀)가 엄숙하고 정숙하여 마치 귀족 집안의쳐녀 같다고나 하거니와, 홍생이 시녀의 내영(來迎)을 받아 누상으로 올라가서 그 미인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 미인의 신분은 은왕의 후예요, 기자왕의 딸로서, 부왕이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긴 후로 정절을 지켜 죽기를 기다리는데, 신선이 된 선조가 나타나 불사약을 주어 그 약을 먹고 수정궁의 상아가 되었다는 것이다.홍생이 부벽루에서 그 선녀와 하룻밤을 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 작품의 배경사상이 외관상 불교인 것 같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작품의 끝 부분에서 사랑하던 여인이 저승으로 떠나면서 정업을 닦아 속세의 누를 벗어나 것을 양생에게 권유하는데 이것은 불교적 지향이다. 그러나 양생은 이 부탁을 외면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그 행방을 감추었는데 이는 불교도 인간을 궁극적으로 구제해 주지는 못한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만복사저포기는 훌륭한 비극적 전기작품으로 불우한 주인공 양생의 비극이 있고 현실에서 사랑을 끝내 성취하지 못하고 떠난 여인의 비극이 있다. 이는 곧 지은이 자신이 세조정변을 통해 사회와 맞서지 않으면 안돼는 처절한 싸움이며 그 싸움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 정신의 문학적 표현이 곧 비극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ⅱ) 이생규장전이생규장전의 이생이 곧 김시습이며 여인의 유해를 거두어 달라는 당부는 단종 참사 후의 사실에 대한 우의임을 주장한 견해가 있다. 또 최씨녀가 도적의 칼에 맞아 쓰러지면서까지 끝내 정조를 지켜 이생을 사랑했다는 사실은 김시습 자신이 세조의 정권에 지조를 팔지 않고 끝까지 단종에게 충성을 바치려고 한 굳센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절의로 죽은 이들에 대한 화풀이의 맥락에서 역시 이생은 김시습, 최씨녀를 비롯한 전란의 희생자를 단종을 비롯한 왕권의 희생자들로 대응시켜 작품의 우의성을 설명할 수 있다.ⅲ) 취유부벽정기평양의 북벽루에서 선녀와 더불어 논 이야기로서 생육신의 한 사람인 작자는 이 작품속에서 기자를 들어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의 처사를 은연중에 비난하였다고 볼 수 있다.ⅳ) 남염부주지작가는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서정성을 제거하였으며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시적문체를 거세하였다. 박생과 염라왕과의 대화를 통하여 박생 즉 매월당의 평소 생각을 철학적 이치와 현실에 대한 자신의 사회관을 낱낱이 피력하고 있다. 또 작품에 나타난 염부주와 염왕은 작자가 자신이 사상이 타당한 것임을 입증해 보이기 위하여 다시 간행되었고, 또 만금정림 , 연거필기 등에 그 중 몇 편이 초록되었다. 이어 건륭 8년(1743)에 간행된 방각본은 영락본에 근거한 것으로, 잘 통하지 않는 부분은 이를 함부로 산개하였고, 심지어는 전등신화 에 있는 시를 잘못하여 전등여화 에 집어 넣기도 하였다. 또 청조 중기에 나온 방각본 사등집 은 전등신화 외에 전등여화, 추등총화, 멱등인화를 합친 것이다. 전등신화는 누판된 지 얼마 안 되어 우리 나라에도 전래되어 번각 되었는데, 명종 때에 창주 윤춘년이 구우의 교정본에 따라 정정한 것을 임기가 집석한 구해 2권이 두 종류 있다. 하나는 가정 26년(1547) 임기가 송기의 위촉에 따라 지어 28년(1549)에 간행한 것이고, 또 하나는 윤춘년의 교정을 거쳐 38년(1559)에 윤계연이 간행한 것이다. 그 뒤 이들은 일본에 전해져 그곳에서 번각되기도 하였다ⅱ) 금오신화와 전등신화의 비교1) 만복사저포기와 등목취유취경원기인물은 중국인과 한국인이라는 차이밖에 그 설정과 성격에 이르기까지 양자가 흡사하다. 그리고 사건의 구성과 전개에 있어 구성의 근본은 흡사하나 그 전개과정에 있어 만복사저포기가 훨씬 극적 요소가 가미되어 등목취유취경원기를 능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배경 역시 양자가 흡사한 설정이나 중국과 한국이라는 차이가 있고 만복사저포기가 사건이 다채로우리만큼 그 배경의 폭도 넓고 사상성 또한 넓고 깊다.2) 이생규장전과 취취전애초에 비교의 대상 자체가 문제가 있었으나 인물은 중국인과 한국인이라는 차이밖에 그 설정과 성격에 이르기까지 겨우 흡사한 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격은 여주인공의 경우 그 전개과정에서 정반대의 양상을 띠나 그 기본은 같다. 그리고 사건의 경우 그 구성과 전개에 있어 양자는 현격한 차이를 가지며 이생규장전이 취취전보다 극적이며 우수한 구성이다. 배경의 경우는 역시 중국과 한국의 차이밖에 양자가 다 별 의의를 지니지 못한다.3) 취유부벽정기와 감호야범기인물은 역시 중국인과 한국인이라는 차이밖에 그 설정에는 별 차가 .
    인문/어학| 2003.04.15| 10페이지| 1,000원| 조회(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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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시조] 가단과 가집의 관계
    가단의 성격. 가단이란?가단이란 가객들의 사회 또는 그 모임을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객이라고 하는 경우는 보통 조선 후기의 중인(中人)·아전(衙前)층을 중심으로 한 가객집단을 가리킨다. 조선 후기에는 시조창(時調唱)이 크게 발달하면서 중인·서리층 출신의 가객들이 도시의 문학과 풍류를 주도했는데, 가단은 중인 신분으로 한시를 쓰는 사람들의 모임인 시사(詩社)에 대응하는 모임이었다. 이들이 일정한 모임을 갖고 함께 활동한 흔적은 기록에 남아 있지만, 가단이란 이름 아래 본격적인 활동을 했다는 뚜렷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서 그 양상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송순 가단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시인으로서 호는 면앙정이며 송순 가단의 창설자이다. 그는 말년에 담양에 은거하면서 독서를 하고 가곡을 지었다. 국문학자들은 송순의 면앙정을 호남지방 최초의 국문시사 가단이요 호남지방의 모든 시가의 총본산이라고 말하였다.송순 가단의 구성원들은 낙향한 선비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은 절의를 중하게 여겨 은둔하거나 낙향해 학문 연마에 힘썼다. 그들은 두 임금을 섬길수 없다며 학문을 닦으며 세상에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성리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현실정치의 모순점을 지적하면서 하나로 뭉치게 되었다. 이들은 신유학을 장려하고 소학을 숭상하며 중국 요순의 도를 현실정치에 반영하고자 했다. 그들의 주 무대는 성산동 즉 별뫼의 식영정과 서하당 소쇄원등 그 무대가 되었다. 시가 문학으로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등을 꼽을수 있는데 그 중심에 송순이 있었던 것이다. 송순은 아무런 사심이나 꾸밈이 없이 넓고 당당한 경지를 시조에서 보여준다. 그가 남긴 시는 자신의 정의감과 비판의식이 깃들어 있느가 하면 자연과 낭만을 노래한 순수시까지 다양하다. 또 사회악을 풍자하고 고발하는 대표적인 사회시도 그의 문학정신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경정산 가단조선 영조 때의 시인·가인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들의 가단 설립목적은 시조를 즐기며 작품활동을 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평민문학이 흥성하던 당시, 시조 가단(時調歌壇)의 중진이던 《청구영언(靑丘永言)》의 편찬자 김천택(金天澤), 《해동가요(海東歌謠)》의 편찬자 김수장(金壽長)을 중심으로 모였으며 김유기(金裕器) ·김성기(金聖器) ·김우규(金友奎) ·김두성(金斗性) 등을 비롯하여 많은 가객들이 시조를 즐기면서 작품활동을 하기 위해 모인 동인회이다. 경정산(敬亭山)은 이백(李白)의 시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에 나오는 산 이름으로, 삼매경에 이른다는 뜻이다.경정산 가단의 특징으로는 첫째 18세기 초엽의 김천택이 여러 악사, 가객, 여항시인들과 더불어 친목을 도모하고, 지난 시대의 가악을 정리하고 발전시키는데 뜻을 같이 했다는 점이다. 둘째로 이 가단은 구 중심 인물인 김천택이 사대부 계층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성격이 발견된다. 김천택은 가단을 주재하면서 여항인들의 가악 활동을 고무 격려하는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셋째로 이들은 사대부들과 자리를 같이 하면서 사대부들의 생활관, 가치관을 풍자하거나 매도하면서 그들에게 충고를 서슴치 않고 했다는 것을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노가재 가단경정산 가단에 있던 김수장은 말년에 서울 화개동에 자기 호를 딴 노가재(老歌齋)란 이름의 정자를 지어놓고, 여러 동료 및 후배 가객들과 함께 활발한 시조 창작과 가창·가집 편찬 활동을 했다. 학자들은 이 모임을 노가재 가단이라고 부른다. 단체 활동이나 모임의 형태, 구성원들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우규(金友奎), 박문욱(朴文郁), 김중열(金重說), 장복소(張福紹), 이덕함(李德涵) 등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노가재는 김수장의 호이다. 가단의 명칭은 실제 불렸던 이름은 아니며 김수장을 중심으로 가객들 활동 전체를 포괄하여 부르는 용어이다. 시조문학의 창작과 창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고 후배양성의 도량 역할을 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노가재가단이 먼저 있었던 경정산가단을 계승, 발전하였다는 설과 당시에 김천택(金天澤)을 중심으로 한 경정산가단과 김수장를 중심으로 한 노가재가단이 양립되어 있었으며 노가재가단이 가악계에 더 영향력이 컸다는 설 등이다. 김천택과 김수장은 작품의 세계와 취향 등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며 김수장은 김천택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졌다. 보수적이고 완고한 김천택에 비해 김수장은 풍류적이며 자유로운 면이 있다. 이 가단의 성과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해동가요(海東歌謠)의 편찬이다. 이 해동가요는 김수장이 노가재를 중심으로 활동한 작품을 뽑아 편찬한 것으로, 가집의 수록 작가나 작품의 중요성뿐 아니라 작품 끝에 붙은 후서(後序)는 당시 가악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이 노가재 가단의 특징으로는 첫째 서리출신의 가객들이 중심이 되었던 만큼 사대부들의 격려와 협조가 있었으리라고 예상되나 그 구체적인 사례는 발견되지 않는다. 둘째는 이 가단에는 여항시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고 있어서 가단 활동역시 여항시인들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세춘 가단18세기 중엽이후 가객 이세춘을 중심으로 가악활동을 한 무리들의 모임을 지창한 것이다. 이 가단의 중심 인물인 이세춘의 이름이 고금창가제씨의 명단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들이 김수창의 생존시 이미 명창으로 이름이 났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김수창이 사망한 후 노가재 가단을 계승하여 가단을 결성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이 가단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그 구성원이 가객과 금객 그리고 기생등이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 가단의 활동을 통해편찬된 시조집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경정산 가단과 노가재 가단에 의해서 시조집 편찬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역대 시조를 수집한다는 것이 무의미 해서 아예 시조집을 편찬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가집의 성격. 청 구 영 언시조집으로서 해동가요, 가곡원류와 함께 3대 가집으로 일컬어져 왔다. 이 청구영언은 영조 3년 그때까지 전래해 오던 시조를 수집하여 초고를 만든 다음 이듬해인 1728년에 정윤경의 서문을 받고, 김천택의 권말지를 붙여 편찬했다. 가사 10여수가 포함되어 있다. 오씨본, 일석본, 가람본, 석남본, 육당본, 이가원본, 오구라본, 후지타본 등 수종의 이본이 있는데 어느 것이 원본에 해당하는지는 미상이다.주요한 이본을 보면 다음과 같다.오씨본 - 일명 진본청구영언으로 오장환 소장이다. 여러 이본 중 비교적 오래된 것이며 580수의 시조가수록되어 있다. 정윤경의 서문과 편자의 발문이 있고 곡조에 따라 분류 배열되었다. 초중대엽에서 초수대엽의 첫 수까지는 작자가 밝혀 있지 않으나 그 뒤부터는 연대순으로 작품을 편차하고작자의 성명과 간단한 약력을 기록했다. 무명씨의 작품에 대해서는 연군, 강호, 전가 등 주제별로분류했다. 그리고 삼수대엽, 낙시조, 만횡청류에 있어서는 아무런 기록없이 작품만 나열했다.고려말로부터 당시대까지 국왕, 관료, 문인, 기녀 등 다양한 작가의 작품이 망라되어 있다.육당본 - 최남선의 소장으로 편차는 오씨본과 비슷하며 타본에 비해 수록된 작품 수가 많은 편이다.1929년에 경성대학에서 인쇄 발행한 일이 있기 때문에 일명 대학본이라고도 한다.일석본 - 이희승 소장. 2권 1책으로 727수의 시조가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청구영언'이라 표제되어있기는 하나 내용은 오히려 가곡원류와 동일하다고 한다. 30항목의 곡조에 의해서 분류 배열되었다. 6.25사변 중 소실되어 현재 진본을 볼 수가 없다.이가원본 - 이한전이 순조 15년에 편찬한 칠사본. 시조 257수가 수록되어 있다. 1961년 한국어문학회에서어문학자료총간 제2집으로 간행했다.. 해 동 가 요김수장 편찬한 시조집으로서 역시 청구영언, 가곡원류와 함께 3대 가집으로 일컬어져 왔다. 영조 22년에 편찬을 착수하여 1755년에 제1차 편찬, 영조 39년에 제2차 편찬을 끝낸 다음에도 영조 45년까지 계속 보충되었다. 인본으로 이희승 장본과 최남선 장본 2종이 알려졌는데 전자는 6.25사변 때 소실되었다한다. 양본은 체재나 내용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최남선 장본은 김천택 57수, 김수장 117수 등 총 250수의 유명씨 작품이 이희승 장본보다 더 수록되어 있다. 반면 이희승 장본에는 무명씨의 작품 320수가 더 들어 있다. 작가별로 연대순에 따라 배열되었다. 이 책에는 다른 시조집에서 볼 수 없는 200여수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 작품 끝에 관계 문헌이 인용되어서 시조 연구에 많은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또한 그의 작품들 중에는 양반 사대부들의 작품 경향을 일변 답습하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치밀한 상상력과 구상적인 수법으로 감정을 솔직하게 노출하는 표현방법을 통해 서민층의 의식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부귀와 공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풍류 속에서 흥취와 호기를 마음껏 발휘하였으며, 가객으로서의 긍지를 지녔던 것으로 보이인다. 그의 가곡 활동과 가집 편찬은 음악과 국문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인문/어학| 2001.12.12| 5페이지| 1,000원| 조회(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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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의 표현의 자유 평가A좋아요
    Ⅰ. 서 론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생명선이라고도 말해지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대립되는 독재 정치하에서 언론의 자유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가를 상기하면 명백해진다. 독재자는 그의 권력에 순종하지 않는 모든 활동을 탄압하는 것을 특성으로 한다. 그와 같은 활동 중 독재자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정치적 언론이다. 그것은 독재적 지배체제를 붕괴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주의 독재체제를 부정하는 것을 기본적 목표로 하는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으므로 언론의 자유보장은 민주주의에서는 불가결의 요건이 아닐 수 없다.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초석이기도 하다. 따라서 근대적인 헌법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예외 없이 그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그러나 21조 4항에서는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논리를 침해해서는 아니 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언론의 무분별한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여기서 보다시피 언론의 표현의 자유와 침해의 규정이 매우 해석하기 난해하다.앞으로 우리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은 매우 커져갈 것이다. 그러면서 대두되는 것은 언론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일 것이다. 그 이유는 현대사회에서 언론의 중개 역할 없이는 대인간의 상호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언론의 왜곡된 정보를 전달할 경우 그 파급효과는 실로 엄청 날 것이다.이 글에서는 이런 언론의 표현의 자유가 왜 필요하고 그 가치에 대한 이론적인 개념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Ⅱ. 본 론제 1장. 언론의 자유의 등장과 개념1)언론의 자유 등장 배경오늘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는 전통적 자유권의 하나로서 민주정치의 존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자유권은 언론·출판의 자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출판의 자유가 과거로부터 쉽게 보장된 것은 아니고 오랜 세월동안의 투쟁과 희생의 대가로 획득한 자유이다.그 이유는 17∼18세기 가치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3)표현의 자유가 가지는 사회적 기능사회체제에서 표현의 자유가 가지는 기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사람은 Tomas Emerson이다. 그는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사회의 유지를 위한 필요불가결의 요소이며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자유에 대한 위협은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킴으로써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그는 표현의 자유가 가진 사회적 기능으로서 ⅰ)개인의 자기실현을 보장하는 수단, ⅱ)진리발견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 ⅲ)모든 사회구성원의 정책결정에의 참여기능, ⅳ)사회의 유지를 위한 안정과 변화간의 균형보장도구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제 2장. 표현의 자유와 그 이론적 근거1)자유공개 시장론표현의 자유를 맨 먼저 선창한 것은 아마도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일 것이다. 아직 절대주의 통치가 영국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고 이미 로마교황의 절대권위는 영국에서 퇴각하였다. 이에 대체된 절대군주의 권위도 이른바 청교도 혁명으로 붕괴되고 있던 17세기 전반기였다. 바야흐로 왕당파와 교회파 간의 내란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는데 양측이 모두 반대파의 의견을 말살하고 스스로의 권위를 강요하는 사고방식에는 별 차이가 없었으며 출판물에 대한 사전허가와 검열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이때 존 밀턴은 1644년 출판물에 대한 허가 검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역사적인 문헌 「아레오파지타가(Areopagitica)」를 발표하였으며 이는 자유언론 옹호의 고전적 성서가 되었다.그는 이 책에서 허가검열제에 반대하는 세 가지 중요한 논거를 제사 하였다. 첫째로 그것은 악의 부모가 생산한 악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로마 교회가 반대하는 사람과 이론(異論)을 가진 사람을 누르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천주교회의 비위를 거슬리는 의견을 틀어막으려는 것이다. 둘째로 검열은 실천 불가능한 것이라는 논거다. 즉 허가검열 제도로 출판물을 통제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마음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로 제가한 논거로 좀더 철학적인 것이 있다. 그는 이렇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주고 있다.2)자연 권리론표현의 자유가 천제(天際)의 권리라는 견해, 그러니까 자유 공개시장의 이론처럼 사회적인 의미를 논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하고 싶은 소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개개인의 권리를 말한다. 표현의 자유를 자연권으로 규정지은 것은 존 로크였다. 그의 상상 역시 밀턴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창조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사물판별에 기본적인 이서의 힘이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 그는 거의 동시대의 자연과학자인 아이작 뉴턴이 발견한 자연법칙과 같이 인간에게는 불변하는 자연권이 있다고 믿었다.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자유롭고 평등하며 양도할 수 없는 자명한 권리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자연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들 스스로의 동의하에 정부를 구성하므로 만일 그런 인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부가 있을 시 인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정부로 대체되어야 한다.로크가 말하는 영도할 수 없는 자명한 천제의 자연권에는 생명·자유 및 재산 등이 포함되어 있어 사회와 정부는 이를 보호하는 것이다. 즉 자유로운 표현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자유의 한 부분인 동시에 다른 모든 자유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생각하고 믿고 판단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다면 다른 모든 자유, 예컨대 신앙·학문·예술등 정신분야 또는 재산권, 정치참여등의 여러 자유는 별로 뜻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이러한 로크의 자연권 사상은 최초의 미주혁명인 미국 독립혁명에 크게 이론적 뒷받침이 되었으며 1789년 프랑스의 인권선언에도 영향을 주었다.이렇듯이 18세기 하반기는 자연권 사상이 미국과 유럽을 풍미한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존 로크의 표현의 자유를 자연권으로 보는 사상을 자연과학에서의 아이작 뉴튼, 경제학에서의 아담 스미스등 의 학설로 더욱 보강되었다. 그 중 특히 뉴튼의 연구 결과 및 이론이 구체적으로 반영된 것이 미국의 수정헌법 제 1조 2항이다. 「의회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약하거나 또는 인민이 평화스럽게 집회할 권리와 고충의론」에서 그가 한 말을 보면 알 수 있다.'전 인류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같이 동일한 의견을 품었고, 그 한 사람만이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졌을 경우, 전 인류엔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킬 권리가 없다. 그것은 마치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쥐고, 전 인류를 침묵시킬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일 의견이라는 것이 소유자 이외의 사람에 아무런 가치 없는 개인 소유물이라면 또한 의견의 향유가 저해된다는 것이 그 소유자의 사적견해에 불과하다면, 그렇다면 그런 종류의 손해를 몇몇 사람이 입느냐 또는 다수사람이 입느냐에 따라 중요성이 달라진다. 그러나 의견의 표명을 침묵시키는데서 오는 폐해는 그것이 곧 인류의 권리를 빼앗아 버린다는 점이다. 만일 그의 의견이 옳을 경우, 그의 반대자들은 오류를 버리고 진리에 따를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다.'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밀의 이론은 자연권리와는 입장이 전혀 다르다. 즉 자연권론은 국가나 사회가 만드는 법률 이전의 초법적(超法的)원리로서 표현의 자유의 우월성에 근거를 둔 것이며 따라서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 는 식으로 절대적 입장이 헌법에 구현된 것이다. 그러나 공리주의 입장은 표현의 자유가 선험적 원리로서 부여 된다기 보다는 경험적 결과로서 진리 발견에 가장 현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리주의적 이론은 자연권의 입장에 표현의 자유를 정당화하는 이론은 전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의 자유를 염두에 두고 있는데 반해 공리주의적 입장은 이야기하는 측의 권리일 뿐 아니라 듣는 측의 권리도 이를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손쉽게 자기 주장을 발표할 수 있고, 영세 자본으로 신문등 출판물을 만들 수 있던 19세기 현실에 비해 지금은 언론 기관이나 출판이 매스커뮤니케이션으로 비대해졌다. 따라서 지금은 능동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소수와 피동적으로 듣는 다수가 석연히 양분되어 있다. 자칫 언론의 자유는 소수의 능동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측의 독점적 권리로 전략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듣는 측의 권리가 더욱 강조는 음란물 표현이 지닌 긍정적이고 도구적인 중요한 기능을 부정하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또 다른 학자는 음란물이 가진 미적 기능과 예술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성적인 흥미를 토대로 한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예술적 자기표현의 형식인 음란물이 사회적으로 무해하며 오히려 사람의 성적 의지를 증진시키는 것을 개인의 원형적인 성 충동을 공공연하게 대결시키는 사회적 유용성이 있다고 까지 주장한다.한편 막스 주의자들은 음란물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명백히 함으로써 피지배계급을 그 상태에 묶어 두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3)매스미디어에서의 음란물 표현과 음란성우리 나라의 영상부분(텔레비전, 영화 등)들은 공연법에 의거하여 공연물로 분류되고 영화법과 그 시행령에 의거하여 상영 전에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되어있다. 우리 나라의 대법원은 1990년 영화 '사방지' 사건에서 영화 포스터의 음란성 판단기준으로서 과도한 성욕의 자극여부, 일반인의 정상적인 성적 정서침해여부, 건전한 성 풍속과 성도덕관념에 반하는지의 여부 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이 영화는 내용에서는 공연윤리 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고 극장에서 상영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선전하는 방법에서 영화의 예술적 측면보다는 선정적 측면을 특히 강조했다. 이런 점이 음란성에서 심의 되었다.이렇게 영상표현물의 선정성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대해 시민단체의 고발이 잇따르고 있고 특히 텔레비전과 같은 공적 영역의 매스미디어가 다루는 연예·오락방송의 저질성을 정확히 모니터 하여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지금의 이런 현실에 비추어 사법적 판단에서의 더욱 정교한 이론형성이 시급한 형편이라 할 수 있겠다.제 4장. 참다운 언론자유를 위한 보충적 권리우리사회에서 언론자유의 보충적 권리들 가운데 통설로 인정되는 것들로는 액세스권, 알권리 등이 있고 비판권은 사회주의국가에서 헌법상 특별한 보장을 받고 있으나 서구사회에서는 언론의 자유의 한 영역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액세스권 한다.
    사회과학| 2001.06.09| 9페이지| 1,000원| 조회(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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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3의 물결 평가A+최고예요
    최근 몇 년사이 전 세계는 정보·통신, 컴퓨터 등의 벤처기업이 열풍이었다. 즉 다시 말해서 .com이라는 소규모의 기업들이 왕성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지금은 왕성하게 일어났듯이 왕성하게 사라지고들 있다. 물론 아직까지 벤처의 열풍이 식지는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벤처기업의 전망에 대해 몹시 비관들하고 있다. 이럴 때 엘빈토플러의 「제 3의 물결」을읽는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듯 하다.앨빈 토플러 그는 「미래충격」, 「제 3의 물결」「권력이동」이라는 미래서적을 내놓으면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미래학자이다. 그는 이 책들에서 21세기는 변화의 시기이며 그 중심에는 지식 이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 세 권의 책은 앞으로 인류가 맞게 되는 변화에 대한 물음과 해결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중 그의 저서「제 3의 물결」은 1980년대 지어진 서적으로써 20세기말을 예견 한 것이지만 그가 제시한 미래는 21세기까지도 이어지는 커다란변화의 흐름을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우리는 「제 3의 물결」을 통해서 21세기의모습을 어느 정도 예측 해볼 수 있다. 물론 앨빈 토플러의 주장과 예견이 맞다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의 대표적인 책인「제 3의 물결」을 통해서 21세기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가를 알아보려고 한다.사람들에게 20세기의 특징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로인한 대립과 그런 이데올로기의 쇠퇴로 인한 탈 이데올로기를 얘기할 것이다. 한 시대에냉전시대와 탈 냉전시대가 공유한다는 것 미래의 평가는 바로 이러한 변화일 것이라는 것이 앨빈 토플러의 주장이다.앨빈 토플러는 보편적 진화이론을 취하고 있다. 즉 농업사회 「제 1의 물결」에서 산업사회인 「제 2의 물결」에서 초산업사회인 「제 3의 물결」로 세계사는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인류에게 자급자족이라는 자유를 주었지만 질병과 굶주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게 했던 「제 1의 물결」은 1만여년동안 인류사를 지배해오다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 「제 2의 물결」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다. 이 「제 2의 물결」은 수많은 농민들을 농촌에서 공장이 있는 도시로 불러들였다. 또 현재 일부 국가에선 진행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제 2의 물결」도 역시 「제 1의 물결」과 같이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규격화되고분업화되면서 인간은 소외된 존재로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점들로 인하여 약 2백여년간 인류사를 이끌어온 「제 2의 물결」역시 밀려날 위기에 처해있다. 2차대전이후 새로운 물결인 「제 3의 물결」이 밀려왔다. 이는 이전의 물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진행을 보였다. 이러한 빠른 진행양상은 인류의 모든 생활양식을 변화시켰다. 그렇다고 「제 3의 물결」이 「제 1, 2의 물결」을 모두 잠식 시켰다는 것은 아니다.「제 1의 물결」과 「제 2의 물결」의 기간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고 그것이 완전히 사라진 물결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듯이 「제 3의 물결」도 모든 인류의 아주 중요한 일상으로 자리잡을 날이 올 것이고 농업과 산업의 발달을 이끌어 가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제 3의 물결」에는 지식 의 등장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앨빈토플러는 적절한 지식 은 생산과정에서 자본, 노동, 토지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며 새로운 시대에 적절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적은 생산요소로도 어마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즉 다른 요소를 지식으로 대신하여 생산요소의 양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은 측정을 할 수 없다는 점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제 1의 물결」에서는 토지가 가장 중요한 자본 이었다. 토지가 가지는 의미는 바로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제 2의 물결」에서는 주식의 소유가 가장 중요한 자본으로 두각 되었다. 비록 주식이란 것이 종이쪼가리에 불과하지만 바로 간접적인 실체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제 3의 물결」에서는 바로 지식이 자본이 된다. 앨빈 토플러는이에 대해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주식을 예로 들어 설명하며 적절한 지식이 핵심적인 자본임을 말한다.또한 그는 「제 3의 물결」의 특징중 탈 대량화 라는 점을 강조했다. 「제 2의 물결」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교육등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회는 점점 대량화되고 생각도 표준화 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점점 대량사회가 분열 다양화되어 소단위 이익 집단들이 정치, 경제, 문화를 주도해 가는 다양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즉 기존의 산업사회의 규범을 바탕으로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에서 다품종 소량 생산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앨빈 토플러의 예견은 현실엣 직접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을 쉽게 볼수 있다. 예를 들면 킴스클럽이나 까르푸 같은 대형 할인 매장에 가면 10만개가 넘는 서로 다른 제품들이 존재한다. 이제는 더 이상 산업화된 사회의 특징이었던 소품종 대량생산은 의미가 없다. 이것은 「제 3의 물결」로 인해 소비자들은 각각의 욕구와 문화 그리고 생활양식 등이 변화되고 있기 때문에 다품종 대량생산이 도래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다품종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된 요인은 기술적인 발전과 소비자의 욕구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신속한 정보의 전달 능력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제 3의 물결」에서는 노동의 의미에도 변화가 생긴다고 하였다. 앨빈 토플러는 소니사의 경우를 예로 들며 근로자에게 몇 시까지 출근하라고 할 수 있지만 몇 시까지 아이디어를 제출하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즉 「제 2의 물결」의 원칙 중에 하나였던 동시화가 깨지고 재택근무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재택근무는 한마디로 동시화에서 벗어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산업사회에서는 동시에 일어나야 목표를 이루는 체제였는데 「제 3의 물결」에서는 시간의 탈 대중화 현상의 도래로 이러한 변화가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또한 그는 피라미드식 관료제도에서 「제 3의 물결」에서는 근로자의 의사선택관이 커지고 보다 많은 자유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한다.또한 기존의 산업사회에서는 개인의 합리성을 중시했지만 정보화사회에서는 즉 「제 3의 물결」에서는 문화의 다양성을 중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와 제도의 개념적 변화가도래하였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서 세계가 하나로 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국가는 의미가 없는 존재이며 서로 자율적으로 필수적인 것을 지키고 협력한다면 국가는 필요 없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아무리 정보화사회가 되더라도 각각의 분쟁과 인터넷의 음란성,비도덕성의 문제등 앞으로 발생하게 될 수만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국가가 정보의 흐름을 너무 지나치게 통제하고 간섭하여 정보의 원활한 흐름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그리고 이제는 국민들이 정치권에 바라는 욕구가 달라지고 있다. 기존의 정치로는 이러한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엘빈 도플러는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고서 전자통신 민주주의라는 것을 제안하였다. 전자통신 민주주의란 대중이 그때그때 사회적 문제점이 발생하면국민들이 컴퓨터를 통해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이러한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이유를 앞으로는 개개인이 각자의 컴퓨터를 보유해서 이런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개인의 의사를 즉각적이고 신속하게 정치에 반영할 수 있다면 국민의 정치적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1.06.01| 5페이지| 1,000원| 조회(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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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사회의 내가 생각하는 성 평가B괜찮아요
    흔히 "성"이라 하면 우리는 'SEX'를 생각한다. 'SEX'라 하면 또 무엇이 연상되는가? 남녀의 알몸과 성행위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까? 성기와 행위를 행위를 중심으로 한 성개념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올바른 성 개념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것이 아니다.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성(性)의 시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 이유는 그 만큼 우리사회에서 성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이 우리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사회가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우리나라는 1960년대 부터 시작해서 근대산업사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국내의 값싼 노동력으로 인해서 외국의 온갖 쓰레기 산업들이 경제발전이라는 명목하에 무분별하게 국내에 유입되어 발전해 갔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의 문화라 하면 무조건 수용하여 쫑아 가는 경향이 있었다.물론 지금도 이런 경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수용하게된 것이 외국의 키취문화였다.이 키취문화란 미국이란 나라를 예로 들어서 미국의 할램지역의 저속한 문화이다. 즉 값싸고 저급한 문화이란 것이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업의 발달로 인해서 경제가 성장하고 풍요롭게 되자 기존의 선 과제였던 굶주림을 어느 정도 해소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이란것이 그리 쉽게 만족되고 충족이 되던것이던가? 절대 아니다. 기존의 욕망을 충족시키자 새로운 욕망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것은바로 인간의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쾌락이었다. 이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 앞다투어 외국의 값싸고 저급의 키취 문화를 유입하였다.그러나 외국에서 들여왔다고 좋은것인가? 아니다. 외국은 그들 나름대로의 규범과 규칙을 세워두고그 틀에 맞게 이 문화를 즐겼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그리고 대책없이 그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순서를 밟지 않고 받아 들여 건전하고 성스러워야 할 성이 타락의 성·퇴폐의 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최근의 이런 성 풍조를 제 4의 물결 이라고도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은 엘빈 토플러가 말한 제 1, 2, 3의 물결 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사회를 휘몰아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이런 성을 지금의 우리사회에서는 기성세대의 보수적 사고로서 은폐시키고 밖으로 내놓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정작 성을 향유하는 사람의 90%이상은 신세대라고 볼 수 있다.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되어가고 있고 신세대 역시 이러한 변화에 발 맞추어서 변화해가고 있다. 또한 사회가 급 변화하면서 기성세대 때에는 별로 가치 없다고 판단되었던 것들이 현대사회에서는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 하에서 과연 기성세대들의 대책 없는 성 은폐에 신세대들은 얼마나 호응을 할 것인가?그 결과 온천지가 퇴폐적이고 외설적인 음란한 성 상품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고 백주 대로에 버젓이 혼외정사를 위한 러브호텔 출입장면이 거실 TV에 뉴스로 방영되고 있어도, 요즘 세태가 그러려니 하는 윤리적 무감각 상태가 되었고, 여고생이 방과후에 호출기 연락을 받고 술집의 호스테스로 나가는가 하면, 어린 소녀들이 남몰래 출산하여 영아를 버리거나, 낙태를 아무 죄의식 없이 행하려고 산부인과를 찾는 것이 혼전 통과의례처럼 돼버린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해졌다.
    인문/어학| 2001.06.01| 2페이지| 1,000원| 조회(1,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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