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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댐 건설 보고서
    지리산 식수댐은 꼭 필요한가?그리고 그것의 환경적 영향은?환경단체와 미래학자들은 21세기, 인류최대문제는 물 부족 사태라고 경고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수자원이 풍부한 우리 나라도 2005년부터는 물 부족 국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기에 정부는 서둘러 댐을 건설하지 않으면 예측할 수 없 는 엄청난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며 37개의 댐을 건설중이거나 건설할 예정이다. 이는 댐이 건설됨으로 입게 될 생태계 파괴와 주민피해는 감안하지 않고 당장 수 량을 확보하고 보자는 억지논리이며 후진적 물 정책이다. 이에 해당 지역 댐 건설 백지화 대책위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주민 생존권을 지키 고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이제 물 정책은 정부 혼자의 힘 으로 해결할 수 없다. 시민의 참여와 책임성 있는 실천이 물 문제를 극복할 수 있 게 한다.1. 지리산의 현대적 의미'지혜로운 이인이 많이 사는 산'이라 하여 지리산(智異山)이다.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은 남반도에서 가장 높고 그 품세가 가장 큰산이다. 그 골의 깊이 또한 웅 장하여 장엄하다. 그 품은 마치 어머니 품 같고 하나님 품과 같다. 지리산에 30여 번 올라가 본 사람도 지리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지리산을 모른다고 말한다. 아니 지리산의 그 넓이와 깊이에 놀랄 뿐이다. 지리산은 그 광대한 만큼 많은 역사를 담고 있다. '지리산을 오르지 않고서는 역사를 얘기하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한 다. 그만큼 지리산은 살아 있는 역사교과서다. 우리는 지리산을 민족의 어머니, 역 사의 어머니라고 부르고자 한다.민족의 성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숭모의 정을 품어온 지리산은 우리 민족의 살 아 있는 삶이요, 역사요, 생명이다. 지리산은 불교와 기독교와 유림이, 좌익과 우 익이, 호남과 경남이, 과거와 현재가 한자리에 만나는 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리 산은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참 사람으로 살 수 있는 통일세상 을 지리산이 열 것이다. 지리산에 그 길이 있다. 동서의 벽을 허평 규모의 국가공단을 건설한다고 발 표한 것이다. 이는 낙동강을 영구히 포기하자는 행위이다. 낙동강은 이미 그 정화 능력을 상실했고 이대로 방치하였다간 영원히 회복이 불가능해진다. 그러기에 더 늦기 전에 낙동강을 살려야 한다. 위천공단건설은 을 허 울 좋은 개살구로 만들 것이다. 지금까지 대구시와 대구의 산업기반은 낙동강을 희생물로 삼아 형성된 것이다. 이는 지역이기주의를 불러왔다.위천공단건설은 낙동강의 수질을 크게 악화시킬 것이 뻔하니 낙동강을 식수로 쓰는 부산시민들이 위천국가공단 조성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것이 다. 이에 정부는 부산시민들에게 낙동강물보다 더 좋은 물을 주겠다며 서부경남 지리산 일대에 3-4개의 식수댐을 건설하고자 계획한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대 구공단의 긴급식수오염을 대체하는 광역상수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산시의 정책 대안을 가능케 하였다. 그러기에 부산시는 즉각적으로 지리산댐 건설을 환영하고 나섰다.3. 지리산 식수댐 건설계획이 잘못된 이유(1) 민족의 젖줄 낙동강을 포기하는 정책낙동강 유역은 전 국민의 1/4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낙동강은 한국을 산업화시 킨 원동력으로 모든 국민에게 은혜로운 강이다. 그 은혜를 제공하느라 이제 낙동 강은 중병을 앓고 있다. 그런 낙동강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위천공단 건설논리는 낙동강을 고스란히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지리산 식수전용댐 건설계획은 위천공단 조성이라는 명분을 제공하게 되고, 그로 인해 낙동강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2) 민족의 영산 지리산 생태계를 파괴하는 정책지리산 식수댐 예정지는 지리산과 근접해 있다. 함양군 지리산댐 예정지는 지리 산 국립공원과 접해있으며, 산청군 덕천강댐 예정지는 국립공원으로부터 불과 수 ㎞ 떨어져 있다. 이 곳에 예정대로 댐 건설이 강행된다면 지리산의 수려한 계곡 (중산리계곡과 칠선계곡. 백무동계곡 입구)이 수몰되어 지리산 생태계는 엄청나게 파괴될 것이다.댐건설이 가져오는 생태계에 대한 피해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식수댐 예정지로 부터 상류지. 올벗나무·사 향나무·하늘다람쥐·반달가슴곰·수달 등 천연기념물과 세계적 희귀동물이 살고 있으며, 조류 중에는 7종의 천연기념물과 3종의 희귀종, 2종의 특이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지리산 기슭에 대규모 댐을 만들 경우 안개일수의 증가 와 일조량의 감소 등 이상기후를 초래해 지리산 생태계가 크게 파괴될 것이다.지금도 지리산은 몸살을 앓고 있다. 무분별하게 건설한 횡단도로는 생태계를 단 절시켰고, 계곡마다 자리잡은 위락단지는 하류지역 하천수질의 중요한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다 지리산 국립공원으로부터 불과 수십㎞ 이내에 대형댐이 많이 건설되어 지리산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남강댐, 합천댐, 하동 댐, 지리산 양수댐 2기가 이미 건설되었거나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고, 거기에 지 리산 기슭에 2개의 대형 식수전용댐이 건설되고, 합천댐 상류에 또 하나의 식수전 용댐이 건설되면 안개발생일수는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고, 그에 따라 지리산 생태 계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3) 주민들의 지적소유권을 강탈하는 행위댐이 건설되면 많은 피해가 발생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주민들의 지적소유 권을 강탈한다는 것이다.4. 지리산댐 건설 반대 운동1999년 3월 예비 타당성 조사를 위한 협조 공문이 발각되면서 드러난 지리삼댐 건설 계획은 즉각 서부경남 환경단체 및 시민들의 저항에 직면했다. 4월에 진주의 환경연합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해당지역 주민과 관심 있는 사람들로 지리산댐 건설 백지화 투쟁본부를 결성하였다. 산청엔 지리산댐 산청군 백지화 대책위원회 가 5월에 결성되었고 함양엔 지리산댐 함양군 백지화 대책위원회가 7월에 결성되 어 적극적으로 댐 반대 투쟁을 하고 있다. 작년 8월에 결성된 지리산 연대는 지리 산댐 건설이 지리산을 파괴하는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종교계와 각 단체를 동 원하여 대정부 항의문을 전달하였고 전국 환경단체와 연대하여 백지화투쟁을 적 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지난 10월 25일에 있었던 경남지역 공청회는 지리산댐 건 설 이에 지리 산댐 건설 백지화 투쟁본부는 강력하게 항의하였고 환경부는 항의를 받아들여 환 경부와 시민단체가 추천한 전문가들로 갈수기 하천 유지용수 증대방안 조사단을 구성하였다. 이 조사단은 2월에 결성되어 2000년 12월까지 조사활동을 펴게된다. 정부는 조사단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댐 건설 유무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지리 산댐 건설 백지화 투쟁본부는 조사활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지역민들을 설득 하여 반대운동에 동참하게 하고 있다. 또한 경북지역의 댐 예정지역 주민대책위와 범낙동강유역댐반대대책위를 지난 2월에 결성하였다. 또한 3월 댐반대 행동의 날 을 맞아 서울 참여연대에서 동강댐 등 전국적인 댐 예정지역 및 건설 지역 주민 대책위와 전국댐저지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세계는 공급위주에서 수요위주의 물 관리 정책으로 바꾸어가고 있으며 댐 건설 을 피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수량을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또한 절수나 중수도를 설치하여 물의 효용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미 세계는 오폐수의 완전정 화는 물론 물 재활용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물을 돈 쓰듯 하고 있다. 세계는 댐을 막아서 얻는 이익보다는 강을 흐르게 해서 얻는 이익이 더 많다고 판단하기 시작 했다. 댐을 막음으로 입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태계 파괴와 피해가 그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나라도 댐 건설 주변에 심상치 않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 다. 또한 댐은 주변 생태계 파괴는 물론 엄청난 자연재해를 조장하고 있다.1996년 8월 지리산 식수댐 건설 계획이 발표된 이후 의문시되었던 식수댐은 대 구 위천공단과 낙동강의 심각한 오염으로 더욱 현실화되고 있다. 이제 이 문제는 지역의 갈등을 조장하여 지역 이기주의를 양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500만 명 의 젖줄인 낙동강을 포기하자는 입장이며 서부경남의 용수확보 및 지리산 일대의 자연생태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함으로 백지화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늦은 감은 있지만 식수댐 건설이 자연 생태계를 훼손하고 우리민족의 지리, 역사적 지적 흘러야 산다. 인간은 강을 막아 필요한 전 력을 얻고 용수를 얻는데, 강을 막는 것은 강의 생명을 죽이는 행위이다. 그러기 에 댐 건설은 강에게는 치명적인 죽음이다. 강은 흐르면서 강 주변에 기대어 사는 모든 생명체들을 살린다. 강이 막히면 오히려 주변의 생명을 죽인다. 인간의 문명 도 결국은 강을 끼고 발달해 왔기에 강의 죽음은 인간문명의 죽음이며 인간의 죽 음이다. 강을 살리고 강을 잘 가꾸고 보존하는 일은 결국 인간의 문명을 꽃피게 하고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일이다.그러기에 우리는 지리산에 댐을 건설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지리산 댐은 엄천강을 죽이고 지리산을 죽이고 거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을 죽이게 될 것이 다. 더 나아가서 인류를 죽게 할 것이다.{{평가항목환 경 변 화저 감 방 안기상환경댐의 건설로 인공저수지가 생성되어 수표면의 열수지 변화로 인하여 증발량, 안개일수, 기온, 습도 등 국지적인 기후변화 예상모델링 결과 가을철에서 겨울철에 걸쳐 증발량이 증가하고 상대습도가 높아 증발무 형태의 안개 발생빈도 증가 예상발전용수 방류시 댐하류의 경우 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방류수온이 기온에 비해 다소 낮으나 하류로 흘러감에 따라 대기층의 가열로 수온이 상승하여 자연하천 수온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되어 방류로 인한 영향은 댐하류의 좁은 지역으로 국한될 것으로 판단됨댐건설후 저수면의 증가에 따른 안개일수 및 증발량의 증가 등 다소간의 기상변화는 불가피한 영향으로 댐의 완공 후 매월 주기적으로 유입수온, 수온과 수의 수심별 수온을 측정하고 수시로 수온과 증발량을 예측하여 댐운영에 참고토록 할 예정이며 댐건설로 인한 국지기상의 변화를 관측하기 위하여 간이기상관측소를 설치하여 주기적으로 기온, 상대습도, 강수량, 풍속, 풍향등을 관측하고 이에 따른 환경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할 예정임또한 발전용수 방류시 댐하류부의 냉해피해를 저감하기 위하여 표층수 취수탑을 설치토록하여 가을철의 증발량 감소와 봄철의 하류지역 냉해를 동시에 저감시킬 수 있도록 할 계획임동식물상
    사회과학| 2000.10.16| 8페이지| 1,000원| 조회(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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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괄수가제 평가C아쉬워요
    DRG 지불제도 (포괄수가제)1. DRG 지불제도의 개념DRG(Diagnosis Related Group:진단명기준 환자군)란 미국의 예일대학팀에 의해 1960년대말부터 10여년에 걸쳐 병원 경영개선을 위해 환자특성 및 진료특성을 반영하여 개발된 입원환자 분류체계이다. DRG 분류체계에서는 모든 입원환자들이 주진단명 및 부상명병, 수술명, 연령, 성별, 진료결과 등에 따라 진료내용이 유사한 질병군으로 분류되는데, 이때 하나의 질병군을 DRG라고 한다.DRG 지불제도란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한 포괄수가제도로서 환자가 어떤 질병의 진료를 위해 입원했었는가에 따라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양에 관계없이 DRG별로 미리 책정된 일정액의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이다.2. DRG 지불제도의 장·단점1 장 점가. 적정량의 의료서비스 제공현재의 행위별수가제에서 볼 수 있는 진료량 증대에 따른 경영상 이익이 소멸되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의료행위와 의료서비스의 제공을 통한 의료기관 스스로의 비용감소 노력의 활성화와 의료기관 스스로 과잉진료와 의료서비스의 남용을 억제하게 되며 요양기 관은 적정량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나. 행정비용의 절감의료기관의 진료비 청구방법이 매우 간편하게 되고, 진료비 청구심사가 불필요하거나 대폭 간소화 되므로 막대한 행정비용의 절감이 기대된다.다. 요양기관과 보험자간의 마찰 감소행위별 진료비 심사 및 삭감에 따른 의료인과 보험자간의 마찰이 줄게 된다. 의사들의 임 상적 자율권 영역에서의 심사가 없어진다. 관리단위가 개별행위에서 DRG로 커지므로 총량 적인 통제수준에서 머문다라. 요양기관의 경영효율화·의료비용의 절감의료기관의 자발적인 경영효율화를 기대할 수 있다. 총체적인 의료비용의 절감이 가능하다.제공되는 진료서비스의 강도와 수량이 감소된다.2 단 점가. 요양기관과 환자와의 마찰 예상의료기관들의 비용절감 노력이 의료서비스 제공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어 의료의 질 저 하 및 환자와의 마찰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DRG별 수가가 적정원가를 보상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책정될 경우 경영압박을 받는 의료기관들이 질저하를 통한 원가 절감을 모색할 수 있다.나. 요양기관의 허위·부당청구의 우려DRG 코드 조작에 따른 의료기관의 허위, 부당청구의 우려가 있다.다. 진료서비스의 규격화·기술개발 임상연구발전에 장애진료서비스의 규격화가 우려되며 신규기술 이전에 대한 전환이 적절하지 못할 경우 진료효 과면에서 우수하나 비용이 많이드는 신기술이나 진료방식의 채택이 억제됨으로써 기술의 개발이나 임상연구 분야의 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다.- 1 -3. 시범사업 결정'94년 1월 21일 의료보장제도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하여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문기구로서 설치된 「의료보장 개혁위원회」의 현행 의료보험 진료비 지불제도인 행위별 수가제도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개선방안으로 입원 부분에 대해 포괄수가제인 DRG 지불제도의 단계적인 도입, 실시 방안을 건의함에 따라 정부는 DRG 지불제도의 도입, 실시방안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검토, 추진하기 위하여「DRG 지불제도 도입·검토협의회」를 '95년 1월 구성하고 동위원회를 지원하기 위하여 실무작업반 및 책임연구기관으로“한국보건의료관리연구원”을 구성 또는 지정하였다.「DRG 지불제도 도입·검토협의회」는 연구기관 및 학계, 보험자 및 보험자단체, 의료계, 보건복지부 관련 공무원 15명으로 구성하여 운영되었으며 동협의회는 DRG 지불제도 시범사업 실시 방안에 대하여 5차에 걸쳐 검토협의한 결과 일부 DRG 질병군을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을 시행하기로 확정하여 '97. 2. 1부터 실시중이다..4. 시범사업 실시목적시범사업 실시를 통해 새로운 지불제도에 대한 의료계, 보험자,환자의 이해 증진을 도모하고 현행 행위별 수가제도하에서 발생할 수있는 과잉진료, 진료비청구·심사에 따른 행정업무의 과중 및 보험자와 의료기관간의 마찰 등 문제점들을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해결하여 적정진료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이번 시범사업은 DRG에 의한 포괄수가제가 의료비 증가, 의료의 질, 의료보험 진료비 청구·심사 및 관리업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것으로 동 평가결과를 토대로 DRG 지불제도의 추진방향을 설정하고자 하기 위함이다.5. 시범사업 대상 DRG 및 내용1 시범사업대상 DRG는 일반외과,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의 4개 진료과 5개질병군(안과: 백내장수술, 이빈인후과: 편도·아데노이드수술,산부인과: 정상분만, 제왕절개술, 일반외과: 맹장염수술)으로 이를 중증도, 연령에 따라 26개 DRG로 구분하여 시범사업에 참여를 희망하 는 60개 병·의원을 대상으로 '97년 2월 1일(진료분)부터 실시중이며 걸쳐 1차 시범사업은 1 년에 걸쳐 실시할 계획이다.2 DRG 진료비 계산은 책정된 기준수가를 기준으로 환자별 입원일수에 따라 보험자 부담료와 환자본인부담금이 계산된다. 보험자 부담금은 입원일수가 극단적으로 짧은 환자에 대해서는 기준수가보다 낮게 결정되고, 입원일수가 극단적으로 긴 환자에 대해서는 기준수가 보다 높 게 결정되며 환자 부담금은 입원일수가 길어질수록 증가하게 된다.3 DRG 진료수가는 환자가 의료기관에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해당 요양기관에서 환자에게 제공한 처치, 검사 및 수술, 약제, 진료재료 등 모든 진료행위(비보험 및 비급여부문 포함)를 포함하되 식대, 상급병실 차액, 지정진료료, MRI 및 초음파 검사료는 제외된다.)따라서 요양기관은 MRI, 초음파진단, 식대, 상급병실료 차액, 지정진료료에 대해서는 환자에 게 본인부담 시킬 수 있으나 이외의 다른 모든 의료서비스 비용에 대해서는 환자에게 별도 부담시킬 수 없다.6. 진료비 청구 방법DRG 지불제도 참여 요양기관의 진료비는 전산기록장치를 이용하여 작성한 자기매체(디스켓)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월별로 1회 청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 -1 시범사업 대상 DRG 환자의 입원진료비는 진료비청구서와 디스켓(DRG 진료비 전산매체 청 구방법에 따라 작성)으로 청구한다.2 시범사업 비대상 환자의 입원진료비는 기존방식과 같이 청구하고,“1”과 동일한 사양으로 별도의 디스켓을 작성하여 제출(디스켓의 명세서일련번호는 진료비명세서의 일련번호와 누락 분없이 일치하여야 함)한다.3 DRG 시범사업 실시전 3개월간의 입원진료분은 별도의 디스켓으로 제출하되 최초청구시 1회 에 한한다.4 모든 외래환자의 진료비는 기존방식과 같이 청구한다.5 모든 시범사업 대상 DRG 환자의 진료비는 반드시 DRG 진료비 청구방법에 의하여 청구하여 야 하며, 일부를 현행 행위별수가제에 의하여 분리청구할 수 없다.7. 환자의 본인부담 수준에 미치는 영향시범사업에서 비급여를 인정한 5개 항목은 종전처럼 환자가 전액본인부담하게 되나 종전에 의료보험에서 인정되지 않아 환자가 전액 본인부담하였던 진료재료, 검사, 약제 등을 DRG별 수가에 모두 포함하였으므로 전체 환자부담 진료비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의/약학| 2000.10.16| 3페이지| 1,000원| 조회(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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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정소설에관하여 평가A좋아요
    . 艶情小說論艶情小說論艶情이란 문학의 普遍的인 주제인데, 艶情小說이란 항목을 따로 설정하는 것은 그것이 신성에서 세속으로 이행하는 조선 후기 사회의 동향과 일치하면서 世俗小說 내에서의 뚜렷한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의 공통적인 현상의 하나는 愛情問題로, 거의 대부분의 문학 작품이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다루었을 뿐 아니라, 一般的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리만큼 유행되었다. 이것은 곧 인생에서 애정이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만큼 중요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예기」에 의하면 人情중의 7정은 사람이 배우지 않고도 先天的으로 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애정은 가장 중추적인 위치에 있다고 하겠으니, 愛情을 통해서 다른 6정을 나타내는 경구가 많음은 바로 그것을 뒷받침해주고도 남음이 있다가 하겠다.위와 같이 인정의 중추요, 선천적으로 주어진 人間의 本能이요, 또 인간 생활의 기본 형태인 애정은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하여 무지했던 태고시대의 원시인들로부터 문명을 자랑하는 현대인의 생활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아무리 발달한 문명의 이기로도 그 양과 질에 있어서 우열을 가리기란 매우 곤란한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애정의 대상물에는 자연, 동식물, 인간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애정의 대상물 중 우리 조상들의 생활사를 점철한 고소설 중 남녀간의 애정 문제를 중심으로 표현한 작품들인 염정 소설을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한다.염정 소설의 수는 한문본·국문본을 합하여 백여 편에 달할 뿐만 아니라 그 분류에 있어서도 각 저자의 주관에 따라 軍談·道德·家庭·理想 등의 소설로 분류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의 난맥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본고는 작품 자체의 애정 관계의 비중을 중시하면서 소설사에서 많이 다루어지고 있는 , , , , , , , , , 등 10편을 대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1. 작품 개관1) 판본은 목판본으로 경판본이 있고 활자본으로는 국문본과 한문본 양종이 있으며 필사본으로는 '梨花停記', '梨결연 설화는 고전 소설 전체에서 유형화되어 있는 결구법이라 통속적이라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구성에서는 범속하지만, 남녀 주인공의 애정 생활 비교적 절실하게 그려 놓고 있다.선군이 장래를 생각하며 과거를 보러 길을 떠나서 두 차례나 밤중에 되돌아와 숙영과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사랑의 삼매경을 잘 그려 놓은 극치의 수법이라 할 수 있다. 늦게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가 아들의 혼처를 백방으로 구했지만, 당시 사회에서 부모가 정해 주는 사람과의 결혼이 아닌 꿈속에서 만났던 선녀와 결혼하는 것에는 자기 선택의 의지가 깊이 담겨 있다. 이것은 조선 시대 유교적 도덕에 바탕을 둔 봉건적 전통적 가치관이 애정을 추구하는 남녀 주인공의 본능적 욕구 앞에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문제, 비슷한 양상을 숙영낭자전만큼 강렬하고도 선명하게, 깊이 있게 조명해 주는 작품이 없기 때문에 이 작품의 진가는 더욱 빛나는 것이다.숙영낭자전은 「수경낭자전」, 「수경옥낭자전」, 「숙향 낭자전」, 「낭자전」 등의 이름이 붙어 있기도 하다. 신선과의 인연으로 결연을 맺어 행복하게 살다가 죽은 선녀가 다시 살아나는 재생 설화를 중심으로 엮어 놓은 소설로, 단편적인 전설을 소설로 극화시켜 놓았다. 아들을 갈구하는 선비의 심리와, 늦게 둔 아들이 장원급제하여 가문의 영화를 이루고, 하늘의 선녀를 며느리로 맞아 부귀를 누리려는 전설적인 소망을 현실처럼 그려 놓은 것이다. 이것은 양반 사회와 양반 가정을 배경으로 하여 道仙 思想을 근본으로 삼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쓴 애정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판본은 목판본으로 (한문본)과 (국문본) 2종이 있으며 이외에도 활자본과 필사본이 전한다. 원작은 한문본이었던 것 같고 국문본은 한문본 에서 번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작자는 미상이며 제작 연대는 보다 앞선 숙종·영조 사이 또는 영·정시대 이전에 쓰여졌다고 보고 있다.경개는 다음과 같다.세종 때 白尙君이라는 선비가 있었는데 명산 대찰에 가서 발원하고 말년에 仙君이라는 아들을 낳는다. 선군 지내게 한다.왕실에서 세자 탄생의 기념으로 과거를 열자, 옥단춘은 이 혈룡이 응시하도록 서울로 보낸다. 서울 집에 온 이 혈룡은 김 진희가 돈을 보내 집안 살림이 넉넉해졌다는 말에, 그럴 리가 없으며 반드시 옥단춘이 보낸 것이라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한다. 과거에 응시한 이 혈룡이 급제, 암행어사로 평양의 실정을 왕께 알리기로 하고 평양으로 떠난다. 과거에 낙방한 거지 차림으로 옥단춘을 찾아 가나 옥단춘은 반가이 맞는다.연광정에 잔치가 있어 이 혈룡이 다시 찾아가니, 살아 있는 이 혈룡을 본 평양 감사김 진희는 옥단춘과 이 혈룡을 죽이라 명하여 물에 빠뜨리려는데, 암행어사 출두'를 알린다. 곧 이 혈룡이 죄과를 다스려 김 진희를 죽이려다,옛 정을 생각해 그만두려는 순간 벼락을 맞고 김 진희는 시체도 없이 죽는다. 이 혈룡이 평양 감사를 맡아 김 진희의 권속을 보살피고 옥단춘을 첩으로 맞으니, 왕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칭찬하여 정덕부인, 정렬부인으로 봉하니, 그들의 명성이 빛난다.은 의 아류작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이름 이 혈룡', 기생과의 결혼, 암행어사 출두 등이 비슷하고, 또한 타락한 벼슬아치의 횡포와 우정을 풍자, 비판하고 있으며, 비교적 우연성이 적어 사실적이다는 점이다.본 작품은 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여 傳奇性이나 偶然性을 어느 정도 배제한 사실성을 띠고 있는 작품으로서 표현에 있어서도 다른 고소설이 서술적 형식을 취한 데 대하여 人物·背景·事件의 표현이 描寫的 형식을 취하고 있다.5) 판본은 목판본과 활자본이 있으며 국문본만 전하고 있다.작자와 제작 연대는 미상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명나라 남양의 양 현은 이부상서의 자손으로 이상적인 인물이었고, 그의 부인 왕씨도 훌륭한 사람이었으나 나이가 오십이 되어도 자식이 없어 고심한다. 양 현이 시름을 하며 술을 마시고 졸던 중 꿈에 선동이 나타나, 천상에서 죄를 지어 인간으로 당신의 자식이 되고자 한다'는 꿈을 꾸는데, 동시에 부인도 같은 꿈을 꾸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산백이라 하였다. 산백은 두목지의 풍채인 열 여덟의 소년 김 필성이 나타나자, 급히 집으로 돌아 오다가 수건을 떨어뜨린다. 필성이 수건을 주워 두 사람이 만난 연분을 싯귀로 써서 준다. 이 때 필성은 외가댁에 와 있던 때였다.다시 채봉과 만나다가 채봉의 어머니에게 발견되는데, 채 봉의 어머니는 필성이 마음에 들어 사위로 맞고자 사주단자를 보낸다.한편, 서울 간 김 진사는 마땅한 배필을 구하지 못하자, 당시 권세 있는 허 판서와 친하다는 김 양주에게 기생 산홍의 집에서 술을 마시며 돈 만 냥을 주고 벼슬자리를 구한다. 그 돈이면 삼상육경의 자리도 가능하다는 말을 들은 기생 산홍이 역모하는 줄로 의심한다. 허 판서는 김 진사에게 과천 현감자리를 주기로 하고, 대신 딸 채봉을 허 판서의 별실로 보내기로 약속한 뒤, 평양으로 돌아 온다. 집에 오니 딸이 김 필성과 혼약이 되어 있자 고민하다가, 그래도 가난보다야 벼슬이 좋고 자신도 욕심이 나서 부인과 합의, 채봉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 간다. 도중에 도적이 주막에 닥친 틈을 타서 채봉은 몰래 다시 평양으로 돌아 간다. 김 진사 내외는 고생을 하다가 돈 오천 냥도 잃고 딸도 죽은 줄 알고 허 판서를 찾아 가나, 도리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옥에 갇힌다. 부인만 평양으로 돌아 와서 채봉이 살아 있는 줄 알고 사정을 말하니, 채봉이 아버지를 구하려고 기생이 되어 돈을 벌어 부인이 허 판서를 찾아 가나, 허 판서는 딸을 원하며 풀어 주지 아니한다.기생이 된 채봉이 강 필성을 만나려고, 전날 필성이 수건에 써 준 싯귀를 화답하면 오입장이를 맞겠다고 하나 아무도 맞추지 못하는데, 소문이 필성에게까지 들어 가 필성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이 때 신임 평양감사 이 보국이 채봉의 글재주를 보고 공사를 맡긴다. 강 필성도 이방으로 들어 가 서로 가까이 소식을 들으며 지내나 만나지는 못한다. 이에 채봉이 가을밤, 추풍감별의 시를 쓰고 울다 잠이 드니, 이 보국이 우연히 이를 보고 강 필성을 만나게 해 주며, 허 판서가 역적죄로 파멸되었다고 일러 준다. 김 진사가선과 오소저를 들 수 있는데 이들 주인공들의 결연담은 다음과 같다. 이선은 의 집을 찾아서 부모 몰래 숙향과 가연을 맺고 부모이 강렬한 반대에 부딪치나 끝내 거역하여 결국 허락을 받았으며, 백선군은 꿈에서 본 숙영과 결연하여 끝까지 열애하다가 함께 상천하였으며, 유백노는 수학차 떠난 도중에 조은하화 결연한 후 권세의 압력에도 굴함이 없이 함께 수절하였으며, 양산백은 여위남한 축영대의 정체를 발견하고는 서로 연정을 통했으나 여의치 못해 결국 무덤으로부터 함께 재생하여 결연하였으며, 권용선은 오소저를 상면한 후 사모의 정을 모친께 고하고는 천자의 강압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가연을 맺는다. 이처럼 남녀 주인공이 귀족인 경우에는 대략 결연, 이별, 재봉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남녀 주인공들이 자의에 의하여 통정하고 가연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거의 선불 사상을 바탕으로 주인공이 탄생하였고 위기의 상황에서는 기적의 출현으로 극복하는 전기성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연대와 지리적 배경이 중국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다음 남주인공이 귀족, 여주인공이 서민인 것으로 이혈룡과 옥단춘, 이몽룡과 성춘향, 강필성과 김채봉, 이옥린과 경패를 들 수 있는데 이들 주인공들의 결연담은 다음과 같다.걸인 행색의 이혈룡이 친구인 평양감사를 찾아가서 박대를 받을 때 비범한 인물임을 안 옥단춘은 그에게 경제적인 후원과 적극적인 사랑을 쏟아 과거에 급제시키고 가연을 맺고 있으며, 성춘향은 이몽룡과 헤어진 후 신관 사또의 수청을 거절해 곧 죽게 되나 어사가 되어 돌아온 이몽룡에 의해 구출되어 가연을 맺고 있다. 부친 김진사의 매관 매직 때문에 강필성과 헤어진 김채봉은 체면과 신분을 돌보지 않고 몸을 팔아 기녀가 되고 라고 개명까지 하면서 하옥된 부친도 구하고 강필성과도 가연을 맺고 있으며, 한낱 시골 서생인 이옥린을 위하여 경패는 삭발 위승하고 눈물겨운 애정 편력을 한 후 가연을 맺고 있다. 이처럼 남녀 주인공이 귀족과 서민인 경우에는 당시 봉건 사회의 기강에 저촉되는 남녀간으 애정을 기 있다.
    인문/어학| 2000.10.05| 15페이지| 1,000원| 조회(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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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관찬과 사찬의 관점에서 본 서술상의 상호비교) 평가A좋아요
    - 官撰과 私撰의 관점에서 본 서술상의 相互比較 -三國遺事와 三國史記- 官撰과 私撰의 관점에서 본 敍述上의 相互比較 -Ⅰ. 들어가며歷史編纂은 이전 시대 歷史를 정리하는 사업으로서, 儒敎的 王道政治 구현의 문화적 기념물이다. 동시에 그것은 中央集權 완성의 표징으로서 왕실권위의 확립을 위한 산물이다.이러한 점에서 三國遺事와 三國史記가 무사히 後世에 전래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의 歷史的 관점과 意識을 통한 검증을 통해 내려왔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말해 이 兩者는 그 시대의 歷史意識을 담고 있는 것이다. 또한 三國史記와 삼국유사는 同時代(高麗)에 저술되었지만 官撰과 私撰의 또다른 行態로 서술되었으므로 歷史敍述上의 비교에 좋은 참고사항이 되리라. 그러므로 우선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의 저술당시의 시대역사의식과 저자의 生涯와 역사서술상의 태도 상호비교 즉 시대배경, 저자, 서술방법을 통해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의 내용을 알아보고 歷史的 意義를 알아보도록 한다.저술당시의시대상황(時代歷史意識)私撰·官撰↘저자의 생애 및역사의식→ →史學史的 意義서술상의 방법↗Ⅱ. 삼국사기⑴ 高麗시대의 역사의식) 上卷 (조동걸, 한영우, 박찬승 - 창비사) p.45 ∼4710世紀 初 왕건 일파에 의한 高麗의 建國은 신라말기의 사회적 모순을 지양하여 좀더 도덕적인 사회를 재건하고 後三國으로 분열된 주민들을 재통합하여 民族統一을 한 단계 진전시켰다는 점에서 중대한 歷史的 意義를 갖는다. 크게 보아 高麗는 신라의 변경지방에서 성장한 지방세력가들이 연합하여 세운 것이지만, 그 핵심적 주역은 예성강 일대의 高句麗 후예들이었으며, 高句麗의 옛 영토를 수복하고 그 후예들이 세운 발해의 유민들을 포용하여 민족의 대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國家的 理想으로 표방되었다. 국호를 高麗라 하고, 高句麗 수도이던 平壤을 西京으로 승격시켜 北進政策의 거점으로 발전시킨 것, 그리고 발해의 망명 귀족들을 대거 포섭하여 우대한 것 등이 그러한 國家的 理想과 관련된 것이었다.高麗전기 200년간을 지배했던 이와같은 역사의식한 國民的 통일주의의 승리라고 간주하며, 갈등과 분열을 國家滅亡 원인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당시 社會矛盾을 간접적으로 비판할 수 있었다.결국 金富軾 生涯의 전·중반기는 문벌귀족들의 횡포와 비리에 대한 현실비판의식과 金의 압력에 대한 國家意識이 강조되는 때였다. 그리고 후반기는 묘청란 진압 이후 왕권의 강화와 高麗왕조의 통치권 확립을 위한 노력이 요청되는 시기였다. 여기에 「三國史記」편찬의 배경이 있다. 즉 이 책은 안으로 왕권을 옹호하고 밖으로 나라를 지켜주는 정신적 구실을 하고자 한 것이다. 金富軾은 삼국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史家로서, 그리고 현존하는 最古의 역사서인 「三國史記」의 編纂者로서 유명하다.그러나 從來 그의 歷史觀과 「三國史記」에 대한 평가는 肯定的인 것보다 否定的인 것이 지배적이었다. 즉 그는 문벌귀족의 歷史家, 역사사실을 마음대로 날조 삭제한 歷史家, 사대적인 歷史家로 평가되어 왔고, 儒敎的인 歷史家로서 佛敎的인 내용과 전통적인 고유사상을 삭제하였다고 비판되었으며, 조선초 이래 그 내용이 부실하다는 평을 받아 왔고, 삼국초기의 기록은 믿을 수 없는 사실로 제쳐놓는 견해도 있어 왔다. 그러나 현재에는 金富軾의 역사관과 역사서술을 肯定的으로 평가하려는 견해도 있다.즉 金富軾의 歷史觀은 조선시대의 역사가들보다는 덜 사대적이었고, 신라 중심적인 서술을 한 것은 사실이나 三國에 대하여 공평한 입장을 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史料의 날조는 생각할 수도 없으며, 지나친 산산과 변개도 그리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고, 과거의 歷史家에게도 서술의 자유를 인정해 주어야 하며, 史學史的인 견지에서 볼 때 그는 古代의 說話中心的, 神話中心的 歷史 敍述로부터 합리성을 추구한 점에서 역사학을 발전시킨 歷史家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며, 나아가 사대적인 성격을 金富軾 개인의 문제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時代 상황 속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 사대 정책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반드시 否定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중세에 기여한 점도 있다고 보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여 만세에 남겨두는 교훈을 삼아 해와 별과 같이 밝히고 싶다.그는 歷史는 국민적 교화와 계몽의 수단이라고 이해하였으므로, '분열과 갈등은 국가의 우환'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관은 조선초의 역사서술은 물론, 이후의 전통사항게 큰 영향을 끼쳤다.넷째, 金富軾은 '사실을 사실대로'기록하려는 객관적 서술자세를 갖고 있었다. 春秋筆法 이후 '述而不作'의 원칙은 작사의 기본원칙이었으며, 歷史編纂은 기존 史書의 편집에 불과하였던 것이 일반적 경향이다. 그는 「三國史記」편찬시에도 「舊三國史」, 「唐書」,「資治通鑑」 등 기존사료를 충실히 전재하였으며, 전승된 자료를 산삭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때문에 그는 신라의 고유왕명을 신라본기에 그대로 기록하였으며, 신라의 관명에도 이벌찬·파진찬 등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이처럼 신라 고유의 명칭을 사용한 것은 사실의 객관적 서술인 동시에 점차로 독자적인 자아의식의 표현으로 결집될 수 있었다.여기서 우리는 「三國史記」가 단순히 사대주의적인 저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있다.마지막으로 金富軾은 역사에서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영웅주의사관을 갖고 있었다.이것은 단순한 개인주의적 歷史觀이 아니라, 滅私奉公의 의무와 도리를 강조한 공적 덕목을 제시함으로써 國家意識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때문에 烈傳에 등장한 인물도 군사적 활동을 한 사람이 절반이 넘으며, 통일전쟁에서 희생된 軍人이 대부분이었다.이러한 영웅주의사관은 傳統史學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이다. 이는 「三國史記」열전 10권 가운데 김유신전에 3권을 할애한 사실에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金富軾의 논찬도 결국 '군신의 행위'에 대한 평가였으며, 國歌에 기여한 공헌이라는 현실주의적 사관과 그 뜻을 같이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金富軾에게 歷史는 國家에 대한 의무적 행위의 요구이며, 국민교화의 수단인 것이다.⑷ 三國史記의 史學史的 위치5) 上卷 (조동걸, 한영우, 박찬승 - 창비사) p.73∼75 (부산대 논문집 - 1989)이상에서 金富軾의 生涯와 歷史認識 그리고 「三國史記」의 내용 당위성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신채호 이래 많은 선학들은 金富軾의 歷史認識을 '사대주의적'이라고 비판해왔다. 그러나 그는 사대적이면서도 유교적인 시대분위기 속에서 우리 현실을 잊지 않았으며, 항상 우리나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Ⅲ. 삼국유사⑴ 당시의 歷史意識6) 上卷 3장 (정병삼 - 창비사) p.82∼85三國遺事의 저자 一然의 歷史認識은 武臣亂 이후의 혼란한 사회에 대한 자각과 반성에서 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기준을 찾기 위해 과거의 전통을 재인식하려는 文化的 배경이 고려사회 전반에 전개되고 있던 데에 그 토양을 두고 있다.「三國遺事」보다 150年 가량 앞서 高麗文化의 난숙기에 편찬된 관찬사서인 「三國史記」는 정치제도 중심의 현실문제를 주로 다룬 것이었고, 그 편찬을 주도한 金富軾 등의 歷史意識은 유교적 정치이념을 토대로 하는 유교적 정치사관이었다. 이러한 儒敎的 정치사관은 高麗전기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주로 編纂史書를 중심으로 지배적인 조류를 이루었다.이들 官撰史書들이 갖는 儒敎的 정치사관은 합리주의의 추구라는 긍정적인 일면을 갖는 동시에 「三國史記」에서 보듯이 古代 전통문화의 이해범위 축소와 社會矛盾에 대한 인식의 회피라는 문제점도 보여준다. 그런데 고려의 정치가 몽고의 간섭을 받는 시기에 이르면 儒敎的 정치사관은 현실의 矛盾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이처럼 民族的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는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外勢의 압력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사관적 歷史意識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정신사관을 강하게 반영하는 사서가 「三國遺事」인 것이다.⑵ 三國遺事의 편찬목적「三國遺事」를 찬술한 일차적인 동기는 '유사(遺事)'라는 이름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遺事'가 사가(史家)의 기록에서 빠졌거나 자세히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 표현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三國遺事」는 「三國史記」나 「海東高僧傳」등의 기존 史書에 대한 補足의 의도에서 찬술된 것이라 할 수 있다.一然이 「三國史記」를 '국사(國史)' 또는 미타신앙 결사가 이루어졌고 법화경 예참이 시행되며 밀교 신앙이 성행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신앙 분위기는 일연이 어느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계통의 신앙과 사상을 모은 「三國遺事」와 같은 저술을 이루게 되는 바탕이 되었다.● 歷史意識一然의 歷史意識은 무신란 이후의 혼란한 사회에 대한 自覺과 反省에서 그 矛盾을 극복할 수 있는 精神的 기준을 찾기 위해 과거의 전통을 재인식하려는 文化的 배경이 高麗사회 전반에 전개되고 있던 데에 그 토양을 두고 있다.「三國遺事」의 특색은 저자 一然이 어떤 강한 목적의식을 갖고 「三國遺事」를 지었음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를 스스로 선택하였다. 그리고 선택된 주제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典據에 의하여 뒷받침하려 하였다. 요컨대 그는 간절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遺事'라는 겸손한 제목으로 인하여 이를 한낱 한가한 저술로 생각한다면 잘못이다.적어도 「三國遺事」의 저술에 필요한 사료를 수집하는데 소요된 노력만도 적은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면 一然이 「三國遺事」를 통하여 하고 싶은 이야기란 무엇이었을까.이점은 다루고 있는 주제의 성격을 통해서 짐작할 수가 있다. 「三國遺事」는 「三國史記」가 합리적인 사실들을 주로 다룬데 대해서 비합리적인 사실들만을 골라서 다루었다.「三國遺事」에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합리적 서술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된 관심은 초인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실들에 놓여 있었다. 가령 김유신이나 김춘추의 記事를 적되, 김유신이면 三仙女神과의 관계가, 김춘추면 文姬의 이야기라든가 一日의 식사분량이라던가 하는 것이 주로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一然 자신은 '神異'를 기록한다고 하였다.따라서 「三國遺事」는 비합리주의를 정면으로 표방하고 나선 역사서인 것이다. 이같은 神異만을 적고자 한 의도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첫째로 유교의 합리주의사관에 대한 비판의 뜻이 있었다. 고려 후기에 접어들면 유교의 도덕적 합리주의사관이 풍미하게 되었겠다.
    인문/어학| 2000.10.05| 14페이지| 1,000원| 조회(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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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속에 관하여
    한국의 무속1. 무속의 성격무속은 무당을 중심으로 전승되어지고 있는 종교적 현상으로 민간신앙 가운데서 가장 확고한 신앙체계를 이루고있다.사제자로서의 무당은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종교의식을 집행하며 신도자들을 관리한다.이 의식에 필요한 구비경전으로서 무가와 무의 신화가 있는데, 여기에 우주의 질서와 교리적 지침이 들어있으며 제대로 교육받고 준비된 사제자로서의 무당은 신도자들로부터 종교지도자로서의 존경을 받는다.무속은 원시적 종교의 형태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종교로서의 모든 요소를 구비하고 있어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종교로서 민간층에 뿌리깊이 파고들어 폭 넓은 기반을 갖고 있다. 무속은 불교, 유교, 기독교등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한민족의 신앙기반 이었으며, 이 신앙기반은 소위 고등종교라고 일컫는 외래종교들의 풍부한 교리를 기복신앙으로 한국화시키는데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미신으로 치부당하고, 비양심적인 사람들에 의해 신관자체가 많이 훼손당하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아직은 민중의 마음속 깊은곳에 원초적 신앙으로 자리잡고 있는 종교의 한 형태인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세계 어느나라든 그 나라 특유의 토속신앙이 그 규모의 대소차이만 있을 뿐 존재하며, 그 형태또한 위치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이 있는 것을 볼 때 고등종교들의 탄생에 원리적 기반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교리와 지침의 완전한 정리와 계승이 유지된다면 우리만의 종교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기대도 해 본다.2. 무의 유형과 분포현재 한국에 분포되어있는 무를 성격상으로 분류하여 무당형, 단골형, 심방형, 명두형등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무당형은 무 자신이 특별한 강신체험을 겪은 후 성무의식인 내림굿을 통해 무가 되어 가무로서 굿을 주관하고 자신의 몸주신이 내려주는 영력에 의해 점을치며 예언한다.옛날에는 중부와 북부지방에 분포되어있는 무당, 박수등을 무당형으로 구분하였지만 현재에는 전국적인 분포를 고르게 보이고 있다.단골형은 생기복덕을 가려 모든 식구들에게 이로운 날로 가려내게 된다. 화급을 요하는 굿에는 택일이 필요없이 당일로 진행되기도 한다.굿을 하게된 제가에서는 택일된 날짜 이전에 굿에 소용되는 비용을 무당에게 전달하고, 무당은 조례잡는다하여 자신의 신당에다가 백미를 바치고 촛불을 밝혀 어느날 어느가정에서 어떠한 사연으로 굿을 올리게 되었음을 알린다. 이렇게 조례를 잡기만 하여도 굿덕을 볼 제가집은 그 조짐이 나타나기도 한다.조례를 잡고나서는 그 굿을 주관할 무당이나 제가집 모두 부정을 철저히 가리고 신을 맞이할 심신의 준비를 한다. 육어류의 섭취를 금하고 상가집이나 임산부를 보지 않으며, 날짐승 길버러지도 살생하지 말아야하며, 부부간의 동침도 피해야 할 정도로 엄한 부정가림은 그 만큼 신령을 모시는 자리가 깨끗하고 맑아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옛날에는 삼일입소 오일단속이라하여 엄정한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주문하기도 하였다.굿을 맡은 무당은 특히 제가의 모든 소원성취를 위해서 기도를 그치지 않으며 온갖 조바심을 내게 된다. 굿비용을 적절히 분배하여 모든 제물을 정성껏 준비하고, 지화와 신복등 굿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며, 굿에 필요한 다른 무당들과 잽이들의 섭외도 하여 굿을 준비하게 되는것이다.굿당일이 되면 준비된 재물로 굿상을 괴고 모든 지화와 번들이 배설되며, 웅장하고도 보기좋게 장엄하여 신을 모실 굿청이 만들어지면 드디어 굿판이 벌어지게 되는것이다.굿은 통상적으로 열두거리라하여 전 과장이 열두개의 과장으로 나뉘어져있다.각 거리마다 모셔지는 신이 다르며, 한 거리 한 거리 진행되어짐에 따라 결국은 무속에서 모시는 모든 신들이 행해지는 굿판에 참여하게 된다.각 거리의 구성을 대체적으로 살펴보면 해당신을 굿에 청하여 드리는 청신과정,청해온 신을 가무로 즐겁게 해드리는 가무오신과정,초청된 신이 무에게 내려 공수라는 신의 의사전달을 보는 신청과정,굿에 초청된 신들을 돌려보내는 송신과정등으로 짜여져있다.모든 과정에 천지인에 해당하는 삼신신앙이 내포되어 있으며, 화려한 신복과 구성진 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신앙에 따라 대개 한해걸러 한번씩 그들의 수호신을 위한 굿의 비용을 마을공동으로 내고 제상을 차려 음악과 춤으로 신령을 기쁘게 해드린다.강릉의 단오제나 제주의 영등굿등이 대표적인 도당굿에 속한다.여탐굿환갑이나 결혼같은 가문의 기쁜 일을 조상에게 알리는 굿이다.혼인 여탐굿, 환갑여탐굿등이 대표적으로 오늘날은 전통적인 단골의 집안에서나 볼 수 있는 여유있는 굿이다.이상에서 살펴 본 여러 굿 가운데 사실상 요즈음에 행해지는 굿은 몇가지 되지 않는다. 거의가 비슷비슷한 형태로 남아 그것도 바쁜 생활속에서 시간에들 쫓기고 살기 때문에 그 원형을 찾아 보기란 힘들다.한국의 전 사회가 근대화와 산업화에 의하여 변화 하며 그에 따라 새로운 가치체계에 순응해야 하는동안 무당도 이러한 변화를 함께 수용하지 않으면 않되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굿은 자꾸만 간소화되어 오고 전통적 특성을 무시한 채 거행되어지게만 되었다.용신굿, 도당굿, 마마배송굿, 풍농굿, 당산굿등이 그 존엄성과 경건해야함을 무시한 채 오늘날 다소간에 민속 경연의 대상까지 되고있는 형편이고 보면...열두거리이 페이지에서는 서울(한양)굿의 전 과장인 열두거리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하고자 한다.원래 무속신앙에서 말하는 열두신령, 열두거리등의 말들이 요즈음에는 합당하게 쓰여지고 있지않다.굿의 거릿 수나 신령들의 명호가 열둘이라는 숫자에 머물지 않고 굿의 규모나 장소에 따라서 늘려지기도 줄여지기도 하는게 현실이다. 애써 열두거리라 하여 나누다 보니 연구책자마다 상이한 점이 발견 되고, 심지어는 요즈음 굿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설명이 생겨나기도 한다.본인은 실제 무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굳이 열두거리라는 구분을 두고 싶지않다. 그 구분을 할만한 뚜렷한 근거가 없고 또 그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의 설명이 이어지면서 과연 몇거리로 나뉘어 질지 자못 궁금하다.그러나 이 페이지의 설명 이외에도 많은 신종(?)거릿수 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니 그저 지금은 이 정도만 알아도께 춤도춘다. 모든 굿의 서두로서 흔히들 서울 굿에서도 산맞이와 많이 혼동 되어 나타난다. 가망이라는 신의 성격이 확실치 않아 조상굿의 서두에 간단하게 모셔져서 조상거리로 이어지기도 하며, 이 거리는 제가집의 가리를 잡는 거리라 하여 영에 능통하고 원숙한 선생무당들이 들어서는것이 통례이다.본산맞이는 양가편의 본향을 맞아들이는 거리로서 팔도의 주산이 응감하고, 대주편의 본향신과 계주편의 본향신이 모셔진다.이어서 도당부군신을 비롯한 신장, 대감, 말명등 여러 신령들이 모셔져 작은규모의 열두거리가 진행된다.제석불사거리이 거리에서는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 제석, 칠성, 천왕등이 모셔진다.의대는 홍치마에 백색의 장삼을 입고, 가사를 걸친후 홍대를 매고, 백색의 세모시 고깔을 쓴다.홍대에는 백새의 부채를 드리우고 백팔염주를 목에 걸고 목탁을 두드리기도 한다.굿상의 고기 안주는 창호지등으로 덮어지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주 무당은 거동하기 시작하고 불사상의 고깔 접은것, 삼색과일, 밤 대추등도 들고 놀며 시위 한 후에 장삼의 소매자락을 들고 춤춘다.이내 사방요배가 시작되고 재가집도 따라서 절을 한다음 불사가 응감하면 공수가 내려진다.천궁불사, 일월불사, 대암제석, 삼불제석, 사두칠성, 사해용왕, 일월성신, 옥황상제등 천신의 성격을 가지거나 불교의 성격을 가진 모든 신령들이 놀아지고 나면 굿상위의 밤,대추로 `산내린다`하여 명산, 복산을 준다. 밤, 대추 담은 접시를 흔들어 조금 쏟아 보아서 그 갯수가 짝수이면 길하고, 홀 수이면 흉하다고 한다.산을 내린다음에는 천왕거리에 들어가는데 이거리 에서는 여러 중상님들이 내려와 바라춤을 추기도 하고, 명바라 복바라를 사라고 바라타령을 부르기도한다.바라를 팔고나면 불사노랫가락을 합창하여 이 거리에 동참하셨던 모든 제석불사님들을 배송한다.천신굿, 내림굿, 전안진적굿등 규모가 큰 굿에서는 이 거리에서 `천궁탄다`하여 마당 가운데에서 물동이를 타고 굿을 하기도 하며, 무속의 경문이나 불경등이 법사나 스님에 의해 독송되기도하는 불교는 병을 낫게 해주고 수명을 늘려주며, 황색기는 조상이 편안치 못하여 액이 많고, 청색기는 재물을 불려 주며, 흑색이나 녹색의 기는 질병과 우환이 많이 생긴다는 뜻을 나타낸다.이 거리에서는 천귀를 벗긴다고 하는 특수한 행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몸에 살귀가 씌어서 많이 아프다거나 꿈자리가 사나워서 잠을 잘 못자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환자를 문앞에 앉혀놓고 오방기로 덮은뒤 오곡볶은것, 조밥, 붉은팥, 검정콩,미나리,북어, 소금등을 환자 머리위로 던져내고 심한 경우는 `대신 물린다` 하여 산 닭의 입에 환자의 손,발톱 자른것, 머릿카락, 쌀등을 물리고 삼베나 오색천으로 일곱매를 묶어 둘러내어 땅을 파고 묻기도 한다.특히 이거리에서는 창부타령의 곡조에 신장명호를 넣어 부르는 신장타령이 들어있어 엄숙 하던 굿판이 잠시 흥겨운 놀이판으로 변하기도 한다.대감거리재물과 명예와 복록을 가져다 준다는 그 유명한 대감거리이다.천하대감, 지하대감등 수 많은 대감들이 모셔지며 의대는 전복과 벙거지 차림에 부채를 든다.처음에는 천신대감, 상산대감, 어전대감, 법전대감등의 위엄있는 대감들이 홍천릭으로 젊잖게 모셔지지만 이내 굿판은 떠들석한 노래와 춤과 재담, 덕담이 어우러진 놀이판으로 변한다. 이거리에서는 대감신과 제가집간의 애교섞인 흥정도 벌어지며 술과 고기와 돈이 인간적인 흥정 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수차례에 걸친 타령과 춤으로 판이 달아 오르면 굿판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흥겨워 하며, 이때 무당이 아닌 일반 사람들도 `무감선다`하여 쾌자만 걸치고 춤을 추기도 한다. 재수굿이나 경사굿에서는 이 대감거리가 얼마나 걸판지고 흥겹게 놀아졌는가에 따라서 굿을 잘 했는가, 못 했는가가 판단되기도 한다. 이토록 아주 인간적인 신으로 대접받는 대감신이 놀려지 고 나면 주무당은 다음으로 그 집안 대주의 몸주대감과 계주의 직성대감, 자손의 보물대감등도 모시어 놀고, 터주대감, 집주대감, 조상대감등도 불러 그 집안에 재수와 소망을 생겨 주기를 기원하게 된다.거리에서 특징적인 것은 `다.
    인문/어학| 2000.10.05| 15페이지| 1,000원| 조회(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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