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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한국사 시대구분론 평가B괜찮아요
    Ⅰ. 서언: 시대구분의 필요성역사학에 있어서 시대를 구분한다는 것은 역사의 발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시대구분을 외면하고서는 역사의 체계적 인식은 불가능하게 된다. 시대구분은 역사가 개인의 사관 여하에 다라 얼마든지 상이한 인식이 가능하나 거기에는 현재적 관점에서의 치열한 문제의식이 투영되어야 한다. 역사학 연구 활동의 최고 차원의 목적은 각 시대마다의 시대정신을 구하는 데 있다. 시대구분은 단순한 학술적 의미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현실적, 실천적 의미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시대란 단순한 시간적 연장의 개념으로서는 성립할 수 없으며, 그 동안에 독특한 문화와 사회가 지속하고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시대구분을 역사서술에 필요한 단순한 하나의 기술적 문제이며 역사서술의 편의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시대구분이 역사서술의 편의를 돕기 위한 기술적 문제라는 사고를 극복하여 역사의 법칙적 인식 과 관련을 갖게 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한국사에서 시대구분에 대한 가장 오래된 실례는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두 신라사를 3시기로 구분하고있으며, 이 시대구분은 다분히 정치사적 변화에 입각해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신라사 발전의 전체적 과정을 살펴볼 때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와 타당한 근거를 가진 것이다.Ⅱ. 한국사에서의 시대구분의 제 유형1. 왕조중심적 시대구분론과 기타 유형론종래 한국사의 시대구분은 주로 왕조중심의 사관에 의해 이루어졌다. 시대구분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때를 같이한 일제 관학자들의 한국사 서술에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서구에서 이미 활용되었던 3시기 구분법, 즉 고대, 중세, 근세와 같은 시대구분을 한국사에도 적용하였다. 林泰輔의 시대구분은 서구의 삼분법이 한국사에 적용된 최초의 예이지만 왕조별로 구분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게되었다. 이는 세계사와의 관련을 내포한 한국사 이해라는 본래 목적의 정당성과는 달리 큰 의미를 가질시대의 큰 경향, 문화적 특질, 사회 구조의 이질성 같은 것에 근거를 두어 각 시대의 고유한 역사상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의 시대구분은 고유의 시대 개념을 형성하는 그 시대에 독특한 사회 문화의 기본적 유형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노력이 결여된 채, 주로 왕조사관의 입장을 극복하지 못하였던 것이다.이와는 반대로 한국사에 내재하는 역사의 특성이나 혹은 지배자의 권력 구조 등에 초점을 맞추어 민족의 입장에서 균등하게 한국사의 발전과정을 고찰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 왔다.李仁榮은 민족의 성장과정을 기준으로 한 시대구분을 시도했고, 반대로 李基白은 지배세력의 변화를 기준으로 한 시대구분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사만의 테두리 안에서 시도된 시대구분론 이며, 한국사를 세계사적인 넓은 시야에서 인식하려는 안목은 보이지 않는다.2. 사회경제발전 단계론의 시대구분론서구의 3시대 구분론의 역사적 의미와 해석을 도입한 시대구분의 견해가 있었는데 그것은 주로 사회경제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이들이 한국사연구에 있어서 취한 기본적 자세는 유럽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사회발전단계설 에 대하여 긍정하고, 유럽사회에서 나타난 사회의 발전단계는 원칙적으로 한국사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사회발전단계설 에 입각하는 시대구분은 설령 그 세계사적인 보편성이 의심되는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한국사를 세계사적인 넓은 시야에서 인식하려고 하였다는 점과, 그리고 아시아적 정체성 이론 이라는 서양적 사고의 도식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에 있어서는 마땅히 그 학문적 의의가 인정되어도 좋다. 그러나 사회발전단계설 의 입장을 취하는 시대구분도 그 내용을 살펴보면 어느 시대에다 이들 각개의 사회단계가 대입되어져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와서는 이견이 속출하였다. 이러한 논의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우선 우리 역사에서의 노예제사회와 봉건제사회가 존재했었는가의 문제이다. 일반농민의 계급적 본질이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것이 하나의 문제이고, 다음으로 봉건제사회하는 기준의 차이에 따라서 시대구분의 결론이 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특히 근대를 자본주의 와 시민사회의 성립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이는 곧 서구의 시대구분이 세계사적 시대구분이라는 공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므로 유럽형의 역사 발전이 곧 세계사적 보편성이 주어진 합법칙적 역사 발전이라는 점이 이론적 차원에서 구명되어야 한다.결국 이런 여러 문제들은 한국사의 체계적 연구가 아직 충분치 못한 탓에 나타나게 된 혼란이며, 이는 각 시대의 기본적 사회구조에 대한 연구가 깊이 있게 개발됨으로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시대구분을 하고자 할 때는 한국사 고유의 여러 사실들이 종합되어지고 거기에서 도출된 특성들이 세계사와 연결이 되거나 대비되면서 한국사의 체계적인 전체 의미가 부각될 것을 기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많은 사람에게 공감이 가는 시대구분이 되기까지에는 여러 각도의 시대구분이 제시되고, 아울러 충분한 사실들이 객관적으로, 그리고 정확한 현재적 관점에 입각하여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Ⅲ. 사회경제발전 단계론에 입각한 시대구분론의 제 유형1. 白南雲의 시대구분론과 그에 대한 비판세계사적 발전 법칙이 한국사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된다는 것으로 식민 사학에 대한 당연한 반론을 폈다. 통일 신라 전까지 고대 노예사회로서 일반 농민이 있기는 하지만 노예노동이 질적, 양적으로 일반 농민의 노동을 상회하고있었고, 통일 신라 시대에 들어가면 노예와 일반 농민의 농노화가 진행되어 봉건제로의 이행이 준비되었다고 보았다. 이렇게 성립된 고려사회에서 국가는 최고의 지주로서 농노적 농민을 직접적으로 지배했으며 관료에 대해서는 수전제에 의하여 특권적·타율적인 대토지소유를 보장했다. 이 대토지소유는 무신정권기에는 자율적·군사적 탈점에 의한 대토지소유로 전환 되었고 토지 국유제의 역사적 파탄이 초래되었다.비판森谷克己는 세계사의 발전법칙은 일반적 추상적인 법칙이므로 이것을 구체적 역사발전 에 기계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고 삼국시대 이래 전제적 관료주의 국가 체여설을 주장했다.李淸源는 노예제사회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그 아시아적 특질을 강조하여 백 남운을 비판하는 입장과 해당 사회 성원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것은 일반농 민이라는 주장을 폈다.金洸鎭는 백남운이 제기한 고구려 국가의 형성 시기와 그의 사회 구성의 본질 규정에 대한 비판을 시도했다.2. 북한학계에서의 시대구분론과 사회성격에 관한 논쟁1) 노예제 사회론의 제 유형북한학계에서의 시대구분의 쟁점은 고대 노예제 사회가 있었는가, 아니면 원시 사회에 서 바로 봉건제 사회로 이행했는가에 관한 견해차이이다. 이 논쟁은 60년대 초에 결말을 맺어, 원시사회 → 노예제사회(고조선, 부여) → 봉건제사회(삼국∼조선)로 귀결되었다.林建相, 韓吉彦, 李應洙등이 노예제를 주장했다. 특히 李應洙의 견해에 대해서는 예속의 질과 착취의 정도에 따라서 노예인가 아닌가가 결정된다는 것은 직접 생산자와 생산수 단과의 결합관계가 捨象되고 마는 결과가 된다는 비판이 있다.金洸鎭, 金錫亨등이 봉건제론을 주장했는데 한국사에서는 발달된 노동노예제가 결여되 었다는 점에는 연구자들 간에 대체로 일치하며 또 노예로 인정될 수 있는 노예도 가내 적·가부장적 노예이었고, 양적으로도 소수였음이 이해되고 있다..2) 봉건제 사회의 구조와 토지 국유제론朴時亨, 金錫亨 이 두사람은 토지 국유제라는 원칙에 입각하면서도, 토지의 사적 소 유·점유를 인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봉건 사회의 구조를 설명했다.姜丙度, 金思憶, 金光淳, 許宗浩등의 토지 국유제론 주장에 대해서는 토지에 대한 국가 의 지배와 통제(조세 수탈 등)를 토지 소유권의 소산으로만 볼 수 있는가의 여부와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는 물질적 기반으로서 토지 국유제를 필수적인 것으로 하는가의 여부, 租稅와 지대의 일치 는 조선 봉건사회에 적용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관한 비판을 할 수있다.3. 한국 학계에서의 시대구분론1) 60년대 전반의 시대구분론趙璣濬 은 집단 지배와 사적 지배로 고대와 중세를 구분하여원시사회 → 아시아적 고대사회 (삼국, 통일신라) → 중세 . 12∼8) → 가부장적 가내노예제에 기초한 동방적 노예제 사회(A.D. 2∼3) → 俸祿 봉건제사회 (A.D. 2∼3세기 이후)權丙卓원시사회 → 아시아적 공동체 (1세기까지) → 아시아적 생산양식, 총체적 노예제사회 (2세 기 이후) → 봉건제사회 (11∼12세기 이후)2) 70년대의 시대구분론金哲埈 사회인류학적 방법을 도입. 고대 : 고조선∼나말 여초까지.중세 : 고려 성종대 이후.姜晉哲 원시사회 → 고대노예제사회 (삼국∼무신정권기) → 과도기 (∼고려말) →중세봉건 사회 (조선)李基白은 사회적 지배세력의 변천과정에 기준을 두었다.Ⅳ. 한국사 시대구분론에서의 쟁점1. 한국사의 중세한국사에 있어서 시대구분은 여러 학자에 의해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그러나 통설은 미비하다. 그 이유는 서구의 3분법이 한국사에는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예제 사회의 인정여부의 문제와 중세 서구의 쌍무적계약관계에 의한 봉건제가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사적 보편성을 한국사에서 찾고자 했던 학자들에 의해 한국사에서의 중세의 기점 문제가 다양하게 논의되었다.한국사의 시대구분을 논할 때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고려시대를 어떤시대로 볼것인가 하는 것이다. 고려시대는 중세봉건사회 라는 주장, 고대노예제사회 라는 주장, 무 신집권(1170)을 경계로 전기는 고대노예제사회, 후기는 중세봉건사회에 속한다는 주장이 있어 왔다. 이 중 지배적인 학설은 중세봉건사회설이다. 그러나 姜晉哲는 고려 전기사 회를 고대적 사회라고한다. 농민들의 토지소유에 사적 재산화가 진행되지 않았고 지배계 급이 지주적 성격을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시과체제가 무너지기 이전의 고려 전기사 회는 고대사회이었고, 전시과체제가 무너진 고려중엽 무신집권기부터 고려 말까지는 과 도기적 사회이었으며, 조선시대 이후가 비로소 중세봉건사회로 파악될 수 있다고 결론하 였다.사적 유물론에 입각한 시대구분을 한국사에 적용하는 것에 대하여 완전 회의하고 한국 사의 독자적인 시대구분을 모색해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한국사의 고유한 특수
    인문/어학| 2001.12.02| 5페이지| 1,000원| 조회(1,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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