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와 재미 가 비교적 쉽게 결합될 수 있는 것이라면 지식과 재미 는 도무지 함께 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일반론을 뒤집어 놓는 빼어난 책이다.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라는 책은 아담 스미스에서 시작되어 최근의 학설에 이르는 분량에 비하여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각각의 학자와 학설을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하지만 아직 경제학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충분한 지식적 즐거움을 만끽하도록 해준다.인간의 욕망은 무한한데 이를 충족시켜 줄 재화나 용역은 희소하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희소한 자원으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에 대해 연구한다. 즉 무엇을 얼마만큼 생산할 것인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누구를 위하여 생산할 것인가? 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개개의 소비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도의 자금 내에서 최적의 재화를 선택하기 위한 효율극대화를 추구하고, 기업은 최소의 비용을 들여 이윤을 극대화시키려 하며 이러한 두 조건이 상충되는 곳에서 기업의 공급과 소비자의 수요가 일치하여 균형가격이 설정되고 시장이 형성되어 거래가 이루어진다.이러한 경제이론을 우리는 미시경제학이다 거시경제학이다 하며 어려운 학문으로 접하고 딱딱하게 접하였다. 경제는 우리의 삶 자체이지만 어려운 논리들 앞에서 우리는 경제에 대한 흥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토드 부크홀츠(Todd G. Buckholz)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우리에게 경제학의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그가 하버드대학에서 교수시절 학생투표에 의한 최우수 강의상(Allyn Young Prizes)을 받았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 당연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어려운 경제학을 도표나 그래프 없이 모두 서술적인 옛날 이야기 형식으로 늘어놓은 점은 무척 돋보였다. 그 속에서 그의 위트와 재치 그리고 해박한 경제학적 지식을 독자들에게 더 쉽게 알리기 위해 들었던 예들은 우리를 일깨우기에 충분했다.리에 집착해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초자아' 개념도 스미스의 '공명정대한 관찰자' 개념의 연장에 불과한 것이다.프랑스에서 중농주의라 불리는 경제학파를 접한다. 중농주의자들은 두 가지 사실을 역설했다. 첫째, 부란 중상주의자들이 주장하듯 금은(화폐)의 획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서 나오는 것이다. 둘째, 농업만이 부를 창출해 낼 뿐 상공업을 비롯한 기타 산업은 가치생산을 해낼 수 없다. 제조업자들은 투입한 것만큼의 가치를 산출해 낼뿐이고 상인들은 이미 생산된 가치를 분배할 뿐이다.1776년 스미스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쓰기 시작했던 책 [국부론]이 드디어 출판되었다.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노동을 경제성장의 엔진으로 보았고 이 엔진은 1)노동력의 공급이 증가하거나 2)노동이 분화되거나 3)신기계 도입으로 노동력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질 때 가속된다고 주장했다. 투자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들과 발명이 잇달아 등장하고 자유로운 상거래가 허용될 때 경제는 질주해 나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소득은 일반 서민들이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스미스는 분업이 생산량 증대에 크나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첫째, 노동자들은 맡은 일을 더 숙달할 수 있다. 둘째, 노동자들의 작업전환 시 소요되는 시간을 없앨 수 있다. 셋째, 전문화된 노동자들이 매일 같은 작업을 되풀이하다 보면 작업능률을 엄청나게 향상시킬 수 있는 공구나 기계를 고안해 낼 가능성이 높다.이와 더불어 분업은 직종간의 임금격차 발생의 주원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 이유는 1)어떤 직종은 불유쾌하거나 위험한 작업환경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임금을 높게 책정, 그 작업환경에 대한 보상을 해 주지 않으면 아무도 그 직업에 종사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2)특수한 교육을 요하는 직종은 임금수준이 높다. 3)불규칙적이거나 불안정한 직종은 임금수준이 높다. 4)높은 신용수준이 요구될 때 임금은 올라간다. 5)성공률이 낮은 일일수록 성공했을 때 . 모든 세상만물에는 양과 음이 있다. 낙관론이 있으면 회의론도 있게 마련이고 너무 낙관적인 태도만을 고집할 경우의 해악도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상은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질 때 아름다운 것이니까!Ⅲ. 기회비용과 비교우위 - 데이비드 리카도의 자유무역론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806 ∼ 1873 )는 1772년 유태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4살의 나이로 아버지의 일터에 뛰어들어 20대 중반에 증권, 채권, 부동산 등의 유효 적절한 투자를 통해 대기업을 경영하게 되었다.데이비드 리카도는 대학문턱에도 못 가봤지만 그 어떤 학자들보다 탁월한 능력으로 경제이론을 파고들었다. 그는 금융시장에 대한 정식 교육을 받은 바 없었지만 증권시장에서 수백만 파운드를 벌었다.리카도는 무역상대국의 생산능력이나 기술에 상관없이 자유무역은 두 나라에게 이롭다고 했다. 절대 우위는 국가간의 비교개념이지만 비교우위는 한 국가 내 산업끼리 비교한 개념이기 때문에 절대우위 산업이 하나도 없는 국가라 할지라도 비교우위 산업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각국은 비교우위 산업에 주력해서 세계가 분업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리카도의 주장이었다.무역의 문이 활짝 열리면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국가경쟁력이 낮은 산업을 포기하고 경쟁력이 낮은 산업을 포기하고 경쟁력이 높은 산업을 취하게 되어 산업구조의 개편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개편이 이루어진 국가의 국민들은 더 적게 일하고 더 적게 희생하면서도 더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게 된다.산업구조의 개편에는 당연히 고통이 따른다. 경쟁력이 약한 산업분야의 공장들은 문을 닫게 되고 실업자는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손해는 보호무역이 소비자들에게 기치는 해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정부로서는 차라리 수입을 개방하고, 이에 따라 발생한 국내 실직자들에게 연금을 주면서 새로운 산업 분야의 기술교육을 시키는 편이 낫다. 실업자 발생을 우려해 보호무역을 편다면, 그 국가의 기술이 낙후되고 생활수준이 침체될 것은 뻔하다. 리카도는 또한 밀은 누진세율이 노동의욕을 저하시킬 것을 염려하여 비례세율을 지지했다.그는 상속세에 대한 평가에서도 부모에게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자녀들은 그렇지 못한 자녀들에 비해 불공평하게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그들은 사회를 위해 더 많은 부를 창출하기보다는 부모에게서 받은 부에 안주할 가능성이 많다고 평가했다.그리고 생활보조금이 너무 쉽사리 제공될 경우 노동의욕이 없는 세대들이 빈민층에서 양산될 것을 두려워했다. 보조금의 증가는 출산율까지 증가시키므로 극빈자들도 공립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밀은 자유방임과 정부개입의 중립에 있었다. 밀은 국가의 후생사업보다는 자선사업을 강조했지만 스스로의 비용을 분담하지 않고 남의 부담으로 생산된 공공재에 편승하여 누리는 혜택인 무임승차효과 때문에 시장의 실패{시장의 실패 : 시장의 가격기구를 통해서 최적한 자원배분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 즉 자유방임의 원리가 먹혀들지 않으므로 정부는 과세(누진세)를 이용해 빈민을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파레토 효율이 달성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밀은 "나는 사회주의자들의 가장 두드러지고 열성적인 가르침이라 할 경쟁의 폐지에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했다. 그는 정당한 경쟁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았다. 모두가 잘사는 사회 그러나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끊임없는 선의의 경쟁 속에서만 가능하다. 경쟁이 없는 1인자는 무기력해지고 나태해지며 독선자가 되어버린다. 그러한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Ⅴ. 프롤레타리아 혁명 - 카를 마르크스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는 1818년 라인란트의 한 작은 도시 트리에라는 곳에서 부르주아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합리주의와 낭만주의를 두루 섭렵했으며 본 대학시절 방탕한 삶을 살았고 기자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그가 1850년대 런던 대영 박물관의 경제학 서적들에 파묻혀 지내면서 프롤레타리아의 비참함에 대한 난해한 분석을 거듭하는 동안 그의 가족들은 비참하게 굶주렸고 3명의 아이들을 잃었다. 그가 가족을 수요, 공급에 있어 탄력적 관계를 제시하였으며 거시 경제학에 있어서도 명목 이자율과 실질 이자율을 구분하며 경제학의 실용성과 실질적인 효과를 제시하였다.밀의 일생과 깨끗하게 대조되는 마셜의 일생은 한계정신과 더불어 당시의 지적 조류를 멋지게 반영한다. 마셜은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는 증가한다. 이는 소비자가 한계효용과 한계비용을 비교해서 상품구매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격변동에 따른 수요변동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하향 수요곡선이 탄생된다.'는 이러한 한계효용 분석을 토대로 수요의 법칙을 발표했다.또한 수요를 설명함에 있어 마셜은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인 탄력성의 개념을 개량 발전시켰다.마셜은 거시경제학적 문제들은 깊이 연구하지 않았고 세이의 법칙{세이의 법칙 : 공급이 스스로 그 자신의 수요를 창출한다는 법칙. 즉, 어떤 수준의 GNP에서든지 그 GNP를 구성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소득은 반드시 모두 지출될 것이므로 이 지출액은 경제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데 충분할 것이다. 따라서 일부 생산물시장에서 초과공급이 생긴다 하더라도 이것은 다른 시장에서의 초과수요를 의미하므로 경제전체로 볼 때 총 공급은 총수요와 항상 일치하게 된다.}과 화폐 수량설을 신봉했으며 경제학이 실용적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한다. 그는 빈민을 위해 경제학의 길을 걸었지만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마셜은 케임브리지의 교수로 재직하며 82세에 작고했다. 그의 제자인 케인즈는 대 경제학자라면 마셜처럼 수학자이며 정치가에다 철학자이어야 한다고 했다.Ⅶ. 케인즈1883년 빅토리아 왕조풍의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는 아버지가 저명한 논리학자이며 경제학자였고 어머니는 케임브리지 시의 시장을 역임한 아주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이튼스쿨과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왔으며 수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그가 살던 당시는 세계 각국이 대공황을 맞아 절망에 빠졌던 시기였다. 이러한 대공황의 시기가 케인즈 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