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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말 어원 평가B괜찮아요
    [ ㄱ ]1. 가락가느스름하고 기름하게 토막진 물건의 날개 [어원 √갈/가링[分,岐]+악[접사]. 변화 *갈악/가링악> 가락(능엄 10:42)> 까락(박언 상:14)> 가락. * 중세어에서 '가링'은 현대어 '갈래'에 해당하고, '갈다'는 '(밭을) 갈다'의 의미로 쓰이는 반면에, 중세어 '까링'는 현대어 '가루'에 해당하고, '까다'는 현대어 '갈다[硏]'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 어휘는 중세어에 이미 분화되었다고 할지라도 어원적으로 같은 계통에서 파생된 어휘로 생각된다.]2. 가람강을 뜻하는 고유어 [어원 √까-(分,岐,細,長]+잎[접사]. 변화 *까잎> 까링(석보 19:23)> 가람.3. 가랑-비가늘게 내리는 비. [어원 √까링[粉]+√비[雨] 변화 *까링비> 까링힝(월석 1:36)> 까랑비(역어 상:2)> 가랑비. * '가랑비'에 대한 중세어의 형태 '까링힝'를 기준으로 하여 접사 '앙'은 설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어에서 '앙'은 '노랑, 빨강, 가망' 등에서와 같이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접사이므로 근대 국어의 시기에 접사의 첨가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4. 가마니곡식이나 소금 등을 담기 위하여 짚으로 만든 용기 [어원 (일) . 변화 (일) [jamasu]> (변음)가마니]5. 가시집에서 는 또는 를 뜻하는 말이다. 은 이란 말이다.는 본래 의 옛날말이다. 옛날에 화랑을 라고 하였다. 화랑은 처음에 처녀로 조직하다가 나중에는 의 차림을 한 총각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되었기 때문에 처녀아이를 라고 부르게 되었다.의 이두식 표기인 에서의(처음에 처녀를 나타내기 위해서 쓴 것이고 화랑이 차림을 한 남자로 되면서 →郞으로 고쳐쓰게 되었다,) 는 의 뜻으로 그 옛날말인 에 대한 뜻옮김이며 은 에 대한 소리옮김이다.에서의 는 무리를 뜻하는 의 옛형태이다. 곧 는 이라는 뜻이다.오늘도 함경도 사투리에서는 처녀를 뜻하는 말인 , (가시나→갓나→간나)가 쓰이고 있다. 의 옛날말인 는 그 후에 안해를 뜻하는 말로 되었다. 는 의 뜻으로 15-16세기까지하는 것은 옛날말인데 오늘은 사투리로 되었다. 의 에서 이 빠져 가 되었다. (걸어지→거어지→거지) 란 빌어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다.16. 김치배추 또는 무 등을 여러 가지 양념에 버무려 발효시킨 음식. [어원 沈菜. 변화 沈菜> 딤칭[ 菜爲菹](훈몽 중:11)/팀칭(소해 1:7)> 짐칭[菹](두창 13)/침칭(동해 하:4)> 김칭[菹菜](물명 3:16)> 김치 * 훈몽자회에 '菹 딤칭 조'란 새김이 있는 것으로 보아 '沈菜'란 한자어는 중세어에 '딤칭'란 형태로 어휘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딤칭> 짐칭> 김치'와 같은 어형 변화를 겪은 것이다. 한편, 중국의 문헌에서는 '沈菜'란 어휘가 발견되지 않으므로, 이 한자어는 우리 나라에서 조어된 것으로 추정된다.]17. -꾼(접미)어떤 일을 전문적,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말. [어원 軍 변화 군(역어보 27)> 꾼. * 원래는 군대와 같이 어떤 일을 무리지어 함께 하는 경우에 접미사 '-군(軍)'을 붙여 그러한 무리를 지칭하였으나, 지금은 무리의 개념은 없어졌다. 근대어에 '상도ㅅ군(역어보 27), 밑장군(역어보 27)'등의 어휘가 나타난다.][ ㄴ ]18. 나으리저보다 지체 높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 [어원 √낫-/내-[進]+을[어미]+이[접사] * 중세어에서 '낫다'는 '나아가다, 나아가게 하다, 바치다'의 의미로 쓰인 말이며, 불규칙 어간으로서 '내-'을 갖는다. 그러므로 지체 높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인 현대어 '나으리/나리'는 본래 '진사(進賜)', 즉 '올려 바친다'는 의미로부터 유래한 말이라 할 수 있다.]19. 느끼다감각이 일어나 인식하다. [어원 √늦[徵兆]+기[접사]+다[어미] 변화 늘기다(천자-석 24)/늣기다(가례 10:48)> 느끼다 * 중세어 '늦'은 징조(徵兆)의 뜻인 현대어 '늪'의 고형이다. '느끼다'의 어원을 이와 같이 분석하면 원래의 의미는 '징조를 감각하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ㄷ ]20. 더위여름철의 몹시 더운 기운 [어원 √덥-[署]+의[접사]다. 마리와 머리의 어원은 인데 이것이 변하여 두 단어가 생겨났다. 는 15-16세기에 , 등을 의미하고 있었으나 그 후 음의 소멸로 이 단어가 와 로 분화되면서 서로 다른 두 개의 단어로 되었다.할 때의 는 결국 를 의미한다.35. 마립간신라 시대 왕의 칭호 [어원 마리[首]+간[長]]36. 마무리일의 끝단속 [어원 마두르-[薺]+이[접사]]37. 마시다액체를 목구멍으로 넘기다 [어원 맛[味]+이[접사]+다[어미]]38. 마침표문장의 끝맺음을 나타내는 문장 부호 [어원 마차[終]+ㅁ[접사]+標]39. 막내여러 형제 중에 맨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이 [어원 막[접사]+나-[出]+이[접사]. 변화 막나이〉막내]40. 만나다서로 마주 보게 되다. [어원 맞[對面]+√나-[出]+다[어미], 변화 맞나다/맛나다〉만나다.]41. 말다밥, 국수 같은 것을 물이나 국물 같은 데에 넣어서 풀다. [어원 믈[水]+다[어미], 변화 믈다〉밑다〉말다]42. 망나니란 말은 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곧 을 이르는 말이었다. 원래 이 말은 지난날 봉건지배층들이 인민들을 멸시하면서 쓰던 말이다.17세기 전반기 농민투쟁의 지휘자 고망난은 이름도 없는 노비였다. 그는 가라는 성은 가지고 있었으나 이름이 없었는데 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양반놈들이 그럴 천대하고 멸시하여 지어낸 이름이었다. 인민들도 막 낳은 놈 곧 못된놈들을 라고 하였다. 봉건사회에서는 사형수의 목을 베는 놈을 라고 하였다. 오늘날 이 말은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멸시하여 이르는 말로 쓰인다.43. 모든이란 말은 라는 뜻을 가진 의 규정형 이 변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은 (이 단어의 별체는 이다)의 어근 에 규정토 이 붙어 굳어진 것인데 이것이 변하여 ,모든>이라는 관형사로 되었다. 은 라는 뜻이다.44. 모래란 말의 옛날 말은 이다. 몰[?]+개[접사], 변화 몰개〉몰애〉모링〉모래의 옛날말 는 여러곳에 널려 있는 것을 한곳으로 합친다는 뜻을 가진다. 는 동사를 명사로 만들어주는 접미사로 , , ,나래(날+애)>에서 것변화 사잎〉사힝〉사흘]64. 살그머니남이 모르게 넌지시 [어원 살금[의태어]+이[접사]]65. 색시새로 시집 온 여자 [어원 새[新]+가시[女] 변화 새가시〉새각시〉새악시〉색시]66. 섣달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달 [어원 설+ㅅ[사잇소리]+딪[月] 변화 섬딪〉섯딪〉섣 딪〉섣달]67. 설마아무리 하기로. [어원 현[幾]+마 변화 현마〉혈마〉설마]68. 세로위에서 아래로 곧게 내려오는 모양 [어원 서+이[접사]+로[접사]]69. 셈주고받을 액수를 서로 따지고 밝히는 일 [어원 세+ㅁ[접사]]70. 사또순수 우리말로 알고 있는 사또는 각 도에 파견된 문무 관리를 이르는 말로 원래 사도(使道)라고 불렸다. 이것이 나중에 변하여 '사또'가 되었다. 지방의 관리나 각 영의 우두머리 되는 관원을 아랫사람들이 높여 부르는 말이다.71. 사리흔히 일본어로 잘 못 알고 있는 '사리'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사리'는 '사리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실같은 것을 흩어지지 않게 동그랗게 포개어 감은 것을 얘기한다. '몸을 사린다'는 말에 쓰일 때는 '어렵거나 지저분한 일을 살살 피하여 몸을 아낀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으나 현재에는 국수나 새끼, 실 등을 동그랗게 감은 뭉치를 가리키는 말로 변하였다.72. 살림한 집안을 운영 관리하는 일을 가리키는 살림이라는 말은 원래 불교용어인 산림(山林)에서 나왔다. 山林은 절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말하는데 이 말이 절의 재산관리만이 아니라 일반 여염집의 재산을 관리하고 생활을 다잡는 일까지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즉 집안의 경제나 생활 등을 맡아 운영, 관리하는 일을 말한다.73. 서울서울은 본래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서라벌, 서벌, 서나벌 등으로 부른 데에서 비롯한 말이다. 서울의 '서'는 수리, 솔, 솟의 음과 통하는 말로서, 높다, 신령스럽다는 뜻이며 '울'은 벌, 부리가 변음된 것으로 벌판, 큰 마을, 큰 도시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서울은 한 나라의 수도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수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다.74.씨/아가씨'가 준 말이라 하겠다.]94. 아양아녀자가 귀염을 받으려고 알랑거리는 말이나 짓. [어원 √아얌(부녀자의 방한용 모자). 변화 아얌> 아양95. 아우동기 또는 같은 항렬에서 나이가 적은 사람. [어원 √앗/애[始,初,小]+잎[접사]. 변화 아힝(훈해 해례:25)> 아잎(천자-석15)> 아으(박언 상:23)> 아우.]96. 앉다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상반신을 세우다. [어원 √앝-[坐]+다[어미]. 변화 앝다(석보 19:6)> 앉다(용가 1:11)> 앉다. * '앝다'는 1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문헌에 나타나며, '앝다'의 활용형 '아자, 아짜니'와 같은 형태에 'ㄴ'이 첨가되어 '앉다'의 형태가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은 유형의 'ㄴ'이 첨가되는 어휘로는 '더디다> 더지다> 던지다'를 들 수 있다.]97. 어른다 자란 사람. [어원 √어르-[交合]+우[접사]+ㄴ[어미]. 변화 얼운(석보 19:1)> 어룬(벽신 1)> 어른. * 고어에는 '-ㄴ, -ㄹ' 관형형이 그대로 명사형으로도 쓰였다.]98. 어리병아리 따위를 가두어 기르기 위하여 채를 엮어서 둥글게 만든 것. [어원 √얼-/얽-[縛]+이[접사].]99. 어리-보기얼뜨고 투미한 사람. [어원 √어리-[愚]+√보-[見]+기[접사]. * '어리다'는 현대어에서 '나이가 적다'의 뜻으로 쓰이지만 중세어에서는 '어리석다'의 의미로 쓰였다.]100. 어머니자기를 낳은 여자. [어원 √엄[母]+아니[접사]. 변화 어마니(월곡 16)> 어머니.]101. 어멈집안의 윗사람이 손자에게 그 '어머니'를 가리켜 이르는 말. [어원 √엄[母]+엄[접사].]102. 어버이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 [어원 √업[父]+엇[母]+이[접사]. 변화 *업엇이> 어버힝(월곡 142)> 어버이.]103. 어설프다꼭 짜이지 못하여 조밀하지 않다. [어원 √얼[迷惑]+설-[未熟]+브[접사]+다[어미]. 변화 *얼설브다> 어설프다. * '얼'과 '설'의 결합시에 ㄹ이 탈락함.]104. 어스름어스레한 상태, 또는 그런 때. [이다.]
    인문/어학| 2001.04.08| 16페이지| 1,000원| 조회(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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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외교] 남북한 통일정책비교 평가C아쉬워요
    남·북한 통일 정책에 관하여Ⅰ. 서 론북한이 최근 아세안지역포럼에 공식 가입신청을 한 것은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북한의 '전방위 개방외교'가 이탈리아와의 수교, 호주와의 복교 등 국가 대 국가간의 양자 관계를 넘어 다자 외교무대로 확대) 동아일보 2000년 5월 12일, 「북, 햇볕 향한 발걸음 빨라진다」에서 인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북한의 정책적 변화는 이런 국제관계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국회의원 총선 앞에 발표된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최고위원인 김정일 주석과의 면담은 북한이 얼마만큼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현상이다. 또한 남·북한간의 스포츠 교류의 재개 또한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분단 후 50여 년 동안 서로 다른 두 길을 걸어왔던 두 나라의 대북·대남 정책의 변화와 통일 정책, 그리고 국제사회에의 대처 방법 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본론에서는 한국의 통일 정책 기조와 북한의 통일정책 기조(대남 적화통일 전략), 남·북한의 통일관과 통일 정책, 마지막으로 현 정부인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 행해진 대북 정책에 대하여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본 론1. 한국의 통일 정책 기조남북한은 분단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고 하는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속에서 적대적 대결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지난 50여년 동안 통일된 민족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시대와 상황에 따라 통일접근방식을 보완·발전시켜 오면서 통일정책과 방안을 꾸준히 가다듬어 왔다. 한국은 북한의 기습 남침전쟁(1950.6.25 ∼ 1953.7.27)으로 수많은 희생과 고통을 치른 역사적 체험을 가지고 있다. 북한은 통일이라는 미명하에 무력남침을 도발하였지만 그 결과는 통일이 아니라 민족적 재난과 분단의 고착화만을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한국정부는 이같은 쓰라린 역사적 경험을 교훈 삼아 통일정책의 핵심적인 기조로 "평화"와 "민주"의 정신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즉,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확대되었다. 김대중대통령은 99년 8월15일 제5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국민의 정부는 남북간 정부차원의 교류가 이루어질 것을 희망한다. 북한은 동족끼리의 대화는 거부하면서 미국과의 협상만 고집하는 불합리한 태도를 버려야 하며 한반도문제는 남북당사자간에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든지 남북당국자간의 대화에 응할 용의가 있고 북한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용의가 있다"면서 남북간의 평화와 협력을 위한 포용정책의 계속 추진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2. 북한의 통일 정책 기조북한이 표방하는 통일은 사회주의 헌법보다 상위 규범인 노동당규약에서 규정한 바와 같이 "한반도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 한국정부가 민족공동체의 번영·발전 차원에서 통일문제를 보아온 반면 북한은 대남혁명전략 차원에서 통일문제에 접근해 왔다. 즉 "先남조선혁명, 後 조국통일" 이라는 정책기조를 견지해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남조선혁명의 핵심은 자유민주체제인 대한민국을 타도하고 북한식 사회주의체제로 흡수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추구하고 있는 대남 혁명전략은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다. 민족해방혁명은 "미 제국주의 침략자 타도" 즉 주한미군 철수를 통하여 한국을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적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것이며 인민민주주의혁명은 한국내 현정권을 타도하여 용공·연북정권을 수립시킨다는 것이다.이처럼 북한은 공산정권 수립이후 지금까지 대남 적화통일전략이라는 기조를 변함없이 고수하면서 한국에 대한 적대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게 있어서 평화통일협상은 수 차례의 경험에서 보듯이 한낱 명분적 구호와 통일전선전술 차원의 투쟁의 연장일 뿐이다.3. 남북한의 통일관과 통일 정책통일을 위한 실천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이유는 위와 같이 기본적인 중심 사상이 다르다는 것에 있지만 그 외에 국내외 여건이 미성숙했다는 점과 통일 문제에 대한 남북간의 기본적 인식과 절차, 방법의 차이가 현저했다는 데 들 수 있다. 우리 나라가 분단된 후 남북한이 어떤 관점으로 통일을 준 1980년대의 남북 관계1983년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 폭파 암살 사건 및 1987년 KAL기 폭파 사건 속에서도 남북간에 통일을 위한 노력이 재개 되었던 시기였다.① 1984. 8.-남북한 교역 및 경베 협력 교류 제의(한국)② 1984. 9.-북한 적십자사측의 한국 수재민에 대한 물자 제공③ 1984. 11.-최초의 경제 회담, 85년까지 5차례 열림.④ 1985년 5.-남북 적십자 8차 회담이 1973년 이후 12년만에 서울에서 개최.⑤ 1985. 9.20-23.-이산가족 고향 방문단 및 예술 공연단 교환 실현(서울과 평양에서 동시 교환 방문)(5) 1980년대 한국의 통일에 대한 노력1988. 7.7.-민족의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① 7.7. 선언의 의의- 남북관계를 동반자 관계로 파악하고 함께 번영해야할 민족 공동체 관계로 규정.-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의 새 시대를 열 것을 제창② 선언의 내용- 남북간 교류 확대, 문호 개방, 대결 외교 종식.- 북한의 노선이나 호응에 관계없이 우리가 먼저 열고, 풀고, 도움으로 실천 수범하겠 다는 일방적 조치 사항.③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1989.9.)- 자주, 평화, 민주의 통일 3원칙 제시- 남북 연합이라는 과도기적 중간 단계의 설정- 대립과 단절의 극복- 남북 연합의 성격은 국가 간이 아닌 민족 내부의 특수한 관계임.(6) 1990년대 한국의 통일에 대한 노력가. 1990년대의 국내외적 변화와 우리 통일 정책의 성과를 볼 수 있었던 시기이다.① 소련과 동부 유럽의 사회주의 체제 붕괴 및 독일의 통일 등 냉전체제가 와해되었다.②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1991.9.)③ 러시아, 중국과의 외교 관계 수립.④ 남북간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의 발효(1992.2.)나. 3단계 3기조 통일 정책(1993)① 내용- 3단계-화해.협력, 남북 연합, 통일 국가- 3기조-민주적 국민 합의, 공존 공영, 민족 복리② 의의- 새로운 국내외 정세 변화의 화해·협력의 기반 조성대북포용정책의 추진상황으로 정부는「평화와 화해·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대북정책의 목표로 설정하고, ①무력도발 불용 ②흡수통일 배제 ③화해·협력 적극 추진 등 대북정책 3원칙에 입각하여 포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오고 있다. 통일을 서두르기보다는 우선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고 화해·협력을 적극 도모해 나감으로써, 남북간 평화공존을 실현시키자는 것이다. 이는 확고한 안보를 바탕으로「평화를 지키는 정책」이며, 북한의 대남 의존도를 증대시킴으로써 무력도발 의지를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는「평화를 만들어 가는 정책」이고, 나아가 남북간 신뢰와 민족동질성을 회복함으로써「평화통일의 기반을 닦아 나가는 정책」이다. 그동안 대북포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온 결과, 한반도 정세가 평화와 안정, 그리고 긴장완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는 외자유치 등 우리의 경제위기 극복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남북간에 화해·협력의 흐름이 정착되고 있는 바, 통일농구대회, 통일음악회 등 여러분야에서 남북간 교류가 활성화되고, 금강산을 방문한 우리 국민이 17만 명을 넘는 등 인적왕래가 획기적으로 증가되었으며, 남북교역도 1999년에는 사상최대치인 3억3천만불을 기록하였다.대북포용정책은 북한의 변화 불가피성, 남북간의 현저한 국력격차,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 등 남북관계의 구체적 현실을 고려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우리가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추진해 나간다면 반드시 성공적인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정부는 앞으로도 서해교전에서의 단호한 대처와 같이 확고한 안보태세를 유지하면서 포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것이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1월 3일 새천년 신년사에서 밝힌 남북간 화해·협력을 통한 한반도 냉전 종식, 그리고「남북경제공동체」의 건설 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한반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주도적인 노력과 함께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를 확보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북한은 탈냉전에 따라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경제난일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금강산 관광을 위한 계약서」를 체결하여, ‘신변안전보장문제’, ‘통신보장문제’, ‘입북료문제’ 등에 합의하면서 가시화 되었다.정부는 1998년 9월 7일 금강산 관광사업을 남북협력사업으로 승인하였으며 2개월여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98년11월 18일 현대「금강호」가 역사적인 첫 출항을 하였다.관광이 개시된 이후 2000년 1월 말까지 171,558명(외국인 76명 포함)이 금강산을 관광하였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1999년 6월 우리 관광객의 억류사건으로 한때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다. 정부는 관광객 억류조치가 남북간의 합의사항 위반임을 북측에 강력히 항의하고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킨 가운데 사업자로 하여금 추가적인 안전보장 장치를 갖추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1999년 7월「관광세칙」과 신변안전보장을 위한「합의서」를 체결하여 관광객 신변안전보장 장치를 재확인한 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었다.아울러 정부는 우리 방북자의 신변안전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각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정부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1999년 9월 정부내 협의기구인「북한방문자 신변안전 대책협의회」를 구성하였다. 또한 정부는 관광도중 관광객들의 각종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수시로 안전시설에 대한 점검을 실시하고 있으며, 사업자가 미비점을 즉각 보완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은 점차 관광코스가 다양화되고 있으며, 관광편의시설도 확충되고 있다. 1999년 11월에는 온천장이 개장되었고, 장전항 부두공사가 완료되어 부두~출입국관리소간 도로만 개통되면 부속선의 이용없이 관광객 이동이 가능해져 보다 편안한 관광이 될 것이다. 금강산 관광지구는 관광기반시설 개발사업으로 확대되면서 종합관광단지로 조성될 전망이다.금강산 관광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면서 남북한간의 협력관계가 확대되고 있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에게 남북경협의 유용성을 인식시켜 남북간의 인적·물적 교류를 확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또한 우리 국민들에게 북한실상을 체험하게 하다.
    사회과학| 2000.12.27| 10페이지| 1,000원| 조회(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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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와 문학 평가B괜찮아요
    Ⅰ. 들어가는 말우리 시대의 예술을 평가하려면 그 속에 반드시 현대 문학과 영화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문학과 영화가 많은 점에서 서로 닮았기 때문에 또 이 두 가지 예술적 표현 형태가 현대의 예술적 반응을 형성하는데 점점 더 지배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가 등장한 이후로 문학이 영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 온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동시에 영화가 문학에 중요한 반향을 일으키고 어떤 면에서는 현대적 글쓰기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로 분명한 일이다. 게다가 영화적 형식과 문학적 형식은 강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영화기법과 문학기법, 영화 비평과 문학비평이 서로에게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문학과 영화를 함께 생각하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광범위한 유사성은 대개 문학과 영화 모두 이야기를 하는 예술이라는 매우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에서 기인한다.위와 같은 문학과 영화의 특성에 바탕을 두고 본론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문학과 영화의 관계, 문학의 영화로의 전환, 그리고 프랑스 문학과 프랑스 영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문학과 영화의 관계1. 문학과 영화역사를 상징으로 풀어내는 재능을 가졌던 헨리 애덤스는 『교육』의 유명한 장에서 강력하지만 차분한 중세의 일치성과, 힘이 넘치지만 혼란스러운 현대의 다양성을 양식화해서 비교하고 있다. 애덤스에게 있어서 중세의 모든 중심 상징은 성모 마리아였고 중세의 열망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모양은 성당, 특히 샤르트르의 성당이었다. 애덤스가 이 성당에서 특히 감탄한 것은 열망을 성취로 표현하는 데서 볼 수 있는 시각적 질서와 조화였다. 그러나 애덤스가 현대로 눈을 돌릴 때 그러한 힘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애덤스는 성당에서 한때 표현되었던 에너지가 자신의 시대에는 기계에서 표출되고 있다는 발전적인 방향의 지적을 마지막으로 하고 있다. 케네스 클라크의 글에서 더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인간은 주어신 시대에와 케네스 클라크의 말이 맞다면 그리고 과학과 기술이 20세기의 창조적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는 형태라면, 기계·광학·필름 화학의 총아인 영화가 가장 중요한 현대 예술의 하나가 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기계의 시대가 기계 예술을 생산한다는 것은 그다지 괄목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 자체가 기계 예술이면서도 더 교묘한 방법으로 기계적 삶에 대한 고도의 비판자로 발전해 나갔다. 조르주 멜리에스의 초기작품에서부터 슬랩스틱의 급격한 상승, 기발한 채플린 영화, 만화 영화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무생물 세계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모습을 영화마다 기록해 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연이라 할 지라도 영화는 인간이 기계의 반역을 정복하는 것으로 대부분 끝난다.이것은 영화의 전형적인 반응이다. 왜냐하면 영화란 것이 20세기의 가장 낙관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철저히 인간적인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기계 시대에 태어난 예술이기 때문에 인간이 기계 시대의 초조하고 급격하고 분열시키는 압력에 가장 위협받을 때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기에 가장 합당한 예술이 되는 것이다.이런 영화와 문학을 연관시키려는 시도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고전'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던 초기 영화 시대로부터 문학영화, 혹은 카메라-펜을 지향하는 오늘날의 경향에 이르기까지 영화제작자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학에 빚을 지고 있다. 에이젠슈테인의 말을 들어 이해하도록 해 보자과거의 모든 문학이 세계사에 위치한 각자의 순간에서 위대한 영화 예술을 낳는 데 공헌했던 것이다. 문학에 대해 오만한 태도를 보였던 생각이 모자란 사람들은 이런 과거의 전통을 보고 뉘우쳐야 한다. 영화는 겉으로 보기에 전례가 없는 예술처럼 보이지만 사실 문학은영화에 너무나 많은 것을 기여했으며 문학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시각 예술이다.우리가 문학을 말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면 즉 문학적 행위에 특별하고 고유한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 글자와 말이라면 그렇다면 영화는 무성영화 시대뿐만 아니라 유성 영화시대에서도 분용하는 매개체와 수단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둘 사이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늘날 영화가 창조하고 확대하는 시각적 문학성은 그리스 시대 이래로 문학과 문화에 연관되었던 언어적 문학성의 확장, 혹은 그것의 또 다른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버전이라고 주장 할 수 있을 것이다.영화는 한때 문학에만 속했던 문체·기법·접근·재료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취해 나감으로써 문학적 탐색으로 어려웠던 생생함과 회화함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영화와 문학의 공동 유산과 기법으로 이 둘의 유사성은 끈끈하게 연결되었다.2. 전환'전환'이라는 용어는 비록 분명하지는 않지만 크로이처의 정의를 빌리면 "책을 된 허구적 텍스트를 극장이나 텔레비전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영화화" 하는 것으로 일단 규정할 수 있다. '전환'이란 개념을 이해할 때 오해하자 말아야 할 점은 '전환'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을 평가 절하하는 의미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문학 작품의 영화화가 갖는 의미나 기능을 논의할 때면 항상 프랑스 영화 비평가 바쟁이 거론된다. 그는 1952년에 이미 「비순수의 영화를 위하여 : '전환'을 위한 변론」이라는 주요 논문에서 다른 비평가들과는 반대로 그리고 분명한 시각으로 문학의 영화적 전환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그가 주장한 것은 문학을 토대로 한 영화들의 전환과정에서 발생하는 '원전에의 충실성'이다. '전환'문제를 둘러싼 토론에서 핵심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원전에의 충실성'이란 용어를 바쟁은 우선 보편적 차원에서 그리고 특별히 문학작품의 영화화와 관련해서 사용하였다. '전환'에는 문학 작품을 원자재로 보는 '전환'유형, 도해로서의 '전환', 변형으로서의 '전환', 기록으로서의 '전환'이 있다.3. 프랑스 문학의 확장으로서의 영화지금까지 알아본 영화와 문학과의 관계, 문학의 영화로의 전환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프랑스 문학과 프랑스 영화와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1) 『 레 미제라블 』 원작: 빅토르 위고/감독: 장 폴 르 샤노아에드워드 사이 되고, 새로운 사회를 원하는 공화파들은 이에 반발해 제2의 혁명을 시도하게 된다. 「레 미제라블」은 바로 프랑스에 두 번째 혁명의 기운이 감돌던 1815년부터 1830년까지의 연대기로서, 당시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를 살았던 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대작 소설이다.「레 미제라블」은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켜, 한때 국산영화로 번안 j제작되기도 했다. 서구에서 제작된 영화로는 아카데미상을 받은 레이먼드 버나드 감독의 1934년작, 리처드 볼레슬라프스키 감독의 1935년작,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1952년작, 장 폴 르 샤노아 감독의 1958년작, 글렌조던의 1978년작, 그리고 1982년작이 있다.그 중에서 니노 벤추라가 주연한 프랑스 영화는 몇군데 사소한 부분을 빼면 원작의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살린 경우로 유명하다. 세 시간 칠분의 이 장편영화는 그 구성이 마치 책처럼, , , , , 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라는 부제도 달려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작품을 장 발자으이 개인사라기보다는 19세기 프랑스 근세사로 보게 만들어주고 있다.이 영화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빅토르 위고의 말이 나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세계의 이 암울한 시대에 인간이란 이름의 존재는 비참하다. 그는 모든 풍토 아래 신음하고, 모든 언어권 아래에서 고뇌한다". 그런데도 장 발장은 죽으면서 "이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레 미제라블」을 관통하는 것은 낭만주의와 인도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 노트르담의 꼽추 』 원작: 빅토르 위고/감독: 게리 트라우스데일「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영화 제목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빅토르 위고의 역사 로망스 「파리의 노트르담」은 표면적으로 꼽추 콰지모도와 집시여인 에스메랄다의 지고한 사랑이야기이지만, 심층적으로는 권력의 압제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그린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노트르담의 꼽추」가 시공을 초월해 만인의 사랑을 받아온 것도, 이 작품속에 「미녀의 1977년도 작품과, 마이클 터크너가 감독하고 앤소니 홉킨스와 레슬리 앤 다운이 주연한 1982년도 작품이 있다. 그 중 1939년도 영화는 중세 파리를 거의 완벽하게 복원했으며 의상과 고증이 훌륭했고, 1957년도 작품은 콰지모드 역의 앤소니 퀸과 에스메랄다 역의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연기가 압권이었다.이들 영화들의 공통점은 우선 콰지모도를 한결같이 흉측스럽고 가련한 인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탐 헐스, 데미 무어, 케빈 클라인이 성우로 나오며 게리 트라우스데일과 커크 와이스가 감독한 1996년도 월트 디즈니 사의 애니메이션에서는 콰지모도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고 남을 도와주는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실제로 빅토르 위고는 우연히 노트르담의 종탑 벽에 그리스어로 새겨진 운명이라는 글자를 보고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위고에 의하면 노트르담은 천상의 낙원과 탐욕의 도시 파리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소외되고 억눌린 계층의 상징인 콰지모도는 그 안에서 지배계급의 억압에 저항하며 가장 지고하고 순수한 사랑을 실천한다. 그것이 왜 이작품의 영화 제목이 「노트르담의 꼽추」가 되었나 하는 이유이다.3)『 삼총사 』 원작: 알렉상드르 뒤마/감독: 스티븐 헤렉프랑스 문호 알렉상드르 뒤마는 공저자의 역할을 한 오귀스트 마르케의 도움을 받아 무려 277권의 작품을 써낸 대작가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에다가 호탕한 성격의 뒤마는 여성편력도 대단했고 돈을 물쓰듯 탕진했으며 1830년에는 혁명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의 그러한 낭만적 성향과 경험은 「삼총사」(1843~44)「몽테크리스토 백작」(1844), 그리고 「철가면」(1845~50)같은 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뒤마는 1851년에는 빚쟁이들을 피해 벨기에로 도망 치기도 했는데, 돈 쓰는 데 큰손인 자신의 모습을 나중에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형상화시키기도 했다.「삼총사」는 1921년 더글라스 페어뱅크스가 주연한 무성영화가 만들어진 이래 미국에서만 다섯 번 정도 영화화 되었다. 그.
    인문/어학| 2000.12.10| 6페이지| 1,000원| 조회(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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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국문학] 춘향전 연구 평가A좋아요
    1.춘향전의 내용분석1)근원설화① 박색설화이 설화는 차정언(車鼎言)의 저 에 전해오는 것으로, 춘향은 원래 미인이 아니고 천하의 박색(薄色)이었다는 것이다. 춘향은 관기(官妓) 월매의 딸로 얼굴이 추물이어서 삼십이 넘도록 통혼하는 사람조차 없었는데 하루는 요천에서 빨래를 하다가 이도령을 보게 되었다. 그 뒤로 연정을 품어 오던 중 병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춘향의 어머니 월매가 계책을 세워 방자를 꾀여 이도령을 광한루로 유인하였다. 월매는 향단을 말숙하게 꾸며 이도령에게 보내 술을 권하여 취하게 한 뒤 술이 취한 이도령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춘향과 잠자리를 함께 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도령이 잠에서 깨어 보니 그 옆에는 박색 춘향이가 있었다. 월매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오는 이도령으로부터 정표(情標)를 달라고 한다. 이도령은 자기 소매 속에 넣어 두었던 비단 수건을 정표로 준다. 그뒤 이도령은 아버지 부사를 따라 서울로 올라간다. 춘향은 이도령을 사모 기다리다 못해 광한루에서 목을 매어 죽는다. 그리하여 이 곳 남원부내 사람들이 그녀를 불쌍히 여겨 이도령이 떠난 고개에다 그녀의 시체를 장사지냈다. 이것이 오늘날 '박석고개'라는 것이다.한편 정노식(鄭魯湜)이 그의 은사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에게 들어 그의 저서 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남원의 어떤 늙은 기생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얼굴이 매우 추하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당시 남원부사의 아들 몽룡(蒙龍)과 매우 친근하게 지냈다. 그런데 몽룡이 뒷날 출세한 뒤 그녀를 찾아주지 아니하므로 그녀는 원한을 품고 죽었다. 그 뒤 남원지방에는 연3년 동안 흉년이 들고 재앙이 있게 되었다. 이곳 주민들은 그와같은 흉년과 재앙이 모두 원한을 품고 죽은 춘향의 혼귀 때문이라 하였다. 그때 이방(吏房)이 춘향전을 지어 춘향의 원혼을 위로하였다. 그랬더니 남원에 흉년과 재앙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또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지금도 남원 지방에 전해오고 있다. 즉 남원에 얼굴이 매우 추하여 시집갈 수 없는 처녀가 있놀고 있었다. 16세의 이도령이 방자와 함께 구경나와 있다가 멀리서 이 모습을 보고는 방자를 통하여 춘향을 만나게 되었다.이도령은 춘향집에 가서 불망기를 써주고 춘향과 인연을 맺었다. 행복한 나날도 잠시 부친인 사또가 임기가 끝나고 서울로 올라가게 되자 이도령은 춘향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꼭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춘향은 지아비의 과거 급제를 바라며 한숨의 나날을 보내고 고을에는 악명 높기로 소문난 변학도가 고을 사또로 온다. 오래 전부터 춘향의 얘기를 들어온 변학도는 춘향에게 수청을 들것을 권유하지만 춘향은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며 수청을 거절한다. 이에 분노한 변사또는 춘향을 옥에 가두고 모진 고문을 한다. 변사또는 자신의 생일날에 춘향을 죽일 것을 다짐하며 생일을 맞는다. 한편 서울로 떠난 이몽룡은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라는 직분을 받아 남원으로 내려온다. 한창 판을 벌리고 있던 변사또의 생일을 풍지박살로 끝내며 변사또의 직분을 파하고 꿈에도 그리던 춘향과 재회를 하게 된다. 이몽령은 춘향의 이름을 妓籍에서 빼고 춘향을 데리고 서울로 갔다. 이 사실을 안 왕이 춘향에서 정렬부인 교지를 내렸다. 이어사는 그 후 貴閥女에 장가를 들었고, 벼슬이 영의정에까지 올랐다.3)서사구조「춘향전」은 극적인 구성과 주제의 기본적인 축을 에워싸고 서사적인 이야기의 축과 서정적인 가요의 축이 조화롭게 결합됨으로써 문학예술이 가꾸어온 가장 포괄적인 제 요소를 응집시키고 있다. 그래서 춘향전은 단순 갈래간의 문학 양식의 테두리 밖에 위치하는 복합적인 갈래가 되어 하나의 새로운 문학 갈래의 창출을 통한 예술적 미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됨으로써 전반부의 구성과 주제에 후반부의 변형된 구성과 주제가 다시 덮씌워짐으로 새로운 구성, 주제라 할 복합적인 구성, 주제를 지니게 되었다. 「춘향전」은 이러한 거시적 작품구조를 밑바탕으로 삼고 판소리극 이래의 開放性, 積層性을 그 숨겨진 원리의 본질로 하면 오랜 시간에 걸쳐 그 미시적 구조를 거듭 세련화 시키며헌은 이 작품은 항거와 적응의 양면성을 지닌 작품임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부정적 견해는 고전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자들에 의해 제기 된 것이고 작품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것이어서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긍정적 시각에서 「춘향전」의 주제를 보려는 입장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주제를 하나로 집약해서 보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으로 보려는 견해이다. 「춘향전」의 주제를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에는 일치하면서도 그 구체적 내용에 있어서는 크게 이도령에 대한 춘향이의 정절, 이도령과 춘향 사이의 애정, 불의한 관리에 대한 서민의 항거 등 세 가지로 나뉘어 진다. 이들 세 가지 견해들은 작품의 중심인물인 춘향의 행위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게 되는 차이이다. 즉 작품의 의미를 당대의 사회 이념 속에서 파악할 때 주제는 '정절'이 되고 이야기에 의미를 둘 때는 '애정'이 되며 변화하는 시대정신과 연관지을 때는 '저항'이 된다. 이는 「춘향전」이 가진 '신분이 다른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줄거리와 연관지어 이해할 수 있다. 「춘향전」의 주제를 이원적 또는 다원적으로 보는 주장은 위의 견해들을 절충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온 견해이다. 조동일, 설성경, 황패강 등이 연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조동일은 「춘향전」의 주제를 '표면적 주제와 내면적 주제'로 구분한다. 유교적 정절은 춘향의 행위에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며 '표면적 주제' 에 해당한다. 이와 반면에 신분상승을 통해 인간해방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내면적 주제'에 해당한다. 설성경은 '보편적 주제'와 '개별적 주제'로 나누고 있다. 「춘향전」의 모든 이본에 나타나는 '사랑', '신분상승 욕구' 등을 보편적 주제로 보고 각각의 이본들의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주제를 개별적 주제라고 보았다. 황패강은 '표층적 주제와 심층적 주제'로 구분하고 중요한 것은 '심층적 주제'라고 하였다. 이 같은 주장들은 「춘향전」춘향전〉이본을 대표할 수 있는 몇몇 이본 계통을 크게 나누고, 이를 중심으로 한 〈춘향전〉의 보편성을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 중심적 화소인 불망기삽화, 신물삽화, 과거시제, 암행어사시를 축으로하여 그 계통을 잡아보면 크게 세 계열의 유형적 이본이 있다. 핵심소재의 유사성을 통해 유형적 춘향전의 대표 유형을 계통별로 나누면, 별춘향전 계열, 남원고사 계열, 옥중화 계열로 크게 나누어진다.제 1기 계통본인 별춘향전 계열은 필사본과 완판 목판으로 출판되었다. 제2기 계통본인 남원고사 계열은 필사본과 경판 목판으로, 이중 필사본은 세책용 필사본으로 많이 유포되었다. 20세기에 나타난 제 3기의 옥중화 계열은 활자 출판 시대에 시작했기 때문에 다양한 서두 변형, 경쟁 출판 시대, 판소리극 중심권의 서울이동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이때에는 별춘향전 계열의 최선 텍스트인 완판 84장본과, 남원고사계의 최후 방각본으로 최대 축약판인 경판 16장본, 복고조 전통본인 활자본 고본춘향전이 개화기 이후의 독자를 대상으로 세 계통본간이 경쟁 시대를 맞기도 하였다.이처럼 각 계통본은 18, 9세기의 사회, 경제, 문학사의 변모에 따른 다양한 변이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춘향의 신분을 축으로 보면, 큰 흐름으로는 기생의 딸 춘향에서부터 퇴기 월매의 딸로, 다시 퇴기와 성참판의 소생으로 변이 되어 신분은 기생이지만 사회적 계층이 상대적으로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곧, 완판 84장본이 나오면서, 춘향의 신분적인 계층의 질이 변화하게 된다. 춘향의 어머니가 월매인 기생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지만, 후기의 텍스트로 올수록 춘향 아버지의 지체는 상승하게 되어 완판 84장본에서는 성참판으로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에 따라, 결연시에도 기생 춘향의 신분일 때는 신물을 받지만, 신분은 기생이지만 성참판의 서녀로 상승할 때는 신물을 받지 않고 결연하는 쪽으로 변모한다. 또, 별춘향전계의 완판 84장본 이후는 춘향이 먼저 등장한다. 그러나 남원고사계의 남원고사나 경판 35장본에서는 다시 도령이 켰다. 그 결과 춘향은 성참판의 서녀로 계층적 상승을 획득했고, 월매는 월매대로 춘향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완판 33장본에서 완판 84장본으로의 확장이 보여주는 질적인 변화는 완판 84장본이 목판본 춘향전의 최대, 최고의 작품으로 정착되는 정착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특히 완판 84장본은 순조·헌종·고종 3대에 걸친 유명광대들에 의하여 다듬어진 판소리극 사설을 효과적으로 수용하여 근대판 춘향전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풍부한 삽입가요를 완판 33장본에서의 확대변이에 삽입시킴으로써 서사체계와 서정성을 조화시켜 판소리극계 소설로서의 특징을 최대한 형상시켰기 때문이다.2)남원고사 계통본의 양상19세기 초에 서울의 독자를 중심으로 필사본의 형태로 보급된 친소설적 남원고사는 창작의식이 강한 개인작가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개작내지 재창작된 소설로 제목도 '남원고사'라는 특이한 표제를 보여주고 있다.남원고사 계통에 속하는 이본들로는 파리 동양어학교본 〈南原古詞〉를 비롯한 일본의 동양문고본 〈춘향전〉, 동경대학본 〈춘향전〉 등의 필사본과 최남선의 〈古本春香傳〉이 있고, 경판 35장본, 30장본, 23장본, 17장본, 16장본, 안성판 20장본의 목판본이 있다. 이들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작품의 짜임새가 뛰어난 것은 이들 중 가장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양어학교본 〈南原古詞〉다.) 설성경. 춘향전의 형성과 계통. 정음사. 1986. p64.남원고사는 완판 33장본 이후에 성립) 플롯상으로 볼 때, 완판 33장본과 고대본의 교합적 개작본이다.된 점과 필사 시기로 보아 1830년대 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남원고사는 남아있는 이본이 주로 세책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책을 빌려주는 세책점 주변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남원고사〉의 특징은 20세기 이전에 창작된 〈춘향전〉으로서는 가장 장편으로 전체 분량이 약 10만자 정도가 된다는 점에 있다. 이는 선행한 〈춘향전〉의 기본 줄거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부분 장면을 확다.
    인문/어학| 2000.12.10| 12페이지| 1,000원| 조회(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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