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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문교수추천서
    To whom it may concern This is a letter of recommendation for Gildong Hong who is applying for New York University, Graduate School. I am a Professor Dr. Youngsu Kim in business in Seoul National University, South Korea.
    영문서식| 2012.05.09| 1페이지| 1,800원| 조회(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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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학] 국제정치학 중요 개념들
    (1) 현실주의(Realism)⇒국제사회는 본질적으로 무정부상태이기 때문에 세력요인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고 국제 법이나 국제기구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해주는 데에 있어서 그 역할이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세력요인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힘이 우선 적으로 작용한다. 즉, 국가의 힘(=군사력)은 국제적 갈등이나 분쟁의 결과를 좌우하며, 어떤 국가가 다른 국가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으로써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국 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최선책은 세력균형이라고 주장함.(2) 이상주의(Idealism)⇒국가간 평화가 국제기구나 국제법 그리고 국제기구, 국제여론과 같은 제도들을 통해 이 루어 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자적 안보 협력은 서로의 군사능력과 군사훈련에 대 한 정보를 공유하여 다른 나라가 가질 수 있는 오해와 잘못된 판단의 가능성을 미리 없 애고, 군사력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문제를 논의함으로써 이를 사전에 방지하자는것이다. ex)UN, WHO, IAEA, IMF(3) 민족국가(Nation - States)⇒웨스트 팔리아 조약 이후 19세기부터 국가는 주권국가에 민족주의가 첨가되어 민족국 가가 탄생하게 되었고, 한 민족으로 국가를 갖지 못한 민족은 국가를 갖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하였고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에 의해 지배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민족 자결주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었다.오늘날 민족국가는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 면에서 자주적이고 번영된 국가를 만드는 데 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고, 현 국제정치의 주된 행위자가 되고 있다.(4) 외교(Diplomacy)⇒국가가 국제무대에서 다른 국가와의 우호 및 협력 관계의 증진, 국가간의 분쟁 해결 등 을 위해 국가의 관리가 국가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대외행위를 의미한다.외교는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외교 정책을 실천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으며 이 것이 실패하면 전쟁으로 이어진다. 즉, 외교정책의 목표는 스스로의 국가이익을 증진시 키며 더 나아가 국가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의미한다.(5) 군비경쟁 & 군비통제(Arms Races & Arms Control)⇒군비경쟁은, 동서 냉전시대 당시 미·소는 상대방을 불신하면서 안보에 대한 불안이 상 존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세력균형이라는 명목하에 상대국에 대한 최대한의 군사적 우 위를 확보해야만 했고 그럼으로써 양국은 군사력에 대한 투자를 확대, 증가시켰다.⇒군비통제는, 탈냉전 이후 이데올로기 대립이 사라짐과 동시에 전쟁의 참회를 줄이고 군 비경쟁이 가져오는 낭비적 요소와 긴장재생산 요소를 줄이기 위하여 군비통제를 추구하 였다. 이는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군비 통제가 핵·화학·생물무기 등 특정무기중심에서 재래식 무기를 포함하는 전반적인 무기분야로, 쌍무적 군비 통제에서 지역적 및 다자적 그리고 전지구적으로, 군비통제의 영역을 확대시켜 나아가고 있다.(6) 안보(Security)⇒1전쟁을 피하기 위해 국가의 핵심 가치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거나, 혹은 전쟁을 치를 경우 승리함으로서 핵심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만큼 안전한 것2획득된 가치에 대한 위협의 결여 정도를 나타내며, 주관적 의미로는 그러한 가치들이 공격당할 두려움이 없는 정도나 상태(7) 국가이익(Nationl Interest)⇒이것은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이나 개개의 단체 ·계층 또는 일부 지역의 이익보다 상위 에 있고, 모든 것에 앞서서 추구되어야 하는 이익으로 정의된다. 현실적으로 각 주권국 가들은 외교라는 행태로써 자국의 이익을 획득하며 국익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추구하는 바가 달라진다. 특히 강대국들이 전개하는 대외행위는 합리성이나 합법성에 결정되는 것 이 아니라 자국의 국가이익에 따라 행동하고 주관적인 논리에 근거해서 자국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시키려 한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미국과 이라크 전쟁을 들 수 있다.뿐만 아니라 과거 1,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유럽패권 차지는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가져오는 등 세계의 안정을 해치는 전쟁을 감행하는 등의 이기주의를 낳기도 하였다.(8) 전통주의(Traditionalist)⇒정치 현실에 대한 연구방법으로써 이것을 접근할 때 철학적·역사적·법학적·제도적인 방법으로 분석하는 것1철학적- 인성이나 국가의 성질, 목적 및 기능에 관한 추상적 관념에서 연역하여 이것을 역사적 현실의 사실과 조화시키려는 방법2역사적- 과거의 정치제도와 정치적 사건을 시대적으로 정리·배열하여 비교 연구함으로 써 제도의 발생과 발달과정을 역사적으로 파악하고 나아갈 방향을 추정3법학적- 국가를 현실의 사회적 실체로써 파악하기 보다 하나의 법규체제로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정치적 현실을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4제도적- 정치제도, 즉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 관심을 집중하고 이 제도들의 기능을 충실히 기술하는 것이다.ex)대통령과 관련된 정치를 이해하기 위하여 대통령의 권한이나 기능을 빠짐없이 열거·기술함(9) 행태주의(Behavioralist)⇒관찰·조사·경험할 수 있는 인간의 정치 행태를 연구하여 정치현상을 이해하려 한다. 이는 구체적인 인간의 행동을 정치 분석의 기본단위로 하기 때문에 이 연구방법은 미시 적 분석이 된다.ex)국회의원을 연구할 경우 국회의원의 법적 권한이나 국회의 법률제도적인 측면에서 접 근하기 보다 국회의원의 태도나 행동을 관찰·조사하여 기술하고 설명한다. 이러한 특 성으로 연유하여 심리학·사회학·사회심리학·문화인류학의 성과를 낳았다.(10) 지역주의(Regionalism)⇒공산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립권이 무너지자 각 국가는 불안한 무한경쟁의 시대에 들어서 면서 자신에게 힘을 보태 줄 동반자의 확보가 필요했다. 서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각 국 가들은 자신들의 실리 추구에 맞게 연합, 통합을 맺게 되었다. 현재의 지역주의는 다자 적 개념체제 앞에 배타적인 공동시장을 건설하여 역외 국가에 대한 비교 우위를 공동으 로 확보하려는 경제적, 정책 실험인 동시에 지역 내에 존재하는 힘의 본래구조를 적당히 재조정하고 국가 내부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정책논쟁과 정치갈등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노력이다. ex) EU, NAFTA, ASEAN, APEC(11) 민족형성(Nation Building)⇒민족형성은 봉건적 신분제의 철폐를 전제로 하며 일정한 지역경계 내에 공통의 문화를 갖고 존재하는 자의식 공동체로서 자기 나름의 단일한 주권국가를 형성하거나 지키려 한 다. 이는 주변무리와는 다르다는 자의식을 길러 줄 공통의 신화와 상징이 내재할 뿐만 아니라 구성원 사이에 권리의 의무와 평등성을 가정하는 공동체 의식이 있다.(12) 협치(Global Governance)⇒탈냉전 세계화·정보화가 가속화 됨에 따라 기존의 이데올로기하에 권위를 유지해온 국 가는 안보위협 뿐만 아니라 민족·인종·종교·경제통합·인권·난민 그리고 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국가중심적 협력에 한계를 보이게 되었다. 따라서 국가 간 관계가 국 제정치에서 핵심적이라는 생각을 탈피하여 국경을 넘어서 다차원적 주제들간의 상호교류 가 점차 중시되고 있는 현상이다. (다국적 기업, NGO)(13) 민족주의(Nationalism)⇒개별국가가 합법적인 각 민족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긍정적 1국가가 민족을 대표할 수 있다는 합법성의 원칙 제시2민주주의 원칙을 실현3심리적 기능(소속감)4인간의 창조성과 다양성 존중·부정적 1갈등과 전쟁의 원인2국제 정치의 쟁점들에 대한 협력을 방해3국가의 분열 조장4편협함과 독재의 분위기 양산(14) 국제체제(The Global System)1세력균형체제;국가행위자 중에 최소한 다섯 이상의 강대국의 존재가 체제내 상호작용에 결정적으로 필요2양극체제;자유진영과 공산지영간의 대립3다극체제; 양블럭간의 대립과 제3자 위치에 있는 비동맹 혹은 보편적 행위자들이 중개역할을 하 면서 전체적인 체제의 균형을 유지해가려는 체제4범지구적체제; 모든국가가 초국가적 행위자의 통제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지내는 상태5위계적질서 체제; 국가가 소멸하고 하나의 세계정부가 개인들에게 직접 작용하는 정치체제, 이 체제하에 서는 국가행위자들은 독립된 정치체계가 아니라 국제체계의 지리적 구분에 해당될 뿐임6거부권체제;모든 국가행위자는 제마다의 이익을 추구하며, 이 이익들은 서로 상충하고, 이 국가들의 이익추구행위을 규제할 아무런 정치적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
    사회과학| 2005.04.14| 4페이지| 1,000원| 조회(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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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권의 의미
    Ⅰ.그리스 도시국가의 기원과 시민 사회의 형성그리스 도시의 도시국가에 대한 문제는 역사가들에게 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이제는 그리스어라고 부르는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 발칸 반도에 도래한 것이 기원전 2000년 초라는 견해가 거의 확실시되어 있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중앙 집권적 형태의 국가는 없었고, 기원전 7세기부터 반도의 곳곳을 중심으로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는 것이다. 그 중심지의 이름, 즉 펠로폰네소스의 북동쪽 아르골리스 지방에 있는 도시 미케네의 이름을 따서, 이를 우리는 미케네 문명이라 한다.아테네아테네를 통해서 살펴보면 의 저자는 아르카이즘 시대와 고전기 시대에 왕권이 관리들에게로 옮겨갔다는 추측을 하고 있다. 즉 왕은 처음에는 군사령관에게 병권을 내주고, 다음에는 사법권을 집정관(아르콘)에게 내주고 자신은 제사장으로서의 권한만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직들은 처음에는 종신제였으나 후에 1년 임기제로 바뀌었다. 후에는 6인의 입법관이 더 생겨났는데 이렇게 매년 선출되는 관리들은 도시의 최고 관리인 9인의 집정관단을 형성하고 임기가 끝나면 헌법을 수호하는 최고 법정인 아레오파고스 재판소의 위원이 되었다. 이러한 집정관과 그들로 구성된 아레오파고스 재판소는 토지를 갖고있는 최상류 귀족과 부유한 사람들에서 선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부자들은 무엇보다도 토지에서 부를 축척한 사람들이었다.이렇게 출현한 도시들은 일련의 위기를 거치면서 천천히 시민 사회를 형성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위기는 토지 소유제의 위기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그 과정을 재구성해 보는 것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체 그리스 도시에서 동일한 속도로 변화하지는 않았다는점도 고려해야 한다.스파르타의 경우스파르타는 그리스 민족을 구성하게 되는 마지막 이주민인 도리아인 들이 건설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라코니아 지방의 원주민을 예속된 농민, 즉 헬로트의 상태로 전략시켰다. 이에 혼란이 일어나자, 입법자 리쿠르고스는 라 있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 도시에서 다수의 시민은 자신의 토지를 집적 경작하거나 토지에서 나오는 수익을 징수하는 토지 소유자들로 토지는 시민권과 관계하여 중요한 생산 수단이었다. 두 번째로는 상공업으로 이러한 일은 시민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담당하였다. 이를 보더라도 경제활동은 ---토지경작을 제외하고는--비록 시민의 존재를 확고히 해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시민권을 정의 내리는 데는 작은 비중밖에 차지하지 않는다.시민의 정치 활동시민의 정치 활동은 사실상 그리스 도시국가 시민들의 우선적인 활동이었다. 이 활동은 각 도시의 체제가 민주정 인지 과두정 인지에 따라 그 규모나 성격이 달랐다.민주정하의 정치 활동민주정하의 정치 활동에서는 민중 집회가 있다. 민중집회는 최고의 권한을 가지며 클레이스테네스 개혁이후로 각 부족에서 선출된 500인회의 의원들에 의해 구성되어 50인씩 평의회 의원들이 35일~36일 기간동안 교대로 집무를 하게 된다. 그리고 매년 평의회에서 발언한 안건에 대해 토론하며 의회에 제안에 대해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거수로 하여 다수결로 정하였다. 민중집회를 통해 정치 활동을 하는 방법 외에도 시민법정이나 500인 의회, 행정관으로 정치에 참여하였다.과두정하의 정치 활동시민권이 사회의 특정 계층, 즉 토지 소유자라든가 부유층, 혹은 귀족들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또한 시민들의 집회가 있다 해도 소집되는 일은 드물었으며 결정사항에 대해 비준하는 정도의 역할만을 하였다소극적 시민의 경우..참정권의 박탈참정권 박탈은 정치 활동과 의사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어떤 사법적인 결정일 수도 있고, 어떤 혁명의 결과일 수도 있다.정치 활동 금지사법 적인 결정으로 정치 활동이 금지되는 경우는 초기 죽음을 의미하였으나 6세기말부터 이 벌은 최소한 참정권 박탈과 도시 신전 출입 금지형을 받을 것을 뜻하는 것으로 민회나 재판정에 나갈 수 없었으며 어떤 행정직도 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시민 집단의 일원이었고 결혼도 할 수 있으며 성장을 거듭해서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새시대의 주역으로 등장 할 수 있었다.반면 그 반대적 개념이 하향적 정부론이다. 여기서는 권력의 원천이 그리스도 즉 신에게 있기 때문에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기독교의 확산으로 중세의 핵심 정치 사상으로 자리잡은 이러한 신정적 이론 즉 하향식 정부론은 신의 권력을 위임받은 지상의 대리자에 대한 저항은 신에 대한 반란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용납될 수 없었다.이러한 하향식 이론의 체제 유지적 성향은 교회와 지배층들의 비호 아래 중세를 주도해 나갔으며 근대의 도래와 함께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 자리를 상향식 이론에게 내주었다. 토마스 아퀴나스, 아우구스티누스 등이 대표적 이론가이다.결론적으로 중세 정치 사상사는 이 두 정부론의 중세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쟁탈전이었다. 이러한 두 이론의 쟁탈전의 법률의 정치이론으로 이어져 후대에 체계적인 법률학이 이룩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중세의 정치사상을 교권과 속권으로 구분해 살펴보겠다.유럽 사회가 부족제에서 봉건제를 거쳐 점차로 왕조국가로 변해 가는 동안 공적인 논쟁은 기독교적 유럽세계 전체의 지배권에 초점이 모아졌다. 다시 말해 교황이 기독교 국가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최고권을 갖느냐에 대한 여부를 둘러싸고 교황측과 반교황측 사이에 유명하고도 복잡한 논쟁이 전개돼 왔던 것이다.기독교는 내세적이고 비정치적인 묘표를 지향하면서도 국가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고 기독교 자체의 이익을 주장하는 등 현세의 종교적 조직을 강조했는데, 기독교가 지닌 이러한 양면적인 특징이 논쟁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음복서나 교부 철학자들의 저술들은 세속적인 권위에 대해 극히 애매한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교황권의 옹호자와 반대자들에게 서로 정반대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는데, 이것이 논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그런데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다음에는 교권과 속권이 서로 우열을 다투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대한 교회의 조직과 부에 대항할 만한도 숨겨주었으며, 성직이 점차 부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세속 군주에 대한 대항세력 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세속군주의 직접적인 권력행사에 대해 독립적이면서도 제도화된 대립자로서 존재했다.Ⅲ.근대 국가의 발전지배의 업무근대국가는 지배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의 복합적 집합이다. 정치의 본질에 관한 서로 다른 두 개의 중요한 정의가 있다.이스튼은 사회과정을 제한된 수의 가치물들이 상호작용하는 개인들 사이에서 이동하게끔 만드는 다양한 행위들의 지속적 흐름으로서 규정하고 그러한 가치물의 분배 과정에서 관습, 교환에 의하지 않은 명령으로서의 분배 - 지배로서의 정치를 말한다. 관습은 보편적으로 광범위하게 공유되어 있는 이해로서 모든 참여자 사이의 합의가 필요하고 계약은 당사자가 평등하게 위치하는 반면 정치의 영역인 명령은 자발적인 선의나 무관심이 아닌 일반적으로 불복종에 대한 처벌의 형태로서 나타난다.봉건적 지배체제봉건제의 등장의 시대적 배경은 중앙집권화된 지배체제 그리고 도시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행정체제로서의 서로마제국의 붕괴, 민족 대이동에 따른 인구의 대규모 이동, 서구의 대내적·대외적 통신 및 교역 중심선의 지중해 지역으로부터의 이전이다. 이로 인해 경제력이 저하되고 서로마제국지배체제는 붕괴되어 암측시대가 이어지고 이어 카롤링 왕조의 지배의 틀이 완성이 된다.지배의 틀이란 로마적 요소와 기독교적 요소 그리고 제3요소로서 종사제가 보충된다. 봉건적 지배체제의 핵심요소가 되기까지 종사제 그 자체도 게르만적 기원이 아닌 로마적 기원의 제도적 특성에 의해 내용이 추가되거나 수정되었다. 그 특성은 충성서약, 은대지, 불입권에서 잘 나타난다. 충성서약은 봉건제 이전의 충성관계의 비대칭성을 상실하고 계약적이면서 위계적인 협력자를 전제로 하는 인격적인 관계이다. 충성서약의 당사자로서 상위의 사회계층이 거의 동지에 가까운 자발적인 관계인데 반해 하층민에게는 심각한 영향을 미쳐 지배관계의 경사도는 더욱더 증가하게 된다. 은대지는 봉신들이 영주에게 바쳐야할 군역을 감당하 이러한 자율성은 도시 문제를 용인할 수 있게끔 수정될 수는 있었지만 제거할 수 없는 상위의 지배의 틀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광범한 지역적 범위에 걸쳐 도시들이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고 운영할 수 있던 것보다 더 큰 지배의 틀이 필요하게 되었다.이러한 필요성에 부응하여 개별적으로 강력한 도시들은 대부분 서로 연합하였는데 이것은 기존의 봉건적 지배의 틀을 없애기보다는 그 틀의 구조와 정책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순응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도시들이 갖고 있던 정치적 이해관계는 기왕에 갖고 있던 정치적 자율성에 덧붙여 상위의 지배체계 관리에 효과적이고 항구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도시들에게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의 창출이 필요하였다. 신분의회가 이러한 구조의 전형이다.신분제 국가는 그 운영에서 보다 제도화되었다는 점, 보다 명백한 영토적 준거를 가졌다는 점 그리고 이 체제에서 군주와 신분제 의회는 대립되었고 또한 이 두 요소는 별개의 권력 중심으로서 결합되었다는 의미에서 이중적이었다는 점에서 봉건적 지배체제와의 본질적 차이를 드러낸다.절대주의 지배체제절대주의 지배체재라는 새로운 정치적 요구는 복수국가 체계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영토적 지배의 강화와 강대국에 의한 약소국들의 흡수는 비교적 소수의 상호 독립적 국가들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각 국가들이 자신의 내부적 정치질서를 공고히 하고 지배를 보다 일원적으로, 지속적으로, 계산될 수 있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되게끔 구조화하는 능력이 보다 중요하게 되었다. 즉 지배권 행사에 있어서 국내 다른 세력의 매개와 국외 다른 중심부로부터의 간섭을 가능한 한 적게 하여야만 하였다. 따라서 각 국가들 스스로가 직면한 대외적, 대내적 긴장, 위협 및 도전은 모든 지배 권력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키려는 영토적 지배자의 추진력을 고양시켰고 동시에 그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가속화되던 경제의 상업화도 절대주의로의 이행에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경제의 상업화는 도시를 기반한 생산체계의 내부적 동태와 해외로다.
    사회과학| 2005.04.14| 12페이지| 1,000원| 조회(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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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학] 강대국과 약소국
    외교에서 어떤 국가가 강대국이냐 약소국이냐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국가간의 외교의 과정, 방법, 양태 등을 설명하고 분석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건이다. 강대국이나 약소국의 기준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유인 즉, 외교는 국력을 반영하는 수단이지만, 한 국가의 국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1) 국력의 정의: 레이 클라인(Ray Cline) 박사의 국력 계산P = (C + E + M) x (S + W)위의 식에서 P란 국력, C란 Critical Mass, 즉 국민의 숫자, 영토의 넓이 등 국가의 자연적 규모, E 는 경제력, M 은 군사력을 의미한다. 뒤의 괄호에서 S란 Strategy 즉 국가의 전략, W란 Will, 국민의 의지, 정책 수행 능력를 말한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력은 앞의 괄호 속에 있는 유형(有形)국력과 뒤의 괄호 속에 있는 무형(無形) 국력이 곱해짐으로서 계산된다는 점입니다. 즉 국력이 0 (제로)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예) 미국의 월남전 패배, 이스라엘의 아랍권의 위협 견제1국가의 등급을 나누는 기준객관적인 국력의 요소로 국가의 등급을 나눌수 있다.(하나의 기준은 될 수 있으나, 정치적으로 큰 의미는 갖지 못함){1950년대의 중국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세 번째로 큰 영토를 갖고 있으며, 천연 자원도 어느 국가 못지않게 풍부할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중국을 강대국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2 변화하는 각국의 국력이 세상에는 지금 200개가 넘는 나라들이 있다. 새로 생기는 나라도 많고 이름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특히 냉전체제가 종식 이후 유럽의 새로운 나라들이 많이 생겼다.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유고슬라비아는 지난 10년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 4나라가 되었고 체코슬로바키아는 슬로바키아가 떨어져 나가 체코 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로 되었습니다. 하나였던 소련으로사실에 비유, 국제정치의 ‘pecking order(모이 쪼는 순서)’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국제정치 무대에서는 소수의 강대국들이 바로 ‘pecking order’의 최상층 부에 위치하는 나라들이고, 그 아래 중급국가, 약소국가들이 존재하고 있다.그러나 현재의 약소국 혹은 약소국의 국민들을 위해 대단히 다행스런 일은 국제정치의 위계 질서는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강대국이던 나라가 형편없는 약소국이 되기도 하고 잘살던 나라가 가난해진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가난하던 나라가 부자가 되기도 했고 또 약한 나라가 강국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는 한 때 각각 세계 1위의 강대국이었던 나라들로써 이들의 해군력은 한때 각각 세계의 절반을 넘을 정도로 막강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의 위치는 그다지 부럽지 않을 정도 많이 실추 되어있는 실정이다. 아르헨티나 역시 1930년대에는 세계의 부국(富國)이라며 자타가 공인했지만 지금은 만성적인 정치, 경제 불안과 가난에 찌든 나라가 되고 말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오토만 제국(현 터어키), 스웨덴, 덴마크 등 모두 한때 세계정치를 흔들던 강대국이었으나 오늘날 중급국가의 수준을 유지하는데도 벅찬 나라가 되었다.반대로 1870년 겨우 통일을 이룬 독일은 역사상의 강대국으로 성장했고 비록 2차에 걸친 패권도전에(양차 대전) 실패했지만 현재 착실한 국력을 보유하고 있는 모범적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이태리 역시 19세기이 후 겨우 통일국가가 되었지만 그 이후 항상 강대국의 일원으로 대우받는 나라입니다.(4) 강대국1강대국(Great Power)의 정의 및 기준1자력으로 자국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능력2동맹국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능력과 영토 밖으로 군사 행동을 전개할 수 있는 능력3국제 정치 환경을 자국의 가치 증대에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고 행 사 할 수 있는 국가 - 다른 국가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외교)19세기 세력 균형 제제하의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가 대체로 경쟁적이고 대립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를 종식시키기 위해 두 강대국은 1971년 핵전쟁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협정 (Accidents Measures Agreemest)을 체결하고, 이어서 1972년 5월에는 제1차 전략 무기 제한협정(SALT Ⅰ)을, 같은 해 5월에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닉슨이 소련을 방문 해 미.소 관계의 기본 원칙 (Basic Principles of Relat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USSR)에 관한 협정을 체결·미국과 중국은 상호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관계 개선에 합의·소련도 1970년 8월에 서독과 우호조약을 체결·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소련을 방문해 양국 관계 증진 및 차관 제공 등의 이념 초월 외교·서독 또한 동방 정책을 추진해온 동독, 중국, 폴란드 등와 관계 개선이러한 국가들의 탈 이념적이고 획기적인 외교의 전개는 양극 체제적인 국제 정치 환경을 바꾸어 놓았고, 동시에 새로운 체제인 다극적 국제 정치 체제를 탄생시켰다.체제를 유지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들 국가들은 체제 변화에 결정적 역할 을 했으므로 강대국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주요 대상국으로 분류한다.만약, 경제적인 측면에서 G-5 중의 하나인 일본이 동북아 국가들에게 자국 상품에 대한 수입을 또는 수출을 제한하는 정책을 결정한다면 이 결정은 동북아 국가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 국가는 물론 다른 지역 국가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본은 이러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일본 대외 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매우 크다. 그러므로 한 국가의 외교 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크면 그 국가는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2강대국의 속성국제 정치의 무정부적 특성 때문에 잘 사는 나라들은 대개 군사력도 강한 나라가 되기 마련이다. 물론 자신의 경제력에 비해 훨씬 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들도 있다.(과거의 소련이 그 예이고 오늘날 북한이 그 예)막강한 경제력과 막강한 군사력은 둘 다 강대국의쟁을 자주 하며 대부분 전쟁에서 승리하는 나라” 또는 “전 세계 군사비의 5% 이상을 국방비로 쓰는 나라”라고 계량적으로 정의하는 등 모든 군사적인 측면을 강조함과 동시에 국제정치에 대단히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나라를 강대국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위 학자들의 견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강대국이란 모두 막강한 경제력을 갖춘 나라라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 결국 강대국이란 실력과 행동 두 가지 측면에서 정의될 수 있는 것이다.동물의 왕국의 논리를 빌린다면, 강대국이란 맹수에 해당하는 나라이다. 코끼리 같은 나라라기보다는 표범 같은 나라가 강대국이라는 것이다.물론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힘이 강한데도 불구하고 얌전한 나라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며.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는 주로 약한 나라들이고 강대국들은 전쟁을 선호했다는 것이 역사의 현실이다. 국제정치의 논리상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혹자는 국제정치의 논리를 바꾸면 된다고 말하지만 국제정치의 논리를 구축해 나가는, 소위 국제정치의 주연 배우 역시 강대국이다.19세기 중엽이래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소련), 오스트리아 등이 강대국으로 인정되었으며 20세기 이후 미국, 일본, 이태리가 강대국의 반열에 들어갔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소련은 국력 면에서 기존의 강대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기 때문에 이들을 ‘Superpower(초강대국)’라 불렀다. 초강대국이란 개념적으로 “혼자서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 를 의미하는데 그런 나라가 두 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은 냉전 체제를 비정상적인 국제체제로 만들었다. 강대국의 특징이 전쟁을 잘 한다는 것인데, 초강대국들인 소련과 미국은 감히 서로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점에서 냉전의 종식은 역설적으로 국제정치의 정상적 측면이 회복된 세상의 도래를 의미한다. 이제 홀로 남은 초강대국 미국, 그리고 여타 강대국들은 군사력 사용을 냉전 시대처럼 주저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321세기의 강대국들2002년 봄 현재 국제정치의 강대국은 미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전통적으로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클럽멤버로서 인정해 주던 이탈리아, 이미 군사력이 막강하고 성장 잠재력 또한 어마 어마한 중국, 비록 몰락 중에 있지만 핵 강국 러시아를 현존하고 있는 강대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이 7개국은 국민소득이 모두 20,000불이 넘는 부유한 국가들이며, 현 국제 질서를 그들 중심으로 유지하고 있고, 국제 정치의 논리 역시 그들의 국가 이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서방 선진 5개국 또는 7개국의 국가 원수나 재수장관들은 수시로 모임을 갖고 국제 절시를 점검하고 그의 유지를 논의한다. 이러한 모임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 국가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제 선진국들은 언제나 그들의 국가 이익이 보호되고 극대화될 수 있는 환경이나 질서 유지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다.ex)서방 7개국정상회담, UN 안전보장이사회 5개상임이사국(5)약 소 국1약소국의 의미약소국과 강대국이라는 용어자체가 절대적이거나 계량적인 개념은 아니다.2차세계대전 이후 관심을 갖게 된 약소국의 연구가 아직도 약소국, 혹은 강대국이라는 개념 정의에 대해 국제정치의 이해를 위해 유용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것과 같이 이 개념은 아주 모호한 것이고 상대적인 것이다. 이는 비교의 기준(영토, 군사력, 경제력, 정치력 등 )과 대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약소국이라는 개념 정의는 대개가 모호하고 명확한 대답을 찾기 어렵다. 이러한 모호성과 분석대상으로서의 불분류성으로 인해 기존의 정의 가운데서도 지극히 제한적이고 소극적인 정의를 찾을 수 있는데 그 중에는 약소국을 “강대국에 속하지 않는 국가” 혹은 “비강대세력”으로 규정해 버린것도 있다. 즉, 자력으로 자국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고, 외국과의 동맹, 원조, 국제 기구 등의 지원에 의해서만 안전을 도모할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취약해, 외교상으로도 자국의 정치적 목표를 성취시킬 수 없는 국가를 약소국가로 정의한다.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
    인문/어학| 2004.12.06| 7페이지| 1,500원| 조회(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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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외교사] 한.러밀약설..
    {한·러 밀약설99 황찬홍 · 01 윤혜선 · 02 문주식{『 목 차 』1. 한·러 밀약설의 배경1조선의 정세와 청·러·일의 입장2거문도의 전략적 위치2. 한·러 밀약설의 내용3. 한·러 밀약설의 폭로 원인.거문도 사건4. 한·러 밀약설의 폭로와 거문도 사건에 대한 각 국의 입장1영국2러시아3청나라 (청·영회담 / 청·러회담)4조선1. 한·러 밀약설의 배경1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청나라가 일본과 러시아의 세력이 강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조선으로 하여금 이들 나라에 대해 경계심을 갖도록 권고하고, 서구열강과의 수호통상조약교섭을 적극 주선하였다. 더 나아가 청이 조선에서 전통적인 종주권을 내세워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려고 하였다. )- 강화도 조약을 맺은 이후 조선은 서구열강의 각축장으로 변함- 임오군란(1882)을 계기로 서양세력에 의한 침략의 물결에 휩쓸림 → 일방적인 무력개입 정책을 단행하여 속박을 가속도적으로 적용- 조선: 청을 견제, 구미제국과의 수호통상조약에 적극적으로 대응 → 러시아 끌어들임(여기서 조선은 그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미·영의 힘을 빌리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조선책략적 외교노선을 버리고 급격히 러시아에 접근, 마침내 한·러수교조약을 성립하게 되었다).2. 조·러밀약과 청의 의도1 조선 - 러시아(갑신정변 이후 고종과 민비는 한반도 내에서 청,일간의 전쟁이 발발할 것을 두려워 했다. 따라서 고종은 청이나 일본보다는 강력한 제3국의 간섭을 유도함으로써 전쟁을 방지하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러시아였으며 즉, 고종은 암암리에 한국을 경시하거나 위협하지 않는 영국, 청, 일본에 대한 어떤 세력균형을 찾으려 하였다.)고종은 한국에서의 청.일 간의 전쟁을 우려 → 러시아를 열강의 균형세력으로 이용1 뮐렌도르프 → 스페에르 · 조선의 보호령화 확립·왕의 보호를 위해 군함 및 200명의 수군 파병 요청·보호 대가 : 영일만의 조차, 한국 동해안의 한 지역을 조차한국은 청의 지지를 값있게 평가하나 좀 더 강력한 러시아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전제 한 후 한국은 러시아가 보호할 때 또는 한국의 독립에 대한 국제적인 보장이 얻어질 때에만이 안정될 것이다 라고 언급했다.⇒뮐렌도르프가 그러한 문제에 대해 논의할 자격이 없다. (∵그의 방문이 비공식)(뮐렌도르프는 일본의 한국침투를 저지키 위해 파견된 당시 러시아의 외무고문이었다. 사실상 그는 외교문제 있어서 한국정부의 실권자임//스페에르는 주한 러시아 공사// 뮐렌도르프는 청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일본의 팽창에 대항하여 한국을 보호할 수 없다고 판단함)2 한국 → 러시아 에게 요청할 수 있었던 3가지 정책은 다음과 같다.1러시아 단독으로 또는 청,일과 함께 한국의 중립 및 영토적 자주권을 보장해 줄 것2러시아 보호를 받는다는 것.3러시아의 보호령이 되는 것.⇒러시아 정부는 어떠한 공식적인 언급도 삼가 - 러시아 와 청·일과의 충동을 야기(당시 러시아 정부는 어떠한 공식적인 언급도 삼가고 있었다. 이는 다름 아닌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보호는 청일과의 충돌을 야기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러시아가 청나라와 일본과 충동할 경우 너무나도 과중한 노력과 희생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타열강의 지배는 러시아 이외의 국가와 한국관계를 악화시킬지도 모르므로 한국을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힘)3 한국을 보호령화하는 문제는 그것이 청.일 과의 충돌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설때까지 어떤 분명한 결정에도 도달할 수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1한국 사태에 말려들기를 원치 않음2한국에서의 청,일간의 전쟁에 반대 (∵일본과 영국이 한국 항구를 점령할지도 모름)(러시아는 갑신정변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에도 엄격 중립을 유지하였으며 그 이후에도 몇몇 러시아 고위관리들은 뮐렌도르프의 제의가 신빙성이 있음을 주장하면서 러시아의 보호하에 한국을 종속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노2청의 의도·청교관이나 청에게 도움을 주는 서구의 교관에 의해 조선 병사들을 훈련 받도록 함→ 고종 거절·(친러경향을 보이는)민비를 제거하기 위해 대원군을 석방시킴·한국 내정을 감독할 권한을 가진 총독 파견(원세개)·한.러 간의 13마일 국경선 지역을 점령·한.러 비밀협정 날조 (러시아가 한국을 점령할 목적이자 조선이 러시아의 보호령이 되려 한다는 내용으로 고종의 검인까지 찍어서 위조함)→청의 조선 병합의 당위성 근거 마련위함(청이 한국을 병합할 수 밖에 없는 이 유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임. 한국을 러시아에게 빼앗기기 전에 청이 먼저 나서겠다는 것임)∴(1885년 여름에 청은 한국을 종속시키려 하였으며 비록 한국은 청의 종주국이었지만 조선의 내치외교는 자주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1885년 10월 원세개가 한국총독으로 서울에 도착한 이후 한국정치가들은 청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러시아로 돌아섰으며 따라서,) 러시아에게 도움을 얻으려는 고종의 의도는 도리어 한국에 대한 청의 간섭을 증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3.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의도1 1880년대 조선을 둘러썬 열강들의 의도1 영국은 청으로 하여금 한국을 흡수하도록 사주함 → 러시아 북진정책 견제2 러시아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을 인전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음-조선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를 할수 없음 → 그만한 입장에 놓여있지 않음-한국에서의 영.청협력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을 이용하려 함3 일본은 자국의 군사력이 청과 견줄만할 때까지는 대러시아 우려를 이용2 러시아의 의도1880년대 러시아정부는 특히 영.청관계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당시 러시아정부는 혹시 영국과 청이 협상에 도달하여 한국에서 해군기지를 확보하고 청 정부를 지배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청·일분쟁이 발발할 경우에 청의 한국점령을 고무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했다.1청의 한국점령 대한 조치는 평화적인 수단으로 함(청과의 군사적 분쟁을 피하겠다)21887년, 러시아는 Vestink호를(베스팅크) 한국에 파견 - 조선문제에 러시아가 무관하지 않음2영국이 계속 러시아가 한국을 점령할 것이라고 선전하자 러시아는 이를 정리할 필요를 느낌)1888년 5월 8일 특별위원회(영-러) 개최: 한국점령은 러시아에 불리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난관을 수반할 것이라는 결론을 지음.(이유는 한국은 빈곤하기 때문에 러시아에게 유용한 상품을 제공해 줄수도 없으며, 한국은 러시아중앙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충분한 군사력을 이용할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3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한국의 해안선 방어를 떠맡는다는 것은 러시아의 부분적인 팽창의 부담으로서는 너무 큰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또한 러시아의 한국 점령은 청 및 영국과의 관계로 악화시키는 동시에 청.일협조하에 러시아를 공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러시아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것이라고 결론 지음)3청은 한국내치를 조정,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 시킴 - 우수리지역에 청의 세력 활발(우수리 지역은 우수리강 주변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러시아와 청의 경계가 되는 강으로써 강의 경계가 워낙 넓어서 과거 중국과 러시아의 영토 분쟁이 일어나기도 한 곳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우수리 지역은 두 국가에 있어서 민감한 지역이므로 러시아가 발끈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는 조선에게 청으로부터 독립권고, 러시아수도에 한국공사 파견을 설득⇒ 한.러 밀약설 체결4. 한·러 밀약설의 내용.1차 한·러 밀약설(1885년 6월 16일) - 협판교섭통상1청.일 전쟁 발발시 조선은 중립고수 2러시아의 보호를 받음 3댓가로 영흥만 조차4조선의 장병을 훈련하기 위한 약간의 러시아 군사교관 초빙(전권대신 서상우(徐相雨)와 부관(副官) 묄렌도르프가 고종 22년(1885) 2월 14일 일본 동경에 파견되어 2주간 체재하는 동안에 주일러시아공사 다비도브(Davidov) 및 스피야(Alexis de Speyer)서기관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체결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협정의 주된 내용은 청일개전(淸日開戰)에 있어서도 조선은 영토를 보전하기 위하여 중립을 고수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으며 또한 조선의 장병을 훈련하기 위하여 약간의 러시아 군사교관을 초빙한다는 등의 것이었다.).2차 한·러 밀약설(1886년 8월 9일) - (이 협정내용의 요지는 러시아는 조선에 보호를 가하도록 하나, 타국과 일률 평등한 국가대우를 한다. 그리고 만약 조선이 제3국과 분쟁을 일으켰을 때에 러시아는 군함을 파견하여 조선을 원조한다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이 협정을 기화로하여 재빨리 조선보호라는 미명하에 조선의 북부국경에 가까운 경흥(慶興)을 개항시장으로 획득하였다. 러시아가 우리 봉건정부와 비밀협정을 체결한 진의는 청국의 종주권을 폐기시킴으로써 자국이 그 위치를 가로채려는 추악한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인문/어학| 2004.12.06| 5페이지| 2,000원| 조회(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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