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과 두려움-데카르트의 『성찰』)을 읽고의심은 어쩜 철학자들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데카르트의 의심은 자신의 존재는 확실하다고 믿고 싶은 위안은 아니었을까? 학문에서 확실한 기초를 발견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모든 인식을 뒤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의심할 이유가 있는 모든 사물의 존재를 의심하여 연구한 끝에 최종적으로 의문을 중지해야 할 일점에 도달하였다. 즉, 다른 모든 사물은 의심할 수 있어도 그와 같이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 의심하고 있는, 다시 말해서 사유하고 있는 순간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것이야말로 확실하다고 믿고 그는 모든 존재인식을 이끌어 내려고 하였다.의심으로 시작된 데카르트의 성찰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한번쯤은 생각했을 정도로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의심은 우리 생활에 항상 있는 것이고 또한 그런 의심이 어디서 왔는지를 의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단계에 이르게 되면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누워서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런 의심을 하다보면 내가 보고 느끼고 맛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존재 여부가 궁금해지고 헛된 것은 아닌지... 그럼 진실은 무엇인지... 헛된 것에서 지금 방황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으로 소름이 끼칠 때도 있다. 난 아주 어렸을 때 옆집 아저씨가 돌아가신 후 이런 생각을 했다. 그 아저씨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왜 사람은 죽어야 하는 건가? 그럼 나도 사람이니깐 죽지 않을까? 난 죽으면 어디로 갈까? 왜 죽을 거면서 살려고 애써야 하는 걸까? 저 세상이 진짜일까? 나는 이 세상에 나 스스로 확실하게 있는 걸까? 그 아저씨의 영혼과 이야기해보고 싶다. 너무 궁금하다..... 그런 생각과 함께 난 내 죽음이 너무 두려웠고 그런 생각과 나의 존재의 의심 때문에 며칠을 울며 잠들기도 했다. 그땐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가 무서웠다. 다른 사람이 그런 생각을 자기는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나의 존재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질 것 같아서였다. 그러고는 난 교회를 다녔고 신이 나를 존재하게 했다고만 믿었다. 그러고 10년 후인 지금 데카르트의 성찰을 읽게 되었고 데카르트의 말에 따르면 그런 의심은 나의 존재를 확실하게 해주었음을 알게 되었다. 데카르트를 읽으면서 옛날 생각에 속으로 많이 웃기도 했다.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야겠다. 데카르트의 의심은 옳은 선택이다. 참된 것을 갈구하고 찾는 듯하지만 보이는 것에만 매달리는 인간에게 데카르트는 날카롭게 지적을 할 수 있는 좋은 단어를 선택한 것 같다. 그 단어로 데카르트는 인간에게 스스로 서게끔 지적하고 의심하게끔 만들고 있다. 데카르트의 의심은 이 세상 모든 것이었다. 그중 색(色)이 나의 마음에 많이 들어왔다. 우리가 어쩌면 가장 많이 얽매어 있고 치중하는 것이 색(色)일 것이다. 색(色)이 진짜로 존재한다면 눈을 감아도 보여야 할 것이다. 손을 대어봐도 맛을 보아봐도 색(色)은 눈을 뜨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과연 색(色)은 실재할까? 정말 의심스럽다. 실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틀리고 실재한다고 해도 틀리다. 아니 그 반대로 실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맞고 실재한다고 해도 맞다. 이건 모순 아닌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할 것이다. 어쩜 데카르트는 실재하는지 실재하지 않는지도 모르는 색(色)에 너무 치중하고 그것이 마냥 우리의 존재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를 비판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스스로 의심하고 깨달으면 그것이 우리의 존재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럼 우리가 지금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실재하지도 않는 것에 우리의 정열과 힘을 쏟는다는 것에 정말 회의를 느낀다. 그리고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한 의문만을 준다. 혼란스럽게 말이다.의심을 하면 할수록 모순된 경우와 거짓이 우리 머릿속에 가득할 것이다. 마치 색이 참인지 거짓인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도 의심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속엔 어쩜 산소, 수소, 탄소의 원소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원소가 있는데 아무 것도 없다는 말 자체가 거짓이 아니냔 말이다. 여기서 데카르트의 확실한 존재명제인 코기토 에르고 숨에 대해서 말을 꺼내겠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를 데카르트는 확실한 명제로 믿고 있다. 이 명제는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내 모든 의심에 휩싸이고 또 남의 생각을 알 수 없어서 더욱 홀로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생각을 떨칠 수 있게 해주고 오늘부터 존재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일지 모른다. 의심이라는 생각과 사유 때문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결정 짓는다고 해도 정말 무언가에 의해 조종당해서 내가 존재한 다음 그렇게 의심하게 끔 만들어 놓은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솔직히 다 떨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생각을 떨칠 수 없기에 다음부터는 데카르트의 성찰이 잘 읽혀지지도 않는다. 만약 지금 내가 떨칠 수 없는 그 생각이 참이면 데카르트가 확신한 그 존재명제는 100% 참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궁금하니깐 더 잘 읽혀져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고 머릿속이 빙빙 돌기만 한다.
{이 시대에 가장 뛰어나 카리스마적 연기력을 지닌 게리올드만. 아니다. 이 시대가 나은 최고의 연기파 배우 게리올드만.나는 레옹에 나온 그의 연기력에 빠져 그의 팬이 되지 않을수 없었다. 뛰어난(?)악역. 또한 드라큘라에서는 뛰어난 연기력에 흡입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그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게리올드만은 남부런던의 뉴크로스에서 1958. 3. 21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7살이던때에 집을 나갔고 그는 어머니와 두 여자형제들과 함께 자랐다.그는 그이후로 아버지를 거의 만나적이 없으며 몇 년후 그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으로 사망했다. 16살 때 학교를 중퇴한 게리는 스프cm용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부터 문학을 읽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자신이 피아노를 연주할꺼라고 생각했지만 곧 그후 그에게 연기를 가르켜준 드라마선생인 Roger Williams를 만나게 된다. 아마 그를 만남으로써 그는 예술적 재능이 꽃피기 시작했을 것이다. 또한 몇편의 잘알려지지 않는 영화에 출연한후에 게리는 1986년 로 영화계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연극무대에 섰다 .펑크밴드 '섹스피스놀즈'의 베이스주자 시드비셔스의 파격적인 음악과 사랑을 그린 영화 로 평론가들에게 격찬을 받으면서 그의 이름을 영화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뎌 그는 1991년 에서 케네디의 살인용의자 오스왈드를 연기하여 아카데미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케너디의 저격범 오스왈드와 프란스시코 코폴라 감독의 에 주연으로 발탁되어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다. 또한 그는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명성을 얻는데 그는 그는 첫 작품인 Nil BY Mouth 가 1997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정된다. "Nil By Mouth"는 폭력적인 범죄와 마약상들의 암거래 속에서 타락해버린 런던 남부 슬럼지역을 그린 영화다. 그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소진해가는 인간 군상을 솔직하게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그 유명한 의 장면들도 솔직한 것이 아니다. 나 을 봐라. 그렇게 매력적인 중독자가 어디 있나? 진짜로 당신이 그렇게 마셔댔으면 똥구멍에서 피가 나올 것이다. 나는 내가 아주 잘 아는 주제를 다룬 셈인데, 내가 한때 그런 곳에 몸담고 있었고 그렇게 살다가 그 때문에 죽어가는 숱한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우리는 이런 것들을 낭만화하려는 경향이 있고 나는 그 번지르르한 것들을 모두 떨궈내고 싶었다.”얼마나 멋진가!~그는 영화속에 그려지는 모습을 현실로 이끌려고 했다는 점..아마 그래서 그의 연기력도 뛰어나지 않다싶다. 아마 그는 그 영화속에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듯 하다. 또한 그는 비틀즈와 마찬가지로 런던 빈민가가 낳은 세계적인 스타였던 것이다. 알코중독자 아버지는 7살 때 집을 나갔다. 거칠고 황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 말콤 맥도웰은 하나의 우상이었다. 맥도웰이 초기에 연기했던 반항적인 배역들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는 말콤 맥도웰이 노동계급 출신인 탓에 영국에서 배우생활을 하는 데 장애를 겪고 있다고 믿었다. 로열 코트 씨어터 출신 으로 정통 영국 연극계를 통과한 게리 올드만이마침내 진로를 아메리카로 바꾼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치 메이플라워호 선상의 박해 받는 신교도들처럼. “그래서 자진해서 외국생활을 시작했고 뉴욕에 사는 것이다. 영국에서라면 나는 결코 복잡미묘한 왕자 드라큐라 역을 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는 계급문제를 얘기할 필요가 없다. 계급적인 고정관념이 두터운 영국에서는 내 경력이 일정한 한계 지점에 이르렀다고 느꼈다.난 노동 계 급의 역할만 많이 했다. 평생 시드 비셔스나 조 오튼 역만 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말한다. 그의 특징중에 하나는 즉흥으로 작품을 고른다 로즈 브루포드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극단에서 활동하던 그가 은막에 데뷔 한 것은 1986년. 영국의 전설적인 펑크 밴드 ‘섹스피스톨즈’의 베이스 주자 시드 비셔스의 파격적인 음악과 사랑을 그린 영화 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는 종종 처음 시나리오를 훑어볼 때 한줄의 대사에 끌려 작품을 선택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난 ‘나는 당신을 찾기 위해 시간의 대양을 건너왔어’라는{{대사를 한줄 읽자마자 드라큐라를 연기하고 싶어졌다. 에서는 당신, 사랑에 대해 알아? 당신이 사랑을 소유하는 게 아니야. 사랑이 당신을 소유하는 거야’라는 대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잭 그리말디를 연기하고 싶어졌다.”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에서 맡은 열정적인 흡혈귀 역이나 의 섬세한 베토벤, 의 딤즈데일 목사 역 등에 출연하며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개성적인 인물 창조에 뛰어난 그가 관객들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된 것은 연속적으로 몇 작품에 걸쳐 도발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면서부터. 올드만은 의 탐욕스런 마약상 , 의 타락한 형사, 의 새디스트적인 간수 등 파괴적이면서 어딘가 위태로운 느낌을 주는 역을 맡아 어두운 카리스마로 보는 이를 매료시켰다. 또한 그는 영감으로 연기한다. 작품의 선택이 즉흥적인 만큼 연기도 순간적인 영감에 의존한다.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의 피터 메닥 감독은 게리 올드만에 대해 즉석에서 캐릭터에 빠져들어 연기해 낼 줄 아는 배우라고 평했다. 올드만은 “처음 한번을 연습해 보면 그 역을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 하는 감각이 생긴다. 어두운 방에서 심사숙고하며 20분씩 보낼 필요는 없다. 한번에 얻은 감각대로 밀고나가는 거다. 카메라가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촬영을 시작하는데기다려!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데니스 호퍼, 숀 펜, 에드 해리스 등등 정말 괜찮은 배 우 몇몇과 공연한 적이 있다. 그들이 연기하는 것도 내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연기에 대해 지나치게 분석하는 것은 오히려 올드만을 불안하게 한다. “나는 순간의 재미를 느낀다. 연기는 섹스와 같다. 미리 너무 많은 생각을 하거나 지난 후에 지나치게 반성하는 것은 압박감을 준다 .”사전에 많이 연구한다면 그 작품은 신선미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 그의 말.“이전에 나는 연기를 통한 감정 표현이 일종의 치료라고 생각했다. 카타르시스라고 말이다. 그러나 격정적인 장면을 연기하면서 모든 감정들을 흔들어 눈물, 분노, 혹은 그 밖에 무엇이든지를 표현해내도 결국 실제로 배출된 것은 거의 없다. 이런 감정 표현은 치료라기보단 고통이다.”연기가 고통이라면 올드만에게 음악은 무아경의 엑스터시다. 그는 각각의 배역을 준비하기 위해 다른 유형의 음악들을 고안해낸다. 를 위해서는 랩 음악을, 을 위해서는 ‘프랭크 시내 트라’의 음악을 준비했다. 그는 대화 속에서 멜로디와 리듬을 찾아낸다.“훌륭한 글들은 모두 음악적 감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 배우가 아니라 음악가로 살았더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음악은 가장 뛰어난 예술 형식이다. 음악은 즉흥적으로 작용한다. 모차르트의 곡을 들으면 머리털이 곤두설 만큼 짜릿함이 느껴지지 않나. ”그의 이런 모습은 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과 닮은 데가 있다. 의 형사 역시 엽기적인 살인의 순간에 병적으로 음악에 심취하는 역할이었던 것.“음악은 관능적이고 섹시하기까지 하다. 최상의 연기를 한다면 그럴 수 있을 거다. 왠지는 모르지만 난 어느 날 일어나서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더이상 악보를 연주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게리올드만은 또한 유전인자 탓인지는 몰라도 그 역시 한때 알코올 중독에 빠졌었다. 아마 그 때문이었던지 그는 두번 결혼하고 이혼했다. 여배우 레슬리 맨빌과 우마 서먼이 그의 전 부인들. 현재 첫부인과의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다. 그 이후에도 을 찍으면서 공연한 이사벨라 롯셀리니와 사랑에 빠져 비공식적으로약혼까지 했었지만 지금은 헤어진 상태다.
부정의한 법을 준수해야 하는 이유현대의 민주적인 사회체제에서 우리 사회가 정의로운 제도에 따라야 한다는 원리에 합의한다고 가정할 경우 우리가 정의로운 제도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자명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부정의한 법에도 우리가 준수를 해야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롤즈의 정의론에 살펴보면서 부정의한 법을 준수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보고 현대 사회에는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 대해서 논의해 보겠다.롤즈의 정의론에 의하면 일련의 합의과정에서 부정의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우리가 정의로운 입법에 대한 어떤 기준을 갖는다고 가정한다 해도 제정된 법이 정의로운 것임을 보장할 만한 현실적인 정치적 절차가 없다고 말한다. 단순한 분배의 게임과 같은 (예를 들어, 사과를 똑같은 크기로 나누든가 아님 케익을 똑같이 나눌 경우)에는 언제나 정당한 결과를 가져올 절차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경우는 완전한 절차적 정의의 예에 속한다. 또 다른 한가지 경우는 공정한 절차만 수행된다면 그 결과는 어떤 것이든 상관이 없는 경우인데 이 경우는 절차의 공정성이 경과에까지 미치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를 순수한 절차적 정의에 속한다.입법의 과정은 형사 재판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절차적 정의의 경우로서 다른 두 경우와는 다른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이며 결과를 평가하기 위한 기준도 제시되어 있다.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정의롭고 효율적인 법체계가 제정될 것을 보장해 줄 절차를 구성할 수 없다는 점이다.{) J.R, 『사회문제 제문제』, 황경식 옮김(서울 : 서광사, 1977), 226쪽 참조.그렇기 때문에 정의로운 헌법하에서도 부정의한 법이 제정되고 정의롭지 못한 정책이 시행될 수 있다. 근데 문제는 이런 일련의 합의가 민주주의 원칙인 다수결에 의해서 정해지기 때문에 부정의한 것 또한 다수자의 의견에 의해 우리는 그걸 따라야만 하는 의무가 생성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수가 입법한 것에 대해서 따라야 의무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있는데 롤즈는 다수가 입법한 것에 대해서 책무와 의무를 갖기는 하나 그렇다고 다수가 입법한 그 자체를 정의로운 것으로 간주해야 할 의무나 책무는 갖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법이 정당하게 제정된다 할지라도 반드시 의사 결정이 올바르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까닭에 시민들이 그 행위에 있어서 민주적인 당국의 판단에 따른다고 할 지라도 자신의 판단을 그것을 예속시킬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만일 자신의 판단에서 볼 때 다수자의 입법이 어느정도 부정의를 넘어 버렸을 경우에는 시민들은 시민 불복종을 고려한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더러운 부유물처럼 떠 있는 목소리와 주장과 구호와 이념들 밑에 도사리고 있는 유교적 권위, 그리고 그것 앞에 엎드리는 타협, 그래서 만들어지는 불공평과 불투명함들. 그 본질들을 해제하고 찢어내고 씻어내지 않는다면 우리들 삶의 나무는 가지를 뻗지 못할 것이며 푸른 잎이 돋아나지 못할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이끼나 버섯처럼 칙칙한 그늘 밑에서 잠시 돋아났다가 스러지고 말 것이다. 이제 알고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우리사회 곳곳에 검은 공팡이처럼 자라고 있는 유교의 해악을 올바로 찾아내고 솎아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이런 유교의 해악을 찾아낼 기회가 없었다. 한일합방, 해방, 전쟁, 쿠데타, 지역 싸움, IMF 등등 정신을 차릴수 없을 만큼 떠밀려 온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100년도 더 늦은 오늘날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자체만으로도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아직도 그것을 끌어안고 나름의 방법과 위안을 찾는 우리의 어리석음은 우리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문화란 카멜레온보다도 민감하게 주변에 반응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의 집합체다. 그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인간군상들이 새로운 외부환경에 적합하도록 유연하고 탄력있게 변해갈 때 그 문화는 더 건강해지고 매력적인 것이 되어 주변으로 쉽게 확산된다. 그러나 멍청이들로 가득해 새로운 세계의 패러다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시름시름 썩어갈 때, 내부에는 혼란과 기만이 가득하게 되고 외부의 건강한 문화체의 공격을 받아 심한 타격을 입거나 때론 절명하고 만다. 이제 한국사회를 지탱해온 유교 문화의 수명은 끝났다.IMF가 터지기가 무섭게 사회 전반에 박정희 신드롬이 일었다. 근면과 희생과 절약의 미덕 말이다. 문제는 미래 사회로의 진입 실패에 있는데 답은 박대통령의 관 뚜껑을 열어 꺼내고 있었다. 이는 우리 사회 전반에 드리운 과거 지향의 정서가 다시 한번 터져나온 것이다. 한국인들 뇌리 속에 너무도 강렬하게 뿌리내린 온고지신 의 강박관념이 다시 한 번 설교를 시작한 것이다. 이런 뒤돌아보기 문화 로 인해 한국인들은 오래도록 미래를 보는 눈을 갖지 못했다. 종갓집 맏며느리는 새해가 다가오면 그 해에 지내야 할 제사의 음력 날짜부터 헤아려 달력에 수십 개의 동그라미를 그려넣는다. 이미 새로운 1년은 과거로 가득 차버리고 내일은 어제의 장례식 기억을 되살리는 데 필요한 시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자신의 인생은 없는 것이다. 또 기껏 미래를 위한 행동이라고 해봐야 묘자리 미리 봐두는 차원에 머물고 있다. 늘 미래를 꿈꾸어도 아름다운 내일을 만들어 내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런데 구성원 거의 모두가 늘 어제와 과거를 기억하며 살아온 이 사회. 이들이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는 미래 사회를 올바로 예측하고 적응해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노새가 언젠간 귀여운 당나귀를 분만하리라는 믿음을 갖는 것만큼이나 순진한 일일지도 모른다.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유교 문화는 조용히 움직여 그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 자체를 부식시켜 마침내 붕괴에 이르게 한다. 그것은 마치 가랑비처럼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차츰차츰 사회구조를 부식시켜 마침내 끔찍한 붕괴를 초래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것이 갑자기 닥친 재앙이며 네 탓이라고 야단법석이다.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은 붕괴의 원인이 유교 문화 내부에 있었던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고 한 이유는 새로운 대안이라는 것이 흔히 도덕 의 깃발을 다시 힘차게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힘 의 사용이 상식과 법, 그리고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시스텀 속에서 투명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프로그램, 즉 유교 문화가 만든 권력 구조 속에서 발생했음에도 다시 한 번 도덕으로 돌아가라는 호들갑과 함께 다시 유교 문화 속으로 스스로 기어드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데 있다. 도덕의 깃발을 힘차게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그 사회는 다시 확실한 붕괴의 사이클로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한국인들의 뇌리속에 자리잡은 효도는 완전히 일방적 게임이다. 겉보기에는 따뜻한 정이 이고, 가정의 화목을 지탱해가는 아름다운 미풍 양속처럼 보인다. 물론 한때는 가정의 따뜻함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역기능의 해소에 관심을 기울이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되었다. 효도는 자식들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해드려야 하는 일방적 희생의 위험 부담이 있는가 하면, 받는 사람도 자신의 처지에 걸맞는 적절한 처방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희생당하기는 마찬가지다. 효도는 그것을 하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있어 적절한 안전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 무한 책임론이다. 이런 맹목적인 효도의 이름 아래 적지 않은 노인들이 방안에 수감되어 있든지 아니면 원치 않는 손주들까지 봐야 하는 사회 봉사(?) 명령까지 받고 있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로 그들은 손주들 뒷바라지를 즐기지 않는다. 많은 젊은이들이 노인들이 내 아이를, 즉 손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집에서 노시면서 아이들을 봐주시기를 희망한다. 때로는 이것을 효도의 한 덕목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노인들도 노인들의 인생이 있다. 그들도 부부끼리 뽀뽀하고 싶고, 여행하고 싶고, 맛있는 것 먹고 싶고, 좋은 옷 입고 싶다. 그러나 효도가 이들의 마지막 인생을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그들은 이제 인생의 마지막 시간대를 모든 일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가볍고 건강하게 마무리할 삶의 권리가 있다. 경제 문제 다음으로 심각한 것이 노인들의 여가활동 문제라는 지적은 이런 점에서 매우 중요해 보인다.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정년은 점점 짧아지면서 사회적 의미에서의 노인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각 개인에게 적어도 20년, 30년의 노년기가 주어진다는 의미인데 , 이 기간 동안 손주만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니겠는가? 치매환자들이나 중병환자들의 간호까지도 효도의 미명 아래 모두 가정에서 해결할 것을 이 사회는 강요하고 잇다. 양로원 이야기를 꺼내기 무섭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주거 지역마다 전문간호사와 레크리에이션 담당자가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노인들이 마음껏 쉴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 까? 물론 가족들은 수시로 드나들 수 있고 손주들도 수시로 드나들 수 있을 것이다. 노동력을 잃은 노인들의 노후문제는 진작부터 사회가 맡았어야 할 숙제였다. 서구의 양로원을 비웃으며 효도의 가치를 자랑스러워하던 우리 사회의 노인들. 이제 그들의 처지는 한여름 노래를 부르던 베짱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전체 노인의 85.9% 이상이 건강에 문제가 있음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효도가 아닌 구체적 의료서비스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이 현재 약 30만명의 양로 간호사를 국가 차원에서 배출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노인들에게 식사를 배달하도록 하겠다는 소식은 한없이 우리를 부럽게 만들고 있다. 일본인들은 양로원이라는 말 대신 노인의 홈 이라고 부른다. 장애자를 첼린지 맨 으로 불러주듯이. 바로 이것이다. 노인들의 문제는 효도로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와 사회에서 제도와 설비와 관심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제도와 설비 마련에 더딘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우리 사회가 이제껏 가장 아름다운 가치로 숭상해왔던 효도에 대한 터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가슴속에서 거품처럼 부글대는 이 문제를 숨기면 숨길수록 희생자는 점점 많아져간다. 시대는 변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효도의 이름 아래 빚어지는 억지가 아니다. 노인과 자녀들 모두의 사랑이 상처를 입지 않을 균형 있는 제도다. 그것은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사랑의 고귀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빚어낼 수 있는 일종의 예술품일 것이다.
칠인의 사무라이({七人の 侍)1954년 도호 제작, 160분(오리지널 203분)제작 : 모토기 소지로각본 : 하시모토 시노부, 오구니 히데오, 구로자와 아키라촬영 : 나카이 아사카주음악 : 하야사카 후미오구로자와는 를 통해서 영화미학에 있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정점에 서게 되었다.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위치는 확고하게 되었다. 1979년에 있었던 일본 비평가들이 선정하는 일본영화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뽑힌바 있는 는 지금도 세계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 베스트 텐에 들어가있다. 구로자와는 에다 자신의 영화적인 모든 재능을 쏟아 부어 위대한 걸작을 창조했다.그럼 이 작품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때는 일본이 내전으로 혼란에 빠진 16세기 말, 서양의 중세기사처럼 명예로운 직업이 있었던 사무라이 계급이 총과 새로운 군사 전술학이 나타남으로써 쇠퇴해 가는 과도기적 시기이다.해마다 산적들의 침략을 받아 양식을 빼앗기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잃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번에도 추수가 끝나면 그들이 쳐들어 올 것이라는 걸 안 농부들은 사무라이들을 고용하기로 결정한다. 몇 명의 농부가 사무라이를 구하러 나서지만 세끼 음식과 잠자리와 싸우는 재미를 제공하는 것 외에는 보수가 없는 일이기에 쉽사리 구하지 못한다. 천신만고 끝에 가까스로 간베이를 비롯한 일곱 명의 주인 없는 사무라이를 구해서 마을로 돌아온다.이 사무라이들은 마을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등 산적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각자 개성이 강한 사무라이들과의 마을 사람들은 상호 미묘한 관계로 잠시 갈등을 겪지만 산전들이 침입하자 농부와 사무라이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그들을 전멸시킨다. 여기서 네 명의 사무라이와 일부 농민이 희생된다. 봄이 오자 살아남은 세 명의 사무라이들은 평화롭게 농사를 짓는 농민들을 뒤로하고 그 마을 떠난다.이상의 내용을 가진 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집단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가. 사무라이(7명) - 보호자(호위병), 피고용인(정의의 수호자)나. 농 민(100여명) - 피보호자, 고용인다. 산 적(40명) - 침략자이들 세 집단간의 상호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먼저 산적들은 자신들이 먹고살기 위해 농민들을 약탈하려고 한다. 농민들 역시 식량을 뺏겨 굶지 않기 위해서는 기필코 그들로부터 마을을 지켜야 하다. 그러나 자기들 힘으로는 마을을 지키기 어려워 결구 사무라이들을 고용한다. 주인 없이 떠도는 사무라이들은 자기들이 먹고살기 위해 농민들에게 고용된다. 물론 일부 사무라이들은 단순히 먹는 차원을 넘어 명예와 무사도 정신 때문에 산적들과 싸우지만, 결국은 싸우는 행위 자체가 그들의 생존 근거다. 농민들의 이야기부터 시작되고 있지만 구로자와가 강조하고 있는 집단은 사무라이들이다. 농민들이 산적들에게 수탈당하는 상황은 사무라이들의 휴머니즘적인 정의 실현 행위를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7인의 사무라이들에게 각자 개성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반면, 농부들에게는 아내를 산적들에게 빼앗긴 리키치, 사무라이에게 적대적인 만조와 그의 딸 시노, 그리고 모주케와 족장 기사쿠 외에는 거의 성격을 부여하지 않는데서 알 수 있다.이 영화를 보면 서구비평가들이 놀라워하는 그의 테크닉과 형식의 완벽성을 보여주는데 구로자와의 카메라는 빠르고 힘차게 움직인다. 또한 마틴스콜세지의 카메라가 다규멘터리적으로 흔들리듯 움직인다면, 구로자와는 매끄럽고 세련되게 움직인다. 그는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인물들의 성격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기쿠요치와 같이 쾌활하고 덜렁대는 인물이 등장하면 카메라 역시 가벼워지고 움직임이 많아진다. 반면에 간베이나 족장 기사쿠같이 권위적인 인물들이 나올 때는 카메라는 고정되고 움직임도 조심스러워진다. 또 그는 극적인 상황 역시 카메라의 움직임을 강화시키곤 한다. 이런 면들은 현대 영화에서 많이 차용되고 있는 기법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춘향뎐 을 보면 이몽룡의 암행어사로 출두하는 장면이나 쉬리 한석규와 김윤진이 서로 총을 겨누는 장면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