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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 환경영향평가의 문제점. 평가D별로예요
    환경영향평가는 제안된 주요 개발 프로젝트의 환경적 결과를 예측하기위하여 사용되는 공식 연구과정이다. 이러한 환경영향평가는 프로젝트를 계획, 구상하는 초기 단계에서 잠재적 문제점들을 예상하고 규명 할 것을 보장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요즘 환경영향평가에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이번 보고서에는 이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환경영향평가는 현실의 실상과 자료를 바탕으로 미래의 불확실한 환경변화상대를 예측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도의 전문적인 환경기술과 수많은 자료 및 경험의 축적을 필요로 하며 완벽한 평가기법을 도출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실정에 있다.다시 말하여 정보자료의 부족으로 의사결정과정에 충분한 자료의 제공이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밖에도 미래의 환경상태의 변화를 완벽하게 예측하기곤란하다.그리고 대안이 한정되어 있고, 대안의 가치에 대한 확실한 판단이 결여되기 쉽다. 또한 환경가치의 객관화, 계량화가 어려워 다양한 비교가 곤란하며 개발과 보전의 조화수준과 이에 대한 판단기준이 모호하다는 점 등이 본질적인 한계성으로 나타나고 있다.그리고 이러한 본질적인 한계성 외에도 환경영향평가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우리나라의 대형 개발 프로젝트에 적용이 의무화되어 있는 환경영향평가가 개발 관계자에게 환경보전에 대한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개발과 환경보전의 조화에 기여해왔다기보다는 개발을 합리화시켜주는 면죄부로 악용되어 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즉 건국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라는 새만금 사업이 이토록 혼선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사업 시행 전 환경평가가 치밀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는 지적이다.쉽게 설명하자면 한국방송공사(KBS, http://www.kbs.co.kr/environ)에서 2000년 4월 5일 방영된 "개발의 뒷편-잃어버린 생명이야기" 또는 2003년 10월 1일 방영된 "다시 쓰는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보았듯이 환경영향평가가 진정으로 환경을 생각한다거나 걱정하면서 혹은 이 정책이 자연과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에 대한 부분에 대해 걱정하기 보다는 이 사업이 가져다 줄 이익에 급급하고 환경보존이라는 것이 말로는 쉽게 지켜질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잘 지켜지기 힘들고 환경에 대한 중요성 부분이 점점 개발에 비해 퇴색하고 있다.실제로 새만금 사업과 관련해 문제화 되고 있는 것에 대해 살펴보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쌀14만 톤과 함께 방조제를 통해 교통거리 단축 등 육상교통 환경이 개선되고 인근 바다와 변산 국립공원이 어우러진 종합생태관광권이 형성되어 교통·관광 및 새로운 환경조성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하지만 시화호 담수화 사업 등 무분별한 간척과 개발에 따른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며 새만금사업은 수산물 생산에 필수적인 생산기반인 바다와 갯벌을 없앰으로써 양적인 측면에서나 질적인 측면에서 본래의 식량안보를 왜곡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그리고 갯벌의 가치평가 적인 측면에서도 해양연구소는 갯벌이 논보다 3.3배의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으나 정부는 논이 오히려 갯벌보다 1.33배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갯벌이 사라지면 연안 해양생물의 90% 정도가 먹이사슬이 끊기고 서식지를 잃게 된다.새만금을 비롯한 서해안 갯벌은 저어새 등 멸종위기 조류의 대규모 서식지이자 철새의 중간 기착지로 세계적인 보존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새만금사업의 입안 당시에는 이런 갯벌의 가치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또한 수질과 관련한 보고서에서는 새만금호는 본격적인 용수사용까지는 아직 10년 이상의 기간이 남아 있고 수질보전대책을 마련하여 추진 중에 있어 새만금호가 제2의 시화호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 라 밝히고 있으나 올해 3월에 발표한 2차 수질예측에서는 지난 보고서에서 "실현 가능하다"고 전제한 대책들조차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것이 적지 않아, 실제 수질은 예측한 것보다 나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후 대책에 대한 측면에서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방조제를 원상태로 걷어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는 환경단체가 제기한 새만금호의 수질오염 문제와 관련해 새만금 간척사업을 일부 축소해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즉 동진수역 사업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것을 전제로 만경수역 처리에 관해서는 방조제는 완공하되 시화호처럼 갑문을 통해 바닷물이 한시적으로 통하게 하는 '해수유통안', 만경수역 공사를 일시 유보하는 '유보 방안', 만경수역 관련 계획을 취소하는 '취소 방안' 등 3가지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과적으로는 새만금 갯벌이 전체적으로 파괴될 것이라는 이유로 사업의 축소 시행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환경단체들은 그 대신 현 상태에서 새만금 사업을 전면중단하고 새만금 갯벌을 세계적인 생태관광지역으로 개발하는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즉 "동진수역의 1공구 방조제를 개방하고 미 완공된 방조제들을 다리로 연결한 뒤 해양목장, 자연학습장, 국민휴양지, 풍력발전단지 등을 건설하면 지역발전과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올바르지 못한 환경영향평가 야기시킨 문제점이라 할수 있다.이러한 문제점은 환경에 관한한 우리나라보다 제도적 측면과 실제적 운영성면에서 선진국이라고 알고있는 외국과 비교해 보았을 때 많은 차이점이 있다.실례로 1969년 제정된 국가환경정책법을 통하여 제도시행의 근거를 마련한 후 환경영향평가제도를 세계 최초로 연방정부 차원에서 개발 시행하였으며 현재 27개주 2개자치구에서"little NEPA"라고 불리는 주환경정책법에 근거하여 환경영향평가(Environmental Impact Assess- ment, EIA)가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과 국가, 지방자치단체, 주민이 협력하여 양호한 환경의 질과 천연자원을 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환경기본법(1993년 11월) 제 20조에서 토지형상의 변경, 공작물의 신설, 기타 사업에 대하여 사업자가 미리 환경영향을 스스로 조사·예측·평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일본, 그리고 효과적인 환경에 대한 사전 고려를 위하여 사업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종합적으로 조사·예측·평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독일에 비해 제도적인 측면과 운영적인 측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학/기술| 2003.11.28| 4페이지| 1,000원| 조회(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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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경향] 1980년대 시경향(민중시 중심으로) 평가A좋아요
    【 80년대 시 연구 】- 민중시를 중심으로목차1. 들어가기2. 80년대 민중시의 경향2.1. 민중항쟁시2.1.1. 황지우2.1.2. 기형도2.2. 노동자들의 시2.2.1. 박노해2.2.2. 백무산2.2.3. 지식인 노동시2.3. 우리 민족의 영원한 과제 통일, 그 속의 문학2.3.1. 문익환2.3.2. 백기완2.3.3. 그 밖의 시인들3. 나오기참고문헌1. 들어가기80년대만큼 치열하고 뜨거운 시대가 또 어딨을까. 1980년의 5·18 광주민중항쟁박정희 정권 때부터 군부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규합해 온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 일당은 오히려 민주화 과정의 과도기를 틈타 자신들의 집권 시나리오를 준비하여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다음, 당시 분출되고 있던 전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민주화운동세력과 야당의 정적을 제거해야 했다. 그 제물이 광주였다.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온 곳이며 야당의 정적 중에서 가장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있던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이 전라도 광주였던 것이다. 전라도 광주는 70년대 박정희 개발 독재 때부터 희생양이었다. 철저히 소외되었고 경제에서는 낙후되었으며 우리 민족을 다시 동서로 가르는 지역감정의 볼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장은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며 투쟁해 온 민주투사의 고장이었다. 전두환 신군부 일당의 학살만행에 맞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시민전체가 일심동체로 저항하였던 것은 정신적 측면에서든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든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피의 진압으로 5·18민중항쟁은 끝났지만 그 후 청년학생을 비롯한 양심적인 민주인사들과 민중운동에 의해 전두환 일당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움으로서 항쟁의 정당성은 온 천하에 입증되기에 이르렀다.과 1987년의 6월 항쟁1987년 6월 10일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해 벌인 범국민적 저항운동. 87년 4월 13일 전두환(全斗煥) 정권은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무시한 채 를 발표하고, 김영삼(金泳三 사연들이 똥을 누면서 힐끗 읽고 지나가는 신문 조각 읽기의 내용이라는 것을 마지막 연에서 보여주는데, 이것은 현대 사회의 비정을 극명히 보여 주는 것 같았다.이러한 극적 반전을 통해 반어적인 세계를 구축한다. 실은 똥을 누는 것과 비견되는 일상적이고 별 의미 없는 사연들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고, 역으로 저 심각한 사연들로 인해 똥을 누는 행위가 일종의 항의처럼 표출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이 광고들이 각각 단 한 명의 독자만을, 그것도 읽었을 때를 전제로, 김종수나 이광필이나 조순혜가 가족의 애원을 받아들였을 때를 전제로, 두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침묵을 깨뜨리는 매우 강렬한 사회적 반응인 것이다.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삼천리 화려 강산의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우리도 우리들끼리낄낄대면서깔쭉대면서우리의 대열을 이루며한 세상 떼어 메고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로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주저앉는다.10여년 전만 해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려면 애국가를 부르고 대한 뉴스를 보아야 했다. 가난하던 시절 대한 뉴스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대할 수 있는 아주 드문 정보원이었고, 애국가는 말 그대로 애국의 일념을 다지는 일상적인 국민적 의례였다. 그 때 5시가 되면 국기 하강식이 나라 곳곳에서 벌어졌고, 그 때마다 태극기에 대한 맹세를 따라해야 했다.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엄숙한 극장 안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운 풍경이요, 또 달리 보면 매우 우울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시적 화자는 남들처럼 일어나 애국가를 '본다'. 강요당하는 애국심은 노래를 따라 절로 입술을 움찔이며 따라 부르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눈앞에 펼쳐지는 선진 조국 창조와 정의 사회 구현은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하는, 실존적 알레고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끝까지 침묵하고 말하지 않는 김교수의 모습에서 비극적 자유의지를, 학장의 강력한 경고와 묵살된 의견에서 억압적 정치권력을, 그러나 끝끝내 더 잘 듣게 되는 소리를 통해서는 초월에의 의지까지도 함께 읽을 수 있는 것이다.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왔지만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 때마다 총성이 울렸다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토리가 되었다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일단 시의 분위기 자체가 80년대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외토리"라는 의식이 기형도의 시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 외토리 의식이 그로 하여금 내면을 지향하게 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관망하고 저주하게 한다. 그러나, 그가 현실주의자일 수 있는 것은, 동시대의 동료시인들이 현실에 직접 맞서거나 뛰어들어가 이를테면 위의 시에서처럼 나뭇잎으로 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면, 그는 거기서 물러나 현실을 조망하고 가늠했다는 데에 있다. 기형도 시의 상징은 좁게는 실존적 개인의 내면풍경으로부터 넓게는 한 시대의 보편적 고통의 체험까지를 동시에 아우르고 있다.2.2. 노동자들의 시1970년 11월 13일 낮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의 절규는 노동자 계급 최초의 자기선언이었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노동운동은 시로 나타나게 되고 노동시는 열악한 작업환경과 장시간 노동, 노동소외라는 노동자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노동자의 노동력으로 이룩한 경제 성장 덕택에 경제는 발전했으나,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부조리한 상황이었고 노동자들이 겪는 그 당시 불합리한 상황들과 그들의 고충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거대한 자본의 끝없는 이윤추구와 사회 구조 안에서 스빠져, 허깨비 같은스물 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아 그러나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이 질긴 목숨을,가난의 멍에를,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늘어쳐진 육신에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거운 소주를 붓는다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분노와 슬픔을 붓는다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기어코 깨뜨려 솟구칠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우리들의 사랑우리들의 분노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거운 소줏잔을돌리며 돌리며 붓는다노동자의 햇새벽이솟아오를 때까지이 시는 80년대 대표적인 노동시이다. 노동자인 시인이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노동 현장의 분노와 사랑을, 절망과 희망의 숨결을 실감 있게 노래하고 있다. 가난의 멍에와 질긴 목숨 때문에 전쟁 같은 노동일을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처지가 비관적인 어조로 토로되고 있다. 죽지 않기 위해 하는 노동이 너무도 힘겹고 고되기 때문에 죽음이 연상되는 것은 당연하다.박노해의 노동시 들은 특히 민중문학 진영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의 시를 접한 많은 지식인 문인들은 어쩔 수 없는 위축감을 맛보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체험의 직접성이 가져온 충격이자 위축이었다. 채광석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민중주의자들은 자신의 출신성분을 저주하면서 노동자 계급에의 복무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반드시 그들과 같은 견해를 지니지 않은 이들일지라도 지식인 문학의 한계와 위선에 대한 반성은 시대의 유행과도 같았다. 박노해의 시집을 지금 읽어보면 당시 던진 충격은 많이 완화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박노해씨의 뒤를 잇는 여러 노동자 시인들의 시에 우리가 익숙해진 데다, 창작 주체에 관한 강박에서 벗어나 박노해 시의 성취와 한계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박노해의 시문학사적 위치는 매우 큰데 그것은 앞 시대까지 민중문학의 주변부에 머물고 있던 노동시를 전위적인 위치로 세워 놓았고, 노동자가 창작주체가자들보다 지배계급의 지지자가 되기 쉬우면서 이에 기울지 않고 약한 계급을 옹호 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시문학사에서 지식인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1970년대였다. 동시대의 시 경향은 지식인 시인들에 의한 사회적 관심이었고 정치상황의 악화와 비인간적인 산업화의 추진에 대한 첨예한 문학정신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1980년대의 지식인 노동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1970년대의 민중시처럼 관찰자적 시각과 방법으로 노동의 세계를 그린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1970년대에 비해 관념성을 상당히 극복했지만 노동자들의 실제적인 삶을 그려내는 데는 여전히 한계를 나타내었다. 곽재구, 김명수, 최두석, 고형렬, 하종오, 이영진 등의 작품이 이에 해당된다고 볼수 있다. 그리고 다른 부류는 노동문제를 동시대의 정치, 사회적인 면과 연계시키려고 한 작품들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노동문제의 원인을 찾고 극복해 나가려는 의도를 보였는데 지나친 강조로 시가 관념적이었다. 김정환, 채광석, 김남주의 작품이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대에 대표적인 지식인 노동시인에는 김지하와 신경림을 들 수 있다.김지하는 1970년대에 많은 시를 발표하였는데 김지하의 시는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억압 하면서 부정부패와 호화사치에 빠져 있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하지만 그의 시는 1980년대에 들어와 흔들리게 된다. 그 이유는 자신의 직접적인 대항체였던 유신정권이 무너짐으로써 오는 방향성의 상실과 지식인 계급이 갖기 쉬운 나약성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80에 자신의 야심작인 대설과 을 내놓지만 동시대의 모순된 문제들을 담아내지 못한 관념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에 민중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였던 것이다.그리고 신경림 역시 그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 시인이라 할 수 있다. 김지하의 이 독재정권에 대한 정치적인 도전이라면 신경림의 는 농촌과 농민들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시이다. 다.
    인문/어학| 2003.11.28| 16페이지| 1,500원| 조회(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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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 민중시 연구
    70년대 시연구-민중시를 중심으로-차례1. 머리말2. 본론2.1. 민중시의 개념2.2. 민중시인2.2.1. 김지하2.2.2. 정희성2.2.3. 조태일2.2.4. 신경림2.2.5. 이성부3. 맺음말▲ 참고 문헌1. 머리말1.1. 역사적배경1960년대 이래 군사 정부가 채택한 개발 독재 전략의 결과로 상당한 수준의 산업화가 달성되었고, 경제적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경제 제일주의, 혹은 '근대화' 지상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이와 함께 정권을 영구화하려는 음모가 진전되면서 이른바 '10월 유신)'이 단행되었다. 이로써 정치적 억압이 날로 가중되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심화되고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었다.산업화로 인해 일정 부분 생활 수준이 향상되자 자연히 민주적 제권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급격히 고조되었다. 이에 따라 억압적인 체제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이와 함께 노사 간의 대립과 갈등이 본격화되고, 산업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농촌과 농민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등하였으며, 1960년대 이후 개화된 민족주의적인 의식이 점차 고조되었다.이 시기의 문학도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결과 1960년대에 이미 그 싹을 보여 주었던 참여 문학이 점차 민중적인 성격을 띤 것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대두된 민족주의적 경향과 맞물리면서 '민족 문학'의 이념에 발전적으로 통합된 것이다. 아울러 산업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농촌과 농민, 그리고 도시 빈민의 삶에 대한 문학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른바 '민중 문학'이 표면화되기 시작하였다.1.2. 1970년대 시문학의 특징1970년대에 들어서서도 1960년대의 순수-참여 문학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시의 현실 참여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이는 특히 시적 대상과 시적 인식의 범주를 확정하는 문제, 그리고 시적 형상화의 방법과 연관된 것으로, 참여파의 시인이나 순수파의 시인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순수와 참여의 이너의 목소리를 느끼며 흐느끼며나는 간다 애비야네가 죽은 곳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우리 현대사는 민중들의 수난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김지하의 「황톳길」은 민중의 시각에서 본 왜곡된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뼈저린 분노를 담고 있다. 붉은 흙의 `황톳길'은 척박한 식민지의 땅과 그 땅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온 참혹한 민중의 삶을 상징한다. 현대사의 소용돌이에서 민중의 삶은 모든 면에서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다.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은 현실의 모순을 타파하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았지만, 이를 원천 봉쇄하려는 권력의 탄압 또한 집요하고도 혹독하게 계속되었다. `황토길에 선연한 핏자욱'은 민중들의 지난한 투쟁의 자취를,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 가마니 속에서' 죽은 애비는 권력의 총칼에 희생된 죄없는 백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투쟁과 희생 속에서도 민중이 처한 현실은 조금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어둠의 시대이며, 아들인 화자 역시 `두 손엔 철삿줄'이 묶인 채 애비가 간 길을 따라가고 있다. 한때는 역사의 강물이 푸르게 흐르던 희망 가득한 시절도 있었다. 2연에서 보듯 `황토에 대낮 빛나던' 혁명이 아래로부터 백성의 손으로 달성되었던 때이다. 그날의 만세와 노래를 다시 부를 날이 언제일 것인가. 잔혹한 폭정에 백성의 원한이 사무쳐 어떤 징후처럼 `우물마다 십년마다 피가 솟아도' 총칼을 앞세운 권력의 폭압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처럼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은 조국의 모든 세월과 우리들의 희망을 무모하게 짓밟고 있다. 그러나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 파괴된 생존의 터전을 지나면 `다시 모밀밭'이 있어 삶의 토대는 강인하고도 끈질기게 유지되고 있음을 보게 한다. 청천 하늘에 퍼지던 그 날의 만세 소리는 지금 철삿줄 파고드는 화자의 살결과 숨결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남은 일은 끝까지 이 투쟁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언제 돌아온다는 약속도 할 수 없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결혼을 맹세할 수도 없이 막막한 심정으로 고향을 떠나 '모질고 모진' 서울로 향해 가는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결코 고향의 '분꽃'과 '밀냄새'는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고백 속에는 화자의 회한과 분노가 짙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2.2.2. 정희성저문 강에 삽을 씻고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우리가 저와 같아서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일이 끝나 저물어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나는 돌아갈 뿐이다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샛강바닥 썩은 물에달이 뜨는 구나우리가 저와 같아서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저문 강에 삽을 씻고」는 구체적 삶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있다. 노동의 현장에서 오는 삶의 경험을 강이라는 자연물의 심상과 결합시켜 깊은 시적 의미를 얻고 있다. 노동은 인간이 세상에 참여하는 건실한 방식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값지고 진실한 노동의 가치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기보다는 부당하게 취급당하기 일쑤이다. 노동에 바치는 땀에 대한 부당한 취급은 시인이 분노하고 개탄해마지 않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현실에서 느끼는 분노와 고통을 시인은 흐르는 물을 보며 씻어 버리며 삶을 반추하는 계기로 삼는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는 표현에는 탄식과 반성이 깃들어 있다. 이 시에서 쉼없이 `흐르는 물'의 심상은 시간의 흐름과 동등한 의미 연관을 지닌다. 저문 강에 선 하루의 저녁은 인생의 저묾과 중첩되고 있다. 따라서 묵묵한 노동의 성실함이 가져온 하루의 저묾에 대한 성찰은 `삽자루에 맡긴' 인생의 저묾에 대한 성찰과 대응한다. 흐르는 물이 가지는 풍부한 내포는 시간의 흐름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흐르는 물이 가지는 풍부한 내포에 기댐으로써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순간과 연장을 씻듯이 노동의 삶에 깃들인 슬픔도 씻어내는 정화(淨化)의 순간을 가질 수 있다. 시의 섬의 원래 이름이다. 일제에 의해 이름이 뒤바뀐 가거도는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가거도는 우선 지리적으로 극도로 소외된 공간이다. 1?2연에 나타난 이 섬의 위치를 보면, 너무 멀고 험해서 바다 같지도 않은 곳에 떠 있는, 유배를 보낼 때조차 생각 못했던 외떨어진 곳이다. 오랫동안 가거도는 사람들의 생활 영역은 물론 인식의 범주에서도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외딴 곳에도 우리네 민족은 `살 만한 곳이라고' 뿌리를 내렸다. `무지렁이'란 무식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지만, 이 시에서는 순박하고 강한 생명력을 지닌 사람을 의미하고 있다. 망망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을 사람들은 `파도로 성 쌓아 / 대대로 지켜오며' 모두가 `한 식구로 한데 어우러져 / 보라는 듯이 살아온' 것이다. `후박나무 그늘'이 주는 평화롭고 후덕한 느낌,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 당할아버지까지 한 식구'였다는 해학적인 표현은 우리의 전통적인 삶의 정감을 그대로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파도와 싸우며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섬사람들의 삶이란 참으로 고달픈 것일 수밖에 없다. 목숨을 바다에 맡겨 놓은 사람들의 `한스런 노랫가락'은 그들의 삶에서 절로 배어 나온 절절한 삶의 노래이다. 5?6연은 가거도 주민들이 그곳 전설을 따서 부른 민요이다. 여러 산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산들 너머에 있는 부모형제를 보려 하지만, 산과 날(날씨)이 원수여서 뜻을 이룰 수 없다. 섬 사람들에게 자연 환경은 대단히 극복하기 어려운 대상이었음이 쉽게 짐작된다. 7연은 강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갖춘 가거도의 성격을 묘사하고 있다. 낯선 사람과 죄 많은 사람을 `겁도 주고 달래 보고 묶어 보고 풀어 주는' 바람섬, 파도섬은 너그러우나 결코 타협하지 않는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런 곳에서 사월혁명의 선봉이 되어 불의에 항거하다 산화한 십 구 세의 어린 열사(烈士)가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 연은 앞의 내용을 수렴하면서 가거도의 의미를 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소외되고 예전과 달라진 농촌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이 옛날의 풍습대로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 보아도, 신명나게 놀아 주던 어른들 대신, '조무래기들'만 악을 쓰며 따라붙거나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 철없이 킬킬대는' 처녀애들뿐이다. 11~16행의 3단락은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를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나온 그들이 자신의 울분을 춤으로 삭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춤을 추는 그들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거나 '서림이처럼 해해대'며 즐거워하지만, 결국은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하며 자신들의 삶을 자학하거나 체념하고 만다. 임꺽정과 서림은 민중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이들을 구체적으로 거명한 까닭은 농민들의 한과 슬픔이 다만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민중의 삶과 함께 해 온 역사적인 것임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 배려로 볼 수 있다.4단락은 17~20행으로 자신의 한과 고뇌를 신명난 춤을 통해 극복하는 모습이다.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이르렀을 때, 농민들의 현실에 대한 분노는 '살의'가 느껴질 정도로 극에 달하지만, 오히려 '날라리를 불고' 덩실덩실 '어깨를 흔드'는 신명으로 바뀜으로써 그들의 비애가 그만큼 심화되어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농민들이 추는 춤은 그들이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현실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강한 몸짓이며, 자신들의 고뇌와 한의 뜨거운 발산임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생활 터전을 지키려는 농민들의 안타까운 몸부림을 농촌의 일상 언어를 통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농민들의 정취와 정감을 물씬 느끼게 해 주는 한편, 농민들의 격한 감정을 직접적인 서술로 표출하면서도 농무의 동작이나 농악기의 소리로 적절히 제어함으로써 탄탄한 서정성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 가난과 절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농민과 소외된 농촌을 상기시켜 주는 뛰어난 문학성으로 말미암아 이 시는 제1회 만해 문학상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갈 대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인문/어학| 2003.11.11| 13페이지| 1,500원| 조회(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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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연구] 1960년대의 시대상황과 시인들 평가A좋아요
    【1960년대 시인들】Ⅰ. 서론1. 1960년대 시대적 상황- 4.19 혁명 (1960)- 5.16 군사쿠테타 (1961)- 6월 항쟁2. 1960년대 문학의 특징3. 1960년대 시의 경향- 참여시 "김수영의 풀",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순수시 "천상병의 새"- 인생파적 시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주지주의적 시Ⅱ. 본론1. 4.19혁명과 문학2. 4.19혁명 시김수영.신동엽 4.19와 관련된 시Ⅲ. 결론Ⅰ. 서론1. 1960년대 시대적 상황4·19가 일어난 지 40여 년이 지났다.오늘날의 문학이 2000년대를 넘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이 때에, 4·19가 60년대 이후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시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왔는지 되짚어 보는 일은 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4·19는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이승만 정권의 권위주의적 지배 체제에 대한 항거 의식을 동시에 내포함으로써, 정치·사회적인 측면만이 아닌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의 중대한 정신사적인 전환점을 이루게 되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던 허무와 무의미, 위축된 분위기를 바꿔놓는 중요 한 역할을 4·19가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이는 문학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1950년대의 문학에 이어진 문단의 상황이 아직 전쟁의 상처를 아우르지 못하고 암흑의 세상을 헤매고 있을 때, 4·19는 보다 적극적인 문학의 사회 참여를 주장하며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문학 정신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4.19 혁명4.19 발발의 원인1)타락한 자유당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1948년 8월 15일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승만 정권은 1960년 4월 26일 하야하는 그날까지 엄청난 독재와 부정을 자 행하였다. 북진정책의 허구, 한국전쟁,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양민학살, 발췌개헌안 날치기, 부산정치 파동, 3선을 위한 4 사5입개헌 등 계속되는 반민주 독재 정치와 경제정책의 실패 그리고 통일의지의 약화등 그 속에는 적어도 1960년 4월혁명으로부터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거쳐 계속 민중투쟁의 성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표면상 1987년 6월민중항쟁은 1960년4월 혁명과 엇비슷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하였다. 4월혁명 당시 우리 민중의 군부의 총칼에 맞서 투쟁할 각오를 지니고 있지 못했다. 그결과 5.16군사쿠테타가 일어나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러나 6월민중항쟁 당시 우리 민중은 확실히 변해 있었다. 민중은 군부대가 투입되어 총칼로 항쟁을 진압하려 든다면, 이에맞서 단호히 투쟁할 결의를 갖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결의는 광주민중항쟁의 피의 대가로 얻어진 것이었다. 요컨대 6월민중항쟁은 4월혁명이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커다란 산을 넘음으로써 비로소 점령할 수 있었던 승리의 고지였던 것이다.2. 1960년대 문학의 특징첫째로, 문학의 현실 참여 문제에 관심이 고조되었다. 전쟁과 4·19, 5·16이라는 정치적 소용돌이를 거치는 동안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비인간화 현상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 의식을 형상화한 현실 참여적 성격의 문학이 대두되었다.둘째, 민족 분단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전개되었다. 민족의 분단이라는 비극성, 전쟁의 상흔으로 인한 비참한 삶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면서, 이를 사실적으로 증언, 조명하고자 하였다.셋째, 사실주의 경향의 문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역사에 대한 반성과 비판, 사회 현실에 대한 통찰과 인식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 묘사를 통해, 현실 비판적인 사실주의 문학이 전개되었다.넷째, 문학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서정주의와 기교주의의 문학이 뚜렷한 맥을 형성하였다. 현실 참여의 문학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한편에서는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전통적 서정주의와 기교주의 문학이 뚜렷한 맥을 형성하여 문학의 예술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하였다.3. 1960년대 시의 경향60년대 이후의 시를 한 마디로 규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인들 관념이 무너지면서 시를 진실한 삶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는 관점이 대두된 점이다. 더욱이 1950년대에는 대두되었던 순수-참여 문학 논쟁에 의해 촉발된 참여에의 관심은 4.19를 거치면서 참여 문학의 본격적인 대두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이 시기에 참여시가 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분단 극복의 열망과 시민적 자유와 권리에 대한 열망이었다. 4.19 이후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던 분단 체제 극복에 대한 열망은 자연히 분단 현실에 대한 관심의 증대를 가져왔고, 신동엽 같은 시인은 이러한 관심과 열망을 자신의 시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와 함께 김수영은 민주주의와 시민적 자유에 대한 시적 관심을 강하게 드러냈다.60년대의 시는 이러한 모순가 갈등의 상황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식민지 체험과 6.25체험이라는 거대한 비극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4.19와 5.16이라는 한 운명의 비극을 동시에 겪으면서 이들을 시적으로 감당하고 극복해 나아가야 하는 어려움과 직면했던 것이다. 따라서 60년대의 시는 몇 갈래의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하나는 현실과의 부딪힘, 즉 상황에 대한 시적 응전방식의 탐구이고, 다른 하나는 시의 본질이라 할,생명 또는 서정으로의 회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술로서의 시에 대한 언어 문제에 대한 깊은 탐구가 그것이다.그 중 시와 현실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급격한 관심이 일어났는데, 이는 시인이 사회의 선도적인 비판적 지성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과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2. 4.19혁명을 계기로 한 참여시1960년대는 모순과 갈등의 시대였다. 식민지 시기를 뒤이은 분단비극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4 19 혁명과 5 16 쿠데타라는 역사적 사건을 연이어 겪으면서, 한국의 시단은 이러한 1960년대의 상황을 맞아 다양한 시적 응전력을 시험하기에 이른다.우선 첫째로, 4 19와 5 16의 충격과 영향으로 투철해진 현실 인식에 근거하여 적극적으로 변혁의 의지를 작품 내에 수용하고자 하는 일군의 작품들이 있다. 이러한 작품의 선편은 김수영이유린은 마침내 젊은 학생층을 중심으로한 전국민의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에의 갈망에 불꽃을 점화했던 것이다.그리하여 일어난 4.19는 바로 정치적 탄압과 부정부패에 대한 온 국민의 저항운동이었으며, 동시에 참다운 자유와 진정한 민권에 대한 수호의지의 발현이었던 것이다.다시 말해 60년대는 민주화라는 이땅의 이념적 목표와 근대화라는 현실적 목표가 상호충돌하면서 자유와 평등을 둘러싼 구조적 모순과 현실적 갈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문제점을 지닌다.김수영에게 있어 4월혁명은 시세계의 전면적인 변모를 가져올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50년대를 철저한 모더니스트로 통과한 김수영은 1960년 4월19일을 기점으로 해서 참여적인 사실주의 시인으로 변모한다. 앞서 인용한 시를 비롯해 `기도' `육법전서와 혁명' `푸른 하늘을' `만시지탄은 있지만' `그 방을 생각하며' 등 4·19를 직접 다룬 일련의 시편들은 물론, `가다오 나가다오' `거대한 뿌리'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사랑의 변주곡' 등 현실의 치부를 구체적이면서도 신랄하게 까발린 시들이 직·간접적으로 4·19의 영향 아래 쓰여졌다.그중 대표적인 60년대 참여시의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한 김수영의 한 작품을 들면 다음과 같다.4.19혁명 직후에 쓰여진 시푸른 하늘을김 수 영푸른 하늘을 제압하는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부러워하던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자유를 위해서비상하여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노고지리가무엇을 보고노래하는가를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혁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혁명은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이 시는 4ㆍ19 직후, 현실 참여의 시들이 많이 쏟아져 나올 무렵에 쓰여진 시이다.그러나, 이 시는 얻어진 자유를 구가하고 있거나, 무너진 독재의 뒷전에서 노래 부르는 시가 아니다. 그의 시선은 보다 깊게 비판적인 눈으로 정시(正視)하고, '自由를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피의 냄새가' 섞여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고독한 투쟁'이 계속되어야 했는가를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그러므로 이 시는, 문제 억압하는 사회적힘〔독재권력,외세〕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바람에 의해 눕는 풀의 넉넉한 생명력을 통해 민중의 끈질긴 저항과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즉,이 시는 사회적 상황이 나빠져〔날이 흐리고,흐려져〕폭력화되었을 때〔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민중은 무기력하게 짓밟히지만〔풀은 눕고 울지만〕,결코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의 나약한 힘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 권력에 맞서 싸워이기는〔바람보다 먼저 웃는 〕 인류 역사의 총체적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또한, 이 시는 평이한 우리말 시어와'풀.바람’'눕다.일어나다’'울다.웃다’등의 시어를 과거시제에서 현재시제로 반복적으로 진행하면서 표현함으로써 '풀’이 지닌 역사적 상징성을 뚜렷이 드러내 주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자연 현상의 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통하여 중후하면서도 명징한 현실주의적 의미를 제시하는 시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2) 신동엽신동엽1930년 충청남도 부여 출생단국대학교 사학과 및 건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선되어 등단1967년 장편서사시 「금강」 발표1969년 사망1975년『신동엽 전집』 발간1980년 유고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발간시집:『아사녀』〔1963〕,『신동엽 전집』〔1975〕,『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80〕,『꽃같이 그대 쓰러진』〔1989〕,『금강』〔1989〕『젊은 시인의 사랑』〔1989〕신동엽은 4.19 혁명에 대하여 남다른 집념을 보인 시인이다. 그를 흔히 「60년대의 대표 시인」으로 꼽고 있는 이면에는 4.19 정신의 문학적 성과라는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는 바로 4.19 정신의 정수로부터 획득한 이념적 힘을 형상화한 작품이다.시는 개인의 체험에 의한 정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이를 시적 감동이라고 한다. 이렇듯 개인의 서정 세계에 공감하면서 감동을 받는다. 만면 시인이 몸담고 있는 사회 현실이 비판되거다.
    인문/어학| 2003.11.09| 14페이지| 1,500원| 조회(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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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대 시 경향
    한국 현대 (시)문학사 1950년대 시 경향 발표한국 현대 (시)문학사 - 1950년대 시 경향1950년대 - 해방과 민족전쟁, 그리고 그 후유증의 시대목차1. 서론 - 50년대 시대 상황2. 본론 - 50년대 시 경향1)전쟁체험 시(유치환?구 상)2)전통 서정시(박재삼?이동주)3)모더니즘 시(김경린?조 향?김규동)4)휴머니즘 시(정한모)3. 결론1. 서론1950년대는 6?25 전쟁으로부터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소용돌이의 시대이다. 전쟁에 의한 피해와 이의 복구는 1950년대의 시대사적 과제였고 전쟁의 비극적 체험과 상흔은 우리 모두에게 인간 실존의 무의미함과 허무주의를 남겨 주었다. 전쟁은 시인들에게 ‘참전’과 ‘종군’이라는 적극적 대응 방식에서부터 풍자와 역설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 그리고 센티멘탈리즘이나 폐쇄적 자아 의식으로의 굴절 등 다양한 정신적 편차를 드러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와 함께 전쟁은 다시 분단의 고착화를 낳게 되고, 이에 따라 냉전 체제하의 안보의 논리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신성한 절대불가침의 명제로 굳건히 자리잡게 된다.1950년대의 시는 전장시로부터 출발한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구상, 박인환, 유치환, 박두진, 조지훈 등 많은 문인들은 이에 대응하여 격시(激詩)를 쓰고 ‘문총구국대’를 조직하여 1?4 후퇴를 전후한 시기에 특히 체계적으로 활동한다. 이러한 와중에 이광수, 김동환, 김억, 정지용, 김기림 등은 납북되고, 설정식, 이용악 등 좌익계 시인들은 월북하고, 박남수, 이인석, 양명문 등은 월남한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문단은 재편될 수밖에 없었고, 분단시대의 문학이라는 멍에를 벗을 수 없는 비극적 현실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한편,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결성된, 박인환, 조향, 김경린, 이봉래, 김차영, 김규동 등의 ‘후반기’ 동인들은 1930년대 모더니즘의 감각과 기법을 보다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청록파’류의 보수적인 서정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현대문명의 매카니즘과 그 이면을 ‘응시하는 자’로서 종군하며, 전쟁의 비극성을 드러냄으로써 자유로 수호하기 위한 어려움을 역설한 대표적 시집이다. 유치환의 시는 현장 시인들의 폭발적 격정이나 목적시로서의 절규보다는 그 속에 감춰진 인간 비극과 허무를 직시하는 차가운 지적 응시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시적 가치를 상승시키고 있다. 이러한 유치환 전쟁시의 지적 직시와 응시의 시선은 「칼을 갈라」,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등 후기시에 이르러 치열한 비판 의식으로 이행되어 사회 비판적인 참여시를 형성시키는 밑바탕이 되었다.② 구상), 시집 『초토의 시』에 나타난 전쟁 이미지구상의 두 번째 시집인 (56. 청구문화사)는 총 15편의 연작시로 구성되어 있다. 6.25 전쟁이 빚어낸 비극적 현실을 제재로, 처참한 현실에 대한 절망과 탄식을 극복하고, 형제애와 인류애가 전쟁의 비극이나 참회, 이데올로기에 우선함을 강조한다.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시들 중에서 조지훈의 시가 감상적 탄식의 시이고, 유치환의 시가 비분에 찬 의지의 시라면, 구상의 시는 전쟁의 비극을 기독교적 사랑으로 포용하고 넘어서려는 포용의 시라고 할 수 있다.해방 후 원산에서 동인지 『응향』 필화 사건으로 월남한 구상 역시 직접 종군하면서 전재의 비극과 전쟁의 폐허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였다. 그의 연작시 「초토의 시」는 전쟁체험의 험열함과 함께 전후의 비극적인 상황을 형상화한 성공적인 작품이다.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고나.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그래도 양지바른 드메를 골라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더 너그러운 것이다.……중략……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구름은 무심히도북(北) 흘러가고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 몇 발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목놓아 버린다.(구상, 「초토의 시?8, 적군묘지에서」에서)조국아, 심렁이 마냥 불쌍하기만 헌 너로구나.시인이 너의 이름을 부르량이면목이 멘다……중략……원혼의이별’로 인해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한의 구체적인 동기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박재삼의 ‘한’은 단순히 그의 “고질적 습성”에서 비롯한 것이거나, 혹은 그 스스로 합리화하여 말한 대로 “민족정서의 이름에 의탁”하여 시 창작을 하려는 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박재삼은 자신의 시론에서 이러한 정황을 “한에 귀의하여 나는 나대로의 시작을 계속하기를 염원해 왔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설화의 세계와 정한의 정서에 대한 탐색으로 정리될 수 있는 박재삼의 이러한 전후의 전통주의 시는 김소월의 전통주의적 시 창작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탐색한 한의 정서가 인간 존재의 모순에 대한 철학적 성찰, 더 나아가 근대 사회가 초래한 불모의 시대상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발전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② 신세대 전통주의 시인 : 이동주)『강강술래』(호남출판사, 1955) 등을 낸 시인 이동주의 시 창작 역시 전통주의에 기반 한다. 그의 전통주의적 시 창작에서 주목되는 것은 전통적인 리듬에 대한 천착, 그리고 이를 전통적인 정한과 해한의 문제에 결부시키고 있는 점이다. 이동주의 ‘리듬관’을 살펴보면, 리듬은 시인의 이상과 생명을 표현해주는 것으로 보았다. 즉 시는 엑스타시에 몰입한 상태에서 ‘피안’에 도달할 꿈을 표현하는 것인데,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리듬이라는 것이다. 이동주는 이러한 생각에 기반 하여 간결한 시 형식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으며, 그 스스로 연작시 「산조」를 포함한 일련의 시 창작에서 간결한 시 형식과 민요조의 리듬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여울에 몰린 은어떼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달무리가 비잉 빙 돈다가웅 가웅 수워얼 레에목을 빼면 서름이 솟고……백장미 밭에공작이 취했다.(이동주, 「강강술레」 부분 인용)이동주의 강강술래는 향토적인 시어와 정감에 바탕 하여 전통적인 리듬감을 재구성하고 잇다 그러나 그는 민요조의 율격을 기계적으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2음보와 3음보를 적절히 교차 반복시키. 1960년대 말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가 1980년부터 재개한 그는 ‘한국적인 전통’에서 ‘세계적인 전통’으로 우리 시가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정열적인 창작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작품으로는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현대의 온도’,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서울’, ‘서울은 야생마처럼’ 등이 있다.오늘도 성난 타자기처럼/질주하는 국제열차에/나의/젊음은 실려 가고보랏빛/애정을 날리며/경사진 가로(街路)에서/또다시/태양에 젖어 돌아오는 벗들을 본다.옛날/나의 조상들이/뿌리고 간 설화가/아직도 남은 거리와 거리에불안과/예절과 그리고/공포만이 거품 일어꽃과 태양을 등지고/가는 나에게/어둠은 빗발처럼 내려온다.또다시/먼 앞날에/추락하는 애정이/나의 가슴을 찌르면거울처럼/그리운 사람아/흐르는 기류(氣流)를 안고/투명한 아침을 가져오리.(김경린, 「국제 열차는 타자기처럼」)이 시는 국제 사회 속에서 겪는 지식인 화자의 절망과 좌절을 현대 문명의 한 표상인 ‘타자기’로 포착하여 현대인들의 정신 풍토를 그리고 있다. 발표 당시 ‘국제열차’?‘타자기’ 같은 시어는 대단히 생경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시인은 이 광물성 이미지의 시어들을 통하여 현대 도시 문명이 지닌 메카니즘을 보여 주고 있다. 화자는 마치 ‘성난 타자기처럼’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질주하는 국제열차’처럼 빠르게 변화해 가는 국제 사회에 동승하지 못하고, ‘조상들이 / 뿌리고 간 설화가 / 아직도 남은’ 전통적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우수와 병리를 진단한다. 그것은 바로 6?25의 비극적 체험과 상처로 인한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 가치의 전도와 혼란, 도시화에 따른 비인간화 현상의 심화 등,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젊은 지식인들의 ‘불안’과 ‘공포’이며, ‘예절’로 대표되는 전통 문화가 파괴되는 현실을 무심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고통이다. 그러나 지금은 비록 빠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불안과 고통을 겪고 있지만, 세계적 ‘기류’에 편승하여 언젠가 ‘투명한 였다.③김규동호는 문곡으로 192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1946년 연변의과대학 수료하고 1948년 『예술조선』에 ‘강’이 입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78), 『하나의 세상』(1987), 『오늘밤 기러기떼는』(1989)이 있다.현기증 나는 활주로의최후의 절정에서 흰나비는돌진의 방향을 잊어버리고피 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본다.기계처럼 작열한 작은 심장을 축일한 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한 광장에서어린 나비의 안막을 차단하는 건투명한 광선의 바다뿐이었기에진공의 해안에서처럼 과묵(寡?)한 묘지 사이사이숨가쁜 Z기의 백선과 이동하는 계절 속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燐光)의 조수에 밀려이제 흰나비는 말없이 이즈러진 날개를 파닥거린다.하얀 미래의 어느 지점에아름다운 영토는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푸르른 활주로의 어느 지표에화려한 희망은 피고 있는 것일까.신도 기적도 이미승천하여 버린 지 오랜 유역그 어느 마지막 종점을 향하여 흰나비는또 한 번 스스로의 신화와 더불어 대결하여 본다.(김규동, 「나비와 광장」)이 시에서 김규동은 30년대 모더니스트인 김기림의 의식을 50년대의 상황에 투사한 느낌을 준다. 김기림은 ‘바다와 나비’에서 ‘바다에 앉으려다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오는 나비’를 일제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초상에 비유한 바 있다. 물론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알레고리의 측면에서 읽기 때문일 것이다. 김규동의 시에서 ‘나비’는 청록파나 자연파 시인들의 그것이 아니라, 그리고 일제 식민지 시대의 그것이 아니라 50년대라는 ‘현기증 나는 활주로의/최후의 절정’에서 돌진의 방향을 잃어버린 자아를 포상하며, 또한 ‘한 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한 광장’에 서 있는 현대인의 초상을 표상한다. 활주로에 있는 나비, 광장에 있는 나비는 뚫고 들어갈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떨고 있는 자아를 표상한다. 나비를 노래하되 김기림처럼 ‘바다’에 떠있는 나비를 노래하는 것도 그렇지 한다.
    인문/어학| 2003.10.11| 14페이지| 1,500원| 조회(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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