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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사 평가A좋아요
    ◀바로크 음악▶바로크라는 시대양식개념은 본래 미술사 분야에서 일어나 그 후 음악사 분야로 이행되었다. 그 최초의 시도는 1920년의 C.작스의 논문이다. 이 무렵부터 음악사에도 적용되어 일반화하였다. H.리만처럼 이 시대를 통주저음(通奏低音)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로크 음악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재인식되었으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나라에서 지지자가 생겼다.♧일반적 특징 : 1세기 반의 역사 속에서 바로크음악은 가지각색으로 변화하였다. 나라에 따라서도 각기 다른 양식을 만들어냈지만, 앞의 르네상스 시대나 후의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과 비교하면 먼저 그 어느 쪽에도 없는 통주저음의 존재가 바로크음악을 특징짓는 요소로서 떠오른다. 최저성부(最低聲部)가 그 악곡 전체의 화음을 뒷받침하는 기능을 지닌 이 기법은 오르간·쳄발로음악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 사용되었다. 바로크음악의 독특한 울림은 확고한 베이스의 선(線)과 그 위에 전개되는 상성부의 선율성이라고 하는 양외성부(兩外聲部最高와 最低聲部)의 강조에 의거한다.1) 안토니오 비발디 (Antonio Vivaldi, 1678~1741] - 주요작품⇒"사계" [1725], "올란도 핀토 파쪼" [1724], "귀스티노" [1724], "그리셀다" [1735], "충실한 목동" [1737], "바이올린 콘체르토", "적장 홀로페르네스에게 승리하고 돌아오는 유다"2)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 - 주요작품⇒"알미라" [1705], "리날도" [1711], "메시아" [1742], "요한수난곡" [1724], "수상음악" [1717], "하프시코드모음곡" 등등...3) 요한 세바스찬 바하 (Johann Sebastisn Bach, 1585~1750] - 주요작품⇒"마태수난곡" [1727],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1734], "커피 칸타타" [1735],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1번~6번" [1721], "토카타와 푸가 d단조", "골드베르그 변주이든 이후를 빈 고전파음악이라고 할 때도 있다. 이 시대를 고전파음악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당시의 음악이 정연한 형식을 존중하고 균형감을 주체로 하는 유형을 지켰기 때문이다. 고전파의 어원에 해당하는 라틴어 classicus는 계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문학에서는 모범적이고 영속적이며 고대 그리스·로마 사람들의 미적 이상을 추구한 것을 가리킨다. 이 미의 이상이란 형식의 조화와 유형을 존중하는 것이다.바로크시대의 음악에서 다음의 고전파음악에 걸쳐, 음악의 창작이나 연주의 기초를 이루는 사회적인 체제가 변화하였다. 시민을 위한 음악적인 시설이 생기고 공개연주회가 열리기 시작했으며, 음악가들은 궁정이나 교회에의 봉사를 지양하여 대중과 음악적 대화를 교류하기에 이르렀다. 1725년 프랑스의 작곡가 필리도르는 파리의 궁전에서 콩세르 스피리튀엘이라는 공개연주회를 가졌다. 이것이 오늘날의 연주회의 시초인데, 이를 위해서는 그때까지는 왕의 허가가 필요하였다.독일에서는 1722년 라이프치히에서 텔레만에 의하여 콜레기움 무지쿰(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연주단체)이 결성되어 시민에게 음악을 해방시켰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독일 내의 다른 도시나 이탈리아·영국 등지에서도 볼 수 있는데, 절대주의적인 왕권을 대신해서 시민계급이 문화를 담당함에 따라, 공개연주회의 원칙이 확립되기에 이른 것이다.이와 함께 고전파의 소나타가 크게 발전하였다. 바로크시대에도 3·4악장의 소나타 형식은 있었으나 각 악장은 보통 단 하나의 기본 주제를 가지고, 그 주제가 악장의 기분·템포·리듬을 규정하고 있었다. 로코코시대에서 전 고전파 시대에 걸쳐, 사람들은 감정의 움직임이나 다이내믹한 마음의 움직임을 차라리 자연에서 느끼게 되어, 그 결과 한 악장 속에서도 성격적으로 대비되는 주제가 채택되어 다이나믹스한 리듬·음색 등의 대비가 이에 결부되었다. 다만 고전파 소나타의 특색은 추이(推移)와 대비의 요소가 다시금 높은 조화와 통일감에 싸여 있다는 점인데, 이와 같은 유기적인 조성과 이상적인 형체감로는 고대 조각과 같은 통일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글루크의 만년의 오페라에서 볼 수가 있다.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성숙기에서 베토벤의 중기에 걸친 작풍은 바로 고전양식의 전형이었다. 하이든은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지공(公) 밑에서,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밑에서 음악 경력을 쌓기 시작하였다. 모차르트가 25세 때 빈으로 옮긴 후, 이 두 사람은 친교를 두터이 하여 빈 고전파의 봉우리를 쌓아올렸다. 하이든의 공적은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음악활동을 통해서 고전파의 소나타·현악4중주·교향곡의 형식을 확립한 데 있는데, 만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헨델의 오라토리오를 듣고 감동, 최후의 노력을 ≪천지창조≫, ≪사계(四季)≫의 오라토리오에 기울였다.모차르트는 놀랄 정도로 다재다능하고, 또 적응력이 강한 작곡가였다. 그는 각국을 여행하고, 당시 음악의 모든 형식과 양식을 흡수하여 그것을 자신의 창조적인 개성 속에 받아들여 양식적으로 완성하였다. 교향곡·협주곡·실내악곡·오페라·종교음악 등 모든 분야의 명작 중 그의 다방면에 걸친 재능을 특히 잘 나타낸 것은 오페라이다.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는 달리 베토벤은 처음부터 독립된 인격으로서 출발하였다. 그는 궁정악장이나 작곡가 등의 직함을 바라지 않고, 빈의 귀족계급과 대등하게 교제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마음으로부터 마음으로'의 대화이고, 새로운 창조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일이었다. 그의 음악의 배후에는 당시 세상을 움직이던 프랑스의 혁명정신과 계몽주의에 유도된 새로운 시민계급의 윤리가 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베토벤의 창작은 한 시기마다 새로운 과제를 자신에게 부과하여, 그것을 해결하여 완성시키는 방법을 취하였다. 교향곡 ≪제3번 영웅≫, ≪제5번 운명≫, ≪제6번 전원≫, ≪피아노소나타 작품 57 열정≫ 등을 포함한 중기의 작품이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데, 한층 초월적인 세계의 신비를 보여주는 만년의 ≪피아노소나타≫나 ≪현악 4중주≫ 등도 이것들에 뒤지지 않는 걸작이다. 이리하여 고전파음악은 단음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 형식에서 소나타·교향곡·협주곡·실내악이 태어나게 되었다. 화성(和聲)은 온음계적이고 명징(明澄)하며, 리듬은 명확하다. 음악은 그 때문에 투명하다.이러한 고전파음악은 물론 그 이전의 바로크음악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것이지만, 또 당시의 사회정세나 문학, 기타 문화로부터의 자극에 의한 것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바흐의 아들들의 단순하고 간명함을 추구한 태도와, 만하임악파의 솔직하고 보편적인 효과를 추구한 태도가 시류와 일치하여, 고전파음악을 발전시켜 하이든과 모차르트에게로 이어지고, 베토벤에 이르러 정점(頂點)에 도달하였다.1)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Antonio Vivaldi, 1678~1741] - 주요작품⇒교향곡 6번 D장조 "아침" [1761], 교향곡 45번 F#장조 "고별" [1772], 교향곡 94번 G장조 "놀람" [1791], 교향곡 101번 D장조 "시계" [1794], "천지창조" [1798], "황제 4중주곡"2)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Wolfgang Amadeus Morzart, 1756~1791] - 주요작품⇒"피가로의 결혼" [1786], "돈 조반니" [1787], "마적" [1791], "41번 쥬피터 교향곡" [1788], "진혼곡" [1791,미완성], "호른 협주곡 3번", "대관식" [1779]3) 루드비히 반 베에토벤 (Ludwing van Beethoven, 1770~1827] - 주요작품⇒교향곡 제3번 "영웅" [1803], 교향곡 제5번 "운명" [1808], 교향곡 제6번 "전원" [1808], 교향곡 제9번 "합창" [1824], 피델리오 [1805], 피아노 소나타 "비창", 피아노 소나타 "월광"◀낭만파 음악▶낭만주의 음악이라고도 한다. 그 초기는 고전파의 말기와 겹치며 그 말기는 근대음악의 발단과 겹친다. 일반 역사의 시대 구분으로는 프랑스혁명으로부터 19세기말의 제국주의적 경향이 성행했던 시기로 잡는 것이 보통인데, 이 약 100년간은 인류 발전상 극히 주목할극히 주관주의적 경향을 띠게 됨으로써 일어난 것으로, 그 결과 지나친 개성의 편중을 초래하여 갖가지 분열을 일으키게 되었다. 또한 개성의 편중경향이 짙어지자, 정열의 연소현상이 일어나 거기에서 공상의 세계가 펼쳐지게 되었다. 이성을 부정한 정열의 세계가 병적인 것이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로서, 그 결과 불건전한 데카당스로까지 빠지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성의 분열이며, 그로 인해 고전주의 음악의 바탕인 전인성(全人性)까지도 완전히 붕괴되었다.개인주의적 경향과 함께 낭만파 음악의 바탕이 된 또 하나의 사조는 국민주의이다. 국민주의가 가장 강렬했던 나라는 독일인데, 그것은 나폴레옹의 압박에 대한 반항에서 일어났다. 즉, 나폴레옹의 세계 정복에 대한 반발에서 국민성에 눈뜨고 국민주의를 강화하게 되었다. 이 국민주의는 유럽 각국으로 확산되고, 특히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국민주의는 범슬라브 민족운동에 뿌리를 박은 강력한 것으로서, 그 음악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또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의 패배로 프랑스에서도 새로운 국민음악운동이 일어났으며, 이에 의해서 프랑스는 근대음악에서의 지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국민주의의 발전과 함께 세계 각국에는 국민음악이 새로 생겨나 화려한 음악의 꽃을 피웠다. 음악상에 나타난 국민주의는 먼저 모국어의 존중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것은 낭만파 음악에 대한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여, 특히 모국어에 의한 문학과의 결합은 음악에서 다시없는 큰 힘이 되었다.여기에서 몇 가지 새로운 음악이 생겨났는데, 특히 가곡·오페라·교향시를 중심으로 한 표제음악의 3자는 그 가장 뚜렷한 예이다. 문학과의 결합이라는 것은 음악이 음 자체의 결합에 의해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음의 말로써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입장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데서 극 또는 극적 구성이라는 것이 낭만파 음악의 본질적인 것을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오페라뿐만 아니라 교향시에서도 극적 구성은 그 밑바닥을 흐르고 있다. 가곡분야에서도 발라드와 같은 극적 구성을 가진 것이 나.
    예체능| 2001.12.04| 5페이지| 무료| 조회(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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