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킨스에 대한 Essay19612917 교육학과 4학년 이수은홉킨스의 시와 그의 사상을 접하고 “inscape” 와 “instress” 라는 말에 특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inscape를 개개의 사물을 개성적으로 구별 짓는 형식이라 하였는데, 그가 절실한 사제였던 것 만큼 이는 하나님의 사물의 왜 창조했는가?의 물음과도 같아, 이는 즉 사물의 독창성 때문에라는 답이 나온다. 내 존재의 많은 질문과 의구심 속에서 끊임없이 번민하고 방황했던 나의 사춘기 시절, 내가 왜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독창성이 있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살아가는 가치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요즘 인상 깊은 광고가 연상되는데, 모든 사람이 “Yes”라고 해도 한 사람만은 “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와 독창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광고였다. (사실, 어떤 이는 그 “No”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왕따”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슬픈 농담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inscape”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홉킨스는 시 개개의 작품 속에서 “inscape”를 추구했고 이는 그의 시의 독특하고도 독창적인 스타일을 낳았다.그러면 그가 생각하던 “instress”는 무엇이었을까? 사물을 독창적이고 개성적으로 구별 짓게 만들고 존재하게 하는 힘이었다. 토마스 하디의 사상과도 같이 그는 “신의 존재”를 철저히 믿었다. 우리를 이 땅에 개성 있는 독창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서 살아나가게 하는 절대적인 힘의 보유자, 신을 믿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나가는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가치의 개념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종교적 신념이라고 하겠다. “신의 장엄”이라는 시에서 나와 있는 “신을 신은 발”을 우리 모두는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흙의 아름다운 부드러운 촉감을 막는 신발은 차단막인 편견, 오만, 생업의 어려움이라고 그는 말한다. 신발 없이 직접 자연 사물들과 접촉하면, 그것을 통하여 그 속에 존재하는 신의 권능을 느낄 수 있을 터인데, 이러한 간섭 때문에 신의 존재와 광휘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나는 앞서 우리의 존재 “inscape”와 존재를 가능케 하는 힘 “instress”을 추구하는 것이 21C 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을 도외시 한 채 “활처럼 굽은 세계”를 만들며 현세적인,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생존을 위해 1차적인 본능에만 관심을 두는 동물과 같은 위치로 격하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을 자처하고 있다. 우리의 존재는 동물들과 구별되는 고귀하고도 독창적인 가치 있는 존재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반드시 우리 인간을 가능케 했던 절대적인 힘이 우리의 나침반, 등불 혹은 감시자가 될 것이다. (그 힘을 꼭 특정 신으로 국한시키지는 말자.)홉킨스가 “신의 장엄”에서 밝혔듯 신의 광휘는 영원하다. 즉 우리가 나약하고 타락하기 쉬운 나약한 존재라 할 지라도 아침이 되면 태양이 다시 동쪽 하늘로 떠오른 것처럼, 절대자의 빛은 우리를 언제나 영원토록 비출 것이다. 이는 그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시의 결론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의 존재와 절대자의 영광을 찾는 다면 태양처럼 그도 언제까지나 그의 빛을 우리에게 비출 것이다.
현대 영시(가상대학)Critical journal (1-2주): Thomas Hardy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에 관한 에세이19612917 교육학과 이수은4학년 마지막 학기라는 것은 나태한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되어 언제부터인가 난 위염을 앓게 되었다. 그래서 자주 부모님께 나의 과 선택의 advice를 주지 않았던 오래 전 얘기들을 꺼내며 투정을 부리곤 하는데, 한참을 떠들다가 나의 결론은 그래도∼ 이다. 영문학을 전공했다면 구태여 영어연수를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고 영어연수 아니 그보다 여행이라 함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 기간동안 실로 많은 것을 얻은 난 어찌되면 다행이다. 하며 웃게 되니 참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인가 보다.사실 나 그리고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의 선택은 나 스스로 했다라고 보기에는 참으로 우연같이 여겨질 때가 많다. 오래 전부터 가졌던 나의 근본적인 뿌리에 대한 물음도 누군가의 힘 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나의 부모님의 부모님 이렇게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남는 것은 신 이 되니까 말이다.사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Thomas Hardy는 인간의 일을 마음대로 좌우하는 거대한 힘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이 우주에 내재해 있는 대의지는 맹목적으로 발동하여 누군가가 죄가 있던 없던 간에 구별 없이 박해를 가한다고 믿었다. 크리스트교에서는 생활에서 그 사람이 선한 행위를 하던 악한 행위를 하던 인간의 원죄는 있고 그것의 죄의 사함 은 구원 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원죄설 이 있다. 즉 Hardy는 인간의 원죄 를 믿었고 그의 이러한 종교관은 첫 번째 아내 Emma가 그가 알고 지내던 교구목사의 처제였다는 것만으로도 증명이 될 것이다.우리는 세상을 살다가 여러 가지 부딪히는 수많은 갈등과 고통들로 인해 비관론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을 비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Hardy를 비관론자니 염세주의자니 여러 비판들도 많았지만 역시 그의 세상에 대한 비관은 우리가 하는 비관과 그리 다른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비관론 속에서는 Humanity를 느낀다. 그는 염세주의자이기는 하되 속으로 겁 많고 불성실한 낙천주의자, 즉 현실의 냉혹한 인생안건을 직시하는 용기가 없는 자기 기만적 낙천주의자를 적으로 여겼다고 한다. 따라서 Hardy는 절망적인 비관론자의 입장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한 우주, 대자연의 힘, 신의 힘에 대해 소극적이나마 반항하며 삶의 의미와 위안을 추구했다.그의 시 Hap 에서 Hardy의 모습이라고 판단되는 나 는 신으로부터의 벌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이를 악물고 죽는 마지막 반항을 한다. Neutral Tones 에서는 모든 것이 회색 빛이다. 회색 빛이라는 단어를 직접 명시했을 뿐 아니라 겨울 , 굶주림 , 사멸 , 씁쓸한 웃음 , 저주 등 모든 것이 다 우울한 그야 말로 회색 빛이다. 하지만 Hardy는 거기에 사랑 이란 단어를 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랑 이라는 단어로 인해 그 시가 회색 빛에서 조금은 밝은 색으로 비춰지는 듯 하다. The Voice 에서 나 는 비틀거리며 사랑했던 여인을 찾고 있다. 그녀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보이지 않는 힘 에 의한 것이었다면 그녀와 그녀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며 찾고 있는 것은 나 의 마지막 의지, 힘인 것이다. Hardy는 Darkling Thrush 에서도 늙은 지빠귀가 어둠에 자신의 영혼을 맡기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죽어서 대자연으로 돌아가는 대자연의 섭리의 힘을 표현한다. 하지만 지빠귀는 나 에게 행복한 작별인사를 했으며 이는 나 는 알지 못하나 지빠귀는 죽음 뒤에 어떤 희망 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행복한 인사가 가능하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