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민*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2
검색어 입력폼
  • 예술의 정의 평가B괜찮아요
    Ⅶ. 한가지 대안의 정의예술은 서로 다른 수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예술은 존재하고 있는 사물을 재현하기도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물을 구성해낼 수도 있다. 또 예술은 인간 외부에 있는 사물을 취급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내면적인 삶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예술은 예술가의 내면적인 삶을 자극하기도 하고 수용자의 내면적인 삶을 자극하기도 한다. 예술은 수용자에게 만족을 주기도 하고, 수용자를 감동시키고 자극시키며 깊은 인상을 주고 충격을 주기도 한다. 이들 모두가 예술의 기능이므로 그 중 어느 것도 무시해서는 안된다.그렇다고 해서 예술이 이런 기능들 중 몇몇 기능에로 축소될 수만도 없다. 모방 혹은 재현으로서의 예술은 부분적인 정의에 불가할 뿐 예술 전체에 대한 정의는 아니다. 구성으로서의 예술 혹은 표현으로서의 예술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정의들 중 그 어느 것도 예술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일반화 속에서 가지는 의미를 충분하게 재구성한 것이라고 공언할 수가 없다. 각각의 정의는 한 일족만을 고려할 뿐 예술의 전체 개념을 구성하는 다른 가족들은 간과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모두 부정확하다.인간의 예술적 행위에는 원인(예를 들면 무엇인가를 행태 짓고 싶은 충동)과 목적 모두가 존재한다. 예술적 행위가 다양한 원인들로부터 기인하며 다양한 목적들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이다. 예술가의 목적은 수용자의 목적과는 다를 수 있고, 유사한 예술작품이 서로 다른 목적에 이바지할 수도 있으며, 서로 다른 작품들이 유사한 목적에 이바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예술이란 단어의 기존의 현실적인 의미보다는 그 단어가 이렇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의도적인 의미를 강하게 띤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하나의 약속을 정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런 만큼 자의적일 수 밖에 없다. 특정한 논의를 위해서라면 그것도 유용할 수 있지만 그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를 규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설정한 실질적 과제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빈치가 사용한 예를 들면)리고 예술이 아닌 다른 종류의 인간 활동에는 없는 성질들을 밝혀내는 데 실패했다.'의도'라는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예술작품은 형체를 창조하거나 현실을 영속시키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지만 그와 달리 표현욕에서도 비롯된다. 전자의 종류는 제작적이라면, 후자의 종류는 표현적이다. 리저의 공식으로 하면, 첫 번째는 인간의 환경을 형체화시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인간의 내적인 삶(내면 세계)을 표현하는 것이다.수용자에게 미치는 효과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예술작품은 미적 경험, 즉 기쁨이나 황홀감등의 감정을 일으키지만, 그와는 달리 어떤 작품은 감동시키거나 타격을 주거나 충격을 주는, 다시 말해서 기쁨이나 황홀감 등과는 매우 다른 효과를 산출하는 것도 있다.산물 자체와 그것이 현실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볼 때, 수많은 예술작품이 현실의 복재품이지만, 어떤 작품은 추상적 형식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전자가 존재하는 것에 일정한 영속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구축하는 것이다.가치의 관점에서 볼 때, 많은 작품에서 가치는 미라고 생각되지만 그와는 달리 어떤 작품에서는 미보다는 오히려 우아, 정교함, 숭고, 등등의 예술적 가치가 두드러지는 경우도 있다. 비어즐리(M. Beardsley)가 강조했듯이(『미적 경험의 회복 Aesthetics Experience Regained』, 1969) 셀 수 없이 많은 기타 예술적 가치들이 더 우선하다.※우미우미는 종종 좁은 의미의 美(미) 즉 순수미와 동의적 개념내지 근사적인 개념으로 생각되는데 그 의미에서 한편으로는 '숭고' 및 '성격적'과, 다른 한편으로는 '추'와 대립되는 미적 범주이다. 또 우미와 미 개념과 비슷하기 때문에 고전적 예술의 미적 특성이라 하며, 특히 조형 예술에 의하여 논해지는 경우가 많다.※숭고숭고는 대개의 경우에 기본적인 미적 범주의 하나로서 간주되고 있다. 숭고론으로서는 옛날 고대 그리스 말기의 론기노스(Longinos)설을 들 수 있다.그가 말하는 숭고는 본래 '높이'라는 뜻을 갖는 말경험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욕구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해서 모두가 예술작품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기쁨이나 흥분 혹은 충격 등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러한 산물들만이 예술작품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도와 효과가 모두 정의에 포함되어야 한다.그와 유사하게 만약 예술의 정의를 수용자에게 미치는 예술의 효과에서 시작 할 경우에는 예술이란 기쁨이나 흥분 혹은 충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산물을 만드는 행위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 역시 이접적인 정의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다 예술이 실재를 재현하거나 형체를 부여하려는 충동 혹은 표현하고 싶은 욕구로부터 태어난 산물임에 분명하다는 말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그러므로 결론은 이렇다. 예술의 정의는 그 의도와 효과 모두를 포함해야 하며, 또한 그 의도 및 효과 모두가 어떤 종류 또는 다른 종류의 것일 수 있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예술의 정의는 한 벌의 이접적 진술일 뿐만 아니라 두 벌의 이접적 진술들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정의는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예술은 사물을 재현하거나 형식을 구축하거나 경험을 표현하는 의식적인 인간행위인데 이 경우 그러한 재생 구축 또는 표현의 산물은 기쁨이나 흥분 혹은 충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예술 작품에 대한 정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술작품이란 기쁨이나 흥분 혹은 충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재생이거나 형식의 구축 혹은 경험의 표현이다.더 정확한 논리학자들의 언어로 하자면 이렇게 될 것이다. 즉 어떤 것이 사물의 재생이거나 형식의 구축 혹은 경험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기쁨이나 흥분 또는 충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경우에, 그리고 그런 경우에만 그것은 예술작품이다.그러므로 이 정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동격의 내포형식을 취한다. 즉 (1)만약 어떤 것이 예술작품일 경우, 그것은 이렇거나 그렇거나 저렇다. 그러고 동시에 (2)만약 어떤 것이 이렇거나 그렇거나 저럴 경우, 그것은 예술작품이다.몇 가지 더 보충하자면(1) 위에서 제안한 정적이다.(3) 이 정의는 '아름다운', '심미적인' 등과 같이 가치 평가적인 용어와는 거리가 멀다. '기쁨', '흥분', '충격' 등은 일정한 가치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을 나타내는 사실적인 심리학적 용어들이다.(4) 합성적이고 이접적인 형식의 정의는 더 이상 정당성을 증명할 필요가 거의 없다. 이 점에서 우리가 제안한 정의도 예외가 아님을 주목하자. 일상언어에서 우리는 흔히 이것과 유사하게 합리적인 개념들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면 신체 보호용 혹은 신체장식용을 뜻하는 의복 같은 것이 그런 개념이다.(5) 이 정의는 예술을 정의하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로서도 논박하기가 어렵다. 실상 예술은 많은 기능을 갖기 때문에 당연히 어떤 한가지 기능으로 규정되지 않는 것이다.6) 이 정의는 예술의 잡다한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시대와 문화가 달라짐에 따라 예술이 다른 형식을 취할 뿐만 아니라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예술사의 경험이나 기대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예술사가들이 제안했던 예술발전에 관한 일반 이론들은 보통 예술기능의 다수성을 강조하고 이것들이 어떻게 하나하나 차례로 주도권을 쥐게 되는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여기서 제안한 정의 는 가장 광범위한 의미의 예술을 가리키고 있다.그러나 근대적 어법은 흔히 '예술'의 의미를 제한하곤 하다. 그러한 제한은 주로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즉 ①시각예술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제한하거나 혹은 ②가장 탁월한 최고의 예술적 창조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제한하는 것이다.1. 바뙤는 '순수예술'의 수를 일곱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이미 18세기에 그것들 중, 시와 웅변 두가지는 순문학(belles-letter)으로 따로 분류되곤 했다. 이로 말미암아 원래의 '순수예술'은 다섯 가지로 감소되었다. 19세기에는 또 음악과 무용의 정식으로 탈퇴하고 결과적으로 회화, 조각, 건축의 세 가지 시각예술만 남게 되었다. 소위 미술학교에서는 이 세 가지만을 가르칠 뿐 다른 것은 가르치지 않았다. 심은 여기서 제안된 정의가 포괄하는 범위 전체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서 이해되고 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우스(Dionysios of Halicarnassus)는 예술이 "영혼 속에 정열"을 불러일으킬 것을 요구했고, 플라티누스는 예술이 "진정한 존재를 상키시킬것"을, 위디오니시우스는 예술이 "비가시적 세계의 원형"일 것을, 미켈란젤로는 예술이 "천상에로의 비상을 개시"할 것을 요구했다. 또 노발리스는 예술에서 "자연 속에 있는 신의 모습"을 보았다. 헤겔에게는 예술이 "정신의 법칙에 대한 경험"이었다. 우리시대의 예술가와 작가들은 예술이 "일상적 존재의 지루함으로부터 자신들을 고양시키고", 자신들에게는 예술이 "삶의 원천"이며 예술 안에서는 "덧없는 삶이 형체를 획득한다"고 말한다.※플라티누스(204-269)의 미학아리스토텔레스의 사후 약 5세기가 지날 무렵, 고전적 세계가 바야흐로 종언을 고려할 때 나타난 프로티누스는 일체의 존재를 초월한 일자로 부터의 삼라만상의 유출과 테오리아를 통한 삼라만상의 일자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웅장한 종교적 형이상학적 체계 위에서 고전 그리스 로마의 철학 사상을 집대성 하였다.신플라톤 학파의 대표자인 프로티누스의 사상은 주로 플라톤으로부터 받아들인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를 원용하여 이것을 체계화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신비주의적 경향과 전체적 통일로의 강렬한 지향은 당시의 정치적 사상적 현실의 반영이기도 한다. 또한 헬레니즘 및 고전 로마의 전성기를 통하여 축척된 경험적 지식과 취미의 변천은 폴리스적 세계에 속했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다른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우리는 그이 미에 대한 사상을 『미에 대하여』, 및『예지미에 대하여』라고 하는 두 편의 논문을 통해 대체로 알아 낼 수 있다.플로티누스는 자연과 예술의 감각적인 미와 초감성적인 예지미를 명확히 구별하였다. 예지미가 감각적 미를 성립시키는 근거임과 동시에 그 자체가 미인 것에 반해, 감각적인 미는 예지미를 나누어 가지며 이를 모방함으로서 비로소 미가 될 .
    예체능| 2001.10.16| 7페이지| 1,000원| 조회(1,285)
    미리보기
  • 고딕 조각과 회화 평가B괜찮아요
    -서론-⊙고딕양식의 발생배경우리는 고딕 시대 층의 깊이와 더불어 끊임없이 변화하는 층의 표면, 곧 공간적 지리적 범위까지 알아야한다.12c,13c에 있어서 도시의 성장은 중세 생활의 중심이었던 공동체를 그 지도적 지위로부터 끌어내렸으며 대성당, 즉 사교좌가 있는 도시의 대성당이 신앙생활의 전면에 나타났다. 도시의 융성에 수반하여 출현한 대성당 부속의 각종 학교가 학문의 중요한 중심이 되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고딕이라 불리우는 새로운 미술양식이 당당하게 등장한 것이다.⊙고딕양식이 발생한 곳1150년경에는 고딕의 범위도 실은 좁은 것이었다. 그것은 역대 프랑스 국왕의 왕실령인 일드프랑스로 알려진 지방을 포함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100년후 시칠리아에서 아이슬란드에 이르는 유럽의 대부분이 고딕이 되었다. 드문드문 로마네스크의 작은 지역만을 남기기에 이르렀다.십자군에 의해 근동지방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1450년경 고딕지역은 축소되기 시작하여 1550년경에는 거의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고딕 의 뜻고딕이란 명칭은 르네상스의 이탈리아인이 중세 건축을 조야한 만족 고트인이 가지고 온 것이라고 비난한데서 유래한 것인데 19c이래 서유럽 중세 미술의 한 양식을 가르키는 미술사상의 용어로 등장하였다.-본론-(1) 회화⊙고딕회화의 개요고딕 건축 초기 12c는 회화의 범위가 매우 제한되어있다. 이때의 회화로 대표적인 것은 스테인드 글라스와 채색사본을 들 수 가 있다. 그러나 고딕 후기에는 놀랄만큼 동질성을 가지 국제 고딕 양식이 생겨 회화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동질성을 얼마 안 가서 분열된다. 즉 이탈리아에서는 피렌체가 선도하여 근본적으로 새로운 미술인 초기 르네상스 미술을 창출하고 한편 알프스 북쪽에서는 플랑드르가 후기 고딕의 회화와 조각의 발전에서 똑 같이 지도적인 역할을 맡는다.1. 고딕 전기 회화1 스테인드 글라스● 고딕 회화의 대표적인 것은 프테인드 글라스이다. 고딕 성당 건축에는 창문이 많고 벽면이 적어서, 자연히 스테인드 글라스의 발달이 싹텄다. 간단한 것은 카롤링왕조 후기에도 있었고 12c 전반에도 있었으나 12c에 들어와서 고딕 성당건축이 발달하면서 개화하게 되어 맑은 청색과 강한 붉은 색의 배색이 훌륭하였고 화상도 점차 인간적 감정을 여유있게 나타내게 되었다.13c에는 전성기에 달하여 데생은 자연스러움을 더해지고 힘을 잃지 않았으며 배색도 더욱 섬세해지고 그림에도 깊이가 더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시기를 스테인드 글라스의 황금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후 건축 활동이 약화되고 스테인드 글라스에 대한 수요가 부진해지자 필사본의 채색이 서서히 이전의 지위를 회복했다.ex) 샤르트르 대성당, 노틀담 성당, 랭스 성당등의 스테인드 글라스● 구조스테인드 글라스 구획 하나를 가까이 다가가서 조사해보면 창은 커다란 유리판으로 가 아니라 가늘고 긴 띠 같은 납으로 접착된 수백개의 작은 채색된 유리 조각을 H자형 납테에 끼워서 만든것임을 알 수 있다.● 디자인고딕 건축의 설계는 하나의 기하학적 관계의 체계에 의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같은 법칙이 스테인드 글라스의 디자인을 검토하는 기준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방법을 1240년경 건축가 빌라르 드 오느 쿠르에 의해서 편찬된 노우트북의 와 같은 소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디자인의 최종적인 결과가 아니라 원과 삼각형으로된 기본 도형인데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이미지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기하학적 도법이 보급되어 있었다는 것은 에서 도 충분히 예증된다.2 채색사본● 중세 회화의 중요한 분야였던 채색사본은 스테인드 글라스로 주춤하다가 다시 프랑스회화의 중요한 분야가 되었다. 그러나 수도사들의 영역이 아니라 대부분이 일반 세속인이 세운 도시 공방에서 만들어졌다. 이것은 13c초 석조 인물상이나 스테인드 글라스의 조형적 영향을 받아 비로소 고딕적인 것이 되었다.세속인 채색사본가 오노레는 1295년 프랑스 국왕을 위해 제작한 기도서 의 세졀되고 우아한 장면을 그렸다.2. 고딕 후기 회화● 고딕 회화는 이탈리아와 알프스 북방에서 조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중세 이탈리아는 카롤링 왕조 시대부터 북방 미술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비잔틴 문명과 밀접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건축과 조각에서는 고딕 양식에 동화 되어 이었었다. 마침내 1300년경 고딕 양식이 회화에 까지 영향을 미쳐 고딕양식과 비잔틴양식은 상호 작용하게 되고, 많은 우수한 화가들이 활약을 하여 미술은 방향을 크게 돌려 놓았다. 이것은 15c 르네상스 미술로 이어졌다.한편 알프스 북부에서는 1400년대의 혁신적인 경향이 도처에서 나타나기도 했으나 철저한 혁신은 일어나지 않았다. 음악과 회화 분야에서 근본적인 변화는 플랑드르에서 일어났다. 따라서 북유럽에서의 중세는 서서히 종말을 향하고 있었는데 대체로 16c이후 까지 계속되었다. 따라서 14c후반에서 15c초반에 플랑드르에서 나타난 회화는 국제적 양식을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출발점으로 하고 있으며, 북구에서의 과거와의 절연은 남부의 그것보다 급격한 것은 아니었다는 따위를 시사해 주기 때문에 후기 고딕이라 불리 울수 있다.●플랑드르의 지리적 위치플랑드르란 현재의 벨기에의 한 지방명이지만 미술사에서 플랑드르 미술이라고 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16c까지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의 발전한 미술을 가르키며 17c초 네덜란드 독립이후는 벨기에 지방 미술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플랑드르 회화플랑드르 미술의 중심은 회화였다. 14c 후반부터 15c 초까지 이 자방과 프랑스에서 활약한 미니아튀르 화가의 대부분은 플랑드르 출신이다.15c에 들어서자 유화의 창시자라고 불리우는 반 아이크 형제를 비롯하여 로지에르 반 데르 바이덴, 후고 반 데르 구스, 히에로니무스 보슈등 득새있는 화가가 배출되어 활약했다.16c에는 아트베르펜의 화가 퀘틴 마시스를 비롯하여 얀 오사르트 등의 화가가나오기는 했으나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에 압도되어 15c 이래 이 지방의 회화의 특색은 사라 졌다.1 플레말레 화가(=로베르 캉팽)그는 플랑드르 화풍의 창시자라고 할 수있다. 국제 양식의 종교화에서의 귀족적 세계가 아닌 일상 배경 속에서 상징이라는 것을 통해 초 자연적인 사건들은 표현하였다. 또 유채를 사용함으로써 템페라를 사용했을 때 표현 하지 못한 미묘한 색의 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는 후에 로지에르 반 데르 바이덴, 얀 반 아이크, 등에게 영향을 준다.
    예체능| 2001.06.18| 4페이지| 1,000원| 조회(950)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4
4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2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8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5:43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