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문제 제기어떤 사람들은 에피쿠로스를 가장 뛰어난 철학자라고 보는 반면 어떤 이들은 아예 철학자 라고 치지도 않는다. 쾌락주의자 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처럼 사람들은 그를 무신론자 내지는 사생활이 문란한 사람이라고 깎아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를 진정한 성자 또는 예언가라고 떠받들기도 한다. 확실히 그는 쾌락 을 추구한 철학자였다. 그러나 이렇게 엇갈리는 세간의 평가에 동의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가 주장한 쾌락 추구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가 차지하는 철학사적 위치를 정립해볼 필요가 있다.Ⅱ. 살펴보기ⅰ. 생 애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아테네에서 조금 떨어진 사모스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 사립학교에 입학하였지만 얼마 안 되어 자퇴를 하고 사모스섬에 거주하였던 플라톤주의자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18세때 병역의 의무를 마치기 위해 아테네로 건너간 뒤 희극 작가인 메난드로스와 함께 훈련을 받았으나 그 후 사모스섬의 원주민들이 아테네인들을 몰아내고 땅을 되찾게 되어 에피쿠로스와 그의 가족들은 콜로폰이라는 곳에서 정착을 하게 된다. 당시 콜로폰 근처의 타오스라는 곳에서는 데모크리토스의 제자인 나우시파네스라는 철학자가 강의를 하고 있었다. 본래 원자론에 관심이 많았던 에피쿠로스는 그를 찾아가 강의를 듣게 된다. 서른 두 살이 되던해에 에피쿠로스는 미틸레네로 이주하여 최초의 공식적인 학교를 세웠으나 당시는 플라톤주의가 득세를 할 때여서 다른 학파에서 학생들을 가로채는 것을 철저히 막았기 때문에 그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람프사코스에 학교를 세워 5년 뒤인 기원전 306년에는 드디어 아테네에 입성해 정착을 하게되고 그때부터 에피쿠로스주의는 날로 번창해가게 된다. 그가 아테네 외곽의 과수원 하나를 사들여서 거기서 사람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에피쿠로스 학파 사람들에게는 그 이후로 정원의 사람들 이라는 별명이 따라 다니게 되었다. 그는 일흔 한 살에 신장 결석으로 세상을 떠나기 까지 참으로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가 살아 있던 당시에 떠돌던 그에 대한 악평들은 실로 엄청났으며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종교적 박해에 버금가는 시련을 당하기도 했다. 대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키케로조차도 에피쿠로스의 학교에 대해 끝없는 향락의 나날 속에 사람들이 시들어 가는 쾌락의 정원 이라며 악평을 삼가지 않았다.그렇다면 사람들이 그토록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을 혐오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ⅱ. 에피쿠로스의 윤리학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지혜가운데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에는 친구를 사귀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이것이 바로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이 되는 문장이다. 우의(友義)에 기반을 둔 사회가 정의(正義)에 기반을 둔 사회보다 더 살기 좋은 사회라고 그는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우정 을 의사소통의 한 수단이자 궁극에 가서는 쾌락과 생의 최종 목적에 일치하는 하나의 이상적인 가치 라고 보았다. 우의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는 가족적인 유대와 친분 관계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결정하는 주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회에서 계속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가능한 한 많은 친구들을 사귀어두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이 사상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는 우정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고 정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여기에 에피쿠로스 학파가 세간의 미움을 받았던 이유가 일부 숨겨져 있다. 에피쿠로스는 같은 계급의 사람들이 아니면 서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사회에서 우정 이니 친교 따위를 설교하고 다녔던 것이다.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던 그리스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예와 여성을 배재한 제한된 민주주의였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한 사회에서 하층계급들을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대하고 정치가들에게는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던 에피쿠로스의 사상이 그 사회에 불러 일으켰을 반향을 생각해 보라.사람들은 또 에피쿠로스가 설파한 쾌락 에 대하여 깊이 알지 못하고 대단한 오해를 하였다. 에피쿠로스는 욕망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고 보았다. 자연적이면서 필수적인 것 과 자연적이지만 필수적이지는 않은 것 그리고 자연적이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것 이 세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자연적이면서 필수적인 쾌락이란 먹고 마시고 잠자고 추위에 대항해 옷을 입는 것 즉 생 그자체를 유지케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한가지 명심할 것은 먹기는 하지만 포식하는 것은 아니고 마시는 것도 단지 갈증을 해소할 정도이며 옷도 그때 그때의 계절에 적합한 것을 입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과시를 위해 밍크 코트를 입는 것은 이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적이지만 필수적이지는 않은 쾌락이란 감각을 즐겁게 하는데는 기여하지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것을 말한다. 예컨대 식사때마다 산해진미를 즐긴다던가 달팽이 요리같은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은 자연적이기는 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쾌락에 속할 것이다. 자연적이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쾌락은 흔히 세인들의 평판에 상당히 의존한 것이다. 예를 들면 상품 그 자체보다는 같은 물건이라도 롤렉스나 프라다같은 명품 브랜드의 상표를 소유하고 싶어하는게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위에서 본 것같이 에피쿠로스의 윤리학은 단순 명쾌하다. 자연적이면서 필수적인 쾌락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안 그러면 삶 그 자체가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적이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쾌락은 타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건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 중간에 있는 욕망들에 대해서는 먼저 이런 질문을 하고 판단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더 행복해질 것 인가? 아니면 불행해 질 것인가?이상으로 살펴본 바에 의해 우리는 에피쿠로스가 주장한 것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육체적 극단적 쾌락이 아니라 오히려 매사에 중용 을 지키라고 강조한 것에 더 가까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쾌락 에 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덧 붙였다. 쾌락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때 그것은 관능적인 감각만을 추구하는 난봉꾼의 쾌락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무지와 편견 또는 고의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우리가 말하려는 쾌락이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번민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사랑이라는 감정도 그에 사로잡혀 정신을 괴롭히는 지경에 이른다면 더 이상 쾌락이 아니라 일종의 노이로제 증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쾌락이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에피쿠로스는 진실한 쾌락은 아타락시아 곧 마음의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라고 보았고 이 아타락시아 를 그는 가장 존중하였다.ⅲ. 아타락시아와 죽음에 관한 에피쿠로스의 생각에피쿠로스는 그의 제자 메노이케우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런 까닭에 쾌락이 목적이라고 우리가 말할 때 우리가 의미하는 쾌락은 도락자의 쾌락도 아니며 성적 향락속에 존재하는 쾌락도 아니고 참으로 육체에서 괴로움이 없는 것과 영혼에서 흐트러짐이 없는 것일 뿐이다. .......』이상으로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쾌락이란 다름아닌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마음의 평정상태-아타락시아-를 위협하는 가장 큰 고통의 요소-바로 죽음 -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에피쿠로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물리학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평소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를 매우 존경하였는데 천체와 물리 즉 우주의 근본에 대해서도 그와 생각을 같이 하였다. 즉 모든 사물은 더 이상 쪼갤수 없는 어떤 것-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은 사람의 영혼에도 공평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하였다. 즉 영혼도 역시 원자로 되어 있으므로 그것은 죽음과 더불어 육체와 마찬가지로 원래의 원자로 다시금 해체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이미 어떠한 지각도 남아 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죽음이란 곧 지각의 상실이므로 따라서 우리가 살아있어서 지각이 있을 때는 무지각을 의미하는 죽음은 아직 없으며 또 그와 같은 죽음이 우리를 찾아 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없어진 셈이 되는 것이다. 에피쿠로스 자신의 말을 빌려 명료하게 표현하자면 우리가 있는 한 죽음은 거기 없으며 또 죽음이 있는 한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죽음은 우리에게 무(無)이다. 라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당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후세계(死後世界)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음 에 대해 두려워 하였다. 그러나 영혼 불멸을 배척하는 에피쿠로스의 이러한 사상은 그를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으며 가장 큰 고통인 죽음에 관한 두려움 으로부터의 탈출이 진정한 아타락시아 를 가능하게 해 준 것이다. 이러한 에피쿠로스의 우주관은 영혼은 불멸하는 존재이며 살아서의 죄값에 따라 죽어서도 끊임없는 고초를 당한다는 어찌보면 지금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일반적인 기독교 윤리보다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