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꼬르뷔제의 작품 변화르 꼬르뷔제는 스위스의 시계 산업도시에서 태어났으며 조각사로써 훈련을 받았다. 그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전반에 걸쳐 chalet식 건물의 장식과 마찬가지로 아르 누보의 영향을 받았고 그의 초기에는 잔느레(르 꼬르뷔제의 본명)의 자연에 대해서 세밀히 사고하고 관찰하고 순수한 기하학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 그는 대단히 내성적인 사람이었으며 니체를 읽고 '보다 높은 질서와 접촉하고 있는 자로서의 예술가야말로 세상을 구제하는 형태를 산출한다'는 메시아적 사고방식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쇼와지와 페레의 사무소에서 24세까지 일할 수 있었다.그는 페레에게서 철근콘크리트조 건축에 대해서 배웠고 쇼와지와 Viollet-le-duc에게서 나온 프랑스 합리주의 이론의 전통을 소개하여 주었다. 1914년 경 그는 Max Dubois의 도움을 받아 도미노 시스템을 창조하였다. 도미노의 골조는 후에 르꼬르뷔제의 도시계획에 있어서도 중심적인 수법이 되었다. 잔느레의 실용성과 이상주의는 1910년 독일의 피터 베렌스 밑에서 그 내용이 심화되었으며 그는 독일에서 대량생산을 용이하게 하고 또 한편에서는 사회에 유익한 표준적인 요소의 필요성을 믿게 된 것도 독일에서일 것이다. 그는 파구스 공장을 보고 유리벽의 비약적인 사용에 감명받았으며, 거기서 예술과 기계 사이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그는 여행을 하면서 모든 시대의 건물을 보고 스케치 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이며그는 판테온 신전을 매일 가서 스케치하고 그것을 기계와 비교하였다. 잔느레는 바로크의 외벽과 여러 가지 대형건물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품었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성을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그는 초창기 2년동안은 스위스에서 살았으며, Jula 지역주의 운동 창립을 위하여 일하고 있었다. 여기서 슈와브 저택을 설계의뢰받는다. 입면과 콘크리트의 취급에는 페레와 Tessenow의 영향이, 넓은 내부에는 라이트의 영향이 보여진다. 처마띠장의 대칭성과 비례에는 고전적 감각이 있으며, 처마 띠장에는 터키의 목조주거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그는 1917년 파리에 정착하였으며 오장팡을 만나 입체파 이후의 아방가르드들을 소개받았으며, 그는 잔느레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권고한다. 그는 이당시에 페레의 사무실에서 일하였으며, 혼자의 시간은 미술관을 드나들며, 새로운 철과 유리의 건축을 보며 지냈다. 오장팡과 순수파(Purist)를 칭하고, 장식적인 형태와 구상적인 단편을 결합하여 공간을 견고하고 다양한 층으로 취급한다는 큐비즘의 수법을 계승하고 있었지만, 수학적 질서와 정확성을 지향하고 브라크나 피카소의 색다르고 단편화된 세계를 비판하고 있었다. 그들은 비대칭 예술을 거부하고 평범한 소재를 택하였다는 점에서는 큐비즘을 계승하였다 하겠다. 화가로서의 활동은 그에게 형태를 연구하는 장을 주어 건축가 르 꼬르뷔제에게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 되었다. 그는 여러 가지 양식에 만족하지 않고 그 개인의 사상이나 단순한 기하학의 기초에 일치하면서 자기가 생활하는 기계화된 세계와 관련되고 있는 표현 어휘를 구했다. 그 이후 그는 순수하고 정확한 기하학적 형태가 기계시대에는 상응한다고 믿게 되었다.그는 오장팡과 '새로운 정신'을 창간하였으며, 여기서 발표한 그의 기사는 모아져서 '건축을 지향하여'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여기서 기능주의의 옹호에 대해서는 확실히 거리가 있으며, 조각적 형태에 시적가치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그는 피라미드, 판테온, 로마의 욕장등에서 근본이 되는 원초적 형태의 증거를 인정하였고, 그는 근대의 건축은 지속적인 가치가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조화가 공학적인 것, 배, 비행기, 공장등에서 존재한다고 느끼고 있다. 그는 기계 예술과 고전주의의 동일화를 사원과 자동차를 통하여 비교하였다. 자동차를 주택의 도전으로 사용하였고, 그는 그 결과로 시트로앵 저택을 설계하게 된다. 평지붕을 가진 하얀 박스, 공업생산에 의한 장방형의 창, 등은 포드가 자동차에 사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대량생산을 통하여 주택난을 해소하려는 자동차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는 '건축을 지향하여'에서 주택을 살기위한 기계로 정의하였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도미노 주택, 여행중 본 흰벽의 주거, 그가 견고성과 원리를 찬양한 해양정기선등으로부터 합성된 주택이다.대량생산주택에 대한 사상으로 르꼬르뷔제가 실천할 만한 사람을 찾아낸 것은 1925년의 일로 앙리 푸루제를 페삭에 종업원 주택을 세우도록 설득한 것이다. 고객들 중에는 파리 사교계출신이 많았으므로 그는 근대적 환격에 큰 변화를 가져올 야심을 단념하고, 파리 주변의 작은 토지에 그의 일반적인 원칙을 확실하게 명시하는 설계로 만족하여야 했다. 라로슈-잔느레 저택은 1923년 설계되었으며, 이 집은 라로슈와 잔느레의 처제를 위하여 지어졌다. 이 주택의 가장 주요한 볼륨은 잔느레가의 주거 및 라로슈의 사적영역을 포함한 가로의 긴 장방형과 아뜨리에를 포함하는 가는 기둥으로 지지해서 더 있는 곡면 요소이다. 라로슈 저택의 모든 공간은 독창적으로 연속해서 결부되어 있으며, 내부를 서서히 체험하도록 되어있다. 이와같은 수법을 '건축적 산책로'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