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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칼 바르트의 성경관
    서 론칼 바르트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신학자였다. 19세기에 성행을 하던 자유주의 신학은 바르트에 의해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다.바르트는 그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해결하기 위해 어느 누구보다도 열렬한 노력을 하였다. 그러한 각고의 노력을 통해 바르트의 신학은 그가 활동했던 시대에 뿐 아니라, 현재에 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추종자들을 배출해 내고 있다.그러나 바르트의 신학은 우리 정통 개혁주의 입장에서 볼 때 수용하기 힘든 한계가 분명히 있다. 특히 그의 신학의 모체가 되는 성경관은 더욱 그러하다.바르트의 신학이 어떠한 신학인가를 알아보려고 한다면 먼저 바르트 신학의 성경관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여기서 바르트의 성경관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기 위해 그의 신학의 등장과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며, 그의 저서에서 나타나는 성경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바르트 성경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비판해 보고자 한다.본 론Ⅰ. 바르트 신학의 등장과 역사적 배경바르트는 1886년 5월 10일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프리츠 바르트는 개혁파 목사로서 당시 바젤의 기독교 목사 학교 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으며, 1889년 베른 대학 신학부의 사강사로 옮겨 그 후에 교회사 및 신약학 객원 교수로, 다시 정교수로 임명을 받았다. 바르트의 어린 시절은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보내게 되었다. 바르트는 이곳에서 그의 어머니 사르토리우스의 사이에서 3남 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칼 쿠피쉬, 칼 바르트, 박종화역, 신학사상문고9,(서울:한국신학연구소,1977),p.13.바르트가 태어난 19세기에는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와 과학의 정신이 고양되어서 성경의 권위를 회의하고 성경에 대한 비평이 난무했다. 이러한 소위 자유주의의 사상이 만연하는 시대에서 바르트는 생활하게 되었다. 바르트는 18살의 나이로 아버지의 지도 아래 베른 대학에서 자유주의 노선에 서 있는 교의학자변화시킨 로마서1판이 되었다.{. Ibid, p.31-33.바르트의 신학 가운데 일관적인 사상의 흐름이 있다면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에 봉사하는 학 이라는 것이다.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에 봉사하는 학 이라는 그의 주장은 당시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자유주의 지조인 슐라이에르 마허에 의하면 교의학은 신앙 경험의 학이며, 인간의 종교성이나 종교적인 체험의 서술이라 생각되었고, 그렇기에 신학의 주제는 인간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성의 술어처럼 될 지경이었다.{. 박순경, 세기의 신학자 칼 바르트 (서울: 기독교 사상 1,1969).p. 94.그후에 포에르 바하에 의해 하나님 노릇을 하는 인간을 포착하여 정당화하였으며, 그는 신은 곧 인간의 자아 이해의 객관적 추상이요, 신학은 곧 인간학이라고 말하게 된다.이러한 때 바르트가 던진 로마서 1은 가히 충격적이었으며 신학자들의 유희장에 떨어진 폭탄 으로 비유되었다. 바르트는 여기서 오직 복음과 보음의 전파,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형성된 교회만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자연과 은총 사이에는 어떠한 접촉점도 있을 수 없으며,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자연 안에서 말할 수 있는 어떠한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고 오직 유일한 가능성의 길은 은혜 자체 뿐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길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윤성범,p.47-48.Ⅱ. 바르트의 저서에서 나타난 성경관1.로마서 1판, 2판로마서 1판에서 나타나는 바르트의 성경관의 그의 로마서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바르트는 1판을 통해 그때까지의 신학적인 지식의 잘못을 청산하고 오늘의 정신적인 정황을 성경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진단하며 그것을 자기 신학의 과제로 삼았다. 즉 자기와 동시대의 신학적인 입장을 전적으로 포기한 것이다.그것이 종교적 경험을 근거한 것이든, 합리주의나 경건 혹은 도덕에 근거한 것이든 그러한 것은 바르트에게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으며 오직 현대인에게 임하고 있는 하나님의 진노를 강조하며, 바울이 인간의 교만함을 헐어 버리려달하는 광대한 내용이다.{ . 윤성범,p,86.그는 그의 교의학 서설에서 교의학이 그 내용과 목적과 방법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성경에 의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바르트의 성경관이 난해함을 또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계시를 동일시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리와 성경에 대한 교리를 구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바르트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교회 교의학의 시금석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삼중적 형태로 분류해 논의하고 있다. 바르트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된 말씀, 기록된 말씀, 계시된 말씀의 세형태로 나누고 있다. 바르트는 이 세형태가 지향할 수 없는 통일을 이루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하나님의 계시 된 말씀은 우리가 교회의 선포에서 방아들인 성서에서만 알 수 있거나 혹은 성서에 근거를 둔 교회의 선포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은 우리가 단지 선포를 성취시키는 계시로 말미암아 알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을 알려면 단지 성서에 증거된 계시나 혹은 계시를 증거하는 성서를 알아야 한다.{ . Otto Weber, 칼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 김광식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1990).p.21.선포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를 선포로 만들고 이에 따라 교회를 교회로 만든다. 기록된 말씀은 선포의 말씀이 구체적인 형태로 계승될 때만, 즉 교회의 선포 안에서 사도적 증언이 일어 날때만 진짜일 수 있다.이 사도적 증언은 문서로 되어 있음이 중요하다.계시된 말씀이란 성경이 그 자체상 스스로 일어난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며 그것은 구체적 수단으로 이 수단을 통해서 교회는 하나님의 일어난 계시를 기억하게 되고, 장차 올 계시를 기다리도록 부르심을 받고 이에 따라 선포하도록 요구받고 능력 받고 인도 받음을 의미한다. 즉 성경계시라고 함은 성경의 말씀이 증언의 말씀으로 기능을 다할 때 가능한 것이다.{ . Ibid, p.24.또 바르트는 말씀의 본질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세 가지 형태로 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 곧 그분에게 있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이다. 우리는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이라 부를 때, 우리는 예언자와 사도의 증언 곧 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 영원히 우리의 주요 왕이신 분에 대한 증언으로서 성서를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 밖에서는 숨어 계신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 . 칼 바르트, 교의학 개요 전경연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1989),p, 34.하나님은 신구약 성서에 계시된 분이다. 기독교적 신의 정의는 성경이 하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바를 들을 뿐이다라는 한 마디에 그친다. 그러나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털끝만치도 하나님을 증명해 보려는 시도가 없는 것에 유의하여야 한다. 성서는 그같은 논증을 하려고 아니하고, 단순히 하나님은 아무 논증도 필요 없는 분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한 걸음 한 걸음 스스로를 증명하고 계신 하나님이 곧 나는 존재하고 살아 있고 행동하고 있으므로 더 증명해질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는 분이 있다.이 하나님이 자기 증명에 따라서 예언자와 사도들은 그분을 말하고 있다.{ . Ibid,p.54.성서와 고백이 뜻하는 신인식은 그의 행동에 있어서 그의 존재와 생명과 행위와 계시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같이 성서는 철학 서적이 아니고 한 역사서다. 즉 하나님의 힘찬 행동의 책이다.이 하나님의 행동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된다. 이 성서에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사역은 첫째 창조의 사업이요, 둘째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세워진 계약이며, 셋째 구속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이 역사에 집중된다.이 역사는 인간과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자유로운 사랑의 뜻을 나타내 보이고 이 뜻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박멸하시는 일과 신천신지의 계시와 현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으로 지배하신다. 이는 성서가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때문이다.{ . Ibi하는 정경에 대한 논의와 모순된다.다음으로 정경의 결정은 듣는 사람의 결정이기 때문에 정경의 결정에 원칙적으로 무조건 오류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정경의 결정에 오류가 따른다면 교의학의 절대적인 척도로서의 성경이란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정경은 비록 듣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정경이다.{ . G.I.Willimson,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나용화역,(서울:개혁주의 신행협의 회,1985)p.20.마지막으로 바르트는 정경은 아직 최종적으로 완성되거나 결정되어진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개혁교회는 현재의 성경을 통해서 모든 계시가 종결되었다고 본다. 개혁주의는 정경을 결정하는 기준을 바르트의 주장처럼 교회의 판단과 결정에 두는 것이 아니라, 사도성, 그 내용, 보편성, 그리고 영감성 이렇게 네 가지로 두고 있다.{ . 박형룡, 박형룡 저작전집(1),(서울:한국기독교연구원,1988).p.270.2.바르트의 영감성 이해바르트의 영감에 대한 논의는 다음과 같다.첫째, 성경의 저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적인 체험들을 기록했다고는 생각해서는 안되며, 다만 그들은 성경의 기록을 위해서 특별히 선택되고 부르심을 받아 특별히 순종하는 입장만을 고수했다는 점이다. 바르트는 저자의 인격적인 요소는 전혀 필요가 없다는 기계적 영감설을 말하고 있다.둘째로 바르트는 성경의 기록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를 강하게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저자의 오류를 절대로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성령은 삼위일체의 한 위이시다. 비록 인간이 불완전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계시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역사 하시는 일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 바르트는 성경에 인간의 요소를 전혀 고려 할 수 없이 단순히 기계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적인 오류가 성경에 있을 수 있다고 하는 논의 자체에 모순을 가지고 있다.다음으로 바르트는 성경의 초자연성을 부인하며, 축자영감설을 부인한다. 그러나 영감의 초자연성을 부인한다면 성경의 계시와 일반 계시는 구별이 없어지며, 성경이.
    인문/어학| 2002.05.22| 13페이지| 1,000원| 조회(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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