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전직 외교관이었던 해롤드 니콜슨 경이 쓴 외교론은 외교에 대해 비교적 실질적으로 쓴 책이다. 그 자신이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시절의 경험담이라던가 외교활동을 하면서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글을 전개해 나아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었다.책은 외교의 기원과 외교의 발전 외교인물 각 국의 외교 스타일 외교용어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정치외교과 학생이지만 난 외교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까운 상태였으나 이 책을 통해 대강의 윤곽과 기술을 알 수 있었다. 그 전까지 나는 외교의 중요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외교란 어차피 국력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부자는 뭐를 해도 잘된다고 한다. 외교도 이와 마찬가지로 강대국들의 강압을 정당화시키는 하나의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외교의 힘에 따라 한 국가의 국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고 우리가 얼마나 외교에 무지했는가를 느꼈다. 저자는 이 책을 쓸 당시의 미국의 외교를 하찮게 보았다. 그 이유는 미국의 외교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국력뿐만 아니라 외교력에서도 세계의 열강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상황이 안 좋다. 중국과 일본 미국의 세력에 끼어있어 언제 침략의 위험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기에 더욱더 외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외교의 역사그럼 간략하게 외교의 역사에 대해서 기술하도록 하겠다. 외교는 협상에 의하여 국제 관계를 다루는 일이며, 국제 관계가 대사나 사절에 의하여 조정 처리되는 방법이며, 외교관의 업무 또는 기술이다. 인간은 아주 옛날부터 외교를 해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각 폴리스간의 분쟁 조정의 수단으로 종종 회의를 가졌다. 로마 역시 로마와 속주의 관계를 규정짓는 국제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조직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단순한 형태의 협상이나 규약일 뿐이었다. 그러나 1815년 비엔나 회의를 시작으로 이 협상은 점차 조직성을 띄게 된다. 나폴레옹과 유럽의 전쟁 이후에 나폴레옹의 처리와 전후 유럽의 방향토의를 위해서 개최된 이 회의에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세력 균형, 프랑스의 패권화 저지라는 유럽의 공통의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각 국의 대사를 파견하는 등 조직적인 외교를 펴기 시작한다.외교관의 모습도 시대에 따라서 변화하게 된다. 처음에는 전령의 역할이 강했기 때문에 왕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는 왕의 주변 인물이 외교관으로 발탁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왕의 이발사가 외교관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후에는 웅변가적 타입의 외교관에서 차츰 자율권이 강해진 옵저버의 성격으로 바뀌게 되었다.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외교관은 직업적인 성격을 띄게되었고 다른 국가에 상주하게 되었다. 초기의 외교는 지금과 같이 고상하고 체계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내정간섭을 하고 심지어 도둑질도 서슴지 않았다. 지금의 외교관의 이미지와는 반대로 간첩이라는 성격이 짙게 깔려있었다. 이런 것이 결국에는 자국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주재국의 여론을 악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나자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외교관의 임명에 각별히 신경을 썼고 많은 격식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외교관은 군주의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그러나 시민혁명과 경제의 발전은 부르주아라는 계급을 만들어 냈고 이들은 권력이 한사람에게 머무는 것을 극도로 견제했다. 이것을 계기로 국가의 권력은 왕과 귀족에서 국민에게 옮겨가게 되었고 그 만큼 외교관의 자율권도 높아지게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서 국민들은 국가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점증하였고 여론이 정책 결정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로 인하여 외교도 점차 민주적으로 바뀌어 가는데 먼저 비밀외교를 배척하고 자국의 여론과 주재국의 여론을 중시하며 모든 협상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2차세계 대전을 통해 외교는 큰 역할을 한다. 냉전 외교라는 독특한 외교를 지나 요즘의 세계 외교는 자국의 경제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다자간 외교를 펼치고 있다.외교를 잘 하려면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은 외교력을 키워야지 살아남을 수 있는 실정으로 몰려 버렸다. 그럼 외교를 잘 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이 문제에 대해서 책에 나온 정보를 바탕으로 나의 의견을 쓰도록 하겠다. 외교를 잘 하려면 국가적인 외교력의 발전과 외교관의 자질 향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국가적인 외교력의 발전이란 첫째 경제력의 발전을 들 수 있다. 기술력의 발전은 외교에 있어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기술 이전 등의 조건으로 영토분쟁을 해결할 수도 있고 만주의 조선족과의 접촉문제를 중국에 대한 우리의 기술이전의 전진기지로 삼는다는 명분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차관 제공과 같은 것은 외교에 있어서 우선 유리한 입장을 차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국가는 다른 나라와는 차별되는 우리만의 기술력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학계나 연구소등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경제력의 발전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아이엠에프를 통해서 뼈저리게 느꼈다. 둘째는 민생안정이다. 이는 외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국민들의 단결심을 높이기 위해서 꼭 선행 되야 되는 것이다. 요즘의 우리나라는 높은 실업률 이로 인한 과다한 교육 범죄의 증가 높아지는 물가 등으로 인하여 민생이 차츰 불안해져 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민을 가는 국민이 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들의 단결심을 기대하기 어렵고 이는 여론을 분열시키며 결국 외교에까지 반영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속히 고용안정대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며 또 국가대표 축구경기와 같은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이벤트를 많이 개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청소년들이 우리나라의 전통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사랑할 수 있도록 흥미유발을 시켜야 할 것이다. 자그마한 이스라엘이 거대한 아랍을 이겼듯이 외교의 힘은 국민들의 단결력에서 나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금모으기와 같은 일은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있는 뛰어난 단결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정부의 잇단 정책 미숙과 공직자들의 부정, 일부 기업인들의 탈세 사건들이 우리의 단결심을 약화시키고 있다. 셋째는 국민 개개인의 정보 수집능력 발전이다. 요즘의 세계는 초 정보화 시대이다. 비밀외교란 있을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외교의 결과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다는 생각으로 국민 개개인들도 우리나라의 외교 현안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대해서 항상 적극적이어야 하며 이것을 통해서 나름대로의 의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부의 외교노선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하며 정부가 외교에 대해서 미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국민들의 외교감각이 뛰어난 상태에서 둔한 외교관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넷째는 정부의 일관되고 장기적인 외교전략 수립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외교는 정권이 교체할 때마다 바뀌어서 일관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실리를 챙길 것인지 아님 명분을 챙길 것인지를 확실히 결정하고 그에 따라서 외교적인 노선을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대북 관계에 있어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 대북 관계에 있어서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주변 강대국 특히 미국의 눈치를 너무 많이 봐왔다. 이로 인하여 우리와 북한은 냉각과 해빙을 자주 겪으며 갈팡질팡 하였다. 현 정부의 햇볕 정책이 만약 보수 성향이 강한 부시 행정부의 반대에 부딪쳤을 때 과연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미지수이다. 우리 정부는 앞으로 열릴 동북아시아 주도 시대를 맞이하여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외교전략을 세워 놓아야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다. 다섯 번째는 통일이다. 통일을 통한 경제적 군사적 인적 발전은 접어두고라도 외교 자체만을 생각 할 때도 북한의 외교적인 수완은 우리의 외교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것 같다. 미국의 경제적 원조를 얻기 위해 명분을 살리면서 실리를 챙기는 것 회담을 끄는 인내력, 강대국에 맞서 외교를 펼치면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는 외교관들은 북한의 외교력이 상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항상 붕괴 직전이라던 북한의 사회가 유지되는 것도 외교 덕택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북한의 외교 적인 기술과 우리의 외교력이 합쳐지면 외교 강대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장 자크 루소 (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문1 + 3) 루소의 "자연상태"(자연법)에 대한 비판을 논하라. 그는 자연법 또는 자연권이 시민 사회의 기원도 바람직한 기초도 될 수 없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다고 보는가? 또한 루소는 자유주의자들(홉스나 로크)과는 달리, 자유는 "자연상태"에서보다 "(진정한)사회상태"에서 더 고양되고 극대화된다고 보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라. 그에게 있어 진정한 자유는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의 실현은 어떤 조건 및 상태에서 가능한가?1. 자연상태에 관하여홉스의 자연법은 "사회나 인간의 평화적 조건"으로서 생명보전을 그 주된 목적으로 하는 이성의 계율 또는 보편적 규칙이다. 또한 자연법은 비참한 자연의 투쟁상태에서 벗어나 '평화와 자기보존'을 성취할 수 있는 국가상태로 옮겨가게 하는 이성의 일반법칙이기도 하다. 홉스의 자연권은 인간의 자연적 능력의 실현과 자기보존적 본성의 자유로운 발동이다. 그러므로 자연권은 개인이 고유한 힘을 행사하는 자유이며 인간이 자기고유의 판단과 이성만으로서 스스로의 능력과 힘을 실현하기 위해서 가장 적당한 수단을 행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홉스에 있어서는 자기보존과 자기이익의 욕망이 바로 합리적인 것이며 인간의 이기적 동기를 기반으로 한 행위가 이성적인 것이다. 따라서 자연법은 인간적 생존을 보장하고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이성에 의해서 발견되어지는 보편적 법칙이며 정당한 이성의 명령인 것이었다.로크는 인간을 조물주의 피조물로 보고, 태어나면서부터 신의 뜻에 따라 생명을 잘 보존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보았다(천부인권론). 또한 그는 조물주가 사람들에게 이 세계를 공유물로 주셨으며 사람들이 거기에 각자의 노동을 가함으로써 사유재산권이 발생한다고 했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이성의 법칙, 즉「자연법」은 사람들을 평등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고, 신이 부여한 생명과 각자의 노동력이 가해진 재산권, 그리고 그것을 취급할 수 있는 자유를 신성불 사고 및 생활 방식 - 이며, 역사적 구성물일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루소는 로크와 홉스가 자신들이 현재 살고 있는 사회의 부르주아들의 모습을 과거에 투영, 그것을 인간본성으로 규정해두고 다시 현재에 적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루소는 그들이 인간에 대한 극히 부분적인 사실(이성)에 기반 하여 자연상태를 그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그는 홉스와 로크에 대해,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사회성이 없는데 어찌 그들이 뭉쳐 진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반박한다. 루소에 따르면 진정한 시민사회(공동체)는 결코 자연법에 기초할 수 없으므로 인간 본성에 맞추어 사회나 정치체제를 구성하고 그것을 잘 이끌어 사회를 평안하게 해야 한다는 홉스, 로크의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면 지금부터 루소가 가정하는 인간본성과 자연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러한 근거를 들어 루소는 홉스, 로크 등이 사회상태에서나 가능한 인간의 모습을 자연상태에 투영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로크의 자연상태로크의 자연상태는 적은 인구수와 광대한 토지, 그리고 풍부한 자연물의 상태였으며 홉스의 자연상태(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와 달리 자유롭고 평등한 평화상태였다. 그에 따르면 자연상태 하에서 사람들은 자연법의 범위 안에서 자기의 행동을 스스로 규율하며 각자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소유물과 신체를 취급할 자유를 갖는다. 그러나 인구수가 많아지고 화폐가 발생함에 따라 빈부의 차가 커지고 다른 사람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자연상태에서는 법률, 재판관, 권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상태 하에서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은 매우 불확실하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침해받을 수 있는 위험(전쟁상태로 갈 가능성)에 처하게 된다. 이에 사람들은 '생명과 자유와 재산'이라는 자연권을 보다 더 안정적으로 향유하기 위하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 처벌권을 포기하고 그것을 계약에 따라 하나의 공동체에 일임하게 된다.(계약의 목적은 각자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으로 보고 있지만 루소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하는 불평등은 인간조건이 아닌 역사적(근대)으로 특정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루소는 불평등이 근대 사회제도로서의 사유재산에서 기원하는 것이며 또한 근대인의 조건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루소의 인간관에 대한 입장에는 기본적으로 인간 본성의 변화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하겠다.그렇다면 여기서는 루소에 따르면 결코 선천적인 것일 수가 없는 인간 불평등에 대해 고찰해보도록 하겠다.불평등의 기원루소에 있어서 불평등은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연령, 체력, 정신적인 점에 있어서의 자연적 불평등이며 다른 하나는 재산, 권력, 명예 등에 있어서의 도덕 또는 정치적 불평등이다. 특히, 후자는 시민사회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서 자연상태에 있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연상태의 인간은 고립적인 것이었고 개인과 개인 사이에는 지배, 복종의 관계나 도덕적 관계도 없을뿐더러 어떠한 선,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그것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개념이므로) 루소는 그러한 인간이 사회와 문명에 의해 타락하였다고 하며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단순한 자연적 삶을 (상대적으로)찬양함으로써, 그의 기본적 인간관을 제시한다. 인간불평등기원론 1부, 자연상태에 대한 설명에서 루소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동물적인 삶 - 지적인 활동이란 거의 없고, 자연적이고 순간적인 욕구에 의해 움직이고 만족하는 삶. 즉,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진정한 자아와 합치되는 상태 - 을 살았다고 묘사한다. 또한 이러한 상태의 인간들은 서로 어떠한 관계도 가지고 있지 않은(언어조차 없음) 독립적 상태이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는 아무런 재산도, 싸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불평등기원론 p.702부에서 그는 자연상태에서 이처럼 자유롭던 인간이 사회적 인간으로서 갖가지 속박에 얽매이고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불평등의 사회제도에 묶이게 되는 과정을 그려 나가고 있다. 루소에 따르면 농업과 야금술의 발전은 노동의 분할을 초래했고, 상호 의존관계를 낳았으며 토지의 경니었던 것이다. 루소에 따르면 인간본성 및 자연상태는 결코 시민사회의 토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인간불평등기원론 제 1부에서 자연상태와 사회상태를 동시에 비판하면서 이 두 가지를 배제한 더 나은 상태를 제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자연상태, 실제사회상태, 제 3의 사회상태의 3가지를 상정하고 있는데 이때, 루소가 말하는 제 3의 사회상태야말로 진정한 계약으로 이루어진 바람직한 시민사회라고 할 수 있다.(실제 사회상태는 나쁜 계약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필연적으로 전제정치, 전쟁상태로 가게 됨) 그렇다면 여기서는 루소가 주장하는 바람직한 시민사회가 무엇인지, 또 자연상태는 왜 그러한 시민사회의 근거가 될 수 없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2. 바람직한 시민사회(진정한 사회상태)와 자연상태 극복의 필요성루소는 성숙하고 합리적인 존재로서의 개인을 망상에 불과하다고 보아 자유나 계약에 대한 존중 등은 공동체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루소에 따르면 진정한 사회는 공동의 언어, 공동의 이익 그리고 공동의 행복이라는 연대감을 지닐 때 생겨나는 것이며, 이처럼 정신적 연대감으로 충만한 공동체 안에서 각 개인은 진정한 시민적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루소는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과 결합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즉, 사회형성이 인간의 자유에 기여한다는 것이며 개인은 자신을 전체에 양도함으로써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정부라는 것이 없다면 다른 사람의 의지에 복속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인간은 자연적으로 자유스러운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그같은 인간의 자유는 자신들의 단순한 생리적인 욕망들을 충족시키는 수준의 자유에 불과할 뿐이라고 루소는 주장한다. 그는 오직 정치사회를 통해서만이 인간은 비로소 시민적 자유 또는 도덕적 자유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회계약론자들에 따르면,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향유하였던 자유나 권리들은 그들이 일단 사회에 들어가서 그 사회의 법의 보호를 받아들이면, 주권은 인민에게만 귀속되며 정부는 위임된 권한만을 가진 일종의 대리자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인민의 주권이 대표될 수 없는 그의 논리에서는 어떤 형태의 대의정부도 바람직 한 것일 수 없으며 이는 그가 제네바나 고대 그리스 같은 폴리스적 이상국가를 추구하고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 루소는 또한 사회계약론에서 그 나라의 기후와 지형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구, 이런 것들의 특징에 적합한 독자적인 정부형태를 채택해야 한다는 자신의 정부관을 제시한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루소는 규모가 작은 국가, 즉 그리스의 도시국가, 로마 공화국 및 그가 출생한 스위스의 제네바와 같은 국가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국가는 공동 사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여기서는 루소가 추구하는 국가의 조건들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도록 하겠다.)한편, 루소는 이러한 사회가 결코 자연적인 인간본성에서 비롯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은 동물과도 같기 때문에 사실상 인간적인 것-인간본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자기보존이나 육체적 욕망 등만이 존재하는 동물적 상태이자 (동물과 다른)인간의 잠재력이 전혀 발현되어 있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사회성이 없을뿐더러 인간적인 잠재력이 발현되지도 않기 때문에 그같은 본성을 바탕으로는 진정한 시민사회를 이루기 위한 도덕적이고도 사회적인 결합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도 누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루소는 자연상태에서의 결함 있는 인간 본성이 도덕적, 윤리적인 사회적 본성으로 바뀌기 전에는 참된 사회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인간본성의 변화(개조)를 강조했다. 즉, 자연인을 시민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루소의 사회계약은 사회상태로 들어온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하겠다. 인간은 유일한 자족체(self-sufficient)인 국가(공동체)에 참여함으로써만이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