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이슬람 역사 - 1300년의 연대기세계에 퍼져있는 모든 무슬림 소수 종족들 가운데, 중국의 무슬림들은 가장 역사가 길고 드문 것으로는 확실히 첫째로 순위가 매겨질 수 있다.중국에서의 이슬람의 역사는 이슬람과 중국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전통이 그것도 그들이 번성할 때에 함께 만남으로서 시작된다. 무슬림들은 7세기에 중국과 무역을 하며 정착을 했는데, 이것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무슬림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수백년 전이었다. 유럽인들이 상당한 규모로 중국 역사의 장에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무슬림들은 오랫동안 중국 전역에서 토착 인구가 되어있었다. 오늘날, 사우디 아라비아보다 중국에 더 많은 무슬림들이 있으며, 이집트를 제외한 어느 아랍국가보다도 정말로 더 많은 무슬림 인구가 있다.서아시아에서의 이슬람의 성장은 중국의 당나라(618-907)의 성장과 연대기적으로 일치한다. 아시아의 이 대제국이 문화적, 외교적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칼리프 우트만(Uthman, 644-656)이 파송한 최초의 아랍인 특사는 651년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 당 고종의 궁궐에 도착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무슬림 제국이 처음으로 확장해나가던 동안 아랍군의 사기와 함께 이슬람 선교사의 활력도 대단한 것이어서, 중국인들이 다마스커스를 방문하기 전에 아랍인들이 장안을 찾아왔다. 이러한 사건들은 여하튼 중국의 고대문명과 중국 중심적인 철학과 더불어, 중국인들에게는 보통이 되어버렸다.그 이후로 계속, 수십만의 아랍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이 2가지 길로 중국에 왔다. 첫번째는 해로인데,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 반도의 남단에서 인도양을 거쳐 꽝뚱과 중국 남동부의 항국도시로 왔다. 두번째는 육로로 전설적인 "실크 로드"인데, 지중해 동부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부하라와 사마르칸트로 왔으며 다시 중국 북서부로 들어가 장안(현재의 시안)과 뻬이징의 시장에 도달했다. 무슬림들은 이주를 통해서, 또 중국이 중앙아시아로 확장해나가면서 중국의 시민들 사이에 수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무슬림 공에 중국에 온 불교는 아직도 두번째로 큰 종교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현실감각과 세속의 삶에 부정적이어서 중국인들의 요구를 충족시킬만한 교리가 부족하다.하지만, 이 영광스런 천년의 세월 뒤에는 불행히도 중국 이슬람의 암흑기 즉 청나라(1644-1911)의 무슬림 학살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267년 동안, 만주족 통치자들은 무슬림들을 억압하고 이슬람 의식을 저지하고자 하는 정책을 채택했지만, 이 종교를 완전히 말살시키지는 못했다. 청나라의 몰락 후, 중국 최초의 공화국이 1912년에 건립되었다. 중국의 모든 무슬림들은 새로운 정부를 지지했으며, 부흥운동을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중국 본토와 대만에서 계속하고 있다.서아시아에서의 이슬람이 번성하고 있을 때, 중국의 무슬림들도 또한 번영과 평화를 누렸다. 서아시아에서 이슬람이 어려운 시절에 빠지게 되면, 중국의 무슬림들도 또한 고통을 받았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의 무슬림들은 세계 이슬람의 실재에서 중요한 한 부분이다.무슬림이 중국에 있나?오늘날,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무슬림들은 중국의 55개의 형식 승인을 받은 모든 민족 가운데 가장 넓게 분포되어 있다. 그들은 중국의 모든 성에 살고 있으며 그 모든 대도시에 이슬람 사원(mosque)을 세웠다. 무슬림들은 중국에서 두번째로 가장 큰 종교집단으로 중국의 기독교인들을 훨씬 능가하며 과거 중국의 유태인들도 심지어 이슬람의 한 분파로 간주된 적도 있었다.무슬림들은 한때는 토착 한족을 지배하던 특권 계층이기도 했으며, 그 이후 한족의 정부 아래 예속당했으며 거의 3세기 동안 반란을 일으켜 수백만의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중국의 무슬림들은 중요한 전문직업군을 차지하고 있으며, 군대의 중직을 맡고 현재를 포함해서 모든 당대의 중국정부에게 근심거리가 되어왔다.무슬림들은 중국 전역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은 그들이 다양한 길을 통해서도 인내함으로써 천상왕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무역로를 통해서 남쪽과 동쪽으로, 침략전쟁을 위해 북쪽과 러난다. 여관 주인, 행상인, 노새 모는 사람, 마부, 용병 등과 같은 직업은 비교적 한족보다도 무슬림들이 더 많이 종사하고 있다. 위구르, 회, 미아오족을 포함하여 많은 무슬림들이 정주농에 몸담고 있으며, 카자흐와 키르기즈족은 유목민들이다. 도시에 사는 후이족의 인기있는 직업은 장사 외에 가축 도살업과 이슬람 식문화를 엄격히 지키는 "정결한 원조" 식당 운영이다. 이러한 마지막 두 가지 직업은 비 무슬림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꽤나 위생적인 것으로 평판이 나 있어서 잘 이용하는 편이다. 중국의 무슬림들 모두 훌륭한 군인인 것으로 유명하다.중국어를 사용하는 후이족은 제외하고 모든 이슬람 집단은 고유언어를 사용한다. 1949년 이전에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아랍어로 글을 읽는다. (이들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코란으로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구의 약 20%에 달한다.) 후이족의 출생률은 한족보다는 낮지만, 다른 이슬람 종족 특히 투르크계 무슬림들의 출생률은 높았다.무슬림 대역에 있는 이슬람 공동체의 사회 정치적인 조직은 결집력이 있었으며, 모든 마을은 무슬림이거나 한족 둘 중 하나였고 이 둘의 마을 사람들은 서로 관련이 적었다. 무슬림이 소수인 도시 해안지역에서, 그들은 일정한 거리에서 함께 무리 지어 사는 경향이 있고 그 도시에서 무슬림 거주지를 형성한다. 신장성의 대규모 투르크계 무슬림 집단은 지역 씨족과 혈족을 따라 다소 분산되어 있기는 하지만, 공동 조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과 이슬람 신앙이 공통이라는 점이 서로 간의 연결을 만들어주었다.중국의 모든 무슬림들은 수니 계통의 하나피파라는 것이 중국-무슬림 역사편찬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에서 새로운 가르침(신쟈오, 新敎)의 흐름 가운데서 원시 시아파 성향을 가지고 있는 실험적인 종파까지도 다양한 분파로 나뉘어 경쟁하고 있다.무슬림 지도자들은 간단히 언급만 하여도 많은 수의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강한 지도자에 의해서 조직이 되면, 다양한 씨족과 슬림들은 종교적 박해를 극심하게 당했으며, 마오쩌뚱(모택동)의 사상이 동부의 전통보다는 오히려 서부의 전통에서 배타적인 '종교'였었다. 하지만, 마오가 사망한 후에 중국 당국은 이슬람을 다룸에 있어 사회정치적인 고려를 주로 계속해서 정책에 반영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중국에서의 무슬림들은 현재 종교적 표현에 있어서 비교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현재 중국에 있는 무슬람 인구오늘날 중국에 있는 무슬림의 수를 확인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현재로서 제공되는 수치가 최상의 통계임을 인정해야 하겠다. 한편의 사실과 다른 한편의 주장되는바나 가능성, 가정 사이를 확실히 구별하기 위해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1980년, "4대 현대화"의 자유스런 분위기와 마오쩌뚱의 말기 시절, "4인방"의 후기 시절의 중간 무렵에 베이징은 현재 소수 민족으로 불리는 55개 종족집단의 수치를 새롭게 발표했다. 이 55개 소수민족의 총 인구가 5580만이며, 중국 총 인구의 6%를 차지한다고 발표했으며, 그 중 10개 종족에서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종교였다. 이 10개 집단의 수치에서 차지하는 총 인구는 13,152,200명을 약간 웃돌고 전체 중국 인구의 약 1.3%에 해당하였다.베이징의 일반적 관행은 이러한 소수 집단을 무슬림 그 자체로 언급하는 것을 피하려고 했으며, 이론적 해석만이 소수민족의 많은 구성원들이 의심할 여지없이 "종교 신앙을 갖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1300만에 달하는 이러한 수치는 대만을 제외한 중국 무슬림들의 총 수에 대한 베이징의 현재의 공식적 입장이 되었다. (베이징은 대만에 대해서는 통계를 작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동안 중국의 총 인구가 거의 100% 증가했음을 볼 때, 1953년 베이징이 제시한 수치에서 보여주는 이런 증가율은 여전히 비현실적일 만큼 작다. 또한, 설사 1953년에 단지 1천만명의 무슬림만이 있었다고 치더라도, 소수민족의 중가율이 한족의 그것에도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은 극히 가능성즉, 구(성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이며 5개가 계획되었다), 주, 현의 3가지이다.상당한 정도 이러한 지역들은 단지 명목상으로만 자치지역이다. 자기들의 이름을 딴 자치지역에서 살고 있는 소수민족들은 지방정부와 당 조직에 많은 대표를 두고 있지만, 한족이 일반적으로 최종적인 통제를 하고 있으며 다양한 식민 전략을 추구하여 소수민족들을 통제하고 강한 한족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이름을 딴 지역에서 오로지 소수민족들만이 거주하는 자치지역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는 한족이 사실상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닝샤 후이족 자치구에서는 그 인구의 약 1/3만이 후이족이고 2/3는 한족이다.)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10개의 소수민족은 현재 공식적으로 이슬람교가 그들의 지배적인 종교 전통임을 확인한 바 있다. 또 언급했듯이, 10개 소수민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실제로 이슬람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슬람이 10개 종족의 정체성에 있어서 많은 부분이 되고 있기 때문에 각 종족의 개인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이슬람을 따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출신상" 또는 "혈통상" 여전히 무슬림으로 간주된다. 거의 모든 경우에, 이런 10개 소수민족의 어느 구성원이 이슬람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러면 그는 아무 종교도 따르지 않게 된다.중국의 10개 무슬림 소수민족들 모두 중국에 병합된 조상들의 후손인데, 그 이유로는 중국이 영토확장을 하면서이거나, 상업적 목적으로, 중국 바깥 지역에서의 분쟁을 피해왔거나, 또는 중국 황실을 돕기 위해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이슬람은 "칼을 들고" 중국에 소개되었으나, 극히 적은 예외가 있을 뿐 무슬림이 중국 사람들을 개종시키려 한 적은 없었다.10개의 무슬림 소수민족 중 9개는 중앙아시아 출신인데, 위구르, 카자흐, 똥샹, 키르기즈, 살라르, 타직, 우즈벡, 보난, 타타르가 그들이다. 이 9개 중 6개는 예전부터 동 투르키스탄으로 알려진 지역에 살고 있는데, 이 지역은 1884년이 되어서야 중국의 한 성(신장성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