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 秋] 孔 子1.....孔子(BC 551-479)와 관련하여 제일 먼저 연상되는 책으로는 『論語』를 지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論語』에서 孔子의 진정한 정신을 찾아야 한다는 宋代 이후 주자학의 입장과 상통할지는 몰라도 실제 과거의 儒家사이에는 『論語』보다는 孔子가 직접 撰述하였다는 『春秋』가 더욱 중시되었고, 그것이 孔子정신을 가장 선명하게 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春秋』는 漢代 이래 孔子가 편찬과 刪定에 직접 간여하였다는 『詩經』,『書經』,『禮記』,『易經』과 함께 소위 五經의 하나로 편입되어 존중되어 왔다.이와 같은 종래 儒家들의 『春秋』에 대한 집착과 중시는 『春秋』의 내용을 閱讀하는 현대의 독자에게는 매우 기이한 느낌을 주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春秋』는 魯 隱公 원년(BC 722)에서 노 哀公 14년 (BC 481)까지의 2백42년간의 魯國을 중심으로 한 열국의 중요한 기사, 특히 國君의 즉위 改元 朝聘 會盟 전쟁 제사 천재 등을 극히 간결하게 기록한 연대기에 불과하며, 그 자체도 현대의 독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시사하는 점을 발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너무나 간략한 서술 때문에 史書로서의 가치도 별로 높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평범한 연대기를 왜 儒家들이 그토록 존중 하였느냐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된다. 물론 그것은 『春秋』를 저술한 孔子의 특별한 의도가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그렇다면 孔子가 『春秋』를 저술한 의도는 무엇인가. 공자의 사후 『春秋』의 해석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맹자(BC 385-303?)였다. 그에 의하면 공자는 세상의 질서가 파괴되어 邪說과 폭행이 난무하고 신하가 군주를, 자식이 아비를 시해하는 하극상의 풍조가 만연하는 세태를 바로 잡기 위하여 『春秋』를 저술하였으며 그 결과 亂臣賊子가 두려운 마음을 갖고 조심하였다는 것이다. 즉 맹자는 『春秋』를 단순한 역사기록으로 보지 않고 윤리적인 도덕규범에 의거하여 正邪/선악의 가치판단을 내리고 褒貶의 필법으로 대의를 천명한 엄정한 是非論斷의 書로 해석한 것이다. 나아가서 그는 자신의 [一治一亂]의 순환적인 역사관과 결부시켜 『春秋』의 저술이 [一]亂을 극복하고 [一治]의 효과를 가져온 왕도의 구현으로까지 평가하였다. 이러한 맹자의 {春秋}관은 이후 유가들에 의해서 대체로 계승 발전되어 漢初의 大儒인 董仲舒 역시 그 견해에 따랐다.이러한 『春秋』관은 공자가 생존한 시대의 상황을 고려 할 때 비교적 설득력이 잇는 것 같다.그가 생존한 춘추시대 말기는 宗法의 원리를 기초로 형성 유지되었던 周왕조의 봉건체제가 전면적인 와해 직전에 처해 있고 점차 秦漢적인 질서로의 전환이 모색되는 시기였다. 이와 같은 구질서의 와해는 필연적으로 하극상 풍조를 동반하였다. 周왕실의 권위가 실추된 것은 물론이려니와 열국의 군주도 대부들의 도전과 위협에 직면하였으며 大夫들 역시 가신의 도전을 받았다.孔子의 본국인 魯나라 역시 季孫 叔孫 孟孫氏 3家에 의해 정권이 분할 장악되었으며 季孫氏의 家臣 陽虎는 主家를 제압하고 魯國의 정권을 장악하려했다.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직접 목도한 孔子가 심각한 亂世의 위기의식 속에서 仁과 禮에 입각한 도덕규범을 새로운 질서의 원리로 제시하여 儒家의 開祖가 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려고 현실정치에의 참여를 갈망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왕도구현의 이상을 『春秋』에서 밝힌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유가들이 『春秋』속에서 이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한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그러나 문제는 과연 『春秋』가 특정한 이념을 제시하기 위하여 시비 論斷을 하였느냐는 점이다. 실제 『春秋』를 선입견 없이 읽으면 그런 흔적을 거의 발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점에 대해서 儒家들은 독특한 『春秋』의 필법이론을 제시한다. 예컨대 원년의 경우 아무 기사도 없지만 [春王正月]이라고 기록한 것은 魯가 周왕조의 正曆을 사용한 것을 강조함으로써 尊王의 대의를 표시한 것이며 불의를 행한 자에게 爵名을 붙이지 않은 것은 그를 貶하기 위한 것이며 또 사소한 일상적인 사건을 구태여 기록하고 마땅히 기록해야할 것을 생략한 것은 각기 특정한 褒貶 論斷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며 심지어는 글자 하나 하나까지도 모두 대의를 천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春秋』는 구태여 직접적인 論斷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儒家들의 주장이다.2.....漢代 이래 『春秋』해석학은 「公羊傳」 「穀梁傳」 「左氏傳」의 『春秋三傳』으로 정리되어 왔다. 이들은 대체로 상기한 『春秋』관을 계승하였지만 그들이 구체적으로 주장한 孔子의 정신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穀梁傳」은 전국시대 穀梁赤의 학설로 알려지고 있으나 문자화되어 정리된 것은 漢初의 일이다. 그 특색은 현 왕조를 긍정하는 입장에서 특히 군신의 대의명분과 천자의 절대적인 신성성을 강조하고 인간행위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도 윤리적인 규범보다는 법률적인 규범을 중시하여 法家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는데 이것은 예를 강조하는 筍子學派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때문에 「穀梁傳」은 法術을 존중하였던 漢 宣帝時에 각광을 받아 博士官에 列入되었으며 唐宋시대에는 춘추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公羊傳」은 孔子의 [大義]와 함께 [微言]을 강조한 것이 커다란 특색이다. 「公羊傳」역시 전국시대 公羊高의 학설을 漢初에 문자로 정리한 것이나 公羊學은 漢初 董仲舒에 의해서 크게 발전되었으며 後漢 何休에 의해 완성되었다. 公羊學派에 의하면 孔子가 『春秋』를 저술한 것은 단순히 시비논단 때문이 아니라 장래 興起할 새 왕자를 위해 법제를 만들기 위한 것이며 그것이 바로 孔子의 [微言]이라는 주장이다. 이 전제 하에서 그들은 독특한 春秋哲學을 전개하였는데 그것은 天下大一統의 이상과 소위 [存三統] [張三世] [異內外]의 개념으로 집약된다.[存三統]이란 어느 왕조도 이전 두 왕조의 후예를 봉건 하여 그 제도를 유지 존속시킴으로써 3왕조가 형식상 병존해야한다는 이론인데 이 이론에 입각하여 공자의 3統은 宋(殷의 후예) 周(孔子시대의 現王朝)와 함께 뒤이어 흥기할 새로운 왕자를 포함한 것이며 『春秋』는 바로 이 왕자를 위해 저술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법제는 왕자의 고유한 권한이나 孔子는 왕자의 자격요건인 聖人으로서 법제를 제시하였으며 따라서 그는 현실적인 제왕이 아닌 왕자인 [素王]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왕조에 대한 기대와 法制의 제시는 孔子의 역사발전논리인 [張三世] [異內外]설을 이해하면 더욱 확실해진다는 것이다.즉 孔子는 각 시대에 따른 상이한 필법을 사용함으로써 춘추시대를 [所傳聞] [所聞] [所兄]의 3시대로 구분하였다는 것인데 이것은 역사가 [揆亂世]에서 [昇平世]를 거쳐 [太平世]로 발전하고 또 이러한 발전 단계에 상응하여 천하의 질서도 [內其國 外諸夏] [內諸夏 外夷狄]의 단계를 거쳐 모든 夷狄도 天下大一統의 태평질서에 참여한다는 孔子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며 孔子는 이 최종단계를 위한 법제를 『春秋』에서 제시하였다고 한다.이와 같은 公羊學의 『春秋』해석은 漢왕조가 성립하면서 孔子가 구체적으로 漢왕조를 위해 법제를 제시하였다는 주장으로까지 발전하여 통일제국 漢왕조의 이론적인 기초로 이용되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측면에서 『春秋』의 새로운 성격을 제시하였다. 漢代 공양학파가 음양오행사상과 유가사상을 결합시켜 災異사상을 발전시킨 것은 다 아는 사실이거니와 그들은 『春秋』의 災異기록을 특히 주목하고 그것을 褒貶의 이론과 결부시켜 『春秋』를 일종의 재이사상서로 이해하였으며 그 결과 『春秋』의 災異기록은 모두 특정한 사건과 연결되어 사건의 전조 또는 그 결과로 해석하였고 자연히 孔子도 재이사상가로 부각되었다. 이것은 결국 董仲舒와 같은 公羊學者도 예견하지 못한 지나친 전개였고 본래의 儒家사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일종의 타락이었다.
1. 문화란 무엇인가?문화라는 말은 워낙 넓은 영역에서 여러 뜻으로 쓰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문화의 여러 가지 뜻을 우선 하나씩 살펴보자.문화라는 말이 좁은 뜻을 가질 때에는 문학·예술과 관련된 활동이나 제도를 가리킨다. 조금 넓은 뜻으로는 문학 예술만이 아니라 근대에 이르러 뚜렷하게 모양을 갖춘 과학, 교육, 종교 등의 영역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오늘날 중요한 문화 영역인 일상 생활 부분은 여전히 빠뜨리는 셈이 된다.문화는 가장 넓은 뜻으로는 자연에 대립되는 인간활동과 그 산물 전체를 가리킨다. 죽 사람이 만든 것을 통틀어 문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람이 행하거나 만든 것이라고 해서 모두다 문화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문화를 넓은 의미로 이해 할 때는 사람이 본능적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행하거나 만든 것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자연과 대비해서 사람이 행하거나 만든 것 전체를 문화라고 할 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넓게 이해한다 보면, 집단 수용소도, 파괴도 문화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것은 문화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행하거나 만든 것이라는 서술적인 개념에 그치지 않고 평가적인 뜻까지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문화는 '야만'에 반대되는 말이 된다. 여기서는 '자연-문화'의 대립보다는 '인간성-비인간성'의 대립이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면서 가치판단의 문제가 생긴다.'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이러한 물음을 염두해 두면서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생각해 보자.종래의 문화론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관념론적 문화론 이고 다른 하나는 유물론적 문화론이다.관념론적 문화론이 문화를 개인의 차원에서, 그리고 정신적 차원에서 보는 반면에 유물론적 문화론은 문화가 생겨나고 발전하는 실제적인 토대가 무엇인지를 묻고, 그 대답의 열쇠를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노동에서 찾았다. 관념론적 문화론은 노동을 정신활동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았다. 노동은 강제, 희생으로 보았고 반면에 여가는 좋은 것이며 자유, 행복이라고 보았다. 유물론적 문화론도 과거의 노예노동, 농노 노동, 임노동은 모두 외부에서 강제된 소외된 노동이기 때문에 노동하지 않는 상태가 '자유'와 '행복'인 것이 현실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소외된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면 일하는 것이 기쁨과 즐거움이 되고 자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유물론적 문화론에서는, 노동이 소외에서 벗어나 자기 실현 활동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근본 문제로 설정된다. 그리고 이조건은 노동을 소외된 상태로 만드는 사회의 경제 구조를 개선함으로써 확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문화`의 뜻을 만족스럽게 한 가지로 정하기는 무척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면, 사람다운 삶을 누리기에 가치 있는 것을 실현하는 모든 형식과 활동 및 그 결과들을 동틀어 문화라고 부를 수 있겠다.2. 문화의 역사고대와 중세에는 신분적 종속이라는 사회 관계의 특징을 종교가 정당화해 줄 수 있고, 절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종교가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근대로 와서 자본주의가 성립하면서 신분제가 무너지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 될 수 있자, 인간 중심적이고 세속적인 문화로 변모하여 인간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예술이 문화의 중심이 되지만 초기에는 예술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초기 자본주의에는 사람사이의 관계가 상품교환관계로 변하면서 사람 사이에는 적나라한 이해관계와 차가운 금전거래를 제외한 어떤 유대도 남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들어와 시민계층이 문화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고 후반에는 낭만주의가 유행하게 된다. 20세기에는 대중문화가 문화의 중심이 되는데, 그 원인은 자본주의의 변화로 문화를 상업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중문화는 2차 대전이후에 더욱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변화해온 문화가 오늘날에는 허무주의 문화로 전락하고 있다.3. 대중문화와 인간의 삶대중문화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중심적인 문화형식이다. 대중문화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 대중매체의 확산은 문화 영역의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짐을 알 수있고 이는 정밀한 기술을 동원하는 자본의 힘이 강화됨을 의미한다. 대중문화의 첫번째 특징은 현대인의 삶을 심미적인 것으로 만든다. 과거 귀족이 누렸던 심미적 삶이 귀족문화의 상품화로 시민사회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이 것은 대중문화를 '예술'로 가득 차게했다. 소외된 노동 현실에서 현대인은 자신의 공허감을 보다 의미있는 것으로 채우길 바라고 이는 대중문화의 심미적 삶의 토대가 된다. 두번째 대중문화는 욕망을 왜곡시키고 유행을 창출한다. 욕망은 사회문화적인 것으로 무한하며 심미적 가치를 추구한다. 심미적 삶을 사는 개인은 공동체와의 진정한 결합을 회피하고 체험을 공유할 수있는 가짜공동체를 찾는다. 유행은 소비이데올로기와 욕망의 왜곡이 빚어낸 것으로 진보와 관련이 없고 불안정하지만 주기적이며 강제력을 지닌다. 세번째 대중문화는 일상성을 전면화하고 있다. 상품소비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상생활은 자본주의에 의해 관리, 프로그램되며 이로써 사회,정치혁명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일상의 반복성은 사회적 모순과 비극적 현실을 잊게하지만 동시에 불만과 박탈감을 주어 현대인으로 하여금 일상으로의 탈출을 꿈꾸게한다.4. 대중문화의 절정-상품미와 광고보기좋은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상품미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상품미라는 것은 이윤을 얻기위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는 상품들이 가지는 미적, 예술적 형식을 의미한다. 후기자본주의는 대량생산, 대량판매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윤을 남기기위해서 대량소비를 끊임없이 자극하지 않를 수 없다. 상품미는 바로 소비를 자극하는 기능을 하며, 광고는 상품미를 확대 재생산하는 역활을 한다.상품미가 대중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반론도 있지만 오늘날 사회를 덮고있는 상품미는 미적 체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유혹적인 상품을 만들어 판매를 촉진 하기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광고는 상품에 대한 정보와 평가이외에 세계와 인간, 자연과 사물에 대한 일정한 관점을 보여 준다. 이 관점은 한마디로 소비와 상품미를 추구하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세계관이다. 소비자도 광고 속에서 상품에 대한 정보를 얻고 욕망을 구체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광고는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대표 적인 사회제도로 자리잡게 된다.특히 요즘 광고는 상품과 서비스의 판매촉진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중의 의식과 가치관, 그리고 생활양식까지 변화시킨다. 그리하여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신세대는 광고의 세례를 받으면서 새로운 감각을 키워나와 기성의 소비계층과는 다른 정서구조를 갖게 되었다.5. 대중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대중 문화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인데, 대중 문화가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달해서 허 구적 욕망을 양산하고 이를 통해 대중을 수동적 존재로 만들어 올바른 인식을 가로막는다는 평가와 상품성과 표준화된 성격 때문에 대중들의 미의식을 표준화 시켜 대중의 자발적인 성숙을 막는다는 평가이다.대중 문화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각을 살펴보면은 대중 문화가 저질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들 수 있다. 이때 대중 문화는 '원자화된 익명의 다수 대중이 즐기는 질 낮은 문화'라고 정의된다. 이렇게 보면 사회의 문화 지형에서 주된 갈등은 대중 문화와 고급 문화의 갈등이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적인 갈등을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의 갈등으로 볼 경우, 공통의 이해 기반을 가진 지배 집단 내의 두 분파 사이의 갈등을 마치 사회 전체의 문화적 모순인 양 과장하게 되어, 실제적인 문화적 모순을 숨겨 버리는 허위 의식을 낳을 수 있다.그 다음의 시각으로는 대중 문화가 밖으로부터 이식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전통적인 민족 문화와 대비시키는 입장이다. 이는 '이식 문화론'이라 이름 붙일수 있다. 이식 문화론은 문화 제국주의론의 초보적인 단계라 할수 있다. 문화 제국주의론은 상품이나 유행 같은 문화 산물이 지배 국가로부터 종속국으로 전달됨으로써, 종속국에서 지배 국가의 문화적 가치와 이데올로기가 유지 강화되고, 또 이를 보장하는 형태의 수요와 소비가 창출된다는 것이다. 특히 문화 제국주으론은 이 과정에서 다국적 기업과 대중 메체라는 조직적·제도적 수단의 여할을 강조한다.마지막 관점은 대중 문화를 계급 지배와 연관하여 보려는 '계급 문화론'의 시각이다. 계급 문화론은 대중 문화를 지배 문화와 대항 문화의 갈등이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보려고 한다.계급 문화론의 대표적 이론인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문화 산업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문화는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 논리에 의해 제도적·조직적으로 생산되며, 그에 따라 미학적 기준은 퇴화될 수밖에 없으며, 문화는 대중의 의식을 자본주의의 체제에 통합시킴으로써 자본주의 지배 질서를 굳건하게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 그러나 문화 산업론은 파시즘의 현실을 배경으로 성립된 것이어서 자본주의의 문명 위기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지식인 위주의 시각에 의존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계급론에 대한 또 다른 이론은 그람시(Gramsci)와 윌리엄즈(Williams)등이 헤게모니 개념을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다. 헤게모니를 정의 해 보면 특정한 역사 시기에서 지배 계급이 경제·정치·문화 전 영역에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피지배 계급에 대한 직접적인 강압 보다는 문화적 수단을 통해 사회적·문화적 수단을 통해 사회적·문화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능력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배 계급이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지배 질서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중 문화를 통제하고 조작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요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문화 산물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 전체가 지배블록의 핵심 세력인 독점 자본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하는 현실에서는 헤게모니 개념이 대중 문화를 파악하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