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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의 성향과 작품 평가C아쉬워요
    ● Michael Graves ( 1934 ~ )마이클 그레이브스는 1934년, Indiana주 Indianapolis에서 태어났다. 그레이브스는 어린시절에 수많은 시간을 드로잉으로 보냈다. 그는 “많이 하면 할수록 더욱 향상되었다. 드로잉 이외의 것은 잘하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피카소만큼 잘 그리지 못하면 굶을 거라고 말하며 공학이나 건축 같은 유용한 드로잉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 두 가지를 생각하다가 건축을 선택했다.그는 신시네티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였고, 1959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0년 Rome Prize를 수상하여 로마의 American Academy에서 수학하였으며,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이태리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고, 건축에 있어 이태리는 그에게 고전적 영감을 제공해 주었다. 그는 또한 투스칸의 풍경을 상기시키는 우아한 푸른색, 붉은색, 황토색의 색채에 관심을 가졌다.현재 American Academy의 이사로 있는 Graves는 1962년부터 프린스톤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여 1972년부터는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1964년부터 프린스톤과 뉴욕에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열고 실무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주택, 박물관, 호텔, 사무소 빌딩, 공공기관, 대학시설물, 전시장 등을 설계해왔다. 그레이브스는 Portland building과 Humana building으로 건축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The San Juan Capistrano Library, The Riverbend Music Center, The Newark Museum으로 인정받았다.그레이브스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임은 물론이고 이론가이며, 비평가로서도 인정을 받았다. 그는 뉴욕소재 근대미술관(MONA)에서 피터 아이젠만, 찰스 과스메이, 리차드 마이어 등과 함께 개최한 합동전시회와 ‘Five Architecture'(1970년 근대 미술 박물관에서 열렸던 전시회)의 출간을 통해 이처럼 중요한 인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건축가들의 전통적인 컨셉은 너무 좁아서 디자인에 대한 그레이브스의 욕구를 설명할 수 없다. 그의 동료들을 빌딩 전문가라 한다면, 그 반면에 그 자신은 General Practitioner라고 지칭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 정체성은 단지 건축물에서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에서 나타난다.마이클 그레이브스의 건축은 다른 어떤 건축가들 보다도 드로잉에 대한 그의 열정과 능력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그의 초기시절에는 완성된 프로젝트보다 드로잉을 중시하였는데 때때로 이 드로잉이 공식문서가 되기도 하였다. 또 그는 지나치게 색채를 강조하는 사람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그레이브스는 첫 미팅을 좋아하고, 건축가 모임 이외에서도 매너가 좋았다. 그것은 오랜 학교생활에서 얻어진 것으로 그는 건축 추상의 성급한 본질을 일상의 영어로 압도할 수 있으며 그것은 클라이언트로 하여금 그를 의심하지 않고 좋아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그는 그의 메시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드로잉에만 의존하지 않고, 그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클라이언트에게 줄 모델들을 가방 속에 넣고 다닌다.많은 건축가들이 드로잉과 페인팅을 잘 했는데, 그 이유는 건축가를 만들기 위한 교육에 순수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학 교과 과정 때문이었다. 그는 이와 같은 수준을 한 단계 뛰어넘어 건축가는 물론 화가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실력을 요구했다. 그의 드로잉과 수채화, 페인팅 등은 1979년 뉴욕 맥스프로테취 화랑에서 열렸던 일인 전시회를 통해 세상에 선보였다. 그 이후 그는 전 세계를 통해 수많은 화랑과 박물관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그의 많은 작품들이 개인이나 단체들에 의해 팔려 나갔다. 드로잉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은 “드로잉의 필요성: 실재하는 사색“(1977)과 프랑스의 거장인 르꼬르뷔제의 스케치에 대한 글인 ”르 꼬르뷔제의 그림으로 된 참조물“이란 제명의 글을 통해 잘 나타나고 반쯤 Graves는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역사적인 형태를 추상화하고 색채의 사용을 강조하는 넓은 범위의 절충주의를 발전시켰다.그레이브스의 건물들은 Egyption, Classicism, Art deco style 안에서 설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모던 운동의 대표작으로 여겨진다. 그가 사용한 역사적 모티브는 The Beaux-Art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 그레이브스는 많은 디자인에서 기둥, 주랑, 페디먼트, 볼트천장을 사용한다. 그는 단순한 입체, 부드러운 색, 질감, 외형을 사용하여 포스트 모던의 중요한 테마를 창조하였다.?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디자인그레이브스는 20세기 건축과 디자인에 다채로운 영향을 주었다. Blue, Red, Pink등의 색을 사용하였으며 원하는 장식을 위해 테라코타도 사용하였다. 미적 가치를 장식적인 디자인에 두었으며, 그는 건물을 장식하기 위해서 대리석, 화강암, 구리, 상감한 나무, 나뭇잎 모양을 상징한 금장식 등을 재료로 선택했다. 그는 사람들은 장식과 디테일이 건물의 목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였지만, 형태나 색은 자연적인 것과 연결짓는다고 믿는다. 이것이 그가 형상건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이다. 그의 건물들은 비록 주변의 건물들과는 많이 다르지만, 주변 환경과 달리 시각적 스케일과 유쾌한 모습으로 대지에 빼어나게 솟아있다. 그는 각 빌딩의 독특한 지리적, 문화적 문맥에 관심을 갖는다. 이것은 포스트모던 운동의 일반적인 3개의 이론들 중의 하나인, 문맥주의이다.그레이브스는 모든 생물이 그러한 것처럼 건물도 정해진 base, body, top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또한 그는 모던 시대와는 다르게 건물의 출입구는 숨지 않고 밖으로 돌출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그의 싸인을 남겼으며 그의 건물과 디자인은 20세기 미국 건축과 문화에 기여하였다. 그의 예술가로서의 능력은 놀랄만한 그의 작품에서 계속되고 있고, 역사를 현재에 통합하는 그의 방법은 뛰어나다. 이러한 역사가 적용된 건물들은 과거의 양던 건축에서의 포스트 모던 운동에 대한 내용을 확산시킨 장본인이라거나, 그레이브스의 건축을 포스트 모던 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말일 것이다. 비평가들, 대중들, 그리고 그의 동료들 사이에 일기 시작한 논쟁은 그레이브스의 첫 번째 주요 공공건물인 오레곤주 포틀랜드 주정부 청사를 두고 일어났다. 이 건물-포스트 모던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이 됨에 대한 논쟁은 1985년의 켄터키주 루이스빌 도심지까지 계속되었고, 브로이어가 디자인한 뉴욕시의휘트니 박물관의 규모를 3배 확장하는 개축 안을 둘러싸고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그레이브스는 건축물은 반드시 규범적 요소(실용적, 구조적, 기술적 요구에 의해 결정되는 것들)와 시적 요소(사회가 만들어낸 신화나 의식이 3차원적으로 표현되는 등 건물 외적 요인에 반응하는 것)를 동시에 지녀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건축은 기계적으로 다뤄져서는 안되며 문화와의 커뮤니케이션 산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문화는 역사라는 시간의 축과 지역이라는 공간의 축이 함께 움직이며 형성되고, 언제나 상징적 의미(문화적 상징성)을 동반한다.그레이브스는 문화에 의해 규명되어진 건축의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작품요소의 기능적인 일차적 의미보다는 이차적 의미 영역에 관심을 두고 내포된 의미를 보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상징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이중성의 개념을 통하여 요소의 내포적 의미개념을 도입하였는데, 대립의 짝을 가정하여 어떤 것이 반대가 될 때, 다른 것이 의미를 갖는다는 원리를 제시하여 대립을 어떤 의미의 기본으로 표현하였다.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벽 표면으로 우선 사람들에게 지각되는 것은 색이므로 그레이브스에 있어서 최대의 관심사는 재료의 참된 표현보다는 색의 은유였으며, 인식 가능한 몰딩, 분열된 페디먼트, 키스톤, 격자세공 등을 사용하여 단편적, 역사적 기억들을 작품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건축은 대중들에게도 전달되어야한다’고 하면서, 건축가 코드와 대중 코드의 이중 코드화를 통해의 언어가 되며 특정한 해석에 의해 파생된 언어는 그의 풍부한 조형감각에 의해 각양각색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된 형태들은 그의 작품의 일반적인 경향에 크게 모순 되지 않고 있으며, 이는 작품 전반에 일관된 형식이 존재하는 ‘공통 언어방식’ 때문이다.초기에 그는 언어학의 원리를 도입하여 건축 자체를 기호학적으로 해석하려 했으며 기호화된 부재는 자연에 대한 은유 혹은 그의 독특한 관념이 되어온 대립 - 자연과 인공, 남과 여, 직선과 곡선 등 서로 반대되는 쌍 - 등 풍부한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언어학적 접근을 통해 암시와 은유의 건축을 구사하였다. 그가 사용하는 주된 형태 구성방법은 콜라주에 의한 것으로 전통적 건축 요소들은 구조체가 아니므로 자유롭게 변형되고, 역사적으로 내포된 의미를 지닌 채, 자유롭게 콜라주로 구성하면서 관찰자의 기억, 연상, 색채, 그림을 통해 형태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하였다. 그레이브스는 무엇보다도 색채의 이용에 능숙하고 콜라주 화법에 숙달된 건축가이다.공통 언어방식에 의한 초기 작품의 일반적인 경향은 상자형태 등을 고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후기작품에서는 고전적 모티브에 의해 변형된 전통요소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초기 작품의 공통 언어인 외곽의 순수 기하학적 형태, 자유로운 평면, 투명화된 파사드는 경량 골격 구조 채택에 따른 구조체의 적용성과 경량성에 힘입은 것이었다. 초기 작품의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후기에는 보다 직접적이고 친숙한 고전적 모티브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때 고전적 모티브는 그대로 사용되기도 하고 적절하게 변형되어 입구장식에 이용되기도 했다. 후기 작품에 있어서는 강조된 입구와 단순하고 반복적인 평면벽, 중성색 등이 공통 언어로 사용되었다.그가 가진 예술 및 디자인에 대한 열정은 건축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건축물의 외관 뿐 아니라 실내에도 관심을 가지며, 가구를 디자인하고, 티셔츠나 꽃병 혹은 주전자나 양념통 등 부엌용품들까지 다.
    공학/기술| 2006.04.28| 9페이지| 1,000원| 조회(3,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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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계]뉴욕 5 . 찰스 과스메이 (Charles Gwathmey)
    ● 찰스 과스메이 -Charles Gwathmey (1938~)찰스 과스메이는 1938년 샬럿에서 태어났다.그는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루이스 칸, 로베르토벤츄리 등의 건축가들에게 건축을 배웠고 1962년에는 예일 대학교에서 폴 루돌프와 제임스 스털링으로부터 배움으로 건축학위를 인정받았다.1972년 이후 근 s 로버트 시겔과 파트너로 함께활동 했으며 미국의 활동 및 활력을 모방하는형식에 국제 양식을 접목한 건축을 시작 하였다.매끄러운 표면을 만들기 위해서 현대 산업 건물에대해 연구, 19세기 벽돌 구조 및 목재 구조의기술을 조합하여 같은 시대 안에서 따로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형식에 의하여 슬라이드식의 수직성을 강조하였으며, 무한한 공간을 건물에 표현 했다. 그는 기하하적 형태의 볼륨 단위로 구성되는 특징과 건물의 외관 윤곽의 자잘한 구획보다는 큰 면과 메스 단위로 구상하는 특징을 보여준다.작품의 특징..추상적 조형관의 재해석을 바탕으로 현실의 복합성을 표현함에 있어 과스메이가 가지는 특징은,1. 궤적 기법에 있어서 모순어법 대립구도라는 기법을 구사하였다.2. 복합 현실을 포괄하는 건축관에서 초현실주의를 추구하였다.3. 복합 현실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잇는 그대로의 현실 상황을 몇 가지로 단순화한 후 이것을 종합하였다.과스메이의 초현실주의적 건축관은 모순어법의 개면으로 정의될 수 있는 대립구도에 의하여 표현되고 있다. 대립구도는 그레이브스의 네오 큐비즘을 결정짓는 기법이기도하였다.과스메이의 대립구도는 지속적인 조정과정을 거친다. 과스메이의 대립구도 역시 퓨리즘의 최적조화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을 갖는다. 다만 그것이 그레이브스의 경우처럼 후기 구조주의적 과격성을 보이지 않는 점에서 다르다. 기본 목표는 공유 하면서 구체적 처리 기법에서 차이가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과스메이의 추상 요소들은 기하 단위의 완결성을 강하게 지키고 잇는 점에서 절제된 조절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조절 능력은 르 꼬르뷔지에의 퓨리즘에서와 같은 차가운 이성이나 개념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과스메이의 기하요소는 해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감성적 수용의 대상인 것처럼 보인다. 과스메이의 기하요소는 이러한 자극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나 존재의미 등과 같은 현실 너머 저편의 가치에 대해 묻고 답하는 기능을 갖는다.과스메이의 모순어법 대립구도는 건축에서 관습적으로 추구되어 왔던 완전성이나 완결성 같은 이상적 가치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이런 의문은 이상적 가치를 건축적으로 현실화시켜주던 매개 처리에 대한 반전의 형식으로 구체화되며 궁극적으로 그러한 매개들에 관습적으로 부가되었던 고정관념들에 대한 반전으로 귀결된다.과스메이의 건물에서는 예를 들어 건축은 순수 기하형태를 통해 현실 계도적 기능을 가질 수 있고, 콘크리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구조재료 방식이어야 하고, 스케일은 잘 지켜짐으로써 건물의 가독성을 높여 주어야하고, 빛은 항상 밝음을 주어야 하고, 벽체는 고형적으로 튼튼해야 하고, 계단은 역동적이어야 한다는 등의 상식적 가치에 대한 반전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과스메이의 의문은 현실과 초현실 사이의 대립적 공존을 통해 전통적인 이상주의의 한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목표를 갖는다.과스메이의 네오 모더니즘 건축은 비교적 완결성이 높은 기하단위를 사용하여 현실의 복합적 측면을 초현실의 개념으로 정의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을 구체화 시키는 기법으로 과스메이는 퓨리즘과 초현실주의의 내용을 복합적으로 교차시키는 모더니즘 재해석 전략을 구사한다. 이렇게 복합적으로 해석된 네오 모더니즘의 골격은 여러 단계의 혼합과정을 거치면서 복합적 현실을 담아내는 포괄체로 정의된다. 과스메이의 네오 모더니즘 건축은 모더니즘 양식으로부터 추상단위를 추출하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작업은 르 꼬르뷔지에의 퓨리즘과 조르조 데 키리코의 초현실주의를 각각 두 가지 내용으로 세분한 루 이것들을 교차적으로 복합 해석하는 방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퓨리즘이 갖는 모더니즘의 의미는 기계미학적 엄밀함을 바탕으로 한 오브제 추상과 이것을 건축적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도미노 시스템의 두 가지 내용으로 해석된다. 이때 오브제 추상은 기계형태나 기계 공예품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 같은 매끈한 윤곽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는 르 꼬르뷔지에의 모더니즘 건축관을 구성하는 기본개념인 기계미학의 최적조건 개념을 잘 보여준다.과스메이는 퓨리즘의 두 번째 의미인 도미노 시스템을 이시대의 대표적인 건축구조 방식으로 수용한다. 이 점에서 과스메이는 성기 모더니즘 건축의 부활이라는 뉴욕 파이브 건축의 기본 입장을 공유한다. 과스메이는 퓨리즘의 첫 번째 의미인 오브제 추상으로부터 구상의 잔재를 지운 후 이것을 기하추상 단위로 극단화시킨다.기하추상 단위를 초현실적으로 번안해내는 과스메이의 네오 모더니즘은 현실의 복합성을 포용함으로써 적극적 존재 의지를 표출하려는 건축관을 추구한다. 초 현실성이 오히려 더욱 적극적인 현실 의지가 될 수 있는 근거는 1920년대 성기 모더니즘의 이상주의에 대한 반대적 재해석에서 찾을 수 있다. 뉴욕 파이브 건축은 1920년대 성기모더니즘의 이상성을 1960년대의 현실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측면이 있다. 뉴욕 파이브 건축가들은 이러한 1960년대적 현실성에 대한 각각의 건축적 개념과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공학/기술| 2006.04.26| 6페이지| 1,000원| 조회(2,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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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존 헤이덕(John Hejduk) 평가A+최고예요
    ● 존 헤이덕 John Hejduk (1929~2000)? 연혁1929 뉴욕출생1950 뉴욕의 쿠퍼 유니언 대학.1952 신시내티 대학.1953 하버드 대학& 대학원 졸업.1954 로마대학 건축교육.1954~1956 텍사스 대학 교수생활.1956~1958 아이 엠 페이(I.M.Pei) 함께 일함.1958~1964년 코넬 대학, 예일 대학 교수직1965 자신의 설계사무소 개설.1975~ 쿠퍼 유니언 대학 학장 역임.2000. 7 71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감.존 헤이덕은 1929년에 뉴욕에서태어났다. 그는 예술학교에서 통제조술과 신시네티에 있는 건축대학에서공부를 했다. 그는 1953년 하버드대학 디자인 과정과 건축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그의 파트너인 A.M. 키니및 I.M.Pei와 뉴욕의 몇몇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하였다. 그후 그는 1965년에 뉴욕에서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설립하였다.존 헤이덕은 그의 작업을 통해 건축술이 조화되는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는 테마와 변화의 엄밀하게 정의된 세트를 추구했다. 처음에 그는 입방체, 격자 및 구조를 연구했다. 다음에 그는 임시로 구부러지는 벽을 갖춘 대각선의 컨테이너 내에 놓여진 정방형 격자를 시험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여러 가지 휘어진 메스와 평평한 계획들의 조화와 색체의 실험을 통해서 서서히 발전 시켜나갔다. 초기 단계의 그의 건축은 브루탈리즘이였다.그는 사회적으로 회복할 가치가 거의 없는 것들의 가치에 매력적인 목표를 만들어냈다.예술적인 환경을 창조하기 위하여 그는 정황, 재료, 구조 및 기후 등에서 떨어져 나왔다.이렇게 그는 그러한 신종의 환경에서의 역할을 공유하지 않는 실제적인 고찰을 자주 무시했다. 한편 그는 쉽게 회피하는 것보다 디자인의 실질적인 문제와 그의 건물은 보행자가 필요한 조건을 극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의 조사가 종료 자체인 것처럼 가능하게 하는 것에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존 헤이덕씨는, 지난 1975년부터 은퇴까지, 사이언스 및 예술의 전진을 위해 쿠퍼·유니온의 건축학교의 Irwin S.Chanin의 학장 이였다. 그는 관행적 실무를 대부분은 삼가한 건축가였다. 또 일의 대부분은 시적의 결합과 많은 개인적인 이야기에 조합 할 수 있었던 도면의 형태를 해 실행되고 이론적인 프로젝트로부터 완성되었습니다.」 뮤리엘·이마뉴엘 동시대의 건축가. 뉴욕 : 성마틴의 출판(1980년).“많은 재능이 있는 건축가와 같이, 그는 모순되고 있는 인물이었다. 예술의 매우 사회의 형식에서 일하기로 결정한 고독한 예술가. 그러나 그는 모순을 생활에 실행하는 특별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벽돌과 모르타르를 갖춘 사회 스페이스를 구축하는 대신에, 그는 생각과 감정으로 그가 25년간 학교의 학생 및 교수단 멤버와 그것을 이끌어 왔다.” 허버트 Muschamp 의 군집된 무대 중에서...▶ 작품의 특징 및 작품 분석1929년 생으로서 뉴욕 파이브 건축가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이기도 한 헤이덕은 역시 가장 일찍부터 작품을 남기기 시작하였다. 추상적 조형관의 재해석 바탕으로 현실의 복합성을 표현함에 있어 과스메이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진다.헤이덕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체계로서 성기 모더니즘 양식과 추상적세계관을 받아들인 후 이것을 이용하여 현실 상황을 포괄해내는 네오 모더니즘관을추구한다. 헤이덕의 네오 모더니즘 경향은 이미 뉴욕 파이브 건축 이전부터 나타나고 있다.헤이덕은 학생 시절과 실무 초창기에 해당되는 194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건축관을 잘 보여주는 습작을 남기기 시작하였다. 이 습작들에서 존 헤이덕은 ‘구상-비정형 기하 및 복합추상- 기하추상’으로 자신의 건축관이 발전하는 단계적 변천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을 종합해볼 때 뉴욕 파이브 건축은 모더니즘에 대한 재해석과 관련하여 두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한 그룹은 큐비즘적 공간관의 재해석을 바탕으로 개체 해방이라는 후기 구조주의적 건축관을 추구하는 공통점을 갖는다. 개체해방의 강도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마 s마이어, 그레이브스, 아이젠만의 3인이 이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다. 다른 한 그룹은 추상적 조형관의 재해석을 바탕으로 현실의 봅합성을 표현하려는 공통점을 가지며 과스메이와 헤이덕이 이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다.첫 번째 그룹의 건축가들 사이에 개체 해방의 강도나 구체적 전략에 있어서 적지 않은 차이점이 존재하듯이 과스메이와 헤이덕 사이에서도 역시 미시적 차원에서는 중요한 차이점이 발견된다.1, 구체적 기법에 있어서 과스메이가 모순어법 대립구도라는 기법을 구사하였던 데 반해 헤이덕은 추상조작이라는 기법을 구사한다.2, 복합현실을 포괄하는 건축관에서 과스메이가 초현실주의를 추구했던데 반해 헤이덕은 복합 모더니즘을 추구한다.3, 복합현실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과스메이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상황을 몇 가지로 단순화한 후 이것들을 종합하는 데 반해 헤이덕은 모더니즘 문명아래에서 인간의 존재의미에 대한 건축적 정의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헤이덕의 네오 모더니즘은 추상조작을 통한 의미 획득 작업으로부터 시작한다. 헤이덕은 아이젠만처럼 통사론에 집중하지 않으며 동시에 그레이브스처럼 의미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지도 않는다. 적절한 통사론적 조작에 의해 비교적 절제된 건축적 의미를 획득해내는 헤이덕의 네오 모더니즘은 이를테면 이 둘 사이의 중간적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때 헤이덕의 통사론적 조작은 완결된 기하단위로서의 추상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점에서 마이어의 육면체 분해 경향과도 구별된다. 헤이덕은 기하형태의 완결된 윤곽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것에 대한 최소한의 조작 및 조작된 단위들 사이의 조합적 관계를 추구한다. 헤이덕은 이러한 자싱의 조형전략을 말 그대로 ‘추상’이라 부른다.헤이덕은 1920∼30년대의 성기 모더니즘 양식들을 다양하고 폭넓게 차용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런 점에서 헤이덕의 네오 모더니즘은 복합 모더니즘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헤이덕의 이런 경향은 완성점에 달하여 일정한 의미를 획득한 성기 모더니즘 양식들의 대표성을 인정하여 수용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이런 점에서 네오 모더니즘이 성립되기 위한 기본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다. 그러나 헤이덕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러한 성기 모더니즘 양식들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건축적 의미를 창출함으로써 자신만의 네오 모더니즘을 정의해내고 있다.◆ 다이아몬드 하우스이 작품에서는 정사각형 그리드라는 기하추상 단위를 기본 매개로 삼아 건축적 의미 작용이 시작된다. 이 그리드는 도미노 시스템에서 파생된 기둥 열에 의해서 형성 된다. 이때 기둥 열은 정사각형 윤곽 내에서 엄격한 규범성을 지키며 균등하게 반복됨으로써 정연한 질서를 부가한다. 이러한 엄격한 그리드는 일차적으로 건물의 구조 골격과 공간의 기본 단위를 결정한다.건물의 기본골격이 결정된 뒤 다음 단계에서 기하추상 단위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조작과정을 거치게 되며 이 단계에서 본격적인 의미작용이 벌어진다. 1층에서는 건물 중앙의 네 개 정사각형에 계단이 할당되고 유리벽이 쳐지면서 균질했던 그리드 질서에 중심과 주변이라는 위계가 나타난다. 2층에서는 그리드를 구성하는 선에 벽체가 할당된다. 이때 벽체의 방향과 길이, 그리고 벽체 사이의 열림과 닫힘 등을 불규칙하게 처리함으로써 자유로운 역동성과 미로적 리듬감이 얻어진다. 3층에서는 그리드를 구성하는 정육면체의 중간을 벽체가 자르고 지나감으로써 분산적 활기가 느껴진다. 4층에서는 그리드를 나누는 직선에 대비되어 세 개의 곡선 벽체가 그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다. 이때 곡선 벽체들은 모두 180도 이상 굽으면서 초점을 한 방향으로 모음으로써 공간 속에 회전성을 형성한다.이와 같이 여러 종류의 추상조작에 의해 각각의 공간적 특징을 갖춘 네 개 층은 위아래로 중첩됨으로써 건물의 전체 골격을 구성한다. 그 결과 이 건물은 기라추상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면서도 매우 다양한 공간구성을 갖게 되며 이것은 곧 현실의 복합성을 포괄하는 건축적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복합현실의 포괄을 목적으로 한 헤이덕의 이러한 추상의미작용은 기하추상조작에 성기 모더니즘 양식들을 대응시키는 처리에 의해 완성된다. 이러한 처리는 헤이덕의 네오 모더니즘을 결정짓는 내용이기도 하다. 다이아몬드 하우스 A에서는 데 스테일, 라이트의 미국식 모더니즘, 르 꼬르뷔지에의 도미노 시스템, 테라니의 이탈리아 합리주의 등과 같은 여러 종류의 성기 모더니즘 양식들이 다양하게 차용되고 있다.기둥 열을 구조적 바탕으로 삼아 봅합공간 구도를 수직 중첩시키는 다이아몬드 하우스 A의 처리는 르 꼬르뷔지에의 도미노 시스템과 테라니의 합리주의를 통합적으로 재해석한 예에 해당된다. 다이아몬드 하우스 A에서는 그리드로 배치된 기둥열이 구조적 역할을 굳건히 담다하고 있으며 이것을 기초로 삼아 위아래가 심하게 어긋나는 공간 구도들이 수직으로 중첩되어 있다. 이러한 벽체 구성은 도미노 시스템에서의 자유 벽체 개념을 재해석한 내용에 해당된다. 벽체의 위치는 위아래로 일치하여야 한다는 것이 건축에서의 오래된 규범이었다. 도미노 시스템의 자유 벽체는 이러한 관습적 규범을 깨치는 첫 장을 열었다. 그러나 모더니즘 건축이 진행되면서 도미노 시스템은 독단적 기능주의로 귀결되어 그러한 관습적 규범을 부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다이아몬드 하우스 A에서는 벽체 해방을 둘러싸고 모더니즘 건축에서 형성된 이러한 양면적 상황에 대한 다음과 같은 재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서로 다른 벽체 구도를 위아래로 중첩시키는 다이아몬드 하우스 A의 처리는 공간 사이를 마음대로 오가도록 벽체를 구성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구성은 도미노 시스템에서 제시된 자유 벽체 개념을 수용함과 동시에 독단적 기능주의에서 부활된 관습적 규범을 거부하겠다는 네오 모더니즘관을 의미한다.
    공학/기술| 2006.04.26| 8페이지| 1,000원| 조회(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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