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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을 다녀와서... 평가B괜찮아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을 다녀와서.........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러한 음악회나 오케스트라 뿐만 아니라 뮤지컬등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기 때문에 TV나 고등학교 시절 관련수업시 제공된 자료등을 통해 음악회의 모습이나 오페라등의 장면과 음악을 여러번 접했었지만 그저 지루한 것일 뿐 흥미로움은 찾아볼수 없었던 것이 그때의 심정이었던 것 같다..어찌되었건 간에 이번에 교양수업을 통해 이런 빌미로 인해 음악회 그것도 오케스트라 공연을 직접 가서 보게 되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이지 감동 그 자체이고 내가 왜 그동안 이렇게 관심이 없었나 싶었을 정도로 너무나 웅장하고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박동감이 넘치는 모습들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피아노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으면서 어렸을적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서 부모님께 매일같이 졸라서 결국 시작한지 얼마안되어서(바이엘 하권)그만두었던 생각이 나기도 했고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 나도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료되었던 것이 사실이다.정말 의도했건 안했건 그 동기를 떠나서 내가 이번 공연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낄수 있었고 정서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서 너무나 고맙고 이번 학기의 음악의 이해라는 과목을 택한것에 대해 너무나 다행스럽고 많은 것 알게되고 깨닫게 된 것 같아서 뿌듯하다.특히 잡생각이 많고 신경쓸 것도 많은 요즘 불면증까지 시달리고 있는데 클래식 음반을 구입하여 하루에 한 시간만이라도 음악을 감상하는 여유를 가지면서 생활하면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앞으로 그렇게 할 작정이다.우선 이번 공연에 가게 된 것도 우연이다. 이미 학기 초에 교수님께서 과제를 내 주신 터라 음악회에 관련한 정보를 여기저기서 입수하고 일자도 조정해보기도 하고 했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가 우연찮게 본 공연의 티켓을 구하게 되었던 것이다.그 공연의 이름도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대부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직한으로 향했다.친구는 나보다 10분정도 늦게 도착했고 우리는 여의도의 지리도 잘 모르면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길을 잘못 뚫었는지 우리는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걸 알아냈고 결국 삥 돌아서 여의도 공원(예전 어렸을 적에 왔을때는 여의도 광장이 굉장히 넓게 있었는데 지금은 이 공원으로 바뀌었나 보다.)을 지나자 KBS 홀이 나왔다. 우린 입구로 향했고 입구에서는 티켓을 교환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정말 많은 인파였다. 난 항상 이런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 그지 없다. 즉 난 평소에 관심도 없었던 분야에 어느날 문득 우연한 기회건 내 의지대로건 가보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오늘도 역시 엄청난 인원들이 이 공연을 찾은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기대가 되기도 했다. 많은 인파의 대부분이 정장차림에 격식을 차린 모습으로 꽃다발을 들고 밖에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오늘 협주곡에서 피아노 연주를 맡은 피아니스트와 관련있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아직 10월도 안 되었지만 밤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우리는 밖에서 약간의 사진 촬영을 마치고 시간이 되어 입장을 하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꽃다발을 들고 입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와중에는 우리처럼 학교 숙제등을 목적으로 온 것 같은 무리들도 여럿 보였다. 아무튼 우린 입장하였고 이런 공연은 처음이지만 S석이 좋은 자리라는 것은 대충 예상하고 있었는데 우리 자리는 맨 앞의 BOX열이었는데 이런 우연한 기회에 자리도 좋은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 뿌듯해지고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처음 공연장에 입장했을 때 너무나도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를 보자 기분이 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개그콘서트등을 보러 이러한 공개홀을 여러번 와보긴 했지만 그런 곳과는 뭔가 확연히 다르긴 달랐다. 확트인 공간에 들어서니 기분도 상쾌해지고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았다..그러면서 빨리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었다.어느덧 연주가 시작하기로 했던 7시 반이 훌쩍 넘어섰고 사람들도 제법 들어차서 거의 공석이 없을정도였다. 극장같았으면 웅성웅성 시끄러웠을 텐데 역시나 연주가 시작하기전에도 너무나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가지고 갔던 캔커피 하나 마시기도 힘들 정도였다.어느덧 시간은 되었고 단원들이 입장하기 시작하였다. 너무나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다들 키도 크고 훤칠한 외모에 각기 들고 있는 악기들도 너무나 멋있고 정말이지 색다른 장면이었다. 근데 한가지 궁금한게 현악기군만 입장을 한 것이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그리고 첼로파트만 입장을 하였고 잠시후 지휘자가 입장을 하였다..지휘자가 입장을 하자 앉아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일어나서 지휘자를 반기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지휘자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고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잠시 후 장내에는 침묵이 흘렀고 각각의 악기를 조율하기 위한 가느다란 음이 흘러나왔다.수업시간에 관현악 연주시 낮은 음의 오보에 음을 통해 악기들의 음을 맞춘다고 들었었는데 이처럼 현악기들만 있을 경우에는 현악기 자체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니 더욱더 흥미로워짐을 느끼게 되었다. 실제로 첼로와 더블 베이스를 보는것도 처음인데 그 큰 덩치의 악기 앞에 있는 사람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크기가 생각보다 컸고 뾰족한 막대기 같은 것이 밑부분에 연결되어 바닥에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다루기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잠시후 첫 번째 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순서가 약간 바뀌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얼마 안 있어 이곡이 작곡가 슈타미츠의 만하임 교향곡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현악기로만 이루어진 곡이라서 그런지 너무나 선율이 가느다라면서도 고음과 저음의 조화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 같았다. 특히 곡을 연주하는 동안의 지휘자의 열정적인 모습에 잠시 매료되었는데 저러한 움직임은 아무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음악에 빠지고 쉽게 말하면 음악에 미쳐서 심취하지 않고서는 저러한 열정적인 몸동작이 나올 수 있을 까 생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시간에 카세트 테입을 통해 음악을 감상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웅장하고 장엄한 연주를 감상하니 느낌 자체가 새롭고 무엇인가 가슴에 벅찬 감동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상 야릇한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연주가 끝나고 우리는 모두 박수 갈채를 보냈고 잠시의 쉴 틈도 없이 관악기와 타악기 들이 입장을 하고 피아노가 무대 중앙으로 옮겨졌다. 아마도 피아노 협주곡 차례인가보다. 특히 피아니스트가 우리나라 사람이기에 더욱더 기대가 되고 빨리 보고 싶어졌다.악기의 배치는 수업 시간에 배웠던 그대로 였다. 위치 조정이 자주 바뀌는 피아노 역시 무대의 가장 앞으로 옮겨졌다. 덕분에 이번 협주곡 연주하는 동안 내내 앞좌석에 앉은 우리는 지휘자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각도상으로 피아노가 지휘자를 모두 가려버렸기 때문인데 약간 아쉽긴 했지만 그 대신 피아니스트를 자세히 맘껏 볼 수 있었기에 마냥 행복했다..다음 바로 뒤에 지휘자 그리고 그 바로 다음 라인은 현악기 그 중에서도 좌측은 바이올린이 위치하고 중간부분에 비올라가 위치했는데 솔직히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차이가 명확히 보이진 않는 것 같았다. 혹시 모두 바이올린이었는데 내 추측으로 비올라라고 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그리고 오른쪽은 덩치가 조금 큰 첼로가 자리잡고 있었다. 첼로와 더블베이스 연주 장면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는데 활로 켜서 연주하는 것도 많지만 생각보다 손으로 뜯어서 연주하는 발현기법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 소리도 둔탁하면서도 뭔가 예리한 듯한 소리가 나는 것이 우리나라의 거문고를 연상하게 하였다.그리고 현악기군의 뒤에 바로 관악기가 위치하였다. 현악기군은 한 악기의 연주자가 5~10여명정도 되는 것 같은데 관악기는 연주자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악기 뒤 라인에는 좌측과 중앙에는 더블베이스가 위치하였고 우측에는 북같이 생긴 조금 커다란 타악기가 있었는데 아마도 수업시간에 봤던 팀파니 인가 보다. 어쨋건 배치는 않을까..잘 할 수 있을까..등등 별의 별 생각이 다 들 것이다.잠시후 피아노의 음에 맞춰서 각 악기의 선율을 맞추는 모습이 보였고 잠시후 피아노 협주곡 제 1번 C장조 작품 15라는 베토벤의 곡이 연주되기 시작하였다. 처음 발단부분에서는 현악기가 시작을 알렸다. 아직 피아노는 등장하지 않았고 한참동안의 현악기 연주가 계속되었다. 음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 같았다. 한참 후에 드디어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는데...피아노가 이렇게 아름다운 음을 낼 수 있는 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앞 좌석에 앉았던 터라 피아노의 열려진 덮개 부분을 통해 피아니스트의 손놀림이 반사되어 보였는데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고 아름다움에 입이 딱 벌어져 버렸다. 멜로디도 화려하고 반복되는 음이 경쾌하면서도 즐거웠다. 특히 피아노연주가 마쳐갈때쯔음 들어가는 바이올린연주는 너무나 절묘하고 내 심금을 울리는 듯하다고나 해야 할까. 아무튼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것이 태어나서 처음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슴에 와 닿는 듯한 기분이었다.첫 번째 악장의 연주가 끝났을 때 난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그만 박수를 칠 뻔 했는데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 것에 다소 의아해 했지만 곡이 끝났을 때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곡이 끝나야만 박수를 치는 것도 일종의 매너인 듯 싶었다. 한 개의 악장 연주가 끝날 때는 연주자들도 약간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악기를 잠시 내려놓는데 마치 엄청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기에 악기 연주가 그리 쉬운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잠시후 아름다운 피아노의 선율을 시작으로 제 2악장이 시작되었다. 2악장은 1악장의 화려하고 경쾌한 음에 비해 다소 차분하고 평화롭다고 해야 하나..아뭏든 다소 침착한 분위기로 이어갔다. 피아노 독주에 이어 관현악이 함께 연주되면서 다시 음이 화려해지고 경쾌해져 갔다. 정말 협주곡의 매력이 이런것에 있나 보다. 이렇게 관현악 그리고 타악기 피아노까지 함께 어울리는 오케스트라를 감상하면서 작곡가의 재능.
    예체능| 2003.12.17| 5페이지| 1,000원| 조회(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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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훼] 서양란에 대해.... 평가B괜찮아요
    서양란에 대해...난과 식물은 습성이 다른 식물보다 변화가 풍부하여 세계 어디서나 가꿀수 있다. 즉, 어느 환경에서나 잘 적응하여 늪지대나 바위, 음지나 양지, 열대나 온대, 또는 고지대에서까지 자생하고 있다. 따라서 생육하고 있는 장소에 따라 착생종, 자생종, 반생종으로 나눈다.동양란에 대한 취미재배는 역사가 긴 편이나 우리나라의 양란 재배 역사는 매우 짧다. 양란이란 엄격한 뜻에서 열대성 난을 뜻한다. 이에 대해서 동양란은 온대성 난을 지칭한다. 양란은 무려 750여속에 달하는 종류가 있으며, 여기에다 종속간의 교배종까지 합치면 2만여 종을 헤아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식물가족의 하나이다.양란은 동양란과 달리 향기가 없는 꽃이 많은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양란의 75%가 향기가 있으며, 화려하고 다양한 색상의 꽃을 피우므로 꽃 중의 왕이란 표현이 적절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양란의 종류 중에서 불과 2∼3종의 난만이 일반적으로 재배, 보급되고 있다. 즉, 심비디움과 팔레놉시스(호접란) 및 덴파레등이 그것으로써, 양란의 도입 역사가 짧고 이들이 국내의 수요와 재배 조건에 적합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양란의 주요 분포지는 열대 아시아를 비롯해서 남아프리카와 중남미등 3개 지역이다. 동남아시아와 인도 및 히말라야에는 심비디움, 덴드로비움, 반다, 팔레놉시스 등 양란을 대표하는 주요 종들이 자생하고 있다. 중남미 지역에는 꽃의 왕이라는 카틀레야를 비롯하여 온시디움, 오돈토글로썸, 리카스테 등이 자생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지방에는 안그레컴과 에란시스 등의 종류가 많고 별로 아름답지는 않지만 진귀한 것이 많이 자생하고 있다.양란을 분류하는 여러 가지 기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육의 최저온도에 의한 분류이다.일반적으로 양란은 열대성 식물로 알려져 있어 더운 곳에서 자라는 식물로 생각해서 필요 이상의 고온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생육의 최저온도를 알아두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취미적 재배의 경우에는 취향에 따라 품종상의 선택폭이 크지만, 산업적 재배의 경우에는 생육의 적온유지가 최적경영의 관건이 되기 때문에 기온 등 재배여건에 가장 적합한 난 종류를 선택해야 한다.우리나라와 같은 온대지방에서는 생육 최저온도가 0∼10℃ 범위의 양란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Ⅰ. 지고페탈륨(Zygopetalium){원산지를 보면, 브라질을 중심으로 하여베네수엘라, 가나에 걸쳐서 약 18∼50여종이 자생하고 있다고 하는데, 원예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5종 정도로 이들간 교배에 의해서 품종이 육성되고 있다.생장 형태를 보면, 늦봄부터 리드가 발생하기 시작하여 초가을에 성숙이 거의 완료된다. 신초가 성숙한 벌브의 기부에서 화경이 신장하기 시작하여 초겨울부터 개화가 시작된다. 개화가 끝난 후에도 리드는 잎의 생장과 벌브의 비대를 계속하여 이듬해 여름까지 생육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뿌리의 형성은 리드가 신장하기 시작하면서 이루어지는데 화아분화도 뿌리형성 시기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겨울철 최저온도는 10℃ 정도이나 생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15℃정도에서 관리하는 것이 이상적인데, 비교적 성질이 강건하고 재배가 용이하다.1. 경영상 특성종에 따라서는 꽃잎이 상하기 쉬워 약간의 물리적 상처나 마찰에 의해서도 화색이 검게 변색되고, 화형 및 화색이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인기는 그다지 없다. 꽃 중에는 진한 향기를 가지는 것과 흰 입술꽃잎에 보라색 반점이 아름답기 때문에 재배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주력생산은 어렵겠지만 경영의 일부로 도입 할 수 있다. 국내 재배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나 양란 심비디움이나 팔레놉시스가 향기를 갖지 않는 반면에 이 지고페탈륨은 진한 향기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향기를 선호하는 소비자에게 선물용으로 일부 재배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2. 계통과 품종특별히 출하기를 조절하기 위한 작형의 개발은 되어 있지 않으며 자연개화기인 12월부터 봄에 걸쳐 출하하고 있다. 원종으로는 멕케이, 크리니텀, 멕시라리아가 있고 이들과 교배에 의해서 개화가 오래가는 것, 잎술꽃잎에 반점이 적자색인 것 또는 농적색인 것 등이 육성되어 있다.1) 멕케이초장은 60cm 정도, 벌브는 타원형으로 6∼8cm, 옆장은 30∼50cm, 화경길이는50∼60cm, 꽃직경이 7∼8cm 정도로 5∼8송이 핀다. 악편과 꽃잎에는 담황록색의 반점이 있고 입술꽃잎은 크며 흰바탕에 청자색의 반점이 있다. 진한 향기를 지니고 있으며 개화기는 12월에서 초봄이다.2) 인터메딤멕케이의 기본형으로 꽃잎과 악편의 바탕색은 녹색에 가깝고 갈색반점이 있다. 입술꽃잎은 청백색으로서 청자색 반점이 아름다우나 입술꽃잎에는 짧은 털이 돋아 있다. 멕케이와 함께 브라질이 원산이다.3) 멕시라리아잎은 가늘고 화경은 직립 또는 완곡하며, 꽃은 멕케이보다 약간 작다. 악편과 꽃잎에는 밝은 녹색바탕에 동갈색의 반점이 있으며 입술꽃잎의 반점은 자청색을 띠고 있다. 개화기는 겨울에서 봄이며 개화기간도 같다. 원산지는 브라질과 파라과이이다.4) 크리니텀벌브는 계란형으로 5∼8cm 정도이며, 엽장은 30∼40cm, 화경은 직립성으로 30∼40cm 정도로 5∼8송이가 착생된다. 꽃의 직경은 6cm 정도로 멕케이보다 소형이다. 악편과 꽃잎에는 녹색바탕에 밤색 반점이있다. 입술꽃잎은 흰바탕에 보라 또는 적색줄이 들어 있다.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개화가 이루어진다.3. 재배기술1) 번 식실생번식, 메리크론묘, 분주법이 있다.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분주법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대량 번식을 위해서는 종자의 무균배양이나 정단 및 액아배양을 하는데 조직배양이 용이하다. 분주에 의한 번식은 1개의 리드에 1개의 벌브를 단위로 해서 포기를 나눈다. 고구경은 버리지 말고 수태나 모래에 묻어두면 휴면 중인 눈이 발아하여 새싹으로 자라나온다.2) 이식뿌리가 약하여 플라스크에서 꺼낼 때나 화분이식시 뿌리가 절단되기 쉽기 때문에 이식이나 분주 전에는 관수를 피하고 뿌리를 약간 시들게 하는 편이 취급하기가 편리하다. 분주한 포기는 4∼5인치 화분에 한포기씩 벌브가 약간 묻히도록 정식한다.3) 온 도최저 월동온도는 10℃이나 겨울철에 개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15℃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여름철에는 가능한 한 시원하게 하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실외에서 관리하는 것이 좋다. 여름철 온도가 높고, 환기가 불량하면 잎이 도장되어 아래로 늘어지는 현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개화시 상품가치가 낮아진다. 실외 재배화분의 입실시기는 야간온도가 15℃ 이하로 내려가기 전에 행한다.4) 광호광성 식물이지만 잎이 얇은 관계로 지나친 광선은 황변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이된다. 여름철에는 한랭사로 30% 정도 차광하는 것이 필요하다. 겨울철에는 차광할 필요가 없다.5) 관 수온도가 낮은 겨울철은 약간 건조하도록 재배하지만 연중 충분히 관수하면서 재배한다. 생육이 왕성한 시기에는 식물체 전체에 관수하는 것이 좋으나 온도가 낮은 겨울철은 식물체보다 화분에 직접 관수한다. 가온하기 직전의 저온기에는 관수량을 줄이고 과습이 되지 않도록 한다.6) 시 비생장이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3월에서 가을가지는 골분과 깻묵을 혼합한 고채비료를 화분당 1스푼 정도로 매월 시비하는데, 리드 발생 벌브의 반대편에 주는 것이 리드 부패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 액비로 시비할 경우 1주일에 한번 정도로 관수를 겸해서 시비한다. 비료농도는 규정량의 1/2 정도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4. 병충해 방제특별한 해충이나 병해의 발생은 많지 않다. 고온, 저광도는 잎을 도장시키는 원인이 되며, 저온 다습은 잎에 검은 반점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와 같은 생리적 현상은 농약처리에 의해 방제가 되지 않는다.Ⅱ. 앙그레컴(Angraecum){1. 특 성마디가스카르섬이나 아프리카 서해안 등에서 주로 자생하는 점이 희귀하다. 포기는 막대 모양이며 넓은 잎이 있고 두꺼운 잎이 있는등 여러 가지가 있어 잎이나 줄기의 모습으로 품종을 판정하기가 어렵지만 꽃에는 거(距)라는 부분이 있어 이것이 커다란 특성으로 되어있다.꽃색은 백, 크림, 담록 등이 대부분이며 주색, 홍색, 황색, 블루등은 없다. 겨울∼봄피기가 많고 3∼4주일 정도는 볼 수 있다. 생육은 약간 늦은 편이다.2. 재 배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양란이다. 실내에 두고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게 하되 너무 빨리 밖으로 내놓지 않도록 한다 . 밖에 내놓는 것은 최저 온도가 15℃를 넘을 무렵이 좋다. 햇빛은 좋아하지만 강한 빛이 닿으면 잎이 타므로 50%차광한 곳에 둔 다. 장마철에는 비를 가려 차가운 비로부터 포기를 지킨다. 물은 수태가 마르면 준다. 비료는 줄기의 밑동으로부터 하얀 새 뿌리가 나오면 가을 중간 무렵까지 주 1회, 1000배 액비를 준다. 고형비료는 밖에 내놓은 시기에 2회 정도 준다.최저 온도가 15℃ 이하가 되면 실내로 들여놓는다. 실내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이 잘 닿는 곳에 둔다. 겨울 동안 에는 최저온도가 10℃정도면 월동을 할 수 있지만 15℃로 유지할 수 있어야 포기를 세력 좋게 키울수 있다.
    자연과학| 2003.11.25| 7페이지| 1,000원| 조회(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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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후기의 시대적배경
    사회경제적 배경: 임진왜란, 병자호란이라는 양란을 거치면서도 16세기 개혁을주장하면서 성장한 사림들은, 30년도 안된 효종 대에는 이미 전쟁 피해를 완전히 복구하고, 북벌론을 내세우며 대외관계에서의 자존성을 확립하고 내부적인 개혁을 추진해간다. 이러한 개혁은 우선 농업생산력의 발달을 가져와서 이앙법, 견종법의 하삼도(下三道) 보급이 진행되고 이에 따른 시비법 발달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이앙법 보급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면화재배도 하삼도 보급은 물론 이를 위한 농법의 발달과 지리학에 대한 이해가 촉진되었다.따라서 우리나라는 세종대에 선진적인 과학 기술 수준을 바탕으로 이루었던 선진적인 문화수준을 17·18세기에도 동양삼국에서 그대로 유지하면서 삼국을 주도하여 나가니 이의 표현이 바로 조·청·일 중개무역에서 이루어지는 막대한 무역흑자였고, 봉부동(封不動)으로 표현되는 국가재정의 풍부함으로 나타났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성리학의 발달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에 비해 중국이나 일본은 서양문화가 밀려올 때까지 체제 정비를 하는데 급급할 수 밖에 없었다.이러한 국내 국외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전국에는 명산지가 발달하여 면화왕국의 칭호를 들을 정도로 의복생산을 주도적인 생산으로 하는 중세 공업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발달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국에 장사가 발달하여 18세기 중엽에는 전국적인 시장망이 국도를 통해 연결되는 이상적인 발달이 상업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공업과 상업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수취체제의 변화를 촉진시키니, 사람들은 16세기 균전론 대신 대동법·균역법 등 조세균등론에 입각한 현실적 이상사회를 추구한다.정치적 배경: 따라서 이상사회 건설을 놓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과 공익을 먼저 하려는 세력이 학파를 기반으로 갈등이 일어나면서 정치세력의 갈등으로 발전하고 있었다.그러나 율곡이 집대성한 조선성리학의 성립은 필연적으로 이들 조선성리학파의 정권 장악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율곡학파(서인)가 주동이 되고 퇴계학파(남인)가 묵인한 혁명인 인조반정(1623)의 성공으로 그것이 실현된다. 이제부터 조선은 조선성리학 이념이 주도하는 혁신사회로 돌입한 것이다. 인조반정이 전후기의 분기점이 되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로써 성리학의 예치(禮治)의 시대가 도래하는데, 마침 임진왜란(1592~1598)으로 조선과 명이 피폐해진 틈을 타서 강성해진 만주의 여진족이 대륙을 넘보게 됨으로서 중화 질서는 파괴되고, 이를 고수하려던 조선은 여진족 청에게 양차에 걸쳐 무력으로 유린되며 병자호란(1636)에는 끝내 인조가 청 태종에게 항복하는 치욕을 당한다. 이는 이제 막 예치의 이상을 구현해 내려던 조선지식층들에게 극도의 좌절감을 가져다 주는 일이었다.이러한 갈등은 인조대에는 척화파·주화파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었고, 정계주도는 척화파가 하고 있었지만 여당은 주화파로 야당은 척화파로 나뉘고 있었다. 효종이 등극하여 척화파가 여당이 되어 북벌을 주도하며 민족자존과 번영을 위한 개혁을 주도 하였다.이러한 가운데 이상적 개혁을 주장하던 세려과 현실적 안정을 추구하던 세력이 교체되면서 17세기의 발전을 구가하고 있었다. 결국 적첩문제로 장희빈을 둘러싸고 일어난 성리학 성리학 이념 논쟁을 끝으로 숙종 20년(1694) 갑술환국 이후부터는 조선성리학이 절대적인 가치기준으로 자리를 굳혀나간다. 결국 17세기 붕당정치는 인조반정의 주역으로 혁신이념을 추구해온 율곡학파인 노론이 주도하며 연립내각을 이루는 탕평정치로 발달하여 영·정조대 진경시대라는 문예부흥의 꽃을 피우게 된다.더구나 이 시기는 이미 중국에서 중화문화의 정통계승자인 명(明)이 멸망하고(1661) 우리가 야만시하는 여진족 청이 전중국을 차지하여 그들의 문화를 강요하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중화문화가 중국에서는 소멸한 것으로 보고 우리가 그 계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포부를 가지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조선이 곧 중화문화의 정통계승자라는 자부심과 함께 조선성리학을 바탕으로 싹트여왔던 조선고유색은 더욱 더욱 활기를 띠고 발전해 나가게 된다. 조선성리학과 조선중화주의가 사상적 바탕이 되며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이다.그러나 이러한 번영도 18세기 중엽을 고비로 사회재편성을 요구하는 시대 흐름에 의해 무너져가는데, 근대사회로의 사회재편성을 이루어내려는 세력이 바로 북학파로 등장하며 벌열화된 구세력과 대립을 시작하게 된다.1. 조선후기 철학사상조선후기 사상은 조선성리학이라는 것을 거의 모든 사람이 인정한다. 그러나 그동안 조선후기 사상은 성리학이기 보다는 실학이라고 인식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기존의 실학자들을 조선성리학자와 북학사상가로 구분하고 논리를 정리해 가야 한다.그러면 조선성리학자와 북학사상가의 차이는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가. 조선성리학자는 성리학자이므로 당연히 성(性)을 이(理)로 보는 것이고 북학사상가는 성리학을 탈피하였으므로 성을 이로 보는 것을 부정하여 가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러므로 그 동안 실학자라고 파악하였던 이수광·유형원·이익·안정복·박세당 등은 성을 이로 보는 조선성리학자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홍대용·박지원·박제가·정약용 등은 성을 이로 보지않는 북학사상가로 보아야 한다.그리고 조선성리학자 중에 주기·주리파가 있고 주기파는 율곡학파인 우암 송시열, 남당 한원진으로 이어지는 노론이고, 주리파는 퇴계학파인 미수 허목, 성호 이익으로 이어지는 남인이었다. 이를 실학파 주기파, 성리학자 주리파라고 하는 등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을 가지게 된다.또한 기존에 주자를 부정하는 윤휴 박세당 양명학자 등을 성리학을 부정하는 실학자로 보려는 경향은 잘못된 것이다. 이들이 탈주자학자일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성을 이로 보는 성리학자임에는 틀림이 없고 성리학을 부정 탈피하여 성을 이로 보지않는 북학사상가들과는 엄연히 구별되어야한다.17세기에 들어서면 율곡 이이 계통을 잇는 김장생·송시열·송준길·이유태·유계 등이 나와 율곡의 기발이승지(氣發理乘之)만을 인정하는 이통기국(理通氣局)설에 입각한 조선성리학의 이해를 진전시켜 이의 보편성을 현실에 맞게 정립하여 가려는 노력을 한다.이러한 노력이 토지를 소유하는데 기득권을 차지하지 못한 신세력인 율곡계의 서인을 대변하는 우암 송시열이 심을 기로 본다든지 하는 기중심설이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난다.이러한 조선성리학을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여 이해하는 과정은 현실적으로 화이론인 북벌론과 종법논쟁인 예송과 장희빈사건으로 대표되는 적첩문제로 논의되면서 정쟁으로 비화되어 첨예한 학파간의 대립을 나타내지만, 결국 성리철학을 보편성을 추구하며 현실에 대응하여가는 철학으로 이해한 율곡계통 서인의 승리로 학파간 이념논쟁은 결판이 나고, 율곡학파가 학계와 정계를 주도하여 간다. 이러한 조선성리학의 이해를 기반으로 영조대에는 보편성에 입각한 조선의 독창적인 진경문화가 꽃을 피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결국 성리학자체가 시대 변화에 따라 주도권을 상실하는 과정에서 유교를 시대를 이끌어가는 주도이념으로 재구성하여 보려는 몸부림이었다.이러한 몸부림은 보편성 즉. 본질을 강조하는 낙파가 고증학을 수용하여 북학사상으로 재구성하는 주도세력으로 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서구사상이 들어오면 이를 수용하여 재구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이는 청조고증학을 새로 받아들이려는 북학운동으로 나타나게 되고 영명한 군주였던 정조(1776~1800)는 규장각을 설치하여 이의 수용을 적극 후원한다. 그래서 왕실주도하에 최고 집권층의 연소자제들을 중심으로 개혁운동이 서서히 진행되어 간다.2. 조선후기 역사인식조선 후기에는 성리학이 토착되어 역사서술체에서는 성리학적 정통론에 입각한 강목체 사서가 주류를 이룬다. 이들은 중화문화를 전달한 기자조선을 정통으로 보아 위만조선을 찬탈자로 보고, 특히 발해는 우리나라에서 제외시키는 등 화이론에 입각한 역사인식을 가진다. 화이론에 입각하여 조선을 중화로 보는 역사인식은 화(華)를 불변의 이(理)로 보고 이(夷)를 가변의 기(氣)로 보아, 중화의 본질 자체는 절대로 변할 수 없다는 주자성리학적 이기관 자체의 철저한 민족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안정복의『동사강목(東史綱目)』은 주자의 강목체를 따르는 사서로서는 가장 우수한 개설서로 꼽힌다.『동사강목』은 위만조선을 찬탈왕조로 다루고 발해를 말갈왕조로 보아 우리 역사에서 제외시켜 버렸는데, 이는 조선성리학자로서 당연한 인식이었다.조선전기에는 기자조선만이 강조되어 왔으나 16세기부터 전설적이던 단군조선을 역사적으로 부각시켜 18세기에 이르면 단군조선에서부터 기자조선→삼한→삼국→신라→고려→조선으로 정통이 이어짐을 명확히 한다.성리학의 심화된 이해로 종법질서가 일반화됨과 맥을 같이하여, 단군을 요순에 대치시키고 기자를 주공에 대치시키면서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계보를 정립해 나갔다. 이로써 단군조선은 요순시대와 병립하는 이상사회로 올라가고 중화문화의 기원 이 중국과 대등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예술에 있어서 동국진경, 동국전체 등의 조선고유색을 표현하는 경향과 일치되고 있다.3. 조선후기 사회경제사상조선후기에 성리학 이념에 입각하여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왕도정치를 표방하였고, 왕도정치의 사회경제적인 실현방법으로『맹자』의 정전론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정전제를 시행하는 방법으로 학파마다 주장이 달랐다.
    인문/어학| 2003.11.25| 7페이지| 1,000원| 조회(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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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구
    {나의 경험 및 느낀점{제가 탁구를 처음으로 접했던 때가 초등학교 5학년때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저희 학교에 탁구대가 2대가 생기게 되었고 저는 친구들과 호기심에 매일같이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잘 치지는 못했어도 정말 재밌게 그리고 열심히 배우려고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탁구대를 놓을만한 공간도 집에 없는데도 철없이 부모님께 탁구대 사달라고 졸랐을 정도로 잠시나마 탁구에 빠졌던 것 같았는데 그것도 잠시 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가끔 한두번 탁구장을 찾았을 뿐 거의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남자라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군대엘 가서야 또 한번 탁구의 재미에 빠졌었는데 이번 학기의 강의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탁구에 대한 인식 자체가 잘못되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어려서부터 단순히 오락적 재미에 빠져 탁구를 쳤었기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이것이 스포츠의 한 분야라는 인식은 가끔 올림픽등에서 보는 중계방송을 볼 때 뿐이지 평소에는 탁구에 대한 인식이 단순한 유희적인 게임의 한 형태정도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한겨울에 비닐 하우스 식으로 쳐진 휴게실 안에서 탁구를 칠때면 처음 시작할 때에는 손이 시려서 꺼내지도 못할 정도였던 것이 한 두 게임 치다보면 몸에서 땀과 열이 나고 손 시려웠던 것이 싹 가시는 그런 경험을 많이 해 보면서 아 탁구가 운동 효과가 있긴 있나 보다 하며 의아해 했었고 무리하게 한 다음날이면 어깨랑 손목부분등에 무리가 가는 것도 느끼면서 탁구를 쳐 왔지만 몸으로 단순히 즐길줄만 알았지 이론적인 부분에 너무 무관심했다는 것을 이번 강의를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규칙이 개정된 사실도 이번 강의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나 자신이 너무 관심이 없었구나 하는 사실에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쉽게 언제든지 접할수 있는 생활 스포츠의 하나로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즐긴다면 몸건강,마음건강 정말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탁구 뿐만이 아니라볼을 네트를 넘겨서 상대측의 코트내에 라켓으로 쳐서 보낸다. 랠리는 탁구대를 사이에 둔 양측이 번갈아 가면서 볼을 주고받는 것으로 진행한다. 또 탁구의 복식은 테니스와 달리 같은 사람이 2회 계속 쳐서는 안 된다. 서브한 볼이 상대측 코트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플레이 중의 볼이 코트 밖으로 나가거나 네트에 걸렸을 때 랠리중의 볼을 치지 못하거나 노 바운드 또는 2회 바운드 한 다음 쳤을 때 실점이 되며 상대측의 득점이 된다.(4) 예의사항1 규정된 운동복 및 운동화를 신고 간단한 복장을 한다.2 항상 자기 라켓을 가지고 친다.부득이한 경우 라켓주인의 허락을 받고 친다.3 탁구를 치기 전에 항상 서로 인사를 하며 예의를 갖춘다.4 탁구를 칠 때에 껌을 씹거나 모자를 쓰거나 주머니에 손 을 넣고 치는 등 예의에 어긋나는행동을 금한다.5 탁구를 치다가 공이 외부로 흘렀을 경우 공을 먼저 주우러 가야되며 상대방이 주우러 갔을경우 반 정도를 따라가 준다.6 공이 외부로 나가 옆 테이블로 들어갔을 경우, 방해가 되지 않게 밖으로 돌아서 주우러 간다.7 경기 중 네트나 에지를 했을 경우 '미안합니다' 또는 '죄송합니다' 라고 예의를 표한다.8 득점을 했다하여 너무 좋아하거나 큰소리로 웃지 않는다.9 선배나 후배와 칠 때도 기본예의를 갖추며 특히 下수와 칠 때에 최대한 성실하게 친다.⑩ 경기가 끝난 후 서로 인사를 하며 게임결과에 깨끗이 승복한다.(5)탁구 경기의 특징탁구경기는 좁은 장소에서 또한 적은 인원이라도 언제나 즐길 수 있으며 또한 운동자체가 별로 과격하지 않아서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종목이다. 따라서 각급 학교의 정규체육시간, 특별활동 시간에도 이용할 수가 있으며, 직장인의 건강과 체력의 유지와 증진을 위하여도 이용할 수가 있으며 특히 레크레이션으로도 이용할 수 있어 이용 범위가 넓다. 그리고 탁구경기에 동원되는 운동기능이나 운동능력, 그리고 체력적 측면도 다른 어떠한 종목보다 다양하다. 탁구경기를 잘 할 수 있는 기초적인 요인은 신체적인 요인, 인지적인 판을 해치는 행위를 삼가해야 한다.{탁구의 기술14. 푸시푸시는 푸싱이라고도 하며 네트 가까이에서 높이 튀어오는 볼을 손목을 강하게 제치면서 쳐 보내는 공격적인 쇼트의 일종이다.1 앞 팔의 안쪽을 위로 향하게 하고 라켓을 직각으로 하며 프리핸드도 직각으로 굽혀 전방으로 밀어낸다.2 프리핸드는 끌어서 라켓을 앞쪽으로 밀어낸다.3 임팩트 직전에는 오른쪽 허리를 앞으로 내밀면서 왼쪽 허리를 끈다. 이 때에 프리핸드는 아직 뒤쪽으로 흔든다.4 임팩트 직후에는 왼쪽 허리가 크게 뒤로 오른쪽 허리가 크게 앞쪽으로 이동한다. 이에 따라 중심도 약간 앞쪽으로 이동하지만 발의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5 Finish에서의 어깨의 선은 백 스윙을 하였을 때부터 80~90도 돌아간다. 또한 프리핸드는 직각을 유지한대 로 최대한 뒷쪽으로 흔든다.6 타구 후에는 뻗었던 팔꿈치를 굽히고 앞으로 일었던 허리를 위로 빼서 기본자세로 되돌아간다.7 임팩트까지 볼을 정확하게 주시한다.8 왼쪽 어깨가 너무 되로 돌아가지 않도록 한다.9 팔을 앞으로 밀때는 스피드가 가장 강한 위치에서 임팩트가 되도록 타이밍을 맞춘다.⑩ 타구시에 중심은 좌우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게 한다.15. 스핀스핀(Spin)이라는 것은 볼을 회전시키는 것을 뜻하는 포괄적인 뜻으로서 이를 크게 분류하면 전진성의 회전, 후진성의 회전, 옆 회전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전진성의 회전은 흔히 드라이브(Drive)에서 백 스핀 혹은 후진성의 회전은 커트스트로크(Cut_Stroke)를 할 때에 일어난다. 좌우 어느 쪽이든가 휘어지도록 하는 회전은 사이드 스핀(Side_Spin)을 할 때에 이루어진다.(1) 전진 회전볼을 칠 때에 볼의 뒷면을 밑에서부터 위로 라켓을 움직이면서 볼을 긁어 올리거나 또는 볼의 윗면을 뒤에서부터 앞으로 향하여 긁어 칠 때에는 볼 자체에 전진성의 회전력이 붙게 된다. 이것을 전진회전(Top_Spin)이라고 한다. 이 전진 회전을 가진 볼은 전진하는 부분에 공기의 저항을 받아 볼의 아랫부분의 회전력과 저항력이 같은 3구의 겨냥공격이 비교적 용이해 진다. 그러므로 게임에 있어서는 이 사이드 스핀 서어브가 장단으로 나누어져 흔히 쓰여지게 된다.(6) 너클성서어브(무회전)위의 각종 변화 서어브와 함께 때로는 너클성 서어브도 희소 가치적면에서 쓰여진다. 특히 백 스핀 서어브와 혼용될 때 백 스핀 서어브의 경우는 바운드가 얕으므로 긁어올려 쳐야 되기 때문에 이 너클성 서어브도 백 스핀 볼과 같이 긁어 올려치면 아우트되는 수가 많다. 또한 강한 루프성 드라이브를 봉쇄하는데도 효과적이며 반대로 상대방이 커트로 리시브할 경우 커트성 또는 스핀 서브를 넣게 되면 리턴되는 볼의 회전이 가속되어 보다 심한 변화(회전성)를 일으키게 되므로 제 3구의 스매싱 챤스를 겨냥하여 쉬운 볼을 받기 위해 때로는 너클성 서어브도 기술상 필요하다.(7) 서어브의 규칙시합 전에 '가위바위보'나 '동전던지기'로 서브권 및 진영을 결정한다.정규 서브는 정지한 손바닥 위에서 공을 회전시키지 않고 수직 또는 거의 수직으로 상공에 던져 올리며, 공은 손바닥에서 던져 올려졌음을 심판에게 인정될 정도(약16cm)가 되어야 한다. 공이 상공에 던져졌다가 최고 상승점에 도달한 후 낙하 단계에 공을 쳐서 자기측 코트에 닿은 후 네트를 넘어 상대 코트로 넘어가게 한다.서비스에는 라켓을 잡지 않은 손의 손가락을 똑바로 펴서 밀착시켜 엄지 손가락만을 떼고 손바닥 위에 공을 올려 놓아야 한다. 공은 서브 동작을 취하기 시작해서 라켓으로 공을 칠 때까지 항상 심판에게 보이도록 탁구대보다 높게 위치해야 한다. 라켓이 공에 닿는 순간에 공의 위치는 코트의 엔드 라인 또는 그 공중의 연장선보다 뒤쪽이어야 한다.(8) 효과적인 서어브 방법1 포오와 백을 같이 공격할 수 있는 상대에게 상대방의 미들(middle)쪽 서어브가 유효하다.2 백은 푸시, 포어는 공격하는 형에 대하여서는 백 쪽 깊숙한 백 스핀 서어브는 상대방이 백으로 끌어 올리면서 리턴시켜야 되므로 가장 유효하다.3 상대방이 포오의 공격 하나만일 경우에는 포오 핸드 서어브가 보다 뒤로 틀면서 라켓이 어깨 높이에 오도록 오른팔을 가져온다. 이와 같은 위치에서 코트에 일단 바운드 되어 튀어 올랐다가 떨어지려는 순간의 볼을 자기가 보내고자 하는 방향으로 힘껏 쳐 내린다. 일단 스매시를 한 후에도 곧 기본자세로 돌아와서 다음에 넘어올 볼을 대비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빠르고 강력한 스매시를 하였다고 해도 볼이 다시 넘어오기 때문이다. 스매시의 스윙은 전력을 다해서 뒤흔들기 때문에 일단 스윙을 하게되면 방향을 바꾸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처음에 엔드 라인을 목표로 하는 것이 득점에 연결되기 쉽다. 그러나 자꾸만 반복하여 그곳으로 보내면 상대편이 그 곳을 미리 지키기 때문에 볼을 보내는 방법을 수시로 불규칙하게 바꾸어야 한다.(2) 백 핸드 스매시1 왼 발을 빗겨 뒤로 30cm 가량 내어 두고 몸은 상대편이 자기의 몸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왼쪽으로 튼다.2 라켓의 끝이 옆으로 향하도록 하며 라켓을 잡은 손의 팔꿈치는 옆구리의 닿을 듯하게 복부를 움추리는 듯하게 앞으로 기우는 자세를 유지한다.3 상체는 너무 비틀지 않도록 하고 프리 핸드는 높게 몸의 앞쪽으로 나가게 한다.4 포어 핸드 스매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볼이 일단 바운드 되어 최고의 높이에 이르렀다가 떨어지는 순간에 쳐서 넘기는데 세이크 핸드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으면서 쳐 나가고 펜 홀더는 오른발을 내딛는 것보다 좌측 허리를 돌려서 축이 되는 발을 중심으로 몸을 회전시키면서 쳐 나가도록 한다.5 내딛는 발의 위치는 임팩트 되는 곳보다 약간 뒤로하고 좌측 허리를 회전시키면서 정확하게 타구점에 이르도록 한다. 그러나 왼발을 내밀어 치는 것이 아니고 좌측 허리가 앞으로 나오므로 몸 전체도 앞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내딛고 치는 형태가 되고 이것은 다음의 포어 핸드에 재빨리 연결되어 획돌기 쉽게 된다.백 핸드 스매시를 숙달하게 되면 역학적인 면에서 볼 때 백핸드 스매시는 포어 핸드 스매시보다 더욱 위력이 있게 된다. 왜냐하면 볼의 속도와 강도는 스윙의 크기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스윙의 범위는 포어이다.
    예체능| 2003.10.17| 16페이지| 1,000원| 조회(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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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전기의 시대적배경
    ▶서론사회경제적 배경: 여말에 주자성리학이 도입되면서 강남농법이 들어와 이앙법이 전파되고 이를 위한 시비법의 발달이 진행되어 휴한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연작법이 확립되어가며 15세기 후반에는 수리시설의 보급과 함계 이앙법이 확산되기 시작한다. 또한 여말에 면화를 도입하여 물레의 발달, 면화 재배기술의 발달과 함께 면포생산이 급격히 증가하여 면화재배가 확산되기 시작한다.이러한 식량과 의복에서의 생산력 발달은 지금까지 남아있던 목축과 농경을 병행하던 전사단 중심의 귀족사회 잔재를 일소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표현이 전시과체제로 남아있던 전사단 귀족의 봉읍제적 요소를 사전혁파로 일소하며 이를 경작하고있던 향·소·부곡이라는 천민집단의 잔재를 일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이는 사상적으로 유교가 주도적인 사상 생활 관습으로 정착하여가면서, 고대사회를 이끌어가던 불교를 부차적인 위치로 격하시켜 민간신앙만을 담당하게 하는 형태로도 나타났다.정치적 배경: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정치세력의 교체를 가져오게 되는데 군인전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되었던 호족 성주 향리 등의 무신세력이 사대부 지주세력으로 대표되는 문신세력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부차적인 위치로 전락하여가는 과정에서 농업문화를 주도하는 문신우위의 양반체제가 확립되고 양반과 중인의 구별이 강화되는 현상이 진행되어 갔다.이는 반원정책·역성혁명·세조찬탈·증종반정을 겪으며 등장하는 주자성리학자인 사림세력의 확대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훈척과 갈등을 일으키며 나오는 사림세력이 이황을 중심으로 한 명종대 사림이었다. 이들은 결국 성리학 이념에 맞게 선조를 옹립하여 사림정치를 구현하려 하니,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동서분당이었다. 동서분당은 주자성리학적인 개 혁을 추진하는데 따른 입장차이로 나타나고 있었고 이는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로 나누어지고 있었다.사상문화적 배경: 조선왕조는 개 국 당초에 성리학을 국시로 천명한다. 원래 주자성리학은 수기치인의 방법으로 치세를 목표삼던 유교 윤리에 불교의 철학적 우주론이 영향을 미쳐 인물성의 본연과 차별의 한 분파이다. 이는 유교 윤리 실천의 당위성을 우주론적인 입장에서 설명할 필요가 절실하였기 때문에 출현한 학문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이런한 주자성리학은 남송에서 태어난 주자가 정호·정이 형제가 「대학」·「중용」을 중심으로 체계를 세우기 시작한 사서 중심의 유학을 집대성하여 이일분수라는 보편성에 입각한 철학적 우주론을 이지발·기지발 이라는 인성론에 결합시켜 만든 사상체계이다.또한 주자(朱子, 1130~1200)는 송(宋)이 중화문화의 중심지 황하유역을 상실한 뒤인 남송대에 나서 활동하였으므로 오랑캐에게 국토를 강점당한 현실은 인정할 수 밖에 업으되 그것은 가변적인 요소 즉 만물생성의 원인인 기의 작용에 의한 것일 뿐 중화의 본질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불변의 요소로 만물생성의 원리인 이가 엄존함을 주장하였다.이러한 주자성리학이 원 지배기에 고려에 도입되어 조선전기에 정착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불교와 도교를 민간신앙으로 편제하여 가는 것을 살펴보려한다.이처럼 조선전기 주자성리학이 정착되어 가면서,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인 변화와 함께 정치세력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개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속에서 그 이념적 지주가 되는 사상의 변화를 살펴보자.▶본론1. 조선전기 철학사상충렬왕 14년 고려 유학제거의 자격으로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도에 갔던 안향은 「주자전서」를 등사해 와서 최초로 주자성리학을 우리나라에 소개 한다. 뒤이어 충렬왕 24년에는 그의 제자인 백이정이 충선왕을 호종하여 간 다음 10년동안 원도에 머므르면서 주자학 연구에 몰두하여 그 대강을 체득하고 돌아오는데 드디어 충숙왕1년에는 충선왕이 원도에 만권당이라는 독서당을 세우고 조맹부, 염복, 요수, 우집 등 당대 제일의 한인 주자성리학자들을 초치하여 백이정의 제자인 이제현 등으로 하여금 이들을 좇아 배우게 하니 주자성리학이 본격적으로 고려에 전수된다. 그 결과 고려에는 많은 신진 주자성리학도들이 길러지게 되는데 이들이 주축이 되어 고려왕조를 뒤엎고 그들의 이상에 맞는 새 나라를 건설하니 이것이 조선왕조이다. 그래서 조선은 개 국 당초에 성리학을 국시로 천명하였던 것이다.중종반정이후 사림들이, 성종대 사림들이 소학, 대학연의를 기반으로 성리학적인이상사회를 건설하려했던 이학중심의 단계를 탈피하여, 진덕수가 지은 「심경」에 정민정이 주를 붙인 「심경부주」를 이해하여 성리학적인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심학의 중심단계로 발전한다. 이를 위해 우선 주자성리학에 대한 이해를 서두르니,이것이 주자가 정자 등의 설 중에 성리학 이해에 가장 중요한 부분만을 추려 놓은 「근사록」의 이해를 서두르는 것으로 나타난다.율곡 이이는 이(理)는 불변적인 요소이며 기(氣)가 변화할 때 그에 편승할 뿐이라는 이기일원론을 주장한다. 즉 원리인 이는 항상 불변하는 근원적인 존재로 만물이 공유하는 것이고 만물의 차별상을 드러내는 것은 기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학설이다. 이는 주자가 의도했으되 미처 발명해내지 못한 연구성과이었다. 이로써 성리학은 외래사상의 한계를 벗어나 조선 고유사상으로 발전적인 토착화에 성공하게 된다. 이제는 주자성리학이 아니라 율곡성리학 즉 조선성리학이 된 것이다. 만권당을 통하여 주자성리학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지 250여년만에 이룩한 자기화의 성공이었다.2. 조선전기 예학사상조선시대 의례 개 념의 변천을 대략적으로 살펴 보았을 때 우선 주자성리학이 조선성리학으로 변천함에 따라 의례 개 념도 이를 반영하며 변천해 간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조선전기에는 주자성리학을 집대성한 「대학연의」가 지침서이었다가 조선후기에는 조선성리학을 집대성한 「성학집요」가 지침서가 되듯이, 주자성리학을 대변하는「주자가례」에서 조선성리학을 대변하는「가례집람」으로 변천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주자성리학이 수용되면서 성리학 자체가 의리명분론에 입각한 정통론이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신분적인 상하질서를 중시하던 의례에서 의리명분과 정통을 중시하는 의례로 변천하여간다.3. 조선전기 역사인식주자성리학의 수용과 함께 역사인식도 변화한다. 북송대에 조조를 정통으로 하는 사마광의「자치통감」을 따라 지어진「삼국사기」의 역사인식은, 남송대에 유비를 정통으로 하는 주자의「자치통감강목」의 예를 따라 강목체 역사인식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출발이 여말에는 민지의「본초편년강목」, 이제현의「동국사략」, 이색의「금경록」으로 나타나고 있었다.세조대에 중국의「자치통감」에 견줄만한 훌륭한 우리나라 역사서를 서술할 계획으로「동국통감」을 편찬하려고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성종 7년(1476)「삼국사절요」라는 명칭으로 삼국시대 역사서술만 다룬 책이 만들어져「고려사절요」와 더불어 조선이전 역사가 정리된다.이외에도「조선왕조실록」과「국조보감」등이 성리학 이념을 바탕으로 역사는 정치의 귀감이라 하여 역대의 사서들이 편찬되었다.16세기에 들어와 주자성리학 이해가 진전되면서 사회이념으로 정착되어가니 이에따른 역사인식의 변화도 필연적으로 수반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우선「소학」이나 「근사록」같은 성리철학서에 비교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역사서가 나타나고 있었다.4. 조선전기 사회경제사상이러한 철학, 예학, 역사인식에서의 성리학의 수용은 사회경제사상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주자가 권농서에서 지주전호관계를 상호협조관계로 애기하면서 사창제 실시, 향약 실시 등을 내세웠던 것은, 그 당시 봉읍제에 바탕을 둔 고대 전사단 중심의 귀족사회 잔재를 지주제에 바탕을 둔 사대부 지주의 주도하에 일소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귀족분권적인 수조체제에서 중앙집권적인 수세체제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체제를 확립하려는 것이었다. 즉 소유권을 기반으로 한 지주제를 확립하면서 정전제인 공법 시행을 통해 조세를 균등히 하려는 정책이었다.
    인문/어학| 2003.10.05| 6페이지| 1,000원| 조회(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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