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과 목학 번성 명지 도 교 수교수님제 출 일년 월 일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대학원으로 학교위계를 나누는 것은 사회의 분업체제에 맞추어 사람들을 재생산할 목적으로 고안된 것 만이라고는 할 수 없다.우리나라가 '초·중·고·대'로 학교위계를 만든 것은 해방 전·후로 선진국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이며 또한 우리의 학제는 그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점과 함께 개선되어야 할 점을 조사하여 간추려 보았다.(1)우리나라의 교육제도우리나라의 학제는 갑오개혁 다음 해에 발표된 고종의 교육조서가 그 기원이라 할 수 있다. 그로부터 1905년 일본과 을사조약이 체결되기까지의 10년 간에 새로운 교육제도에 관한 규칙들이 많이 나타났으나, 일본은 1911년에 식민 통치의 방법으로 만든 소위 조선교육령을 필두로 계속해서 교육령을 개정하여 조선에서의 식민지 교육체제를 추진하였다.조선교육령에 의거한 교육의 제도는 우선 초등교육을 6년제의 보통학교 그리고 국민학교로 개칭하면서 1940년대에는 그 이름이 국민학교로 고정되었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보통학교, 실업학교, 고등여학교 등이 나중에 중학교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었고, 그 위에 고등 교육 기관으로서 전문학교와 대학 예과를 거쳐 대학으로 이어졌다. 이밖에 교원양성기관으로서 사범학교가 있었고 단기과정으로서 사범학교 특과도 있었다.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어, 민주헌법이 공포되면서 1949년 12월 31일에는 교육법이 제정되어 미국의 단선형 학제 중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 6ㆍ3ㆍ3ㆍ4제 학제를 도입, 이를 완성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현행 교육제도는 초등학교(6)년ㆍ중학교(3)ㆍ고등학교(3)ㆍ대학교(4)를 기간학제로 하여 이중에서 초등학교 6년을 의무교육으로 하고 있다.그밖에 교육대학, 사범대학의 교원양성기관과 기술학교, 고등기술학교 및 공민학교의 비정규학교가 있고, 특수학교, 유치원 등을 두도록 하였으며 1981년부터는 유치원 교육을 학제 안에 포함시키기 위한 준비단계로서 초등학교 안에 유치원 부를 개설하여 실험교육을 시작하고, 의무교육 연한의 연장과 내용의 충실을 위한 교육 세의 신설, 중·고등학교의 평준화를 위하여 사학에 대한 재정지원, 입학시험제도의 개정 등을 실시하였다.(2)우리나라 학제의 장점1. 교육기회의 평등화한국이 채택하고 있는 6·3·3·4제의 학제는 복선형의 비민주적인 일제의 학제에서 벗어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신앙, 성별,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등에 의한 차별 없이 그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한 단선형의 학교제도를 채택한 것이다.CF)학교체계는 크게 복선형과 단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복선형은 지도자계층의 학교계통과 서민계층의 학교계통이 분리되어 있는 제도이며, 단선형은 전 국민에게 단일학교제도가 적용되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복선형은 영국·프랑스·독일의 학교제도에서 발달하였으므로 이를 흔히 유럽형이라고 하고, 단선형은 미국이 대표적이므로 미국형이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유럽 각 국의 학교체계는 이중조직인 복선형의 경향이 짙었으나, 금세기로 접어들면서 점차 단선형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2. 효율적으로 지식문화를 전달하는 역할 수행교육의 목적에는『지식·문화의 전수』,『인간 행동의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인간의 자아 실현』과 같이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우리나라의 학제는 이러한 세 가지 목적 중 특히 지식·문화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우리나라는 광복당시 일제의 철저한 문자 말살정책과 우민화 정책으로 말미암아 문맹률이 13세 이상 인구의 78%에 달해 있었다. 또한 전쟁이후 교육시설은 모두 파괴되어 학생은 거리에서 방황하고 학부모는 자녀교육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며 교사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비참한 현실이었다.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학제를 초등교육, 중등교육 그리고 고등교육으로 나누어 각 단계별로 학생들의 연령과 수준에 맞게 가장 효율적으로 '가능하면 많은 양의 지식을, 가능하면 잊지 않도록' 가르치는 형식을 따름으로서 전 국민의 평균 지식 혹은 교양 수준을 단시간에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렸고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3. 경제 성장의 원동력우리나라의 교육은 경제성장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교육과 인력 그리고 경제성장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우리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즉, 선진국의 학교체제(단선형의 6·3·3·4제)를 도입하여 교육의 개념이 대중화되고 보편화되었으며 그 위에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이 더해지고 근대화 추진을 위한 발전교육을 시행함으로서 높은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서 생각해 두어야 할 점은 교육과 경제가 밀접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발전되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이 경제 성장만을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 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교육의 기능 중 하나인 '직업적 훈련'이라는 것은 고정된 특정 직업에 대한 훈련이 아니라 단순히 미래를 위한 기초지식 혹은 기술 그리고 교양의 육성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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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미술은 지금도 진행 중인 여러 경향들에 의한 동시대적 움직임이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미술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어느 미술보다 우리의 관심과 호기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시간과 역사의 흐름에 의한 객관적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난해함 또한 크다.20세기에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과학과 산업의 급속한 발달로 인한 사회 변화가 그 어느 시대보다도 급격했다. 이러한 변모는 미술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데, 20세기 미술은 그 사조와 경향들을 일일이 나열하기에도 벅찬, 다양성의 한 세기였다고도 할 수 있다. 여러 다른 성격의 사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현대 미술에서 보이는 보편적이자 특이한 양상이기도 한데, 이는 20세기 사회가 가지는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현대미술과 작가들은 단 한가지의 방식으로 설명되어지기 어렵게 되었고, 그만큼 여러 종류의 예술 사조가 공존하게 된다. 또한 회화, 조각, 건축으로 나뉘어 설명되던 미술 분야가 이제는 다양한 매체와 기법이 수용되면서, 설치나 행위 등의 새로운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세기말에 와 있는 지금, 20세기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 평가는 조심스럽게 시도되고 있다. '미술은 사회의 거울이다'라는 말은 우리가 지금까지의 미술사를 통해서 증명된 사실이다.이런 상황에서 볼 때, 우리는 동시대의 미술을 조심스럽게 살펴봄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945년 이전 미술20세기가 시작되고 나서 현대미술의 첫 번째 장을 연 사조로 야수파, 입체파, 독일 표현주의를 꼽을 수 있다. 이 세 가지 사조는 1900년을 기점으로 태동된 미술 운동이다.마티스를 중심으로 하는 야수파는 색채의 해방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힘찬 붓터치와 색채의 자율성을 추구하여, 강렬한 원색의 과감한 사용을 통해 외부 세계에 대한 감성을 표현했다. 이것은 추상으로 나가는 본격적인 시도로서, 색체의 추상성을 선도했다. 이에 비해 입체파는 피카소, 브라크를 중심으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순수한 색채를 튜브에서 직접 짜서 그림을 완성하고 싶다. 여태까지 나는 나의 파괴적인 본능을 실감하고, 이를 생생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재창조하는데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야수파 화가들이 귀스타브 모로의 화실에서 공부한데 비해, 모든 전통적인 기법과 소재를 거부하면서 내적 표현의 매체로 색채의 자율적 가치를 강조한다. 그는 "예술은 본능이다." 라고 단언하면서 자신의 내적 충동을 과감하게 분출시켰다.1906년에 그린[빨간 나무가 있는 풍경]과 [서커스]는 이러한 블라맹크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그의 직관적인 정열이 낳은 강렬한 원색의 힘찬 선은 진정 야수파다운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앙드레 드랭(1880-1954)은 블라맹크와 각별한 우정 관계를 맺으며 야수파의 진정한 예술을 완성시킨 야수파의 중요 화가 중 한 사람이다. 블라맹크가 본능적인 직관만을 신봉한데 비해, 드랭은 과거의 영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심사숙고하면서 그것에 대해 항상 회의하려 들었던 이지적 화가이다. 그는 야수파에서 세잔느의 세계 및 입체파 수법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방법을 변화시킨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방법을 꾸준히 연마하는 성실한 화가였다.야수파의 작가들이 그들의 그림이 순간의 정열에 의해 단숨에 완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마티스를 위시해 많은 야수주의자들은 그들이 채워 넣어야 할 캔버스의 빈 공간에 알맞은 색과 선을 찾으려 부단히 애썼고,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일견 엉성해 보이면서도 완벽한 짜임새를 보이는 그들의 그림에서 증명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드랭도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자세로 야수주의적 화면을 완성해 내려고 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의 예술은 격정과 지성의 결합으로 형성되고 있다.1904년에 그린 [르 페크 부근의 세느 강]에서 볼 수 있듯이 소박하면서도 활기에 찬 색의 조화는 그의 예술 세계가 지니고 있는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1905년에 그린 [콜리우르의 풍경]은 마티스와 함께 스케치 여행을에서도 계속해서 재현된다. 집시로 명명된 두 여인은 두터운 입술과 뭉툭한 코, 짙은 갈색의 피부를 가진 흑인들로 묘사되고 있다. 그들의 어두운 피부색은 양옆의 해바라기와 옷, 두건에 의해 더욱 강조되고 있으며, 뒷 배경에 위치한 집들의 형태 또한 아프리카 원주민 양식을 연상케 하는 토담집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리파 작가들은 이상화되지 않고 솔직히 드러나는 자연속의 무리 지은 누드를 애호하는 주제로 사용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그 당시 중산층 부르조아 계급의 위선적인 도덕관을 거부하며, 거기서부터 벗어나 진실한 인간 본연의 해방을 추구하는 방식이자 표현으로 삼은 것이다.에밀 놀데(1867-1956)는 독일 표현주의의 중요한 작가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그는 젊은 시절 목각공예를 습득하고, 한때 베를린에서 가구와 장식미술가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06년에 다리파에 가입해 그 다음해 탈퇴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나아간다. 브뤼케 그룹 시절 얻은 목판화의 제작 방법은 그림에까지도 감정표현, 그것도 현실 사회를 넘어선 종교적 감정표현으로 이색적인 종교적 표현주의 회화를 구현해 나갔다.◎ 청기사 그룹1911-1914년을 중심으로 활동한 청기사파는 화면의 조형적 효과를 무시하고 인고 형태와 내용을 조화시키면서 화려한 원색의 장을 펼치고 있다. 뮌헨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 그룹은 다리파 같이 독일 낭만주의에 근거하고 있으나, 집단적인 공동작업이나 과격한 사회 비판적인 태도를 내세우지 않고, 여러 나라들의 미술가들이 함께 움직인 모임으로서 특히 프랑스 미술에 대해 좀더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이 그룹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당시 독일에 거주하고 있었던 러시아인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였다. 칸딘스키가 추구한 것은 회화 그 자체이며 여기서 정신적인 세계를 즉흥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 정신적인 세계는 '절대' 혹은 '추상'이라는 성격의 회화를 형성하게 된다. 칸딘스키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법률학과 경제학을 공부하였고 30세기 되던 해인 189 독자적인 화풍이 완성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주제의 대상들은 마치 불 속에라도 빨려 들어간 듯 부풀어 있고, 윤곽선은 유동적이다. 가령 자주 등장했던 기타의 곡선은 불에 녹아 버린 듯 호리병 같은 단순한 유기적 형태로 변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 기묘한 된 기타는 그 왼쪽의 과일, 꽃병 등의 정물체들과의 조형적 균형에 의해 미묘한 생명을 부여받고 있다.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페르낭레제작후안 그리(1887-1927)는 스페인의 마드리드 태생인 화가 호세 곤잘레스의 널리 알려진 예명이다. 그가 스페인 출신의 선배 피카소를 흠모하여 파리로 간 것은 1906년의 일이었다. 그는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를 진지하게 연구하였고, 1912년과 14년 무렵 이후의 종합적 입체주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된 인물이다. 그리는 본래가 지극히 이지적인 정신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화면을 엄격하게 구성하는 입체주의의 미학은 그의 본성에 잘 부합하게 된다. "세잔은 병을 원통으로 환원시켰다. 나는 원통에서 병을 만든다."라고 한 그의 말은 그의 작품의 기하학적 성격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는 방의 벽면이나 천장도, 의자나 테이블도, 그리고 그 밖의 어떠한 대상도 인간의 생활과 어떠한 관계를 갖는 실용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순수한 조형적 형태로서만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였다.입체주의의 확장에서 맨 처음 논할 수 있는 화가로 페르낭 레제(1881-1955)를 꼽을 수 있다.그는 입체주의에서 시각 세계를 조형적으로 단순화시키는 방법을 습득하여 자신이 추구하고자 한 현대성과 기계문명, 그리고 그 안의 인간을 표현하고자 하는데 적용시켰 다.레제는 피카소와 브라크와는 다른 입체주의를 구사하고 있는데, 즉 동시적 다시점을 사용하거나 대상을 파편으로 해체시키지 않은 채, 대상 형태의 본질적인 요소를 기하학적 구조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인체를 기계나 로봇과 같이 단순화하고 견고화하는 단계를 거처, 레제는 강렬한 원색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기계적 형상을 실험하는 쪽으로 발전한다.그는 다.◎러시아 구성주의1917년 러시아에서는 공산정권인 볼셰비키 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국가 통치체재로서 사회주의를 공표 하였다. 혁명을 전후로 한 시기에 러시아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개혁풍조가 일어났다. 그리고 예술계도 예외없이 이러한 새로운 시대를 추종하는 전위작가들이 등장하게 된다.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나타난 20세기 초반의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부르조아 계층에 반대하는 혁명파에 적극 가담하여 레닌의 사회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그림, 조각, 벽보들을 열성적으로 제작하게 된다. 그들은 예술의 개혁이 사회의 개혁과 병행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이들은 보다 많은 인민을 위한 실용예술로서 기능적인 복장, 가구들을 고안했으며, 산업계 노동자들과 연계하여 연합단체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이태리의 미래주의와 프랑스의 입체주의의 영향하에서 전통적인 재현의 수법을 거부하고 순수한 조형수단으로서 기하학적 추상을 미술의 형태로 내세웠다. 이는 러시아를 비롯한 서구 유럽에 기하추상미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그러나 러시아의 혁명체제가 경제적 위기를 타파해 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일에만 집중하게 되고, 레닌 당국이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에 일일이 간섭, 제작품의 성격까지 제약하는 등, 일종의 미술규격화를 시도하면서 추상미술과 같은 실험적인 것에는 등한시하게 됨에 따라 구성주의 작가들은 그 자유로운 예술활동에 한계를 느낀다.결국, 이들은 서구 유럽으로 하나 둘씩 망명하기에 이른다.◎ 구성주의 화가와 작품들제3인터네셔널 기념탑, 타틀린 작블라디미르 타틀린(1895-1956)은 러시아 구성주의가 탄생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작가이다. 1913년에 그는 베를린과 파리를 여행하게 되는데, 파리에서 피카소 화실을 찾게 된 그는 입체주의 작품들을 보고 새로운 조형예술에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피카소가 조각에서의 콜라주가 지니는 의미를 연구하고 있었던 구조물들을 본 타틀린은 자신의 이후의 작품들을 구성하는 데 피카소의 실험작품들을 참고하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