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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음악의 이해
    목차1. 러시아 음악의 시기별 배경2. 러시아 음악의 종류와 각 특징3. 러시아 음악의 고유한 색깔이자 큰 특징인 ‘민족주의’ 음악에 대하여4. 결론1. 러시아 음악의 시기별 배경러시아의 음악은 크게 5시기로 나뉜다.1.제 1 기-러시아 음악의 자족시대 (~1600)제1기는 16세기 말까지 러시아가 문화적 정치적으로 서유럽으로부터 고립하여 동유럽 독자적으로 미술이나 음악의 전통을 키우게 된 사실에 바탕을 두어 구분되고 있다. 고세크 , 르네상스 및 초기 바로크 양식의 예술음악이 서유럽에서 발전하는 동안 러시아음악은 주로 교회음악과 민족음악이라는 두가지 전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오랫동안 아무런 방해받음 없이 러시아 음악을 계속 지배해온 교회음악과 민족음악은 후에 러시아 예술음악의 소리나 19세기 러시아 음악의 활발한 민족주의에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의 서양음악 기법을 지향하는 보수적 자세를 지향하는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2.제 2 기-황제를 통한 서양음악과의 접촉시대 (1600~1750)제 2기의 특징은 러시아가 점차 고립상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표도르대제의 치하에서의 음악개혁에는 바로크의 수법과 합창 찬가의 도입이 포함된다.3.제 3 기-서양음악이 러시아 음악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친 시대 (1750~1800)제 3기는 러시아의 광대한 영토의 확장과 유럽대륙의 강국으로서의 성장배경도 염두에 두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시기의 특징은 음악의 모든 분야-오페라, 기악곡, 건반악곡, 예술가곡-에 걸쳐서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러시아의 농민과 소시민의 생활을 묘사한 많은 오페라들이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4. 제 4 기- 러시아가 낳은 발레와 예술가곡의 시대 (1800~1850)제 4기에 이르자 러시아는 유럽제국을 뛰어 넘어 독자적인 음악어법을 만들어 냈다. 대다수의 오페라작곡가는 교양인 계층에 속해 있었는데 오페라의 대본은 푸쉬킨.고골리.체호프 등의 러시아문학작품에서 찾았다. 나폴레옹 전쟁은 자기나라의 민화나 민족 서사시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고 오페라와 관련된 고전적 국민발레의 발전은 1801년에 샤를 디들로에서 시작 되었다. 발레는 국민감정의 통일을 확립시켰는데 이는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에서도 볼수 있듯이 러시아의 오페라에서 발레를 빼놓고는 생각할수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러시아 에술가곡의 폭넓은 레퍼토리는 이 시기에 정착되었다. 그것은 두 개의 대조적이 전통에서 발전했다. 하나는 민요로서 무소로그스키의 낭만주의적 예술에 도달하였고 또하나는 러시아의 프랑스풍 살롱 음악으로 차이코프스키의 낭만적인 예술가곡으로 높여졌다.5.제 5 기-국민주의의 지주 5인조 작곡가들의 활동시대 (1850~1900)국민주의적 음악운동을 추진한 이 다섯 사람은 원래 직업적 음악가는 아니었으나 그들이 조직한 그룹은 러시아의 귀족 율리비세프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전기를 쓰면서 틈틈이 이 두사람의 작품을 농노들의 오케스트라로 연주하게 하였다.그 지휘자로는 발라키레프를 고용했었는데 발라키레프의 지도력과 감화력은 친한 친구가 모이는 서클을 만들게 했는데 이것이 뒤에 ‘러시아 5인조’로 알려지게 되었다. 5인조는 발라키레프.보로딘.큐이.무소르그스키.림스키 코르샤코프이다.러시아의 음악은 위와 같은 시기를 거쳐 전개되는데 러시아의 예술은 시각예술에서는 탁월함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음악은 19세기에 들어서서 문학과 더불어 서양의 영향을 받아 갑자기 꽃을 피우게 됬다.러시아 음악에 관하여 조사를 하다보면 1860년 이후에 특히 국민음악이 더욱 활발하게 작곡 되었다는 대목을 많이 발견할수 있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1861년에 러시아 알렉산더 2세에 의해 농노해방령이 내려져서 농노들은 시민적 자유를 보장받게 된다.그리하여 이 시대에 자유로운 지적생활이 얼마간 허용되어 문학에서는 톨스토이.투르게네프.토스토예프스키와 같은 문호들의 작품이 많이 나왔고 음악에서는 1859년에 결성된 러시아 음악협회가 이듬해에 상 페테스브르크와 모스크바 음악원을 설립하고 오케스트라와 콘서트를 후원하는등 전 러시아의 음악 수준을 높이는데 적극 기여하였다.2. 러시아 음악의 종류와 각 특징1.종음악러시아 음악의 근원에는 외래적 요소와 전통적 요소가 발견된다.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이 동방교회를 수입하면서 침투된 비잔틴 문화는 자연스럽게 러시아에 동화되어 장식이 많은 러시아 정교회의 예배음악으로 발전 되었다. 이러한 동방 비잔틴 교회의 음악요소 중에서 특히 러시아 작곡가들의 창작노력에 영향을 준것은 교회의 종소리와 합창음악이었다.신자들에게 예배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예배의 종류를 알리는 종은 교회력의 날짜와 예배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음색및 음조의 종류를 사용하였다. 각 종각에 따라 고음부 저음부의 종들은 따로 구분되고 따로 따로 그 자체만이 갖는 고유한 음계가 있었다. 러시아 음악의 개척자 글린카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많은 작곡가들은 이러한 종소리를 자신의 작품에 반영해왔다.2.합창음악합창음악 또한 비잔틴문화가 전파되면서 나타났다. 비잔틴 성가는 로마의 그레고리안 성가와 비슷한 기악반주가 없는 단성의 노래였는데 연주형식은 합창단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 서로 노래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되어있었다. 이것이 여러 세기가 지나면서 서서히 러시아화되어 장식이 많은 예배음악으로 발전되었었는데 이성가를 쯔나메니라고 불렀다. 이 쯔나메니가 러시아 합창음악의 발단이 되며 러시아 정교회의 예배음악이 되었다.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러시아 작곡가들이 합창음악에 관심을 기울여 세속음악뿐만 아니라 사운과 직업 합창단들을 위한 새로운 음악에도 합창음악을 사용하고 있다.3.전통음악러시아의 민간음악 특유의 모든 전통적 장르들, 즉 무용가, 월령가, 서정요, 유희요, 무도가, 노동요등이 포함되는 전통음악은 러시아 음악의 가장 오래된 장르라고 볼수 있다.월령가와 무용가는 본질적으로 일정한 운율을 가지고 있지만 가끔 메기고 받는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보다 후기의 서정요들은 발달된 성부의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다.20세기에도 러시아 전통음악의 전승은 계속되어 칼리니 코프의 교향곡 1번.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결혼, 봄의제전, 불새등 많은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에 전통음악적 요소가 반영되고 있다.3. 러시아 음악의 고유한 색깔이자 큰 특징인 ‘민족주의’ 음악에 대하여19세기 민족주의 음악은 유럽 시민혁명기의 부산물로 낭만주의 음악의 한 측면을 이루고 있다.작곡가들은 오페라나 가곡 표제음악을 위한 음악적 소재를 고유의 전설, 설화,역사, 자연생활모습에서 찾거나 작품속에 민속적 선율이나 민속스타일을 도입하여 적극적으로 민족주의적인 스타일을 육성했다.민족주의를 이해하려면 국민악파 음악의 뿌리를 아는것이 중요하다. 18세기 말까지의 러시아 고유의 음악은 교회음악이거나 교회음악의 요소를 빌려온 민속음악 이었다. 19세기 후반의 급변화하는 사회분위기에 동조하여 문화계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움직임은 러시아 5인조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예술속에 러시아적인 색채와 토속성을 지닌 요소들을 첨가하였고 낭만주의의 반작용으로 러시아 음악이 서유럽음악에 버금가는 중요한 음악으로 인식시켜 주었다.러시아 고전음악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글린카는 음악분야에서 민족적 리얼리즘 예술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민족적 민요문화에 뿌리박은 새로운 민주적 음악언어를 만들어 내었다. 그는 러시아 작곡가로서는 최초로 주목할 만한 작품을 많이 남겼으며 러시아 5인조가 자랄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대중음악적 창조를 강력히 지지하고 그를 위한 예술의 민중성을 최고의 원치긍로 하는 시민적 작곡가.진보적 사상가였다. 글린카의 대표적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는 풍부하게 흐르는 선율.시정 넘치는 아리아와 당당한 합창 가운데 나타나는 키예프 루시의 장대한 모습은 자연스럽게 민중의 위대함과 악에대한 신의 승리를 이야기하는 무대를 만들어 내었다. 글린카가 창조한 민중서사시적.민족적 오페라라는 유형은 러시아 음악의 한 주류를 이루게 되고 후계자들에 의해서 발전되었다. 글린카는 죽을때까지 자신의 사상에 충실하였다. 그는 자신의 전 작품을 통하여 러시아 고전예술의 민중예술성과 민족적 독자성을 일관되게 주장하였다.
    예체능| 2007.11.07| 5페이지| 2,000원| 조회(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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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예술과 문화
    명증한 경종1분연히 고심하고 실증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어떠한 자극에도 노출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죽음의 한 일면 일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사회로부터 야기된 사술이라면 사회의 전구성원 대다수가 이런 부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이 얘기한 『1984』의 디스토피아처럼 ‘무지가 힘’이라 한다면 이 사회는 이미 막강하다 못해 넘치는 윤활유로 과부화에 폭주하는 견고한 조직체일 것이다. 이미 무산자와 빈민, 무정부주의와 색맹인 색깔론자들로 이 사회는 포화상태다. 개인의 의식은 내성에 근거하지 못하고 사회구조의 틀 속에서만 상호작용 할 뿐으로 행복추구는 거대한 구도 안에서 사멸한지 오래이다.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의 망령이 열강들로부터 다시금 고개를 쳐들고 세습되는 능력 계층으로부터 신분제, 계급화로 또 다시 사회는 급반전 하고 있다. 기나긴 체념상태임에 발전적인 사회변혁이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대다수가 받아 들이고 있지만 또한 누구나가 "혁명"이란 단어를 떠올린다면 프롤레타리아트를 연상할 것이다. 그만큼 혁명에 있어 민중은 그 주체로서의 자각이 분명하다. 허나 이렇듯 당연한 것이 다만 이 시대의 관점이며 미제로 남은 우리네 숙제임을 숙지해야 한다."민주주의 혁명은 성격에서 부르주아적이다" 란 레닌의 말처럼 민주공화제와 자유시장경제는 누구의 말처럼 정의에 바탕한 공고히 옹호해야 할 대상으로서가 전부는 아니며 이 시대가 씌운 망상에 불과하다. 90년대 이후 혁명적 정세는 쇠퇴 일로를 걷고 있다. 허나 그런 것을 비관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낡은 사회는 언제라도 대체 될 것이고 그 몫은 여전히 다수의 프롤레타리아트들의 어깨 위에 고스란히 있다. 지금은 그 전개과정에 불과하나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사회변혁의 시기, 다시 말해 석기시대에서부터 부르주아적 민주주의 혁명(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그 주기가 놀라울 정도로 짧아진 반면, 맑스, 레닌의 실패로 점철되는(지금까지의 공산화, 사회주의는 분명 지양해야 마땅하다)프롤레타리아 혁명은 "혁명"이란 단서가 기약 없을 뿐더러 지금까지의 폭력적 투쟁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함에 그 성과가 가시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있다.바야흐로 미증유의 혼동기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체성의 상실은 곧바로 무관심으로 표명되기에 말이다. 개인의 목소리가 죽으면 곧 그 사회는 박제된 사회나 다름없다. 지금의 현 사회를 전복하고자 촉구하는 것이 아니다. 분연히 견지하자는 것이고 개인의 존엄과 개성이 세계 앞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여 오늘날, 지금을 사는 우리가 러시아의 역사(예전 사회주의 체제의 수장국으로써)와 그 정세를 다시 한번 집어보고 더 나아가 그들의 혁명을 위시한 곡절이 그들 문화와 예술(인간의 상태, 그것의 본질에 침잠하는 가장 진지하고도 보편적인 행위란 점에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봄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그리하여 러시아의 문화(문학을 중심으로)를 접근하기로 소비에트혁명 이후의 근현대에서부터를 그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조망해 보도록 하겠다2은유로 흘려 의미를 확장하려 한다는 건 어떠한 획책을 기한다기 보단 접근의 용의성에 있어서 가중되는 용어상의 적합성여부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움을 부여하려 함이다. 하지만 이러한 은유가 권력과 맞물려 본질을 왜곡하고 확대해석 하려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가져올 폐단이란 것은 너무도 거대한 것이 되어 인간의 숨통을 조여오게 마련이다. 이제부터 언급하고 묘사할 문학작품의 풍경들로 지금에 이 글에서 의도하는 것이 전자의 은유에 해당된다면 언급되어진 작품들이 담아내고 있는 실체적 삶과 그 이면의 비탄함은 후자에 해당될 것이다.수용소의 ‘평범한 하루’, 두껍게 성에가 낀 유리창을 통해 들려오는 기상 소리가 살을 에는 혹한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미열에 뒤척이는 슈호프를 깨운다. 하지만 북방의 유형지, 그것도 한 밤과 진배없이 깊은 어둠이 눌러 앉은 혹 한기의 아침 다섯 시에 울린 기상의 파찰음, 그것이 깨우는 건 평온했던 어둠을 지옥의 등잔으로 바꾸는 경칠 노릇의 음허한 각성일 뿐이다. 드문드문 새어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 그 지옥의 등잔이 둔중한 어둠을 밀치고 비추는 인간 말소의 지독할 정도로 담담한 유화, ‘평범한 수용소의 하루’는 냉혹한 파찰음을 시작으로 에 이르는 인 에 까지 어둠과 추위와의 매번 반복되지만 결코 익숙해지는 일 없는 지겨운 고통의 투쟁으로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그것은 솔제니친의 담담한 유화로써의 알레고리라기 보다는 그 당시 러시아(구 소비에트연방)의 축소화되고 축약된 미니멀한 이미지 다름 아니다. 또한 훗날 이러한 이미지가 쿤테라를 통해서 보다 직설적인 표현으로 실제적인 표층 위로 부상 한다.『이 운동에서 무엇보다 나를 매혹시키고 심지어 홀리기까지 했던 것은 내 시대의 (또는 그렇다고 믿었던) 역사의 수레바퀴였다. 그 당시 우리는 정말로 사람이나 사물의 운명을 실제로 결정했다. –중략- 우리가 맛보았던 그 도취는 보통권력의 도취라고 불리는 것인데, 나는 그러나 (약간의 선의를 가지고) 그보다 좀 덜 가혹한 말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역사에 매혹되어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증명된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뒤틀려져 파생하는 한물간 싸구려 이념논쟁이 사념적 변혁을 막론하고 득세하는 것 또한 사실이며 망각과 패배주의가 뒤섞여 발휘하는 고답한 전횡이 조금씩 목도되는 것도 사실이다. "플레하노프적 상식"은 이미 폐기된 낡은 유물에 불과할진대 말이다. 하여 "하마스"에 자살테러가 그러하듯 본질적 성격이 동일하다 해도 그곳엔 그 누구라도 지지를 표명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으로써 쌍방 모두를 규탄할 뿐이다. 투쟁에 있어선 주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선행 되야 하며 또한 표독스런 일방노선은 탈피해야 한다. 제 아무리 "혁명"이 다수의 구원을 표방 한다 해도 "승리"의 부차적 병폐들을 간과해선 아니 된다는 것이다. 레닌의 향수가 다시금 진동하여도 파시즘만큼은 언제라도 용인되지 않는다. 곧 그것은 불치에 모순이며 이상주의자들에 예고된 기약 없는 내리막일 뿐이다.그러므로 이러한 때 우리는 역사와 그것이 안겨다 준 인간의 삶을 올바르게 통찰 할 줄 알아야 하며 그것을 곧 명증한 의식의 저변으로 삼아 각자가 스스로에게 경종을 울려야 할 것이다.
    인문/어학| 2007.11.07| 3페이지| 2,000원| 조회(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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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음악만이 지닐 수 있는 색깔은 무엇인가.
    러시아 음악만 지닐 수 있는 색깔은 무엇인가.보드카와 춤으로 특징 지워지는 슬라브 민족, 이들이 민족적 정서를 예술에 담기 시작한 것은 러시아 문화의 선구자들인 음악가들의 출현과 때를 같이한다. 그 중 특히 러시아 음악에 불을 당긴 사람은 이바노비치 글린카이다. 그 후 제2, 제3의 글린카가 나타나 러시아 음악의 뿌리를 하나씩 심어 나갔다. 슬라브 민족은 원래 풍류를 즐기는 민족이다. 노래와 춤에 젖어서 살아간다고 해도 좋을 만큼 이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음악이 생활의 일부가 돼 있었다. 이들의 춤은 매우 격렬하다. 팔 다리를 세차게 흔들어 대거나 껑충껑충 뛰는 것이 러시아 민속무용의 기본 동작이다. 추운 지방에서 체력을 유지하기 알맞도록 이와 같은 격렬한 동작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 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터전 위에서 종합예술인 오페라와 발레가 발달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지도 모른다.러시아 민요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와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음악극 등에서 대단한 활약을 해냈다. 이 무렵까지의 러시아 음악은 종교음악을 제외하고는 민요 일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의 종교란 그리스 정교회를 지칭한다. 러시아 음악을 대표하는 오페라 문화는 이태리 오페라의 수입에서 비롯되었다. 카탈리나 2세 여왕이 집권하던 1700년대 후반에는 이태리 출신 예술가들이 궁정에 머물며 음악 활동을 하고 있었다. 카탈리나 여왕은 그들에게 러시아어 대본에 의한 오페라 작곡을 위촉하는 한편, 러시아 출신 음악가들을 이태리로 유학 보냈다. 이 때 가장 성공한 음악가로 이파토비치 포민(1761-1800)을 들 수 있는데, 그에게는 글루크와 모차르트의 스승이며 대위법의 대가였던 마르티니 신부로부터 직접 배울 수 있는 행운이 뒤따랐던 것이다. 러시아로 돌아온 포민은 왕성한 창작열로 여러 개의 오페라를 만들어 냈다. 이로써 순수한 러시아어 대본에다 러시아 사람이 작곡한 오페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포민과 함께 오페라 및 발레 제작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였던 카탈리나 여왕이야말로 러시아에 오페라를 정착시킨 공로자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이전 시기의 러시아 민속음악은 농사와 관련된 노래와 혼례, 장례 등에 불리던 의례(儀禮)의 음악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던 것이 10세기 말에 비잔틴에서 기독교가 도입되자 교회음악이 공식음악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비잔틴 정교회의 텍스트, 선율, 기보법 등이 도입되어 그대로 사용되었다.당시 성가의 주요 형태로는 즈나멘니 성가와 콘다카르니카 성가가 있었다. 즈나멘니 성가는 초보적인 단성음악으로 선율보다는 가사의 전달이 주목적을 이루었다. 따라서 가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느리고 유연한 선율에 맞추어 가사를 위엄 있게 읽어 나가는 형식을 취했다. 반면에 콘다카르니카 성가는 장식음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당시의 성가는 크류키 일종의 네우메로 기보되었다.몽고의 지배를 받게 되자 이와 같은 교회음악은 자연히 쇠퇴기를 맞았으며, 악보도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러나 성가 대신에 지방색이 풍부하게 반영된 러시아식 민중음악이 발달했는데, 15세기 말부터는 새로운 기법이 나타났다. 샤이드로프가 음높이를 고정시킨 기보(記譜)를 시도했다.1 6세기에는 이반 뇌제의 적극적 장려에 힘입어 즈나멘니 성가가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반 뇌제는 노래를 짓는 것을 즐겼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가 17세 때 작곡한 것으로 믿어지는 두 개의 노래의 원고가 남아 있다.즈나멘니 성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장식에 많이 붙으면서 화려한 양식을 띠게 되는데, 이반 뇌제는 이 노래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1551년에 노래 학교를 만들고, 성가의 교육과 연주를 담당하게 했다. 표도르 크레스티아닌이 즈나멘니 성가의 작곡가로 유명했다. 유럽에서 그레고리안 성가가 13세기부터 쇠퇴한 것과 비교를 해 볼 때 러시아의 성가는 약 3,400년 늦게 유행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9세기 후반 유럽의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민족적 자각이라는 바람이 러시아에도 불어 러시아 사회 전체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그 중 음악분야에서는 이라는 러시아 국민 악파가 등장하게 된다. 그들은 서구 중심의 서양음악계에서 최초로 러시아 민족 음악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된다.물론 러시아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민요와 민속 음악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10세기 그리스 정교의 도입으로 이교도의 제사나 신앙등 을 연상케 한다 하여 철저하게 핍박했다. 그러나 민요나 민속 음악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민속적인 욕구는 계속되어 후세까지 계승될 수는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트루바두르나 트루베르처럼 예술적 수준을 높여 가지는 못한다. 이 민요와 러시아적 선율들은 훗날 러시아 국민 악파들의 주된 소재가 되고 있으며 그들의 음악적 사상과 맞아떨어진다.
    인문/어학| 2007.11.07| 3페이지| 2,000원| 조회(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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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 러시아의 현재와 미래
    한국과 러시아의 현재와 미래저는 러시아의 문화, 다른 나라들과의 대외 정책 등이 아닌 한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에 대한 현재 현황과 미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먼저 러시아와 한국의 무역 현황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러시아와 한국의 최근의 무역 상황을 보면 2005년 한국의 러시아에 대한 수출 증가율은 65.2%, 수입 증가율은 7.2% 2006년 수출 증가율은 34% 수입증가율은 16.2%, 2007년 1~9월 수출 증가율은 46.6% 수입증가율은 50.8%입니다. 2006년 수출 증가율이 많이 줄었으나 2007년 다시 상승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우리나라의 8번째 수출국이 되었으며 러시아에 대한 수출증가율은 우리나라 10대 수출국 중 가장 높습니다. 한국의 러시아에 대한 수입 역시 올해 급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러시아에 대한 수출품목을 보면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증가세가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는 플라스틱과 선박 등의 수출도 13~14%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한국의 러시아에 대한 수입 물품은 알루미늄, 경질석유 및 조제품, 석유, 원유, 니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올해 한국가스공사는 도입단가가 싼 러시아산 천연가스(LNG)를 내년부터 들여올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입량이 점차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처럼 한국과 러시아의 무역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러시아에 대한 미래 주력 수출상품으로는 텅스텐광과 그 정석, 목재펄프, 농업기계, 에틸렌중합체 등 외 97개의 품목이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양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품목들입니다. 또한 러시아내에서의 생산이 증가하거나 또는 수요의 감소로 인해 사양추세의 퇴출품목들은 철도장비, 소형선박, 우유 제품 등 22개의 품목이 있습니다. 자동차의 경우 한국의 중고버스가 러시아에 수출되어 한국어로 된 이정표등을 그대로 붙이고 러시아를 운행할 정도로 한국의 자동차는 러시아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부족한 천연가스를 비교적 단가가 싼 러시아에서 수입함으로써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역을 통해 두 나라는 상호이익을 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추세는 더해져 갈 것입니다.이처럼 한국과 러시아 상호간에 영향을 주는 여러 부문들이 있는데 무역 관계를 넘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중요 부문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한국이 러시아에 영향을 주는 부문과 러시아가 한국에 영향을 주는 부문, 그리고 양국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부문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한국이 러시아에 영향을 주고 있는 부문은 농업부문과 자동차 부문을 꼽을 수 있습니다. 먼저 농업 부문은 우리의 진출이 가장 활발한 분야 중 하나인데, 남양 알로에가 연해주에서 황금작물을 재배해서 해외에 수출을 하고 있으며, 아그로 상생이 연해주에서 서울시 면적의 두 배가 되는 넓은 농장을 경영하고 있습니다.다음으로 자동차 부문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지나가는 차의 90% 이상이 우측핸들의 일본차입니다. 매년 20여만 대의 중고차가 들어오고 있는데, 도로사정에도 적합하지 않은 우측핸들의 일본 중고차가 대부분입니다. 버스의 경우에는 승객이 우측으로 타고 내려야 하기 때문에 한국산 중고버스가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신 모델 개발을 게을리 해 온 러시아 자동차 메이커들은 시장개방 이후 자국시장에서 퇴출되다시피 한 상태입니다. 정부는 외국 메이저 업체들과의 합작을 포함한 자국사업 육성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한국, 일본, 중국 간의 각축이 벌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적절한 전략을 마련하고 추진해 미래시장으로 가꾸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다음으로 러시아가 한국에 영향을 주고 있는 부문은 에너지 부문입니다. 에너지 부문은 한국은 세계 10위 에너지 소비국이며 제 4위 원유수입국가로 해외에너지 의존도가 97%에 달합니다. 반면 극동시베리아에는 확인된 석유 매장량이 16억 톤, 천연가스는 38억 톤에 달합니다. 해외에너지 의존도가 큰 한국으로선 러시아의 에너지에 큰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으며, 그 영향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양국의 상호 협력이 필요한 부문으로는 우주개발과 남북한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사업입니다. 우주개발 분야의 선진국인 러시아 연방우주청 수장이 한국을 방문, 한국과 러시아간에 우주개발분야 협력이 더욱 공고히 될 전망입니다. 페르미노프 장관의 이번 방한은 ‘한-러 우주기술보호협정’이 지난 7월 17일 발효된 것을 계기로 김우식 부총리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우주개발 분야에 대한 러시아 측의 협력 의지를 확고히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번 한-러 장관 회담에서는 소형위성발사체 개발사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해 내년 말 나로우주센터에서 차질 없이 발사하기 위해 양국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2008년을 ‘한-러 우주의 해’로 지정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등 협조 체계를 더욱 긴밀히 할 예정입니다. 이번 한-러 우주장관 회담에 따라 한국기술로 개발된 인공위성을 한국 땅에서 최초로 발사하기 위한 소형위성발사체 개발이 차질 없이 수행되어 2008년 말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내년에 한국이 KSLV-1 발사에 성공하면 세계 9번째로 자력 위성발사에 성공한 국가가 됩니다.다음으로 남북한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사업입니다. 2001년 12월 ‘양국간 철도운송부문 협력합의서’ 및 ‘양국간 운송부문협력위원회 규정’이 서명되었고, 운송부문협력회의가 여러 차례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위의 내용들처럼 서로 좋은 영향이 아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으로서 양국이 함께 풀어야 할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성문화입니다.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방의 물결을 타기 시작한 러시아에 ‘섹스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문화의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매춘을 하는 여성들의 수는 어림잡아 수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불법 매춘을 하다가 체포되는 윤락녀들의 수는 매년 7만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밖에 ‘미스 웨트 티셔츠 선발대회’도 인기가 높은데 1등에게 7백 달러의 상급이 주어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옷을 벗는 여성들이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여성들은 보다 섹시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관능적인 동작은 물론이고, 팬티까지 스스럼없이 벗어던진다고 하는데, 한때 한국에서 유행하던 ‘섹시 춤 경연대회’가 바로 러시아에서 유입된 풍속입니다. 또한 한국에서 윤락 업에 종사하는 러시아여성들의 수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한국과 러시아 모두 억압되었던 성이 폭발함으로써 오랜 세월 억눌렸던 성이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겪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할 경우 후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큰 비용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한국만 보더라도 더욱 퇴폐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현상을 본다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과 러시아 모두 문제의 심각성은 알고 있으나, 완벽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상황입니다. 양국 모두 문제의 해결 방안을 조급히 찾아야 할 것입니다. 위의 내용들처럼 한국과 러시아는 여러 방면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경영/경제| 2007.11.07| 3페이지| 2,000원| 조회(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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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문화와예술 과목을 선택한 동기
    내가 이 과목을 선택하게 된 동기여러 가지 주제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셨지만 사실 동기가 참 많아서 어느 하나만 적기가 힘들었지만 굳이 하나만 적겠습니다. 저는 소위 ‘밀리터리 매니아’입니다. 각종 무기체계와 전쟁사 및 현대의 정치 역학적 관계에 따른 군비경쟁에 관해 관심이 많은 학생입니다. 무기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에 러시아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요. 아시다시피 무기의 성능이나 수출의 양이나 또 군사기술에 관해서는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나라와는 한국전쟁을 통해 좋지 않은 인연이 있었던 나라이고 현재 6공화국 시절 경협차관으로 제공했던 돈을 현물로 상환하겠다고 해서 ‘불곰사업’이 진행되기도 했었지요. 현재 우리나라에는 러시아가 현물로 상환했던 T-80U전차를 운용하는 전차부대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BMP전투보병차량이나 호버크래프트등 몇몇 장비들을 받아서 현재 운용중에 있습니다. 러시아제 킬로급 잠수함도 한 때 고려대상에 있었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백지화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러시아에 대해서는 무기관련해서는 관심이 많았지만 그 외의 문화, 역사적인 지식은 전혀 없는지라 선택했습니다. 입에 자주 올리면서도 정작 그 나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과 그 나라가 전 세계에서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라는 점에서 러시아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동기부여는 충분히 된 것 같습니다.저는 현재의 러시아의 군수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러시아는 분명 미국과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던 초강대국이며 구소련이 몰락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미국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남아있습니다.최근 20여년간 중국이 급속도로 성장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미국이나 러시아와 비교하기엔 부족한 국가이며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럴 것입니다.구소련 및 러시아의 무기, 장비체계의 철학을 한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불필요한 모든 것을 생략하고 오직 싸우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간단하고도 저렴한 것들이라는 점입니다.이는 미국이 하나의 무기, 장비체계를 개발하면서 최대한 초호화판으로 개발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면 러시아는 그다지 부족하지 않은 성능에 가능한 저렴하게 많이 찍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베스트셀러 전차로 기록되는 T-55전차의 경우 전차로서 요구되는 화력, 방어력, 기동력이라고하는 3가지요소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우수한 전차이지만 차내는 비좁고 기계는 조잡했으며 항시 인해전술로 투입되어 수많은 승무원들의 희생을 담보로 승리를 얻는....... 미국의 기준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는 개발국 간의 안보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미국의 경우 사실상 본토의 침략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 국가이지만 러시아의 경우 이미 수많은 외침을 경험한 국가이며 광활한 영토를 방어하기위해서는 적정수준의 숫적 전력이 필요했습니다.따라서 어느 정도 성능은 미국에 비하여 조금 떨어진다 할지라도 대량으로 양산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1:1로 비교된다면 조잡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러시아의 기초과학기술은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이며 미국과 비교하더라도 조금 뒤쳐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역시 기술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는 국가입니다.그러나 구소련 붕괴이후 러시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려운 경제여건으로 인하여 기술의 발전이 그만큼 더뎌지며 러시아군이 적절한 물량을 소화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수출에 의존하게 되는 좋지 못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사이 미국과의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는 점입니다.그리고 또 한가지 러시아 항공분야의 문제점으로서 러시아의 부족한 전자기술과 정밀공업능력이 있습니다.현재 러시아의 항공기술력은 미국보다 대략 20년정도 뒤떨어져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앞으로 그 격차는 더욱더 벌어질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러시아의 군용기들의 공통된 문제점은 초기 획득비용은 저렴하나 유지비용이 과도하게 많이 나간다는 것과 전자기술의 부족으로 항공전자장비와 화력통제 레이더등의 수준이 미국은 물론 유럽보다도 뒤처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문/어학| 2007.11.07| 2페이지| 2,000원| 조회(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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