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tage Las의 기술적 개요Vintage LAS는 OROM 2000의 기술요소를 모체로 개발되었으며, 도스와 유닉스기반의 OROM 2000을 Window 기반환경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Client/Server 방식을 채택하여 OROM 2000과 차별화 하였고, 데이터베이스의 경우 상용 RDBMS를 이용하였으며 가용 RDBMS로는 MS-SQL, Oracle, Sybase, Infomix 등 매우 다양하다. 이용자 검색부분에서 웹검색을 제공하였으며, Photo Base(Window 버전)의 기술적 모태가 되었다.Vintage LAS 개요Vintage LAS는 서브시스템들이 DB를 공유하여 어느 한 서브시스템에서 데이터 수정이 발생하였을때 다른 서브시스템에 일괄적으로 수정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된 통합관리시스템으로, 예를 들어 수서시스템에서 데이터 입력작업이 이루어지면 편목시스템에서는 데이터입력 등의 중복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화면출력구조 기능키, 에러메시지 전달뿐만 아니라 검색, 편목 등을 포함한 시스템 사용방식을 표준화하므로써 이용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며, 두 가지 이상의 업무를 한 담당자가 수행하거나 담당업무의 순환제를 실시하더라도 쉽게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히 이용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각 서브시스템에서 사용하는 모든 기능키의 운영방식에 일관성을 부여하였습니다.Vintage LAS 특징다양한 MARC 포맷 수용- 현존하는 MARC 형식을 모두 수용하여 충실한 데이터 변환기능Total Integrated System(전체통합시스템) 제공한글자동색인을 통한 신속한 데이터 구축 및 월등한 검색 효율성서명 그대로를 표현하되 형태소 분석에 따른 한글자동색인기법으로 색인어 자동추출기능어와 불용어를 자동삭제하여 별도의 교정작업 없이 의미어만으로 구성된 효과적인 키워드파일 구축주기, 목차, 초록에 한글자동색인기법 적용제공사전 : 명사사전/동사사전/불용어사전/조사테이블/좌우접속표 등은 관리자가 임의 입력 및 편집이 가능기능추가 및 화면구성의 편리성 제공기존 DB의 수정 없이 DB를 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추가만으로 새로운 기능추가입력화면의 경우 해당기관의 요청에 따라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필드를 기준으로 화면 재구성기술보고서 처리가 많은 기관의 경우 입력은 워크시트 작성방식을 제공하지만 저장시 MARC 형식으로 변환되어 저장각각의 서브시스템들의 상호연계성 및 DB 공유화면출력구조 기능키, 에러메시지, 각 시스템 사용방식의 표준화다양한 하드웨어 환경수용효율적인 DB 구축방안 제시- CAT CD 450, Bibliofile 등의 CD-ROM을 이용한 DB 구축(OCLCMARC, LCMARC)- 과학기술연구단지종합목록 레코드 다운로드- 국립중앙도서관 CD-ROM을 이용한 다운로드(KORMARC)- 다양한 형식의 신규입력화면 제공(MARC 구분별/ 입력자료종류별)효율적인 DB 관리- 상용 DBMS를 이용한 프로그램 설계GUI 환경제공- 초보이용자들의 편리한 이용 도모Client/Server 방식으로 설계네트워크 기능 제공- 사용하는 Server의 기종에 따라 시스템규모 산출 가능시스템 확장성을 고려한 설계- 업무증가에 따른 시스템 확장성- 시스템 확장에 따른 O/S 호환성- 자동화도입에 따른 시스템 확장성Common Gateway Interface 검색프로그램- Netscape, Internet Explorer를 이용한 외부 및 내부 도서정보, 연간물정보, 기사정보 등 검색시스템별 특징수서시스템수서번호/차수관리 선택적 관리주문중 데이타에 대한 다양한 검색키 제공편목시스템과 연계분리처리/일괄처리/선별처리 가능동시 다수처리 기능 : 한 주문건 혹은 한 타이틀에 대한 복수의 예산계정 사용반복처리 가능Print Generator(프린터지원) 기법 적용편목시스템MARC 표준 지원 : KORMARC, USMARC, OCLCMARC 지원 및 임의의 MARC 확장 가능MARC의 고정장 및 가변장에 대한 상세한 도움말각종 사전 제공다국어 문자처리Full Screen Edit키워드 자동추출MARC 데이타 검증기능대출/반납시스템한시직의 대출가능 기간 관리대출중 및 대출불가자료에 대한 신속한 정보제공불량대출자에 대한 연체료부과 및 대출금지 등 효율적 통제 기능도서의 간략정보를 이용한 대출처리수서중인 자료 확인 및 예약이용자검색시스템검색도서에 대한 대출정보 조회Browsing 화면중의 키워드 자동선택기능연속간행물시스템수서시스템의 수서기능을 도입한 주문관리
공공도서관 웹페이지를 평가요소에 맞춘 비교보스톤 공공도서관(http://www.bpl.org/)정독도서관(http://www.jeongdok.or.kr/)시작하면서도서관은 이제 단순히 건물로서의 장소만은 아니다. 과거에 도서관 이용은 이용자가 직접 발품을 팔아 그 건물로서의 존재하는 도서관에서 인쇄자료, 영상자료, 기타 자료들을 이용하는 것이 도서관에서 정보를 얻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발달은 단순히 과거처럼 도서관을 발품을 팔아 가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간단하게 인터넷을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정보의 축적된 공간은 단순히 공간, 건물로서 존재하는 도서관뿐만 아니라 웹사이트 상에서도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최근에는 도서관에서도 이런 사이버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어 가면서 웹사이트를 통한 서비스도 많이 이용되고 있는 추세이다. 예를 들어 참고봉사를 홈페이지에서도 접수를 받고 자료를 예약할 수 있으며, 대출 된 자료의 연장 그리고 각종 게시판을 활용하여 도서관 이용에 대한 질문도 받고 답변도 할 수 있다. 이제는 이런 서비스들은 일반화 되어 버렸다. 이용자들은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추세이기도 하다. 이용자에게 서비스에 대한 안내 및 지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도서관 서비스에 직접 연결 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는 모든 도서관 서비스의 가상공간일 것이다.나는 이번 과제의 주제를 내가 관심있는 공공도서관 분야로 선택하여 보았다. 해외의 경우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공공도서관이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보다 많은 부분에서 발전하였다.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공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정독도서관과 미국의 대도시 중의 하나이고 명문사립대학들이 몰려 있는 도시 보스톤, 보스톤 공공도서관의 웹사이트를 비교하면서 전 세계에서 인터넷의 보급률이 높은 그리고 정보통신 강국이라 칭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공도서관과 미국의 도서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이번 과제를 시작하겠다.우선 교수님께서 나눠주신 논문 대학도서관 웹사이트 설계에 관한 연구 를 바탕으로 보스톤 공공도서관과 정독도서관을 평가요소에 맞춰서 비교해보고 평가하겠다. 물론 대학도서관 웹사이트에 대한 평가이지만 평가요소는 동일하기 때문에 평가항목은 이 논문을 바탕으로 구성하였고, 이 평가요소를 바탕으로 이 두 개의 공공도서관의 웹사이트 평가를 시작하여 보겠다.보스톤{공공도서관(http://www.bpl.org/)정독도서관(http://www.jeongdok.or.kr/){권위저작권자의 기재여부보스톤 공공도서관과 정독도서관에서의 메인페이지에는 저작권자가 기재되어 있다. 하지만 정독도서관은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면 저작권자에 대한 언급이 없어지지만 보스톤 공공도서관에서는 프레임의 사용으로 항상 가장 밑에는 저작권자의 표시가 항상 나와있다.그렇지만 후원기관의 목적을 기술하는 페이지와 후원기관에 대한 내용은 생략되어 있었다. 공공도서관이란 개념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모기관에 대한 설명은 생략되어 있었다. 또한 자료 작성자의 명시 및 그 분야에 대한 저자의 명시 및 그 분야에 대한 저자에 대한 내용은 생략되어 있었다.정보내용정보서비스의 다양성(웹페이지 상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종류)우선 보스톤 공공도서관에서는 각종 정보를 홈페이지에서 제공 받을 수 있다. 소장목록검색과 함께 온라인 참고봉사 서비스, 전자책과 어린이들을 위한 페이지, 보스톤 도시에 관련한 정보와 세금정보, 박물관 관련 정보, 취업관련등 기타 보스턴의 문화적인 정보와 도시와 관련된 정보 그리고 도서관만의 참고 봉사 정보와 도서관의 역사 그리고 목록 카드목록과 전자책 서비스와 같은 도서관만의 특화된 각종 정보를 웹페이지 상에서 담고 있다.정독도서관에서는 홈페이지에서의 정보란 단순히 소장목록의 검색만을 주로 서비스 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도서관이지만 서울교육관련 정보는 정독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찾아볼 수 있었으며, 기타 문화관련 정보는 정독도서관에서 실행하고 타 다른 카테고리에서는 참고봉사 업무에 관련한 사항을 찾아볼 수 없었다.최신성 : -작성일자, 게재일자, 최종 수정일자, 갱신주기자료의 최신성을 유지하는 문구의 수록여부우선 각 홈페이지의 최신성을 알아보는 항목에서는 정독도서관은 공지사항을 도서관 홈페이지의 메인화면에 띄어놓고 있었다. 이러한 공지사항을 통해서 도서관 홈페이지의 최신성을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각종 정보에 관련된 내용들은 비교적 최신의 정보 예를 들어 문화프로그램에서 일정 같은 사항들은 2003년 3월에 기재된 내용들이지만 아직까지 진행중이었다. 다른 정보들은 특화된 정독도서관만의 정보이기 때문에 아직 변경된 사항이 없으므로 아직까지는 갱신이 되어 있지 않았고, 작성일자와 게재일자, 최종 수정일자 역시 작성되어 있지 않은 내용들이었다.보스톤 공공도서관 홈페이지의 내용들의 최신성을 살펴보자면 각 정보들의 작성일자와 개제일자, 최종 수정일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들을 바탕으로 최신의 정보를 홈페이지에 기재하였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으며 가장 최신의 내용의 날자로는 2003. 6. 12에 최종 업데이트 되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갱신주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아마도 주기를 가지고 정보를 업데이트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내용을 업데이트할 내용이 생기면 비정기적으로 정보를 업데이트 하는 것으로 사료되었다.정확성 : 수록된 내용의 문법 및 철자오류보스톤 공공도서관 홈페이지의 내용들을 살펴보자면 수록된 내용의 문법 및 철자오류를 나의 짧은 영어실력으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선 단어와 문법에서의 오류를 구분한 다는 것은 현지인이 아닌 나에게서는 참 힘든 항목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한가지 카테고리를 찾아서(Kid`s Page) 살펴보았다. 참 시간도 많이 걸렸고 단어의 확인도 무척 힘들었지만 틀린 부분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정독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발견 할 수 있는 정보들은 문법적인 오류나 철자의 오류가 나타나지 않았었다.링크의 품질(죽은 링크 또는 구축중인 링크여부)우 많이 걸어놓고 있었다. 정독도서관 홈페이지의 메인화면에서 외부링크는 약 10개 정도가 태그로 아래로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도서관 이용시 많이 사용되는 대출항목에 관련하여 베너로 링크를 걸어놓고 있었다. 이 링크들을 일일이 확인해본 결과 죽은 링크나 구축중인 링크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었다.외국어 버전의 제공여부정독도서관 홈페이지나 보스톤 공공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두 곳 모두 외국어 버전이 제공되지 않았다.멀티미디어 제공여부정독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플래쉬 이미지를 활용해서 홈페이지에서 역동적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으나, 대신할 사운드나 동영상 등의 미디어는 없었고, 보스톤 공공도서관에서는 사진 이미지 이외의 사운드나 플래쉬 같은 이미지를 활용하지 않았다.도움서비스제공 여부(웹사이트 이용에 필요한 도움말의 제공여부)우선 두 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사이트맵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독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FAQ를 활용하여 이용자들이 도서관 이용시 자주하는 질문들 통하여 그 질문에 대한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보스톤 공공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인덱스를 활용하여 이 홈페이지 이용시에 대한 문의를 인덱스를 활용하여 그 답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기능성(접근성)브라우저 사용 종류의 제한 (특정회사의 브라우저만 사용가능성여부)정독도서관 홈페이지와 보스톤 공공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특정 회사의 브라우저의 제한을 두고 있지 않았다.로딩속도 (페이지의 로딩소요시간의 정도)보스톤 공공도서관 홈페이지의 첫 페이지는 이미지가 거의 없어서 로딩속도가 약 1초도 안걸렸다. (측정피시의 하드웨어 사항에 따라 많이 틀려지겠지만 측정 피시의 하드웨어 사항을 기술해보자면 CPU Duron 1.3 Ram DDR128, Graphic Card GeForce2 mx400, 전용선은 샤크 케이블 프로를 사용한다.) 단낮에 접수인원이 많아지면 속도가 느려진다. 정독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약간의 플래쉬가 있지만 로딩속도는 그다지 차이 나지 않았다. (1.5초 정도) 하지만 메인페이지및 통합성): 보스톤 공공도서관의 홈페이지상 메인화면에서의 1차메뉴의 수는 9가지이다. 그 9가지의 메뉴는 모두 이미지로 링크가 걸려있었고, 맨 밑으로 내려가면 여러개의 다른 메뉴가 나와있었다. 그 메뉴들은 도서관 이용에 관련한 메뉴들이었고, 이것은 단어로 링크가 걸려 있다. 정독도서관의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링크의 숫자는 8개였고 그 밑으로 외부 사이트들과 내부 링크가 걸려있었고 이것은 배너형태로로 링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도서관 공지사항들이 링크가 되어 있었다.레이아웃의 일관성(프레임 및 헤더,바디, 풋더의 사용)보스톤 공공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헤더와 바디가 통일되지 못했다. 헤더와 바디의 내용이 링크된 내부 페이지로 이동될 때마다 내용이 전혀 다르다. 페이지가 바뀔 때 헤더가 그대로 고정되어 있으면 좀더 통일감을 줄텐데 안타깝다. 프레임의 일관성이 없다. 그러나 메인 페이지 말고 내부 링크로 이동시에는 프레임 위치가 통일되어 있었다. 종합검색시 저작권표시나 페이지 수정일자, 웹마스터 이메일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정독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헤더와 바디 그리고 프레임이 통일되어서 통일감을 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종합검색시 저작권표시, 페이지 수정일자, 웹마스터 이메일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항해의 용이성 정도: 보스톤 공공도서관 홈페이지와 정독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모든 페이지에서 홈페이지 바로가기 기능 채택이 되어 있었다.사이트 맵, 목차 유무: 보스톤 공공도서관 홈페이지와 정독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이용자가 웹사이트 전체를 파악할수 있도록 사이트 맵이 따로 만들어 있었고, 보스톤 공공도서관에서는 인덱스로 홈페이지의 내용을 찾아볼 수 있었고, 정독도서관에서는 FAQ로 홈페이지 이용시 궁금한 점을 찾아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모기관과의 링크여부 : 도서관 - 모체기관 링크, 모체기관 - 도서관보스톤 공공도서관과 정독도서관 모두 공공도서관의 모기관인 보스톤시와 서울시 행정부처에 관련된 링크가 작성되어 있지 않았다.초기 홈페이지에서의 검색화면 제공정독도서관성)
히카루겐지의 역사적 배경인 헤이안 시대794~1192년 간무왕[桓武王]이 헤이안쿄[平安京:京都]로 천도한 때부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가마쿠라에 바쿠후[幕府]를 개설한 약 400년 동안의 일본 정권. 나라시대의 중기부터 율령제도가 흔들리고 귀족들의 정권다툼이 일어나 정치가 불안하게 되자, 간무천황은 인심을 새롭게 하고 율령제도를 개혁하려고 사원의 힘이 강한 나라에서 쿄토로 수도를 옮겼다(794년). 이것이 헤이안쿄오이며, 이 때부터 메이지천황이 토쿄로 수도를 옮긴 1868년까지 1000년 이상 쿄토(平安)는 일본의 수도가 되었다. 새로운 수도는 평화로운 세상이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는 의미에서 平安京라고 이름하였다.쿄토는 하타씨(신라계의 도래인)가 개발한 곳으로, 천황은 하타씨의 힘을 빌려 헤이안쿄오를 건설하려고 하였다. 또한 칸무천황의 생모인 타카노노니이가사는 백제로부터 건너온 귀족출신이며 천황의 황후 중에도 도래인의 자손들이 많았다고 한다일본 사회사로는 고대 말기에 해당하는 시기이며, 대략 4기(期)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① 제1기는 율령(律令)정치를 수정 ·강화한 시대로, 781년에 즉위한 간무왕은 도호쿠[東北] 지방의 에조[蝦夷]족의 정벌을 계속하는 한편, 도읍을 헤이안으로 옮기고 새 궁궐의 창건과 도시 조성을 위한 대사업을 일으켰다. 이것을 위해 지방관리의 숙정을 도모함으로써 지방 정치를 쇄신하는 한편 군사조직을 재정비하였다. 사가[嵯峨]왕 때에는 국내가 평정되고 당나라의 문화가 수입되어 한시가 크게 성하고, 조정의 의식과 조복(朝服)도 당풍을 따랐다. 그 뒤 율령격식(律令格式)의 수정과 정비를 단행하는 한편, 의식의 개량 ·국사 편찬 ·화폐 주조 등이 행해졌다.② 제2기는 엔기덴랴쿠[延喜天曆]의 치세라 하여 정치적으로 잘 다스린 시대이다. 왕들은 몸소 율령정치의 실행에 앞장섰으며, 《일본 3대실록》과 격식의 완성을 마무리짓는 엔기격[延喜格] ·엔기식(式)의 편집, 엔기통보[延喜通寶], 간겐대보[幹元大寶] 등 왕조로서는 최후가 되는 십이전(서는 궁정을 중심으로 크게 융성하여 가나의 발달, 와카[和歌] ·문학의 발전이 이루어져,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의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세이쇼 나곤[靑少納言]의 《마쿠라노소시[枕草子]》 등 유명한 여류작가의 작품이 나왔다.④ 제4기는 이른바 인세이[院政]가 행해진 시기로, 인세이는 셋쇼간파쿠와는 달리 왕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같은 직계 존속이 상왕(上王)이 되어 정권을 잡은 정치체제였다. 따라서 나라에는 2명의 주권자가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한 대립과 마찰이 빈발하였다. 상왕들은 많은 불당을 건립하는 등 국고를 낭비하였고, 1156년 도바상왕[鳥羽上王]이 죽자 마침내 호겡[保元]의 난이 일어나 귀족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결국 무사들이 무력으로 이 싸움을 해결하자 이때부터 무가정치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처음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가 실권을 잡고 족벌정치를 행하였으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헤이지[平氏] 일족을 멸망시키고 미나모토는 가마쿠라에 바쿠후를 개설하여 무가정치를 행함으로써 천왕에 의한 친정제(親政制)는 막을 내렸다.【신라 ·고려와의 교류】이 시대는 한국에서 통일신라 원성왕 때부터 고려 명종까지의 시대이다. 신라와 일본은 나라 시대의 730년대에 국교를 단절하여 이후 약 70년간 공무역이 중단되었다가, 헤이안 시대가 개막된 10년 뒤인 803년에 국교를 회복하여 이듬해 일본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황금 300냥을 바치고 양국의 공무역도 재개되었다. 후지와라가 집권한 때에 건국한 고려는 일본과 공적인 교류를 하지 않았는데, 890년(목종 2) 일본인 20호(戶)의 내투(來投)가 있어 이들을 이천군(利川郡)에 거주하게 한 일이 있었고, 1019년 여진(女眞)의 해적선이 납치한 일본인 259명을 고려에서 일본으로 송환하여 이로부터 양국은 표류민(漂流民)을 서로 송환하는 등 관계가 호전되었다. 1073년(문종 27) 처음으로 일본상선이 일본인 42명을 싣고 고려에 들어와 칼 ·경갑(鏡匣) 등을 진상하고, 1074 ·1075 ·1079 ·1080 ·은 함경도의 나진항에서 배를 타고 일본의 산잉/호쿠리쿠/데와 방면의 항구로 출입하였다. 일본 조정은 발해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노토와 와카사에 객관을 만들어 접대하였고, 수도 헤이안쿄에는 코우로칸을 설치하여 접대에 만전을 기하였다. 이러한 외교관계가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측 입장으로는 대륙의 선진문물 도입과 무역을 통한 이익 추구에 목적이 있었고, 발해 측은 대륙에서의 고립을 만회하고 무역을 통한 이익 추구로 볼 수 있다.【헤이안 시대의 문화적 특징】헤이안시대 초기는 나라시대 이래 당의 문화가 일본으로 이행되는 과도기라 할 수 있다. 귀족은 중국풍(唐風)의 문화를 즐기고 있었으나 9세기말이 되자 당나라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견당사(遣唐使)가 폐지되고, 대륙의 영향이 줄어들자 새로운 일본적인 문화가 일어났는데 이를 국풍문화(國風文化)라 한다.9세기 중엽부터 万葉假名을 대신하여 히라가나(平假名)와 카타카나(片假名)가 사용되게 되었는데, 카타카나는 한자의 일부를 따서 음을 나타내는 기호로 만든 것으로 학자나 중 등이 사용했었고, 히라가나는 한자의 초서체에서 나온 것으로 여자들이 사용했었다. 10세기경에는 권문세가의 장원이 늘어나 화려한 궁정문화가 조성되었다. 헤이안 후기에는 자연을 동경하여 자연과 생활을 조화시키는 주택 건축 양식이 생겼다. 이 때 야마토에 등 여러 분야에서 일본 양식이 성립되었고 이후 일본문화의 고전이 되었다. 11세기에는 궁정 문화가 완성되었으며 정토교 미술이 유행하였다. 한편 민중에 관심을 돌린 설화문학과 민중의 모습을 소재로 다룬 에마키모노가 나와 귀족 사회 말기의 새로운 시대적 기운을 반영했다당시의 남자들은 아직 문장을 한문으로 쓰고, 공문서 등도 한문이었지만, 여자들은 히라가나를 사용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기분을 자유롭게 일본어로 써서 표현할 수 있었고, 와카(和歌)뿐만 아니라 일기, 수필, 모노가타리(物語:이야기, 소설) 등도 많이 남겼다.그 중,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978(?)-1016)의 장편소설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와)은 더욱 늘어났다. 그 중에서도 다이카개신으로 공적을 쌓은 후지와라(藤原)씨는 특히 많은 莊園을 차지하여 가장 유력한 귀족이 되었다.후지와라씨는 딸을 천황과 결혼시키고, 그 천황의 아들이 후일 다시 천황으로 등극할 때, 천황이 어리면 섭정을 했고, 성인이 되어도 관백(關白)이라는 최고 중직을 맡아 정치를 했다. 후지와라씨가 수도에서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지방에서는 무사(武士)들이 세력을 넓혀 갔다. 무사라고 하는 것은 지방에서 자신이 소유한 많은 토지를 지키기 위해 무력을 갖게 된 사람들이다. 무사는 유력한 호족을 중심으로 하여 무리를 이루었으나 그 중에서 특히 힘이 강했던 것이 겐지(源氏)와 다이라(平氏)였다.11세기 중반이 지나, 후지와라씨의 독점적인 힘이 약해지게 되었고, 시라카와(白河)천황은, 천황의 자리에서 내려와서도 상황(上皇)이 되어, 원(院)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원정(院政)을 계속하며, 정치의 실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섭정이나 관백은 이름뿐인 존재가 되었다.12세기 중엽, 상황과 천황의 대립이 일어나고, 그것이 후지와라씨 일족의 싸움과 연결되어, 각각 겐지씨와 다이라씨의 무사를 자기 편으로 하여 수도를 중심으로 싸우게 된다. 이를 호우겐·다이지의 난(1156, 1159 保元·平治の亂)이라고 하며, 이 때부터 무사들은 중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保元·平治의 亂으로 상황(上皇)과 겐지(源氏)를 격파한 다이라 기요모리(平淸盛:1118-1181)는, 후지와라(藤原)씨와 상황을 대신하여 정치의 실권을 쥔다. 기요모리는 1167년 태정대신(太政大臣)이 되고, 그 일족들도 조정의 높은 지위를 차지했으며, 효오고코오(兵庫港)를 지어 송나라와 무역을 하면서 큰 이익을 손에 넣었다. 그리하여 다이라씨는 많은 쇼우엔(莊園)을 소유하게 되었고 "다이라씨가 아니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강한 세력을 떨쳤다.다이라씨의 행동에 불만을 품은 고시라카와 호우오우(後白河法皇:1127-1192)는 保元·平治의 亂에서 패하여 지방으로 쫓겨난 겐지(源氏)를 불러들 위해,정이 대장군(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을 파견한다858 후지와라노 요시후사가 섭정이 된다887 후지와라노 모토쓰네가 관백이 된다894 2)견당사를 폐지한다935 다이라노마사카도의 난이 일어나다(-40)939 후지와라노 스미토모의 란이 (-41)장원이 각지에서 만들어짐995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실권을 쥔다이 무렵 후지와라씨가 전성이 된다무사가 힘을 가지기 시작한다1051 전9년의 역이 일어나다(-62)1069 고산죠 천황의 장원 정리1083 후3년의 역이 일어나다(-87)1086 3)시라카와 상황이 院政(원정)을 시작된다이 무렵 승병의 폭동이 일어남1156 4)호겐의 난이 일어남1159 5)평치의 란이 일어남1167 다이라노키요모리가 태정관의 최고의 장관이 된다1185 다이라씨가 망하다6)미나모토노요리토모가 수호·지두(영주)를 둔다천태종(최징)진언종(공해)문화의 국풍화가 진행되다헤이안 문화「고금 단가집」(05)907 당나라 멸망「토사일기」(기노쓰라유키)염불종(구우야)「마꾸라노소오시」(세이쇼나곤)「겐지 얘기」(무라사키 시키부)960 송이 일어남평등원(관청) 봉황당(53)「금석 이야기집」츄우손사 금색당(24)새로운 불교가 나타나다정토종(호넨)1126 금이 송을 멸망시킴임제종(요우사이)1127 남송이 재흥1) 간무천와잉 수도를 교토에 평안경(平安京)이 생긴다.평안경(헤이안쿄)를 만든 사람은 바로 간무천왕이다. 그가 평안경을 만든 이유는 법도에 있어서 까다로왔던 스님들이 정치에 대해 간섭하는 일이 드물어 수도를 옮겼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겉으로 나타난 일이지만 깊숙이 들어다 보면 간무천왕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하여 그의 남동생 시와라 황태자를 그가 죽인 것 때문이었다. 시와라 황태자는 간무천왕의 계략으로 아와지섬에 유배시켜려고 하자 남동생이 단식을 하는 바람에 세상을 뜨게 되었다. 하지만 사와라 황태자의 유령이 나와서 그를 괴롭히자 그는 평안경에 결계가 있다고 믿고 사와라 황태자의 유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그는 수도를 평안경으로 옮기게 되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