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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테드휴즈의 시작법
    테드 휴즈의 시작법 테드 휴즈 Ted Hughes (1930~1998)20세기 영미 문학 최고의 시인.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그는 1956년에 실비아 플라스를 만나 4개월 만에 결혼했다. 결혼 이듬해 처녀 시집『빗속의 매(The Hawk in the Rain)』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결국 그와 아씨아 위빌의 외도로 결혼 생활은 파국을 맞고 플라스는 자살했으며, 테드 휴즈는 살인마로 불리면서도 시와 단편소설, 희곡, 동화를 쓰는 등 왕성하게 활동해 1984년 영국 계관시인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풍요제(Lupercal)』『까마귀(Crow)』『계절의 노래(Season Songs)』와『시작법(Poetry in the Making)』등이 있다.*급습이나 확신, 잠복, 끈질긴 추적, 굴복 등의 과정은 우리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사유(思惟)의 종류이다.*머릿속에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상상력으로 움켜쥐고는 그것의 모든 조각조각을 조사할 때까지 놓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마음을 산란시키는 모든 조그마한 잡음의 자극들은 녹아 없어져야 한다.*경계심도 없이 가벼이 도취된 속에서 오케스트라 속의 더블베이스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수면 아래 어둠 속에 있는 물고기를 인식하게 된다.*찌로 하는 낚시는 작은 점에 집중하는 정신 훈련의 일종이며, 그와 동시에 여러분의 상상력으로 하여금 그 정지된 점과 관련지어 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수집하도록 작용케 하는 것이다.*하나의 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다음에 다른 한 가지의 것을 끌어내어 그 각각에 차례로 집중하는 것이다.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즈는 어려서부터 낚시광이었다. 그는 찌를 응시하면서 상상력을 넓혀나갔다. 그 상상력은 또 다른 것을 낳게 되고 생각의 폭은 깊어간다. 하지만 이러한 사유의 시선을 아주 신속하고 간결하게 그려내야 한다.또한 테드 휴즈는 사냥광이다. 그러나 자기가 쏘아죽인 생물에 대한 자책으로 사냥을 하지 않게 되면서, 마음 안의 사냥을 연습하게 되었다. 살아 있는 것을 붙잡는 훈련을 하라. 는 것이 그의 시작법이다. 이 말은 무언가를 응시하고 사유하면서도 그것에 자신만의 생각을 앉히는 것이 신속하고 신선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렇듯 집중하는 것은 항상 생동적이어야 하며 겸허해야 한다.* 비교시{돼지의 관찰(View of a Pig) -성북동 비둘기시의해석돼지고기에는 뒤뚱거리는 힘찬 달리기와 뜨거운 체온과 콘센트처럼 생긴 재미있게 생긴 콧구멍, 슬픈 눈동자, 못생겼지만 힘찬 울음 따위가 들어 있다. 우리는 고기가 아니라 한 생명을 먹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정육점에서, 슈퍼마켓에서, 식당에서, 붉은 조명이나 빵처럼 보이는 포장, 양념 등에 의해 제거된다. 상품이란 생명을 고기로 바꾼 것을 말한다.우리는 1960년대에 접어들어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급속히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외면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그 결과 도시 변두리의 자연들은 여지없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는 사회가 이익만 중요시하는 것으로 변하고 물질만능주의 가 팽배해지면서 전통적인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시대 상황으로 볼 때, 비둘기는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소외된 순박한 서민으로 볼 수 있는 것인 것이다. 이런 자연적인 존재에 대해 당대 상황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인문/어학| 2005.11.17| 2페이지| 1,000원| 조회(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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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 민족, 민중문학론
    1980년대 민족, 민중문학론7,80년대의 한국문학은 뜨거운 활화산과도 같았다. 오늘, 우리들이 미처 다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7,80년대 우리문학은 질적으로, 또 양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낳았다. 시인 소설가들은 그만큼 높은 문학성을 보였다. 그렇듯 7,80년대의 한국문학은 우리에게 '문학'의 위력을 결정적으로 증명하였으며, 이를 '한국문학의 르네상스 시기'로 불러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발표를 들으면서 안정되지 못하고 여러 모순점에 휘둘리던 우리 문학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지만 그런 배경이 있어서 더 활발하게 문학사가 전개되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80년대에는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강했던 시대라고 하셨다. 5월 항쟁문학, 분단 극복 문학, 농촌문학, 노동문학 등 현장은 각기 분파되어 독자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각 부문의 현장은 다르지만 서로 어우러져 때로는 일체감 있게 이 땅의 민주화 통일화를 부단히 외쳤던 것이다.또 이러한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은 함께 모여 집단 창작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러할 경우 그 작품에 대한 응집력과 추진력이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우리가 학회에서 연극공연을 하기 위해 대본을 함께 쓸 때에도 그러했다.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여러 명이 모였을 때 많은 생각과 의견을 나눌 수 있지만 자칫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경험이었다. 예전에 집단 창작을 했던 분들은 어떻게 중심을 잡고 창작물을 만들어 갔을지 궁금하기도 하다.교수님께서 문학인들은 사회가 태평성대라고 행복해 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문학이 평화롭고 안정된 모습만을 그리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우리가 느끼는 불순의 것들을 작품 속에 이입 시킬 줄도 알아야 하며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어딘가에 아픔과 슬픔이 있는데 그것을 포착하는 것이 진정한 작가의 힘이라고 하셨다. 이 말을 듣는데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 가슴에 무언가가 남아 있어야 글 속에도 깊이가 있을 것이고 뼈대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문학이 나날이 발전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인문/어학| 2005.03.28| 1페이지| 1,000원| 조회(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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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대 모더니즘 문학론
    1950년대 모더니즘 문학론대학교에 입학하고 매학기 마다 모더니즘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렵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제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 어느 쪽이라도 결과는 같으니 할말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직 제 머릿속에서 모더니즘이란 개념과 그것을 상세화해서 집어 넣어두지 못했다는 것은 저의 불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이번 문예비평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께서 개념적인 문제에서 먼저 설명을 해주시고 다시 조별 발표를 하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완전히 이해가 된 상태에서 조별 발표를 듣는 것과 긴가민가하면서 발표를 들으면서 완벽하게 소화를 해내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제 스스로 찾아보고 습득하려고 노력해야하지만 텍스트 자체로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참 많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럴 때 논리 정연하고 쉬운 예시를 들어주시는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 완연한 제 지식으로 들어오곤 합니다.모더니즘 문학론에 대한 주제는 실존주의 문학론에 대한 발표 준비를 하고 있던 저로서는 완벽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었습니다. 1950년대 사회·문화, 정치 경제 전반에 걸쳐 불안한 분위기 속에 허무주의와 실존주의적 경향이 나타났으며 사상대립으로 인한 전쟁은 현대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켰으며, 이러한 회의와 반성을 문학에 반영한 것이 1950년대의 모더니즘입니다. 이는 전쟁 전후의 후반기 동인들인 김경린, 박인환, 김규동, 조향등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으며, 전쟁에서 비롯된 공포와 허무, 전망없는 사회에 대한 현실의식을 모더니즘의 방법과 정신을 통해 표현하였습니다.발표자들의 생각해 볼 문제에서 과연 문학적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근대가 존재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 주었습니다. 근대화는 전통적 사회가 근대적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근대화는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구조적인 변화란 그 체제 내에서 점진적인 진화의 과정으로 일어나는 것이나 그 체제를 부정하는 혁명적인 변화로 일어나는 것을 다같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조적 변화라는 성격을 가진 근대화는 전통적 사회 내부에서 스스로 발전을 지향하는 내재적 자각과 근대적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외재적 자극이 일치함으로써 추진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문학사에 투영해 봤을 때 우리나라 문학사의 근대는 형식과 정신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문/어학| 2005.03.28| 2페이지| 1,000원| 조회(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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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여성상 평가C아쉬워요
    - 전통시대 어머니에 있어 아들의 의미와 현대 사회 여성에 있어 아들의 의미에 관해 비교하여 논하시오.전통시대와 현재에 있어 아들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면 그 전에 현재와 과거의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먼저 생각해 보게 된다. 전통시대에서 여성의 의미는 그저 집안에 대를 이어주는 역할에 그쳤다. 따라서 남자아이를 낳지 못하면 온갖 구박을 받았으며 사내아이를 낳기 위해 급기야 다른 여성을 들이는 등 온갖 수치심을 당하고 자존심을 버려야 했다.그리고 자식들과 남편, 시부모의 수발에 한평생을 보내며 그렇게 귀하게 얻은 자식이 행여나 잘 못 될까 항상 노심초사하며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 산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희생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이러한 희생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중 가장 큰 이유는 그 당시 여성의 직업이 주부라는 것 이외의 어떤 전문직이나 사회에서 사용되는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 없어지게 되고 이에 따라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커지게 될 수 밖에 없는 계기가 된 것이다.이에 반해 현대 어머니를 보게 되면 물론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을 하는 것은 과거와 비슷하지만 반면에 자기 자신의 삶 자체도 소중히 여기게 된다는 점에서 전통사회와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따라서 현대 여성에게 있어 아들은 자신의 동반자이자 가족의 일부분이다. 예전처럼 집에서 밥을 해놓고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과는 달리 현대의 어머니들은 자기의 취미를 살리는가 하면 특기를 살려 여러 가지 경제활동도 하고 있다. 그런 경제활동을 하면서 자기개발을 하고 좀 더 나은 삶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현대여성에 있어 아들의 의미를 생각해보기 위해 예를 하나들자면 요즘 유행하는 황혼이혼을 생각해 볼 때 자식이 결혼하여 가정을 꾸미고 또 하나의 독립체를 만든 후에 나이 50이 넘어서 이혼하는 경우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으며 자기의 도리를 다한 후에는 자신만을 위해 새로운 결정을 한다는 것에 있어서 과거와 현저히 다르다. (물론 이 경우는 아들로 국한된게 아니라 자식인 포괄중심으로 전개되는 배경을 생각해보자.신화란 설화의 한가지로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당시 지배계층의 정통성을 설명하고 국가관을 공표할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먼저 단군신화의 내용을 비추어보면 곰과 호랑이가 어두운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고 100일 동안 정성을 드렸는데 호랑이는 참지 못했으나 곰은 끝까지 참아내어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하느님의 아들과 인간여성으로 화한 곰이 결혼하여 우리의 시조인 단군을 낳게 되었는데 여기서 단군이 우리나라를 최초로 열게 되고 이 최초의 지도자로 인해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어 지도자의 성이 남성이었으므로 그때부터 남성중심으로 역사가 세워지게 되었던 것이다.고구려 건국신화는 하늘의 상징인 남신과 땅의 상징인 여신이 결합하여 영웅이 태어난다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신화는 영웅이 시련을 극복하고 승리자가 된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역시 승리자가 남성이므로 남성중심으로 다뤄질 수 밖에 없는 맥락이다.신라의 건국신화인 혁거세 신화도 하늘과 땅의 결합에 의해 국가의 시조가 탄생하고 고구려 신화와의 차이점은 시련과 고통 없이 신화가 창조된다는 점이고 이점을 제외한다면 이 역시 남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모두 배경은 남성중심인 것을 알 수 있다.따라서 이러한 현상들을 종합해 볼 때 남성중심의 사회가 만들어낸 건국신화가 남성중심으로 쓰여진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신화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나라를 세우는 지도자를 창조하는 일에 그쳤다고 볼 수 있다. 남성들이 그 당시에 사회적으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여성은 대를 이어가는 역할 위주로 되었기 때문에 남성위주로 표현이 된다고 생각된다.-한국의 기녀 중 한명을 골라서 그 여성의 삶을 정리한 다음, 당시의 역할을 중심으로 평가해보자.기녀는 삼국시대의 유녀에서 비롯된 것으로 일찍부터 우리 역사에 나타난다.조선시대 기녀는 관청의 행사와 관리의 노고를 위해 생겨나게 되었다. 기시로 표현하였다.또한 황진이는 지배층의 오락을 위해 돈에 쉽게 넘어가는 값싼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비록 기생의 몸이지만 김경원, 화담선생, 소세양, 이사종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기도 하였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이라는 시조에서 보면 사랑하는 이에 대한 갈망을 잘 표한하고 있는데 이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간접적 표현이었으며 자신의 당당할 수 없는 신분으로 인해 아픔이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시조에서 간절함이 더욱 절실히 표현되는 것이다.죽음을 앞둔 황진이는 지나온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후회도 원망도 없는 고요한 체념관이 가슴에 가득한 채 ‘내가 죽거든 울지도 말고 고악으로서 상여를 전송해 달라’고 한 말은 일세의 명기다운 얘기이나 ‘생전에 업보로 관도 쓰지 말고 동문밖에 자기의 시체를 버려 뭇 버러지의 밥이 되게 하여 천하 여자들의 경계를 삼으라’고 한 것을 보면 너무도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던 한 여인의 가혹한 자학의 채찍이기도 했다.황진이는 재질이 너무 뛰어나 한 인간으로서는 불행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유분방한 여인이어서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여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여성이고 천민으로 태어나 비록 뛰어난 재질을 그렇게 밖에 활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된다황진이는 이름을 날리는 시인이며 풍류를 즐길 줄 알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당당한 여성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신여성들이 개인적으로 불행했던 이유를 생각해보자.신여성이란 신식교육을 받은 여성으로 1920년을 전후하여 도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활발한 사회활동을 전개한 여성들을 말한다. 이들은 교육을 통해 전통적인 이성관의 한계와 여성의 사회진출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었다.‘신여성(新女性)’의 등장은 한국 근대 여성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나 신여성의 정체성과 범주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1920년대에 처음으로 '신여성'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고 하는데 신여성의 대표적 인물인 김원주는 “신여성이 되려면 나부터 알아야 하고, 조선을 알아야를 하고도 여성권익 신장 운동, 베트남전 반대 운동 등에서 지도자로 활약했다는 사실이다.또한 신여성은 봉건적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러나 반봉건적인 그들의 사상을 개인적으로만 펼쳤을 뿐 조직적 기반 위에 서지 못했다.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지지할 만큼 교육받은 여성들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며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할 만큼 사회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진보화된 의식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괴로워하다가 신여성들은 죄절과 함께 불행한 삶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요악하면 준비되지 않은 사회에서 깨어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그녀들이기에 어느것에 부합되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지속됨으로써 좌절을 겪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고통은 사회적 모순의 극복에 초석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신여성들은 현재 우리 여성이 이만한 사회적 위치가 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준 이들이며 이들의 노고와 수고가 없었다면 지금의 상황은 아마 달라지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정절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었던 여성들의 삶을 돌아보면서 현대 여성들을 옥죄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져보자.먼저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알아보자면 단어 뜻 그대로는 관념형태, 의식형태를 의미한다.사상이나 관념형태의 내용을 순수하게 내면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이데아적 견해라 하고 이에 대해 관념형태를 본인의 사회적 기반과 관련시켜 이해를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이데올로기적 견해라 한다.조선시대 정절 이데올로기를 보면 우선 혼인제도에 있어서 가부장적인 질서에 적응해야함은 물론 삼종지도와 칠거지악의 무서운 족쇠가 여성의 사람을 억압하였다. 그 시대에는 남편은 여러 첩을 거느리더라도 여자는 오로지 남편만을 바라보아야 하고 남편이 남편구실을 못하더라도 참고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시 되던 시대였다. 그 시대에는 남자를 하늘처럼 모시고 자기의 존재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서 남성이나 사회에게서 그것을 보상받고 싶어하는 심리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나 울며 감정에 호소하는 행동을 보이며 남녀평등을 외칠 수는 없는 일이다.진정한 평등을 외치는 것은 그만큼 여성에게 진정한 권리이고 이 권리는 언제나 책임과 함께 해야 하므로 부담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남성의 여성보다는 책임감이 조금은 더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이러한 것은 사회적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있다고 본다.단순히 힘만으로 남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나 권력을 피하지 않고 적극 쟁취하려는 자에게 권리나 권력이 주어지는 것이다.이제 여성들은 자기가 남성들보다 부족하다는 인식을 버리고 여성들이 이 세상을 남성과 평등히 주도해 나갈 수 있는 것을 행동으로 보이고 난 뒤 남녀평등을 외쳐야 한다고 본다.나또한 여성이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여성의식의 변화가 예전보다는 많이 변했지만 앞으로도 많은 변화를 통해서 또 한번의 정신적인 개혁이 필요하고 이러한 개개인의 변화를 통해 사회의 이념이나 통념이 변하게 되고 여성의 위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현대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의 취업형태가 변화하고 있습니다.여성의 고용형태가 어떠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으며(주변의 예) 그러한 변화 양상이 노동시 장에서의 여성의 지위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할 것인지 예측해 보세요.현대 여성들의 노동시장의 변화를 살펴보면 여성의 지위가 얼만큼 상승되었는지 쉽게 알 수있다. 과거부터 70~80년대만 하더라도 여성들의 직업에는 많은 제약들이 있었다.남성 우월주의적인 사회에서 아무 반항 없이 순종적인 태도가 사회생활에서도 쭉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교육에 대한 증가로 인해 여성들도 각각 새로운 하나의 개체가 되어 자기의 꿈과 자가발전을 위해 한발한발 내딛고 이에 따라 사회에 엄청난 변화가 조금씩 조금씩 찾아오게 된 것이다.과거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보다 같은 직장 남성 상사나 동료의 커피를 타주는 것이 주요업무가 되어버린 경우도 허다했으며 똑같이다.
    인문/어학| 2005.03.28| 10페이지| 1,000원| 조회(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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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창작론] 엘리어트의 전통과 개인의 재능
    전통과 개인의 재능.T.S 엘리어트1888년 미국의 미주리주(州) 세인트루이스 출생. 스미스 아카데미를 거쳐 1906년 하버드대학교에 들어가 철학을 전공하는 한편 {을 공부하고 그 상징시(象徵詩)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그 영향은 후에 그의 시작품에 나타나게 된다. 1915년에 처음으로 지상(誌上)에 시를 발표하였다. 그 후에도 계속 영국에 머물며 은행원으로 근무하는 한편 시작(詩作)에 몰두, 1917년에 처녀시집 《프루프록 및 그 밖의 관찰 Prufrock and Other Observation》을 냈고, 이어 1920년에는 처녀평론집 《성스러운 숲 The Sacred Wood》을 내놓아 새로운 문예평론의 입장을 보였다.그의 명성을 높여 준 것은 1922년에 그가 편집 창간한 문화평론지 《크라이티어리언 Criterion》에 발표한 《황무지(荒蕪地) The Waste Land》(Dial상 수상)이다. 1927년 영국에 귀화하는 동시에 영국 국교(國敎)로 개종(改宗), 1928년에 강행된 평론집 《랜슬롯 앤드루스를 위하여 For Lancelot Andrewes》의 서문에서, '문학적으로는 {자, 정치적으로는 왕정 지지자, 종교적으로는 영국 국교도'임을 선언하였다. 1932년 미국에 돌아가 {시학 교수 칭호를 받았으며, 그후에는 주로 런던에 거주하면서, 참신한 문예서적을 많이 간행하는 출판사의 중역이 되어 영국문단의 중진(重鎭)으로 활동하였고, 194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그의 저서-《황무지》,《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4개의 4중주(四重奏) Four Quartets》,《바위 The Rock》, 《성당의 살인 Murder in the Catheadral》, 《가족의 재회 The Family Reunion》, 《칵테일파티 The Cocktail Party》,《시의 효용(效用)과 비평의 효용 The Use of Poetry and the Use of Criticism》, 《이신(異神)을 찾아서 After Strange Gods》, 《고금 평론집 Essays Ancient and Modern》, 《문화의 정의에 대한 노트 Notes towards the Definition of Culture》.엘리어트의 전통과 개인의 재능엘리어트는 자신의 일반적인 이론을 갖고 있지 않으며 시를 정의하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밝힌다. 그는 또한 "당황스러울 정도로 성공을 거둔 몇몇 악명 높은 구절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최상의 문학비평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시인들과 시극작가들에 대한 에세이이고 자신의 사적인 시 창작의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비평론은 그 자신의 시작의 원칙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창작과정을 옹호한 것이고, 그의 초기 비평은 자신의 시에 대한 옹호적 성격이 강하다. 그 자신의 작품을 옹호하기 위하여 제기한 비평은 체계적인 이론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언급한 개념들의 설명이기 때문에 그 개념의 성격과 특징은 간단하게 정의하기 힘들다.엘리어트 자신이 "악명높은 구절들"이라고 한 것이 전통론, 역사의식, 몰개성시론, 감수성 통합 이론, 객관적 상관물 등을 지칭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의 여러 비평 이론들은 비록 자신의 시작(詩作)의 원칙을 밝힌 것이지만, 그의 시뿐만 아니라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사용되었고 또 연구되기도 하였다. 그의 비평이론은 작가와 작품을 분리하여 작품을 독립된 유기체로 보고 접근하는 "신비평"(The New Criticism)의 중심 사상이 되어 현대 비평의 핵심적 역할을 했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 비평에서도 그의 여러 개념들이 사용되고 있다.초기의 비평이론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개념"중의 하나가 "전통"이다.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전통에 관하여 처음 이야기한 이후, 그는 전통의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과정에서 엘리어트가 전통에 관하여 외견상 이전의 입장과는 다른 듯이 보이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다양하게 표출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가 동서양의 다양한 종교, 철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음이 널리 알려진 상태에서 영국성공회로 개종하였기 때문에 그의 개종이 문학적 태도의 변화를 수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그의 비평적 관점이 변화한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엘리어트는 사실, 진리, 실재, 자아 등 일체의 현상은 그 자체가 불변의 형이상학적 본질, 자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관계성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 관계성의 관점에서 파악되는 사물들은 순간적이고 상대적인 사실성, 진리성, 실재성만을 가질 뿐이다. 엘리어트의 이 같은 인식은, 일체는 인연, 관계성에 의해 발생한다는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관계적이고 상의상존적인 불교의 연기설과 매우 유사하다. 관계성의 불교적 인식을 풀이한 연기설은 현상의 일체 사물의 존재를 그 자체로서 독립 자존하는 존재성을 갖지 못하고, 다른 것들과의 관계적 얽힘에 의해서만 그 상대적인 의미를 일시적으로 갖는 것으로 파악한다. 엘리어트의 인식을 불교적으로 풀이하면 일체 현상이 본질적인 자성이 없는 관계적 구축물이며, 그렇기 때문에 현상적인 유기체 전체는 허구이며 모두가 공하다는 깨달음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통시대적, 통시간적 개념은 「전통과 개인의 재능」의 마지막 구절 "시인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의 현재적 순간에 살지 않는다면,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 있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이루어져야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구절에서 반복된다. 과거를 과거로만 인식하고 현재는 현재로만 인식하는 직선적 시간관념으로는 전통의 개념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없다. "죽어 있는 전통"이 아니라 "이미 살아 있는" 전통을 의식하기 위해서는 불교적인 시간관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엘리엇에게 있어서 과거는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며 현재와 관계를 맺고 있다. 과거의 문학작품들이 형성하고 있는 질서인 전통은 새로운 요소가 도입됨에 따라 수정된다. 작품들이 일단 시인에 의하여 창조된 후에는 전통의 일부가 되고 그 것은 하나의 생명체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엘리엇은 그것을 "살아있는 전체"라고 말한다. 「비평의 기능」에서 "유기적 전체"라는 말로 바뀐 이 말은 "동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인문/어학| 2005.03.28| 3페이지| 1,000원| 조회(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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