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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디자이너 솔바스(SAUL BASS)의 영화 타이틀 시퀀스
    SAUL BASS◦ 과 목◦ 학 과◦ 학 번◦ 이 름◦ 제출일자◦ 교 수 님목 차I. 서론II. 본론타이틀 시퀀스Saul Bass그의 작품i. 흥미로운 그의 작품 세계ii. The Man with Golden Arm - 타이틀 시퀀스iii. Anatomy of A Murder - 타이틀 시퀀스D. 그가 남긴 것III. 결론※ 참고 문헌I. 서론영상디자인은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영상을 매체로 하는 디자인의 일종으로 TV나 비디오, 컴퓨터 등 빛을 이용한 기기의 발전으로 광고는 영화 등에 많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쉽게 이야기해서 영상매체에 보여지는 내용물을 디자인 하는 것인데, 카메라로 촬영 한 것에 가공, 즉 디자인을 더하여 더욱 가치 있는 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한 예로 결혼 전 남편에게 프로포즈를 할 때 나는 영상편지를 만들어 상영해 주었던 적이 있다. 함께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가공하여, 배경음악을 입힌 후 여러 효과를 적용한 영상물 이었다. 그 때에 작업은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하였으나, 그 이후로 나는 영상디자인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아직 기술은 없지만 이 분야에 관하여 여러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있고, 이번 강의 내용에 영상디자인과 관련된 내용을 배울 수 있어 나는 더욱 뜻 깊은 시간 이었다.또한 한번 듣고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영상디자인의 선구자라 불리 우는 “Saul Bass”를 좀 더 깊게 조사할 기회가 생겨 나는 더욱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영상디자인 계에 남긴 것과, 그의 작품,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것들과 그가 현 시대에 남긴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II. 본론앞서 언급한 영상디자인은 일반적으로 영화나 기업, 상품 등을 알릴 목적으로 포스터나 로고를 만드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데. 영상디자인으로 유명한 Saul Bass는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잠재된 상상력을 잡아낼 수 있는 중요한 아이디어나 테마를 잡아 보여주어야 한다는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을 따른 인물이었다.타이틀 시퀀스솔바스는 크게 대 ‘타이틀 시퀀스’라 불리우는 분야로써, 영화에서 그래픽적 요소가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인 오프닝 타이틀 이다.‘시퀀스(Sequence)’의 사전적 의미는 ‘연속, 차례, 결론’으로, 영화에서는 ‘연속된 일련의 화면’을 칭한다. 그리고 이것은 장소, 액션, 시간의 구성을 통해 만들어진 하나의 독립적인 에피소드이고, 일련의 씬(Scene)들로 만들어진다.보통 영화의 오프닝이라고 하면 감독과 제작사, 배우의 소개로만 여기기 쉽다. 그러나 ‘타이틀 시퀀스’는 단순히 등장인물들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제 볼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감을 극대화하고 흥미를 유발시켜 시작 전, 관객들 진지한 마음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해준다. 바로 이것이 타이틀 시퀀스 제작의 주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타이틀 시퀀스는 이미지에 시간이라는 것이 더해져 동적인 장면들과 어떤 부정확한 단위들로 구성되어진다. 그러므로 타이틀 시퀀스의 디자이너는 머리속에서 그 시퀀스(장소, 액션, 시간 등의 적절한 배합과 구성을 통한 줄거리)를 창조해 내야만 한다. 타이틀을 단순히 제목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영화의 흐름을 잡아주는 작은 줄거리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영화적인 시퀀스의 개념이 필요하다.나는 본 조사에서 솔바스가 남긴 작품 중에서도 나는 특히 이 “타이틀 시퀀스”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Saul Bass1920년 5월 8일 뉴욕에서 태어나 1936~39년까지 아트 스튜던트 리그와 브룩클린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고, 조지 케페스 교수로부터 현대 디자인의 기초를 배웠다. 케페스 교수는 1930년대에 라즐로 모흘리나기의 권유로 미국에 이민 와서 시카고에 뉴 바우하우스를 설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디자인 교육가이다.솔바스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냥 막연히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1935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5살의 솔바스는 대공황 속에서 꿈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낮에는 레이블 디자이너 밑에서 심부름을 하고 밤에 고달픈 생활을 계속해야만 했다.그러나 솔바스는 단순한 심부름꾼에서 ‘상업예술가’로 승격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훗날 영상디자인의 선구자 라고 불리 우게 되었다.Saul Bass의 작품솔바스의 작품을 보면 지금 만들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작품들이 많다.간단 명료하지만, 웃음과 긴장감과 비주얼적 흥미를 주는 요소들이 들어있었다..i. 흥미로운 그의 작품 세계위의 사진은 89년에 제작된 '장미의 전쟁'이라는 타이틀을 캡춰 한 사진으로 장미가 실크와 같은 천 위에 놓여져 있지만 이는 곧 구겨져 한 남자가 코를 풀게 된다. 사진으로만 보아서 정확한 의도 파악이 어렵지만 유머와 반전이 있는 작품이다.위 작품은 60년대에 제작된 오션스 일레븐 이라는 영화의 타이틀로써, 오션 일당의 유쾌한 카지노 이야기라고 하는데 최근 몇 년간 개봉한 오션시리즈의 원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으로 트릭이 숨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준다.위의 사진은 솔바스의 사이트에서 있던 작품으로 배경음악의 리듬에 맞춰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며 글자가 나오며 회화적인 이미지로 보는이까지 즐겁게 만든다.위의 작품은 공포영화의 타이틀로써 화면의 이동 중에 세로 막대가 생기는데 그 막대로 인해 공포감이 더욱 고조되도록 유도하고 있는 듯 하다.The Man with Golden Arm - 타이틀 시퀀스처음에 4개의 선이 내려오면서 기획사 설명과 인물 설명이 나온다.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어딘가에 중독 된 남자”그리고 그를 “조언해주는 여자”와 “남자를 옭아매려는 여자” 남자는 그 둘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남자는 도박을 하다가 크게 낭패를 본다는 내용이다.오프닝에서 보이는 4개의 선은 마치 4명의 주된 등장 인물을 의미하는 듯 하고, 기울어져 있는 선들은 그들의 관계가 좋지 않음을 이야기 하는 듯 하다.“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 텍스트 주변을 4개의 선들이 둘러 싼다.이 화면은 주인공이 어딘가에 갇혀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그 곳에서 벗어나려 하는 듯한 느낌 이었다.아래 위로 하나 하나씩 막대기가 쌓여가는 이미지.이 이미지는 “도박”을 좋아하는 주인공이 하나하나 쌓아 가고 하나하나 잃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이 장면은 4개의 선이 다시 나오게 되고, 각자 엇갈리고 꼬여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처음 나온 두 개의 선은 주인공이 갈등하는 두 명의 여성에 대한 마음이고, 그 다음에 뻗어오는 X라는 선은 그의 마음에 다가가는 여인에 대한, 나머지 하나는 그에게서 멀어지는 여성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마약에 중독된 남자, 도박에 중독된 남자를 다른 소재는 전혀 쓰지 않고 오로지 “손” 하나 만으로 표현을 했다. 팔의 구부림도 손의 모양도 그가 지금 무언가 잘못 된 것에 포기를 못하고 있음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 화면 하나로 모두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솔바스는 이 “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의 타이틀 제작으로 확고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당시 극장에서는 지루한 타이틀이 다 지나간 후 영사막의 커튼을 올리는 관행이 있었는데, “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 개봉시 감독은 솔바스가 디자인 한 타이틀을 반드시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타이틀 시작과 함께 커튼을 올려줄 것을 요청 했다고 한다.Anatomy of A Murder - 타이틀 시퀀스간단 명료하면서도 앞으로 시작될 영화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표현해준다. 이 타이틀만 보고서도, 이 영화가 어두운 분위기의 스릴러라는걸 알 수 있다.인체를 하나하나 분해하여 재배치하는 모션은 단순하지만 섬뜩하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배치되는 타이포그래피는 단정함을 줌으로서 영화의 분위기를 잘 설명하고 있다.그가 남긴 것=솔바스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인 1996년 3월,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로부터 평생의 공적을 기리는 상을 받았고 디자이너로서의 일생을 보여주는 마지막 전시회를 가졌다.이 전시회에서는 그의 영화 포스터들과 그래픽 작품들이 선보였다. 솔 바스는 미국의 상업주의 속에서도 예술성을 잃지 않은 몇 안되는 디자이너 중의 한 사람이었 경험한 디자이너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III. 결론이번 조사를 통하여 Saul Bass의 작품을 여러 가지 접해보았지만, 그의 작품에는 그 만의 추구 스타일이 있는 듯하다. 그는 한가지 사물을 통해 인물의 심리나 상황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듯 했고, 영화 자체의 색채를 담아내기도 했다. “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의 타이틀 시퀀스와 같이 정말 단순하게 선 몇 가지로도 영화 전체의 이미지를 담아내기도 했다.그의 작품은 영화의 오프닝일 뿐이고 그 오프닝을 본격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은 바로 영화이기 때문에 타이틀 시퀀스는 영화에 대한 함축적이고 집약적인 표현 만을 영상에 담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영화의 오프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은 그 것 하나로만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본다.주어진 짧은 시간내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그의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예쁘고 보기좋은 것만을 추구하려 했던 나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나도 그의 이런 표현 능력을 배워 의미있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 참고자료 ◈raydream. HYPERLINK "http://blog.naver.com/raydream?Redirect=Log&logNo=120029066847" 영화타이틀시퀀스, http://blog.naver.com/raydream?Redirect=Log&logNo=120029066847우네냥. HYPERLINK "http://blog.naver.com/syungisyungi?Redirect=Log&logNo=150016938872" Saul Bass[솔 바스] - and his work,, http://blog.naver.com/syungisyungi?Redirect=Log&logNo=150016938872네이버지식인. HYPERLINK "타이틀시퀀스란" 타이틀시퀀스란,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야생. HYPERLINK "솔바스" 솔바스. http://blog.naver.com/4real?8
    예체능| 2008.07.01| 10페이지| 2,500원| 조회(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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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다이즘 - 마르셀뒤샹의 레디메이드 `어떤 것도 미술이 될 수 있고, 누구라도 미술을 행위 할 수 있다`
    다다이즘Marcel Duchamp의 Ready made어떤 것도 미술이 될 수 있고, 누구라도 미술을 행위 할 수 있다.◦ 과 목◦ 학 과◦ 학 번◦ 이 름◦ 제출일자◦ 교 수 님목 차I. 서론II. 본론A. 미술의 혁명가 마르셀 뒤샹B. 마르셀 뒤샹의 C. 미술의 부정 – Ready Madei. Ready made 작품 ii. Ready made 작품 D. 다다i. 취리히 다다ii. 뉴욕 다다E. 뒤샹의 다다의 표현 작품 - F. 뒤샹의 다다의 표현 작품 - G. 그가 남긴 것III. 결론※ 참고 문헌I. 서론누구라도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을 듯한 유명하고 훌륭한 예술가들은 많다. 그들의 작품은 그들의 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고, 그들을 추종하는 작가들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디자인의 이해 수업을 들으면서, 여러번 들어보았던 작가나 그들의 작품을 보며, 잘 알지는 못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감상을 했다.그런데, 수업 내용 중 레오나르도의 에 수염을 낙서한 정도의 엽서 한 장이 미술작품 이라니 그리고 더 가관인건 남자 소변기, 자전거 바퀴를 미술품이라고 전시를 했다는, 난해하고 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한 강의 내용에서 내게 피식 웃음을 짓게 한 작품들의 작가가 “마르셀 뒤샹” 이었다.그리고 나는 좀 더 알고 싶었다. 그가 추구한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가 장난스럽게 표현하고 예술이라 이야기 했던 그 작품들의 의미를. 지금 나는 그의 작품을 보며 무지함 속에서 비웃고 있지만, 그에 대해 알게 된다면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란 걸 알고 있기에 나는 그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그래서 나는 그의 생애와 작품들을 통해 그에 대해 이해하고, 그의 작품을 통해 “다다이즘” 이란 무엇인가 좀 더 쉽게 알아보고자 한다.II. 본론미술계는 르네상스 시대 후 세계화 되면서 급변하는 새로운 기술들을 이용해 매우 다양한 작품들을 배출하였다. 예술은 더 이상 예술가 라고 불리는 이들의 전유물이 아닌 어떤 의미만 있다면, 어떤 재료의 구성만 갖춘다면 미술품으로 인미술의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아예 없애 버렸다.이런 의미에서 미술사에서 뒤샹은 피카소보다 더 주목 받을 만한 예술가로 평가되고 있다.마르셀 뒤샹의 마르셀 뒤샹은 1887년 7월 28일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형들도 모두 미술을 했기에 그는 어릴 때부터 미술을 가까이 했고, 1902년 첫 유화 을 시작으로, 삽화를 주로 그렸다.야수주의 영향을 받아 여인의 누드를 주로 그렸으나, 그것은 마티스와 세잔의 화법으로 마르셀 뒤샹은 자신만의 회화를 찾으려고 노력했다.우리는 마르셀 뒤샹을 다다이즘의 선봉자, 최고의 다다이스트 쯤으로 알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뒤샹은 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파의 길을 차례로 밝게 되었다.1913년 그는 를 그리는데, 운동감이 살아있어 마치 컴퓨터 그래픽을 보는 듯한 그림이다. 당시 이 그림은 입체주의로 보기 힘들고 입체주의 그림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게 되어, 전시회에 출품하려 했지만 거부 당하게 되었다.그것을 계기로 마르셀 뒤샹은 직업적 의미에서 화가라는 직업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으며, 뒤샹은 그 그림이 과거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표현 했다. 유화,미술의 부정 – Ready MadeReady Made 는 뒤샹이 창조해 낸 미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기성품을 그 일상적인 환경과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놓으면 본래의 목적성을 상실하게 되고 드디어 단순히 사물 그 자체의 무의미함 만이 남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이것은 美는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 근대 미술의 새로운 주장이며, 특색이다. 그래서 어디서나 모든 사물에 관심을 가지고 발견한다면 창조적인 예술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그가 어떤 작품을 선정하든지 그것에는 그의 특유의 아이러니와 유머가 있었고, 미적 모호함이 있었다.Ready made 작품 마르셀 뒤샹의 첫 ready made 작품으로 자전거 앞 바퀴를 부엌에서 사용하는 등받이 없이 걸터앉는 원형의자 위에 거꾸로 세워 조립했다.이 것은 사물에 대한 형태 보다 그ady made 작품 병 건조기는 병을 거꾸로 걸어 물기를 빼기 위한 기구 이다. 그러나 상징적으로 그 돌기부분은 남성을 의미하며, 병이 거꾸로 걸렸을 때 병의 내용물이 흘러나오게 됨으로 감성적인 욕망을 상징하게 된다.이 작품은 대량 생산품으로써 복제이며, 돌기부분도 모두 동격이다. 따라서 성적 욕망도 모두 동격이고, 예술가의 화구가 대량생산품으로써 복제라면 결국 예술가의 제작 욕망도 모두 동격이라는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다.이 외에도 뒤샹은 병 말리는 기구, 옷걸이, 모자걸이, 빗 같은 일상 용품을 ready made로 선정 후 전시장에 설치한 다음 미술품이라 주장 했다. 그는 무감각한 상태에서 편견 없이 사물을 선정한 후 비논리적인 제목을 붙여서 관람자로 하여금 각자의 생각을 일으키게 한 것이다.다다다다는 전통에 반대하고, 합리적인 것에 반대하며, 제도에 반대하고, 모든 것에 반대한다. 그 기본적 원칙은 부정이다.1차 세계대전, 즉 전쟁은 이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여러 면에서 충격을 안겨 주었다. 허다한 젊은 미술가들과 시인들의 불만에 새로운 근거와 긴박성을 부채질 하였고 그들에게 다다이즘은 새로운 사회의 원초적 출발 이었다.그들에게는 일관된 양식이 없었고 진정한 합의점이 없었다. 다다는 숭고를 표현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예술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숭고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며 논리보다는 무의미가 낫다고 주장했으며 다다이즘의 이러한 어린 아이 같은 반항은 세계 1차 대전이라는 시대가 낳은 산물이었다.다다의 기본 원칙은 부정이었으며, 항의의 외침이었고, 자유의 표현이었다.다다라는 말은 1915년 뒤샹이 뉴욕으로 온 후 미국인에게도 알려졌고, 만 레이를 통해 확고해졌다. 세계대전으로 이성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은 커졌으며, 허무주의 사상이 팽배해 질 수 밖에 없었는데, 다다는 예술의 허무주의였다.뒤샹은 이미 Ready made 대량 생산품을 미술품이라 주장함으로써 다다의 요소를 이미 표출 하였으며, 기계주의 드로잉을 통해 미서 처음으로 다다라는 말이 사용 되었다.ii. 뉴욕 다다뉴욕 다다는 뒤샹을 중심으로 1915년과 1923년 사이에 행해 졌으며, 취리히 다다와는 다르게 예술가들은 조직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이미 그 전 뒤샹의 ready made로 다다의 요소가 표출 되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본다면 뉴욕의 다다가 취리히 보다 앞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뒤샹의 다다의 표현 작품 - 어떤 예술가든 6달러만 내면 전시가 가능한 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해 뒤샹은 전시회 1주일 전 변기를 하나 구입했다. 그는 그것을 거꾸로 세우고 검정물감으로 ‘R, Mutt 1917’ 라고 썼는데 변기 제조자의 이름을 작품에 서명하듯 적고 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그는 그것을 전시장에 들고가 6달러와 함께 제출했는데, 비도덕적이며 저속한 물건이라는 이유로 전시를 거부 당했다.변기를 전시하고자 했던 뒤샹의 의도는어떤 것이든 예술가 자신이 원한다면 그것이 예술품이고 또한 전시 할 수 있으며, 예술가 자신이 예술품은 어떤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바로 이것이 [어디서나 모든 사물에 관심을 가지고 발견한다면 창조적인 예술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라는 ready made와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1917뒤샹의 다다의 표현 작품 - 를 프린트 한 엽서를 한 장 산 뒤샹은 검정색 연필로 수염을 그려 넣고, 아래에 대문자 L,H,O,O,Q(그 여자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다 라는 뜻의 불어를 의미한다고 함) 라고 적었다. 르네상스의 대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작에 감히 수염을 넣고 지독한 농담을 보탠 것은 그야말로 극도의 다다주의 방법 이었다. 수정 레디 메이드연필로 수염을 그려 넣었다.뒤샹의 이 그림 이후로 예술가들은 모나리자를 선호 하였는 데, 살바도르 달리의 모나리자 , 앤디 워홀의 모나리자 등 이들은 레오나르도의 가 아니라 뒤샹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뒤샹의 라고 말 할 수 있다.그가 남긴 것뒤샹이 세상을 떠난 지 약 40 여 년도 되지 않았으나 그는 사람들에게 ready made를 처음 소개한 예술 아트가 바로 뒤샹의 ready made 사물을 선정하는 데서 출발한 미술 이었다.III. 결론뒤샹은 진정 난해한 예술가 였을까?가장 많이 알려진 이라던가, 와 같이 다다이즘 적 요소가 가장 많이 내포되어 유머와 아이러니한 작품을 살펴 봄과 동시에, 그는 ‘왜’ 그러한 것들을 작품 이라고 했을까, 그리고 그가 이러한 작품 전에는 어떤 작품을 그렸는지에 대해 살펴 보았다.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어떤 것도 미술이 될 수 있고, 누구라도 미술을 행위 할 수 있다.”그는 기존 미술을 부정함으로써 예술은 예술가 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이다.우리가 현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의 이런 논리는 어느 곳에나 적용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특정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면 반대로 그것을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열등감을 심어줄 수 있다. 그 특정한 것이 어떤 이들의 전유물이 된다면 그때에 바로 “다다” 라는 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뒤샹이 활동했던 시대는 1차 세계대전 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존재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떠한가.너무나 주변을 의식하며 남이 하는 대로 따라만 가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수동적으로 끌려만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뒤샹이 그 시대의 야수주의, 인상주의, 입체파 등의 길을 차례로 밟다가 어느 한 일을 계기로 혁명가가 되었고, 그는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평가 되고 있다.나는 이 짧은 조사와 글로써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는 없지만, 한가지 분명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그의 작품 이나 와 같은 작품의 의도를 통해서 그의 예술성 보다는 그가 추구한 논리와 그의 삶의 태도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배워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참고 문헌 ◈강미정. HYPERLINK "http://my.dreamwiz.com/mijk/dada.htm" 예술과 반예술, http://my.dreamwiz.com/mijk/2001
    예체능| 2008.06.13| 9페이지| 2,000원| 조회(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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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궐 평가B괜찮아요
    {궁궐경복궁 근정전 옆에 놓은 향로처럼 생긴 그릇은 향로가 아닙니다,정(鼎)이라는 것인데 왕이 백성들의 안녕과 하늘의 복을 기원하는 상징물이며, 또한 강력한 왕권을 뜻하는 상징물이기도 합니다.궁궐(宮闕)이란?궁궐의 정의궁궐이란 궁과 궐이 합친 말이다.궁은 왕이 신하와 함께 정무를 보고 거처하는 곳이라면 궐이란, 그 궁을 지키는 "궁성과 성루와 성문"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를 들면 경복궁의 경우 광화문 동십자각 그리고 궁의 돌담등을 우리는 궐이라 한다. 또 궁전(宮殿)이란,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궁전은 궁궐안에 있는 전각을 의미하며, 임금님이 사용하는 사적 공적인 건물을 가리킨다. 예를 들자면 "근정전 사정전등"을 들 수가 있다.궁실이란. 궁전 건물중 왕이 "사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을 말한다.궁궐 >궁전 >궁실별궁(別宮) 행궁(行宮)그밖의 궁(宮)의 의미우리가 흔히 5대 궁궐은 "경복,창덕,창경,경운,경희궁"으로 나눈다. 하지만 궁궐은 아니지만 궁이라는 이름으로쓰여지는 건물이 있다.왕이 왕이 되기전 머물었던 잠저, 이를 "별궁"이라 하고.(예:효종의 잠저인 용흥궁) 왕이 궁궐을 떠나 잠시 경유하는 궁을 "행궁"이라한다(예:왕이 온천욕을 위해 온양에 잠시 머물렀던 온양행궁)등이 이에 속한다. 혹은 "왕의 아버지" 정도의 격이 되는 사람들의 집을 가리켜 "궁"이라고 붙이기도 한다(예:홍선대원군의 집 운현궁) 하지만 이들은 궁궐은 아니다. "궁실" 정도면 적당하겠다.궁궐자리?배산임수(背山臨水)뒤로는 산이 감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물이 흘러야 한다. 우리가 흔히 명당자리의 기준이되는 조건이다. 실제로 경복궁의 경우 뒤로는 백악산 응봉상이 위치해있고 앞으로는 천계천이 흐르고있다..좌묘우사(左廟右社)궁궐을 바라보면서 좌측엔 "사직단"이 우측엔 "종묘"가 있어야 한다.지금 경복궁에서 바라보면, 좌측엔 사직단(현 사직공원,사직동소재)이있고,우측엔 종묘(현 종묘공원 종로4가소재)가 자리잡고 있다."전하 종묘사직을 생각하시옵소서 !!!"우리가 사극에서 흔이 듣던 종묘사직은 사직단)와 유교사회(종묘)인 조선에서 종묘와 사직은 국가 그 자체가 된다.우리 조선의 궁궐은 뒤에는 백악산과 응봉산이 감싸주고 좌우에는 종묘과 사직단이 보호를 해주며, 그 앞에는 맑은 청계수가 흐른다!!(지금은 똥물의 대명사가 됫지만)궁궐의 공간구조?궁궐의 공간구조는 내전(內殿), 외전(外殿), 동궁(東宮), 주거공간, 후원(後苑), 궐내각사(闕內各司), 궁성문(宮城門), 궐외각사(闕外各司)로 분류된다.내전(內殿)내전은 왕과 왕비의 공적 사적 활동 공간으로, 위치와 기능면에서 궁궐의 중심이 되며 , 크게 대전(大殿)과 중궁전(中宮殿)으로 분류된다.대전:왕이 기거하는곳으로 특히 대전의 여러채의 집들중 일상적인생활을 하는 공간을 "연거지소(燕居之所)" 또는 "침전(寢殿)"이라 하는데, 왕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며, 주 요인물을 만나는곳이므로 궁궐의 가장핵심이며, 조선왕조 역사의 시작과 같은 곳이다.편전(便殿)은 왕의 생활공간 안에 만들어진 업무공간이지만 때론 외전에 속하기도 한다.예를들어 경복궁의 사정전,강녕전 /창덕궁의 희정당,선정전/ 경운궁의 준명전,함녕전중궁전(中宮殿):우리가 흔히 "중전마마납시오"!! 라는 말에서의 중전은 중궁전의 약자이기도 하다. 중궁전은 왕비가 기거하는 공간으로 궁궐의 가장 깊숙한데 위치한다.예를 들어 경복궁의 교태전 / 창덕궁의 대조전 /외전(外殿)외전은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를 만나는의식 연회등 행사를 치르는 공간으로 가장 화려하고 권위가 있어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곳이다.외전의 중심은 "정전(正殿) 혹은 법전(法殿)"이라 부르는 건물이다.정전건물 주변에는 회랑이라는 담이 둘러쌓여있고 그 회랑안 공간 즉 네모난 마당이우리는 흔히 조정(朝廷)이라 말한다 "조정대신들은 뭘하고있는게야!!..."동궁(東宮)"동궁마마 어서 드시옵소서"(= "세자저하 어서 드시옵소서")"동궁"이란 세자를 지칭하는 말이면서 세자가 기거하는공간을 의미한다.동궁(세자)은 다음 왕통을 이을 예비국왕이다. 따라서 떠오르는 해가 동쪽에 있듯이 동궁의 위치도 외전의世子侍講院 오늘날로 말하자면 과외선생님들의 교무실 )과 /세자의 경호를 담당하는 부서인 "세자익워사"(世子翊衛司 오늘날로 보면 경호실)주거공간외전과 내전 동궁주변에는 왕 왕비 세자등 주요인물들의 시중을 드는 내시, 궁녀,노복 ,군병들의 기거 공간으로 되어있다.후원(後苑)후원은 궁궐의 북쪽에 조성되있는 왕실의 공원인데,이곳은 아무나 들어갈수없는곳이다.현재에도 저기 남쪽에 청남대라고 해서 대통령이 휴가기간동안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있다.후원도 같은 기능을 하고있는데 당시에는 휴식말고도 과거시험도 치르고,왕이 직접 군사훈련도하고,조그마한 논을 만들어 친히 농사도 지어보는 공간으로 이뤄져있다.궐내각사(闕內各司)지금까지의공간이 왕실의 공간이라면 궐내각사는 신하들의 활동공간이다.정규관리의 활동공간/군사기구/왕실시중과 궁궐관리기구등이 있다.빈 청 (賓廳) : 고위관리들의 회의실정 청 (政廳) : 인사업무처리기관.대 청 (臺廳) : 사헌부 사간원 관리들이 업무활동을 논하는곳.승정원 (承政院): 왕명출납기관*(비서관) "오늘밤 승정원 승지가 누구냐!!"홍문관 (弘文館): 왕의 학문을 돕는 기관 (왕의 자문기관)예문관 (藝文館): 외교문서을 작성하는 기관춘추관 (春秋館): 실록편찬을 기록하는 임시 기관그외기관이외에도 이들 기관에 소속된 아래 사람들과 왕실에 관계된 모든 업무 담당하는 이들의 의 활동공간등이 있다.궐외각사(闕外各司)광화문 남쪽 좌우에는 국가의 기간 고나서들이 위치한다 이들은 궁궐 밖에 위치하기 때문에 궐외각사(闕外各司)라 한다.의정부(議政府):영의정,좌의정,우의정으로 구성된 정부 총 관리기관.육조(六曹):이조/홍조/예조/병조/형조/공조사헌부(司憲府)한성부(漢城府):도성 관리기관기타 등등건물보기건물의 서열 [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 ]궁궐은 작은 도시이다 이 안에는 다양한 신분이 기거를 한다. 왕부터 궁녀 노복까지 그들이 기거하는 건물도 나름데로 신분이 주어진다. 건물마다 그 이름의 끝자는 서열이있다{건물명사진설명전(殿사용하는 건물에 붙는다. 예)근정전/사정전/교태전등당(堂){(왼쪽:양화당)전(殿)에 비해 규모는 비슷하나 격은 한단계 낮은 건물이다.전은 공식적 성격을 띈다면 당은 좀더 사적인 건물에 쓰인다.예) 양화당/희정당등합(閤)/각(閣){(왼쪽:규장각)모두 그러는 것은 아니나 전(殿)과 당(堂)의 부속건물이나 혹 은 그것을 보위하는 건물이다.규장각/동십자각/곤령합등재(齋)/헌(軒){(왼쪽:구성헌)모두 왕실의 주요인물보다는 왕실가족이나 궁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건물에 붙여지는데 재(齋)는 주로 일상적 주거용으로 / 헌(軒)은 공무적 기능을 가진경우가 많다.예)집옥재/구성헌등루(樓){(왼쪽:융무루)바닥이 지면에서 사람 한길 높이 정도의 마루로 되어있는집이다.예) 용무루등정(亭){(왼쪽:유하정)흔히 정자이며, 휴식이나 연회공간으로 활용된다. 예) 향원정/상양정등건물의 주요부분 명칭과 지붕의 종류부분명칭:몇가지 참고문헌을 보았는데 너무나 어려운말들이 많아서 그림으로 설명을 해본다.건물의 규모를 나타네는 단위는 '간(間)'(칸)이다. 간은 기둥의 수로 따진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1간(間)이라 한다. 예를 들어 정면의 기둥이 6개라면 5간이 되고 측면의 기둥이 5개이면 4간이 된다 그럼 이 정면 5간과 측면 4간을 곱하면 20간이 되는데 이 건물의 규모는 20간이 되는 것이다.기둥 위에 방고 보를 엮고 그위에 도리를 얹고 도리 위에 서까래를 거는 방식, 그러니까 크게 보아 기둥에 지붕을 얹는 방식은 민도리 공포 익공 세가지 가 있다. 보통 단촐한 민가에서 보듯 기둥 끝에 방을 가로지르고 그 위에 바로 서까래를 거는 가장 단순한 방식을 민도리라 한는데, 방의 모양이 둥글면 굴도리 원도리라하고 네모지면 납도리 평도리라 한다. 집의 규모가 커지면 자연히 지붕의 크기도 커지는데 큰 지붕을 기둥 끝에 바로 얹으면 전체적으로 집이 너무 낮아 겉에서 보기에도 답답하고 안에는 빛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해진다.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둥과 도리 사이를 띄어 지붕을 높어야 세밀하게 계산 하여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기둥에서 도리를 떠받치기 위해 짜넣는 구성물을 공포라한다. 공초를 기둥 위에만 설치하는 형식을 주심포 양식, 기둥과 기둥사이에 두세 개 더 있는 형식을 다포식이라 한다. 공포는 소로, 참차 등으로 수성되어서 복잡한 모양을 하는데 그런 소로와 첨자 한 조로 짜여진 구조를 출목이라 한다. 서까래는 건물 안쪽이 놓고 바깥쪽이 낮게 경사져 있으므로 기둥 바깥으로 출목이 둘이면 안에는 셋, 바깥이 셋이면 안은 넷, 이런식으로 바깥보다 안이 하나가 더 많은 것이 공식이다. 공포는 도리를 기둥 위로 들어올리면서도 동시에 바깥쪽으로 내미는 기능도 한다. 이에 비해 소로와 첨차가 겹쳐지면서 도리를 바깥쪽으로는 나오지 않게 하면서 단지 위로만 들어올리는 기능을 하는 것을 익공양식이라 한다. 익공도 한번 들어올려 혓바닥같이 생긴 쇠서가 밖으로 하나 나와 있으면 초익공, 둘이 나와 있으면 이익공 하는 식으로 표기한다. 기둥과 도리 사이를 어떻게 처리하였는가에 따라서 지붕의 크기와 높이에 상당한 치아가 생기고 그따라 건물이 화려하게 또는 단촐하게 보이는 차이도 함께 나타난다.{{{지붕종류:한옥건물의 인상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지붕이다 궁궐에는 대부분 기와지붕이지만 간혹 초가지붕도 있다. 지붕은 그모양에 따라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팔작지붕 삼지붕 육모지붕 팔모지붕"으로 나뉜다.{이름사진설명맞배지붕{가장 단순한 형태의 지붕으로 용마루만 있다.우진각지붕{옆지붕면이 삼각형 모양을 하여, 그 꼭지점이 용마루 끝에 닿은 형태로서 내림마루와 추녀마루가 하나의 선을 이루어 용마루 끝에서 추녀로 비스듬히이어진다.팔작지붕{옆 지붕면이 사다가리꼴을 이루어 건물 측면의 중간에가 닿아 거기서부터 용마루의 끝사이에 삼각형의 수직단면- 합각이 생기는 형태의지붕이다. 용마루 끝에서 수직으로 내림마루가 내려오고 내림마루가 중간에서 끝나고 거기서 꺽이어 추녀 끝으로 추녀마루가 이어진다. 팔작지붕은 크기도 크고 높이도 높아 웅장한 느낌을 준다.사모지붕{정자의 지붕
    인문/어학| 2002.04.06| 8페이지| 1,000원| 조회(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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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표와토의] 안락사 평가A좋아요
    report◆안락사◆학 과 : 건 축 학 부과 목 : 발표와 토의학 번 : 60012154이 름 : 이 효 주제출일 : 2001.11.19◈안락사(Euthanasia)◈안락사에 대한 제 의견에 앞서 안락사에 대해 조사해 보았습니다.1. 안락사의 개념 및 분류1.1. 개념안락사란 도대체 무엇인가? 안락사를 정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쉽게 이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좀더 여러 측면에서 안락사를 정의해보고자 한다. 우선, 영어의 'Euthanasia(안락사)'를 어원학적으로 접근해 보도록 하자. 우리 나라의 고려장이나 유대민족의 노인을 벼랑으로 떨어뜨리는 풍습 등이 동양의 유교문화나 서양의 기독교사상으로 배척 당한 이후, 서양에서는 르네상스와 함께 새로운 안락사의 사상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쓰이기 시작한 'Euthanasia'는 라틴어로 '아름다운 꽃'이란 뜻이고, 희랍어로 '쉬운 죽음'을 의미했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안락사를 사전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우선, 신기철·신용하의 우리말 큰사전에 의하면 안락사란 '심한 고통으로 고생하여 도저히 살아갈 가망이 없는 병자의 고통을 덜기 위하여, 본인 또는 가족의 요구에 따라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하고 있으며 ,그리고 미국의 Webster 사전에서는 'an act or practice of painless putting to death persons suffering from incurable condition or diseases'라하며, 또한 생의 윤리학자인 G. Williams에 의하면 '안락사란 인도적인 이유와 자비로운 수단에 의해 행해지는 도움을 받는 자살 또는 다른 사람에 의한 죽임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죽임을 당할 사람의 동의에 의해 행해지는데 이런 경우를 구체적으로 자발적인 안락사라고 한다.'라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 아래, 우리는 안락사를 보기 위한 두 가지 틀을 찾아볼 수 있다. 즉, 살아 있다는 것과 생활한다는 것, 그리한다. 마지막으로 생존의 윤리성에 따른 분류는 인간생명에 대한 윤리적인 접근에서 이루어진 분류이다. 첫 번째의 자비사는 치유될 가능성이 없고 인내하기 힘든 격렬한 육체적 고통을 지닌 인간생명이란 무의미하기에 삶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또한 존엄사는 의식이 없어 정신적인 활동이 전혀 불가능한 '산송장'으로서의 인간은 그 생존에 의미가 없기에, 즉 인간의 생존가치가 없기에 인격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단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태사는 사회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질병이나 상해로 심신의 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어 공동체에 주는 부담과 희생을 인내할 수 없는 경우 생존의 의미가 없다고 거부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존의 윤리성에 따른 분류에서는 상기된 살아있다는 것과 생활한다는 문제가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3. 'living will'이러한 안락사의 분류상 제일 중요시되는 것은 무엇인가? 도태사를 제외하고는 각 분류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living will'이 아닌가 한다. 즉, 환자에게 이 living will이 있는가 없는가가 안락사문제에서 중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존엄사의 수용성의 문제나 법적·윤리적·의학적인 돌파구로써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고 'living will'에 대해서만 다루기로 하겠다. Living will은 우선적으로 치료 중단의 최소한의 구비 조건으로 말할 수 있다. 또한, 치료를 받을 것인가 또는 거절할 것인가의 결정을 의사표시의 능력이 있을 때, 장차 죽음이 임박하였을 때 자기에게 시행될 의료의 내용에 있어서 사전에 자기의 희망을 전하는 것, 특히 비록 의료로 죽음이 연장되거나 일시 방지될 수 있는 경우라 할 지라도 이러한 연명적 의료의 거절의 의사를 사전에 표시하는 것으로 '생전유효유언(生前有效遺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living will은 1969년 미국의 안락사교육협의회에 의해 처음 발의·기안되어졌으며 캘리포니아 주를 비롯한 21개주에서 입법화했다판단 및 대안 결정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러함에 의사가 환자의 상태나 병에 대해 사실고지가 중요시되고 있다. 이런 사실고지가 없는 상태에서 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하든 안하든 그 문제는 의사의 문제로 넘겨져야 한다. 이에 안락사 시행자로서의 의사는 위와 같은 대안을 충분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2. 종교와 사회에서 보는 여러 관점들안락사가 현사회에서 문제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윤리체계에서 안락사를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있다. 이러한 윤리체계를 결정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종교와 사회에서 안락사를 어떻게 보고 있나 살펴보아야 한다.2.1. 불교불교에서의 안락사를 논하기에 앞서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정의하고자 한다. 증아함의 을 보면세 가지 법이 있어 산목숨이 죽은 뒤에는 몸이 무덤 사이에 버려져 나무처럼 무정(無情) 해 진다. 어떤 것이 셋인가. 일은 수(壽)고, 이는 난(煖)이며, 삼은 식(識)이다. 죽음은 수명이 이미 끝나고, 온난이 이미 떠나며 모든 근(根)이 무너진다.이와 같이 말하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여기서의 수는 호흡을, 난은 체온 즉 심장기능을, 식은 뇌기능을 뜻하는 의식작용을, 근은 감각작용을 뜻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호흡작용과 심장기능, 그리고 뇌기능의 세 가지가 다 있어야 살아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생명의 정의 아래 불교에서는 제 1 계목으로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있다. 불살생은 모든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이나 초목의 생명까지도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계율의 윤리적 바탕에는 생명의 존엄성이 깔려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다 귀한 것이다. 나의 생명이 귀하다면 다른 생명도 귀한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불교에서의 죽음의 정의와 아울러 불살생계는 현대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무조건적으로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고 하는 것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불교에서의 안락사의 모습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기로 하겠다.불교에서는 세 할 수 없다는 성서적 가르침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 : 필립 1,20 참조)라는 사도 바울로의 서간문이 바로 생명에 대한 가툴릭 교회의 기본적 입장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가톨릭 교회의 생명관 아래 1980년 5월 5일 로마 교황청 신앙교리성성에 의해 발표된 예의 을 토대로 설명코져 한다.가톨릭 교회에서는 인간생명은 모든 선의 근본이며 인간활동과 사회형성이 근원인 동시에 필요조건이라 보며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선, 무구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리를 침해하는 일인 동시에 그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르는 일이다. 다음으로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자기 생명을 이끌어 가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으며, 고의로 자기 자신의 죽음을 초래하거나 자살하는 것은 살인과 마찬가지로 부당한 일이라고 한다.또한 죽음을 논의해 보면, 삶의 최후 순간 즉 죽음에서 겪는 고통은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고 사실, 고통은 그리스도 수난에의 동참이며, 성부의 뜻에 순종하며 그리스도께서 바친 구원 희생과 일치를 이루는 일이라 한다. 즉, 이렇게 죽음의 고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죽을 권리는 인간적인 그리고 그리스도교적인 존엄성을 지니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것을 뜻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가톨릭 교회에서는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죽음에 따른 고통은 하느님 아래에서 숭고한 의미로써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렇다면 이런 배경에서의 가톨릭 교회의 안락사에 대한 입장을 보면, 안락사는 죽음에 대한 가장 부정적인 대응이고, 죽음을 이기는 것이 아니며 죽음에 패배하는 반생명적 행위로 본다. 즉,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안락사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선언을 정리하자면 안락사 자체를 부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렇게 부정적인 안락사를 2.3. 아리스토텔레스와 순자의 생명관사회에서 바라보고 있는 안락사는 어떠할까? 사회에서의 안락사를 논하는 것보다 생명관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특히 서로 상이한 윤리체계를 가지고 있는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와 순자의 사상을 통해 이해를 쉽게 하고자 한다.우선 생명분류를 처음 한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즉 생물과 무생물로 먼저 구분하고, 그 다음에 생물을 초보적인 생명체인 식물, 그 다음 생명체가 동물이고, 그 다음은 인간인 세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즉, 그는 무생물과 생물은 근원적으로 다르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다음으로 순자는 무생물이 있고 그 다음에는 식물이 있고 동물이 있고, 인간이 있다고 존재를 네 가지로 나누고 있다. 그러니까 결과로는 네 개가 똑같은데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순자의 근본적인 차이는 생물과 무생물을 우선 나누고 그 다음에 나눴느냐, 아니면 그냥 거리가 거의 같은 네 가지로 보느냐 하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우리는 각 사회의 생명관의 근본적인 차이를 볼 수 있는 것이다.2.4. 우리 나라와 아프리카동양과 서양의 생명관을 비교에서 우리 나라와 아프리카의 여러 생명에 관한 것을 보고자 한다. 처음으로 우리 나라의 생명관은 과거 조선시대의 유교철학과 과거 농업시태의 여러 가지 질병상황 및 이로 인해서 오랫동안 형성된 생명관이 아직도 많이 존재하고 특히 노인층에서 많이 잔존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역학적으로 1960년대 중반까지 우리 나라는 기근과 역병의 시대를 경험했다. 1930년대와 1940년대까지 우리 나라 영아 사망률은 200이상이었고, 태어난 아기가 20일 살면, 신생아 파상풍을 면했다고 삼칠일잔치를 하고, 100일을 넘기면 백일해로 죽지는 않겠다고 백일잔치를 하고, 1년을 넘기면 홍역으로 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돌잔치를 마련하는 그런 시절에 어린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가 정말로 사람이 될지가 불확실하였다. 또 우리 주변의 60세 이상 노인 중에 실제 나이보다
    인문/어학| 2001.12.03| 9페이지| 1,000원| 조회(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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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건축가 김수근
    김 수 근(金壽根)그는 바흐의 음악을 좋아했다.원두 커피의 향을 즐겼고,꽃 보다는 아이비를 좋아했으며, 고집스러울정도로 뿔 테 안경을 좋아했다.새 것 보다는 낡은 것들을, 그리고 오래되거나사라져 가는 것들을 좋아했고,작은 조각들을 늘 지니고 다녔다.그리고 한장의 벽돌... 그에게 이 한장의 벽돌은세계를 향한, 미학의 출발이었다.그는 그렇게 작은 것들을 좋아했다. 더도 말고덜도 말고, 딱 한 손아귀에 쥐어지는 크기,그 인간적 크기를 좋아했고 탐구했던 사람,그러나, 그가 그 작은 것들에 담고 싶었던 것은세상의 빛이었다.■ 약력1931년 2월 20일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동 출생 (김수근 건축론 발췌)서울에서 출생 (건축사8607, 건축문화8607)1944년 교동국민학교 졸업, 경기중학교 입학1946년 건축을 전공한 미국 병사로부터 건축을 처음 접하고서 건축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힘1950년 서울 대학교 건축학과 입학. 이 당시 서울대학교 교수로 있던 건축가 김중업을 소개받음. 그러나 한국전 발발로 학업은 중단되고 부산으로 피난1951년 일본으로 밀항1952년 와세다대학 편입이 결정되나 등록금이 없어서 등록포기1954년 동경예술대학 건축가에 입학. 여깃 스승인 요시무라 준조를 만남1958년 일본 동경예술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경대학교 대학원 다까야마 연구실에 진학1960년 일본 동경대학교 대학원 졸업. 국회의사당 현상설계당선.1961년 5.16군 사쿠데타로 인해 국회의사당 현상설계 중단.김수근 설계사무소 개소. 정인국의 소개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강의 시작. 국전 초대작가.1963년 김수근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최순우와의 만남1965년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부사장에 취임.1966년 김수근 설계사무소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건축부에 통합. 종합예술지공간 창간.1967년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사장에 취임1969년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사직. 인간환경계획연구소 발족. 미래학 세미나 개최1970년 국민포장수여.1971년 범태평양건축상 수상. 수상연설을 통해 궁극공간과 문방공문제로 등록 포기.- 1953년 동경예대 입학이 결정됨.실제적인 건축공간을 구상하는 것을 요사무라 준조에게 영향 받음.건축과 공간의 철학적 정립은 단게겐조에게 영향을 받음.- 1958년 동경대 대학원에 진학. 다께야마 연구소. 일본인과 결혼.- 김수근의 받은 두가지 영향첫째 : 실제적인 건축공간 구성 (요사무라 준조)둘째 : 건축공간에 대한 지적 논쟁 (단게 겐조의 영향)- 단게겐조의 건축론공간의 한정 = 무한정성이라는 원칙으로 기능주의자를 비판, '근대적 자아'를 가지고 새로운 건축언어를 실험한 최초의 일본 건축가, 김수근은 그의 건축철학과 공간개념 확립에 많은 영향 받음- 요시무라의 준조의 건축물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제국호텔 설계 후 서양 건축 배움아틀리에를 통해 작가의 개성이 스며들어간 건물지향김수근의 1860년대가 단게적인 사고라면 70년 이후는 요시무라의 사고가 지배적- 1959년 국회의사당 현상설계에 당선.3. 1960-1965□ 국내외 건축적 상황세계의 건축계는 소위 모더니즘이 쇠퇴하고 CIAM이 해체되고 TEAM 10 및 아키그램이 태동하는 것이60년대 초의 상황, 일본의 메타볼리즘이 건축계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줌. 국내에서는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성장이 시작되면서 건축과 도시에 있어서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기 시작.□ 김수근의 활동- 1960 박춘명과 설계사무소 개설.- 1961 군사 쿠데타로 국회의사당 설계 중단. 설계사무소 해체 김수근 건축연구소 개설. 정인국의 소개로 홍익대에서 강의 맡음. 김환기, 이경성 등과 교류.- 1963 최순우와 만남.- 최순우는 그의 높은 안목으로 함께 여행하며 '한국미'에 대해 손수 가르침- 최순우는 한국전통건축이 가지는 실내공간과 실내가구에도 높은 안목가짐.- 김수근의 전통적 예술가치를 평가하는 '안목'과 '눈썰미'를 배움- 부여박물관, 진주박물관 청주박물관 의뢰 (한국성 인정)- 청년 건축가로 다작을 하던 시기.이 시대의 작품으로는 워커힐 프로젝트, 삼호공업사, 오양빌딩, 남산음악당, 울산 도시계획, 자유센타니해선 안됨- 자연공간 : 태양의 열과 빛, 공기, 물, 흙과 같은 자연자원에 의존- 통합공간 : 제한된 공간 속의 사람이나 밖의 사람이나 설계의 결과로 혜택 받을 수 있도록 공간의 안과 밖이 이용- 자궁공간 : 구조의 가변성과 유연성 지닌 공간④ 삼간론(三間論)- 공간, 시간, 인간을 그의 건축사상으로 집약- 전통을 통한 새로운 건축이념형의 창조- 건축을 통한 인간성 회복과 인본주의 구현- 자연과 인간을 조화■ 주요작품1961년 워커힐 힐탑바1962년 삼호공업사, 오양빌딩, 남산음악당, 울산도시계획1963년 자유센타, 타워호텔, 고대의대 부속병원1965년 남산맨션, 한국일보 사옥, 몬트리울 박람회 전시관, 부여박물관1966년 문화방송사옥, 종로3가 재개발, KIST본관1967년 여의도 종합개발계획1969년 제헌회관, 오사카 박랍회한국관1971년 공간사옥구관, 퐁피두센타 현상설계1973년 서울 대학교 예술대학, 서울교육대학1974년 창암장1975년 이란 에바단 주거단지, 알보즈 주거단지1976년 덕성여대 약학, 가정관, 해외개발공사 사옥1977년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수단영빈관, 주인도한국대사관, 샘터사옥, 마산양덕성 당, 문예진흥원전시관 및 공연장1978년 농촌경제연구소, 갈현동 소나무집1979년 청주박물관, 진주박물관, 한계령 휴게소, 강원어린이회관1980년 경동교회, 새마울지도자 연수원1981년 국민은행전산본부, 불광동 성당1982년 주카타르 한국대사관, 인천상륙작전 기념관1983년 광명시청사, 구미예술회관, 양평수련원, 주미 한국대사관저, 대전 중앙국립과 학관, 서울시립 장제장1984년 서울지방법원 종합청사, 올림픽공원체조, 수영, 자전거 경기장1985년 라마다르네상스호텔, 벽산 125빌딩, 서울의대부설 건연구소■ 작품분석1.경동교회경동교회는 전쟁후 임시로 지은 가건물로서 사용되다가 찰립 20주년인 1965년부터 옛 건물을 헐기로 의견 일치를 보았으나 새로운 교회당 건립은 많은 난항에 부딪힌다. 이를 위해 세 가지 방안이 제시되는데 모든 건물은 전면적으아들여진 개념이다. 이것을 강원룡은 "두 가지 의미, 즉 인간과 하나님,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와 아울러 전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예배와 축제를 뜻한다." 고받아들였다. 한 여름밤 젊은이들이 별을 보면서 예배를 보는 모습은 분명 인간에 대한 신의 축복으로 여겨질만한 것이다. 옥상 채플은 지상으로부터 솟아 오른 매스들로 둘러 싸여서, 더욱 아담한 공간으로 승화된다.이 매스들은 중앙의 한 점으로 수렴되도록 고안되어 중심을 향한 강한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중에서교회 전면의 두 개의 매스는 다른 것보다 더 높이 돌출되어 있어서 복잡한 도심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대지가 협소하여 십자상을 세울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이들을 이용하여 교회의 강한 이미지를 주려고 하였다.김수근이 지은 모든 종교건축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독특한 외부 공간 개념이다. 이 개념을 처음 생각한 의도는 신성한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예배 자체도 중요하지만 예배를 드리러 가는 마음도 건축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건축에 있어서 가장 뚜렷하고 오래 된 전이의 문제는 종교건축에서 잘 나타난다."그것은 신과 인간 사이의 극 복 할 수 없는 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성과 속'이라는 개념으로 구체적인표현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입 공간은 이 두 개념 사이의 전이 공간으로 상반된 두 상황의극단적인 충돌을 막는 완충 공간으로서의 기능 을 하며,동시에 진입 행위 자체가 신으로 향하는 하나의종교적 행위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이런 사실은 우리의 사찰 건축에서도 잘 나타난다. 예를 들면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과 같은여러 산문을 통과하면서 체험하는 공간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일단 일주문을 들어서면 유인감을느끼게 되고, 변화로운 진입과정이 전혀 지루함이 없이 즐겁게 전개된다. 특히 경사가 급한 곳에 세워진사찰의 경우 지형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더욱 드라마틱한 공간을 구성하게 된다. 대지를 조성하기 위해서여러 개의공연장으로 활용하고 게다가천장까지 덮어서 이제는 별을 보며 기도 할 수 없게 되었다.우선 교회당의 외형과 내부에 다양 성속에 일치를 나타내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강조했다. 교회의메인타워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가 역사의 현장에 임해오는 것을 기원하는 모습을 나타냈고 교회당 내부는 교회가 지니는 다양한 측면을 조화시켰다.먼저 예배에 있어서의 수직선 적인 측면과 수평선적 측면의 조화라하 겠다. 제단 뒷면은 삼위일체하나님을향한 수직선을 높게하고, 그 꼭대기는 하늘을 통해 햇빛을 하나님의 은총과 영광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인간과 하나님사이를 이어놓는 십자가를 그 벽에 달고, 사람들이 앉는 장소는 수평선적 측면을최대한 살리려 했고, 교회당 천장의 가로보도 그 형상의 하나다.제단에는 설교대를 중심으로 성찬대와 세례대를 좌우에 설치하여 성례전과 설교의 조화 를 나타내고,단상에는 좌석을 만들지 않으므로써, 목사는 설교하고 성례를 집행하는 성직 자인 동시에 일반신도와 같이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신도인것을 나타내려 했다.또한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의 조화를 시도했다. 교회에 모여 들어오면 제단위의 하나의십자가와 마주치나 예배가 끝나고 나갈때는 여러 가지 색깔모양의 십자가형상을 그린 스테인드글라스에마주서서 나가게 된다. 이것은 2000년간 교회의 선교를 위해 십자가를 진 사람들의 후계자로서 각기제십자가를 지고 역사를 현장으로 나가는 것을 뜻한다. 또 하나는 예배당입구와 큰 길 사이의 좁은 계단길이다.한계단 한계단 명상과 회개를 통한 예배준비를 하면서 예배당 입구로 들어가며, 예배가 끝난후십자가를 지고 세상을 향해 행 진하는 결단을 계속 다짐하며 층계를 거쳐 세상속에 들어간다.예배와 축제를 위한 열린공간인 옥상교회도 또하나의 특징이라 하겠다.- 禮拜의 場기도가 신과 인간의 만남이라면, 인간과 인간의 만남 또한 이 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만남의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해야만 한다. 인간과 그 신앙의 대상인 신의 관계가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의 표본이 되어 신자되게한
    공학/기술| 2001.12.03| 11페이지| 1,000원| 조회(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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