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계월전(洪桂月傳)홍계월전은 조선후기에 창작되어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고소설이다.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춘향전」, 「심청전」, 「사씨남정기」 등의 고소설들을 보면 여성들이 지켜야하는 도덕적 규범, 정절을 지킨 여성, 남편의 입신양명을 위해 힘쓰는 아내, 효행을 강조하는 등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홍계월전은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유교적 이념에서 탈피하여 남성만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을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여 이름을 크게 떨친다. 즉, 이 작품은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체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여성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남녀평등사상, 여권신장 등을 주장하여 당시의 성 이데올로기로부터 과감히 탈피하고자 노력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여기서는 홍계월전의 작품을 분석하는 것에 앞서 여성영웅소설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Ⅰ.여성 영웅소설의 특징1. 여성 영웅소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1) 유교사회의 모순조선 후기 사회는 임진왜란 ? 병자호란 양란으로 정치 경제 사회 구조에 이르기까지 상 당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유교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제일 먼저 드러 난 것이 양반중심의 유교적 신분질서의 동요였다. 권위를 내세우던 지배층들이 국가가 위 기에 처하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무능함을 나타내었다. 이에 직접 고난을 겪어야 했던 피지배층들은 기존의 유교적 신분제도에 대한 회의와 기본 체제에 대해 비판을 가 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계급적 신분질서의 동요는 상하개념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초래하여 유교적 절대가치관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런 신분체제의 동 요는 가정 속에서 억압해오던 여성에게도 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하였다.(2) 실학사상 등장봉건제도의 모순으로 인해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고 있을 때, 현실 개혁에 대 한 학문적 반성이 촉구되었다. 이것이 바로 실학이었다. 실학자들은 권위주의적 유교 사 회를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주장하하게 되었다.⇒ 다양한 변화를 겪은 후, 여성의 의식은 그 전보다는 훨씬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문학밖에 없었다. 영웅소설이 여성 독자층에 널리 보급되면서 남성의 영웅적 행위를 여성이 대신하는 새로운 영웅소설을 탄생시킨 것이다.2. 여성영웅소설의 유형사회적 제도와 유교적 윤리 규범 등에 구속당해 온 여성이 남녀평등의식과 자아실현 의식을 표출시키는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였다. 비록, 남성이 등장하는 영웅소설의 형태를 빌려왔지만,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여성의 당면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여주인공은 폐쇄된 유교이념의 부당성을 인식하고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 의지를 실현시킨다. 여주인공들은 가정 내에서의 대립을 적극적인 행동으로 해결하고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질서구조를 사회활동을 통해 비판하였다.이러한 여성영웅소설은 전통적인 여성하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했는가 그렇지 못했는가에 따라 유형을 나눌 수 있다. 여성의 신분과 지위를 완전히 극복했다면 여성의식이 강하다고 볼 수 있고 극복하지 못했다면 여성의식이 약하다고 볼 수 있다.(1) 여성의식이 미약한 경우이는 여주인공의 능력이 남성보다 뛰어나나, 여성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경우이다. 남성 을 대리인으로 내세우거나, 남장을 한 후에야 영웅으로써 등장한다. 그러다가 여성임이 밝혀진 후에는 이전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가정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평상시에는 전 통적인 여성으로서 행동을 하지만 급박해지면 영웅적인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자 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아무런 미련 없이 남주인공의 아내가 되어 돌아간다.예) 박씨부인전, 황부인전, 김희경전 옥주호전 등(2) 여성의식이 강한 경우남장을 한 여주인공이 여성의 지위와 한계를 과감히 탈피하여 영웅적 활약을 통해 남성 보다 우월한 지위에 오르는 경우이다.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벼슬길에 오르거나 전쟁에 출 전할 때에도 항상 남성에 비해 능력친구 정사도를 만나던 중 북방의 절도사 장사랑이 양주목사와 난을 일으켜 쳐들어오니, 부인이 계월을 데리고 하녀 양윤과 피난한다. 선녀의 도움이 있었으나 부인과 양윤은 도적 맹 길에게 잡히고, 계월은 자리에 싸여 큰 강에 띄워진다. 잡힌 부인과 양윤이 맹 길의 처 춘낭과 모의하여 여승의 배로 탈출하여, 부인은 삭발 중으로 변장하여 절에 숨는다. 계월은 무릉포에 사는 여공이 구해 주는데, 여공이 계월의 이름을 평국이라 고치고 동갑 나이인 아들 보국과 함께 공부시키며 키운다.이 때 홍 시랑(계월의 아버지)도 도적에게 잡혀 부역을 하다가 풀려나나, 다시 부역을 했다는 혐의로 벽파도에 귀양을 가서 무인도 생활을 한다. 절에서 지내던 부인의 꿈에 중이 나타나 벽파도에 가 보라 하여, 양윤과 춘낭을 벽파도에 보내 홍 무를 찾아 만난다.보국과 남장한 평국이 과거에 나란히 급제하여, 보국은 부제후, 평국은 한림학사가 되어 곽도사에게 수학하고 무술을 배우나, 부모 생각에 평국의 마음은 편하지 아니하다.이 때 서관 서달이 쳐들어와 평국과 보국이 원수가 되어 막으러 나가는데, 특히 평국의 전략과 무예가 뛰어나 서달 등이 항복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평국은 잃었던 부모를 찾아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 이 때 평국이 병이 나서 진맥을 받던 중 여자임이 밝혀진다. 천자가 사실을 알아 평국을 보국과 결혼시키는데, 평국은 남편 보국보다 벼슬이 더 높아지는 것을 사양하며, 보국의 첩 영춘이 거만하다고 하여 죽이기도 한다. 오왕과 초왕이 반란하여 쳐들어 오는데, 다시 평국과 보국이 나서서 물리친다. 특히 맹 길이 천자를 급습하여 위태로울 때 평국이 단기로 돌아 와 막아낸다.이에 홍 무는 초왕으로, 여공은 오왕이 되고 보국은 승상이 된다. 나중에 보국의 자식은 초의 태자가 되고 세상은 태평해진다.2. 작품의 개요(1) 작자 연대: 미상(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후인 17-18C 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2) 형식: 7회의 장회소설(章回小說)(3) 소설의 갈래: 군담소설 (주인공이 전쟁을 통하여 를 다시 만나 공후작록(公侯爵祿)을 올릴 것이오, 명망이 천하에 가득할 것이니 가장 길하도다."시랑이 그 말을 듣고 놀라 왈, "명백히 가르치소서."도사 왈, "그 밖에는 아는 일이 없고 천기를 누설치 못하기로 대강 설화하나이다." 하고 하직하고 가는지라. 시랑이 도사의 말을 듣고 도리어 아니 보임만 같지 못하여 부인을 대하여 이 말을 이 르고 염려 무궁하여 계월을 남복(男服)으로 입혀 초당에 두고 글을 가르치니 일람첩지라. 시랑이 자탄 왈, "네가 만일 남자 되었던들 우리 문호에 더욱 빛낼 것을 애닯도다." 하더라.계월이 어려서부터 남복을 입게 된 것은 곽도사의 예언에 의한 것이므로 계월이 남자로서 살아가야 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남성의 행동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남성의 영역으로 편입할 준비를 하게 된다. 계월의 부모는 어린 나이에 부모와 이별하면 여성의 신분으로는 도저히 혼자서 살기가 힘드므로 차라리 남성으로 살아가길 원했던 것이다.역할2) 남장은 계월에게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학문도 연마하고 입신양명 할 수 있는 계기와 남성과 동등한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가정안의 영 역에만 머물러 있어야 했던 여성에서 해방되어 가정 밖의 영역으로 활동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면서 적극적이면서 능동적인 삶의 모습은 계월을 국가의 영웅으로 까지 변신시켜 주었다. 가정사 또는 애정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간가치의 실현 이란 점에 의의가 있다.역할3) 사회로 진출하여 입신양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과거응시였 다.예시) 과거날이 당하매 평국과 보국이 대명전 들어가니 천자 전좌하시고 글제를 높이 그리거늘, 경 각에 글을 지어 일필휘지하니 용사 비등한지라. 선장에 바치고 보국이 은천에 바치고 주인 집에 돌아와 쉬더니 이때 천자 이 글을 보시고 좌우를 돌아보아 왈, "이 글을 보니 그 재주를 가히 알 리로다." 하시고 비봉을 기탁하시니 평국과 보국이라. 장원으로 하이실새 보많은 남성과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여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여성에게 폐쇄적인 교육이 아니라,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시킨다면 여성들도 나라의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다는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여성에게 폐쇄적인 교육을 시켰다. 계월의 영웅적 모습을 통해 원래부터 여성은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과 당시 남성에 의해 억압되어 있던 여성성을 해방하려는 여성의 소망등이 읽을 수 있다.역할4) 계월이 사회로부터 영웅으로 인정받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전쟁에서의 승리 때 문이다. 이도 남장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영웅의 이야기에서 전 쟁의 의미는 매우 큰 의의를 지나고 있다. 전쟁의 승패가 영웅의 자질을 테스트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계월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개인적이면서 초 월적인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예시) 철통같이 달려갈새, 원수의 준총마가 주흥같은 님을 버리고 순시간에 맹길이 말꼬리를 물고 느리지거늘, 맹길이 대경하여 몸을 도두어 장창을 높이 들고 원수게 범코자 하니, 원수 대노하 여 칼을 들어 맹길을 치니 두 팔이 내려지는지라. 또 좌충우돌하여 적졸을 진멸하니 피흘려 성천(成川)하고 주검이 구산(九山)같더라.......... 천자 혼비(魂飛)중에 평국이란 말을 듣고 일변 반기며 일변 비감(悲感)하사, 원수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며 말을 못하시거늘, 원수 옥체 를 보호하니 이윽고 정신을 진정하여 원수에게 치사 왈, "짐이 방종고혼이 될 것을 원수의 덕 으로 사직을 안보케 되었으니 원수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리오." 하시며 "원수는 만리 변방에 서 어찌 알고 와 짐을 구하였느뇨?" 하니 원수 복주 왈, 천기를 보옵고 군사를 중군에게 부탁 하옵고 즉시 황성에 득달하온즉, 장안이 비었사오며 폐하거처를 모르고 주저하옵더니 시부 여 공이 수채궁기로 나오거늘, 묻잡고 급히 와 적장 맹길을 사로잡은 말씀을 대강 아뢰고, 나와, 적진 여졸을 낱낱히 결박하여 앞세우고 황성으로 행할새
음소에 관련된 제학설1. 심리적 실제설 음소는 언어 음성의 심리적 대등 이라 정의하였다. 국어의 [p]와 [b]를 우리 나라 사람들이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머리 속으로는 이것들은 하나의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설명가능한데 그는 이와 같이, 구체적인 말소리가 머리 속에 반영된 것이 곧 음소라고 생각했다. 아메리카의 언어학자 사피어(E. Sapir)도 일찍 말소리가 존재하는 세계가 둘이 있음을 지적하였는데, 그 한 가지는 심리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으로서는 비록 다른 소리일지라도, 그 언어를 모국말로 쓰는 토박이들이 하나의 같은 소리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때는, 그 소리들은 하나의 음소가 된다고 규정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만 음소를 가려내려고 한다면 때로는 명백히 규정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 소리로 생각한다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모호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음소란 언어학적 개념이지 심리적인 것은 아니다. 음소의 정의는 그것으로써 음소를 가려낼 수 있는 방편이 제공되어야 한다. 음소의 심리적 성격은 음소의 중요한 면이기는 하나 이러한 한 면만으로 음소를 분석해 내는 것은 그리 올바른 방법은 아닌 것 같다.2. 물리적 실제설 이러한 심리적인 파악 방법과 정반대 되는 관점에서 음소를 규정하려는 방법의 대표적인 예로서, 존스의 설명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한 음소란, 어떤 언어에 있어서의 음성들의 가족인데, 그 음성들은 성격상 서로 관계가 있고, 그 가운데의 어떤 한 음성도 한 낱말에 있어서 다른 음성과 같은 음성적 환경에 쓰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다. 이 정의는 결국 두 음성이 서로 비슷하고, 그 자리가 배타적일 때는 한 음소로 뭉쳐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성격상 서로 관계가 있다 란 서로 비슷함을 말함인데, 그 비슷함은 소리 내기뿐 아니라, 듣기도 서로 비슷한 것을 아울러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한 낱말에 있어서 란 제약은 주목을 끌게 되는데 그것은 낱말의 이음을 음소의 정의함에 있어서는 고려하지 않고자 함이 다. 그가 음소를 정의함에 있어서 낱말의 이음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는, 낱말의 경계에 있어서의 소리의 변이는 매우 복잡한 모습을 띨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낱말 이음이나 문장에까지 시야를 넓힌다는 것은 문제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고 음소의 일관된 이론의 성립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음소를 가려내는 데 이러한 정의를 적용하면, 앞의 심리적인 정의에 비하여 주관적 판단이 끼어들 여지가 적어서 문제를 객관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되는 장점을 갖는다. 그러나 여기에도 몇 가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점을 남기고 있다. 먼저, 두 음성이 한 가족 으로 뭉쳐지기 위해서는 서로 비슷해야 하는데 서로 비슷하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그 한계가 명백하게 결정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음소를 가려내는 작업에 이러한 정의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소위 음성이란 것이 미리 결정되어 있어야 그 비슷함과 자리의 배타성으로 한 가족 으로 뭉쳐질 것인지가 결정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왜냐면 음성을 뽑아내는 일은 음소의 존재가 선행해야 되는 셈인데 음성에서 출발해서 음소를 가려낸다는 것은 본말이 거꾸로 된 셈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기 어려울 것 같아 보이나 첫째 문제에 대해서는 음운학작들의 많은 경험으로 대체로 비슷한 소리에 속할 수 있는 소리의 한계를 결정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면 극복이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여기서 경험이란, 어떠한 언어에서든지 한 개의 음소로 뭉쳐진 음성들이라면, 그 소리들은 서로 비슷한 소리로 보아지는 것을 말한다. 다음으로 둘째 문제에 대한 극복 방안을 말한다면 말의 소리는 음성기관의 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소리를 음성기관의 작용으로 돌이켜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단독으로 발음될 수 있는 낱말이 한 번의 조음 운동만으로 이루어질 때 우리는 쉽사리 그 하나의 조음 운동에 대응하는 하나의 낱소리를 알아챌 수 있게 된다. 소리의 연결체에 있어서도 능동부의 고정부에 대한 운동은 연속체로 서 그 사이에 낱소리의 토막을 잘라내기가 어려울 것 같으나 그 운동에는 굴곡이 있어서 고정부에 대한 거리가 가장 가깝게 된 순간과 그 거리가 가장 멀어진 순간이 있게 마련인데, 이러한 두 극단으로의 움직임은 그 사이에 어떠한 분절이 가능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하나의 소리란, 동질적인 어떠한 인상 을 주는 것이므로 이러한 면으로 하나의 소리를 뽑아내기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낱말에 있어서 란 보류 조건은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존스는 낱말의 경계에서는 소리가 다양하게 바뀌기 때문에 낱말의 이음은 고려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소리가 다양성을 띠면 Elf수록 그 현상을 음운학적으로 처리해야만 한다. 현상이 복잡하다고 해서 도피할 것이 아니라, 복잡하면 할수록 그것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존스의 정의는 한 음소로 뭉쳐지는 방법은 잘 고려되어 있으나 음소가 말의 뜻을 분화하는 데 이용되는 그 대립적 성격은 잘 나타나 있지 않다. 음소가 여러 음성들의 떼(가족)로 형성된다는 사실은 그 중요한 일면이기는 하나, 그것들이 말의 뜻을 분화하는 데 이용되는 그 기능이 오히려 더 중요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음소의 말의 뜻을 달리할 수 있는 기능을 음소 자체의 물질적인 소리바탕에서 찾으려고 한 학자로 그는 한 언어의 음소는 소리가 아니라, 말할이가 실지 말소리의 흐름 속에 만들어 내고 인지하도록 훈련된 소리의 단순한 바탕에 지나지 않는다. 라 하였다. 그는 소리의 모든 바탕을 모든 바탕의 어떤 부분은 말의 뜻을 알아듣는 데 상관 없는 것 비변별적인 것이며, 그 중의 어떤 한 부분만이 뜻과 관련되어, 말의 통달에 본질적인 것, 변별적인 것이라 한다. 그는 이와 같이 소리의 바탕을 두 가지로 크게 나누고서, 그 중의 변별적 소리 바탕의 가장 작은 단위를 음소라 한다.3. 변별적 대립설 그는 음소는 그 심리적 성격으로나, 그 음성적 변이에 의해서는 만족스럽게 정의될 수 없고, 오직 언어에 있어서의 기능 에 의해서만 정의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그는 어떤 언어에서 지적인 의미를 분화할 수 있는 모든 소리의 대립을 음운적 대립 이라 하고, 이러한 대립에 있어서의 각 항을 변별적 음운적 단위 라 한다. 그런데 음운적 대립은 범위 일정한 한계가 없어서 도이치말의 bahne와 bannedmlk 두 말은 그 첫 음절의 홀소리의 길이만 다르고, tausend와 Tischler에 있어서는 그 첫 부분만 같고, Mann과 Weib에 있어서 같은 부분이라곤 전혀 없는데 여기서 서로 달라진 각 부분이 변별적 음운적 단위 이다. 그런데 어떠한 변별적 음운적 단위는 더 작은 변별적 음운적 단위로 분석될 수 있는 것도 있다. 이와 같이 계속 쪼개어 나가서 그 이상 더 쪼개지지 않는 가장 작은 음운적 단위가 곧 음소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을 추진시켜 나가다 보면 결국 울림 자체가 하나의 음소가 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한 음소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난점에 대해 바헤크의 수정론이 나오게 된다.4. 추상적 가구(假構)설음소의 관계적 성격(relational character)을 강조하면서 추상적이고 복잡한 방법으로 음소를 정의: utterance - 특정의미를 지닌 물리적 현상(=소리)form - 항상 같은 의미를 지니고 다양한 utterance에서 나타나는 조음복합체(articulatory complex)class - 최소한의 차이로 서로 구별되는, 공통된 조음복합체를 가진 forms.micro-phonemes - 구성원간의 최소한의 차이가 같은 위치에 나타나는 ordered class의 대립항들e.g. lahm -kam -rahm -scham -zahm의 l-k-r-sch-tsmacro-phonemes - similarly ordered class에서 같은 위치에 나타나는 소음소들이 하나의 대음소를 이룬다.e.g. pill -till -kill -bill / nap -gnat -knack -nab의 p-t-k-b→Twaddell의 대음소 개념이 Trubetzkoy의 음소에 해당한다.5. 변별적 자질론 음소를 이러한 변별적 소리바탕의 묶음으로 보는 견해는 트루베츠코이에서도 볼 수 있으나 그에 앞서 야콥손에서 볼 수 있는데 그는 여러 쌍의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가지씩의 변별적 바탕으로써 음소를 규정하려 하였다. 큰 부류 바탕(syllabic/sonorant/consonantal), 조음 방법 바탕(continuant/delayed release/strident/nasal), 자리 바탕(anterior/coronal), 혀-입술의 바탕(high, low/back/round), 버금 바탕(tense/voiced/aspirated/glottalized)
홍계월전(洪桂月傳)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후인 17∼18C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작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은 목판본은 나오지 않았고, 활판본으로는 1913년에 新 書林板을 비롯한 3종이 있다.[줄거리]한때 이부시랑의 버슬을 지낸 홍무라는 사람이 간신들의 시기를 받아 조정에서 죄없이 물러나 후 고향에 내려와 살면서 한가히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그에게는 계월이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계월의 나이 다섯 살 나던 해였다. 친구 정도사를 찾아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홍시랑(홍무)은 난리를 만나 산중에 피신하게 되었다. 그때 홍시랑의 부인 양씨는 북방 도적들이 갑자기 들이닥치니 부득불 난을 피해 집을 나섰다. 부인은 계월에게 남복을 입히고 시비 양윤과 함께 남쪽을 향해 길을 떠났다. 일행이 큰 강을 거너서자 시비 양윤은 양식을 얻으러 마을로 내려갔다. 그 사이에 사나운 괴한들이 달려들어 양씨와 계월을 붙잡아서 강제로 배에 실었다. 양씨의 아름다운 용모를 본 도적은 어린 계월을 보자기로 싸서 사정없이 강물에 처넣었다. 그리고 뒤미처 나타난 시비 양윤마저 붙잡았다. 그날밤 양씨와 양윤은 맹 길의 처 춘낭과 모의하여 도적의 소굴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양씨는 양윤과 강을 오르내리며 슬피 통곡하였으나 딸의 종적은 묘연하였다. 그후 여인들은 여승들이 있는 절간에 몸을 의탁하였다. 한편 강물에 떠내려가던 계월은 다행이 무릉포에 사는 여공에게 구원을 받게 되었다. 계월의 남다른 용모를 보고 앞날을 내다본 여공은 이름을 평국이라 지어주고 친자식 같이 길렀다. 세월이 얼마간 흐른 뒤에 그는 계월을 자기 아들 보국과 함께 강호땅의 곽도사에게 맡기고 휼륭히 키워줄 것을 절절히 부탁하였다. 산중에 피신해있던 홍시랑은 북방도적에게 잡혀서 할 수 없이 거짓 항복하고 그 도적을 따라갔다. 그런데 황제의 대군이 북방도적을 평정하자. 도적을 따라갔던 그는 그만 역적의 누명을 쓰고 수만리 먼 곳에 있는 벽파도로 귀양갔다. 양부인은 절간에서 왠 도사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듣고 즉시 양윤과 임명하고 장수 천여명과 팔십만을 주어 적을 치게 하였다. 대원수 평국은 대군을 거느리고 행군하여 한달 만에 적과 대전하였다. 그는 첫 싸움에서 적군을 단숨에 무찌를 수 있었다. 하지만 중장군 보국은 적을 경시한 나머지 적의 포의에 들었다. 평국은 곧 생사를 돌보지 않고 달려가서 보국을 구원해주었다. 대원수 평국은 패전장 보국을 군법으로 다스리려 하다가 여러 장수들의 간절한 청을 받아들여 그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다. 더는 당해낼 수 없게 된 적들은 수많은 주검을 남긴 채 벽파도로 도망했다. 그래서 적을 추적하여 벽파도에 이른 평국은 여기서 적 일당을 모조리 소탕하고 그립던 부모를 만나보았다. 황제는 승전 보고를 받은 즉시 평국에게 좌승상 총주후라는 벼슬을 내리고 그의 부모에게도 각각 높은 직첩을 주었다. 대원수 평국은 황성에 도착하자마자 몸져누웠다. 황제는 그의 병을 염려하여 어의를 보내 주었다. 어의는 맥을 짚어보고 그 병은 여성에게만 생기는 병이라는 것과 또한 대원수가 여자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그리하여 계월은 황제에게 글을 올려 남자로 행세한 자기의 죄를 아뢰었다. 황제는 이것이 천만뜻밖이었으나 계월의 지극한 충성과 문무겸전한 재질이며 전장에서의 공을 생각하여 그를 대원수 겸 좌승상의 벼슬자리에 그대로 있게 해주었다. 그뿐 아니라 황제는 그와 보국의 혼사를 직접 주관해 나섰다. 그들의 혼사가 부모들 사이에 정해진 뒤 계월은 군령으로 보국을 불러 애첩을 끼고 세월 가는 줄 모르는 그를 군무에 태만하다고 호되게 꾸짖었다. 그것은 남편될 사람에게서 남존여비의 인습을 뽑아내려는 계월의 술책이었다. 보국은 여인에게 욕을 당하는 것이 불만스러웠으나 상대가 대원수고 좌승상이므로 어쩌는 수가 없었다. 그후 보국과 결혼한 계월은 남편을 자성으로 섬기면서도 대원수인 자기의 직분도, 부인으로서의 존엄도 지켜나갔다. 그는 어느 날 교만 방자하게 노는 보국의 애첩 영춘의 죄를 다스리고 목을 베었다. 이로 하여 계월은 남편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보국은 아내. 하고 꾸짖는 아내 앞에서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대원수의 군사를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적들은 일부 역량을 가만히 빼돌려 황성으로 직접 달려들었다. 그래서 황성이 위기에 처하고 황제는 적의 포위에 들었다. 계월은 위기일발의 순간에 단신으로 말을 달려와서 황제를 구원하였다. 계월의 칼이 번득이는 곳에서 적군은 무리로 쓰러졌다. 적군은 대항해볼 생각도 못하고 황급히 달아났다. 중장군 보국도 두 오랑캐국 왕들을 사로잡고 승전보를 올렸다. 소설은 왕에게 대사마대장군의 작위를 받은 계월이가 남편과 함께 나라에 충실하고 세세년년 낙을 누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고 있다.1. 영웅소설 창작동기와 시대적 상황영웅소설은 16C∼17C초 사이에 형성되었고 18C에 가장 성행하였으며 19C에는 상업주의 소설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16C말이나 17C초는 조선시대에서 가장 변화가 극심하던 시대였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그러했을 뿐만 아니라 사상적인 면도 그러했다. 특히 임·병 양란은 당시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영웅소설은 이러한 급변하는 사회변동 속에서 형성되었고 그 결과 영웅소설은 다양한 당시의 사회 사상을 반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영웅소설의 창작 동기를 정리해보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임·병양란으로 인한 민족적 울분을 소설로나마 토로하기 위해서를 비롯한 중국소설의 애독이 큰 동인으로 작용양란 이후 극심한 당쟁을 목격한 文士들이 충의와 윤리를 고취시키기 위한 방법의 일환 으로 간신과 충신간의 대결에서의 권선징악을 보이고자 군담소설을 창작.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대외적 판도와 대내적 판도가 달라졌다. 대외적으로는 명청의 교체와 일본의 정권 교체를 가져왔고 대내적으로는 민족의식 고취와 서민 의식이 대두가 되었다. 즉 외부적으로는 이민족에 대한 적개심과 설분의욕이 있어 민족의식을 가져왔고 대내적으로는 무능한 지배 계급에 대한 비판 의식으로 서민의식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이는 조선 사회를 서서히 해체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정도이다.2. 과 영웅소설 비교영웅소설은 대부분 정적인 구성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권문세가의 자식으로 아들을 낳기 위한 치성으로 태어난다. 주인공은 난리를 만나거나 간신의 참수로 부모의 곁을 떠나서 고난을 겪게되고 도사의 구출로 신비한 도술과 병법을 배운다. 이때 국가는 전란으로 위기를 맞이하고 주인공이 출현하여 영웅적인 활약을 하여 전란을 평정하고 높은 벼슬을 하게 되며, 분리되었던 가족을 찾아 훼손된 가정을 찾아 부귀 영화를 누린다는 식의 내용 전개가 영웅소설의 일반적인 전개이다.은 주인공의 가문의 설정은 전직고관으로 설정되어있다. 이것은 주인공이 혁혁한 가문의 출생이라는 점은 고귀한 혈통이 영웅적 능력을 발휘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인식하였음을 보여준다. 신화적 영웅에서 혈통을 중시했던 사고가 계승된 것이라 생각한다.일반적인 영웅소설에서 주인공의 탄생은 보통인물과는 다르게 설정되어있다. 부모들은 늦도록 혈육이 없이 한탄 하다가 자식을 얻기 위해 치성행위를 하고 그 치성의 결과로 자식을 얻는 식의 내용이다. 은 이러한 영웅소설과 달리 자식을 얻는 방법에서 치성의 행위가 없다. 치성의 행위가 없는 영웅소설 주인공으로는 조웅, 홍계월, 유문성 3명뿐이다.주인공의 전생 신분으로 구분해보면 태몽에서 주인공의 전생 신분을 알려주는 천상 존재의 적강이 많다. 주인공은 대체로 천관의 선녀로 천상에서 죄를 짓고 인간세계로 내려오는 경우이다. 이것은 천관의 선녀이므로 탁월한 능력자라는 것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이용된다. 은 천상적인 존재가 아닌 용녀가 인간 세상에 환생하는 경우이다. 주인공의 시련의 측면에서 보면 영웅소설은 개인적인 적대관계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영웅소설의 주인공은 국가를 위해 싸우는 인물이다. 도 국가의 적대 세력과의 싸움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에서는 개인적으로 홍계월에게 고통을 준 인물, 맹길이 왜적의 난에 가담하여 적장이 되고 계월과 싸워서 패한다. 개인적인 적대자와 국가적인 적대자가 동일인으로 구성되었다. 이것은 조선후기에 나타난 현상이다퇴한 것과 난을 평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웅소설의 세 가지 유형은 당시 향유층의 의식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외적에 대한 적개심과 권력층의 교체를 계기로 시세층의 권자만회 의식, 그리고 왕조의 교체를 희망하는 혁명의식이 반영되었다. 대부분의 영웅소설에서 주인공의 진출은 과거를 통해서 진출한다. 에서도 과거로 진출을 하기는 하나 과거시험의 성격이 다른 작품과는 다르다. 홍계월은 외적의 침입을 당해 인재를 찾기 위해 임시로 시행한 것이라는 점이 다른 작품에서의 정상적인 조정 진출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3. 에서 남녀 능력의 비교남녀주인공이 전쟁에 참여할 경우 자연히 전쟁 수행능력에서 우열이 나타나게 된다. 에서는 처음부터 홍계월이 중심인물로 나타난다. 홍계월은 영웅소설 주인공의 전형적 인물로써 나타난다. 그러나 홍계월의 남편인 보국은 영웅으로서의 과정이 나타나지 않는다. 영웅의 생애에서 필수적인 시련과 고난도 홍계월에게만 부과되어 있다. 작품에서 계월과 보국의 우열은 확실하게 나타난다. 과거제시에도 계월이 장원을 하고 보국이 부장원으로 뽑힌다. 이같은 여성 우위의 전개는 전쟁에 임하여 더욱 심화된다. 서관과 서달이 침략하자 계월은 대원수가 되고 보국은 중장군이 되어 출전한다. 보국은 충관과 싸우다가 적진에 싸여 위태한 지경에 이른다. 이 때 계월이 출전하여 천여 겹 싸인 적군을 헤치고 보국을 구하고 옆에 끼고 돌아온다. 계월은 보국을 잡아 꿇리고 군법으로 보국을 처벌하려하나 제장이 만류하여 용서한다. 이러한 설정은 여성 우위의 사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계월은 난을 평정하고 귀환하여 여자임을 밝힌다. 이에 황제는 보국과 결혼을 시키려고 중매를 서서 계월의 의사를 계월의 부친인 위공을 통해 묻는다. 이 때 계월은 남자가 못됨을 한탄하고 부모와 황제의 명을 어길 수 없어서 내키지 않은 결혼을 허락한다. 결혼 상대가 자기만 못한 보국이라는데 불평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세상을 남자가 주도하는데 대한 불만임이 분명하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태어났.
서정주의 이미지연구미당 서정주가 현대 한국의 대표 시인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식민지 지식인 청년에서 한국문학 최고 원로로의 인생역정은 서정주 일개인의 역사임과 동시에 한국 현대문학의 살아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서정주의 시 세계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초기에 속하는 시집으로는 『花蛇集』(1941)과 『歸蜀途』(1946)이며, 중기에 속하는 시집으로는 『徐廷柱詩選』(1955)과 『新羅抄』(1960),『冬天』(1968)이며, 후기에 속하는 시집으로는『질마재 神話』(1975)와 『떠돌이의 時』(1976), 『西으로 가는 달처럼』(1980), 『鶴이 울고 간 날들의 時』(1982)이다.초기시는 갈등과 대립의 구조를 일반적인 특징으로 한다. 『화사집』에서는 낡은 전통에 대한 반항을 동물적 가면을 쓰고 노래하는데 이는 한국시의 전통적 관습과는 전혀 이질적인 시세게를 보여준다. 그러나 『귀촉도』는 반전통적 태도와 함께 전통적 정서와 재인식하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두 시집에서 화자들은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 사이에서, 신화적 세계와 현실 사이에서, 정신적 세계와 육체적 세계 사이에서,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서정주시선』,『신라초』,『동천』의 중기시는 초기시에서 보여준 대립, 갈등 구조에서 벗어나 안정과 균형의 질서를 구축한다. 이 시기에서 시인은 전통적인 가치와 고전적 가치를 인식하기 위하여 신라의 신화적 세계를 탐색함으로써 삶의 불안을 극복하고자 한다.『질마재 신화』와 『떠돌이의 시』, 『西으로 가는 달처럼』,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의 후기시는 초기시의 갈등과 중기시의 균형의지를 통합하여 보다 성숙된 자기실현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태도를 특징으로 한다.이처럼 서정주의 시세계는 뚜렷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초기시에서 서정주는 서구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삶의 질곡을 파헤치려 하였으며, 중기시에서 시인은 불교적 상상력을 통해서 현실의 원형을 탐색하려 하였으며, 후기시에서 그는 성숙한 사회주의자로서 현실을 재 있다. 〈1꽃처럼 붉은 울음-2울음은 해일- 3울음은 제사〉의 귀결에서처럼 울음이라는 물이 무엇에 비유되는가에 따라 그 의미영역이 달라진다. 여기에서 〈꽃-해일-제사〉등의 매체어를 통해 조명되는 물의 의미영역은 〈시각적인 속성-시각적인 속성-동작태와 제의적 기능〉등이다.꽃처럼 붉은 울음 의 경우는 울음의 주체인 인간이 식물에 비유된다는 점에서 이 비유의 역동성은 높은 편이다. 이 비유의 특색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가시적 존재-가시적 존재 사이에서 비유가 발생하나 울음과 꽃의 거리는 크게 벌어진다는 점이다. 또한 이 비유에서는 물의 시각적이고 표층적인 속성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기능까지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꽃처럼 붉은 울음 이란 사실상 눈에서 피가 나도록 우는 격한 울음이다. 그것은 문둥이가 우는 울음이며 피가 맺히도록 우는 한의 울음이다.시인은 초기 시작 시에 방황하고 좌절하는 자신의 분열된 모습을 때로는 문둥이로 때로는 앉은뱅이와 같은 불구자 등으로 비유된다. 시속에서 문둥이는 분리되고 소외된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아기 하나를 죽여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아기를 죽인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는 피울음을 울 수밖에 없다. 자기 목숨을 부지하고 회생시키려는 목적으로 무고한 아기를 제물로 택해서 죽였기 때문이다. 지금 그가 우는 울음은 아기의 죽음과 고통을 대신해서 우는 울음이다. 그래서 이 울음은 제의성을 띤 울음이 되고 있다.결국 이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시인이 꽃처럼 붉은 눈물 의 비유를 통해 눈물 이라는 물 의 제의성을 조명하고 있으며 물의 심층적인 의미영역을 보여준다는 점이다.한편, 시 3의 울음은 해일 의 구절에서는 울음 이 해일 에 견주어지고 있어 흥미롭다. 물+바람 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는 해일 은 지상적이고 대지적인 요소를 강하게 갖는 매체어이다. 그런가 하면 해일 은 난폭한 물의 속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질료이다. 즉, 과거 물의 질료에 나타난 대지적이고 수평적인 의미영역을 탈피해서 의미영역의 수직적인을 연상하는 시적자아는 인간속에 내재하는 구원한 속성을 보고 있다. 그것은 구원한 것을 염원하는 시적자아의 적극적 상상을 드러낸다. 물의 순환과정을 부단히 보여주는 바다 역시 항존하는 사물이다. 즉, 위의 비유는 물이 갖고 있는 불변의 생명성을 조명함으로써 시인의 상상이 대지적인 발상을 탈피하고 형이상학적이고 친 공기적인 것으로 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서정주 시인의 시에는 인간을 경직시키고 무겁게 만드는 희한과 집착에서 해탈하려는 무의 동격이 자주 나타난다. 이 가볍고 자유한 것으로의 이행 양상은 초기시에서 후기시에 이른 일련의 시작 과정을 지배하는 명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일컬어 지상의 중력을 떨치고 탈중력의 부력을 얻어가는 훈련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피의 비유를 둘러싼 피의 탈 질료화 과정에도 나타난다. 피 이미지의 탈 중력적인 변모과정은 공기적인 부력을 얻어가는 구도의 과정이다. 그것은 현실의 육체성을 덜어가는 일련의 과정이며 없는 것으로써 살아 있는 것을 말하려 하는 무의 시학이자 순환과정이다. 그것은 육체적이고 일상적인 나로부터의 초월을 뜻한다. 니체의 말처럼 한 사람의 존재가 전적으로 자기 자신 밖으로 던져져서 자기 아래에 존재하는 자기를 응시하는 관조적인 상태로 되는 것이 바로 피의 탈중력과 순환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핫슈먹은 듯 취해 나자빠진능구렝이 같은 등어릿길로님은 다라니며 나를 부르고....강한 향기로 흐르는 코피두 손에 받으며 나는 쫓으니밤처럼 고요한 끓는 대낮에우리 둘이는 웬몸이 달어......-〈대낮〉에서위의 시에서 피 이미지는 피의 일상적이고 금기적인 속성을 벗어나고 있다. 위의 코피 는 향기를 지난 방향성의 물질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뜻하는 금기성의 질료로서의 피 이미지의 일상성을 탈피한다. 물이 그렇듯이 피에도 양면적인 속성이 들어있다. 죽음과 생명성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생명성의 의미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강한 향기가 흐르는 코피는 몸이 곤하도록 연인을 쫓아다니다가 흘러정화를 이룩한 상태의 피는 조용하고 깨끗해진 모습으로 마지 신방을 꾸미듯이 새로운 세계의 질료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피의 신방은 시적 자아의 신방이며 무화를 획득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은 온갖 지상적인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자유해진 해탈의 경지이기도 하다.서정주 시인의 시학을 無化와 自由化 로 귀결시킬 수 있는 것은 그의 시가 이미지의 탈 진료화 를 통해서 사물이 지닌 탈 일상적이고 진솔한 의미를 투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는 그의 상상에 나타난 공기적 역동성에 연유한다. 피의 순화와 해탈의 과정은 푸기시에 와서 본격화되고 있으나 이는 이미 초기시에 보여진 코피의 방향성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초기 시작 시에 시인은 이미 지상의 육체성과 중력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공기적 염원을 갖고 있었으며 오랜 시작 과정의 구도로 인해 가벼움과 자유, 공기적인 것으로의 열림을 실현하게 된 것이다.2. 흙 과 때 의 일상적 심상물과 흙은 대지의 수평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 물질이다. 바다 위에 대륙이 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들 양자는 아주 밀착되어 존재한다.미당이 초기시에 나타난 대지적 이미지에는 흙 과 때 의 불투명함과 중력성이 선명하다. 이에는 아직 질료적인 전환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이는 존재와 당위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직되어 있는 시인의 상상력을 말해주며 중력성과 불투명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애지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 안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싶다고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솥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찬란히 티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시의 이슬에는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숫개마냥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自畵像〉애비는 종이었다 와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및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등의 구점에서 이마 라는 비유어는 형이상학적인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시적장아의 눈은 탈 현실의 시적세계를 동경한다. 그러나 의식주를 영위해야 하는 현실의 당위가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그에게 구속과 중압감을 준다. 시를 쓰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상적인 당위들 때문에 시적 자아는 분열된다. 그것이 그를 병치로 만들고 병인으로 만든다. 시적 자아는 지상적인 것과 천상적인 것 사이의 부조화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의 시 속에 몇방울의 피 를 섞어놓는 현실적 당위 때문이다.위의 이 피 는 아직 정화되지 않응 지상성의 피이다. 이 피로 인해서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 의 천상 지향성은 흔들린다. 이 몇방울의 피 때문에 시적자아는 그간 희구마지 않던 찬란히 티워오는 어느 아침 의 빛까지 외면할 수밖에 없으며 비상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도 없다. 지상과 천상, 현실과 이상의 문턱에 끼어서 방황하고 고뇌하다가 병든 수캐마냥 헐덕어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일상속의 무거운 과제들이 생활 현장의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탈피할 출구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천상 지향의 좌절을 형상화시키고 있다. 이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위의 시의 깜한 으로 비유한 때 와 '흙 의 일상적 상상을 나타낸다.3. 불의 매개체적 수직성물은 부드러움을 느끼도록 하며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물은 여성적인 속성과 등가를 이루는가 하면 대지 위를 흐르기 때문에 수평성을 갖는다. 흙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불과 공기는 이와는 다르다. 물과 흙이 수평적인 순환궤도를 갖는데 비해서 불과 공기는 수직적이고 때로는 방향성을 초월하는 자유로운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인간에게만 존재하는 본능이기도 하다. 물과 흙의 속성을 닮은 수평적인 궤도에서 안주해 보려는 본능일 있는 한편 이로부터 탈피해서 수직적이고 초월적인 삶을 누리고 싶은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신부는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다.
김기림은 1930년대 모더니즘 운동의 대부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시는 언어의 예술이라는 자각과 함께 문명에 대한 감각을 기초로 가치를 의식하고 써야 한다는 것이 김기림의 주장한 모더니즘과 과학적 시학 의 핵심이 되고 있다.그러나 오늘날 모더니즘 시운동을 주도했던 김기림의 공과에 대한 찬반여론이 계속 이어져 왔다. 김기림이 펼친 모더니즘 시운동을 현시점에다 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시대의 모더니즘의 이론의 도입은 매우 전위적이었고, 그 반응 또한 우리가 생각할 수 없으리만큼 컸다. 따라서 이런 과거적인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축적되어 오늘이 이룩되는 것이라 할 때, 반드시 그것들을 부정적인 시각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서구문학의 이론적 적용이 채 자리잡히기 전에 그만큼 많은 작품과 이론을 읽고 구축한 김기림의 모더니즘 이론 및 과학적 시학 의 방법은 우리 근대시사에서 큰 공적이 아닐 수 없다. 그 시대 시학이론을 기초로 시작과 비평활동을 병행시킨 예는 그리 흔치가 않다. 이론적인 면에서 불모지였던 당시의 우리 문단에 서구문학의 이론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는 시를 쓴 것이다.여기서는 김기림의 시적 변이양상에 따라서 김기림의 시론과 작품을 분석해보도록 하겠다.1. 김기림 시론의 통시적 연구여기서는 그가 첫 번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하면서 활동했던 1930-35년도까지와 1936년 다시 도일하여 동북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한 활동기간, 그리고 8·15해방부터 그가 납북될 때까지의 활동기간 등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겠다.(1) 모더니즘 시운동과 오전의 생리(生理) (1930-35년)김기림의 초기시론에서 우리는 낡은 인습과 전통을 부정하는 철저한 모더니스트의 태도를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김기림은 전통에 반하는 총괄적인 문예운동으로서의 모더니즘을 수용했다기보다는 영미 이미지즘에 경도되고 있다. 즉 파운드(Ezra Loomis Pound), 로우웰(Amy Lowel) 등이 펼친 이미지즘 운동 및 이들의 영향 모더니즘의 수용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김기림은 엘리어트의 시론을 받아들여 문명비판의 시론을 전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문명예찬의 태도를 보이기도 한 것이다.한마디로 김기림은 이 논문에서 새로운 詩 의 요건으로 비판적 · 즉물적 {)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의 사물에 비추어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 전체적 · 경과적 · 정의와 지성의 종합 · 유물적 · 구성적 · 객관적 등과 같은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와 대립되는 속성들이 과거의 시 로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넷째, 김기림은 원시성의 욕구와 명랑성을 주장한다. 이는 과 에 잘 나타나 있다. 문화의 쇠퇴기로 표징되는 원시성으로 향하는 욕구와 동경, 그것은 현대 예술의 어떤 불만의 표현이라고 하고 있다. 지극히 건강하고 야만스럽고 조야한{) 사람의 됨됨이가 처하고 상스러운 것원시상태에서 예술이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인간의 노력과 고난을 바탕으로 이룩된다는 것이다. 이런 원시적 욕구는 쇠퇴기의 예술일수록 더욱 강하다는 것이다. 또한 시는 적절히 감정을 절제해서 명랑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힘과 건강이 균형된 상태에서 가능한데 이것은 전대의 우울하고 퇴폐적인 문학에 대한 반동으로 김기림의 모더니스트적 태도를 볼 수 있다. 결국, 일상회화 속에서 시를 탐구하는 것, 이것은 지성에 의한 감정의 정화작용이며, 그 원시적 명랑성에 대한 욕구라 할 수 있다.다섯째, 김기림은 시의 음악성과 회화성이 잘 조화된 체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했다. 시에서 기계적인 리듬의 구속에서 벗어난 자연스런 내적 리듬, 이것은 김기림이 의도했던 모더니즘 시론의 중요한 요소이다. 전대의 부자연한 리듬을 사용한 감상적 낭만주의 시를 거부하고 일상적 회화의 내재적 리듬에 의한 시작법을 김기림은 주장하고 있다.여섯째, 김기림은 초기 시론에서 시인 및 비평가의 포-즈로서 개관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시인과 비평가의 역할과 그 한계를 구분하고 있다. 제작자로 시인은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그 경계를 비평가가 되고자 할 시인은 자기가 쓰는 것에 대한 양심의 보장을 해야 할 것을 김기림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반드시 공동체의식을 가져야 하며, 새로 세워질 문화는 넓은 대중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한편 김기림은 광복 후 민족시의 새로운 화술 을 찾아야 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새로운 제재에 알맞은 화술이 채득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광복 후 걸작이 나오지 않는 이유의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의 대중화 과제와 새로운 민족시의 확립을 위해 그에 알맞은 화술의 체득을 강조하는 바, 이것은 민족적 연대감에 의한 공동체 의식과 함께 그 후기시론의 핵심이기도 하다.또한 김기림은 그가 납북되기 직전 전통시가 형식의 하나인 시조에 대하여 관심 기울이기 시작한다. 김기림이 시에서 리듬을 벗어난 산문화를 주장했던 초기시론과 달리 이 시기에 이르러 시조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검토를 할 것을 주장하고 있음은 큰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기림의 시조에 대한 관심은 무엇일까? 8.15해방 이후 민족의식에 대한 자각과 함께 전통적인 것에 대한 회귀라기보다는 그것에 대한 관심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한다.2. 김기림의 작품분석김기림의 시집으로는 『태양의 풍속』『기상도』『바다와 나비』『새 노래』등 네 권이 있다. 이외에도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되어 있으면서 시집에 실리지 않은 시편들도 있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김기림의 시작 및 비평활동은 6·25사변 때 그가 납북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그 후 북한에서의 문단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1) 김기림의 첫 번째 시김기림의 첫 시작활동은 1930년 9월 6일자《조선일보》에 실린 에서 비롯된다. G.W.'의 필명으로 발표된 이 시는 후에 부분적으로 수정하여 시집『태양의 풍속』에 수록하고 있다.바빌론 으로바빌론 으로작은 女子(여자)의 마음이 움직인다.개나리의 얼굴이여린 볕을 향할 때…….바빌론 으로 간 `미미'에게서복숭아 꽃 봉투가 날러왔다.그날부터 안해의 마음은 시들어저썼다가 찢어버린 편지만 쌓여간다.안상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김기림이 이렇게 태양 을 시켜 시적 대상으로 삼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태양과 함께 시작되는 일체만물의 생명작용, 바로 거기에다 그 자시의 시학을 확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통 태양 으로 집중된 그의 시적 관심, 이것은 어떤 생동서의 시학을 세우려는 데 근본의도가 있다. 그가 기다리는 아침 태양은 생동성과 건강성의 상징으로 그의 시적 이상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1931년 새해 아침을 노래한 와 등을 들 수 있다.두번째로, 김기림의 시에는 출발 과 항해 의 두 관념이 연계된 여행시 가 많다. 여행시 로 표방된 길에서 는 『태양의 풍속』중 의 시편으로 과 이 있다. 전자 은 표제와 같이 인천여행 중에 쓴 시로 ,, , , , , , 등으로 편성되었고, 후바 은 , , , , , , , , , , 등으로 되어있는데 이들은 그 자신의 고향으로 가는 선로연변의 풍경을 스케치한 것이다. 김기림이 여행시로 기획한 의도는 새로운 세계로의 지향만이 낡은 과거 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모닥불의 붉음을죽음보다도 더 사랑하는 금벌레처럼汽車는노을이 타는 서쪽 하늘 밑으로 빨려갑니다.- 시편 중 에서-노을이 타는 서쪽 하늘 밑으로 빨려들어가는 기차라고 했듯이, 이 시에서는 저녁과 밤풍경을 그리고 있다. 아침 과 태양 의 시편들과는 달리 고독 과 이방인 의 우울한 감정이 기조가 되어 있다. 이것은 김기림의 작시 태도와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한편, 의 시편들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그의 고향에 이르는 여행이라서 그런지 고독이나 이방의식 같은 것이 일체 나타나지 않고 지적 호기심에 의한 탐험을 기조로 하고 있다. 이를테면, 에서 이렇기 노래하고 있다.대합실은 언제든지 튜--립 처럼 밝고나누구나 거기서는 旗빨처럼출발의 희망을 가지고 있다.-대합실 은 기빨처럼 출발과 희망으로 표상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타고 달리는 열차의 차창밖으로 보이는 마을 조차도 순수한 인정으로 얽힌 촌가 마을이다.그러나 이들 시에서는 시의 신선감과 준비함이 좋을 것이다 라는 이 고작일 뿐, 다분히 풍자적이기도 하다. 태풍경보로 인한 긴박감이 에 고시된 어쩔 수 없는 인간능력의 한계성을 희화한 것이 된다. 이런 주제의식은 작자의 의도로서 풍자성을 띤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차게 밀려드는 서구문명의 세례를 받아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동양문화의 전통성, 그렇다고 그것을 전면 수용하기 위한 대비책이 마련된 것도 아닌 상태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3남태평양에서 일어나 북진중인 태풍의 내습을 경보한 것이 이라면, 는 그 태풍이 중국대륙을 강타하고 있는 정황을 그리고 있다. 세차게 밀려드는 서구문명으로 혼란된 중국문화와 정치기상을 이렇게 나타낸 것이다.슴으게 떨리는 유리컵의 쇳소리거룩한 보재기 우에펴놓은 환담의 물구비속에서늙은 왕국의 운명은 흔들리운다의 사자처럼빨간 술을 빠는 자못 점잔은 입술들색깜안 옷깃에서쌩그시 웃는 흰 장미찢어지는 휘장 저편에서갑자기 유리창이 투덜거린다……―에서를 서두로 한 는 대중화민국의 번영과 분열을 위한 정치회담의 장면이 제시되고 있다. 그 번영을 표방한 환담 속에 슴은 왕국의 운명 이 흔들리고 쌩그시 웃는 흰 장미 로 분열을 획책하는 강대국의 허위성 을 고발한다. 대륙진출을 기도하고 세계열강의 음모가 노대국(老大國)을 동요케 함으로써 아시아 전역에 엄습해온 불안과 공포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결미부분에서는 태풍이 도시 전역을 강타하고 황하강변으로 빠져나가는 순간을 그린다. 세기의 밤중 오만스럽게 버티고 선 도시를 태풍이 휩쓸고 간 뒤의 모습, 그것은 너무나도 초췌한 모습이었다. 태풍이 불어가는 소리를 휘파람 소리로 표현한 것은 그 시대 모더니즘 시파들이 즐겨 쓴 기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태풍이 스쳐간 뒤 亂麻(난마){) 몹시 어지러운 세상 형편의 비유와 같이 어수선한 도시풍경은 과 으로 다시 이어진다.4과 태풍이 휩쓸고 간 해협과 도시는 황폐하고 죽음처럼 암울하게 표현되고 있다.보랏빛 구름으로 선을 둘른회색의 칸바쓰를 등지고꾸겨진 빨래처럼바다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