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는 말-한국인의 문제점, 극단적인 반일감정매일 밤 9시. 우리는 TV를 켜 뉴스를 본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꼭 보아야할 프로그램으로 인식되어있는 이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 사회는 왜 이리 문제 투성이일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뉴스라는 프로의 특성상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게 당연하지만, 경제적인 면, 정치적인 면, 범죄 등등 온통 문제점들뿐이다. 간혹 어렵게 돈을 모은 할머니가 그 돈을 모두 사회에 기부한다든지,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사회의 정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담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고발한 내용들이다.우리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서 한국 사회 속에서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에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며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답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왜 이런 결과가 생겼을까.다시 뉴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보는 뉴스에서 다뤄지는 기사의 대부분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이슈와 생활에 필요한 정보 그리고 한국사회의 문제점들이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살펴보면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나고 문제시될 것 같은 문제들도 있고,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범하게 되는 잘못들에 대한 기사도 있지만, 우리 한국 사회만이 가진 독특한 문제점들이 많다. 예를 들어 지역주의나 학연주의의 문제, 고질적인 서울대병, IMF로 인한 실직의 문제, 미국 사대주의 등등이다.요즘 2002년 월드컵에 대한 소식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의 월드컵 준비상태를 비교하는 소식도 많이 접하게 된다. 이 뉴스를 들으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어떤 나라와 비교되는 것보다 열등감을 두 배 이상으로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실례로 우리나라 축구팀과 일본의 축구팀과 친선 경기를 보더라도, 그 날은 그 경기를 보기 위해 일찍 는 그리하여 통일을 지향하는 강력한 민족주의로 위장되어 상이한 두 체제가 출범하였다.미국과의 우방 관계 하에 발전민족주의를 전개시켜온 남한은 후에 전 국민의 생활향상이라는 경제적인 목표를 두면서 선진조국창조라는 구호와 공산주의로부터 조국을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겠다는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어왔다.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개인보다도 집단에 대한 충성심을 우선시하는 이율배반적 이데올로기를 국민에게 강요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남한의 민족주의는 현재 근대국민국가가 지향하여야 하는 주권의 독립을 경제적 자립에서 구현하려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민족주의 의식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몇 년 전 우루과이라운드로 인해 물밀듯 들어오는 외국상품을 심리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서 "신토불이"란 말, 즉 우리 것을 사용하여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기치를 내건 적이 있었고, IMF가 터졌을 때에는 금 모아 나라 살린다고 소시민들의 금을 녹여 외화를 마련한 적도 있다. 그리고 뭇 정치가들의 발언도 민족주의에 호소하여 국민들을 선동하기도 한다.우리가 지니고 있는 반일 감정은 개인적으로 보다 국민적으로 많이 나타난다. 일본 제품을 사거나 일본 영화를 보는 것은 좋아하면서 국가적으로 일본과 대립되는 일만 생기면 이성을 잃곤 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일본을 향한 저항적 민족주의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주의적 열정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적절한 수준에 머물면 사회의 활력소가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되면 지나친 이기주의적 행동이 개인에게 해롭듯이 정치적 짐이 되어 오히려 사회의 생존과 발전을 해친다. 자연히 그것을 현명하게 쓰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것을 잘 쓰는 길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을 시민들의 자아를 넓히는 데 이용하는 것일 터이다. 민족주의는 궁극적으로 확대된 이기주의이므로, 시민들이 일상에서 지는 '나'라는 개념의 외연을 넓히는 데 쓰는 것은 자연스럽다. 동해의 이름을 조선해로 바꾸어야 한다고 서 왜곡 뿐만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남쿠릴 열도 근해의 꽁치 조업 금지 문제까지 겹쳐 우리나라 여론의 악화를 불러왔던 것이다. 그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우여곡절 속에 자리잡은 양국 사이의 선린의 틀, 원칙과는 거리가 먼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우리 국민에게 심어 놓았다. 여기에다 그의 방한을 반대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갑자기 바뀐 데 대한 여론이 비판적이어서 그의 서울 등장은 더욱 개운치 않았다. 그 결과 사람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화형식을 벌이고 반일현수막을 내거는 등 격렬한 시위 등을 통해 그의 방한이 달갑지 않음을 드러내었다. 또 고이즈미 총리가 서울 체재 중의 일정인 국회 방문을 한나라당이 문제삼고 나섰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교과서 왜곡에 대한 사과와 꽁치 조업 협상에서 양보하지 않을 경우 의사당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저지할 것이라는 방침 하에 결국 고이즈미 총리가 국회의사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의원들의 이런 집단적인 움직임은 우리 정치권의 대일 접근 자세가 국민 정서, 감정에 의존한다는 인상을 줄 만하다. 국민 여론을 정리, 소화해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는 것이 정치의 기능이라고 볼 때 거꾸로 여론에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 도 했다.매년 한두 차례씩 우리 사회를 열병처럼 뒤덮는 반일감정이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다시 불붙은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이 혈서를 쓰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일본상품 불매운동까지 천명하고 있다. 역사전문가들은 이번에야말로 연례행사처럼 한번 들끓었다가 가라앉는 일회성 국민감정 폭발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안 자체가 역사문제인 만큼 이번 기회에 올바른 대일관과 그에 따른 한·일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국민적 공감대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청소년에 대한 역사교육이 새로 시작돼야 한다는 지적이다.서울 계동 중앙고 1학년 8반에서 진행된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주제의 특별수업. 최현삼 교사(35)가 일본의 역사 왜북일 관계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물론 이런 우려와 경계는 민족과 나라를 생각해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본 인식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일본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한 위에 나온 결론인지, 혹시 일본 내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일부 사실을 과대 인식해 거기에 우리의 상상력을 혼합시키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불필요한 의심과 경계를 하는 것이며 통일 정책, 외교 정책 전략에 있어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시사저널』 96년 9 월 12 일 기사에서는 바로 이런 북한과 일본과의 관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잘 드러나고 있다. 이 기사에서는 96년 9월 일본의 몇몇 산업체가 북한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요청으로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투자촉진안내서를 펴낸 바 있으며, 96년 7월 김정우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조총련 상공인들과의 비공식 회합에서 "앞으로 나진·선봉을 일본의 가시마공단 같은 중화학공업 단지로 개발해 나가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시사저널』은 "재계 관계자들은 북한이 나진·선봉지대 구상을 일괄타결 방식으로 일본종합상사들에 넘겨줄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 북한 경제를 적극 지원하면서 북한의 경제를 장악하고 한반도의 분단고착화 시키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우리는 동북아시아 경제를 일본이 장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고 당시 매스컴에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음을 알리고 있다.게다가 95년, 일본이 북한에 쌀 50만t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하자 우리나라에서 이것을 극구 막은 적이 있다. 우리 나라는 일본이 한반도 통일에 방해가 되는 짓을 하고 있다고 선전했고 이는 일본보다 한국이 먼저 쌀을 보내야 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져 외국에서 수입해서 쌀을 원조하는 웃기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그리고 그 해, 11월 APEC 회의에서 당시 일본 총, 현대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지 못 한다. 게다가 내년부터 실시되는 제7차 교육과정 개편안에 따르면 내년에 입학하는 고교생들은 1학년 때만 기본교과로 국사를 배우며 2학년의 경우‘한국 근, 현대사'는 선택과목 중 하나로 바뀐다. 현재는 고교 3년 간 102시간을 배우지만 내년부터는 고1때 68시간만 받게 돼 수업시간이 현저히 줄어든다. 특히 기본교과는 근대 이전을 중심으로 다루기 때문에 근, 현대사의 비중은 줄어들 것이 확실하다. 중학 국사교육도 현재는 2, 3학년 때 주당 2시간씩 배정됐지만 내년부터 2학년은 주당 1시간씩으로 비중이 낮아진다.우리나라의 중, 고등학교 학생들은 오히려 역사교육의 소홀로 인해 극단적인 감정과 이중적인 모순을 겪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근, 현대사의 비중을 더 낮추고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 역사 교육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은 더 심화될 것이다.마지막으로, 가장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반일 감정은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저항적 민족주의로 시작했고 그 뒤로도 계속 반일 감정 등을 가지면서 민족주의를 지켜왔다. 그러나 초기 소위 독립운동가라는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어 처음 한 일이란 망치를 들고 다니며 경무대 안의 일본제 전기스위치를 모조리 깨뜨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승만은 바로 그 망치로 반민특위를 깨뜨리고 친일파들을 중용함으로써 한국현대사의 기본 틀을 망가뜨리고 말았다. 그 후 50여 년 동안 한국정부의 반일정책이란 이승만의 그런 코미디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었다. 이승만의 뒤를 잇는 박정희는 친일 장교였고, 그의 아들을 자처한 두 군인은 술자리에서 일본군가를 부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대통령을 지내는 동안에도 그런 무늬뿐인 반일정책은 유지되었다. 결국 그들은 한국의 일본에 대한 태도를 흐린 꼴이 됐다.게다가 그들은 민족주의 감정, 특히 반일 감정을 효과적으로 이용했고 국민들은 거기에 쉽게 이용당했다. 예로부터 국내적으로 곤란한 문제가 생겼을 때에 가장 효과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