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교의 시발점종교는 '초월적인 것'에 관심을 두며, 그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관계와 태도에 관한 것이며, '초월적인 것'이 인간의 삶을 위해 실제적으로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가에 관심을 둔다. 인간들은 그들 자신의 생존을 보호하기 위해서 환경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데, 그 환경에 적응하거나 또는 그 환경을 정복 통제하거나 해야 한다. 문화와 더불어 인류사회는 인간 생존의 단위이며, 때때로 사회는 그 자체의 존속을 위하여 그 사회의 일부 구성원의 죽음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는 인간의 오성으로도 이성으로도 순응시킬 수 없었다. 다만 신앙으로써 믿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이 있다는 그 믿음. 그것이 종교의 시초이다. 그러면, "왜 인간들은 '경험을 초월하는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가?" 즉, " '초월적 관계'를 인간은 왜 필요로 하는가?" "왜 사회는 그것을 구현하고 유지할 그러한 신앙과 의식과 제도들을 필요로 하는가?" 하는 물음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첫째, 인간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살아간다. 안전과 복지에 대한 중요한 의미의 사건들은 인간의 예측을 초월한다. 달리 말하면 인간의 실존은 우연성에 의해 특징 지어진다.둘째, 삶의 조건들을 통제하고 영향을 주는 인간의 능력은 비록 증대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어느 점에서 인간의 상황은 그의 욕구와 그의 환경 사이에서의 알력에 대해서 무력성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셋째,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기능과 편의와 보상이 질서 있게 배열된 곳이다. 사회는 노동의 분배와 생산의 분배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사회는 절실한 조화를 요청하는데, 즉 인간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지배와 복종을 요구한다.이처럼, 종교의 역할을 우연성과 무력성 그리고 결핍성 (그리고 결과적으로 좌절과 상실 ) 의 세 가지 냉혹한 사실에 인간이 순응하도록 보조해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2. 종교의 본질종교는 그 수가 많으므로 그 형태나 내용에 있어 천차만별이것이다.과거에 있어서는 종교의 목적을 내세, 즉 이 세계와 다른 죽은 후의 세계에 두는 경향이 강하였다. 기독교에서 천국과 지옥을 말하는 것이라든가, 불교에서 극락 세계와 지옥을 말하여 내세의 생활을 믿게 한 것은 모두 목적을 내세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내세를 믿는 경향이 적어지고 종교의 목적을 현세에다 두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지상에다가 천국을 건설한다 든 가 현실 세계에서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본래 종교는 현실 세계에 불만이 많고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경우에 빠진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식의 발달과 인간의 힘이 점점 강하여지는 데 따라 내세에 대한 믿음은 약하여 지고 인간의 힘으로 이상 세계를 건설하려고 함에 따라 종교의 목적도 이런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종교의 목적을 개인에 두느냐 사회에 두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같은 문제라고 생각되나 종교에 따라 개인을 강조하는 종교도 있고, 집단적 구원을 강조하는 종교도 있다.그러나 현대의 개인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따라 종교에 있어서도 개인의 종교의식 및 종교체험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우세하여졌다. 개인을 떠나 사회가 있을 수 없듯이 하나 하나의 신자를 떠나 종교는 성립될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 반면에 무교회주의도 있으나 대다수의 종교는 교회의 의미를 강조하여 사회 생활의 양식으로서의 교회의 사명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종교는 예술, 정치, 산업의 발달 등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종교의 목적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란 인간의 살려는 의지에 근거한 것으로, 어떻게 하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리고 현세뿐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그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생은 유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생의 의욕을 느끼게 한다. 사람 누구나 영화를 누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인데 자연의 우리의 생을 위협하며 사회그리하여 성서의 默示錄에 나타난 사상을 그대로 믿었고 말세니 千年王國이니 하는 사상이 유행되었다. 최후의 심판이며 유황불이 펄펄 붙고 있는 지옥의 설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일으켜 양심을 깨우쳤다.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에서도 閻羅大王이 사는 閻羅國이니 地獄이니 하여 죄를 짓는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또한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하며, 불교에서는 불교를 믿으면 極樂世界로 간다고 말한다.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골똘한 신자가 아니고서는 그러한 사후의 세계를 믿는 사람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믿는 것은 자유이니까 그것에 대하여 贊否를 가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知性이 발달되어 理致로 보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믿지 않으면서 믿는 척하는 二重生活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그러므로 사후의 세계의 문제도 현실 세계에 연결시켜 생각하여야 될 줄로 생각한다. 사후의 세계를 문자 그대로 죽은 후에 가는 세계로 해석하지 말고 來世, 즉 미래의 세계로 해석하여 앞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이상 세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상 세계는 우리가 이상 하는 세계로 완전하고 행복한 세계일 것은 물론이다. 우리는 그러한 세계를 실현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세워 실천에 옮기어 그 세계에 도달되도록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실현되리라 믿는다.세 번째의 문제로 죽음의 문제이다. 그것은 죽음을 自然現象이라고 보고 生殖의 현상으로써 영생의 문제를 대치시킬 수 있다고 보면 그만일 것이다. 만일 그것으로서 만족할 수 없다면 과학의 발전을 기다려 늙고 병드는 것을 막거나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여 죽지 아니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일밖에 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생명의 연장은 누구나 요구하는 것으로, 과학의 최고의 목표의 하나도 그것이므로 과학의 조속한 발달만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외의 방법은 체념이나 신앙에 의한 위안의 길밖에 없을 것이다.네 번째로 종교에 있어서의 독단성, 비과학성, 신비성 등의 문제이다. 이러한 것개인의 인생행로에 관련한다. 종교는 불확실성에 있을 때 지원을 해 주고, 실망하고 좌절할 때에 위로를 해준다. 또한 종교는 개인의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것을 도와준다.* 종교의 부정적 역할1) 종교는 감정을 위로하는 조치와 화해를 가져오는 역할로 인하여 역기능이 될 수 있다. 좌절과 박탈을 당한 사람들과 사회질서 안에서 아무 이권이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또한 사회에서 소외당한 자들을 위해 화해를 함으로써 종교는 항거를 억제하고 사회와 구성원들의 복지를 위하여 유익하다고 판단된 사회 변화에 방해를 주는 세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2) 초월 자와 관계를 맺어 사제적 기능을 시행하는데 있어서 종교는 국한된 생각과 국부적인 편파 심을 신성화시킴으로써 환경에 대한 사회의 지식이라든가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저지한다. 예를 들자면, 갈릴레이가 주장한 지동설을 범죄로 재판한 것은 그 당시의 종교와 과학 사이의 오랜 갈등이다. 이런 경우는 사제 적인 기능이 지속적인 사회 안정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쇠퇴를 가져오게 한다.3) 사회의 규범과 가치를 신성화하는 데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행동 규범이 변화된 상황에서 그 이상 타당성이 없을지라도 종교는 이를 영원한 뜻이 있는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종교는 변화하는 상황에 보다 잘 적응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4) 종교가 기존질서에 대한 비판과 반대의 근거와 합리화를 제공하는데 있어서 성서의 종교는 매우 중요한데, 예언자적 기능은 서양의 민주사회 발전의 중요한 도구로 되어왔다. 그러나, 이런 기능도 역기능의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다. 예언자적 기능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본래 문제를 흐리게 할 수도 있다.5) 정체성의 기능에 관하여 종교는 인간이 처해 있는 새로운 상황에 합당한 새로운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데 지장을 주는 신봉의 대상으로 될 수도 있다. 종교의 정체성은 인간사회를 분열시키기도 한다. 즉, 반대자와의 타협을 거절하는 인간성을 마음속에 뿌리깊게 만들 수도 있다.6있을지 모르겠지만 현대인들이 불교에서의 엄격한 규율을 지켜가면서 생활하기에는 매우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인들의 종교는 적어도 그 종교의 정신만을 깊숙이 새겨 생활에 실천하는 정도일 것이다. 모든 이들이 불경에서의 부처님 말씀을 다 따르기가 힘들고 기독교에서 성경에 나오는 예수 님의 말씀을 모두 실천하기는 물론 힘이 들것이다. 단지 그 정신만을 우리가 마음에 새길 뿐이다. 우리 현대인들은 이러한 불교나 기독교의 정신을 가지고 마음의 수양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개인의 종교에 대한 그 믿음이 확고하고 그 종교에 대한 믿음이 생활에 철저하게 실천될 때 그 사람은 흐트러지지 않은 그 사람 본연으로 돌아가 이 혼란의 시대를 앞으로도 계속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이다.그럼 본격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종교(관)에 대하여 말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종교를 가지는 이유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지침서이거나 가치관의 역할을 하며 그 이상의 경지에서의 역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회의 한 문화로서 그 나라 국민의 질서를 유지) - 각 개인의 삶의 길을 위하는 것이라 했다. 현대인은 앞으로의 자기 삶을 위해 신조나 믿음이 하나씩 있고 거기에 의존하려 한다. 이것이 간단하게나마 현대인의 종교라 정의를 내리고 싶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수명이 다하여 죽게 된다. 이렇게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우리는 삶이라 보고 그 삶을 가치 있게 보내려 할 것이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엇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로 제시된다. 세상에 태어나 뭔가 자기가 살아가는 사회에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길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해 나름대로 신조, 믿음, 좌우명을 만든다. 예를 들어 '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일에 정직할 것이다.', '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항상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것이다.', '사회 생활에서 많은 동료를 사귀어 인맥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