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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아 천리마 중국 진출을 통해 살펴본 마케팅 전략
    [목 차]Ⅰ. 중국 진출 개요Ⅱ. STP Strategy1. Segmentation2. Targeting3. PositioningⅢ. 4P Strategy1. Product2. Price3. Promotion4. PlaceⅣ. Future TasksⅤ. Discussion Questions중국 진출 개요2002년 동풍기차 25%, 열달그룹 25%, 기아차 50%, 의 지분구조로 동풍열달기아(DYK)가 2022년 9월 11일까지의 합작기간으로 설립되었다. 합작대상인 동풍기차는 중국 3대 자동차 기업이며, 기아 이외에도 혼다, 닛산, PSA등과 합작하고 있었고, 열달그룹의 경우 자동차 회사가 아니며 지분을 국가와 강소성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국영기업 집단이었다. 또한, 중국에서는 관세를 무시할 수 없기에 중방측 보직자들의 도움과 역할로 통해 이를 해결하며 중국 진입을 성공할 수 있었다.동풍열달기아는 시장 현지화를 목표로 중국인을 조사한 결과, 날렵한 형태를 선호함과 동시에 화려하고 호화스러운 인테리어를 선호함을 알게 되었다. 이에 16가지 옵션을 반영한 full 사양으로 다이나믹하고 스포티지한 이미지의 차로 현지화하였다. 자동차 부품은 현지에서 75% 조달하고, 중국의 지형적 특성을 반영하여 엔진을 신규 개발하였다. 이러한 현지화와 중국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함과 동시에 중국인에게 친근한 천리마(Tianlima)라는 네이밍으로 성공적인 진출이 가능하였다.(출처: 국제경영연구원 제 19권 특별호 2008년 10월)STP StrategySegmentation중국 진출 시 현대와의 생산차종을 분담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으나 양자간의 출혈경쟁을 최소화하면서 모든 세그먼트를 아우르는 전체 모델 라인업(Full model line-up)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동풍열달기아는 C1세그먼트 차종인 천리마를 우선적으로 투입하고, 향후 상향식(Bottom-up)전략에 따라 상위 세그먼트와 다목적 차량(multipurpose vehicle: MPV) 세그먼트로 차종을 확대하기로 결정Tianlima)는 중국 고객의 니즈를 면밀히 파악한 후 기능과 성능을 확정했다. 중국인들이 심플한 디자인, 큰 사이즈, 호화스러운 인테리어를 선호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 요소를 반영하였다. 비록 천리마는 C1 세그먼트인 소형차에 속하지만 중국사람들이 럭셔리한 사양을 선호한다는 국민성을 토대로 에어컨, 가죽의자, 듀얼 에어백 등을 기본 장착했다.또한 엔진 배기량을 더 증가시켜 엔진 파워를 향상 시켰으며, 차가 더 스피드하고 강한 품질을 가지도록 리뉴얼했다. 이는 target층에게 역동적이라는 포지셔닝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중요한 기능적 특징이었다. 이 결과, 경쟁사 대비 높은 마력과 최고의 스피드를 자량하며 고객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다.Price중국 파트너는 끝까지 약한 브랜드력으로 인해 저가격을 주장했지만, 기아는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고 심지어 출시일까지 상호 합의는 도달하지 못했다.2002년 12월 천리마(TianLiMa)는 중국 소형차 중에서 가장 높은 가격인 106,800위안(1,700만원)대로 출시되었다. 특히 동풍열달기아(DYK)는 중국 가솔린의 낮은 품질 때문에 엔진을 다시 설계해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가격 정책 유지가 불가피했다. 천리마(TianLiMa)출시 후 경쟁사의 모델들은 줄줄이 가격을 낮추어 2003년 1년 동안 심한 경우 가격이 1/3로 낮아졌다. 이는 2003년 바로 이전에 경쟁제품을 산 고객들의 불만이 증가하는 요인이 되었다.Promotion천리마(TianLiMa)는 동풍열풍기아(DYK)의 첫 출시 모델로 자체 브랜드 구축에 초첨을 맞췄다. 대중 미디어 광고에 집중하기 보다는 직접 시승하는 이벤트 등을 통해 홍보를 시작했다. 역동성, Power 라는 키워드를 알리기 위해 첫 번째로 선택한 홍보전략은 천리마(TianLiMa)라는 naming이었다.이는 ①수천 마일을 다리는 말, ②시대를 이끄는 엘리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제품의 특성 뿐만 아니라 target 고객층을 대상으로 이미지를 부각시키기에 적절한 nami% 이상의 중국 고객들은 그들의 차를 에프터 서비스 받고 자동차 부품을 구입할 수 있는 4S shop에서 구매한다는 것이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볼 때 4S shop이 중국 시장에서 가장 적절해 보인다는 것은 분명했다. 만약 동풍열달기아(DYK)가 일반적인 4S shop과 딜러샵을 동시에 운영하는 폭스바겐의 방식을 선택했다면, 이는 거대한 지역의 유통 채널 확보를 보장하는 장점은 있었으나, 단점으로는 브랜드 이미지 손상 및 딜러에 의해 독자적인 가격인하를 통제할 수 없음으로 인한 리스크가 있었을 것이다.반면에, 만약 회사가 국산차와 수입차를 4S shop에 전시하고 파는 Nissan의 방식으로 결정했다면, 이것은 단순화된 유통 채널과 싱글 CI 브랜드를 통합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는 기존 브랜드의 고급 이미지를 손상 시킬 우려가 있었다.최종적으로 여러가지 방식을 고민한 끝에 동풍열달기아(DYK)는 4S shop의 싱글 시스템을 채택하기로 결론지었다.동풍열달기아(DYK)는 아래 표와 같이 구분한 4개의 지역군을 기반으로 중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도시별 상품 집중전략을 계획하였다. 즉, tier 1, 2 도시들인 상해, 북경, 광주 등 고소득 지역을 중심으로 C, D 차급을 집중하기로 하였다. 또한 이 지역군 내의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염두 해 RV차급도 동시에 전략제품으로 런칭 계획을 세웠다. 반면 남경, 천진, 청도와 같은 중소득 지역으로서 향후 경제성장 발전 추세에 비추어 향후 tier 1, 2 도시로 성장할 tier 3 도시 에는 중소형 및 소형 차급인 B, C1, C2 차종을 중점 판매하기로 하였으며, 주로 내륙에 위치한 도시들로 현재 중국 내 경제 성장의 혜택을 크게 받지 못한 서북, 서남 등 저소득 tier 4 지역에는 소형차종인 A, B 및 C1차종을 판매하기로 하였다.동풍열달기아(DYK)는 성공적으로 대량 생산 시설을 갖췄지만 여전히 딜러 네트워크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낮은 브랜드력으로 새로운 딜러 확보와 기존 딜추구한 천리마(Tianlima)에 비교해 보면 구식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며 업그레이드 하지 않음으로 중국 고객의 마음에서 멀어졌다 할다. 제품 디자인, 기능에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고가격 정책을 유지함으로써가격 경쟁력이 낮아졌다.유통 통제력 약화에 따른 브랜드 손상폭스바겐은 4S shop과 일반 딜러를 함께 운영함으로 지역 커버리지를 넓히는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공급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일반 딜러들은 통제력을읽고 가격을 낮춰서 판매하고, 프로모션의 일관성을 상실하는 등의 현상을 발생시키며 브랜드를 손상시켰다. 고급차의 이미지로 구축한 market share를 가격 인하 정책으로 고객들의 불만을 초래했다.중국에서 천리마(Tianlima)를 첫 모델로 정한 이유, 다음 모델 선정[천리마 선정 이유]낮은 브랜드 인지도동풍열달기아(DYK)는 중국 내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이미 80년대부터 진입해있는 글로벌 경쟁사에 대응하는 대형차나 고급차 진입 전략을내세우기는 어려웠다. 또한 전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낮아 세계적 인지도를바탕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전략도 적용하기 어려웠다.중국 시장 상황 적합 & 고객 니즈 부흥중국은 현재 성장률이 높은 시장이고, 아직 소득 수준이 1,2선 도시에서도 천리마(Tianlima)가 속한 C세그먼트인 중소형 차의 니즈가 더 높아 시장 매력도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시장 매력도가 높은 시장에 선 진입 전략을 수립하였다.기존 공장의 생산력기존 룽첸 공장에서는 천리마(Tianlima)보다는 작은 소형차 생산 라인이 형성되어있었다. 이에 기존 자원을 최대한 활동하며 조금의 증설을 통해 생산 설비를활용할 수 있었다.성공경험이 있고 빠른 현지화 가능천리마(Tianlima)는 원래 현대의 엑센트를 모체로 하며 한국에서 성공한 경험을가지고 있어 신제품 출시에 별도의 개발 기간이 많이 들지 않아 평균적인 개발기간인 2년보다 훨씬 단축된 7개월 만에 개발 가능하다는 요인이 있었다.DYK와 BHMC간의 관계DYK는 C1세그먼트 차종인 처린마를을 등장시켜 ‘천리마’의 힘있고 다이나믹한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하였음이 적절했다고 판단 할 수 있다. 이렇게성공적 포지셔닝을 확보한 천리마에 추가적인 제언을 한다면 아래와 같다.첫째, 기아 천리마가 가진 타겟이 젊고, 트렌디한 성향을 바탕으로 2002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바이두, 텐센트를 활용한 온라인 바이럴 프로모션을 도입한다면 타겟과 신규 유통 채널, 신규 마케팅 채널을 잡을 수 있는 효과적인 마케팅 툴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4S shop을 통해 거점 영업을 한다면 온라인 몰 구축을 통해 이 거점 딜러가 닿지 않는 지역까지 커버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몰을 통해 견적을 요청하거나 원하는 색상의 차를 봄으로써 고객의 니즈를 더욱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천리마가 고가 정책을 유지한 이유높은 원가중국의 나쁜 가솔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엔진 투자와 풍부한 옵션 탑재에따른 타사보다 높은 원가 요소가 고가 정책을 유지하는 전략을 구사 할 수 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라 볼 수 있다.4S Shop 인센티브 유지동풍열달기아(DYK)은 후발 주자로 딜러를 모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판매 자신감을 부여함을 통해 우수한 딜러를 확보해 갈 수 있었다. 이러한 우수 딜러 확보가 가능했던 요인은 1) 지속적 교육 2) 딜러 성과 보상(인센티브)가 가장 주요하다 판단된다. 이러한 딜러 육성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적절한 수익 확보는 필수적으로 판단된다.가격 신뢰감 유지경쟁 차들은 천리마(Tianlima)의 안착화의 저항을 줄이고, 판매를 확대하기 위해 가격 인하 전략을 썼지만, 잦은 가격 인하로 인해 기존 고객들의 불만과 잠재 고객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천리마는 기능과 성능을 바탕으로한 가격 유지 정책으로 신뢰감을 줄 수 있었다.동풍열달기아(DYK)가 채택한 유통방식 장단점과 효율적 유통경로동풍열달기아(DYK)는 4S Shop 단독 운영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는 자동차 제조 업체가 딜러와의 엄격한9
    경영/경제| 2016.10.23| 19페이지| 2,000원| 조회(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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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페베네 중국진출 실폐사례 분석 및 전략적 제언
    [목 차]Ⅰ. 서론_카페베네의 연혁 및 성공전략1) 국내 성장 배경2) 국내 2008~2012년 성장요인3) 2013~2016년 카페베네 현황Ⅱ. 카페베네의 중국 진출 요인 및 시장환경 분석1) 국내적 요인2) 현지 시장적 요인3) 마이클 포터의 5 Forces를 통한 시장분석Ⅲ. 카페베네의 중국진출 전략 및 성과1) 2012년 카페베네의 중국 진출 현황2) 카페베네의 중국진출 전략(STP)3) 카페베네의 중국 4P 전략4) 중국 진출 성과Ⅳ. 결론_카페베네 중국 사업 안정화를 위한 전략적 제언1) 중국 진출 실패 원인 분석2) 자사 및 중국 시장에 대한 면밀한 분석3) 타기업의 중국 진줄 성공 사례 분석4) 사업 정상화 및 안정화를 위한 향 후 전략 제시5) 맺음말Ⅰ. 서론_카페베네의 연혁 및 성공전략1) 국내 성장 배경가. 매출현황 및 매장수카페베네는 2008년 4월 1호점을 론칭한 이후 2년 6개월 만에 국내 매장 수 400여 개를 돌파,단기간에 최대 커피 브랜드로 성공하였다. 2009년 ‘오곡라떼’를 처음으로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녹차빙수와 와인빙수등과 함께 알코올이 없는 칵테일을 판매함으로써 메뉴의다양성을 확보하였다.나. 국내 카페베네 SWOT내부환경강점(Strength)약점(Weakness)세련된 유럽풍 인테리어로 고급스러운 느낌사이드 메뉴 차별화HQ싸이더스를 통한 스타마케팅과 PPL공격적인 매장확장으로 노출빈도 증가후발주자로써 낮은 인지도스타이미지에 치중(한예슬 카페)Coffee bean 과 비슷한 네이밍메뉴의 다양성으로 주 메뉴 홍보부족외부환경기회(Opportunity)위협(Threat)고급커피시장의 확대새로운 카페문화소비자층의 다양화소득수준의 향상,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다각화(고객과의 접점, 마케팅수단 다양)기존 대기업들의 새로운 브랜드 런칭해외브랜드 커피전문점 진출사이드메뉴 전문점의 확대저가 커피전문점의 확대다. 카페베네 STP① Segmentation② Targeting- 20-30대 여성 고객 : 유럽풍을 추구하기에 고급스럽고 위주의 다양한 음식 메뉴를 구비하고 있으며, 커피 외에도 차,음료, 주류를 함께 판매한다.미국식 커피 전문점 대비 상대적으로 매장 면적이 큰 편이고, 레스토랑 식의 소파 테이블로구성되어 있다. 또한 Take-Out 이용 고객보다는 매장 내 이용고객이 많고, 매장 이용시간이미국식 커피전문점에 비해 긴 편이다. 현재는 일본/대만식 커피전문점의 시장 점유율이 더높은 편인데 이는 커피 외에 마실 것을 선호하고 여유를 즐기는 중국 특유의 차 문화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구분타겟판매 메뉴브랜드특징미국식1선 도시바쁜직장인중심업무 지구Take-Out커피 중심스낵 위주스타벅스(미국)∙ 1999년 중국 진출, 시장점유율 70%∙ 브랜드 선호도 1위, 33개 도시 400여개 매장∙ 다양한 블렌딩 커피 위주의 Take-Out∙ 하나의 문화로 소비한다는 혁신적 개념 도입맥카페(미국)∙ 맥도날드의 커피전문점으로 타 커피대비30~40%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커피 제공코스타커피(영국)∙ 영국 최대 커피전문점으로 2006년 중국진출∙ 70여 개 매장 보유, 고급스러운 분위기시떼커피(프랑스)∙ 2003년 중국 진출, 현재 중국 내 200개 매장∙ 입지환경에 맞춘 스타일 구현, 성공적 진출대만식2-3선 도시여유 추구 고객레스토랑 분위기커피 외 다양한차 종류음식 판매상도커피(타이완)∙ 1997년 진출, 중국 내 300여 개 매장 보유∙ 지역별 독자법인 설립, 브랜드 자체 운영∙ 2,3선 도시에서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음퍼시픽 커피(중국)∙ 홍콩 83개, 중국대륙에 5개 매장∙ 친근하고 편안한 매장 분위기로 접근이농 커피(중국)∙ 2005년 설립, 현재 중국 200여 개 매장∙ 커피 외에도 차, 음료, 주류 함께 판매∙ 파스타, 샌드위치 등의 메뉴 구비나. 공급자 교섭력공급자 교섭력이란 원자재 가격, 물량, 품질에 대해서 공급자가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현재 중국의 공급측면에서의 유통망은 공급자 교섭력 측면에서 보면 소수의 유통망들이 정신 없이 구성하고 있어 공급자가 행사할 수 , 신흥 부유층, 중류층, 하류층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나. Targeting이러한 시장 중국 시장을 구분한 후 카페베네의 초기 중국 진입 전략을 보면 입지적 측면에서는1급 도시의 베이징의 중심지를 타겟으로 시작된 것을 볼 수 있으며, 부유층과 신흥 부유층을 대상으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부유층과 신흥 부유층의 특징을 살펴보면 복잡한 도시 속에 빠른변화에 적응하는 회사인으로 사회적 유행의 선구자이기 때문에 외국 음식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고 쉽게 수용하는 편이다. 그리고 커피소비에 따라서 커피문화도 생겨났다. 그들은 커피가 그들이일할 때 피곤하지 않도록 해주며, 품위, 트랜드 그리고 로맨틱한 생활방식 같은 느낌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커피를 선호한다. 스타벅스와 같은 세계적 브랜드 커피를 선호하며 커피 전문점에 머물기보다는 Take-Out의 형태로 커피를 마시는 성향을 보인다.다. Positioning1급 도시에 거주하는 부유층과 신흥 부유층을 타겟으로 경쟁사로는 스타벅스를 꼽고 있다. 2012년 진출 시 3년 후 스타벅스의 매장 수를 추월하여 M/S를 확보할 것이라 공표하였다. 하지만 스타벅스와 아래와 같은 컨셉 차이를 보인다. 스타벅스를 이기기 위해서 카페베네가 세운 전략은미국식 커피전문점과 대만식 커피전문점의 강점을 모으는 것이다. 1군 도시의 부유층을 타겟으로프리미엄 커피뿐 아니라 중국인이 선호하는 요거트, 차, 빙수 등의 음료 메뉴를 제공할 뿐 아니라단순히 Take-Out해가는 것이 아닌, 휴식 공간을 제공하였다. 음료와 함께 서빙되는 음식도 갓 구워낸 와플, 케익 등으로 다양화하여 중국의 현지 니즈와 프리미엄 커피전문점으로서의 강점을 동시에 가져가고자 하였다.[카페베네 포지셔닝][스타벅스와 카페베네 차이]구분스타벅스카페베네주요 음료 메뉴원두 커피 블렌딩 음료커피 & 중국인 선호 음료음식 메뉴커피와 어울리는 간단 빵/스낵와플, 케익 등 다양한 디저트매장 컨셉커피 문화 인테리어화Take-Out 중심북카페 컨셉의 유럽피언 디저트 카페휴식처로서의 공간 제공국영기업 등이 합작회사로 선정되었더라면 더 좋은 성과를 기반으로 상호 보완적 관계로 상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끝내 중국 최초로문을 연 중관춘점을 폐점한 이유도 가명점주가 독단적으로 인테리어를 변경하면서 본사와의 마찰로 가맹계약을 해지한 것이다. 이처럼 상호 보완적이고, 프랜차이즈 강점을 확대해 갈 수 있는 강점이 없는 합작회사의 선정이 현재와 같은 결과를 도출하였다 평가할 수 있다. 현재 합작법인의 대표 역시 중치투자그룹에서 고용한 사람으로 교체되어 한국 카페베네의 영향력이 더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다.나. 통제력이 약한 독립 프랜차이즈 계약 방식 선택독립 프랜차이즈 계약 방식은 최초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는 진입 방식이지만 가맹점주의 통제와 서비스 표준화가 어렵다. 중국과 같이 개발 진행 중인 국가에서 식음료 사업을 한다는 것은 표준화된 서비스, 위생성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강력한 통제하에서 표준화하여 관리될 수 있다. 하지만 독립 프랜차이즈 계약방식은 가맹점주와의 분쟁 에서도 책임 여부를 명확히 하기 어려우며, 통일된 서비스, 관리가 어려워 고객 만족도가 떨어지기 쉽다. 프리미엄 디저트 카페라는 포지셔닝에 맞지 않는 서비스, 품질 관리, 인력 관리로 위생성에대한 문제제기,서비스 품질에 대한 고객 불만, 매장 앞에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종업원이 발생한 것이다.다. 포지셔닝 오류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카페베네의 중국 진출 STP 전략의 Positiong은 1군 도시의 부유층이라는 타겟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타 도시, 타 타겟으로의 확장성을 고려하여 미국식 커피전문점과 대만식 커피전문점의 2가지 강점을 모두 가져가려는 포지셔닝을 잡았다. 이로 인하여 다양한 음료, 음식 메뉴 및 충분한 휴식 공간등이 있는 해외의 트렌디한 카페문화를 따라가고 싶어하는 1군 도시의 소비자들의 근원 니즈를 만족 시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음료, 음식 모두 높은 가격 포지셔닝으로 그 만큼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고객이 발 길을 끊는 사태를 초래했다.라. 식자재 공급 라인의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함을 이겨내고, 향 후 사업 정상화를 위해 제시하는 전략은 다음과 같다.가. 사업 정상화 및 안정화 시기까지 강한 통제권을 지닌 프랜차이즈 형태로 전환현재 중국에 있는 400여개 카페베네 매장은 한국의 카페베네와 관련이 없는 매장이라고 언론을 통해 인정할 정도로, 카페베네 본사는 중국 내에서 통제력을 잃은 상태이다. 중국 일부 매장에서 돈까스, 탕수육, 라면 등 한국 정규 메뉴가 아닌 상품들이 우후죽순 판매되고 있는 점,또 눈꽃빙수, 인절미 빙수 등 국내 프랜차이즈 경쟁사 제품도 카피해 카페베네 상품인양 판매하고 있는 것이 카페베네의 통제권 상실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본사정책에 반하는 메뉴로 기업 전체 이미지 및 정체성까지 타격을 주는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시장에 안착화되어 동일 서비스, 품질 수준을 달성하기까지 향후 개설 되는 매장은 일반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하여, 일관된 메뉴개발, 위생 설비, 원자재 구매력 향상, 물류 시스템 확보등을 구축한다. 나아가 카페베네의 프랜차이즈의 매력도를 상승시키고, 현재 부정적인 브랜드인식 제고를 위해 본사 또한 경쟁사의 역량, 소비자 선호, 소득수준, 소비패턴, 해당 지역의 경제력을 비롯한 특성, 소비자 동선과 현재 미래 상권 등을 꼼꼼하게 수치화해 분석한 후 입점위치를 선정한다. 또한 기존에 매장 수를 가맹점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전략보다 매장 개설 신청자의 경력, 투자가능 비용, 경영능력, 운영전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매장 신설 여부를결정함으로써 상생의 관계를 확고히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한다.나. 현지화 메뉴개발 및 제안을 통하여 매장 장악력 확장앞서 조사한 것과 같이 중국 내 커피 전문점은 크게 미국식과 커피전문점과 일본/대만식 커피전문점으로 구분되며, 스타벅스가미국식 커피전문점 스타일의 형태에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따라서 카페베네는 간단한 음식과 함께 커피를 즐기는 대만식의 형태의 커피 전문점 안착에 집24
    경영/경제| 2016.10.23| 24페이지| 2,000원| 조회(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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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유적지답사문] 전봉준 답사 보고서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전봉준이 왜 녹두장군으로 불리는지, 더 심하게 그가 정확히 역사상 어떤 의미를 지닌 인물인지 몰라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이 노래를 다들 접해 봤을 것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걸쳐 음악시간에 구슬픈 단조 곡의 음률을 가진 노래를 소개할 때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노래의 느낌은 한마디로 우울하고 슬프기 짝이 없다. 듣다보면 누구를 위한 노래인지 사연을 몰라도 애절한 한을 나타내는 곡조임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그의 안타까운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곡을 통해서 비극적으로 끝나는 그의 혁명정신과 애국심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사실 전봉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그에 관한 유적지는 잊혀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와 관련된 유적지들은 전라북도의 이평에 자리 잡고 이있다. 전라북도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근교 밖으로 웬만하면 떠날 일이 없는 난, 그나마 서울을 떠나는 구실인 할머니방문 도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거의 중단되다 시피 되어있었고, 다른 지방을 방문하는 일도 자연스레 사라져 버렸다. 이 때문에 고향의 유적지에 대한 조사가 과제로 주어졌을 때 비록 나의 고향은 아니지만 부모님의 고향에 있는 유적을 조사하기로 진작 마음먹었다. 다른 지방에 있는 문화유산들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던 것을 만회해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정한 것이 전라북도 정읍과 고부가 집인 아버지, 어머니의 터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전봉준 장군에 관한 유적지이고 이들은 할머니댁에 들릴 때 지나쳐가던 곳이어서 낯설지 않고 친근감이 들었다.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죽산마을은 전봉준등 농민지도자들이 고부봉기를 모의하고 사발통문을 작성한 곳으로, 마을 입구에는 그것을 기념하는 탑이 서 있다. 이곳은 농민군의 황토 빛 발길과 함께, 내력이 얽혀있어 돌아보면 풀 한 포기, 흙 한 점, 부는 바람까지도 무심히 보고게 틀리지 않았다. 세련되지 않은 머리모양과 옷차림, 강한 표정,,,그 안에 느껴지는 열정, 강인함은 힘없던 자의 편에 서서 거대한 자들에 대해 맞서 싸운 그다웠다. 자신이 살고있는 시대에 대한 슬픔인지, 혁명의 좌절과 자신에게 돌아올 비극적 결말을 예감한 슬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고 있지 않고 무언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 사진을 한 동안 응시하고 있다보면 괜시리 그는 슬퍼 보인다. 전봉준이 살았던 시대와 같이 전근대적인 신분계급은 없지만 부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계층의 벽은 더욱더 높아만 가고, 정치적인 외세의 침투가 아닌 경제적인 외세의 침투가 현재 위기상황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그리 틀리지 않다. 전봉준에 관련된 역사적 장소들과 함께 그에 대한 간략한 조사를 통해 과연 그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전봉준장군 고택지 >이 건물은 일명 녹두장군인 전봉준 선생이 동학혁명을 일으킬 당시 거주하였던 집이다지정번호 : 사적 제 293 호소 재 지 : 전북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458-1{▶ 찾아가는 길호남고속도로 태인교차로에서 나와 30번 국도를 타고 부안 방면으로 5.3km가면 신태인읍 이 나온다. 신태인읍에서 서쪽으로 고부가는 길을 따라 동진강 다리를 건너면 만석보 옛터 유지비가 보이고, 여기서 이평면 장내리로 들어가 사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엇비슷하게 직진, 안내판을 따라 우회전해 1.2km 들어가면 조소마을 한가운데 있다. 버스 편은 동서울 또는 강남고속된다. 터미널에서 수시로 있는 정주 행을 타면 된다.{{▶ 고택지 내부전봉준의 옛집 모습은 원래 있던 방 1칸, 부엌 1칸, 광 1칸의 오막살이를 훨씬 번듯하게 복원한 것이며, 집 주위에 돌담을 둘렀고 한옆으로는 집터 만한 마당까지 내어 잔디를 심어놓았다. 고부봉기가 있은 뒤에 안핵사로 내려온 이용태는 동학 교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의 집을 모조리 불질렀는데, 1974년에 이 집을 해체, 보수할 때 '戊寅二月十六日(1818년 또는 187면 지금은 밭으로 변해 있다.{▶{전봉준 묘역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고택500m)전봉준 단비는 고택에서 약 5백 미터 떨어진 소나무 숲에 위치하고 있다. 단비는 유해가 없는 허비로, 비문 앞면에는 태극 문양과 갑오민주창의통수천안전공봉준지단이라 새겨져 있다. 원래는 단비만 있었으나 천안전씨 문중에서 본격적인 묘역 정비를 하여 봉분과 전봉준장군운명시비를 갖추어 놓았다.{{▶ 전봉준 공원국립공원 내장산 입구에 조성되어 있는 이 공원은 동학농민혁명 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정읍시에서 조성하였다. 이곳에는 1894년을 의미하는 높이 18.94미터의 주탑이 건립되어 있고, 둥근 보조탑 4개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으며 주변이 잔디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탑 왼쪽에는 자연석에 새겨진 전봉준 공원이란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전봉준(1854-1895, 42살, 처형){전봉준은 나라 전체가 극도로 부패했던 시기에 태어나 고 통 받는 농민의 대변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외세 의 침탈에도 강력히 맞서 싸우면서 구국의 선봉이 되었 던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조선 말기 혼란한 시대상으로 인하여 발생하였던 많은 사건들 중의 하나를 주도한 인물 정도로 인식 될 수도 있지만, 그는 우리 역사에 있어서 몇 손가락 안에 손 꼽혀야 할 인물이다. 중요한 인물 중 에 한 사람이다. 그는 단순히 개인적인 야망이나 뜻을 실 현하기 위하여 행동한 것이 나리라 그의 말 그대로 "아무 런 죄가 없는 민중을 위하여 그 폐해를 없애려고' 봉기하였던 그때까지의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중의 힘을 결집하여 장삼이사의 백성으로 하여금 역사의 주역이 되도록 지도해 낸 선각자였다. 말하자면 그는 역사를 소수 엘리트가 주도하는 시대에서 다수 일반 민중이 만들어 가는 시대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고부군의 폐정이 조선 8도의 그것과 같다"고 주장하였고 "일본의 조선 침투는 다른 나라의 그것과 다르다"라고 인식하여 반봉건과 항일 투쟁에 일찍이 앞장섰던 그의 넒은 시 우리 민족에게 영원히 전해지고 있다.▶ 집안내력몸이 왜소하였기 때문에 흔히 녹두(綠豆)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의 별명이 생겼다. 출생지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으나, 고부군 궁동면 양교리(지금의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고부군 향교의 장의를 지낸 창혁의 아들이다. 아버지 창혁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저항하다가 모진 곤장을 맞고 한달 만에 죽음을 당하였다. 뒷날 그가 사회개혁의 큰 뜻을 품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 집안이 가난하여 안정된 생업이 없이 약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였고 방술을 배웠으며, 항상 말하기를 ‘크게 되지 않으면 차라리 멸족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고 한다. 태인 산외리 동곡마을에 옮겨 자리잡았을 때에는 다섯 명의 가솔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스스로 선비로 자처하면서 세마지기의 전답을 경작하는 소농이었으며, 이 무렵 농사일 외에 동네 어린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 훈장일로 생계를 보태기도 하였다.▶ 동학에 입교1890년(고종 27) 경인 35세 전후에 동학에 입교, 그 뒤 얼마 안되어 동학의 제2세 교주 최시형으로부터 고부지방의 동학접주로 임명되었다. 동학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스스로가 말하고 있듯이, 동학은 경천수심의 도로, 충효를 근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보국안민하기 위하여서였다고 한다. 동학을 사회개혁의 지도원리로 인식하고 농민의 입장에서 동학교도와 농민을 결합시킴으로써 농민운동을 지도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탐관오리 조병갑농민봉기의 불씨가 된 것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서 비롯되었다. 조병갑은 영의정 여러 주·군을 돌아다니며 가렴주구를 일삼아 농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1892년 고부군수로 부임한 이래 농민들로부터 여러가지 명목으로 과중한 세금과 재물을 빼앗는 등 탐학과 비행을 자행하였는데, 나라의 가뭄등 재해가 있었어도 면세해주지 않고 도리어 국세의 3배나 징수하였고, 부농을 잡아다가 불효·음행·잡기등의 죄명을 씌워 재물을 약탈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만석보의 부는 조병갑 등 부패 무능한 관리를 처벌하고 새로 장흥부사 이용태를 안핵사로 삼고, 용안현감 박원명을 고부군수로 임명하여 사태를 조사, 수습하도록 하였다.▶동학농민항쟁이 동안 자연발생적으로 고부민란에 참여하였던 농민들은 대개 집으로 돌아가고 전봉준의 주력부대는 백산(白山)으로 이동,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핵사로 내려온 이용태가 사태의 모든 책임을 동학교도들에게 돌려 체포와 분탕, 그리고 살해를 일삼는 등 악랄한 행동을 자행하자 이에 격분, 1894년 3월 하순 드디어 인근 각지의 동학접주에게 통문을 보내 보국안민을 위하여 봉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따라 백산에 집결한 동학농민군의 수는 1만명이 넘었으며, 여기에서 그는 대장으로 추대된다. 그는 4개항의 행동강령을 내걸고 그의 뜻을 밝혔으며 또한 격문을 작성, 통문으로 각처에 보내어 농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요청하였다. 이로써, 민란은 전반적인 동학농민전쟁으로 전환되었다. 1894년 4월 4일 그가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부안을 점령하고, 전주를 향하여 진격중 황토현에서 영군을 대파하고, 이어서 정읍·흥덕·고창을 석권하고 파죽지세로 무장에 진입, 이곳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여기에서 전봉준은 창의문을 발표하여 동학농민이 봉기하게 된 뜻을 재천명하였고, 4월 12일에서 4월 17일 사이에는 영광· 함평· 무안일대에 진격하고, 4월 24일에는 드디어 장성을 출발, 4월 27일에는 전주성을 점령하였다.▶ 전봉준의 사형정부의 원병요청으로 청국군이 인천에 상륙하고 일본군도 천진조약을 빙자하여 조선에 진출해왔다. 국가운명이 위태로워지자 전주화약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전라도 각 지방에는 집강소를 두어 폐정의 개혁을 위한 행정관청의 구실을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청일전쟁이 일어나 사태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마침내 9월 중순을 전후하여 동학농민군은 항일구국의 기치아래 다시 봉기하였다. 여기에 그의 휘하의 10만 여명의 남접 농민군과 최시형을 받들고 있던 손병희 휘하의 10만 명의 북접 농민군이 합
    인문/어학| 2004.12.22| 7페이지| 1,000원| 조회(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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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선정릉 답사문 평가A좋아요
    선릉과 정릉 모두 안치되어 있지만 이상하게 지하철 이름은 그냥 선릉역인 지하철 2호선 선릉역에서 내려 대략 5분여 정도 걸으면 선정릉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강남 도심 한 가운데에 수백 년 전의 왕릉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무려 1시간은 꼬박 걸어야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이 곳은 빌딩으로 둘러 싸인 강남특유의 정경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를 갖추고 있다.답사를 한 날은 추석연휴가 막 끝나고 우리 수업이 휴강 된 9월 30일이었다. 그 날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따뜻하고 간간이 시원한 바람도 불고 하늘도 높고 맑고. 과제이기에 강제성을 띄고 시작한 답사이었지만, 일단 날씨 덕에 소풍가는 좋은 기분으로 답사 장소인 선정릉에 도착하였다. 입구에서 의례적인 사진 한 방 찍고, 입구에 놓인 팜플렛을 들고 들어갔다. 입구의 공익근무요원이 너무나도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길래 속으로 하긴 여기에 평일 날 누게 오겠냐 싶어 '참, 심심하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들어섰다. 하지만 이게 웬걸, 선정릉 안에는 꽤나 많은 사람이 있었다. 손을 잡고 산책하는 노부부, 아이들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엄마, 신문을 얼굴에 덮고 잠을 청하고 있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양복 입은 아저씨, 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아저씨, 잔디에 앉아 책을 읽다 잠든 청년, 웃 옷이 땀으로 흥건하도록 걷기를 하고 있는 중년 남자, 우리나라에 여행중인 외국인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선정릉 안에서 좋은 시간들을 보내며 즐기고 있었다. 답사를 끝내고 맛있는 점심을 하기로 했던, 나와 내 친구는 초밥을 잔디밭에서 맛있게 드시고 있던 아저씨를 보고 "우리도 도시락 포장해 가지고 올 껄"이라는 후회에 빠지게 했다. 볕이 너무 좋아서 그 곳에서 이야기하며 식사하는 것도 정말 좋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의 답사는 시작되었다. 이 곳은 그야말로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그린벨트였다. 선정릉 공원 안에 입장하니 산에 온 것처럼 풀내음이 가득했다. 비교적 평단한 길이지만, 등숙하기는 했지만 가만히 자세히 생각해 보니 어의없게 그들의 역할을 맡았던 연기자들 이름과 그들의 연기가 생각날뿐 직접적인 지식과 연결되지 않은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선릉과 정릉을 비교하려고 했지만 뭘 비교해야 할 지도 혼란스러워 답사의 큰 줄기의 아웃라인도 잡기 힘들었다. 보고 비교하고 그러한 것들을 집에 돌아가서 인터넷에 있는 지식을 참고하여 답사 기행문을 쓰려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최소한 답사를 진행하기 전에, 내가 답사하려는 역사적 인물들이 누구인지 확실히 하는 작업은 물론, 그 시대적 상황에 진행되었던 사상 즉 종교 정도는 알아가서 그 것들이 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지도자인 왕의 묘에는 과연 어느 정도 표현되었는지, 시대적 차이로 인해 선종과 중종의 묘의 특징은 어느정도로 변화하고 있는가를 분석했어야 했다. 이러한 사전 작업의 부재로 인해 결국의 허술하게 보고 와서 인터넷에 나온 분석들을 보고 뒤늦게 ‘아, 그게 그거 였구나’라고 알 수밖에 없었다.마지막으로 내가 선정릉에 방문했었던것은 2년인가 3년 전 가을이었다. 그 때에 비해 능으로 갈 수 있는 산책로나 능과 능으로 옮겨가는 길에 방문객들의 이동에 용의하게 길을 확실히 정돈해 놓고 있는 점은 반가웠지만,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변화도 있었다. 전에는 정릉은 완전 비공개였지만 그나마 선릉과 정현왕후능주변에 갈색으로 테두리를 쳐있었지만 관계자에게 부탁하면 하루에 몇시간은 능 주변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었는데 이제는 아예 원천 봉쇄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멀리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그 덕에 능의 앞 쪽은 볼 수 있었지만 뒤 쪽을 바로 보는 것은 아예 불가능 했고, 몇몇의 문인석들은 당연하게 뒷모습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능의 보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겠지만 안타까웠다. 그나마 선릉과 정현왕후릉은 가까이서 보는 것은 가능했는데 정릉은 위치와 구조상 가까이서 보는 것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멀리서 관찰하며 기념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또 이번 과제로 내가 넉한 선정릉 공원에 다음에 방문할 때는, 날씨 좋은 날 내가 좋아하는 친구랑 내가 좋아하는 도시락과 따뜻한 커피를 싸가지고, 평소 읽고 싶은 책을 옆구리에 끼고 방문하고 싶다.그럼 지금부터 이렇게 개괄적인 이야기는 그만 접고, 능의 주인공인 성종과 중종에 대해 간략한 인물 정보를 언급한 후에 구체적으로 직접 관찰한 것을 자세히 먼저 적고, 부족한 부분을 객관적 자료로 보충하는 형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겠다. 답사 보고서를 쓰는 중간 중간에 느낀 점을 쓰고, 앞서 이미 선정릉을 방문하고 느낀 점을 이야기 했기 때문에 보고서 마지막에 따로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사적 제 119호로 지정되어 있는 선정릉에는 조선시대 제 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씨를 모신 선릉과 제 11대 왕인 중종을 모신 정릉이 있다. 선릉은 조선 제9대 성종과 제2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 정릉은 성종의 아들 중종의 능이다. 성종은 세조의 손자이자 덕종의 둘째아들로 세조 2년 1457년에 태어나 13세에 왕위에 올랐다. 재위 25년간 학문을 장려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으며 1494년 38세에 이른 나이로 돌아가셨다. 정현왕후는 우의정 영원부원군 윤호의 딸로 성종 11년(1480)에 왕비가 되었고 중종 25년에 69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중종은 성종의 둘째 아들로 성종 19년에 태어나 1506년에 왕위에 올랐고 재위 39(1544)에 57세로 돌아가셨다. 성종은 재위시절 업적으로 과거 조선의 명군으로 이름이 높았던 성종의 지명도가 높았으나, 요즘은 사극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중종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선릉{선릉의 조형적 특징{관찰{이 곳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참으로 이상한 느낌이 든다. 문인석 사이로 보이는 고층빌딩들은 이 능이 얼마나 도심지에 있는지 보여주기도 하고, 이 능이 만들어지고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도 느끼게 해주고, 이러한 장소에 이러한 능이 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가져오게 해준다. 얼굴은 중후감을 주며 표정은 사실적으로표현하였으쌍, 문인석 1쌍, 무인석 1쌍, 마석 2쌍, 양석 2쌍, 호석 2쌍, 정자각, 수라청, 망료위, 표석1, 홍살문, 재실로 되어 있다. 복두의 높이는 53cm로 턱 아래에서 박두끈으로 매어져 있다. 소매에는 4개의 융기선이 아래로 곡선을 만들어 너비가 143cm가 된다. 후면의 양각은 어깨 아래의 포를 부드럽게 내려 온 하수형 전각복두로 하여 실감있는 표현을 하였다. 첩리소매 넓이도 70cm가 되며 수직으로 내려져 있다. 홀은 길이 24cm, 폭 17cm가 되는데 상부만 나타나 있고, 전면의 관대도 첩리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배면을 참조하면 포의 중간 정도에서 착용되었으며 네 개의 사각형 안에 네 개의 판화가 있다. 나머지 요대 중 왕릉 2기, 후릉 1기는 우에서 좌로, 후릉의 다른 1기는 좌에서 우로 하여 대각선으로 내려오고 있으며, 맨 끝에는 1개의 사각형 안에 화판문이 있다. 신발은 포의 하단에 가려서 전면이나 측면을 볼 수가 없다. 무인석은 전체 길이 290cm로 안구를 중심으로 한 안면이라 생각되는데, 한국인과는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는 상이다. 투구의 정개에는 원형이 솟아 있고 그 주위에 4면으로 연주문이 시문되어 있다. 어린문이 규칙적으로 나열되어 있고 투구끈이 턱 아래에서 매어져 흉부의 좌우로 늘어져 있다. 갑옷은 전체적으로 솟을고리문이며, 흉부 가운데 대까지 3개의 연주문으로 할개식으로 되어 있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싼 상태에서 칼을 잡고 있으며, 귀면문은 복부와 칼 손잡이, 양어깨에 시문되었다. 견갑도 솟을고리문양이고, 화문의 단, 융기종선의 토수로 처리하되 중앙은 연주문, 소매 끝은 화판으로 하였다. 늑갑은 2줄의 융기선 안쪽으로 서운을 나타냈으며 갑옷은 그 밑에서 무릎까지를 가리면서 단은 화판문, 그 다음은 보주를 3개씩 1조로 하여 시문하고 경계를 융기선으로 처리하였다. 칼 길이 149cm, 칼 집 길이 127cm로 소매 아래에서 끈 2개가 내려와 칼집을 고정시키되 끝에는 술을 달아 실물을 보는 것같이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궁릉소장유물경왕후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계비 윤씨는 원자를 낳고 그 후유증으로 열흘 만에 25세의 나이로 승하하고 말았다. 윤여필의 아들이요 죽은 장경왕후의 오라비인 윤임의 집안에는 비상이 걸렸다. 자기 집안 규수를 왕비로 보내 놓고 얼마나 기다렸던 원자의 탄생이었던가. 왕비로 책봉 된지 10년, 중종의 보령 스물 아홉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왕비가 죽은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핏덩이 원자를 끝내 지켜서 세자로 책봉하고 왕위로 이어지게 해야만 한다. 그래서 다음 계비도 자기 집안의 규수로 책봉되도록 했지만 의도와는 달리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것을 가리켜 양호위환이라고 하는가. 제2 계비가 된 문정왕후는 총명하여 중종의 총애를 받았고 드디어 왕자를 낳았다. 그러자 문정왕후는 물론 그의 오라비 윤원로, 윤원형 형제는 생각이 달라져서 사랑 받는 문정왕후의 아들이요 자기들의 생질로 왕통을 이어가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모두 세조비 정희왕후의 친정 후손들이었던 이들은 집안 간의 피나는 싸움이 벌어지고, 세상에서는 이들 윤임 일파를 대윤, 윤원형 일파를 소윤이라 일컫기에 이르렀으며, 끝내는후일 소윤이 대윤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숫한 사람이 죽는 을사사화(1545)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대윤이 천신만고 끝에 기나 긴 31년 동안이나 세자를 지키는데 성공하여 보위까지 이어짐으로써 쾌재를 불렀으나 이 또한 무슨 운명의 작란이란 말인가. 그 왕이 그토록 어렵게 등극한지 8개월 만에 후사도 없이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이가 곧 인종이다. 그렇게 되니 인종의 이복동생이요, 문정왕후의 아들이 등극했고 이가 곧 명종이다. 그 때 나이 열 두 살이었으므로 교활한 문정왕후가 이 후 8년간을 수렴청정하면서 오라비 윤원형 등을 끌어 들여 권력을 휘두르면서 대윤 일파를 몰아내고 국권을 어지럽혔다. 그 문정왕후가 온갖 영화를 다 누리고 나니 죽은 후에 자기 남편 중종의 곁에 눕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중종의 능은 원래 고양 원당의 서삼릉안에 있었다. 첫째 부인은 폐비가 되었을 뿐.
    인문/어학| 2004.12.22| 6페이지| 1,000원| 조회(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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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감상문] 집시의 시간
    어느 시대이고 문화산업을 들여다보면 대중문화(예술)와 소수문화(예술)로 나뉘기 마련이다. 남성과 여성, 가부장제와 모계중심, 이성애와 동성애, 부자와 빈자, 백인과 유색인종, 인간과 환경,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등등 사회와 문화에는 주류와 비주류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파워를 가진 주류들의 지배이데올로기의 전달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대중문화와 예술이 과연 문화에서도 동일한 힘을 발휘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물론 비주류가 주도하는 소수문화가 우월하다고도 볼 수 없다. 하지만 종종 미학적, 예술성 분석을 논하다 보면 문화, 예술의 힘은 소수문화가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비주류들의 소수문화에는 자본주의에 물들어서 예술을 표현하려하지 않고, 기존세력에 저항하는 성격이 두드러져 위로부터 강요된 문화에서 벗어나 순수한 예술성을 대중문화에서보다 더 쉽게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주류의 문화와 예술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속에서 비주류의 모습 뿐 아니라 주류의 모습들도 엿볼 수 있다.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집시 또한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소수집단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은 확실하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이 이런 소수집단인 집시를 소재로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으로 보아 소수를 통해서 다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 것을 보인다. 이 영화는 어린 집시 소년이 거칠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영상 자체가 아주 이국적이고 아름답고, 관객에게 집시들의 사실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집시들의 고유한 생활과 사고방식을 충실하게 재현하였고, 연기 경험이 없는 집시들을 직접 출현시켰다고 한다. 대사들까지 전부 집시언어로 만든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감독의 노력으로 영화는 집시 특유의 민족적 정취를 담고 있다. 감독의 의도적인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완성된 영화 속을 지켜보다 보면 신기하게도 영화 속에서는 사실과는 딴 판인 초현실적인 이상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토속적인 미신과 신비한 사건들의 결고의 어는 집시들의 마을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10대 소년이다.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그를 무척 아끼는 자상한 할머니와 다리가 불편한 어린 여동생 다니라, 노름과 바람으로 항상 말썽을 피우는 골칫거리 삼촌과 함께 살고있는 평범한 소년이다. 우연히 얻은 칠면조를 아들인 삼촌에게가 아닌 페르나니에게 줄 정도로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살고 있다. 페르나니는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의 아즈라를 사랑하고 결혼까지 약속하나 아즈라의 어머니는 그가 부유하지도 않고 재주도 없다. 이유로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그 일로 인해 자살기도까지 하는 순수한 청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심령의술의 능력을 가진 할머니가 병에 걸린 앵벌이 집단의 우두머리인 아메드의 아들을 고쳐주게 되자, 아메드는 그 고마움의 대가로 다니라의 다리를 큰 병원에서 고쳐주겠다고 약속한다. 아이들과 부녀자를 사들여 이탈리아 등 각지에서 매춘, 앵벌이, 도둑질 등으로 돈을 많이 번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페르나니는 그 대열에 동행하게 되고 처음으로 할머니 곁을 떠나 마을을 벗어나게 된다. 돈 때문에 결혼반대에 부딪치고, 동생의 병을 고쳐줄 능력이 없었던 그는 돈을 벌어서 사랑하는 소녀 아즈라와 결혼하고, 동생의 다리 수술비를 마련하는 하려는 희망과 꿈을 이루려 마을을 떠나게 된 것이다. 약속과는 다르게 아메드는 다니라를 한 이탈리아 병원에 입원시켜주나 쉽사리 고쳐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페르나니에게 돈을 벌어올 것을 요구하게 되고 이러는 도중에 여동생과 이별을 하는 상황에 이른다. 집을 떠나온 페르나니는 아메드 때문에 범죄행위를 하게된다. 이러한 생활을 통해 처음으로 돈이라는 것을 만지게 되고, 순수하기만 했던 그는 세상을 경험하게 되고 그 결과 차츰 타락해 가기 시작한다. 조직이 흔들리고, 병약해진 아메드에게 최고의 동업자라고 불리게 까지 된 페르나니. 아메드는 이제 그를 믿고 새로운 사업을 위한 새로운 일거리를 맡기게 된다. 페르나니는 아메드와 똑같은행위를 답습한다. 순수 찾아가게 되고 그가 가지고 돌아온 돈을 보고 그녀의 어머니는 페르나니를 반기며 딸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아즈라는 임신을 하고 있었고, 페르나니 아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서로의 사이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 둘은 성대한 마을축제를 벌이며 결혼식을 올리고, 후에 아즈라는 아이를 낳다가 목숨을 잃게 된다. 페르나니는 아이 때문에 아내를 잃게 되었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아들을 버린다. 그 후 페르나니는 여동생을 찾기 위해 이탈리아를 돌아다니다가 아메드 밑에서 동냥으로 일하고 있던 동생을 우연히 서로 만나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은 황폐화되어 있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다니라는 자신이 버린 아들을 보살피고 있다. 페르나니는 자신의 삶이 이토록 불행하게 된 것은 모두 아메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결혼식장에 있는 아메드를 찾아가 정중하게 인사 한 뒤 테이블에 앉아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해 포크를 날려 그를 살해한다. 복수에 성공했지만 그는 또 다른 복수심을 불러일으켰다. 결혼식을 망쳐 버린 페르카니를 아메드의 새로운 신부가 쫓아와 권총으로 살해한 것이다.그들만의 특유한 토속적인 집시 음악 속에 플라멩고를 추는 정열적인 사람들,,이 것이 바로 집시에 대한 판에 박힌 이미지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나타난 집시들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낭만적인 집시의 모습과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평범한 시골의 한 마을을 보는 것과 같이 정감 있는 영상 속에 지극히 평범한 그들의 일상사가 사실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개인적이고 고향을 떠나는 것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을 줄 알았던 그들에게는 가족을 위하는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줬고, 고향에 대한 애착도 느끼게 해준다. 순수하고 순수했던 한 시골의 청년이 가족을 위해 마을을 떠났다가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세속에 물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주인공의 회개의 모습(결국 불행하게 끝나고 말지만,,,)을 담고 있는 줄거리만을 언뜻 보면 그 동안 우리들이 많이 들어것은 앞서 이미 언급한 환상적이고 신비한 초현실적인 요소들이다. 이 요소들은 중요한 매 순간마다 등장한다. 이러한 영화장치를 보다보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주인공의 꿈과 같은 무의식세계인지, 아니면 주인공의 현실인지’ 같은 착각을 들게 할 정도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실제로 주인공이 숟가락을 움직이는 염력을 보여줄 때, 난 주인공의 평소 희망하는 것을 보여주는 가상의 세계라 여겼었다. 감독은 이러한 영화장치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려고 했던 것일까, 그럼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환상적인 요소를 엿볼 수 있는 영화 속 장면을 찾아보고 그것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해보겠다.집시들은 다른 집단보다도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 집단 무의식 속에서 그들의 삶과 중요한 순간들을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이러한 집시들이 성향이 여러 번 등장한다. 성자의 날, 결혼식, 마술적 리얼리즘이다.1.마술적 리얼리즘ㄱ. 주인공 페르나니는 눈길만으로 사물을 움직일 수 있는 염력을 지니고 있다. 동전 따위를 벽에 달라붙게 만드는 일은 기본이고 영화의 말미에서처럼 포크를 날려 악한을 응징하기도 한다. 페르나니는 이러한 신비한 능력을 아즈라에게 보여주는 행위를 통해서 서로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한다. 주인공의 능력이 당연히 신기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독특한 것은 아즈라가 그의 염력을 보았을 때의 반응이다. 못 믿어 하거나 신기해하는 반응을 보여주는 대신에, 단순히 재미있어 한다. 마술처럼 신비한 현상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영화 기법으로 인해 사실주의적이면서도 또한 꿈속에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ㄴ. 페르나니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즈라의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하며 소리를 지르자 그의 남편이 그녀를 벽에 걸어 놓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역시 어머니는 당황해하거나 남편의 행동에 화를 내지 않는다. 벽에 걸려서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는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웃음을 축제로 변한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우리는 생명과 죽음은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생명의 주어짐을 통해 삶을 살지만, 죽음으로 인해 그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고, 죽음은 삶의 또 다른 현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에 이 장면이 나올 때, 이것이 주인공의 상상의 산물인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순간, 그것은 바로 집시들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는 듯 하다. 그들 대부분은 육체적인 측면에서 현실 속에서 실제 살아가고 있지만, 정신은 꿈속에서 방황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3. 결혼식가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족은 적대적인 세상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동세에, 집시 세계와 비 집시 세계 사이의 복잡한 관계와 정체성을 세울 수 있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할지라도 가까운 친지들 전체를 포함한다. 결혼은 공식적인 것이든 아니든 매우 주요한 의식이며, 친지들은 결혼한 부부에게 매우 강한 압력을 행사한다. 집시 세계에서 1년은 결혼식이라는 대축제로 점철되기 마련이다. 결혼식은 매우 중요한 만남의 기회이다. 왜냐하면 그 날은 신랑신부의 가족 친지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집시들이 다 모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중요한 의식이 때문이 롬들은 결혼 비용을 놓고 장시간 협상하는 풍습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집시들의 특징이 모두 이 영화에 드러나 있다. 페르나니가 아즈라에게 청혼한 후 아즈라 부모님께 찾아갈 때 주인공이 ‘가지고 올 수 있는 돈’이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후에 페르나니가 돈을 많이 벌어 아즈라의 어머니께 가지고 갔을 때에야 비로소 그녀의 어머니는 둘의 결혼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이러한 결혼 승낙 후에 결혼식 장면이 나오는데, 마을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거의 모든 마을 사람이 참석한 것과 같은 많은 인원들과 풍성하게 마련된 음식은 이 날이 집시들에게 소중한 날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결혼식은 모두 안 좋은 결말을 .
    독후감/창작| 2004.12.22| 6페이지| 1,500원| 조회(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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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문학] 돈끼호떼 평가D별로예요
    1. 서론2. 본론a. 줄거리b. 혼란스런 작가시점c. 세르반떼스가 가장 중시여긴 돈 끼호떼에 나타난 자유d. 액자 소설 중 제33장-35장분석e. 돈 끼호떼를 통한 작가 세르반테스의 계급에 관한 의식f. 스페인 내에서의 소수민족들g. 환상적 요소h. 웃음유발장치들i. 변화하는 돈 끼호떼의 모습j. 시대적 배경과 시대변화에 따른 그에 따른 돈 끼호떼의 상징 변화3. 결론서론{서양 최초의 근대적 소설임과 동시에 근대적 소설이며 또한 최대 작품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미겔 데 세르반떼스 사아베드라의 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명성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림 동화책이나 아동 도서를 접한 것이 전부일 뿐, 문학을 연구하거나 스페인 문학, 세르반떼스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정작 완역본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물론 나 역시도 그러했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돈 끼호떼하면 단순히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 빈약한 말 로시난떼를 타고 기사여행을 떠나는 허술한 중년의 아저씨, 중세 기사문학을 풍자한 소설 혹은 소설에서의 인물 유형으로 '햄릿형'에 반하는 '돈키호테형'을 떠올리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우스꽝스러운 돈 끼호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가벼운 소설로 내 맘속에 자리잡고만 있던 소설는 전편 52장, 후편 74장으로 구상된 방대한 분량으로 때론 무겁고 너무 긴 대사량으로 내가 생각해 온 것처럼 그리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옮긴이는 현대인의 성급한 눈으로 보아 다소 지루하다고 여겨질 만한 부분까지도 원작을 살 리려는 의도에서 하나도 삭제하지 않았다. 라고 분명히 책에서 밝히고 있으며 이는 원작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사실상 이 작품만큼 인구에 회자하면서도 대충대충 읽히는 작품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편력 기사 이야기에 미쳐버린 돈 끼호떼. 1권 만해도 약 550 page정도 되는 돈 끼호떼는 단순한 익살이나 풍자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읽는다면 한 미치광이의 모험꽝스럽지만 그들에게는 비통한 실패와 패배를 맛보게 한다. 이러한 가혹한 패배를 겪어도 그의 용기와 뜻은 조금도 꺾일 줄을 모른다. 기사 소설의 모험 이야기에 대한 패러디가 주된 줄거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모험 이야기 사이사이에 전통적인 목가 소설, 이태리풍의 소설들도 삽입되어 모험 이야기와 같이 싣고 있다. 즉, 작가 세르반떼스는 돈 끼호떼와 산초가 겪는 모험들의 단조로움을 깨뜨리기 위하여 많은 액자소설을 작품 속에 파격적으로 삽입등 여러 장르를 함께 합쳐서 구성했는데, 그 이야기들은 모두 남녀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사랑의 선택을 주제로 하고 있다. 목가 소설의 한 종류인 마르셀라와 그리소스또모의 사랑이야기(제2편 제 11장-14장), 분별한 호기심으로 인해 안셀모, 로따리오, 까밀라 세명의 남녀의 목숨을 잃게 되는 심리소설(제4편 33장-35장), 루스씬다, 까르데니오 돈 페르난도, 도로떼아 이렇게 네 명의 남녀의 엇갈린 사랑이야기인(제 3편 제24장 ,27-29장 36장), 제4편 37장부터 시작되는 무어인을 주제로 한 포로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중 무분별한 호기심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서 뒤에 자세히 이야기하겠다.)작품 속에서 중심 되는 인물은 돈 끼호떼와 산초이다. 돈 끼호떼는 현실 감각 없이 자신의 희망을 추구하고 환상적인 모험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상주의적 인물인 반면, 산초는 어느 상황에서나 자신의 재산을 챙기려 하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이며 물질주의적 인물이다. 세르반테스는 기사들을 비판하기 위해 현실감각 없이 이상을 추구하며 모험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을 통해 돈 끼호떼와 산초 빤사로서 조화와 균형을 위한 진화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작가 시점돈 끼호떼를 읽다보면 과연 작가가 누구인가 라는 혼란 속에 빠진다. 읽을수록 단순히 미겔 데 세르반떼스 사아베드라 만이 작가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구절이 속속 눈에 띄기 때문이다. 돈 끼호떼는 먼저 세르반떼스가 만들어 낸 보통 끼하다 또는 께사다 라고 불리는 (서 세르반테스가 진정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것도 사람만이 독보적으로 즐길 수 있었던 자유였으리라. 이러한 그의 의지는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돈 끼호떼가 자유의 상징인 방랑과 모험을 즐기는 인물로 설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돈 끼호떼와 그 밖의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말들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돈 끼호떼는 인간이 원래 자유롭게 태어나고 또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누구보다 강하게 생각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고 속편 58장(466쪽)에서는 자유란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귀한 것이라는 말을 한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a.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운 여자예요. 그래서 남의 의사대로 움직이는 것은 싫습니 다. -제2편 제14장 124쪽, 빼어난 미모를 가진 양치는 여자 마르셀라에게 구애를 하다가 거절당한 충격으로 죽은 그리소스또모의 장례식에 나타난 마르셀라의 말-b. 부인, 이제야 아리따운 그대의 모습이 그대에게 가장 어울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소이 다. -제1편 제8장 76쪽, 두 수도사들과 부인을 오해하여 수도사를 내쫓은 후 부인에 게 돈 끼호떼가 하는 말-c. 뭐, 힘으로 강제를 당한 인간들이라구? -제3편 제22장 199쪽-d. 경호하는 여러분들이나 관리양반들에게 이분들의 포박을 끄르고 조용히 자유로이 해달 라고 부탁을 드리겠소.,,,하느님과 대자연이 자유로운 존재로서 만든 자들을 노예로 삼 는다는 것은 참으로 무자비한 행위로 여겨지는 일이오. -제3편 제 22장 207쪽-e. 그는 포박을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어 이 싸움 한 가운데 맨 처음 뛰어들었다.,,,벌서 이때에 자유로운 몸이 된 다른 죄수들의 엄청난,,, -제3편 제22장 208쪽-c-d는 돈 끼호떼가 베풀어준 자유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온 대사들이다. 죄를 짓고 수갑채워서 갤리선으로 끌려가는 12명의 남자를 구해준다. (하지만 풀려난 자들은 그가 올바른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일제히 돈 끼호떼에게 심한 돌팔매질을 하기 시작한다.) 이 일화는 돈 끼호떼에게 고 그것들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에 이르도록 하는 과정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루기도 한다. 호기심이 단지 호기심으로만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예상하지 않았던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열정을 갖고 몰두하게 되면 자신이 원했던 것 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갖기 마련이다. 호기심으로 인해 인류는 여러 가지 발명품을 만들어왔고, 이는 우리가 여태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경우도 많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 큰 화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우린 많이 볼 수 있는 경우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소설 돈 끼호떼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대상으로 한 호기심이다. 소설 돈 끼호떼 내에 액자 형식으로 있는 세 남녀에 관한 이야기가 분별 없는 사고에서 비롯된 호기심이 비극을 초래한 경우를 잘 보여 준다. 다음의 로따리오 대사가 이를 함축적으로 잘 대변해준다.- 말하자면 해는 있어도 이익은 없는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지리 멸렬된 분별 없는 생각에서 나왔다는 것이 분명한데, 하물며 그것이 남에게 강요되고 있는 것도 아니고,,,-제4편 제 33장 341쪽--여자는 유리니깨지나 안 깨지나시험하지 마라엉뚱한 결과가 되고 말 테니.깨지기는 쉬우나 다시 고칠 수 없는 것깨질 우려가 있는 곳에놓는 것은 바보 같은 짓. 제4편 제33장 344쪽 로따리오가 안셀모에게 들려주는 시구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호기심으로 인해 이 세상이 발전해 나갈 수 있고 더욱 진보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무분별한 호기심의 시작이 얼마나 잔인한 종말을 예고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인간의 호기심은 어디까지이고 적절한 수준은 어디까지인지 생각해 보게 해주는 기회를 편에서 제공해 준 것이다. 개개인의 분명한 사리판단을 통해 분별 있는 행동으로 최소한 이런 비극적인 종말을 맞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해서는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다른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하는 상황인 데도 산초는 뼁따뽈린을 돕겠다고 서슴치 않고 대답하고 있다. 주류와 비주류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은 높은 장벽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감지할 수 있다. c의 대사에서 무어인이 스페인에 살고 있지만 스페인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즉 주류로 편입하기 위해선 그리스도교로 개종해야 하는 시대상을 보여준다. 정신이 건강함의 상징이 그리스도 교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환상적 요소세르반테스는 기사들을 비판하기 위해 현실감각 없이 이상을 추구하며 모험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돈 끼호떼를 그렸다. 허름한 여인숙의 몸파는 여자들이 공주님이나 우아한 귀부인으로 보이기도 하고 풍차를 악마로 착각하고 돌진하기도 하며 거인의 군대를 만나 술항아리를 박살내는 그의 모습은 정말 어이없다. 그는 그가 꿈꾸는 이상세계에 지나치게 몰입해서 현실세계를 마치 이상세계로 착각한다. 그의 관념이 곧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는 모든 현실을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만 해석한다. 허름한 여인숙이 화려한 성으로 보이고 말라비틀어진 여윈 말이 최고의 명마로 보이는 것이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환상적요소들은 돈 끼호떼의 모험이 시작되는 순간들이면 어김없이 나오므로 구체적으로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웃음유발너무 긴 대사와 장황한 문체에 지루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웃음을 유발하는 대사들이 나온다. 그 중 몇 가지만 추려보겠다.a. 돈 끼호떼는 편지를 써서 산초에게 주지 않았으며 산초 역시 그것을 받는 것을 잊고 그 냥 왔던 것이다. -제3편 제26장 256쪽-b. ,,,하지만 시작은 이렇게 나갑니다요. 멋없이 키가 크고 조금 귀한 공주에게.c. 30번의 아아 와 60번의 한숨과 자기를 이런 곳에 데리고 온 사람에 대한 120번의 욕 지거리를 뱉고는 간신히 일어나기는 했으나,,,,-제3편 제16장 134쪽-d. 돈: 그대가 거기 닿았을 때 그 아름다운 공주는 무엇을 하고 계시더냐? 아마도 진주에 실을 꿰거나, 아니면 공주의 종인 이 기사를 위해서 무슨 방패의 문학 편
    인문/어학| 2004.12.22| 13페이지| 2,000원| 조회(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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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축제] 발칸유럽의 축제 평가A좋아요
    목차머리말본론각 나라의 축제Republic of SloveniaRepublic of CroatiaThe Republic of serbia, The Republic of montenegroThe Republic of RomaniaRepublic of BulgariaThe 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Republic of Bosnia and Hercegovina맺음말'문화'은 '얼굴이 안 보이는 국제외교사'이다. 즉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지금까지 이데올로기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종교, 전통, 민족, 역사 등 문화적 요소가 국제정치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었으며, 또한 지금까지 거리, 공간적으로 맞은편에 있던 관계로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잘 보이지 않았던 사람의 얼굴, 생활, 사고방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으며, 동시에 그 흐름에 걸맞게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시대로 들어섰다. 인터넷 및 이동수단의 발단 또한 사람들을 자극한다. 책과 영상에서만 보던 문화들을 직접 체험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게 하고, 그에 대한 결과로 해외여행을 통해 문화체험을 하는 이들의 증가를 야기 시키게 되었다. 이처럼 이러한 시대 배경에 있어서 문화면에서의 국제교류가 활발해지고, 또한 중요시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미국 브로드웨이에 가서 뮤지컬을 보는 일, 영국 레스터 스퀘어에 가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일, 스페인의 토마토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일 등은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 아니면, 최고 부유층이나 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나이 드신 분들은 삶을 즐기기 위해, 젊은이들은 세계를 보는 눈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천 공항을 이용한다. 며칠 전에만 해도 '경제 불황이지만 유럽배낭여행 예약률은 오히려 전년보다 30%증가'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렇듯 해외방문객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해외방문객 중에 학업을 목적으로, 리는Cows' Ball (Kravji Bal)는 소들이 고지의 목장에서 계곡으로 돌아오는 무렵인 9월 중순의 어느 주말에, 먹고 마시고 민속춤을 추며 흥청대는 축제이다. 가장 많은 슬로베니아 사람들이 이 축제를 즐긴다. 국제 여름축제가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화행사이며, 음악, 연극, 무용공연으로 이루어진 축제는 류블리야나와 블레드(Bled)에서 7월과 8월 사이에 열린다. 보히니(Bohinj)에서 열리는Cows' Ball (Kravji Bal)는 소들이 고지의 목장에서 계곡으로 돌아오는 무렵인 9월 중순의 어느 주말에, 먹고 마시고 민속춤을 추며 흥청대는 축제이다. 가장 많은 슬로베니아 사람들이 이 축제를 즐긴다.1월과 3월에는 스키대회 1월의 Women's World Cup Slalom and Giant Slalom Competition 은 가장 중요한 여성 스키대회로 마리보르(Maribor)의 남서쪽에 있는 슬로프에서 열린다. 3월의 the Ski Jumping World Championships 은 플라니차(Planica)에서 사흘동안 열리는 고공 플라잉대회이다. 양 대회 사이에 쿠렌토바니예(Kurentovanje)라는 봄 제전이매년 2월 달에 열리는데 참회의 화요일까지 10일간 계속된다. 이것이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Mardi Gras 축제인데 대부분의 행사들은 프추에(Ptuj)시 주위에 집중해서 열린다.)Republic of CroatiaSpring Time Jazz Fever 자그레브 3월 21일부터 4월 4일 까지 Spring Time Jazz Fever 행사가 열려 잘 알려진 멋진 곡조와 즉흥연주로 시 전체가 흥에 들뜬다.International Days of Jazz 10월 중순에는 International Days of Jazz 페스티벌이 열린다. 자Summer Festival 자그레브의 Summer Festival과 같은 시기인 7월에 스플리트 Summer Festival 열리며 크로아티아 작가들의 고전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초대된 5명의 심사위원이 부문별로 가장 인기 있고 작품성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수상을 하기도 한다.Filmski Susreti NIs (Nis 영화제)1966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36회를 맞이하는 Nis 영화제는 유고 내에서 제작되는 장편 영화를 초청하고 일반 대중에게 알림으로써 영화발전에 힘쓰고 있는 축제이다. 매년 8월 하 순경에 열리며 심사위원을 구성하여 부문별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즐길 수 있다.Praznik Mimoze (함수초 축제)함수초라는 꽃과 사순절을 기리기 위한 전통축제로 해마다 1월 말 에서 2월 말까지 몬테네그로 헤르쩨그-노비에서 열리는 행사이다. 1991년부터는 유럽 카니발 도시 연합에 가입하여 폭 넓은 행사를 만들고 있다. 이 행사에서는 거리 퍼레이드, 음악회, 문학회, 전시 회, 영화제, 체육행사등으로 구성되어 있다.Beogradski Letnji Festaval (베오그라드 여름 축제)해마다 6월이나 7월경이면 베오그라드 시내 전역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인다. 학생관장, 베오그라드 문화 센터, Jovan J. Zmaj 거리등 시내 20여 곳에서 연극, 영화, 음악회, 전시회,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고 각종 이벤트도 열린다. 이 때가 되면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에 흠뻑 젖어들어 저마다의 기쁨을 나눈다.Beogradski Međunarodni Filmski festival(베오그라드 국제 영화제)유고에서 열리는 축제 중 가장 큰 축제로 해마다 1월이나 2월경이면 베오 그라드 시내에는 세계의 명작들이 즐비하다. 해외 초청작, 국내 영화가 소 개되어 기존의 극장가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볼 수 있고 영화제 외적인 행사도 볼 수 있다. 유고 자국내의 자체 제작된 TV 영상산 업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러한 영화제는 사람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 할 뿐 아니라 자국의 영상산업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Krneval Cveca 배필 감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루마니아 미혼 여성들은 집에서 가만히 가사 일을 돕기 때문에 사정은 더욱 더 어렵다. 따라서 루마니아의 젊은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소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자시장"이라는 이름이 다소 충격적이지만 전혀 퇴폐적인 그런 것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루마니아의 젊은 남녀들이 자연스럽게 서로가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그런 차원에서의 전통시장인 것이다. 이 "여자시장"은 카르파치 산맥에 있는 아푸세니 Auseni 지역의 거이너 Gaina 산기슭에서 매년 7월 세 번째 일요일에 열린다. 이와 비슷한 기념제들은, 산악지대뿐만 아니라 평야지대 등 루마니아 전역에 걸쳐 퍼져 있으며 그 종류도 상당히 많다. 그 중 브라쇼브 Brasov 시에서 젊은이들의 축제(Sarbatoarea Junilor) 브라쇼브시에서 매년 5월 첫 번째 주에 열리는 루마니아에서 널리 알려진 유명한 기념축제이다. 말을 탄 젊은이들은 그룹을 지어서 브라쇼브 시내의 거리를 행진하는데,이들 그룹은 옛날 루마니아 군대의 이름을 사용하는 동시에 그 부대에 알맞은 복장을 입기 때문에 다른 부대와 확연하게 구분된다. 흥미로운 것은, 각 군대의 장군이 입는 갑옷인데, 이 갑옷은 4명의 여인들이 4만개의 금속조각을 사용하여 4개월간에 걸쳐 만든 것으로, 무게는 대략 9-10kg정도이다. 시가 행진은 스케이 Schei 지역의 피에트렐레 루이 솔로몬 Pietrele lui Solomon 마을에서 끝이 나는데, 이곳에서 젊은이들은 철퇴를 누가 멀리 던지나 경쟁을 하기도 하면서 루마니아의 전통 민속놀이와 민속춤을 추며 즐긴다.Republic of Bulgaria공식 휴일은 설날(1월 1, 2일), 1878년 해방절(3월 3일), 키릴 알파벳의 날(5월 24일), 크리스마스(12월 25, 26일)이다. 크리스마스 휴일이 이틀인 이유는 공산주의 시절 신앙심깊은 불가리아인들이 크리스마스 축일을 금지당하며 그 다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마케도니아인들은 1월 7일에 그리스 정교회의 크리스마스, 이어 13일을 새해로 축하한다. 그 외에 군사적 사건을 둘러싼 국가적 특별행사가 많이 있다. 1903년의 봉기를 기념하는 일린덴(Ilinden)의 날은 8월 2일, 공화국의 날 (Republic Day)은 9월 8일, 1941년 빨치산의 날(Partisan Day)은 10월 11일이다. 오흐리드에서 7월 초 열리는 발칸 민속무용과 음악제(Balkan Festival of Folk Dances and Songs)에는 주변 발칸국가의 민속 단체들이 많이 참석한다. 7월 중반부터 8월 중반까지 열리는 오흐리드 여름축제(Ohrid Summer Festival)에서는 고전음악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시인들은 8월말 스트루가(Struga )에 모여 국제 시축제(International Festival of Poetry)를 연다. )Republic of Bosnia and Hercegovina공화국의 날(Republic Day)은 연방에서는 11월 25일, 스르프스카 공화국에서는 1월 9일에 기념한다. 특정 종교 휴일과 함께, 3월 1일의 독립일, 5월 1일의 노동절은 모두 같은 날 기념한다. 수도 사라예보에서는 해마다 사라예보 필름축제가 8월 늦게 열리며, 2월에는 겨울축제, 3월에는 연극과 음악공연이 열린다. )사실 수많은 발칸유럽에 관한 주제 중에서 축제에 관해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나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행을 좋아했던 탓에 (아쉽게도 발칸유럽을 제외한) 유럽의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여행할 때는 각 국의 분위기에 취해 항상 행복해 했었지만 , 돌아와서 여행했던 날들을 돌이켜보면 축제에 참여했던 나라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훨씬 더 깊게 각인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국의 에딘버러 페스티벌, 노팅힐 페스티벌,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 등 어느 하나 내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지금도 축제 .
    인문/어학| 2004.09.10| 11페이지| 1,500원| 조회(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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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문화인 축제] 영국의 축제 평가A좋아요
    목차1. 서론 - 현재의 문화의 중요성과 축제 라는 주제 선정 동기2. 본론 - 영국의 주요 축제들1Edinburgh Festival기원총체적 정보에딘버러 축제 지도Edinburgh Military Tattoo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Edinburgh Fringe Festival관람객이동수단 및 숙박소요비용티켓축제의 전반적인 관리와 홍보2Nothing Hill Canival개최도시, 기간기간과 의의노팅힐 카니발의 세부축제ㄱ Carnival-on-the-Roadㄴ Steelbandㄷ Socaㄹ Calypsoㅁ Static Sound Systems특징3May Festival4Dancing Festival3. 결론 - 에딘버러 페스티벌 참여 느낌에딘버러 축제 정리 및 바라는 한국 축제 문화'문화체험'은 '얼굴이 안 보이는 국제체험'이다. 즉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지금까지 이데올로기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종교, 전통, 민족, 역사 등 문화적 요소가 국제정치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었으며, 또한 지금까지 거리, 공간적으로 맞은편에 있던 관계로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잘 보이지 않았던 사람의 얼굴, 생활, 사고방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으며, 동시에 그 흐름에 걸맞게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시대로 들어섰다. 인터넷 및 이동수단의 발단 또한 사람들을 자극한다. 책과 영상에서만 보던 문화들을 직접 체험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게 하고, 그에 대한 결과로 해외여행을 통해 문화체험을 하는 이들의 증가를 야기 시키게 되었다. 이처럼 이러한 시대 배경에 있어서 문화면에서의 국제교류가 활발해지고, 또한 중요시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미국 브로드웨이에 가서 뮤지컬을 보는 일, 영국 레스터 스퀘어에 가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일, 스페인의 토마토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일등은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 아니면, 최고 부유층이나 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나이 드신 분들은 삶을 즐군악대축제, 영화축제, 민속축제, 어린이 축제, 책축제, 과학축제 등 20여종에 가까운 축제를 1년 연중 개최하는데 특히 8개의 축제가 몰려있는 8월에는 축제왕국으로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스코틀랜드 관광위원회의 1992년 통계에 의하면 9개의 주요축제가 매년 £7200만의 순이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특히 군악대축제(Military Tattoo)는 에든버러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지인 에든버러성에서 아름다운 야경을 배경으로 군악대, 전통무용단 등이 화려한 이벤트를 펼치면서 수많은 외국방문객과 영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국내관광객을 유치하면서 지역경제활성화에 가장 높은 기여를 하고 있다.기원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의 기원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은 1947년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의 상처와 그림자가 유럽 전역을 무겁게 덥고 있던 시기에 시작되었다. 글린데본 오페라단의 행정관이던 루돌프 빙(Rudolf Bing)을 포함하는 몇몇 뜻 있는 사람들에게 재기의 바람을 불어넣어 전쟁의 상처를 치료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축제였고 이는 유럽 대륙에서도 호응을 받아 몇몇 도시에서 참가를 알려오기 시작하며 발전했다.{축제에 관한 정보 에딘버러 국제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에 참가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유명 음악인, 연극인, 오페라 배우 및 다른 여러 장르의 예술인과 여행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인구 50만 명의 도시로 스코틀랜드의 수도이자 행정, 문화,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에딘버러는 7세기 노섬브리아 왕국의 ‘에드윈 왕(Edwin’s King)’이 브리튼인들을 물리치고 바위 위에 ‘에드윈의 성’이라는 요새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에딘’과 ‘성곽’을 뜻하는 ‘버러’가 합쳐져 ‘에딘버러’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에딘버러 축제는 스코틀랜드인들만의 축제가 아닌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술에 대한 정열을 불태우는 곳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영국의 최고 코미디언 ‘미스터 빈Street5. Gateway Theatre, Elm Row, Leith Walk6. Edinburgh International Conference Centre, Morrison StreetConcert Halls7. Usher Hall, Lothian Road8. The Queen's Hall, Clerk Street9. The Reis Concert Hall, Bristo SquareOthere Venues10. Greyfriars Kirk, Greyfriars Place11. The Ross Theatre, Princes Street Gardens12. Playfair Library, Old College, South BridgeBooking and Administrative Offices13. Festival Box Office, 21 Market Street14. Information Centre, East Princes Street Gardens15. Tattoo Office, 32 Market Street16. Festival Fringe Office, 180 High Street17. Jazz Festival Office, 116 Canongate18. Film Festival Office, 88 Lothian Road19. Book Festival, Charlotte Square Gardens20. Tourist InformationEdinburgh Military TattooEdinburgh Festival의 백미라 할 수 있는 Edinburgh Military Tattoo는 도시의 상징인 에든버러 성 앞에 설치된 무대에서 펼쳐지는데 올해 52번째를 맞이하였다. 스코틀랜드의 전통악기인 백파이프와 드럼을 둘러 맨 군악대들의 퍼레이드에 뒤이어 세계 각 국에서 모여든 밴드와 댄서들의 흥겨운 공연들이 펼쳐진다. 1950년부터 시작된 이래 매년 20만 명 이상의 관객들이 함께 하는 가장 인기 있는 행사이다. 행사장에 입장, 퇴장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년 총49개국, 666개 단체에서 1462개의 작품들을 공연하였다. 일정한 스케줄이 짜여져 있기보다는 아마추어와 프로를 막론하고 참여한 단체들이 언제든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그들이 원하는 공연들을 펼쳐 보이기 때문에 젊음과 생동감, 자유로움을 한층 더 가깝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유명인이 된 수많은 무명 예술가들이 이 곳을 통해 발굴되기도 하였다.관람객 FIT, 단체관광객에 상관없이 축제를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이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축제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 기간에 에든버러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에든버러 전역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역적으로는 단연 유럽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고 있고, 미주지역에서도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이동수단 및 숙박소요비용 에든버러를 찾는 일반적인 외국인 관광객들은 런던에서 오게되는데 런던에서 에든버러까지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코치, 기차, 비행기가 있다. 코치 가격은 야간왕복을 기준으로 £30-£35이고, 대략 9시간정도 소요된다. 기차는 가격차이가 매우 큰 편이다. 런던 기차역에서 바로 티켓을 살 경우에 편도가 £90정도 하지만 할인티켓을 사게되면 왕복을 £36에 살 수 있다. 하지만 할인티켓을 사려면 미리 예약해야 하기 때문에 여행자들이 구하긴 어렵다. 기차는 코치에 비해서 적은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비행기는 항공사에 따라서, 타는 시간에 따라서 가격이 매우 다르다. 영국의 국영항공사인 British Airways를 이용할 경우 가장 싼 티켓은 £80정도에 살 수 있지만 비싼 것은 £130 정도 한다. 영국국적의 유럽의 대표적인 저가항공사인 EasyJet을 이용할 경우 가격이 편도로 매겨지는데 합해서 £40미만으로도 티켓을 살 수 있다.에딘버러에서의 숙박은 영국의 대표적인 숙박형태인 B&B, 유스호스텔, 호텔로 나눌 수 있다. B&B는 £25 정도하고, 한끼에서 두끼의 식사가 포함된다. 유스호스텔은 £30 정도하고 셀프 바가 있어서 저렴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 호텔은 등cussion Orchestra가 영국의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선보였으며 아직까지도 영국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Soca Soca는 흑인들의 대표적인 음악장르라 할 수 있는 Soul과 Calypso를 합해 놓은 장르로 매우 강한 비트를 들려준다. Soul의 so와 Calypso의 ca의 합성어이다.Calypso 칼립소는 일반적으로 음악적인 용어로 많이 사용했다. 칼립소의 뜻은 원주민들이 부르는 재즈 풍의 음악이나 그 춤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칼립소는 어떠한 제약도 없으며, 규정도 없을 정도로 자유로운 음악 장르이기도 하다.Static Sound Systems Static Sound Systems은 지난 20년 동안 The Notting Hill Carnival의 한 부분이었다. 자메이카 젊은이들의 중심으로 시작된 레게가 중심이며 2000년 카니발부터 제 5번째 구성요소로 자리 잡았다.특징 이 카니발의 가장 핵심적 요소는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악기와 레게 음악과 춤 그리고 가장 행렬이다. 원래 식민 정부가 악기 사용을 못 하게 하자 원주민들은 오일 드럼통과 뚜껑을 오려서 각각 특유의 음색과 음정을 내도록 악기를 만든 것인데 이는 트리니다드 특유의 발명품이다.그들에게 이 드럼통 악기는 현대에서 인류가 발명한 유일한 악기라는 자부심을 주는 동시에 그 녹슨 폐품의 조악한 모양은 가난과 소회의 상징이 된다. 하찮은 드럼통을 두드려서 사람을 노래하고 춤추고 흥분하게 한다는 것은 곧 가난하고 핍박받고 소외된 그들의 힘이 식민 모국인 영국과 서구 문명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메시지이다.사 이 트 : http://www.carnaval.com/cityguides/london/lon_carn.htmhttp://www.nottinghillcarnival.org.uk/3. May Festival개최 장소 글래스고기간 5월재즈와 민속 축제로 유명하다. 컬로든 전투에서 패한 스튜어드 왕가와 승리한 찰스 왕가의 250주년을 맞게 되어 다시 그 일을 재현하는 행사이다. 고지대 게임
    인문/어학| 2004.05.23| 13페이지| 2,000원| 조회(1,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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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동북공정-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평가A좋아요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서론본론1. 동북공정의 의미와 의도?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는 이유2. 동북공정을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 중국의 시각? 한국의 시각? 중국측의 주장과 국내 학계의 반발3. 왜곡에 대한 시각과 그 대응? 대응의 경과? 한국학계? 일본학계? 시민단체? 정부, 정치? 역사 왜곡을 보는 시각? 중국의 역사 왜곡의 향후 대책 10가지결론서론‘고구려족은 중국동부지방의 소수민족이며, 고구려사는 중국사의 일부이다’ 이 것은 2003년 6월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광명일보 역사면 전체에 걸쳐 실린 글이다. 중국 정부과학원 산화 ‘중국변강사지 연구중심’에서는 고구려뿐 아니라 고조선, 부여, 발해는 물론 현재의 한국까지 연구하는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추진하고 있다. 이번 고구려사를 중국역사의 일부로 하기 위한 역사왜곡은 이처럼 중국의 정부기관이 나서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역사왜곡 교과서 사건보다 더욱 심각하다. 중국은 내놓은 고구려사 연구물. 정부의 지원을 받은 중국 학계는 엄청난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다. 더구나 고구려사 뿐만 아니라 발해사와 고조선사까지 왜곡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2,000년 밖에 되지 않으며, 공간적으로 한강 이남으로 국한되게 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그야말로 반 만년 한반도 역사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역사 바꾸기 산업은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억지 역사 바꾸기라는 분노를 자아내며, 많은 반발을 사고 있다. 어찌보면 이러한 반응은 우리나라의 국민으로써 당연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말도 안되는 논리라며 중국측 동북공정에 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이런 반응은 동북공정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해결책으로 작용할 수 없다. 역사란 그 나라 국민만이 어떠한 사실에 대해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료를 기반으로 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를 중국과 한국 양쪽에, 발해사는 아예 중국사에 넣어버린 것이다.최근 중국 공산당의 당보 이자 당의 논리를 정확히 대변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광명일보(光明日報)에고구려는 중국 동북지역에 있던 변방민족의 왕조였다는 내용의 글이 실렸다.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내용 보도 이후 크게 술렁이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학계와 언론계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다. 베이징(北京)에 있는 한국 언론의 특파원들은 이를 보지 못했거나, 보았더라도 별것 아니라고 무시한 것 같다. 아니면 중국 정부를 의식해 못 본 척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중국의 동북공정 도입 시기 사회상중국에서는 개혁·개방 이후 자본주의 가치관(자유주의·민주주의·물질만능주의 등)의 유입과 소련 및 동구 유럽의 몰락으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사회주의 현대화’를 국가의 당면과제로 내세우고, 세부 실천과제로 ‘사회주의 물질문명 건설’과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후자의 주요한 내용은 애국주의와 집체주의(集體主義)이다.애국주의는 중국 내 각 민족의 단결과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한 중화민족주의다. 이는 위기에 직면한 사회주의 이념의 대안적 이데올로기로서 일부 소수민족(특히 티베트족과 신강 위구르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차단하고 이완된 체제를 유지·강화하기 위한 중국의 ‘국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체제의 유지·강화 차원에서 애국주의 교육을 확산·심화하고 있다. 게다가 애국주의로대표되는 중국의 국가주의는 최근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한층 높아진 세계적 위상과 맞물려 위력을 더해간다한편 국내에서는 만주 고구려 유적들에 대한 답사활동이 좌절되었다거나, 고구려 문화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북한의 노력이 중국의 방해로 실패했다는 소식들이 보도되었다.높아지는 중국 애국주의 분위기더욱이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기 위해 이른바 ‘동북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동북변경의 역사와논리를 개발함은 물론 조선족에 대한 좀더 전향적인 정책의 수립이 요구된다. ‘조선족’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도외시한 채 학문적 차원에서의 대응논리만을 주장할 경우 그것은 ‘허무한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이다. 학문과 현실, 순수와 응용은 각각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때로는 양자가 변증법적으로 작용할 경우에만 빛을 발하기도 있다. 어쩌면 지금이 그때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만주전략’에 대한 우리의 해법은 학계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자료 수집과 대응논리 개발, 조선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전환, 이를 주도하는 정부의 전향적이고 현명한 정책 사이의 유기작용 속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해법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대의적인 틀 속에서 찾아야 시대적 당위성을 획득할 수 있다. 감정적인 대응이나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파국을 초래하여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있다. 냉철한 이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2. 동북공정을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최근 일부 역사학자들이 압록강 이북(만주)에 있는 고구려와 발해유적지를 답사하려다 중국 정부에 의해 현장 접근을 저지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정부는 수년 전부터 이 같은 접근 제한조치를 시행하고 유적을 정리하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게 하려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조치에는"압록강 이북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한국(북한 포함)과 중국 역사학계의 시각차가 내포돼 있다. 동시에 중국의 민족문제와 중국 정부의 민족정책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중국의 시각◆압록강 이북의 고구려 유적지에 대한 접근 제한을 통해 중국 정부가 한국에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민족분열주의자들의 활동을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것이다.중국 공산당은 기본적으로"중국 내 각 민족이 단결해야 사회주의가 승리할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중국 내 각 민족의 평등과 단결을 중시해 왔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계층?지역간 빈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일부 소수민족 지구에서 분리독립 움직임이 일어의하면 평양 천도(서기 427) 이후의 고구려사는 한국사가 돼야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양도 과거에는 고대 중국의 영역 안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사로 포함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이댔다. 이는 결국 현재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근거를 스스로 폐기한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현재 중국 영토에서 활동했던 모든 민족이 중국 민족?이라는 중국측의 논리는 근대 이후 형성된 ?국경? 개념을 전근대 시기까지 소급해 현재의 영토 내의 모든 민족의 귀속권을 일방적으로 강탈한 영토지상주의 역사관이며, 역사적 사실이나 논리적 정합성에 근거한 역사관이라기보다는 고대민족의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배타적 통할권을 매개로 국가적 힘의 논리를 앞세운 문화패권주의이다중국 역대 왕조에 ?신하?로 자처?중국측 주장 - ?고구려는 줄곧 중국 역대 왕조와 신속(臣屬)관계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그 관계를 끊고 중국 밖에 존재했던 적이 없었다. 이것은 고구려 왕이 중원 정권을 대신해 고구려 지역의 백성을 다스린 것이며, 오랜 기간 고구려는 중국과의 신속관계를 통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반박 - 책봉?조공은 당시 동아시아의 외교형식일 뿐고구려와 부여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대회?를 열었다는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의 기록은 이들이 제후국이 아닌 독자적인 정치체제였음을 시사한다.)고구려 왕이 ?책봉?을 받았다는 것을 중원 정권을 대신해 통치권을 행사한 것으로 보아선 곤란하다. 남북조시대에 중국 세력이 분열돼 주변 국가에 대한 규제력이 약화된 상황에선 책봉?조공은 실질적으로 종속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여러 왕조가 주변국과 갖는 외교관계의 한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고구려와 중국 왕조들은 정치적 정세에 의해 여러 차례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된 ?고구려가 점차 교만하고 방자해져서 더 이상 현도군 치소(治所)에 오지 않았다?는 내용은 고구려가 전한의 예속관계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남제서(南齊書)? 가 올 7월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보류되자 분위기는 반전됐다. 또 중국의 사료 왜곡 정도가 지나쳐 한국의 역사적 존립 근거마저 흔들고 있다는 위기의식도 한국 역사학계를 결집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대책위 참가 학회는 한국고대사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중세사학회 한국미술사학회 등 17개 학회로 국내 한국사 관련 학회가 거의 망라돼 있다. 대책위는 공동 성명에서 ?중국은 고구려의 활동무대였던 한반도 북부까지 중국 고유 영토였다고 강변하고 고조선사와 발해사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논리를 따른다면 한국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2000년에 불과하고 공간적으로 한반도 중부 이남으로 국한된다?며 중국의 역사 왜곡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대책위는 먼저 내년 6월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릴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WHC) 제28차 총회 때 북한의 고구려 유적이 재심사에서 통과되도록 세계 여론을 주도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년 3월 북한, 미국, 일본, 프랑스, 중국학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고구려 고분벽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와는 별도로 내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 중국의 한국 고대사 인식과 문제점, 고조선의 정체성 등에 대한 학술대회를 개최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학술적 대응 논리를 축적해나갈 계획이다. 국제 활동에도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세계 각 국의 사람들이 고구려사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책을 영어로 번역 출간하고 세계 각 국 역사 교과서에 고구려사가 바르게 서술됐는지 점검해 나가기로 했다. 이 밖에 국사편찬위원회와 함께 고구려 관련 논저와 잡지 및 보고서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개소될 예정인 ?고대 동북아 연구소?와 협조해 고대사 연구 기반 조성에 참여할 계획이다.일본학계원로 역사학자 3명이 중국의 고구려사자국사 편입 움직임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비토 마사히데(尾藤 正英).도리우미 야스시(鳥海 靖) 도쿄대 명예교수 등을 비롯한 일본의 원로학자 3명은 최근 한국정신적했다.
    사회과학| 2004.05.17| 29페이지| 2,000원| 조회(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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