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국 계몽 운동1) 시대적 배경애국 계몽 운동은 갑신정변과 독립 협회 활동 등의 개화 자강 계열 운동을 계승한 구국 민족 운동이었다. 의병 전쟁이 무장 투쟁을 통한 주권 회복 운동이라면, 애국 계몽 운동은 실력 양성을 통한 주권 회복 운동으로 지식인, 관료, 개명 유학자 등이 주도해 나갔다. 을사조약을 전후하여 독립 협회 해체 이후, 보수 정권의 압제 체제가 더욱 강화되고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이권 침탈 격화되자 학교 설립과 신문 잡지의 발간, 산업 진흥 등을 통해 경제적 문화적 실력을 양성함으로써 점진적으로 국권을 회복하려는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2) 전개과정이 운동은, 황무지 개척을 핑계로한 일본의 토지 약탈 계획을 저지하였으나 일본측의 압력으로 해산당한 1904년 보안회의 활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05년에는 헌정 연구회가 조직되어 대중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을사조약 체결을 반대하는 등 점차 반일적 성격을 띠자 일본은 자신들의 침략 정책에 맞서지 않는 문화 운동만을 허용하고 일체의 정치 활동은 금지하여 탄압하였다. 1906년에는 헌정 연구회를 계승하여 교육 개발과 식산 흥업을 표방한 대한 자강회가 설립되어 전국에 25개의 지회를 두고 연설회를 열면서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으나 일본인 고문 오가키의 파괴 책동으로 강 제 해산되었다.이와 같이 정치 운동이 금지되자 이후로는 학교 설립을 통한 신교육 운동, 실력 양성을 위한 식산 흥업 운동이 중심이 되었다. 계몽 운동가들은 서북 학회, 한북 흥학회, 호서 학회, 호남 학회, 관동 학회, 기호 흥학회 등을 조직하여 기관지를 발행하고 사립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 운동을 폈다. 1908년 사립 학교령에 의해 공인을 받은 것만도 2,000여 개에 달했던 이때의 학교들은 서양의 근대 문물 학습과 애국정신 함양을 통해 많은 민족 운동가들을 길러 냈다.언론을 통한 계몽 운동도 대한 매일 신보, 황성 신문, 제국 신문, 만세보 등의 신문과 소년을 비롯한 각종 잡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 신문과 잡지도 국민 계 알렸다. 이로 인해 일본 관헌에 잡혀 3개월간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정부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기용하였으나 거절하고, 물러나 역대 문헌의 수집과 저술에 힘썼다.1906년 윤효정(尹孝定) 등과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를 조직, 구국운동을 벌이다가 이듬해 강제로 해산을 당하자 대한협회(大韓協會)로 개편하였으나, 압력이 심하여 1908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해조신문(海潮新聞)》 주필이 되었다.나수연 [羅壽淵, 1861~1926]- 호 소봉(小蓬). 한성영어학교(漢城英語學校)를 졸업하고, 1898년(광무 2)에 남궁 억(南宮檍) 등과 함께 《황성신문(皇城新聞)》 발간에 참여하였다. 독립협회 회원으로 민중계몽과 민족정신 고취에 힘썼다. 국권피탈 후에는 서화가로 활약하였다.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으며, 특히 난초를 잘 그렸다.(2) 대한 협회(1907)ㆍ일제 통감부에 의하여 강제 해산된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를 재정비하여 국민을 개화교도(開化敎導)한다는 취지로 단체를 조직하였다. 총재에 남궁억(南宮檍), 부회장에 오세창(吳世昌), 총무에 윤효정(尹孝定) 등.ㆍ국가의 부강, 교육과 산업의 발달을 추구하였고, 관인 폐습의 교정, 근면 저축의 실행, 권리·의무·책임·복종 등 국민의식의 고취를 목적으로 하였다. 교육 ·법률·재무·실업·지방부 등 5개 부서를 두고 세율 교정, 재산피탈사건 조사, 강연회 등을 통해서 국민의 권리 보호에 앞장섰다.오호라! 금일 우리 대한에 무엇이 있는가? 국가가 있건마는 국권이 없는 나라이며, 인민이 있건마는 자유가 없는 백성이며, …… 오호라! 지구상의 강국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나라도 한차례의 고통도 없이 능히 흥한 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크도다! 우리 한국의 오늘의 희망이요, 아름답도다! 우리 한국의 희망이오. - 《대한협회회보》신채호의 글 中ㆍ1908년 4월 25일 《대한협회회보》를 창간, 이를 통해 정치 ·사상 ·역사 등을 교양 ·계몽하였다.남궁 억 [南宮檍, 1863.12.27~1939.4.5]- 본관 함열(咸悅). 호 한서(翰1897년 독립협회(獨立協會)에 가입하고 평양에 지부를 설치하기 위한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쾌재정(快哉亭)에서 개최하여 약관의 몸으로 많은 청중에게 감동을 안겨준 연설을 하였다.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907년 이갑(李甲)·양기탁(梁起鐸)·신채호(申采浩)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를 조직,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新報)》를 기관지로 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구에 태극서관(太極書館)을 세워 출판사업을 벌이고 평양에 도자기회사를 설립하여 민족산업육성에 힘쓰는 한편 평양에 대성학교(大成學校)를 설립하고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를 조직하여 민족의 지도자 양성에 힘쓰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전개하였다.1910년에는 신민회 간부들과 함께 개성헌병대에서 3개월간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는데 이는 1909년에 있었던 안중근(安重根)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암살사건에 관련되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그 후 시베리아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 1912년 그 곳에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중앙총회를 조직하여 초대 총회장에 취임하고, 기관지 《신한민보(新韓民報)》를 창간하였다.‘105인사건’으로 신민회·청년학우회가 해체되자 1913년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하였다.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로 가서 임시정부 조직에 참가하여 내무총장·국무총리대리·노동총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신문(獨立新聞)》을 창간하였다. 1921년 임시정부가 내부분열을 일으키자 이를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1923년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924년 미국으로 건너가 흥사단 조직을 강화하였다.신채호 [申采浩, 1880.11.7~1936.2.1]- 본관 고령(高靈). 필명 금협산인(錦頰山人)·무애생(無涯生). 호 단재(丹齋)·일편단생(一片丹生)·단생(丹生). 1880년 12월 8일 충청남도 대덕군(大德郡) 산내면에서 출생하였다. 1897년 신기선(申箕善)의 추천으로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가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그해 을사조약대한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하였다.서북학회 회관 (현재 건국대 內 재건)(4) 상동교회와 정동교회서울 상동교회의 전덕기(全德基:1875~1914) 목사는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9세 때 조실부모하고 서울에서 숯장사를 하던 작은아버지 집으로 올라와 성장하였다. 그러다가 17세에 기독교에 입문하면서 기독교를 통해서 민족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이승만을 비롯한 신채호, 남궁억, 양기탁, 안창호, 박은식, 이준과 같은 민족지도자들과 같이 일을 한다. 전덕기가 실질적인 살림을 하는 총무간사를 맡아 중간에서 이들을 잘 융화시켰다고 한다.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반대하는 비밀 모임이 상동교회 지하실에서 열렸다. 전덕기의 주도였던 것이다. 이때 상동교회에 모인 인물 가운데 하나가 진남포에서 달려온 김구였다. 이들은 도끼를 메고 대한문 앞에 가서 조약무효를 주장하였다. 그게 바로 ‘도끼상소’이다. 김구와 전덕기는 이러한 고난을 함께 겪은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였다. 그런가 하면 전덕기는 삼한갑족(三韓甲族)의 양반이라 일컬어졌던 이회영(李會榮)과도 행보를 같이하였다.전덕기와 조선최고의 양반이던 이회영은 ‘헤이그밀사 사건’을 같이 주도한 사이였다. 헤이그밀사 사건은 상동교회 설교단상 밑에 있던 20평 규모의 지하실에서 모의된 사건이었다. 아쉽게도 전덕기는 ‘105인 사건’으로 인한 고문후유증으로 1914년에 일찍 죽었다.현재 상동교회 모습 (서울 남대문시장 근처)정동교회 교인의 대부분은 배재학당, 이화학당의 학생들로 구성되었다. 말하자면 청년교회요, 학생교회이다. 따라서 이외의 교회활동은 주로 청년운동에 비중이 주어져 있다.청년운동은 두 방향으로 전개한다. 하나는 주일운동이요, 또 하나는 엡윗청년회 운동이다. 주일학교 운동은 성서연구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교육을 목적하고 있는 데 비해, 엡윗청년회 운동은 신앙훈련과 함께 선교와 봉사를 목적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엡윗청년회를 지도하고 프로그램에 직접 개입한 이들 따름이었다.헤이그 특사1) 을미의병(1895. 10 ~ 1896. 5)을미의병이란 을미사변을 계기로 봉기한 한말 최초의 항일 의병운동으로서 1895년 8월 22일 유생들이 일으킨 의병이다.① 원인- 을미사변과 단발령명성황후 국상장면 명성황후 시해장소-옥호루② 지도층과 참가층- 양반 유생을 지도층으로 하여 동학농민혁명 농민군의 잔존 세력 가담③ 사상적 기반 - ㆍ 위정척사운동을 계승ㆍ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반침략 운동ㆍ 개화정책 반대운동④ 의의 - 최초의 의병운동이며 무장 독립 투쟁의 기반마련민비를 살해한 데 분노하고 있던 양반, 유생들은 단발령이 발표되자“ 내목이 잘릴지언정 머리를 자를 수 없다.”고 외치며 의병을 일으켰다. 위정척사사상의 흐름을 계승한 애국적 유생을 지도층으로 하고 동학농민혁명 농민군의 잔존 세력이 기본세력이 되었다. 이들은 머슴과 소작인, 그리고 돈을 주고 고용한 포수 등으로 의병을 조직하고, 일본의 축출과 친일 관료들의 처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당시 의병을 일으켰던 양반이나 유생들이 외세의 침략을 막아야 한다는 투철한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왕후를 국모로 떠받들어 모시고 머리를 자르지 않던 유교 윤리와 생활 풍속을 지키자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역부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아관파천으로 일본의 세력이 약해지고 단발령의 취소와 국왕의 회유정책에 의해 의병부대는 스스로 해산해버렸다. 그러나 갑오 농민 전쟁에 참가했던 일부 농민군과 토지를 잃고 몰락한 농민들, 그리고 을미년에 의병에 참가했던 민중들은 무리를 지어 부패한 관리나 양반들의 횡포에 맞서 싸우고 외세에 굴복하는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였다. 이들은 남학당, 영학당, 활빈당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산간을 무대로 활동하였다.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0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한 활빈당이었다. 활빈당은 충청도에서 조직되어 경기, 전라, 경상도에 이르기 까지 중 ? 남부 지방 전체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이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양반들의 재산을 압수하여 빈민에게 나누어 된다.
Ⅰ. 서론판소리계 소설의 대표작인 「춘향전」은 많은 이본들이 존재한다. 그 종류는 100여종이 되는데, 이본의 사적 전개 양상과 삽화?줄거리 체계 등을 고려할 때, 크게 ‘南原古詞係’와 ‘別春香傳係’로 구별된다.춘향전의 인물 연구는 지금까지 대체로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 s 연구에 치중해 왔다. 이는 작가가 주인공을 통하여 작품 제작 의도를 전달하려 하기 때문에 주인공을 연구하는 것이 곧 작품전체의 의미를 규명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춘향전」은 주인공 성춘향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하나의 주제를 형상화함에는 반드시 이에 대응하는 인물들이 필요하다. 주인공의 행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또는 주제의 선명한 부각을 위해 이야기의 알차고 흥미있는 전개를 위해, 보조적 인물의 역할은 필수적인 것이다. 이들은 주인공의 일부분으로 사건 해결의 한 수단으로 등장하며, 나아가 주인공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한다. 이들 주변적 인물은 이처럼 주인공의 성격 묘사를 위해 동원되는 장식적인 면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본고는 완판 「열녀춘향수절가」를 텍스트로 하여 조선시대 사회상과 각 인물의 형상을 알아보겠다. 이 「열녀춘향수절가」는 「춘향전」의 대표적인 이본으로 춘향이를 중심으로 줄거리가 전개되고 춘향을 비롯하여 이와 관련된 인물들의 특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춘향전」하면 으레 완판을 가리킬 만큼 춘향전군 중의 으뜸”이라고 일컬어진다.본고는 기존의 연구업적들을 토대로 하여 판소리계 소설의 하나인 춘향전의 형성배경과 인물들의 특성을 주요 인물과 보조 인물의 성격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려 한다.Ⅱ. 본론1. 춘향전의 형성 배경1) 판소리 춘향가의 형성조선 후기 민중의식의 성장과 함께 민중문화가 크게 일어날 때 민중문화의 집약적 표현의 하나로 나타난 판소리 예술의 하나인 춘향가는 숙종말, 영조초에 광대들에 의하여 불리어진 데서 비롯된다.춘향가를 발생과정을 통해서 살펴보면 천한 기생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기 위한 굿에서 시작되의추천을 ?랴?고 상단이를 압셰우고 나려올 저 난초 갓이 고흔 머리 두귀를 눌러 곱계 ?아 금봉?를 졍제?고 나운을 들운 허리 미양의 간은 버들 심이 업시 듸운 듯, 아름답고 고은 티도 아장거려 흔늘거려 가만 나올 져그위의 인용에서 볼 수 있듯이 당대 상황으로 보아 요염한 춘향이가 만인이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그네를 뛴다는 것은 그녀의 개방적인 성격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또 춘향이의 뛰어난 미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고 있다.옥안을 상?한니 여운간지명월이오 단순을 반?한이 약슈중지연화로다. -중략- 네 얼굴 네 ?도는 세상 인물 아니로다.“자니 보게 져계 춘향일셰,” “?, 그년 ?우 에?듸듸 잘 ?겼소. 사또게셔 서울 계실 ?부텁 춘향 춘향 ?시더니 한번 귀경할 만 하오.”이처럼 춘향은 아름다운 자색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녀의 빼어난 미모는 서울에까지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은 그녀의 신분에 의해 오히려 춘향의의도와는 다른 운명에 처하게 될 조짐을 암시해준다고 볼 수 있다.춘향의 매력적인 자태는 이도령과의 첫날밤과 그 후 두 남녀의 성희 장면에서도 드러난다.춘향의 요부로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사랑에 대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통해 그녀가 당시에 보통의 여자에게 요구되었던 정숙하고 순종적인 전통적 여성상과는 다소 거리가 먼 매우 개방적인 생활태도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나는 항시 엇지 이?이나 후?이나 밋틔로만 될날인? ?미업셔 못 쓰거소.”위의 인용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성희의 묘사는 적층문학으로써 이 작품이 지닐 수 밖에 없는 복합화된 춘향의 성격이 또한 다양한 비유로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이렇듯 춘향의 모습은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매력적인 여성이며 사랑에 대해 적극적이며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당시 지배적 관념이었던 유교아래서 보통여성과는 달리 퇴기의 딸로서의 특성을 어느 정도 드러내는 것이라 할 것이다.춘향의 또 다른 모습은 이별 직전에 나타난다. 춘향은 한양 그렇기 때문에 한 신하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충정을 죽음으로 나타낸 것과 같이, 춘향이가 변사또의 명에 복종하지 않은 것은 貞操觀念의 강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여성에게서 열녀 사상은 여성으로서의 본능적 동기화와 연결됨을 볼 수 있으며, 나아가서 사회적 습속으로서의 제도 안에서 전통적인 가정을 꾸미고 싶다는 의욕도 내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춘향은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양반자제 이도령과 결연을 맺고, 사랑으로ㅆ 결합하기 위해 상층사회의 도덕적 가치인 순결, 인내, 복종의 미덕을 발휘하였다고 볼 수 있으나 신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는 춘향의 자세는 무엇보다도 사랑의 진실성과 여성본능적 수절의식과 연결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춘향의 가장 큰 정신적 지주는 愛情이었다. 만일 춘향이 미천한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서만 이도령과 결연한 것이라면 신임사또에게 죽음을 각오할 정도로 무서운 저항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녀의 신분상승의 욕구가 절망적인 사태에 직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춘향의 마음은 변치 아니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더욱 그녀의 어머니 월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한 사실을 통해 사랑의 의미와 깊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어만임 나 죽은 후의라도 원이나 업게 하여 주옵소셔. 나 입던 …중략… 그 옷 ?여 파라다가 한산셰져 박구위셔 물? 곱게 도포짓고 ?방사주 진 초?를 되는 ?로 파라다가 관 망 신발 사듸리고.이렇듯 춘향은 헌신적이고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 준다. 춘향의 애정은 순수한 것이여서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그 사랑을 훼손시키거나 빼앗길 수 없는 것이었고, 오히려 그것이 춘향의 염원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이며 우리의 보편적이고 영원한 여인상으로서 시대를 초월해서 환영을 받는 결정적인 요체가 됨을 알 수 있다.춘향의 시련은 변학도의 출현으로 발생하게 된다. 변학도는 춘향을 기생으로 알고 와서 남원으로 부임하자마자 기생 점고부터 한다. 그러나 기생 점고에 춘향이 안보이자 수하를 시켜 잡아오게 한다. 처음에는 하는 평범한 여성으로서의 춘향의 갈망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2) 이몽룡이도령의 집안은 전주 이씨라는 명문가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충효록에 오른 이한림이라는 선정관이었다. 이도령은 인문적 교양과 지식을 갖춘 출중한 인물로 이상과 야망을 가지고 있고 덕망과 아량을 갖춘 활달한 소년으로 외모가 두목지에 견줄만한 선비로 묘사되고 있다.이때 사또 자제 이도령이 연광은 이팔이오, 풍채는 두목지라. 같고 지혜 활달하고 문장은 이백이요, 필법은 왕희지라.이몽룡은 도량이 활달하고 지혜가 넘치는 16세 소년으로 용기가 넘치는 대장부로 설정되어 있으면서도, 춘향의 집에 가서 다소 수줍어 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치기도 보이고 있다. 춘향에게 이별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할 때는 춘향의 집에 당도하자마다 대성통곡을 하는가 하면, 월매의 발악을 보고 당혹감을 나타내는 소심함도 지니는 복합적인 성격으로 묘사되고 있다.그러나 춘향과의 첫날밤에는 어린 16세의 소년이 아니라 애정에 정열적인 풍류남아로 변한다. 이점은 적층문학의 흥미요소를 과장하는 장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16세 소년의 성애장면으로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러나 대중적 흥미를 유발할 것을 목적으로 한 성애의 장면이 삽입된 묘사라 할 수 있다.그러므로 춘향과 서로 희롱할 때의 성희의 장면은 성인적, 유락적, 오락적 감각을 과장적으로 다루고 있다.한편 그는 전통적인 충효의 범주를 이탈하여 풍월 음영으로 아버지를 속이고 광한루 놀이를 위시하여 본능적인 욕구 충족을 위하여 기본적인 가풍을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도 묘사되고 있다.“?한 이리로다. 나무 집 늘근 이는 리롱증도 잇난이라 마는 귀 너무 발근 것도 예상 일 안이로다. ”이 말은 아버지가 덕치에만 몰두하여 젊은 자식의 사랑 감정을 몰라주는 데에 대한 반발심을 표현한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보수적인 양반 세대에 대한 평민층의 반발이 작가에 의해 투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평민층이 지니는 자유연애의 감정을 통속적으로 표현며, 청송녹죽 푸른 남기 눈이 온들 변하리까. 그런 분부 마옵시고 어서 바삐 죽여 주오.”하며,“향단아, 서방님 어디 계신가 보아라. 어제 밤에 옥문간에 와 계실 제 천만 당부하였더니 어디를 가셨는지, 나 죽는 줄 모르는가.”어사또 분부하되,“얼굴 들어 나를 보라.”하시니 춘향이 고개 들어 대상을 살펴보니 걸객으로 왔던 낭군 어사또로 뚜렷이 앉았구나. 반 웃음 반 울음에,“얼씨구나 좋을시고 어사 낭군 좋을씨고.…(생략)…”이와 같은 대목에서는 부정한 양반관리에 대한 치죄와 민중의 구제라는 양자간의 중재에 대한 인간적 고뇌가 이몽룡의 진정한 모습인 것처럼 보인다.이 암행어사 출도 모티브는 춘향의 사랑을 완성시키는 구성적 필요에 의해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이몽룡은 변화해 가는 조선 후기의 격동적 현실 속에서 문제 제공과 문제 해결이라는 양면을 함께 보여주면서, 이를 동시에 헤쳐나간 인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3) 변학도변학도는 당대 양반의 한 전형으로 현상화되어 있다.이때 수삭 만에 신관 사또 났으되 자하골 변학도라 하는 양반이 오는데, 문필도 유여하고 인물 풍채 활달하고 풍류 속에 달통하여 외입 속이 넉넉하되, 한갓 흠이 성정 괴팍한 중에 사증을 겸하여 혹시 실덕도 하고 오결하는 일이 간다 고로 세상에 아는 사람은 다 고집불통이라 하였다.위 대목을 볼 때, 변학도는 알려진 것처럼 전형적인 악인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고 보인다.변학도로 대표되는 기득권 계층(수구세력)과 이도령으로 대표되는 신흥세력의 갈등과 대립은 작품에 기저에 흐른다고 보인다. 변학도의 등장은 춘향과 이도령과의 만남을 개인적인 만남에서 사회적인 만남으로 부각시킨다.변학도는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하는 장면에서 탐관오리의 전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춘향을 계속 기생으로 취급하고 기생은 양반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한다는 조선시대의 계급의식이 그를 지배한다. 그래서 그는 남원에 부임하자마자 기생 점고부터 한다. 이 과정에서 변학도의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의 대립과 갈등
시작하는 말인간의 건강을 해치는 환경오염의 종류는 그 수를 세아랄 수 없을 만큼 많다. 공장과 자동차에서 나오는 더러운 공기. 가정에서 나오는 폐수, 농촌에서 사용되는 농약 등 우리가 살고 있는 공기와 물, 토양을 오염시키는 물질은 문명이 발전하면서 필요악처럼 생겨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가 미처 환경오염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이 있다. 저녁 시간에 서울시내 번화가를 나가보면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하늘을 보기 전에는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형형색색의 조명들로 인해 거리는 대낮처럼 밝다. 하나의 건물에 수십 개의 간판이 빈틈없이 붙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보며 혹자는 ‘화려한 조명이 멋지다’고 할 것이고 혹자는 ‘정신 사납다’는 말을 할 것이다. 아래 사진을 보자. 건물의 외벽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수십여 개의 간판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보고 과연 구매자들을 어떠한 느낌을 받을까? 과연 광고간판이 본래의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각종 인공조명과 원색의 간판으로 인해 인간의 건강과 감성이 위협받고 있다.몸말밤은 인간이 사용하는 화려한 조명에 의해 다시 태어나며 그러한 조명은 인간에게 어둠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레이저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공조명과 원색의 간판이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사례가 발생하고 연구가 발표되고 있다.동국대학교 경주병원에서 1년여의 기간 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21세의 정 모양은 친구들과 나이트클럽에 놀러갔다가 그곳에서 사용되던 레이저에 오른쪽 눈을 맞았다. 그 결과 망막부종(망막이 부어서 두꺼워진 상태)과 황반하 출혈을 보이고 있다. 또한 오른쪽 눈의 망막 중앙이 손상되어 전체시야의 주변만 보일뿐 중앙은 검은 점으로 가려 정면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표준 과학 연구원에서 시중에서 사용되는 레이저로 실험을 했는데 최소 3~4W의 전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을 안구의 단백질 세포와 유사한 생체조직에 가했을 때 그 생체조직이 레이저에 의해 타들어 가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의 눈을 해치는 레이저의 최소세기는 국제 기준상 0.4mW임을 감안할 때 기준치의 10000배 가까운 레이저가 정 모양의 눈으로 들어간 셈이다.시각공해는 주거공간으로도 침해하였다.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의 번화가는 발전과 번영의 상징이었었지만 이제는 주민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안방창문 바로 옆에 상업 간판이 설치되어 불면증이 생기고 벌레들이 많이 들어오는 등의 불편함이 있으나 별다른 호소할 곳이 없는 실정이다. 침실까지 파고든 불빛은 도시민의 눈을 혹사시키며 이 현상은 상가와 주거공간이 매우 가까운 주상복합 아파트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최근 들어 주택가 주변에 지어지는 골프연습장에서 나오는 불빛이 이슈화되고 있다. 인근 주택가에 차양막 하나 없이 밤늦게까지 밝은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대전 송천동에서는 아파트보다도 더 높은 골프연습장이 생겨 주민들이 항의를 하고 있으나 일선 구청에서는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는 말만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대 안암병원 한진규 교수팀은 밤늦게까지 켜져 있는 간판으로 인해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실험자를 대상으로 수면 다원검사를 실시하였다. 수면 다원 검사는 뇌파와 안구, 근육운동, 심전도, 무호흡 등을 측정하여 수면의 질과 깊이를 검사하였다. 실험결과를 통해 간판불빛이 들어오는 평상시보다 빛 차단 후에 깊게, 질 높은 잠을 잤다고 볼 수 있다.기준(정상치)렘수면(90-120)각성회수(10회이내)수면효율(10%이상)평상시192.520.5회3.3%빛차단후12714회8.5%수면 장애는 호르몬 분비에도 영향을 준다. 멜라토닌이란 생체 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눈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의 양에 의해 조절되며 밤에만 분비된다.수면장애로 인해 멜라토닌의 분비에 이상이 오면 면역체계, 우울증 만성피로 심지어 암발생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 발표된 암관련 논문)에 따르면 “인공적인 빛이 생체리듬을 방해하면 내분비 체계가 붕괴되고 유방암이 발생할 수 있다. 인공조명으로 인해 인체리듬이 깨지면 우울증, 생식이상, 근력저하 뿐만 아니라 암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호르몬 분비와 밀접한 유방암이 대표적인 예이다.” 고 밝히고 있다.미국의 Cancer Mcscarch에서는 1999년 쥐를 대상으로 실시한 동물임상실험을 통해 멜라토닌의 분비이상이 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수면장애에 대해 우리나라의 규제책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옥외광고물 관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광고물의 빛의 밝기 및 색깔은 운전자 및 보행자에게 장애를 주기 아니하며 생활환경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이내여야 한다." 라고만 명시되어 있으며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조항이나 제한사항이 없다.시각공해로 인한 피해는 눈부신 조명으로 둘러싸인 도심거리에서 절정을 이룬다. 특히 운전자의 눈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양재역 사거리에 설치된 여러 개의 대형 전광판으로 인해 운전자들의 시야가 방해되고 있다 택시기사 김 모씨는 “건물 옥상에 설치된 대형전광판의 빛이 밝은데다 화면의 위치가 신호등과 일직선상에 있기 때문에 신호등을 놓칠 수가 있어 사고의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는 도심의 간판이 운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실험을 통하여 알아보았다. “운전자집중도 실험”을 통해 시각추적장치를 이용, 운전자의 초점, 눈동자, 머리의 움직임을 측정하여 운전자의 집중도를 조사하였다. 도심 한복판과 가로등만 설치된 거리에서 각각 2km씩 운행한 결과 도심구간에서 눈의 이동도가 4배 증가하였으며 그 결과 운전자의 집중도가 절반으로 감소한 수치를 보였다. 도심에서 운전자의 시선이 양쪽으로 보다 많이 분산되며 이는 운전자의 안전운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다.그렇다면 화려한 인공조명이 사라진다면 시각공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사라진 빛 대신 원색의 물결이 거리를 채웠다. 즉 고채도를 사용해서 경쟁사보다 소비자의 눈에 더 띄고 싶어 하는 상인들의 바람 때문이다. 대덕 대학교 김동영 교수팀은 대전 으릉정이 거리에서 원색과 고채도의 비율을 측정하였다. 그 결과는 거리 전체에서 원색의 비율이 무려 61%, 고채도의 비율은 50%를 넘어선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 중 빨강색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는데 빨강색은 다른 색 보다 파장이 길어서 망막의 자연 감지점보다 뒤에 상이 맺히기 때문에 보다 돌출되어 보이는 효과를 보이지만 눈에는 피로감을 준다.) 김동영 교수팀은 고채도의 색과 감성과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으릉정이 거리를 3차원 상에 실증적으로 표현해 놓은 뒤 실제거리 / 정리된 거리 / 숲길의 세 종류의 길에서 피실험자의 피부온도와 심장박동수를 측정하였다. (이는 교감신경계, 자율신경계의 반응을 알아봄으로써 스트레스의 정도를 알 수 있는 실험이다.) 30~40대 주부 2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원색의 간판이 난립한 거리에서 심장박동수도 증가했으며 체온도 떨어졌다. 거리의 색으로 인해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증거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와서1. 들어가며갑자기 추워진 11월 13일 평소에 가고 싶던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다. 12일이 생일이라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약간은 피곤했지만 일찍 안가면 사람들에게 압사당할 것 같아 조금 서둘렀다. 사당에서 친구와 11시에 만나 이촌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이 좀 있었다. 일요일이여서 더 빨리 모인 것 같다. 표를 받고 일~이분 정도 기다려서 드디어 입장했다.2. 박물과 내부1) 1층--고고관 & 역사관박물관은 총 3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는 경천사 십층석탑이 백여년간의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영원한 자리를 잡았다. 국보 86호이며 고려 14세기에 세워진 이 석탑은 일제시대 때 일본인이 분해해 불법 반출하였고 그 후 다시 돌아와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다라니경, 신라시대 금관 등 1층은 고고관과 역사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2) 2층--미술관 & 기증관2층에서는 미술관을 중심으로 봤다. 가장 친숙한 김홍도의 풍속화가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아직 오픈한지 얼마 안되어서 인지 플래쉬만 안 터트리면 사진을 촬영할 수 있어서 좋았다.풍속화란 일상 생활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우리나라 회화사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고구려 무덥벽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풍속화라 하면 18세기 조선시대에 유행한 그림을 말한다. 그 당시는 풍속화의 인기가 매우 높아서 임금도 즐겨 감상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풍속화가는 김홍도와 신유복이다. 김홍도는 대장간, 추수 광경, 서당, 씨름 등 삶의 이모저모를 익살스럽고 정겹게 표현했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마치 내가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준다. 신유복은 기녀와 한량의 모습 등 남녀간의 감정을 은근하게 나타냈다. 산뜻하고 세련된 색채를 사용한 신유복의 풍속화는 김홍도의 풍속화와 또 다른 맛이 있는 것 같다.3) 3층--미술관Ⅱ & 아시아관미술관Ⅱ는 한국의 불교조각과 공예문화를 감상하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국보 83호인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다양한 불상을 볼 수 있었다.개인적으로 불상의 인자하면서 오묘한 미소와 여러 수인을 좋아해서 3층에서 관람하는 시간이 제일 많았다. 공예문화에서는 고려시대 자기인 삼강청자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고려청자는 9C 말~10C 초에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한국에서 청자를 직접 만들게 된 계기는 중국 청자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는 약간의 청자가 무덤에 넣는 부장품으로 사용되었고 통일신라에 이르러 청자와 백자가 일상생활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초기의 가마들은 고려 수도 개경이 위치한 중서부 지역에서 중국 월주요 청자의 영향을 받은 자기를 생산하였다. 11C에는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이 청자의 중심 제작지가 되었다. 12C전반에 이르면 고려청자는 아름다운 비취색과 다양한 장식으로 세련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려청자의 은은한 녹색은 비취색, 즉 翡色에 비유된다. 비색을 띤 고려청자에 고려 사람들은 깊은 애정과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고, 도자기의 종주국인 송나라 사람들조차 중국의 것보다 뛰어나다고 칭송했다.비색 청자 유약은 반투명하며, 그릇 표면에 갈라진 금이 생기지 않고 광택이 은은한 것이 특징이다. 비색 청자는 11C 후반에서부터 12C 전반까지 가장 세련된 색을 띤다. 12C 중엽부터는 상감청자가 유행하기 시작하여 비색유약에서 상감무늬가 잘 드러나는 맑은 색 유약으로 바뀌게 된다.상감(象嵌)청자는 자기의 바탕흙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 종류의 흙을 메워 넣는 기법으로 장식한 청자이다. 다른 재료로 메워서 꾸미는 기법은 나전칠기나 금속 공예의 입사 기법에서 볼 수 있는데, 이를 도자기에 응용한 것은 고려 장인의 창의적인 발상에 의해 나온 것이다. 이미 9C 말에서 10C 초로 이어지는 삼강 기법의 도자기 조각이 발견되며, 12C 중엽에 이르면 상감 청자가 본격적으로 유행한다.상감 기법은 세계 도자기 역사에서 고려가 이룬 뛰어난 업적으로, 비색 청자 유약과 더불어 고려청자의 특징이다.)여기 고려청자들을 보고 있으니 천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그들의 땀과 노력을 생생하게 보는 듯했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평생을 노력하며 만들어 냈지만 지금 여기 그들의 노력은 다 사라지고 명맥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어느 소설에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이 가을 하늘을 보면 고려의 하늘이 생각나 하늘만 보다 죽었다는 그런 구절도 떠올라 기분이 침울했다.고려자기를 보고 조선시대 백자와 금속공예를 보고 불교조각으로 넘어갔다. 여러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한? 중 ? 일 삼국의 부처의 모습을 비교해 놓은 설명도 있어 아이들이 보기에 참 좋은 것 같았다. 또 불교가 아니면 모르고 넘어갈 부처의 손갖춤에 따른 설명과 그림들이 다른 박물관에는 없는 것 같아 좋았다. 아이들의 학습의 장으로도 손색이 없는 것 같다.
현대 사회의 여가Ⅰ. 여가의 의의Ⅱ. 현대 사회의 여가의 기능Ⅲ. 현대사회의 여가의 증대요인Ⅳ. 현대사회에서의 여가의 중요성Ⅴ. 유급휴가1) 유급휴가의 정의2) 유급휴가의 발달Ⅵ. 사례-농촌 노인의 여가 실태Ⅶ. 현대사회 여가의 문제점과 해결방안Ⅷ. 현대사회와 여가에 대한 결론현대 사회의 여가Ⅰ. 여가의 개념여가란 영어로 레져(leisure), 그리스어로 스꼴레(scole), 라틴어로 스꼴라(scola) 라고 하며, 몇몇 학자들은 “여가는 노동, 수면과 아울러 기타 필요한 활동으로부터 벗어난 자유 시간에 관련되어 있다.”(jay b. nash) “여가는 개인이 자기 선택에 의한 활동에 시간을 이용하여 자기 완성을 위한 여러 가지 가치나 성과를 실현하는 것”(m. clawson) " 휴식과 기분전환을 위해서, 또는 이득과는 무관한 지식이나 능력의 양성, 자발적인 사회참여, 자유로운 창조력의 발휘를 위해서 오직 자발적으로 행하는 활동의 총체“(gordon dohl) 라고 말했다.여가란 말은 1800년대 후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1930년대부터 일반화되었다. 여가는 생계를 위한 필요성이나 의무가 따르지 않고 스스로 만족을 얻기 위한 자유로운 활동으로서 활동을 행하는 일 자체가 목적이다. 생활시간은 생리적 필수시간 ·노동시간 등으로 구별한다. 생리적 필수시간(수면 ·식사 등)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생리적으로 최소한 필요한 시간이란 뜻으로 ‘생리적 구속시간’이고, 노동시간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가 되기 위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시간이란 뜻에서 ‘사회적 구속시간’이라 할 수 있다. 구속시간을 빼고 난 시간이 자유시간인데, 이것은 각자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쓸 수 있는 시간으로 선택시간 ·자유재량시간이라 한다.여가는 자유시간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서 의미는 여러 가지로 변화한다. 자유시간에 펼쳐지는 활동의 질(質)은 개인의 사회적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서 규정된다는 의미에서 단순한 시간적 개념을 초월한 의미가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시간의 감소와 레저시간의 증대가 모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추세이며, 새로운 사회문제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가의 6가지 요소( max kaplan)① 경제적인 활동의 일과는 반대되는 성격이다.② 여가에는 유쾌한 기대감과 회상이 존재한다.③ 여가는 최소한의 사회적 역할과 의무가 포함된다.④ 여가를 통하여 인간은 자유란 개념을 지각한다.⑤ 여가는 문화적 가치(도덕적, 윤리적 사고, 조직과 제도 등)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⑥ 여가는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 영향을 미치며, 거기에는 우열이 없다.Ⅱ.여가의 기능1) 개인에 대한 기능① 휴식: 근로 생활로부터 해방되는 기회를 제공하고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풀어준다② 기분전환: 일상생활과 관계된 세계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정신적 스트레스나 권태로부터 기분 전환을 도모한다③ 자기개발: 자발적 학습의 형태, 폭넓은 사회활동에의 참가나 실무적 기술훈련 이상의 순수한 의미를 가진 육체, 감정, 이성의 도야를 가능하게 한다.2) 사회에 대한 기능① 사회 통합적 기능: 공감대 형성, 소속감이나 일체감을 높여준다,(민주주의의 목적달성-순수한 만족, 창조적 표현, 자기능력 개발의 기회)② 문화적 기능: 청소년 문제, 노인 문제 등의 사회적 일탈행위를 구제하는 카타르시스적인 기능, 사회적 기장완화의 기능, 대중문화 분야에 질적, 양적 발전을 시킨다.Ⅲ. 현대사회의 여가의 증대요인① 국민 소득 수준의 향상.② 가처분 소득의 증가.③ 여가 시간의 증가- 주 5일제 시행 등으로 시간이 많아짐.④ 가치관의 변화- 일보다 여가가 중요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함.⑤ 인구 구조의 변화- 평균 수명 연장으로 고령화 사회가 되고 경제력 높은 노인인구의 여가 활동 참여가 높아지고 있으며, 여성의 사회 참여 증가로 여성들의 여가 활동이 많아짐.⑥ 기타- 교통의 발달, 장소 공간의 증대.Ⅳ. 현대사회에서의 여가의 중요성① 자기표현의 기회(자기가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통해서 자기표현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각자의 욕구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② 자기 자신의 여가를 이용하는 방법의조 가능(여가선용을 위한 지식, 기능, 방법, 습관 등을 갖출 수 있다.)③ 인간관계의 형성과 개선(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맺게 하는 교량적 역할, 서로 신뢰하고 돕고 믿는 밝은 분위기 조성)④ 스트레스 해소와 긴장해소의 제공⑤ 심신의 건강과 체력 향상 가능Ⅳ. 유급휴가1) 유급 휴가의 정의한자로 有給休暇 영어로 paid vacation이라 하여 일정한 근로일수를 채운 근로자에게 휴일을 주고 그 임금을 보상하는 제도로 연차유급휴가(年次有給休暇)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근로기준법(勤勞基準法)은 유급휴일· 월차유급휴가· 연차유급휴가· 생리휴가· 산전후휴가 등 5가지 유급휴가에 관한 규정을 두었다.2) 유급 휴가의 발달각국의 노동운동의 요구에 따라 구미의 선진 여러 나라에서 1930년대부터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36년 국제노동기구(ILO)는 1년간 계속하여 근무한 사람에게 연간 최저 6일간의 유급휴가를 보장한다는 것을 규정한 조약 56호를 비준하였다. 또한 제 2 차 세계 대전 뒤 ILO는 54년에 98호 권고(勸告)로 최저 2주간의, 그리고 70년에는 조약 132호로 최저 3주간의 유급휴가를 정하였다. 선진 여러 나라에서는 제 2 차 세계 대전 뒤 주휴(週休) 2일제가 확립되면서 유급휴가 확대에 대한 요구운동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70년대에는 유급휴가 확대가 두드러지게 진행되었다.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법률이나 노동협약에 의해 4∼6주간의 유급휴가가 확립되어 있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유급휴일· 월차유급휴가· 연차유급휴가· 생리휴가 및 임신 중인 여자에 대한 산전·산후휴가 제도를 마련하고 있으며, 또한 근로자가 업무상의 부상·질병으로 휴업한 기간과 산전·산후의 여자에 대한 휴가기간(산전·산후 합해서 60일)은 유급휴가 산정 때 출근일수로 간주한다.Ⅵ. 사례-농촌 노인의 여가 실태우리나라의 노인인구는 70년대 이래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65세 이상의 노년인구가 1990년 전체 인구의 5%에 달하고 있으며, 2020년경에는 13%에 달할 전망이다(21 1992), 평균수명은 1990년 70.8세이고, 2000년에는 75.9세로 높아질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1995년 1월 현재의 우리나라 인구수 4410만 중에 65세 이상의 인구수는 5.37%인 238만명이며, 60세 이상의 인구는 8.42%인 374만명에 이르고 있다. 농촌인구 중 65세이상 노인인구비율은 '70년 4.2%, '80년 5.6%, '90년 9.0%로 계속증가하고 있으며, 농가인구 구조는 60세이상의 비율이 '80년 10.5%, '90년 17.8%, '94년 25.2%로 점점 증가폭도 늘어나고 있다.노인을 위한 여가 프로그램에 관한 연구를 한 시기는 1950년대부터이며, 유럽의 경우는 종래의 소극적인 시책에서 벗어나 사회복지적인 측면에서 적극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노인여가, 취미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서 운영되고 있으며, 노인회 프로그램, 노인복지회관 프로그램, 일반 복지회관의 노인프로그램 등에 다수의 노인이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노인교육은 기존의 여러 여가프로그램 중에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며 그 기본을 이루고 있다. 노후생활을 해나가는 데 필요한 정보와 교양, 그리고 필요한 분야의 지식을 배우는 것은 물론 계층끼리 모여 이해관계 없는 대화와 활동의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훌륭한 여가생활이 된다. 노인교육을 위한 수단 내지 방법으로 가장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대한노인회의 노인학교인데, 도단위에서는 노인대학을 운영하며, 시군단위에서는 노인교실을 운영하고 있다(농촌생활연구소, 1995). 그러나 노인교육이 반드시 학교형태여야 할 필요는 없고 매스컴에 의한 교양강좌, 노인대상 신문, 잡지, 대학이나 구민회관 등에서의 특별강연회, 노인복지회관에서의 정기교육프로그램실시, 교회, 성당 등에서의 노인강좌 개설, 노인 교양서적의 구매보급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노인 학습활동은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 필요성이 인정되어 노인학교 형태로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1 들어오면서부터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크게 팽창하였다. 심지어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여가산업으로서의 노인학교로 발전되어 교육보다는 즐거움과 오락, 그리고 영리 위주의 기업형으로 변모되는 사례도 있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의 추계에 의하면 2,100여개소의 노인학교가 설립, 운영되고 있다. 이와 같은 노인학교는 주로 사회단체, 종교단체, 자선단체, 독지가 또는 지역사회공동체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장기와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행사는 노인들이 더욱 흥겹고 즐거운 생활이 되게 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이는 여가의 질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노인들의 참여의 폭을 확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노인들의 솜씨를 지원, 발표할 기회를 갖거나 솜씨의 교육을 실시하는 예는 드물거나 개별적 범위내에서 제한되어 있거나 행적으로는 특정한 행사주간에 다른 행사프로그램들과 곁들여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다.1985년부터 대한노인회에서 전국의 솜씨있는 노인들을 위해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각종 수공예품을 제작하여 전시, 판매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에는 1985년 1,00만원, 1986년 2,170만원, 1988년 193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대한노인회, 1989). 한국노인대학연합에서는 송년 예술제를 마련하고 있으며, 대구광역시 노인종합복지회관에서는 '95노인문화축제를 열어 서예작품전, 가요경창대회, 바둑, 즐거운 놀이, 생활체조부문에 대한 경연 등의 다채로운 행사가 이루어져 노인들을 즐겁게 하였다. 노년은 노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체적, 심리적 특성을 고려한 노인의 체질에 적합한 스포츠를 개발할 필요한 때이다. 지역별로 노인체육대회를 매년 실시하고 있는 곳이 있으나 아직 미미한 실정이며 다양한 종목으로 실시되고 있지 못하다. 또한 사회활동 지원 대책으로서 정부의 원조나 보조가 미흡하여 노인 스포츠사업으로서 개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농촌 노인을 위한 여가 활동 개발 프로그램-① 취미생활 프로그램 ② 노인정 프로그램 ③ 노인복지회관의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