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한 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보인 열기와 열정은 대단했다. 시청 앞이나 광화문 사거리를 메운 붉은색의 물결은 정말 놀라웠다. 그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온몸에 태극무늬와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서는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기다리며 도시락을 싸오는 열의까지 보였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다들 ‘대한민국’을 외치며 자동차 크락션을 울려가며 거리로 뛰어나갔다. 모두들 피곤한 몸이지만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 나왔는지... 과연 이러한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이 축구가 좋아서, 월드컵에 적극 참여하기 위해 이러한 열의를 보였을까?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월드컵 개막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월드컵이 이르다는 둥, 우리나라의 경제 상태를 고려한다면 차라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더 많았고 사람들은 월드컵에 거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 우리가 월드컵시즌 때 갑자기 시청 앞이나 광화문으로 나간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우리는 소리 지를 구멍이 필요해서였을까? 아니 어쩌면 일탈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어쩌면 우리는 잭과 같이 불면증에 시달렸을지 모른다. 우리도 잭과 같이 언제나 같은 일상, 같은 일과를 반복해오며 살아간다. 잭은 이러한 일상 속에서 욕구 충족의 과정으로 소비를 택한다. 잭은 자신의 속으로 ‘가구의 노예’ 라 되뇌일 정도이다. 어떤 식기 세트가 어울릴 것이지, 어떤 가구 세트가 어울릴 것인지 고민하며 소비하는 것이다. 잭의 이런 소비성은 자신이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상기 시키는 듯하다. 집안에 물건들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자신의 서있을 공간은 점점 줄어들지만 그것으로 잭은 만족해한다. 상품이란 것을 필요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닌, 단지 자신의 ‘소비’ 란 욕구 충족에 의하여 그 욕구만을 만족시키기 위해 구입하는 것이다.지금의 우리,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도 잭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명품을 사기 위해 카드 빚을 지기도 하고 그 카드 빚에 의해서 어느새 나 자신은 신용 불량자명단에 올라가 있기도 한다. 과연 명품이 특별히 물건의 질이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에 사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람들은 그것 자체, 그 물건 자체를 사는 정도가 자신의 능력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능력이란 소비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화폐라는 것이 따라와야 한다. 화폐가 있어야 물건을 소비하고 그 소비한 만큼을 각자 개개인은 ‘착각의 잣대’로 자신이 소비한 물건 가격이 자신의 능력(?)이라 생각하고픈 것이다. 이러한 화폐를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더 받기 위해 우리는 시계 추 같은 일상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은 자신의 인생의 객체로 전락하고 자신의 인생 주체는 화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혼돈 속에서 ‘소비의 부산물’이라는 ‘존재의 이유’를 갖길 원하는 것이다. 어느 물건 하나를 사들였으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능력이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너무나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들 이렇게 살면서 잭과 같은 불면증에 시달린다. 잭은 이러한 때에 자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된다. ‘모임’... 단순한 모임이 아니다.정말 자신의 신체나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불치병 환자들의 모임에서 잭은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며 마음의 위안을 느낀다. 죽음 앞에서는 다들 남의 말을 잘 듣고 자기 주장만하지 않아 편하다 한다. 그러면서 잭은 점점 중독 되간다. 잭은 불면증이 점점 사라지고 불치병모임이란 불치병모임은 다 나가기 시작한다. 이것이 과연 불치병 환자들과의 교감을 위해서였을까? 그들을 위로하고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을 꺼라 생각되지만 어쩌면 일방적으로 잭만이 위안을 받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직장동료나 친구들과의 인간관계에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불치병 환자들의 모임에 나가서야 풀 수 있는 여건의 잭은 이 사회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인간상 같다.일회용 식품 일회용 친구들에 익숙하고 자신의 일에 쫓기다 보니 친구들을 만나거나 어떤 인간관계를 만들 그럴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몸담고 있는 직장이란 곳은 상명하달의 수직적이고 명령조의 건조한 말만 오고 간다. 친구들이나 동료를 만나도 다들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기 바쁘다. 내 자신의 하소연이나 푸념을 나눌 시간조차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다른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너무나 답답한 현실에서 무언가에 빠지고 그것을 행하면서 나도 모르게 중독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동의 반복은 어쩌면 부담스러운 짐이 더 느는 것은 아닐까? 그 무언가에 빠지면 그것을 반복하게 되고 그 무언가도 어느새 내 일과의 한 부분의 되는 순간 나는 또 하나의 짐이 느는 것일 것이다.우리나라에서는 불치병환자들이 자신의 병명을 숨기는데 급급하느라 잭이 잘 나가던 그런 불치병 환자들의 모임이 활성화 되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회에 맞게 인터넷에 빠져들고 인터넷을 자신의 돌파구로 많이 이용하는 듯 하다.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과 내 자신에 대해 거짓이든 진실이든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과 채팅을 하면서 나의 힘든 부분까지도 말하며 빠지는 것이다. 상대방은 사이버 세상 저 너머에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 주위에 우리를 이해할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사이버 세상 저 너머에 있는 사람은 단지 내 이야기를 잘 들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나면 잠시나마 마음은 시원해 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은 제거 되지 않은 채 존재 하고, 또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잭은 이러한 불치병 환자의 모임에 나가며 이러한 모임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잭은 그 사람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이 비추어져 보이는 것 같아 그 사람이 나오는 것을 의식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잭이 모임에 나갈 때 잭에게 죄의식 같은 감정이 생기게끔 했을지 모른다. 잭은 그 사람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또 다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사건과 맞물려 후에 잭은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던 가구들과 집을 화재로 모두 잃게 된다. 그러면서 테일러란 남자를 만나고 테일러는 모든 것을 다 잃어봐야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는 잭에게 집에 화재가 난 것은 인생의 전환점이라 생각 하라 한다. 정말 어찌 보면 달콤하고 타당성이 있는 듯 보인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 아닌, 잭이 가지지 못한 부분을 모두 가지고 있는 테일러가 그런 말을 했으니 말이다. 잭은 이 날부터 테일러와 같이 동거를 하고 또 다른 욕구 분출구를 찾아낸다. 밤만 되면 또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테일러와 잭은 밤마다 술을 마시고 싸웠다. 말싸움 정도가 아닌 치고 때리고 하는 피 튀기는.... 고통 속에서 느끼는 희열인가 아니면 인간의 저 너머의 내재되 있는 폭력의 희열인가하지만 둘은 더없이 만족해한다. 지금의 우리가 권투에 열광하고 프로 레슬링을 보며 소리 지르는 것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상대방이 흘리는 피에 열광하고 자신의 생채기 쓰림에의 고통에서 이제 자신이 ‘존재함’을 느끼는 것이다. 존재감이란 것이 어쩌면 상대적일 수밖에 없어서 일수도 있다. 나 혼자 덩그러니 있다면 내가 존재하는 것인지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느끼는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상대방과 싸워서 내가 멍이 들고 피투성이가 되고 상대방도 역시 그 처지가 되어 있을 때 상대방은 존재하고 나 또한 존재 한다 느끼는 것이다.그리고 잭과 테일러는 밤에 지방 흡입 시술소에서 사람의 지방을 훔쳐다가 그것으로 비누를 만들어 판다. 그 비누도 엄청나게 잘 팔린다. 만약 이 비누를 쓰는 사람 중에서 지방 흡입술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제거하기 위해 돈을 지불했던 지방을 또다시 형태만 바뀌었지 그 지방을 자신이 또 돈을 지불하고 사는 것이다.이러한 사람들을 보며 잭은 무슨 생각의 했을까? 나는 왠지 모르지만 그냥 화가 나는 듯 했다. 지금 이 사회에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아니 다른 형태로는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다. 내가 화가 난 이유에 대해 정말 많이 고심했다. 내 생각을 표현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이 사회에서도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 너무나 많고 이 사회에 사는 사람으로서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 더 화가 난 듯 하다. 아니 피부 적으로 너무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이 물질의 노예로 전락한 기분만 들어 너무나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