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 정의한복은 한국의 옷이다. 짧은 저고리와 긴치마의 여자옷, 저고리와 넓은 바지의 남자옷을 말한다.★역사한복의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처음 한복의 흔적을 발견한 것은 고구려 시대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 속 벽화에서였다. 고구려는 중국 당나라시대의 의상과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 후 한국의 왕과 몽골족 공주와의 혼사로 중국용안시대의 옷이 한국에 들어왔고, 그것이 한복의 시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특성그 오랜동안 한복은 시대에 따라 저고리 길이, 소매통 넓이, 치마폭이 약간씩 달라질 뿐, 큰변화는 없었다. 즉 한복은 둥글고, 조용하고, 한국의 얼을 담고 있다. 실크나 면, 모시로 주로 만들어 졌으며, 고름의 색상이나 소매통 색상이 여자의 신분을 나타낸다. 또한 나이와 사회적 지위, 계절에 따라 색상에 변화를 줄뿐 옷의 모양은 안동의 시골아낙이 나 대통령부인이나 모두 똑같다. 18m의 원단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입 기쉬운 점이 한복의 장점이다. 명절과 결혼식같은 특별한 날 주로 입혀 진다. 한국에는 약 오만개의 제작업체가 있으며, 발행부수 만부가 넘는 한복 전문잡지도 다수가 있다.★옷의 기원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바늘이나 실을 잦던 도구들은 가장 오래된 우리 옷의 자료이다. 또 농 경문 청동기에는 저고리와 바지의 기본 복식에 성인 남자는 상투를 하고, 미혼남자는 머리를 풀 어 헤친 모습이 나타난다. 그 뒤 부족국가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 이르면 두루마기를 중심으로 저고리, 바지, 치마, 두루마기를 중심으로 모자, 허리띠, 화 또는 이를 착용하는 고유의 식 양식 으로 이루어 진다. 우리 옷은 아한대성 기후로 삼한 사온이 계속되는 자연 조건과 북방 유목민 계통의 문화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속옷부터 겉옷인 두루마기에 이르기까지 몸을 싸는 형식이다. 또 저고리와 바지가 떨어져있고, 앞이 트여 있는 활동적인 옷이다.복식이란 사람의 몸 위에 표현되는 것이다.★한복의 역사(1) 삼국시대 특징고대의 한국이 중국보다 문화적인 측명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한 사실을 여러곳에서 확일할 수 있는데 그 예중 하나가 의복문화이다.중국은 조무령왕(趙武靈王)이 B.C. 307년에 한국의 저고리 고를 기병복으로 채용한 후 당대까지 관리와 서민들에게 계속 입혀졌다. 일본에는 BC 1C AD 7C에 걸쳐 지속적으로 한민족 대집단이 한국옷을 입고 이주하여 기층문 화(基層文化)의 형성(形成)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한민족(韓民族)은 원몽고(原蒙古) 내지Tungys족과 동계(同系)로 간주되며 중국학자 부사년(傅斯年)은 하(夏)는 서방계(西方系이)며 채도문화(彩陶文化)의 주인이고, 은(殷)은 동이(東夷)의 한 분파이며 흑도문화(黑陶文化)의 주역 이라 하였고, 중국의 노고학자 이제는 산동반도가 중국 초보문화의 중심지요, 은왕조(殷王朝)의 발상지(發祥地)인 동시에 은족보다 선주했던 종 족이 흑도문화(黑陶文化)를 특징으로 한 동이족(東夷族)이었다고 하였다.·기본 복식과 원류우리나라 고대 기본복식은 이여성(李如星)의 연구이후 정설로 정립되었으며 스키타이 복식이 며, 방계 복식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복식은 같으며 남자는 고(바지)위에 유(저고리)를 입고, 여자는 고(바지)와 상(치마)를 입은 후 저고리를 입는 것이다. 이 위에 포(두루마기)를 입고 허리에 띠를 두른다. 남자는 관이나 건을 썼으며 발에 리(운두가 없는 신)나 화(장화)를 신고, 귀걸이 목걸이, 팔지, 지환을 착용하였다.·고경벽화(古境壁畵)에 나타난 복식(服飾)삼국의 의복이 같다는 것은 문헌자료와 백제. 신라의 가시적 자료, 고구려 고분벽화로 알수 있으며 고포1 벽당고경은 1997년 전호태의 연구에 의하면 91기이다. 문헌을 통하여 고경벽 당 33기에서 유 315벌, 고 218벌, 상 70벌, 포 118벌과 관모, 발양, 대, 신, 실물과 염채를 고 찰하였다.(2) 통일신라 특징·사회·문화적 변화와 복식과의 관계?신라는 나라가 부강해짐에 따라 삼국을 통일하여 국력이 강대해지고 문화가 찬란하게 빛났으 며 제반제도, 시설의 정비, 경제생활의 안정과 예술도 고도로 발달하여 민족문화의 금자탑을 이룩하였다. 특히 불교를 신봉하여 불교예술이 극도로 발달하였으나 이 시기의 유물이나 사적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이 시기는 중국에 있어서 당나라가 융성하였던 때였으므로 신라에서는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천당정책을 썼는데, 제28대 진덕여왕은 왕금(王錦)이라는 비단에 수를 놓아 당나라에 보내고 김춘추를 보내어 왕과 조신의 장복(章服)을 청하여 들여왔다. 그 후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 4년에는 부녀자들까 지도 중국복식을 따르도록 했는데 이것이 중국의 관복제도를 정식으로 받아들여 입게 된 최 초의 일이다. 이것은 궁중이나 특수 유관자층에 한했다 할지라도 우리 복시에 미친 영향이 적 지 않았으므로 복식사상 일대 변천기라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또한 신라에서는 골품제도라는 것이 있어 성골 이하, 진골, 6두품, 5두품, 4두품, 평민 등 가문 과 혈통에 따른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에 복식의 양상도 계급에 따라 유형을 달리하 게 되어 다양하게 발전했다.흥덕왕대에 이르면 신라문화는 완숙기에 접어들어 복식이 대단히 사치했을 뿐 아니라 외래품을 숭상하고 계급의 복식질서도 문란해졌기 때문에 복식금지제도를 새로 제정하게 되었다. 여기에 의하면 의복재료도 삼국시대에 비하여 현저하게 풍부해져서 견직물(絹織物)로는 금, 사, 나, 능(綾), 주(紬), 시, 세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이 옷감의 종류가 다양함에 따라서 복식양식도 호화찬란하게 발전하였을 것으로 짐작 된다. 당과의 외교관계로 당나라의 패션이 유행하여 복두를 비롯해서 단령·반비·배당·표등의 새로운 복식이 등장하였다.이와 같이 통일신라의 복식은 호복계통인 북방계통 복식을 기본으로 중국계 복식이 들어와서 우리 나라 복식구조의 일부가 되어 국속화되 었다. 그러나 이러한 복식도 주로 귀족계급에 한한 거스로 일반서민과는 관련이 적었던 것이 다. 따라서 신라말기에서의 통일신라의 복식은 당제도를 상류계급의 복식으로 하고 하 류계급에서는 국제(國制)를 습용하는 이중구조를 볼 수 있다.(3) 고려시대 특징·저고리류수십기의 분묘 발구 복식을 정리하여 나타난 결과에 따르면 전반기 저고리 종류는 매우 다 양하게 나타난다. 모시로 만든 홑저고리나 일부 소맥 저고리 외에는 거의 모두 깃 섶 끝동 겨드랑이 사이 부분을 짙은 색의 금선단이나 필단으로 장식하였다. 크기가 매우 커서 길이가 50∼80cm에 이르고 품은 70cm를 전후하여 만들어져 있어 마치 현재의 남자 저고리와 유사 한 모양이다. 겉깃과 안깃 모두 네모난 목판깃이며 깃이 넓고 여기에 넓은 동정이 목을 싸는 형태로 짧게 달려있다. 이와함께 직선형 배래와 완만한 도련선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편의상 저고리를 길이에 따라 단저고리형, 중저고리형, 장저고리형을 대별하고 부분적 특징을 살펴 본다.중저고리형은 길이만 길뿐 단저고리형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를 모방하여 직금단 대신, 필단 으로 장식하여 만든 것으로 보여지며 문현 중 곁마기로 추정된다. 양 옆이 트인 장저고리와 구분하고 옆이 막혔다는 의미의 곁마기는 출도복식 저고리와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