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학자들은 유목이라는 것이 농경에 비해 결코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유목민들의 부당한 편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목민들이 어떻게 해서 자신의 역사를 빼앗겼는지를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목민들과 유목사회, 그리고 그들이 중추가 된 유목국가가 인류사에서 수행한 역할은 일방적으로 격하되어 왔으며, 유목민들에 대하여 발표를 하기 전에 두 가지의 문제점을 재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지금까지의 역사 서술이 기록 중심의 사관에 편집광적으로 집착되었다는 점이다. 유목민에게 있어서 문자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문자 의존도는 매우 미약했고, 이들에 관한 기록은 대부분 정착민들 쪽에서 쓰여 졌기 때문에 기록된 것보다 그렇지 못한 것이 많았는데, 기록된 것도 오해과 곡필이 많았다. 기록하는 측은 여지없이 자신들을 ‘문명인’으로 상정하였고, 유목민들은 ‘야만족’, ‘파괴자’, ‘비(非)문명’ 등의 언어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성격자체를 악으적으로 채색하였으며, 유목민에게 공격, 지배당했던 사건에는 극도적으로 피해의식이 가미되었고 자신들이 유목민들을 공격했던 시기에는 과도한 우월감을 드러내왔다.
과거청산과 국가별 사례연구 (요약본)-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서 론 - 과거청산의 뜻과 필요성 과거사 청산은 과거사 규명을 통해 잘못된 과거사를 정리하고 극복하려는 시도=> 왜곡, 은폐된 과거사의 실체를 밝혀 가해자에게는 응당한 처벌, 피해자에게는 배상, 보상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옳고 그름을 바로 잡아가는 것본 론 1. 프랑스의 사례 1) 배경 · 1940년 독일과의 전쟁패배 ->6월22일 휴전협정 -> ( 분 할 ) => 1944년에 해방 · 프랑스의 북부 절반, 서부 => 독일군의 점령지역 · 남부 절반 => 비시 정부의 `자유지역`으로 분할 (but 1942년부터 독일군 점령) 2) 시기분류 (1) 약식재판 (초법적처형) · 1944년 6월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하면서 전세가 기울었고, 비시 정부는 후퇴하는 독일군을 따라 점령지역을 전전하다가 지그마링겐(Sigmaringen)에서 종전을 맞이함. · 패전의 산물이었던 비시 체제는 독일의 패배로 종식됨. · 1944년 8월 25일에 파리가 해방된 것을 필두로 다음 해 5월의 독일 항복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영토의 해방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고, `부역자`, 즉 대독 협력자들에 대한 첫 숙 청 작업은 해방 전후(前後)에 `초법적 처형`(약식처형)이란 형태로 진행됨. · 총 8,000-10,000명이 그러한 처형으로 사망했는데 그 가운데 62-85%가 해방 전에 벌 어진 처형(따라서 종종 `전투`와 구별하기 힘든)으로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