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가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2항의 의미 >-2017. 3. 22. 2016다218874판결을 중심으로목 차I. 대상판결 요지 및 사실관계【대상판결】 대법원 2017. 3. 22. 선고 2016다218874 판결1. 판결요지2. 사건의 개요3. 소송의 경과가. 원심판결나. 대상판결1) 기존의 연체차임이 양수인에게 귀속되는지 여부(소극)2) 임대차종료시 기존의 연체차임도 임대차보증금에서 당연공제되는지 여부(적극)3) 소결II. 연구1. 문제의 제기2. 임대인 지위 승계 규정(상임법 3조 2항)의 의미가. 계약인수의 한 유형1) 계약인수와 채권양도, 채무인수의 차이점2) 계약인수의 성질3) 학설나. 검토1) 임대차보호법의 입법취지2) 유사한 사례에서 판례의 법리다. 소결3. 연체차임 당연 공제의 의미가. 공제대상에 대한 의문나. 검토1) 양수인의 이익상황에 부합하는지 여부2) 양도인의 관점3) 임차인의 관점4) 양수인과 양도인간의 이익조정III. 결론I. 대상판결 요지 및 사실관계【대상판결】 대법원 2017. 3. 22. 선고 2016다218874 판결1. 판결요지가. 임대를 한 상가건물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고 있다가 이를 분할하기 위한 경매절차에서 건물의 소유자가 바뀐 경우, 양수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는지 여부 (적극)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2항에 따라 임차건물의 양수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는 경우, 임차건물의 소유권이 이전되기 전에 이미 발생한 연체차임이나 관리비 등이 양수인에게 이전되는지 여부 (원칙적 소극)다. 임차건물의 양수인이 건물 소유권을 취득한 후 임대차관계가 종료되어 임차인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해야 하는 경우,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기 전까지 발생한 연체차임이나 관리비 등이 임대차보증금에서 당연히 공제되는지 여부 (원칙적 적극)2. 사건의 개요가. ‘소외인 등’과 피고의 상가임대차 계약 및 피고의 대항력 취득피고(임차인)는 2010. 4. 23. 이 사건 건물의 공유자들인 소외인 등 5인(이하 ‘소외인 등’이라고 한다)으로부 임대차계약의 해지를 통고하였다.라. 임대차계약 해지 후 피고의 목적물인도의무 불이행 및 차임상당 부당이득피고가 2014. 8. 1.부터 2015. 3. 31.까지 8개월간 연체한 차임, 관리비와 부당이득금은 합계 17,906,240원[= 월 2,238,280원(차임 1,870,000원 + 부가가치세 187,000원 + 관리비 164,800원 + 부가가치세 16,480원) × 8개월]에 이르고, 또한 피고는 위 기간 동안 전기료 693,507원과 수도료 39,664원도 지급하지 않았다.마. 피고의 목적물인도피고는 2015. 6. 12. 원고에게 이 사건 점포를 인도하였다.바. 원고의 소송제기 및 당사자의 주장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위 라.항의 연체된 금액 합계 18,639,411원(=17,906,240원+693,507+39,664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 그리고 2015. 4. 1.부터 이 사건 점포 인도 완료일인 2015. 6. 12.까지 월 2,238,280원의 비율로 계산한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는 청구를 하였다.이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 또한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였으므로 임차인인 피고에게 2500만원의 임대차보증금반환의무가 있다고 ‘항변’하였고, 원고는 임대차 목적물에 관한 소유권을 이전 받기 전에 이미 연체된 차임 등이 임대차보증금액을 넘어 임대차보증금이 모두 소멸되었으므로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공제의 항변(재항변)’을 하였다.3. 소송의 경과가. 원심판결원심은 전 임대인인 소외인 등과 피고 사이에 이 사건 임대차계약 종료 전에 보증금에서 연체차임 등을 공제한다는 의사표시가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원고가 소외인 등으로부터 위 연체차임채권을 양수받았다는 점에 관한 주장과 증명도 전혀 없어 원고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기 전에 발생한 연체차임 등을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임대인 지위 승계 전에 발생한 연체차임 등을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배척하였다.또한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원고는 피고에게목적물이 반환될 때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 보증금에서 당연히 공제된다(대법원 2005. 9. 28. 선고 2005다8323, 8330 판결 참조).임차건물의 양수인이 건물 소유권을 취득한 후 임대차관계가 종료되어 임차인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해야 하는 경우에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기 전까지 발생한 연체차임이나 관리비 등이 있으면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대차보증금에서 당연히 공제된다고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임차건물의 양도 시에 연체차임이나 관리비 등이 남아있더라도 나중에 임대차관계가 종료되는 경우 임대차보증금에서 이를 공제하겠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의사나 거래관념에 부합하기 때문이다.3) 따라서 피고의 (기연체분-필자주) 채무가 원고가 반환해야 할 보증금액수를 넘게 되어 원고로서는 반환할 보증금이 없게 되고, 피고는 원고에게 (2014. 8. 1.부터 2015. 3. 31.까지) 연체된 금액 합계 18,639,411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 그리고 2015. 4. 1.부터 이 사건 점포 인도 완료일인 2015. 6. 12.까지 월 2,238,280원의 비율로 계산한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는 판결을 하였다.II. 연구1. 문제의 제기대상판결은 임차건물의 소유권이 이전되기 전에 이미 발생한 연체차임이나 관리비 등은 임차건물을 사용한 대가로서 임차인에게 임차건물을 사용하도록 할 당시의 소유자 등 처분권한 있는 자에게 귀속되므로 별도의 채권양도절차가 없는 한 원칙적으로 양수인에게 이전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임대차보증금은 임대차계약 종료 후 목적물을 임대인에게 명도할 때까지 발생하는, 임대차에 따른 임차인의 모든 채무를 담보한다고 하면서 앞서 양수인에게 귀속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기존의 연체차임도 공제의 대상이 된다고 하여 마치 모순된 판단을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하에서 이러한 판례의 태도가 타당한지 살펴본다.2. 임대인 지위 승계 규정(상임법 3조 2항)의 의미임대차는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목적물을 사용, 수익하게 할 것을관계가 존재하지 않게 되며 그에 따른 채권·채무관계도 소멸한다. 이를 양수한 제3자는 양도인의 계약상 지위를 승계함으로써 종래 계약에서 ‘이미 발생한 채권·채무’도 모두 이전받게 된다.(2007다63089)3) 학설통설은 주임법 3조 4항, 상임법 3조 2항의 매수인의 임대인 지위승계 규정에 대하여 계약인수의 한 유형으로 파악한다. 기존의 임대인은 임대차관계에서 탈퇴하고 목적물의 양수인은 당연히 임대인의 계약상 지위를 승계하여 계속적 계약(임대차계약)의 당사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임차인의 보호를 위한 임대차보호법의 입법 취지에 비추어 ‘이미 발생한 채권·채무’와 관련하여, 부동산임대차계약과 같이 고도의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 계속적 계약에서는 인적 신뢰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미지급의 차임채권은 계속적 계약으로서 임대차계약과는 별개의 독립한 존재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계약상의 지위 이전 전에 임대인에게 채무불이행에 의한 해제권이 발생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당연히 양수인에게 그 해제권이 승계되지는 아니한다고 본다.나. 검토1) 임대차보호법의 입법취지이러한 해석이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는 임대차보호법의 입법취지에 있다. 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보다는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만일 이를 순수한 계약인수로 새긴다면 임차목적물의 양수인은 계약상의 지위(해제, 해지권 행사 등) 및 종래 계약에서 ‘이미 발생한 채권·채무’도 모두 이전받게 되므로, 기존의 연체를 이유로 언제든지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만일 기존의 임대인이 연체에 대하여 관대하였고, 임차인 역시 연체를 하면서도 임대차계약을 유지하고 다만 임대차 종료시에 보증금에서 공제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면, 이는 임대목적물의 소유권변동이라는 우연한 사정 및 임대인 지위의 당연 승계 규정으로 인한 임대인 교체라는 결과를 초래하여 임차인에게 불리한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다시 말해, 양수인의 당연승계 규정을 순연한 계약인수로 새길 경우, 새로운 양수인에 대한 연체가 없음이전 전에 임대인에게 발생한 채권·채무나 계약 당사자로서의 해지·해제권 등은 승계되지 아니한다.3. 연체차임 당연 공제의 의미위 2. 항에서 살펴 보았듯이 판례는 상임법의 입법취지 및 상기 판례의 취지를 고려하여 상임법상 계약인수 규정인 3조 2항을 수정하여 해석한다. 다만, 이렇게 해석 할 경우 임대차가 종료되었을 때 임차보증금에서 임차목적물 양수 전에 이미 연체된 연체차임을 공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가. 공제대상에 대한 의문판례는 「주택의 임차인이 대항력이 구비된 후에 임대부동산의 소유권이 이전되고 그 양수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다고 할 때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도 부동산의 소유권과 결합하여 일체로서 이전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양도인의 보증금반환채무는 소멸한다.」고 본다. 따라서 임대인의 지위승계에 따라 양도인의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가 양수인에게 승계되는 것은 면책적 채무인수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임차인은 양수인에게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이외에 양도인 즉 종전 임대인에게도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는 없고, 「주택양수인이 임차인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양수인이) 자신의 채무를 변제한 것에 불과할 뿐, 양도인의 채무를 대위변제한 것이라거나, 양도인이 위 금액 상당의 반환채무를 면함으로써 법률상 원인 없이 이익을 얻고 양수인이 그로 인하여 위 금액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고 할 수 없다.」고 본다.즉, 위 판례들에 비추어보면 2.항에서 살펴본 ‘양도인에 대한 연체차임으로 당연공제된다.’는 의미가 양수인이 임차인에 대한 자신의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를 자신이 아닌 양도인의 임차인에 대한 채권으로 공제한 셈이 되는 것이므로 논리적 맹점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나. 검토이하에서 이러한 해석이 타당한지 1)양수인, 2)양도인, 3)임차인의 관점에서 차례로 검토해본 뒤 4)당사자간의 이익조정문제까지 살펴본다.1) 양수인의 이익상황에 부합하는지 여부임대차 존속 중에는 임대인의 교체로 있다.
「의료과오 소송상 손해배상책임 법리」I. 서론II. 본론1 - 의료과오 성립의 요건1. 의료분쟁가. 의료행위의 정의나. 의료분쟁의 정의와 핵심쟁점2. 의료과오가. 의료과오의 정의나. 의료과오 판정의 2단계 기준-‘예견가능성’ 및 ‘회피가능성’1) 예견가능성2) 회피가능성3) 소결다. 의료과오 판단 시 증거방법-진료기록감정1) 진료기록감정의 필요성2) 진료기록감정 세부과정3. 의료과오와 악결과 간의 상당인과관계가. 입증책임 경감1) 필요성2) 판례의 태도나. 입증책임 완화법리1) 의료과오와 인과관계의 동시 추정2) 입증책임을 전환을 인정한 듯한 판례다. 입증책임 경감법리의 제한1) 필요성2) 판례의 태도4. 설명의무 위반가. 설명의무1) 설명의무의 정의2) 판례의 태도가) 환자의 승낙권 침해에 따른 불법행위 책임나) 진료의무와 구별되는 독립적인부수의무3) 설명의무 위반여부를 검토하는 실익나. 설명의무 위반과 악결과 사이의인과관계 인정여부1) 악결과에 대한 인과관계 인정여부2) 전(全)손해를 인정한 판례의 유형가) 진단상의 과오로 설명의무를 다하지 못한 경우나) 설명을 들었다면 불필요한 수술개시를 하지 않았을 경우III. 본론2 ? 의료과오 소송의 구제책: 민사상 손해배상책임1. 손해2. 손해의 분류가. 재산적 손해나. 비재산적 손해3. 책임제한법리가. 과실상계 내지과실상계 법리 유추적용나. 손익상계다. 중간이자 공제IV. 결론I. 서론민법상 손해배상책임은 일반적으로 불법행위나 채무불이행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그중 의료과오에 관한 분쟁은 의료행위가 갖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과실과 인과관계에 관한 독창적인 판단기준(입증책임 경감, 인과관계 추정 법리 등)이 적용되며, 신체감정, 진료기록감정 같은 특유의 증거방법신청이 존재하는 등 일반적인 손해배상의 영역과는 차별화된 전문영역에 해당한다. 또한 이를 정교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이론이 점점 발전하는 시점에서 판례를 통해 의료분쟁의 전반적인 흐름을 살펴 보고, 당사자간에 이해관계를 실질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민사상의과오의 정의‘의료사고’가 가치중립적인 개념인데 반해 ‘의료과오’라 함은 법률적인 개념으로서, 사람의 생명·신체·건강을 관리하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를 취하였어야 했는데 그러한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에 대한 ‘비난가능성’을 의미한다. 판례는 「의료과오사건에 있어서의 의사의 과실은 결과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발생을 ‘예견’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발생을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발생을 ’회피‘하지 못한 과실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고,······」 라고 판시하고 있다.나. 의료과오 판정의 2단계 기준 - ‘예견가능성’ 및 ‘회피가능성’1) 예견가능성‘결과예견가능성’에 대하여 판례는 일응 형법상 ‘결과적 가중범’에서 고의가 없는 중한 결과발생에 대한 죄책을 묻기 위해서 그러한 중한 결과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어야 한다는 ‘예견가능성’에 관한 법리를 그대로 차용하여 판단하는 듯하다. 의료행위 자체가 그 목적은 환자의 치료이지만 필연적으로 환자의 신체에 대한 침습을 수반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치료를 하려고 일정한 정도의 침습을 하겠다는 고의로 전혀 의도치 않았던 중한 결과인 의료사고를 일으킨 것을 최초의 고의를 초과하여 과실로 예기치 못한 중한 결과를 발생시킨 결과적 가중범과 유사한 구조로 파악한 것은 일응 타당하다.2) 회피가능성‘결과회피가능성’ 에 대하여 대법원은 X선 검사상 나타난 전두와 기저부 복잡골절상 등을 발견하지 못하고, 전두부 좌창 등의 상처만 있다고 오진된 후, 전원된 병원에서 병발된 뇌막염 등의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사건에서, 「피고가 위 환자를 치료하는 동안 계속 항생제 등을 투여하였으므로 뇌기저부 복잡골절 등을 조기 진단했다 하더라도 현대의학상 취할 수 있는 조치를 피고는 결과적으로 한 셈이 될 뿐만 아니라···」 고 판시한 바, 결과예견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하여 곧바로 의료과오책임을 지우지 않고, 한번 더 그러한 결과발생을 회피할 수 있었는지 관계에 관한 입증책임을 모두 부담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의료분쟁의 경우 의료행위의 특수성(의료의 전문성·밀실성·재량성·폐쇄성)으로 인하여 환자 측에서 의사의 과실이나 인과관계 등을 증명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판례는 입증책임경감의 법리를 적용하고 있다.2) 판례의 태도대법원은 「환자측이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 이를테면 환자에게 의료행위 이전에 그러한 결과의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을 증명한 경우에 있어서는, 의료행위를 한 측이 그 결과가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입증을 하지 아니하는 이상, 의료상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을 그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상에 맞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판시하여 채권자의 증명책임을 완화하기 위한 고유의 법리를 형성해 오고 있다.다만, 이 경우에도 판례의 기본적인 태도는 의료과오(귀책)까지는 환자측에서 입증하고, 인과관계에 있어서도 완전히 채무자(의료인)에게 입증책임을 전환시킨 것까지는 아니고 단지 채권자(환자)의 입증책임을 경감시킨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나. 입증책임 완화법리이러한 태도에서 더 나아가 ①간접사실 등을 통해 피고의 인과관계와 의료과실까지도 동시에 추정케 하거나, ②아예 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전환시킨 듯한 것으로 소개되는 판례도 보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법원은 입증책임 전환의 법리까지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1) 의료과오와 인과관계의 동시 추정판례는 전신마취의 회복 도중에 환자에게 기흉으로 인한 저산소뇌후유증으로 신경마비증세가 발생한 사건에서 수술전에는 환자에게 기흉을 유발할 수 있는 특이체질자라고 볼 만한 소인이 없었다는 간접사실을 토대로, 「환자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전신흡입마취 과정에서 적절치 못한 시술이 바로 이 같은 기흉의 유발 및 이로 인한 청색증 내지 피하기종이법리의 제한1) 필요성의료과오소송에 있어 법원이 가진 인과관계 및 과실의 사실상 추정이라는 전권(全權)은 일응 환자에게 입증책임을 완화시켜 주는 작용을 하면서도, 그로 인해 의료인에게 사실상의 무과실책임을 지우게 할 수도 있다. 증거의 증명력의 판단에 관하여 법관의 자유심증주의가 원칙인 이상, 소송에서의 인과관계란 반드시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실무적으로 악결과의 원인을 현대의 의학수준으로 밝히는 것이 불가능할 때는 의료인이 무과실책임을 부담하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의료분쟁도 크게는 의료진의 불법행위책임을 묻는 것이고, 따라서 불법행위의 입증책임에 관한 대원칙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므로 일정한 경우 이러한 법원의 사실상 추정법리가 남용되어 인과관계의 입증책임 자체가 전환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방지할 필요성이 있다.2) 판례의 태도판례는 일반적으로 의료과오소송에서 의료과실 및 인과관계에 있어 환자 측의 입증책임을 경감 내지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나, 「그 경우에도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결과발생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정들을 가지고 막연하게 중한 결과에서 의사의 과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의사에게 무과실의 입증책임을 지우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또한, 대법원은 복강경에 의한 질식 자궁적출술 등을 시행한 후 일반적인 수술 합병증으로 요관손상이 발생한 사례에서 「의료행위에 의하여 후유장해가 발생한 경우, 그 후유장해가 당시 의료수준에서 최선의 조치를 다하는 때에도 당해 의료행위 과정의 합병증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거나 또는 그 합병증으로 인하여 2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의료행위의 내용이나 시술 과정, 합병증의 발생 부위, 정도 및 당시의 의료수준과 담당의료진의 숙련도 등을 종합하여 볼 때 그 증상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합병증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없는 한, 그 후유장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의료행위명의무의 위반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내지 치료행위에 대한 선택의 기회를 보호하기 위한 점에 비추어 환자의 생명 신체에 대한 의료적 침습 과정에서 요구되는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과 동일시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라고 설명의무 위반이 앞서 살펴본 의사의 의료과오와 동일시 할 정도로 환자의 악결과와 인과관계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만으로는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을 뿐 악결과로 인한 모든 손해를 청구할 수는 없다고 판시함으로써 의사의 진료의무와 ‘독립된 부수적 의무’로 파악하고 있다.3) 설명의무 위반여부를 검토하는 실익실제 재판에서 환자측이 의료진의 의료과오를 입증한 이상 설명의무 위반까지 판단할 실익은 크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의료과오 입증이 곤란할 때에는 설명의무 위반으로 정신적 손해인 위자료만이라도 배상 받을 수 있다. 또한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판례는 ‘수술개시여부 자체’가 설명의무 위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 설명의무 위반과 악결과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폭넓게 인정한다.나. 설명의무 위반과 악결과사이의 인과관계 인정여부1) 악결과에 대한 인과관계 인정여부설명의무는 본격적인 의료행위를 개시하기 이전에 그러한 진료를 받을지 말지에 대한 환자의 알권리와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측면에서 인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설명의무만을 위반한 이후 의료과오 없는 진료행위를 하여 악결과가 발생하였을 때는 설명의무 위반만으로 악결과와의 인과관계를 쉽사리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즉, 의료행위 개시여부 자체가 악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실무상 설명의무 위반과 악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받아 전(全)손해를 배상받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다만, 판례는 다음과 같은 유형에서 전손해와의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있다.2) 전(全)손해를 인정한 판례의 유형판례는 ①본격적인 의료행위 이전 단계인 진단단계에서 환자의 증상을 오진한 의료과오가 있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설명의무 위반사실까지 함께 악결과와의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한다.
2000다22850 판결과 2001다68839 판결로 살펴본동시이행항변권의 의미목차1. 2000다22850 판결의 요지가. 사실관계요약나. 판시사항2. 2001다 68839판결의 요지가. 사실관계요약나. 판결요지3. 채권양도(전부)와 동시이행의 항변권의 이전4. 판례를 통해 살펴본 동시이행 항변의 의미가. 2000다22850판결나. 2001다 68839판결의 오류5. 결어1. 2000다22850 판결의 요지가. 사실관계요약A는 이 사건에서 문제된 건물의 일정 부분을 원고(B)에게 분양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후 피고(C)는 A로부터 분양대금채권의 일부를 양도받았고, 원고(B)는 분양대금중 일부를 A에게, 나머지 분양대금을 피고(C)에게 지급하였다. 그 건물이 완공된 후 원고(B)는 자신이 분양받은 건물 부분을 인도받기는 하였지만, 그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받지는 못하였다. 이 사건 건물에는 채권최고액 70억원의 근저당권설정등기가 경료되었고, 여러 개의 가압류등기 또는 압류등기가 행하여졌으며, 나아가 A가 무자력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원고(B)는 이로써 분양자측의 소유권이전등기의무가 이행불능이 되었음을 들어 A와의 이 사건 분양계약을 해제하였다.이 사건에서 원고(B)는 피고(C)를 상대로 하여 자신이 지급한 분양대금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원심법원은, 우선 이 사건 분양계약에 기하여 분양자측이 부담하는 소유권이전등기의무가 이행불능이 되었고, 따라서 원고의 위 계약해제는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피고(C)가 한 동시이행의 항변, 즉 위 계약의 해제로 인한 피고의 대금반환의무는 A가 원고로부터 건물을 인도받는 것과 상환으로 이행되어야 한다는 항변을 배척한 다음, “이 사건 분양계약상의 분양대금채권 중 미수금채권을 양도받은 피고(C)는 원고(B)에게 그 양수 이후 원고로부터 지급받은 판시 금원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원고의 청구를 모두 인용하였다.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대법원 판결은, 이행불능 여부의 판단, 이행불능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에서 반대채무의 이행제공의 불요, 쌍무계약에서 발생한 채권의 양수인이 계약해제의 효력을 대항 받지 않는 민법 548조 1항 단서의 ‘제3자’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하여 흥미로운 판단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고에서는 위의 동시이행항변을 배척한 것의 당부에 한정하여 다루고자 하므로, 이에 관련된 판결취지만을 들기로 한다.나. 판시사항[3] 계약이 해제된 경우 계약해제 이전에 해제로 인하여 소멸되는 채권을 양수한 자는 계약해제의 효과에 반하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나아가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채무자로부터 이행 받은 급부를 원상회복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중략...한편, 피고는 분양계약상의 매도인의 지위를 양도받은 것이 아니라 분양대금 미수금채권을 양도받았을 뿐이고, 이 사건 계약해제로 인하여 원고가 지급한 분양대금 중 일부만을 원고에게 반환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바, 위와 같은 의무는 원고가 계약해제로 인하여 분양계약의 당사자인 임춘 등에게 부담하는 이 사건 분양부분의 명도의무와 동시이행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같은 취지에서 피고의 동시이행항변을 배척한 원심의 조치 역시 옳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2. 2001다 68839판결의 요지가. 사실관계 요약甲(임대인)이 乙(임차인)과 건물임대차계약을 하고 甲은 乙에게 목적물을 인도하였고 乙은 甲에게 임대차보증금을 지급하였다. 임대차 존속 중에 乙은 임대차계약 종료 후 甲에게 갖는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장래채권)을 지명채권양도의 방식을 갖추어 丙에게 양도하였다. 이후 임대차계약이 해지되어 종료하였으나, 乙이 목적물을 반환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甲(원고)이 乙(피고)에 대한 목적물 반환을 청구하고 乙은 甲의 丙(보증금채권양수인)에 대한 보증금미지급을 이유로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다.나. 판결요지[3] 임차인의 임차보증금반환청구채권이 전부된 경우에도 채권의 동일성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어서 동시이행관계도 당연히 그대로 존속한다고 해석할 것이므로 임대차계약이 해지된 후에 임대인이 잔존 임차보증금반환청구채권을 전부받은 자에게 그 채무를 현실적으로 이행하였거나 그 채무이행을 제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임차인이 목적물을 명도하지 않음으로써 임차목적물반환채무가 이행지체에 빠지는 등의 사유로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점에 관하여 임대인이 주장·입증을 하지 않은 이상 임차인의 목적물에 대한 점유는 동시이행의 항변권에 기한 것이어서 불법점유라고 볼 수 없다.3. 채권양도(전부)와 동시이행의 항변권의 이전채권의 양도가 유효하게 이루어지면, 그 채권은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채권양도인으로부터 채권양수인에게 이전하므로, 그 채권에 ‘종된 권리’도 당연히 이전된다. 따라서 주채무자에 대한 ‘채권이 양도’되면 보증인에 대한 채권도 함께 이전하고, ‘동시이행항변’도 그대로 이전한다. 문제는 ‘동시이행항변’권이 이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냐 하는 것이다.동시이행항변권이란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의 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이다.(민법 제 536조) 이때 양 채무는 쌍무계약에 기한 대가적 채무일 것을 요한다. 판례는 쌍무계약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요건을 넓게 해석하는데, 엄밀히 말해 임차인의 임차물반환의무와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의무는 하나의 쌍무계약에서 발생한 채무는 아니지만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로 부종하는 성질상 이를 분리하여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다 할 것이므로, 이 경우에도 양 채무의 동시이행관계를 인정한다. 또한 대가적이라는 의미는 상환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양채무가 반드시 객관적, 경제적으로 동등한 의미를 가질 필요는 없음을 의미한다.4. 판례를 통해 살펴본 동시이행 항변의 의미가. 2000다22850판결2000다22850판결은 계약해제로 인해 원상회복관계에 놓인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양 채무(건물인도의무와 분양대금 반환의무, 민법 549조, 536조) 가운데 하나의 채무 중 일부가 채권양도로 인하여 분리된 경우, 그 채권양수인이 채권양도의 일반적 효과로서 동시이행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시이다.만약 채권양도의 효과에 대해 피상적으로 해석한다면 이 경우에도 양수인의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계약금 및 중도금’(①번 채권)과 ‘건물의 인도’(②번 채권)를 동시이행관계로 본다면, 중도금채권만의 양도는 ①채권의 일부양도이기는 하지만, 동시이행항변권이 있는 채권의 일부를 양도한 것이고, 동시이행관계의 양 채무는 반드시 경제적, 객관적으로 등가일 필요는 없기 때문에 양적으로는 차이가 있더라도 ①채권의 일부도 ②채권 전부와 동시이행관계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채권의 일부양도라는 우연한 사정에 의하여 매도인이 자신의 채무(건물인도채무)는 전부 이행하면서도 ①채권 전부를 만족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여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보아도 A와 B간, C와 B간에 동시이행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일응 타당해 보인다.그러나 판례는 이 경우 채권양수인 C의 동시이행항변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동시이행의 항변권이 채권 자체의 이행상 견련관계 때문에 인정되는 것이므로 단지 원상회복의무만을 지는 자에게 인정하지 않은 취지로 보인다.536조는 동시이행의 항변권에 대하여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이는 ‘자신의 권리실현’을 전제로 ‘자기채무의 이행’을 연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여타 이행상 견련관계가 없는 다른 권리들에서는 거절할 수 있다는 표현 대신 ‘대항하지 못한다. 대항할 수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아도 확실히 그 의미가 다름을 알 수 있다. 가령, 민법 451조 1항에서 ‘채무자가 이의를 보류하지 아니하고 전조의 승낙을 한 때에는 양도인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유로써 양수인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라든가, 동조 2항에서 ‘양도인이 양도통지만을 한 때에는 채무자는 그 통지를 받은 때까지 양도인에 대하여 생긴 사유로써 양수인에게 대항할 수 있다.’ 등으로 쓰고 있다.따라서 앞서 본 B의 관점에서 A나 C에 대한 동시이행항변을 인정할 수 있는 까닭은 B가 ‘계약금 및 중도금 반환’이라는 자신의 권리 실현을 위하여 자기의 건물인도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동시이행관계를 인정하려면 등가는 아니더라도 대립되는 채권 채무관계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 경우 C에게는 부동산매수인 B에 대하여 가지는 대가관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 A의 경우에는 ①채무의 일부이긴 하지만 계약금반환채무가 있고, 자신이 실현할 ②채권이 존재하므로 A는 B에 대하여 동시이행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또한 이 경우 C에게 동시이행항변권을 인정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B가 자기채권의 일부에 대하여 A보다 먼저 만족을 얻게 된다고 하더라도 A의 입장에서는 채권양도 이전보다 전혀 불리해질 것도 없다. 어차피 A는 C에 대하여 채권양도의 원인행위로 인한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고, 그 채무에 대하여는 B와의 동시이행관계가 문제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나. 2001다 68839판결의 오류앞서 본 바와 같이 동시이행관계에 있다는 것이 양 채무의 상대방 모두에게 동시이행항변권을 인정한다는 취지가 아님은 분명해졌다. 특히 채권의 양도가 있을 경우 그것이 전부 이전하여 한 쪽이 권리 없이 완전히 의무만을 부담할 때에는 양도인에게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인정할 실익도, 필요도 없다.그렇다면 2001다 68839판결에서 임대인에게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인정한 것은 일응 타당하나, 임차보증금 양도인인 임차인에게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인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 임대인의 경우 임차목적물 반환채권과 양수된 임차보증금반환채무가 이행상 견련관계에 있으므로 그에 대하여 동시이행항변권을 인정하는 것은 임대인의 권리실현을 위하여 유의미하다.
유족급여등부지급처분취소-대법원 1999. 12. 24. 선고 99두9025 판결-법학부 2001-13807 정진욱Ⅰ. 서설노동과정에서 작업환경 또는 작업행동 등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하는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산업재해라고 한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제 공업화의 진전이 가속화되면서 주로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재해가 급속도로 증가하였고, 새로운 산업이 발생하면서 많은 질병의 원인이 노동이나 작업환경에서 발견되었으며 산업재해의 종류도 증가하였다.근로기준법상의 재해보상제도는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하여 사용자의 책임 아래 이를 보상함으로써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상의 재해보상제도는 근로자의 업무상의 부상과 질병 등에 대한 사용자의 무과실책임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직접보상제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상에 재해보상제도를 사용자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근로자에게 업무상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사용자가 근로기준법상의 재해보상을 행하지 못한다면 재해보상제도의 입법 취지는 상실될 수가 있고 여기에 근로기준법의 한계가 있다.그러므로 사용자의 직접보상제를 지양하고 이를 국가의 사회보장제도에 편입하여 사회보험의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법에 의한 산재보험제도인 것이다. 산재보험제도라 함은 근로자가 업무상사유에 의한 부상 질병 신체장해 또는 사망한 경우에 해당 근로자 또는 그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서,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를 당하는 경우에 사업주가 근로기준법상의 재해보상 책임을 지게 되는데 국가가 이를 대신해서 사업주로부터 일정액의 보험료를 징수하고 이를 재원으로 하여 재해를 당한 근로자에게 보상하는 제도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 공정하게 보상을 행하기 위하여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에 대하여 사업주의 보험가입의사와는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산재보험에 가입시키고 보험료를 전액 부담토록 하여 당해 사업장에서 발생된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을 국가가 직접 관장하여 실시토록 은 대전 시내에 있는 근무지로 돌아와 01:30경 그 곳에 주차되어 있던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여 자택이 있는 논산시로 가던 중 03:20경 망인의 집 400m 전방에 위치한 ○○시 ○○동소재 도로변의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일으켜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사망하였다.(5) 소외 회사는 직원들에게 출·퇴근에 따른 차량제공이나 교통비, 차량유지비는 제공하지 아니하나, 영업직 사원들에게는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승용차를 구입할 것을 권유하여 이를 영업활동에 사용하도록 하면서 차량구입비를 보조하여 줄 뿐만 아니라 영업활동비 명목으로 유류비(매월 240ℓ), 주차비 등을 지급하고 있다.(6) 망인의 처인 원고는 피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소정의 유족보상금 및 장의비의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피고는 1997. 12. 16. 망인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에게 그 지급을 거부하는 내용의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이에 대해 원고는 피고의 유족급여부지급처분취소의 소를 제기하지만 원심인 서울행정법원(1999. 1. 22. 선고 98구14593 판결)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서울고등법원에 항소(1999. 7. 1. 선고 99누2705), 대법원에 상고(1999.12.24 선고 99두9025 판결)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었다.Ⅲ. 해당 CASE의 판결1. 서울고등법원[1]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업무수행성이라 함은 사용자의 지배 또는 관리하에 이루어지는 당해 근로자의 업무수행 및 그에 수반되는 통상적인 활동과정에서 재해의 원인이 발생한 것을 의미하며, 출퇴근중의 근로자는 일반적으로 사용자의 지배 또는 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없고, 단순한 출퇴근중에 발생한 재해가 업무상의 재해로 인정되기 위하여는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제공한 차량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사용자가 이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하여 근로자의 출퇴근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 해당되어야 한다늦지 않도록 지시를 하였고, 소외 회사는 영업사원들에게 영업활동비 명목으로 유류비, 주차비 등을 지급하고 차량구입을 보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망인의 위 퇴근과정이 사업자인 소외 회사의 지배, 관리하에 있다거나, 위 승용차가 사업자가 제공한 것에 준하는 교통수단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망인의 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소정의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3]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업무상 재해에 관한 법리 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Ⅳ. 문제점과 검토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출·퇴근 방법과 경로의 선택이 근로자에게 유보되어 있어 통상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출·퇴근 중에 발생한 재해가 업무상의 재해가 되기 위하여는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근로자가 이용하거나 또는 사업주가 이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하는 등 근로자의 출·퇴근과정이 사업자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 판결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통근재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이 문제된다.1. 자가용을 사용자가 제공한 차량에 준해서 볼 수 있는가산재보험시행규칙 제35조 제4항을 근거로 차량의 소유자가 근로자일 때는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근로자 개인의 소유라도 회사차량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망인의 차량은 자가용이기는 하지만 순수하게 출퇴근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만 구입한 것이 아니라 영업사원이라는 직무상 회사의 업무를 수행하기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회사가 영업직 사원들에게는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승용차를 구입할 것을 권유하여 이를 영업활동에 사용하도록 하면서 차량구입비를 보조하여 줄 뿐만 아니라 영업활동비 명목으로 유류비(매월 240ℓ), 주차비 등을 지급하였음에 비추어, 회사가 차량을 직접 제공하지는 않았더라도 망인이 차량을 보유하게 된 것에 어느 정도 사용자가 ‘사 준’ 차량일 경우는 사용자에게 책임을 지우고, 그렇지 않고 피용자가 자의로 선택해서 산 것일 경우는 사용자를 면책할 수 있는 것이지, 차량 자체의 결함과 관계없는 통근재해인 이상 차량을 누가 제공하였느냐 라는 논의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봐야한다.‘통근 중’은 엄밀하게 말해서 ‘업무를 직접 수행하고 있는 중’은 아니지만, 출근은 업무시작의 준비를 위한 ‘사전 준비행위’로, 퇴근은 다음날의 업무수행시 필요한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사후 정리행위’로 볼 수 있고, 따라서 본래의 업무수행과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통근이 없으면 통근재해도 없고, 통근은 업무수행을 위한 필요불가결의 행위이므로 통근재해는 업무수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실제로 공무원에 대해서는 통근재해를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제14조)에서는 공무원이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에 의해 출퇴근하다가 발생한 사고로 부상 또는 사망에 이른 경우에 이를 공무상 부상 또는 사망으로 보고 있다. 통근을 공무를 위한 준비행위 또는 연장행위라고 보아 통근 중 발생한 재해 중 통상의 경로 또는 방법에 의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이를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것이다. 즉, 일반적인 근로자도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에 의해’ 통근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면, 업무를 위한 준비행위 또는 연장행위라고 보아 통근 중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경우에는 통상의 경로 또는 방법에 의한 통근이기만 하면 차량의 제공을 누가 하였는지, 이용·관리가 누구에게 전담되어있는지 묻지 않는데, 이렇게 보는 것이 통근재해를 업무와의 밀접불가분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올바른 입법이라고 할 수 있다.판례는 “업무상 재해의 요건인 업무수행성은 반드시 근로자가 현실적으로 업무수행에 종사하는 동안만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업무수행에 수반되는 활동과정에서 일어난 재해도 업무수행성이 인정된다.”) 고 판시하여 업무수행성을 비교적 넓게 인정하고 있다이 인정하듯이 귀가 당시는 한밤중이라 택시 등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어려웠으므로 망인이 승용차를 이용하여 귀가길에 오른 행위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물론 피로한 상태를 무릅쓰고 운전을 해서는 안되는 상황이었지만, 운전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피로감을 느끼지 않다가 운전중에 피로가 갑자기 몰려왔을 수도 있는 등 운행을 시작할 때부터 스스로 사고발생의 위험을 인식하고 운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졸음운전에 대한 운전자의 과실 정도는 인정할 수 있을지언정 고의·자해행위 수준의 범죄행위에까지 해당한다고 볼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본 사건을 산재보험법시행규칙 제32조를 위반하였다고 하여 과로와 졸음운전간의 인과관계를 부정하여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그렇다면 업무로 인한 과로와 그로인한 졸음운전간의 상당인과관계에 판단에 초점을 맞추어 업무기인성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사실관계에서 망인은 월말의 며칠 동안은 결산관계로 인하여 밤 늦게까지 근무하는 경우도 있었고, 사고가 있은 날은 1997. 10. 31.로 월말에 해당하여 사고 전날도 21:30경 사무실을 나가 다음날 01:00경까지 판매영업활동을 하는 등 이미 며칠간의 피로가 누적되었을 것이고, 설령 보통사람의 경우에 그러한 월말의 단 며칠간의 업무활동이 퇴근중 졸음운전으로 이어질 정도의 피로를 누적시키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여야 하고’)라는 판례를 통해 볼 때, 충분히 업무와 과로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데 무리가 없다. 원심도 “과중한 업무수행에 기인하여 사고 당시 과로한 상태에 있었음은 인정할 수 있다”고 업무와 과로간의 인과관계는 인정하고 있다.대전에서 논산까지는 1시간 남짓 소요되는 거리이고 새벽 1시에 차가 막힐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에 비추어 볼 때, 다음날 일찍 출근하라고 지시받은 망인이 의도적으로 먼길을 돌아갔을리는 만무하고, 집으로 출발한지 1시간 50분뒤에 사 있다.
1. 서론"모든 사람은 두개의 조국을 갖고 있다. 하나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이다." 이것은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제3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이 남긴 말이다. 이 말은 자유, 평등, 박애에 근거한 공화주의 정신은 프랑스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공동 유산이라는 뜻이다.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은 이를 수용하는 나라의 사회적 여건에 따라 각기 다른 갈등과 반작용을 불러 일으켰으나 오늘날에 이르러서 이 같은 자유, 평등, 박애의 보편적 원리를 부정하는 사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대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도 이러한 이념이 완전히 뿌리내리기까지는 숱한 시련이 있었다. 혁명 이후 19세기 프랑스는 프랑스 내부의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민중의 봉기와 이를 억누르려는 기성 세력과의 충돌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이 프랑스 내부에 확고히 정착할 수 있었던 건 드레퓌스 사건을 치른 다음이었다.단순히 개인의 억울한 사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던 드레퓌스 사건.. 이 하나의 사건을 기점으로 프랑스 사회는 서서히 거대한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된다. 잊혀졌던 대혁명의 이념이 그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었다. 드레퓌스 사건의 영향은 비단 프랑스 국내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하게 만들었던 드레퓌스 사건은, 법과 재판이 존재하는 원래의 목적, 즉 정의의 실현이라는 본래의 이념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볼 때, '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을 정당하다고 여길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아직도 박정희의 군국주의 독재가 미화되고, 양심수가 '국가보안법'이라는사슬에 묶여 갇혀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하에서 드레퓌스 사건은 여전히 많은 점을 시사한다.2. 본론1) 드레퓌스 사건의 역사적 배경① 사건의 대략적 개관다음 장에 있는 표-(1)은 드레퓌스 사건을 알기 쉽게 개략적으로 정리해놓은 것이다. 보는 바와 같이 드레퓌스의 승리는 12년에 걸친 수- 유태인인 드레퓌스를 스파이로 지목, 언론의 대대적 유포12.군사법정 비밀재판에서 종신형 선고. 불명예 퇴역식.1895.2.21.아프리카 기아나의 '악마도'의 돌감방에 수감.1896. 3.참모본부 정보국 조르쥬 삐까르 중령이 드레퓌스 사건이 날조였음과보병 중대장 에스떼라지가 범인임을 발견. 상부에 보고하나 인정받지 못함.[르마뗑]지가 명세서 사본 게재 후 다시 여론 들끓음.유태인에 대한 반감을 주로 한 각종 편파보도 속에 [피가로]지는 진실을 호소.드레퓌스의 형 마띠외가 에스떼라지를 고발. 삐까르 중령이 기밀 누설로 체포됨.이후 여론분열.1897.1.13.정치인 클레망소의 신문 [로로르]지에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는 논설 게재.국제적 관심과 비난 속에 프랑스는 폭동에 휩싸임.유태인을 짓밟는 집단적 광란상태 속에 졸라는 군법회의를 모독한 죄로 기소되 징역 1년을 선고 받았고, 이후 영국으로 망명함.1898.8.30.문서날조에 가담했던 앙리 중령 자살. 에스떼라지 영국으로 피신.영국에서 자신의 스파이 행위를 책으로 출간.1899.6.3.고등법원이 1894.12의 재판 무효 선언. 재심명령.브레따뉴로 돌아온 드레퓌스는 '정상참작'으로 금고 10년 판결 받음.졸라, 삐까르 돌아옴.다시 졸라가 글을 쓰고 진보적 정치인들과 군중이 대통령 비난.9.19.드레퓌스 특별 사면됨1902.잠자던 졸라 질식사이후 드레퓌스 [악마도 일기] 출간. 다수의 책들 발간됨.1904. 3.드레퓌스 재심 청구1906.7.12.최고 재판소에서 무죄 선고7.21.드레퓌스 육군 복귀. 레종도뇌르 훈장.1935.7.11.드레퓌스 사망그러나 나폴레옹군도 1808년 이후 주변국에서 일어난 민중들의 궐기로 군사적 우월성을 잃게 된다. 나폴레옹의 퇴조는 프랑스 혁명군이 전파한 국민주의 정신이 전유럽에 침투함에 따라 초래된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다시 루이 18세가 즉위하는 왕정복고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때 세워진 왕조도 경제정책의 실패로 국민의 지지를 잃고 다시 제 2공화정race Janovich, 1973), p.100이러한 프랑스 군부상층의 정신상태는 나폴레옹 시대로부터 제 3공화정이 성립된 이후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프랑스 사회전반의 시민적 진화에 비추어 볼 때 프랑스 군부의 성격은 확실히 시대착오적인 것이었다.프랑스 대혁명의 이념 가운데 하나인 박애사상은 유태인을 포함한 소수민족에 대하여 당시의 유럽대륙 어느 나라보다도 관용적인 것이었고 진취적인 것이었다.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난 해에 인권 및 시민의 권리선언은 유태인을 보호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았고 2년뒤에는 모든 유태인에게 프랑스 국민과 동일한 시민권을 부여한다.이러한 상황에서 유태인들은 자본주의의 발달에 편승해 금융자본가 및 은행자본가로 성장했고 이는 소시민들에게 악랄한 증권투기가로 비춰졌다. 더욱이 이들 부유한 유태인들은 왕당파를 지지함으로써 프랑스 노동계급 및 하층 부르조아의 반유태주의감정을 부채질했다.이렇듯 오랜기간 프랑스 사회전반에 걸쳐 형성된 '군국주의'와 '반유태주의'가 드레퓌스 사건의 주된 역사적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2)재판과정상의 위법성 탐구지금부터는 드레퓌스 사건의 재판과정을 꼼꼼히 살펴보겠다.① 첫 번째 재판1894년 9월 어느날, 프랑스의 참모본부 정보국은 프랑스 주재 독일 대사관의 우편함에서 훔쳐낸 한 장의 편지를 입수했다. 그 편지의 수취인은 독일 대사관 무관인 슈바르츠코펜이었고 발신인은 익명이었으며, 내용물은 프랑스 육군기밀문서의 '명세서'였다. 스파이 활동의 거점인 독일 대사관을 감시하고 배반자를 색출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참무본부는 '명세서'를 작성한 사람이 참모본부 내에 있는 자이거나, 최소한 그런 자와 가까운 연관을 가진 인물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수사를 시작했다. 곧이어 참모본부의 상관들은 문제의 '명세서'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것과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스파이로 지목해버린다. 그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재판은 김재규의 메모재판을 연상시키 듯 군부와 재판정과의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 되어 버린다. 끝까지 비공개로 진행된과 똑같다는 사실이었다. 삐까르 중령은 드레퓌스와 군사전술학교 동창생으로서 정의감과 책임감이 매우 강하고 영민한 장교였다. 그는 이 엄청난 진상을 상부에 보고하면서 에스떼라지를 체포하고 드레퓌스에 대한 재판을 다시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상관들은 자신과 참모본부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드레퓌스사건을 그대로 묻어두기를 원했다. 삐까르 중령은 변호사를 만나 이 사실을 알렸고, 이것은 다시 한 상원의원에게 전해졌다. 만일 삐까르 중령이 진실을 발견했을 때 참모본부의 지휘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반역자 에스떼라지가 체포되고 드레퓌스라는 한 무고한 장교는 명예를 회복하는 것으로 사건은 끝나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군부의 위신을 국가안보와 동일시한 군 고위층의 어처구니없는 아집과 독선 때문에 사건은 눈사태처럼 커져갔다.그러던 중 참모본부의 입장을 옹호하며 드레퓌스를 비난하는 데 앞장섰던 「르마뗑」지가 특종을 터뜨렸다. 문제의 '명세서' 사본을 입수하여 신문에 게재한 것이다. 사태는 심각해졌다. 양심적 지식인과 법률가들, 공화주의자와 일부 진보적 정치인들, 소수의 신문이 재심을 요구하고 나섰다. 처음에는 이 사건을 유산계급 내부의 투쟁으로 보고 구경만 하던 사회주의자와 노동자계급도 뒤늦게 여기에 가담하였다. 미국, 러시아, 유럽 등 세계의 지식인들도 지지성원을 보냈다.참모본부의 여러 지휘관들은 연일 조작한 증거들을 흘렸고 언론들은 확인도 없이 이를 대서특필했다. 언론권력이란 말이 괜히 생겨난 말이 아니었다. 여론도 그들에 의해 완전히 조작당하고 있었다. 대중들은 '조건반사의 토끼'처럼 날조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미국의 메카시즘 열풍이 이미 수십년 전에 이곳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와중에 에스테라지의 무죄가 선고되고 삐까르 중령은 체포된다. 진실은 권력 앞에서 너무나도 무력했다.③ 세 번째 재판1897년 1월 13일, 절망의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킬 사건이 벌어진다.「오로르」지에 대문호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논설을 실은 대한 불매운동이 조직되었다. 재심 요구파에 가담한 교수들은 대학에서 쫓겨났고 드레퓌스를 두둔한 정치가는 다음 선거에서 대부분 낙선했다. 성난 군중의 광기를 막을 방도는 이제 없는 듯이 보였다.④ 네 번째 재판1898년 8월 30일,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 사태를 한걸음 더 나아가게 했다. 일찍이 삐까르 중령을 모함하기 위해 에스떼라지와 짜고 문서를 날조했던 참모본부의 앙리 중령이 진상이 발각될 위기에 몰린 나머지 면도날로 목을 찔러 자살해버린 것이다. 이로써 참모본부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재심 요구파는 유리한 국면을 맞이했다. 그러자 '군국주의자와 반유태주의자들의 영웅' 에스떼라지는 재빨리 영국으로 도망쳤다. 뿐만 아니라 런던의 한 출판사에서 돈을 받고 자신의 이야기를 출간했다. 자신은 이중첩자로서 상부의 명을 받고 독일의 기밀을 탐지하기 위해 독일 무관에게 접근했노라는 것이 내용이었다. 파리의 신문들은 일제히 참모본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재심은 이제 불가피해졌다. 마침내 1899년 6월 3일, 고등법원은 1894년 12월의 재판이 무효임을 선언하고 재심을 명령했다.드레퓌스는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아직도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는지 의아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대서양을 횡단하여 브레따뉴의 군형무소로 돌아왔다. 졸라도 망명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했으며, 또한 삐까르 중령도 감옥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아직도 승리의 길은 머나먼 가시밭이었다.재심이 시작되었다. 드레퓌스는 단지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밖에는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변호사 라보리는 법정으로 가는 길에 괴한의 저격을 받아 부상했고 참모본부의 상관들은 거짓말을 계속했다. 군사법정의 심판관들은 '정상참작'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에게 금고 10년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표결의 결과는 5 : 2로 유죄였던 것이다. 전 세계의 프랑스 대사관 앞에는 항의군중이 몰려들었고 이듬해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박람회를 보이콧 하자는 결의가 이루어졌다. 프랑스의 모든 것에 대한 보이콧 결의가 곳곳에서 채택되었다. "범죄자는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