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적 진단 성격구조의 이해-1장. 왜 진단을 하는가.→ 심리 진단적 개념을 남용하지 않고 적절한 훈련을 받고 잘 적용할 때 내담자가 도움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짐.→ 진단과정 : 위기 상황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내담자를 만나면 우선 분석적 배경의 정신과적 훈련에서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정보들을 수집해야 한다는 뜻? 첫 면접(1) 현재의 문제와 그 배경을 상세하게 듣는 일에 할애한다.(2) 면접이 끝날 무렵 치료자에 대한 전반적인 반응을 점검하고, 앞으로 함께 치료 작업을 할 것을 이야기하며 내담자를 격려한다.(3) 더 넓은 맥락에서 문제를 볼 수 있다면 환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다음 면접 시간에 좀 더 온전한 개인력을 얻는 것에 대해 동의를 구한다.? 두 번째 회기(1) 많은 질문을 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말해줌(2) 기록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함(3) 만약 아직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문제에 대해 내가 묻는다면 그냥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 준다.- 이해가 되지 않는 사례는 심리검사나 구조화된 면접을 실시1. 진단의 역할- 치료계획 수립 (진단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 : ‘알코올이나 약물문제, 기질적 문제, 양극성 장애, 다중 성격장애’ 등 구체적인 치료적 접근법이 있는 문제 상황에서는 진단이 매우 유용함.- 예후에 관한 정보 : 성격적인 문제의 깊이와 넓이에서의 차이점을 평가하는 것은 환자뿐만 아니라 치료자에게도 유익함.- 소비자 보호 : 치료자는 세심한 평가에 기초해 환자에게 치료를 통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하거나 내담자를 잘못 인도하는 실수를 방지 할 수 있음.- 공감의 전달 : 치료자의 정서적 반응은 제대로 된 진단을 하기 위한 필수요소임. 환자의 정체성을 깊이 고려한 진정한 공감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그 문제를 다룰지 선택할 수 있음.- 치료 회피의 방지 : 경험이 많은 진단 전문가는 회피하는 내담자에게 진실 되게 이해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여 안심시켜 줌으로써 계속해서 치료받을 가능성을 높여줌.2. 부가적인 이점들- 내담자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개방할 만큼 치료자를 잘 알기 이전에, 진단 작업을 함으로써 이후의 치료에서 환자가 함께 나누기 어려워 할 정보를 얻을 수 있음.-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치료자의 자존감이 유지 될 수 있도록 함.3. 진단의 유용성의 한계- 어떤 명칭이 사람을 오히려 더 모호하게 만들 때는 그 명칭을 버리고 인간적인 이치에 의지하는 편이 나음.- 성격구조의 평가는 항상 잠정적이며 결코 확정되지 않음. 새로운 정보를 고려하여 앞선 진단을 계속적으로 재 평가해야함.< 1장 왜 진단을 하는가 >심리진단적 용어의 남용→ 심리진단적 개념을 조심스럽게, 남용하지 않고 잘 적용할 때 내담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짐.? 적절한 훈련을 받고 세심하게 진단을 할 때 얻을 수 있는 다섯 가지 장점①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데 유용② 예후에 관한 정보를 제공③ 정신건강 서비스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됨④ 치료자의 공감 전달을 가능⑤ 쉽게 겁을 먹는 사람들이 치료로부터 도피할 가능성을 줄이는 역할→ 진단과정위기 상황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내담자를 만나면 우선 정보들을 수집해야 한다.? 첫 면접(1)현재의 문제와 그 배경을 상세하게 듣는 일에 할애한다.(2)면접이 끝날 무렵 치료자에 대한 전반적인 반응을 점검하고, 앞으로 함께 치료작업을 할 것을 이야기하며 내담자를 격려한다.(3)더 넓은 맥락에서 문제를 볼 수 있다면 환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다음 면접 시간에 좀 더 온전한 개인력을 얻는 것에 대해 동의를 구한다.두 번째 회기(1)많은 질문을 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말해줌(2)기록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함(3)만약 아직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문제에 대해 내가 묻는다면 그냥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 준다.-이해가 되지 않는 사례는 심리검사나 구조화된 면접을 실시? 진단 회기가 권위주의적이고 위압적으로 거리를 두는 장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심층 면접이 내담자를 진실로 존중하는 평등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지 못할 이유가 없음.< 치료 계획 수립 >? 진단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몇몇 구체적이고 대다수가 동의하는 치료적 접근법이 있는 문제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진단의 가치를 쉽게 발견(1)알코올이나 약물문제⇒해독 프로그램을 통해 화학적 의존을 직접 다룰 수 있는 경우에 한해 개인치료가 도움(2)기질적 문제⇒가능하다면 기질적인 것 자체를 다루고, 환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증상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교육시킨다.(3)양극성 장애⇒개인치료에 더하여 약물치료를 반드시 시행한다.(4)다중성격 장애⇒치료과정에서 모든 변경 성격을 확인하고 외상적 과거사를 기억해 내도록 강조한다.-구체성이 떨어지고 훨씬 더 복잡한 성격 문제에 대해서는 대개 장기 개인치료 이외에 다른 ‘처치 계획’이 제시되지 않는다.왜 진단이 필요한가에 대한 정신분석 그룹내의 주장⇒자기심리학자들은 진단적 명칭이 오용될 수 있고, 치료자의 공감을 훼손시킬 수 있다.내담자의 핵심 문제를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치료적 관계를 수립하고 그것이 어떻게 발전하는가를 지켜보는 일뿐이라고 주장-정신분석이나 분석적 심리치료는 어떤 사람이 찾아오건 개인의 사정을 무시하고 억지로 꿰어 맞추는 획일적인 활동이 아니다.-진단적 개념화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관계를 맺는 방식, 개입의 기조, 처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주제와 같은 결정적인 영역에서 치료자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음.< 예후에 관한 정보 >? 성격적인 문제의 깊이와 넓이에서의 차이점을 평가하는 것은 환자뿐만 아니라 치료자에게도 매우 유익하다.⇒미국 정신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DSM)의 분류체계에서도 특정 상태의 위험 정도와 궁극적인 예후에 대한 함의가 때로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치료 과정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단지 합의적으로 수용된 진단분류들만을 담고 있기도 하다.? 외현적인 문제만을 보고 ‘진단’을 내리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정신분석의 강점 중 하나는 성격구조를 평가하는 데 있다.예 - 어떤 치료자가 섭식장애 여성을 치료한다고 했을 때(1) 집을 떠나 대학에 들어가면서 섭식장애를 보이고 이것이 자기 파괴적인 행동임을 인식하는 여성을 치료할 때⇒ 몇 주간 치료로도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2) 초등학교 이래로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면서 여자는 말라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경계선 여성을 치료할 때⇒ 2~3년 정도 치료한 후에야 폭식으로 인해 자신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를 분명히 알고 변화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치료자를 신뢰하게 하는 일이 됨.< 소비자 보호 >?치료자는 세심한 평가에 기초해 환자에게 치료를 통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하거나 내담자를 잘못 인도하는 실수를 방지.?기적적인 치유를 요구하면서도 진정한 변화를 위한 치료 작업에 함께 하려는 마음이나 능력이 없는 소수의 내담들에게는 진단 후에 이를 정직하게 알려 줌으로써 이들이 정중하게 치료를 철회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함.? 치료자는 고객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 설명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음.예 - “나는 정신분석을 해요. 만약 분석을 받고 싶다면 월요일부터 시작하지요.” -대신에 ⇒“결혼생활의 어려움에 대해서 문제해결식의 접근을 원한다면 부부치료를 추천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당신의 성격 패턴이 결혼생활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정신분석적 치료를 받는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든 경험이 되겠지만 부부관계에서 당신이 하는 몫을 온전히 변화 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선 부부치료부터 시작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는 중에는 보다 깊고 잘 안 바뀌는 성격문제가 계속 나타난다면, 그때 다시 정신분석을 받는 것을 고려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제대로 이루어진 평가는 단기 접근이 환자에게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다. -> (단기치료가 기관에서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일 경우.)⇒“이상적으로 보자면, 제 생각엔 장기치료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저희 기관은 장기치료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됩니다. 몇 몇 대안을 제시해드릴 수는 있어요. 그 중에 어떤 것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여기서 당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을 겁니다.”분명한 한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치료가 효과적일 것이라고 치료자 자신이 혹은 환자가 믿게 한다면 결국엔 서로가 자책에 빠지게 될 것이다.세심한 진단 평가는 별 도움이 안 될 치료 관계에 긴 시간을 낭비할 가능성을 줄여 줄 것.< 공감의 전달 >?‘공감(empathy): 누군가와 함께 느끼는 것’→ 내담자가 느끼는 바로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치료자의 역량이란 의미로 사용?자기(self)속에서 관찰된 치료자의 정서적 반응은 제대로 된 진단을 하기 위한 필수 요소→ 이런 진단을 근거로 치료자는 내담자의 불행에 대해 직업적이고 기계적인 동정이 아닌 환자의 독특한 정체성을 깊이 고려한 진정한 공감을 할 수 있고, 앞으로 어떻게 그 문제를 다룰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예: 면접자가 내담자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 내담자는 여러 가능성 중에서도 특히 히스테리적 성격을 가지고 있거나 사회병질자일 가능성이 큼.
[형식주의 비평-김억 시인]Ⅰ. 들어가기Ⅱ. 본론(1) 김억의 시 세계(2) 작품분석Ⅰ. 들어가기문학 비평을 하려할 때 역사주의 비평, 형식주의 비평, 구조주의 비평, 심리주의 비평 등 많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모든 비평 방법 중 무의식중에 기본이 되고 있는 것은 1920년대에 등장한 형식주의 비평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그 근원을 찾을수 있는 형식주의는 문학연구에서 전기적 비평과 역사주의 비평, 인상주의 비평을 배격하고, 문학을 자율적 대상으로 인식, 불가사의한 시어를 고도로 조직화하고 통일화된 구조로 봄으로써 언어위주의 비평을 하였다.다시 말해, 작품을 형식주의적으로 비평한다는 것은, 작품 속에 나타나는 각 부분들의 배열관계나 그 부분들이 작품 전체와 어떤 연관관계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다. 따라서 형식주의 비평가들은 작가의 전기나 시대환경 및 문화 조건 또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역사, 정치, 경제, 사회적인 면보다는 작품 자체 내의 요소를 중시하는 것이다.이런 형식주의 비평을 통해 김소월의 스승인 김억의 시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Ⅱ. 본론(1) 김억의 시 세계*시 경향: 시 경향은 1924~1925년을 전후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된다.- 전기 : 초기의 안서는 외래 지향적인 단면을 강하게 드러낸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 초기에 있어서 안서는 주로 상징주의와 관련하여 자유시, 산문시를 모색하면서 그의 시세계를 탐구하였다. 근대 시인들의 장르 의식의 결여로 시적 인식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은 물론 근대시 전개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에 대해 말하면서 불란서 상징파 시인들의 작품 번역을 빼놓을 수 없다. 즉 보들레르, 베를렌 및 아일랜드의 예이츠 등에서 나타나는 우울하고 고독한 정서는 19세기의 상업주의에서 소외된 문학 지식인들의 정신적 지향을 대변한 독자적인 미의식에 해당된다. 이러한 미의식과 일제 식민지 차하의 젊은 문학도였던 김억의 내적 번민과는 상당 부분 통하는바가 있었으리라 여겨진다.에 이어, 를 냈는데, 이 두 시집은 안서 초기시의 특징인 서구 취향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자유시 형에 내재율로 몽환, 환상, 염세, 허무, 죽음 등 매우 퇴폐적인 색채로 그린 이 시들은 퇴폐적 낭만주의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그는 시어를 아름답게 다듬으려 했고, 빈번히 감상적 어휘를 사용했으며, 구체적 지명이나 지방어를 사용, 향토적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등의 시적 특징을 보여 주었다. 신채호와 같은 남성적 저항을 보이지 못한 김억은 여성적 성향만으로 민족의 곤경을 시화하는 데 치중하였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개인의 서정을 읊은 작품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그 이면엔 당대 현실에 대한 고민이 있음을 간과 할 수 없다.- 후기 : 우리 주위에 詩作에는 우리 주위를 배경잡은 사상과 감정은 하나도 업고 남의 주의를 배경잡은 사상과 감정을 빌어다가 우리의 시작을 삼는 경향이 잇슴에 따라 진정한 ‘조선 현대의 시가’를 어더 볼 수 가 업게 됩니다. …(중략)… 현대의 조선심을 이해하는 시인이 잇다하면 그 시가는 일반은 몰으나 엇던 큰 부분의 사람에게는 반드시 큰 공명의 음악을 줄 줄 압니다.번역을 통해 서구 문학에의 경도(傾倒)를 보이던 안서는 1920년대 중반기부터 전통적인 민족의 정서애로 관심의 전환을 보이게 된다. 초기시의 서구적 색채를 벗고 민요 서정시로 돌아온다. 안서는 ‘외래 사조와 외래 감정’을 배격하고 우리 주위의 사상과 감정을 바탕으로 시작(詩作) 하기를 역설한다. 이를 위하여 이념으로는 ‘조선심’을, 그리고 문학적 소재로는 ‘향토성’을 제시한다. 따라서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고유의 문예도 향토적인 데서만’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의 민요조의 가락과 인생의 애상과 한을 노래하는 내용은 제자 김소월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민요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7.5조의 음수율에 맞춘 정형적인 민요시가 많이 보인다. 초기 시와는 달리 전통을 지향하고 향토적 색채를 띤 작품이 나타난다. 안서의 민요조 서정시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보면 율격상의 제약 외에도 향토적 정조를 읊었다거나, 민중의 생활을 제재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씌어진 작품으로는 ‘물레’, ‘세월 네월아’ 등을 들 수 있다.또한 후기의 안서의 작품에는 ‘아득이는데’, ‘찿노란다’와 같은 독특한 언어 감각이 빛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외형률을 강조하여 시가 공식적이고 경직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관습적인 수사를 사용해 지루하고, 주제가 초기 시의 감상성을 벗어나지 못해 건강한 민중의 삶을 형상화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2) 작품분석-전기 자유시: '봄은 간다 '지금까지 한국 최초의 근대시로는 주로 주요한의 가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몇 달 앞서 발표된 안서의 가 한국 최초의 근대시라고 주장되고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은 한국 근대시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 근대시라고 할 때의 근대시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첫째는 개인적인 서정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된다는 것이고 , 둘째는 개인적인 서정을 노래하기 위해서 거기에 따른 운율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시어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건들은 그 이전의 시, 즉 개화가사나 창가 내지는 신체시들이 가지는 속성과는 명백히 변별적인 것이다 .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에서의 근대시는 개화가사나 창가, 신체시와 얼마나 다른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밤이도다봄이다.밤만도 애닲은데봄만도 생각인데날은 빠르다.봄은 간다.깊흔 생각은 아득이는데저 바람에 새가 슯히운다.검은 내 떠돈다.죵소리 빗긴다.말도 업는 밤의 셜음소리 업는 봄의 가슴꽃은 떨어진다.님은 탄식한다.해설 : 이 작품은 어느 늦은 봄날 밤에, 떨어지는 꽃을 바라보며 느낀 상실의 슬픔을 여성적 어조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정서적으로는 우리의 전통시에 흐르는 애상과 비애를 바탕으로 한 상실과 체념의 미학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애달픈데'·'생각인데'·'아득이는데'·'슬피 운다'·'탄식한다' 등의 주관적 하강의 감정어와 '간다'·'떠돈다'·'빗긴다'·'떨어진다' 등의 객관적 하강의 상태어의 결합을 통해 나타나는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는 이 작품이 암울한 시대 상황을 인식한데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된 '밤'은 당시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으며, 계절적 배경인 '봄'은 '오는 봄'이 아닌, '가는 봄'으로서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상실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봄밤'은 모든 것을 상실한 고뇌의 현실을 표상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상황을 치열하게 인식하지 못한 결과, 적극적 행동의 미학이 표출되지 못하고, 수동적인 자세로 탄식하는 데에 머물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또한 시행 배열의 규칙성, 대구법의 남발, 의도적인 각운법, 불필요한 이미지의 반복, 감정의 무절제한 표출 등으로 작품의 전체 구조가 약화되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새'에다 시인의 감정을 의탁한 감정 이입의 수법과 '종소리 빗긴다'에 나타난 공감각적 이미지는 동시대 시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이 작품의 시간 의식에는 시간의 빠름과 상실의 슬픔이 융합되어 나타난다. 시인은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에서 나타나듯이 ‘새’를 통하여 화자가 자유를 빼앗기고 있으며, 또 그가 처해 있는 세계 전체가 슬픔에 잠겨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후기 민요 서정시 : ‘물레’물레나 바퀴는실실이 시르렁어제도 오늘도 흥겨이 돌아도사람의 한 생(生)은 시름에 돈다오.?물레나 바퀴는실실이 시르렁외마리 겹마리 실마리 풀려도꿈 같은 세상(世上) 가두새 얽히오?물레나 바퀴는실실이 시르렁언제나 실마리 감자던 도련님언제는 못 풀어 날 잡고 운다오.?물레나 바퀴는실실이 시르렁원수의 도련님 실마리 풀어라못 풀 걸 왜 감고 날다려 풀라나.?해설 : 전 4연으로 된 자유시인 이 작품은 작곡가 김순애가 곡을 붙여 가곡으로 널리 알려진 시이다. 이 작품은 안서의 후기 시세계인 민요조 가락의 서정시 경향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돌고 도는 물레와 세상살이가 인생의 고뇌와 노랫가락에 잘 어우러져 있는 이 시는 4음보의 우리 전통적인 가락을 수용하고 있다.
Ⅰ. 머리말“……독립항쟁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여러 번 폭발을 일으켰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사건은 1919년의 봉기다. 코리아의 민중, 특히 남녀 청년들은 우세한 적에 항거하여 용감하게 투쟁했다. 그들은 이렇게 이상(理想)을 위해 순사(殉死)한 것이다. 일본의 조선인 탄압은 역사상에서도 참으로 비통한 암흑의 일장(一章)이다. 코리아에서는 대개 학교를 갓 나온 정도의 소녀들도 민족항쟁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아마 너도 마음이 끌릴 것으로 안다.…….”1932년 6번째 투옥되어 있던 인도의 반영(反英) 운동 지도자 P. J 네루는 16세 된 외동딸 인디라에게 옥중에서 매일처럼 편지를 써서 『세계사 별견(瞥見)』이라는 장편의 세계 역사를 엮었다. 위의 인용(引用)은 그 중에서 한국의 3.1 운동에 언급한 부분의 일부다. 외국의 민족 운동자들에게 있어서도 3.1 운동은 이처럼 감동적인 선례였던 것이다.1919년 3월 1일에 불이 붙은 3.1운동은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 첫째로 손꼽히는 민족운동이었다. 3.1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하에서 우리 온 민족이 자주독립을 되찾으려는 피맺힌 절규였다. 그러므로 이 독립만세 운동은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한민족의 이민족(異民族)에 대한 항쟁(抗爭) 중 가장 위대한 것이었다. 물론 불분명한 지도부, 자연발생적인 민중봉기, 무계획적인 운동전략 등 많은 한계를 가진 것도 사실이지만 3.1운동은 대한민국 임시부 수립을 촉발시켜 민족 독립운동을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독립전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청년 학 생들이 항일 투쟁의 주역으로 등장함으로써 3.1운동의 정신은 이후 6.10 만세 운동과 광주 학생운동으로 계승되었다. 이러한 3.1운동이 극히 일부의 친일세력을 제외한 온 겨레가 일제에 항거한 민족해방운동이었으며, 민중의 의식을 크게 각성시켜 그들이 민족해방운동의 주체로 등장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고, 국내에서의 민중의 중심으로 한 항일투쟁은 물론 국외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의 활성화를 가져오는 계기를 마진?오세창 등 천도교 간부들은 3.1일이 독립운동의 좋은 기회임을 논의하다가 상해로부터 신한청년당의 밀사가 다녀가고 뒤이어 동경으로부터 송계백이 ‘2?8독립선언서’ 원고를 갖고 찾아오자 큰 자극과 격려를 받고 본격적으로 3.1독립운동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권동진, 오세창, 최린 등은 1919년 1월 20일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쾌락을 얻은 다음 이번에 일으킬 독립운동방법에 대하여 다음의 세 가지 원칙에 합의하였다.첫째, 독립운동을 대중화하여야 할 것.둘째, 독립운동을 일원화하여야 할 것.셋째, 독립운동을 비폭력으로 할 것.3.1독립운동을 위하여 천도교 종단을 동원하기로 교주 손병희가 허락했으므로, 최린 등 천도교 간부들은 2월 상순부터 독립선언과 민족 대연합전선 형성을 위한 다른 종교와의 교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2. 대외적 배경(1)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정세의 변화조선민중의 생활은 물적?심적으로 이제는 더 견딜 수 없는 사태에까지 와 있다. 이때 조선민중으로 하여금 일대 민족운동을 일으킬 결의를 갖게 한 한계가 찾아왔으니, 곧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가 그것이었다. 그 민족자결주의는 제 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원칙인 14개 조항의 일부로 1918년 1월에 제기된 것이다. 다만 윌슨이 구상했던 민족자결 원칙은 구체적으로 1차 대전에 연합국과 대결했던 독일?오스트리아?터키 등에 속해 있던 식민지에만 적용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발표가 있자 유럽 이외 지역에서도 여러 피압박 민족이 이것을 복음(福音)삼아 독립을 외치게 되었으며, 사태가 이와 같이 확대되자 윌슨 자신은 민족자결이라는 용어를 삼가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자결의 대 원칙은 모든 피압박 민족 지도자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각각 자기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 원칙을 해석하여 구호고 삼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의 압제 하에 신음하고 있던 조선의 경우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2) 해외 독립 운동의 소식1) 미국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20.8%, 상공업자 13.8%, 노동자 3.9%, 무직자 3?1% 등으로 농민과 지식인?청년?학생 등이 주요 구성원을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운동의 진전과정에 따라 초기의 지식인?청년 중심에서 후기의 농민?노동자 중심으로 계급구성의 중심이 이동한다. 이러한 구성의 3.1운동은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3.1운동의 초기준비단계로서 종교와 학생 조직을 활용한 시기이다. 두 번째는 민중운동의 제1단계로서 중간주도층에 의해 비밀결사단체가 조직되고, 지하신문 등이 배포되며 민중이 결집한 단계이다. 마지막은 민중이 자체 조직화되는 민중운동의 제2단계로서 노동자의 파업, 노동자대회 조직화, 농촌에서의 ‘만세꾼’ 등이 출현하는 시기이다.(1) 1단계 : 만세시위운동을 점화한 단계로 이때의 독립운동 방향은 비폭력주의였다.①천도교의 독립운동 조직화천도교 측에서 독립운동의 대중화?일원화?비폭력 3대원칙을 세우고 타측과 연결을 모색하였다. 1919년 당시 국내에서 대규모의 독립운동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조직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한국을 강점한 뒤 모든 사회단체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연설회?강연회 등도 금지시켰다. 단지 제한적이지만 전국적인 조직이 허용되었던 것은 종교단체의 집회가 유일한 것이었고 그 다음 학생들의 활동이 있을 뿐이었다.따라서 3.1 운동을 일으키기 위한 민족대연합전선의 형성준비는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전개 되어갔다. 당시 국내에서 큰 조직과 인적?물적 세력을 갖고 있던 종교단체로서는 천도교와 기독교가 있었다. 천도교는 동학의 혁명정신을 이어 유림과의 연합을 시도하다 여의치 못하자 기독교?불교?학생계층 등과 제휴함으로써 전민족적 독립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기초를 만들었다.② 독립선언서의 준비독립선언서는 그 자체가 독립만세시위를 격려?고무?동원?유도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었으므로 3?1 운동의 성공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계였다.최남선은 이러한 지침에 따라 자신의 의사를 보태고 동경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서를 참고하여 대비하면서 원고 받은 서울시내의 중학교 이상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탑골공원에 모여들었다.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할 것을 기대하였던 학생과 시민들은 태화관에서 별도의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게 되었음을 통고 받자, 학생대표인 강기덕과 2~3명의 학생들이 민족대표들에게 약속위반임을 비판하며 1사람의 민족대표라도 낭독해주기를 강력하게 요청했으나 전원이 함께 포박 당하기를 결의했음을 이유로 이들을 돌려보냈다.이에 시민과 학생들은 낙망하지 않고 독자적 독립선언식을 갖기로 하고 2시 30분에 한 학생대표를 팔각정에 등단시켜서 독립선언서를 낭독케 하였다.2) 시위활동의 전개한 학생이 감격에 넘치는 음성으로 2,600여 자의 독립선언서의 낭독을 끝내자 공원에 모인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들은 ‘조선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의 구호를 공원이 떠나갈 듯이 외쳤다. 일제의 탄압에 오랫동안 억눌렸다가 폭발한 독립만세의 함성은 공원 일대를 뒤흔들고 바야흐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파급되기 시작하였다.학생과 시민들은 ‘독립만세’ 를 연창하면서 공원에서 거리로 뛰쳐나와 고종의 인산을 보러 올라온 지방민들과 함께 수만 명이 대오를 지어 탑골 공원 문 앞에서 동?서 두 갈래로 나누어서 독립만세시위에 들어갔다.시위대들은 독립만세 시위행진을 하면서 연도의 시민들에게 ‘조선은 지금 독립하려 한다. 함께 만세를 부르자’ 고 권유했고,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합세했으므로 실제의 시위대는 수만 명이 되어 독립만세 시위운동의 기세는 더욱 돋워졌다. 이 시위대들뿐 아니라, 이 날 밤까지 마포 전차 종점 부근과 연희전문학교 부근에서까지 서울시내 도처에서 시민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와 ‘독립만세’ 를 절규하여 온 서울 장안이 ‘만세’ 의 함성으로 진동하였다.이 날 이렇게 해서 서울 탑골공원에서 비롯된 독립만세 시위운동은 마치 한 점의 불꽃이 요원을 불태우듯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나갔다.서울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이 시작된 같은 날인 3월 1일 거의 동시에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선천, 원산 등의 여러 곳에서 서울과등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폭력이 강화된 폭동적 성격의 투쟁은 3월 하순 이후 최고조에 이르렀는데 시위와 충돌이 가장 많은 곳은 경기도이며 특히 평안?경기?경상도 지역에서 격심하였고 호남지역에서는 운동의 열기가 상대적으로 약하였다.2) 3.1 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1) 일제의 탄압무력의 강화일제는 3.1 운동이 폭발하자 종래의 제19사단, 제20사단, 해군 요새사령부, 일본 헌병대의 무력 이외에 다시 일본군을 증파하여 탄압무력을 강화하였다. 일제는 3.1 운동이 폭발하자 4월 4일 일본정부의 각료회의에서 보병 6개 대대와 헌병 65명, 보조헌병 350명을 조선에 증파하기로 결정하여 4월 7일 비밀리에 조선 각지로 상륙시켰다. 일제는 정규군 이외에 여기에 다시 헌병경찰을 배치하여 독립운동에 대한 탄압과 식민지 통치의 무력으로 삼았다.(2) 대량학살한국인들이 3.1 운동에 전민족적으로 전국에서 봉기하자 곳곳에서 무차별 대량 학살을 자행했는데, 일제는 평화적 시위군주에게 발포하여 무차별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었다.일제의 시위군중에 대한 대량 학살은 비무장한 한국인 평화적 시위군중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발포한 것이거나, 시위주동자를 구속한 경우에 시위군중이 구속자의 석방을 요구하여 일제 군경의 주둔소를 에워 쐈을 경우에 일방적으로 무차별 발포하여 대량 학살을 자행한 것이 기본적 형태였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통계에 의하면, 3.1 운동 기간의 일제는 시위군중 7,509명을 학살하고, 1만 5,961명을 부상시켰다.경기도 수원군 제암리(堤岩理)에서는 4월 15일 일본군 아리다(有田後夫) 중위가 지휘하는 20명이 나타나 마을 사람들에게 알릴 일이 있으니 교회당에 모이도록 하고는 밖으로 문을 잠그고 교회당에 방화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뛰어 나오면 총격을 가하고 부인들까지 23명을 학살하였다. 또한 일본군은 이웃 마을인 고주리(高舟里)에도 달려가서 천도교도 6명을 일본도로 학살하고 시체에 석유를 뿌려 불을 질렀다.(3) 대량체포?투옥것이다.
국어사전에 인간관(人間觀)은 명사로 ‘인간을 보는 관점’이라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보면 옛 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생각되어지고, 정의되기 힘든 존재가 바로 인간이란 존재일 것이다. 인간에 대한 확실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동양의 대표 철학사상인 유교, 도교의 창시자 공자와 노자의 사상을 통해 인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공자와 노자는 둘 다 춘추전국시대 주나라 말기라는 혼탁한 시대에 태어났다. 이 무렵 주나라는 이미 중앙 정권으로서의 통제력을 잃어 크고 작은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고 도덕적 기강도 무너지고 있었다. 혼란에 빠진 중국 대륙은 자연스레 이 난국을 헤쳐 나갈 방법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제자백가가 성립하게 되었다.‘때는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비슷하게 부패, 부조리, 무능, 배신이 난무하던 춘추시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공자께서 평소 존경하던 노자께 서신을 통하여 혼탁한 세상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어 본다’ 가정하여 보았다.노자선생께 예(禮)를 묻고자 합니다.저의 짧은 학식으로 인간을 정의 내릴 수 없기에 선생께 물음을 청합니다. 우선 인간에 대한 저의 생각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무릇 인간이라 함은 天의 기품과 地의 형상 받은 중간적 존재자로 구도의 신념을 가지고, 도덕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회가 혼란스러운 근원적인 원인은 인간의 도덕적 타락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본래 타고난 내면적 도덕성인 ‘인(仁)’을 회복하여, 학문의 발달에 힘쓰고, 천지조화에 기여하는 어진 사람인 군자가 되어 자기수양을 거듭해야 한다 생각합니다.인은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사랑의 정신과 사회적 존재로 완성된 인격체의 아름다움입니다.인이란 인간다움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부모님을 섬기는 효와 형제 간의 우애를 곧 인의 근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을 실천하는 기본적인 덕목으로 효제충신(孝悌忠信) 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효제충신의 윤리를 실천하려면 우선 나부터 자세를 갖추어야 하기에 수련을 거듭하려 유람하고 있습니다. 천하를 돌아다니며 깨달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서(恕)입니다.서는 “내 마음(心)과 같이(如) 한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보통 ‘용서’한다는 윤리인데, “내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미친다.”는 뜻으로 효제충신의 윤리를 실천하기 위해 나 자신부터 자세를 갖추려 하고 있습니다.인간의 내면적인 도덕성을 인이라고 한다면, 외면적인 사회 규범은 ‘예(禮)’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예는 지나치게 형식화되고 개인의 사욕으로 물들어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마다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여 진정한 예를 깨달아야합니다.또한 배움이 매우 중요합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습니까?정명 사상에 따라 사회 성원들이 제각기 각자의 신분과 지위에 따라 맡은 바 역할을 다한다면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이룩될 것입니다. 진정한 사회 질서는 강제된 법률이나 형벌보다 도덕과 예의로 교화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도덕과 예의가 주된 사회 규범이 되려면,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통치자가 먼저 군자다운 인격을 닦고서 다스려야 합니다. 또한, 통치자는 재화의 적음보다 분배가 균등하지 못한 점을 걱정해야 하고 인과 예를 통하여 올바른 도덕을 확립하며 바람직한 사회 질서를 회복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대동 사회를 궁극적인 이상 사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저의 이런 짧은 생각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공자께 답합니다.저 또한 배움이 짧습니다. 하지만 저 나름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사람은 땅을 법칙삼아 어긋나지 않고, 땅은 하늘을 법칙삼아 어긋나지 않으며, 하늘은 도를 법칙삼아 어긋나지 않고, 도는 자연을 법칙삼아 어긋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란 천지 만물의 근원으로 인간의 의지나 욕구와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자연의 가치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즉, 지금사회가 혼란한 원인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그릇된 인식과 가치관, 그리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 제도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래 소박하고 순수한 자연의 덕을 가지고 있으나, 흔히 사물의 겉모습에 이끌려서 사물의 본질이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 곧 무위자연(無爲自然)이 이상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대도가 없어지면 인의가 강조되고, 지혜가 발달하면 크나큰 거짓이 판을 치며, 육친이 화목하지 못하면 효도와 사랑이 생겨나고, 나라가 혼란에 빠지면 충신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또한 제가 생각하는 윤리는 무위자연의 도와 이에 입각한 겸허와 부쟁의 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으뜸이 되는 선은 물과도 같습니다. 물이 갖추고 있는 덕이 그대로 무위자연을 나타내는데, 무위(無爲)의 자연스러움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공자께서는 배움에 대해 말씀하셨지요?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날로 쌓아 가는 것이고 도를 닦는다고 하는 것은 날로 덜어내는 것인데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마침내 무위에 이르면 하는 것이 없지만 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나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나라를 다스리는 법은 소국과민(小國寡民) 이라 생각합니다. 주나라와 같이 거대한 통일 제국의 국가형태를 저는 반대합니다. 또한 통치자보다는 백성들의 평화로운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하지만 인간 품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는 큰 공감대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 그 인간 품성을 유지하는 방법에 있어서 생각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공자께서는, 인간의 본성은 어떠하다고 생각하고 계시는지요?저는 가만히 놔두고 아무런 수양도 하지 않으면 그 선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유지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인위적인 부자연스러움에 의해 본래의 모습을 발휘할 수 없을뿐더러 인의의 의해 훼손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자연스러움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1. 본문천자봉지금으로부터 약 천 이백 여 년 전 신라 혜공왕때 법조라는 한 도승이 있었다. 이 법조선사가 밀양 무봉사를 세울 때의 일이다. 하루는 선사가 밤중에 급한 용무로 뒷간을 갔더니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뒷간 앞을 지키고 있었다. 선사는 할 수 없이 호랑이를 피해 다른 곳에 가서 용무를 마쳤다. 그런데 이튿날 밤 선사가 또 뒷간에 가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그 호랑이가 역시 그 곳에 앉아 있었다. 슬그머니 화가 치민 선사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호랑이의 이마를 내리쳐버렸다. 그랬더니 호랑이의 이마에서는 흰나비 한 마리가 날라 나오고 호랑이의 몸뚱이는 금방 어디론지 간 곳이 없어져버렸다.선사는 하도 이상스런 일이라 그 흰나비를 따라나섰다. 흰나비는 하늘하늘 앞장을 서 가더니 새벽녘에 어떤 산봉우리에 가서 앉았다. 선사가 곁에 앉아서 흰나비의 동정을 지켜 보느라니까 이번에는 또 그 흰나비가 날아서 산 아래 있는 어떤 집으로 들어갔다. 선사가 그 집을 찾아갔더니 집안에는 쉰 살가량 되어 보이는 어떤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나이 쉰 살이 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어 매우 쓸쓸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간밤에 이들 부부는 매우 이상스런 꿈을 하나씩 꾸었다.날이 밝아 부부가 서로 꿈 이야기를 하였는데 각각 두 사람이 꾼 꿈이 똑같은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서로 괴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선사를 본 두 사람은 선사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다. 선사가 두 사람의 꿈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꿈의 내용은 간밤에 선사가 겪은 일이었다. 꿈 이야기를 듣고 난 선사가 부부에게 말하였다. “오늘부터 열 달이 지난 모일 모시에 소승이 다시 한 번 이 곳을 찾을 터인 즉 그때 소승이 주인장께 청을 하나 드릴 것입니다. 주인장은 그 때 가서 소승이 드리는 청을 절대로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이 자리에서 미리 약조해 주셔야겠습니다.” 주인 남자는 세상이 밑도 끝도 없는 선사의 말이 몹시도 의아스러웠지만 그러나 도통한 선사의 말이니 거절할 수도 없어 일단은 승낙하고 말았다.그로부터 꼭 열 달이 지난 어느 날 이 집의 부인이 해산을 하여 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 날 약속한 시각에 또 어김없이 선사가 찾아와서 말했다. “이 아이는 액이 있어 이집에 있으면 멀지 않아 죽게 됩니다. 그러니 소승이 데려가 길러야 하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주인 부부는 먼저 번의 약속도 있고, 더구나 아이가 머지않아 죽을 것이라는 선사의 말에 하는 수 없이 아이를 건네주고 말았다.선사를 따라간 아이는 절에서 공부하며 열심히 무예를 닦았다. 이 아이는 매우 총명할 뿐 아니라 용맹이 뛰어나 어릴 때부터 보통 아이들과는 우선 행동부터가 판이하게 달랐다. 선사가 아이의 거동을 유심히 보았더니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반드시 왼손 주먹을 꼭 쥐고 있는 버릇이 있었다. 이 버릇은 밖에 나가 놀 적에도 그랬거니와 심지어 잠 잘 적에도 꼭 왼손 주먹은 펴지를 않았다.어느 날 밤 선사가 아이가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왼손 주먹을 펴보았는데 펴보는 순간 그만 깜짝 놀라 뒤로 물러앉고 말았다. 아이의 손금에 임금 왕(王)자의 글자 무늬가 너무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사가 미처 정신을 차라기도 전에 아이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절간이 떠나갈 듯 일갈을 하였다. “에잇! 이 요사스런 중놈아!”그와 동시에 아이의 왼손바닥이 날라와 선사의 따귀를 때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는 절간을 뛰쳐나가 행방을 감추어 버렸다. “내 여태 감추고 있던 비밀을 어느새 네놈이 눈치를 챘구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내가 이 곳을 떠날 수밖에.” 뒷날 이 아이가 중국으로 가 천자가 되었다 하며, 그런 연유로 부부가 살던 뒷산 봉우리를 천자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천자봉 강철(江鐵)진해시 장천동 뒤편에 천자봉이 있다. 이 천자봉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옛날 천자봉에는 못이 있었고, 그 못에는 용이 못된 강철이 살고 있었다. 강철은 언제나 인가에 내려와서 주민들을 괴롭히고 가축을 해쳤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항상 불안 속에 살고 있었다. 이것을 안 염라대왕은 사자를 보내어 등천화룡도 되지 못하면서 못된 짓만 하는 강철)을 잡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워낙 사나운 강철인지라 사자가 잡아오지 못하였다. 염라대왕이 노하여 사자에게 기어이 데려오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강철을 사로잡아 갈 수 없다고 판단한 사자가 강철을 꾀었다.“용이 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죽어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대국의 천자가 되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 말을 들은 강철은 그 말에 응해 스스로 바위에 머리를 부딪혀 죽고 말았다. 강철이 죽자 죽은 강철의 입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나와 천자봉 아래에 있던 백일마읠 주씨 집으로 날아 들어갔다.그런 일이 있은 후 주씨 부인은 잉태를 하게 되었고, 열 달 후에는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입산수도 생활을 하였는데 머리가 영특하고 느는 것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무술놀이를 즐겼고 언제나 장수노릇을 하였다. 그런데 그 아이는 언제나 왼손을 쥐고 있었다. 놀이를 할 때나 잠을 잘 때나 왼손 주먹만은 펴지 않았다.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동무들이 그가 잠자는 틈에 그의 왼손을 펴보았다. 그 아이의 왼손 바닥에는 대명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잠을 깬 그 아이는 같이 놀던 아이들을 죽여 버리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그 후 그 아이는 명나라에 가서 계속 무술을 닦아 명태조 주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천자봉 아래에 있는 넓은 평지를 마당재라고 하는데 주천자가 어릴 때 무술을 닦고 전쟁놀이를 하던 장소라 하여, 그가 태어난 집의 오른쪽에 있는 산등성이를 장군목이라고 한다.천자봉 명당옛날 함경도 땅에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하인 한 사람을 데리고 자기 선대의 묘 자리를 찾아서 팔도강산을 두루 섭렵하고 이었다. 그들의 발길은 함경도를 떠나 강원도 땅을 거쳐서 경상도를 헤매다가 마침내 이 곳 곰내 웅천마을에 이르게 되었다.천자봉 꼭대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던 이씨의 눈에 광채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애써 전국을 헤매며 찾아다니던 명당이 바로 그 곳 이였기 때문이다. 그 곳에 있는 시루바위에는 구멍이 둘 있었다. 첫째 구멍에 묘를 쓰면 자손 가운데 왕이 나올 것이고, 둘째 구멍에 묘를 쓰면 천자가 나올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는 즉시 데리고 온 하인에게 자기 선대의 묘를 이 곳 둘째 구멍에 쓰도록 일렀다. 그런데 주인의 분부를 받은 하인은 이 때 그만 슬그머니 딴 욕심이 생겼다. 그의 소견에 주인이 지적한 그 둘째 구멍이 아주 엄청난 명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 하인은 감쪽같이 이씨의 선대 묘를 첫째 구멍에 쓰고, 자기 선대의 묘를 둘째 구멍에 썼다.세월이 흘러서 과연 두 집안에서는 비범한 인재가 났으니 이씨 가문에서는 이성계라는 인물이 나서 뒤에 조선을 개국하여 태조가 되었다. 또한 그 때의 하인 집안에서도 인물이 났으니 그가 바로 명나라의 천자가 된 주원장이라고 한다.2. 입사식입사식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 창조를 전제로 한 이전의 세계 카오스에서 창조 이후의 코스모스 세계로의 전이를 말한다. 이것을 입사식이라 한다. 이야기는 세계의 이해를 밝히기 위해 고대인의 사고로 마들어 낸 천지재창조 유형의 이야기이다. 천지재창조 이야기의 유형으로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가 대표적이라 하겠다.이 설화의 주인공은 아이이며, 선사는 주인공의 입사식을 성공시키기 위한 인물이다. 선사는 밤중에 만나는 호랑이를 이상하게 여겨 지팡이로 머리를 치니 흰나비로 변하여 새벽녘에 산봉우리에 앉는다. 여기서 밤중은 혼돈의 세계, 즉 천지창조 이전의 세계로 대비된다. 선사가 호랑이와 결합하는 순간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고, 이는 새벽에 이루어진다. 카오스의 상태에서 코스모스로의 전이가 이루어 진 것이다.여타 설화와 기본적인 구조는 같지만 여기서 이야기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흰나비가 앉은 산봉우리에서 사내아이가 한 명 태어난다. 이 아이는 액운이 있어 여기서 살면 안 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래서 아이는 절로 내려간다. 아이는 다른 인물과는 차별되는 신화적 주인공이다. 왼손을 절대 펴지 않으며, 총명하고 무예에 뛰어나다는 것이 다른 인물과는 차별되는 신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아이라는 장치도 인물의 비범함을 드러내는 장치라 할 수 있겠다.선사가 아이의 왼손을 펴보았을 때 아이는 입사식에 성공한다. 그리고 중국의 천자가 된다.천자봉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지어졌다고 한다.3. 인물에서 등장하는 아이는 새로운 질서를 재창조하는 주인공이다. 신화의 주인공은 평범한 인물과는 다르게 신이성을 띄고 있다. 이 설화에서도 아이로 등장, 왼손을 펴지 않고 잘 때도 쥐고 있는 특성, 총명하며, 용맹하고 무예에 뛰어나다. 이는 주인공이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비범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