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까지 뮤지컬을 한번도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배우들에 대해서 일종의 환상적인 기대를 품고 있었다. 춤 하나, 노래 하나, 그리고 연기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어려운데(이는 우리 나라 배우들과 가수들의 현황을 보면 알 수 있다) 뮤지컬 배우들은 이 세 가지를 모두 소화해내는 완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난 소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가수나 배우가 실제 TV나 영화에 나오는 스타 지향적인 골빈 이들보다(물론 모든 배우나 가수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나의 생각이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현재 스크린이나 TV에 얼굴을 비치는 이들 중에는 정말 한심한 사람들이 많다) 경험도 더 많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는 실력파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뮤지컬 배우들은 TV에 얼굴을 비쳐서 인지도를 높이기보다는 좁은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데 더 열심이지 않은가?(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해, 그리고 뮤지컬 배우라는 사람들에 대해 막연한 동경과 기대를 함께 품고 있었던 것이다.이러한 기대의 허와 실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부터 나름대로 공연정보를 뒤적거려보기도 하고 주변 선배나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시간을 내서 뮤지컬 공연을 관람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일을 하는데 시간을 써버려서'였다. 대학에 들어가면 영화보다는 뮤지컬이나 연극 등 실황공연을 더 많이 보러 다닐 것이라고 그렇게도 굳게 다짐했건만 결국 2년이 다 지나가도록 1편도 제대로 못 본 꼴이었다. 그런데 마침 이 '현대 문화론'이라는 과목의 숙제는 내게 빠져나갈 수 없는 행복한 올가미를 던져주었다. 내가 평소에 체험해 보고 싶어했던 현대문화 중 하나가 뮤지컬이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시간이 없네', '귀찮네' 하고 뮤지컬 관람을 미뤄만 왔던 내게 적어도 '숙제를 위해서 한 편은 봐야한다'는 게다가 시한이 있는 숙제였기 때문에 난 드디어 내 생애 처음으로 그토록 기대하던 뮤지컬을 보러 가게 되었다.뮤지컬 '의형제', 이는 정말 잊을 수 없는 공연이었다. 일단은 이번이 선배 언니가 '의형제를 보면 뮤지컬의 진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어 설레는 마음으로 가서 보게된 내 생애 첫 번째 뮤지컬 관람이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의형제'라는 뮤지컬이 지금까지 내가 뮤지컬에 대해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었던 바를 확인시켜준 멋진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처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이 공연을 '정말 잘 봤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뮤지컬 '의형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우선 뮤지컬 '의형제'의 전체적인 느낌은 참 따뜻했다. 솔직히 공연을 보기 전에는 '의형제'라는 제목을 보고 이것이 갱단 혹은 폭력배와 관련된 뮤지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찜찜했다. 게다가 소책자에 나와있는 사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두 명의 배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찍은 것이어서 더욱 그랬다. 특별히 그런 소재를 다룬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처음 보는 뮤지컬인데 과연 이것을 내가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기우였다. '의형제'는 한날 한시에 한 어머니의 배에서 나온 쌍둥이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는, 지극히 인간미가 넘치는 뮤지컬이었다. 헤어진 쌍둥이가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기 때문에 겪는 아픔과 그들 나름의 고민, 인생관을 재치 있는 대사와 노래, 춤으로 표현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무남 : 내랑 눙깔사탕 나놔 묵는 제일 친한 동무는못 읽는 간판이 한 개도 없지언제 보아도 깨끗하고 단정했었지내도 깨끗한 옷 입고, 말도 멋있게도 좀 하고내랑 제일 친한 내 동무처럼무남&현민 : 내 동무, 내 친구현민 : 욕쟁이,구는웃기는 얘기도 무진장으로 알지언제 보아도 더럽고 지저분했지만나도 제기도 잘 차고, 옷에 흙도 좀 묻히고나랑 제일 친한 내 친구처럼현민&무남 : 내 친구, 내 동무'일요일 오후 - 내 동무' 중에서....그 중에서도 쌍둥이 형제가 7살 정도의 어린 나이에 처음 만나서 의형제를 맺고 놀다가 자신들의 차이를 인식하고 부르는 노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이라서 빈부차이나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칭하며 스스럼없이 어울려서 놀기는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어쩐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객석의 관객 모두가 웃으면서 들었던 그 노래가 내게만큼은 서글프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 노래에서 쌍둥이 형제 각각이 쓰는 단어나 말씨는 그들이 어른으로 성장했을 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지에 대한 암시를 주는 것 같아 다음 전개에 은근히 기대를 걸게 했다.'의형제'는 1막과 2막으로 나뉘었는데 1막은 쌍둥이들의 어린 시절을 그렸고 2막은 그들의 사춘기, 성인기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나는 이 중에서 1막을 더 재미있게 보았다. 두 소년이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개구쟁이 짓을 하는 장면들, 어린아이의 순진함을 돋보이게 했던 맛깔스러운 사투리 대사, 두 아이를 따로 키우는 어머니들의 심정묘사 등이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1978년 생이기 때문에 1950년대 사람들(이 뮤지컬의 시대적인 배경은 1950년대부터 1979년까지이다)의 생활상이나 사고방식을 모른다. 혹 아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옛 문헌이나 역사책에 쓰여진 글들,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말씀을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인 것뿐이다. 또한 나는 어릴 때 지방에서 살았던 적도 없고 형제도 하나뿐이다. 이렇게 나는 극 중 인물들과 별로 통하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1막에서 나 자신을 관객으로서의 주변인이 아닌 주연배우와 합치된 주인공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쌍둥이 중 한 명인 '현민'때문이었다.쌍둥이 중 한 명인 '현민'의 생활은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했다.난 맏딸로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난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소위 좋은 음식만 먹고, 좋은 옷만 입으며, 좋은 생각과 행동을 하고, 좋은 책을 읽고, 나와 비슷한 '좋은' 친구들만 사귀어야 했다.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 때도 절대로 옷을 더럽히면 안되었고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예의바른 어른의 말씨를 흉내내어야 했다. 이 모든 것들은 '현민'이라는 인물과 거의 일치했다. 게다가 '현민'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와 생각이나 행동 등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해서 난 1막을 보는 내내 가슴이 뜨끔뜨끔한 것을 느꼈다. 지금은 부모님이 내게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으신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부모님과 수없이 충돌하고 갈등했지만 어쨌든 난 현재 '나 자신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데 부모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특별히 문제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난 이런 나의 모습을 생각하며 '현민' 또한 나처럼 자라게 되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을 가졌다. 극적인 효과를 노리는 연극적 특성 때문인지 결국 그 기대는 빗나가고 말았지만...비교적 시간의 흐름이 천천히 진행되었던 1막에 비해 2막은 대략 10분마다 한번에 3, 4년씩 휙휙 지나갔다. 쌍둥이 형제가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을 거쳐 어엿한 성인이 되기까지 30분도 채 안 걸린 것 같았다. 한정된 시간 내에 의도했던 바를 보여주고자 하는 공연의 특성상 시간의 흐름은 빠르게 할 수도, 또한 느리게 할 수도 있는 가변적인 요소겠지만, 1막에서 2막으로 넘어오면서 갑자기 그 흐름이 두 배 이상으로 빨라져 극의 전개를 따라가는 데 조금 무리가 있었다. 1막이 어린 시절의 추억 등 주로 쌍둥이 형제를 둘러싼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2막은 역사의 거대한 물결 속에 휩쓸린 쌍둥이 형제의 모습을 그려내어 상대적으로 역사적인 사건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난 우리 나라 근대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한번이라도 제이 없었기 때문에, 속사포를 쏘아대듯 빠르게 지나가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현민과 무남의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생활상을 통해, 10월 유신뿐만 아니라 좋은 의도의 것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새마을 운동 등의 역사적 사건들이 어쩌면 소위 권력자들에 의해 그 실상은 감추어지고 허울좋은 명분만으로 포장되어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현민과 무남이 둘 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며 다시 한번 확인해볼 수 있었다. 여하튼, 역사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한국의 근대사에 대해 거의 백지상태에 가까운 무식쟁이가 무려 30년간의 역사를 배경으로 다루는 극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 흐름만 허덕대면서 따르다보니,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 좀 하고 올걸' 하는 답답함과 아쉬움이 가슴을 콕콕 찔러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의형제'를 보면서 인상에 남았던 것은 단지 극의 내용뿐만이 아니었다. 무대장치 또한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보통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는 무대가 일정하게 정형화되어있고 소품에 의해 공간이 변화된다. 그런데 '의형제'에서는 극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에도 수시로 무대가 바뀌었다. 극중 인물이 대사를 말하면서도 무심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닫듯 자연스럽게 무대를 바꾸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열고 닫거나 혹은 밀고 닫음으로써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게 여기저기 문 형식으로 만들어놓은 무대배경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다리였는데 이는 1막에서나 2막에서나 주인공들의 차이를 공간적으로 구체화하는 구실을 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리는 현민과 무남의 신분적 차이나 빈부의 차이 등을 나타내는 경계와 기준을 상징하는 중요한 배경의 역할을 했다. 공연장소인 학전 블루의 무대가 고작 몇 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협소한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상반된 이미지를 다리라는 소재 하나로 극복하는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