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관계형성Customer Customer Customer 소비자의 삶 속에 오랫동안 감성화된 존재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누군질 알아야 하고, 그들은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베이비붐세대, X세대, Y세대, 여성과 주요 소수민족 그룹, 시장 내에서의 호모와 레즈비언 인구이다. 이들에 초점을 맞추어, 21세기 변화하는 소비자에 대해 전망해 보고자 한다.1. 세대의 폭발■ 베이비붐 세대1946~1964사이에 태어나 미국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이들은 미국의 기성 체제에 도전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투쟁해온 세대이다. 80년대 들어 붐세대가회사 중역의 위채에 오르고, 미국 전체 수입의 55%를 차지하면서, 어느새 그들은 물질주의 정신과 아메리칸 드림을 재정의 성공과 부를 위해 싸우고 있다. 지금 이들은 과거에 부닥쳤던 장애물과는 판이한 "40대이후의 삶" 이라는 새로운 장애물 앞에 서 있다. 그러나 이들 붐세대는 넘치는 활력과 놀라운 수완을 발휘하며 새롭게 직변한 변화해 대처해나가고 있다.
1. 개요▶ 까사미아 기업분석1982.12.05 까사미아 설립1984.04 형지공예 설립1990.11 제1 물류센타 준공(경기도 광주군 오포면)1991.09 코튼 앤 코튼 상사 설립(침구류 제조 판매)1993.07 초이스 상사 설립(무역업)1996.03 제2물류센타 확장 준공(경기도 광주군 오포읍)1997.02 까사미아 키즈 브랜드 런칭1998.02 까사미아 사옥 이전(분당) 까사미아 분당점 오픈2000.03 ERP(전사적 자원관리) 가동2001. 현재 직영점 10개점,백화점 4개점,대리점 70여개점 운영중▶까사미아 CEO 이현구 사장매일경제신문 2000년 6월 1일자2000개 제품 모두 외주제작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전사적 자원관리에 승부를 건다. 이현구 까사미아 사장의 하루 일과는 `구매 생산 출고, 그리고 개발' 에서 시작해 역시 이들 업무의 체크로 끝난다. 그는 회사 각 부문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가는지 살펴보느라 하루종일 긴장을 풀지 못한다. 이런 생활을 10여 년 간 해오면서 이제 그는 가히 전사적 자원관리 에 있어서는 어느 경영자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경지에 올랐 다. 그의 이런 경영스타일은 가구와 소품 침장류 등 종합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까사미 아가 2000여 품목을 취급하면서 터럭 만큼의 빈틈을 허용 해서는 안되는 사업특성에서 비롯됐다.▶ 까사미아 어떤 회사인가가구업체로 출발해 침구류에서 소품까지 취급하는 종합인테리어 회사다.가구업체 가운데 가 장 먼저 종합인테리어사업에 진출했다. 까사미아는 이탈리아어로 `나의 집'이라는 뜻으로 `라이프 스타일 스토어' 라는 컨셉을 정립, 집에 관한 모든 것을 취급하고 있다.가장 큰 특징은 현재 취급하는 2000여 품목을 모두 외주조달하고 있 다는 점이다.이에 따라 물류와 유통이 매트릭스처럼 복잡하면서도 매우 과학적으로 짜여 있다.현금결제를 하기 때문에 대리점이나 외주업 체에게서 강한 신용을 얻고 있다.서울의 압구정점 상계점 대치점 등을 비롯해 전국에 10군데의 직영 점을 갖고 있으며 이들 매장은 500 100억원으로 잡고 있다.내년에 코스닥 등록을 검토 중이다.▶ 2000년대 가구시장분석○ 2000년 시장분석2000년 가구시장의 규모는 대략 3조 7,000억원 선이었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가정용 가 구는 1조 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의 성장세를 보였다. 사무용 가구는 20% 성장한 1 조억원, 주방용 가구는 10% 성장한 1조원, 침대는 25% 성장한 4,000억원에 달했다. 가정 용 가구와 사무용 가구는 경기에 따라 반비례 현상을 보이며 부엌가구는 경기가 침체되 었다 하더라도 특판과 4-5년의 교체주기가 있어 신장할 수 있었다.작년의 수출과 수입규모를 추정해 보면, 3,000억원의 생산액 가운데 수입이 1억 5,000만 달러, 수출은 1억 8,000만 달러로 99년에 비해 수입은 3,000만 달러가 증가했고, 수출은 2,500만 달러가 감소했다. 2000년 가구시장은 상반기에 소폭의 증가세를 보이기도 하였으 나,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부동산 경기하락, 아파트 특수부진으로 인해 하락 추세이다. 이 같은 상황은 올해에도 이어질 전망이어서 건축경기에 대한 조사를 통한 자기 회사만의 특성화 경영이 필요하다.사무용 가구시장2000년은 초반 상승경기와 함께 기분 좋은 출발을 보였다.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 는 사무용 가구시장은 대부분의 메이저 업체가 100% 이상의 매출 신장을 경험했으며 중 소업체들도 차이는 있으나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일부에서는‘제품이 없어서 못 판 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우리나라 가구산업은 2001년도에도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IMF 이후 크 게 위축된 내수시장은 아직도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주택건설 경기도 침체 가 계속되고 있다.특히 우리나라 가구산업의 구조는 수출 중심으로 되어있는 대만과는 달리 내수 중심으로 되어있어 동업자간 판매경쟁이 치열하고 디자인 모방현상이 일반화되어 있어 채산성이 악화되는 등 경영 기반이 취약한 상황이다.또한 우리나라는 목재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구제작용 합판 등 주요 원자상이 근절되도록 대 책을 수립하여 건전한 유통질서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그동안 내수시장을 주도해 왔던 대기업의 상당수가 이미 구조조정을 통하여 중소기업형 으로 전환하였고, 대다수 중소기업들도 생산체제의 구조적 개선을 통하여 경쟁력을 높이 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2001년도에는 업계가 공히 이같은 자구노력을 경주하여 경 영기반을 확립하므로서 경제환경이 좋아질 때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2001년도 전체 가구시장 규모는 (표1)과 같이 약 3조2,0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되 고 있으며, 주택건설 경기가 호전되지 않는한, 2000년도 수준을 넘지 못할 전망이며, 특 히 수입가구의 시장잠식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부문별로는 가정용 가구시장의 경우 경제불안을 수반한 가구류 소비심리가 위축되어 약 1조3,0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사무용가구 시장의 경우는 벤처기업의 증가 및 공공부문에서 사무환경개선을 위한 수요가 다소 증가될 것으로 보아 2000년도 보다 약 10% 증가한 8,5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엌용가구 시장의 경우는 주택건설 경기에 따라 명암이 다르겠으나 2000년도 수준인 약 7,000억원 선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침대시장은 약 3,500억원 선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가구에 대한 수요는 IMF 이후 급격히 감소한 반면, 공급과 잉 현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나라 가구산업은 경영전반에 걸쳐 구조적 개선없이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우리나라 가구산업은 현재 생산, 디자인, 유통부문 모두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특히 유통부문에서는 음성 거래자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성실 납세자들이 상대적으로 경 쟁기반이 약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벤트 회사 또는 백화점 등이 자체적으로 가구류 할인판매 행사를 무질서하게 개최하므로 유통질서가 문란해지고 또한 품질저하 등 소비 자피해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따라서 2001년도에는 우리 가구업계가 새롭게 발전하기 위하여는 업계 스스로 그동 소비 빠른 증가●저소득층 : 실업과 실질소득 감소의 여파 → 소비 상대적으로 더딘 움직임●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이 엷어짐소비 고급화 현상●고소득층의 소비 주도 → 소비의 고급화 추세●대형자동차, 대형 가전제품, 해외여행 등의 상승세●외식비, 교양오락비, 교통통신비 등의 선택적 지출의 비중이 크게 증가수입 소비재 비중 증가●외제차, 골프용구, 모피, 화장품 등 일부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 증가세합리적 소비 정착●계획구매, 비교(할인)구매, 쿠폰문화 등 IMF식 합리적 소비행태가 일반화내구재 소비한계●올해의 내구재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전체 소비를 주도)← IMF이후 미루었던 내구재의 대기수요(결혼 등)가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보였던 현상, 2000년 이후에는 이러한 현상이 둔화될 전망정보관련 소비 확대●이동전화 가입자수 2000만명 시대(전국민의 2인에 1명 꼴로 보유)●가계지출 중 통신비의 비중 증가●PC, 인터넷 수요 급증신용카드 지출확대●카드사용액에 대한 조세감면 혜택 + 신용카드 미가맹점에 대한 제재 등 정부의신용카드확대 정책 신용카드 지출의 증가세크레아시옹과 전글의 대담에서 발췌◆ 임미나 국민대 건축학과와 프랑스 파리 Ecole MJM에서 공부했다. 은호디자인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현재 크레아시옹 대표로 있다.◆ 김숙영 숙명여대 산업공예과와 프랑스 파리 Ecole MJM에서 공부했다. (주)팬마트 디자인실과 (주)디자인하 우스에 근무했으며, 현재 크레아시옹 대표로 있다.정글: 국내 홈 인테리어 시장 현황과 전망을 간략하게 정리한다면?임미나 : 90년대 초까지만해도 인테리어는 레스토랑이나 룸싸롱, 호텔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은 주택 인테리어가 상당히 많아졌다. 호텔같은 욕실을 이젠 내 집에서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집은 '즐기는 공간'으로. 라이프스타일이 변화되고 있다.김숙영 : 예전엔 인테리어 디자이너 가 알아서 해달라는 식이었는데, 최근에는 샘플까지 가지고 와서 제시하는 '확실한 주문형'이 많아졌다.정글 : 우리나라 인테리어 시장의 문제라면?스타일의 가구로 돌변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대로 따라가기 급급한 이런 경향은, 결국 2~3년 후 유행이 지나면, 가구나 모든 것을 또다시 교체해야 하는 악습을 낳는 것 같다.임미나 : 인테리어 디자인에 있어 중요한 것은 스타일보다 구조라 생각한다. 먼저 인간을 생각하는 인테리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무 외형적인 것만 생각하고 멋만 내는 인테리어 디자인은, 살기 편한 인테리어에 역행한다.▷국내 유통업체의 해외진출---신세계 상해점 오픈.업계동향업계에 따르면 종합인테리어사업이 유망 사업으로 떠오르면서 대기업은물론 벤처기업들까지 이 사업에 진출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종합 인테리어 사업은 인테리어의 상담과 설계에서부터 인테리어 상품판매와 시공, 사후 관리까지 종합적으로 서비스하는(One-stop service)사업이다.LG 화학 계열 LG데코빌은 최근 80개 대리점을 확보해 고급 아파트와 일반 주택에 대한 인테리어 사업을 중점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지난 12월말 인테리어 포털사이트인, 인테리어엘지닷컴(www.interiorLG.com)을 개설해 온라인을 통한 사업영역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LG는 이달말부터 주택은행과 제휴를 맺고 인테리어를 바꾸려는 고객들에게 2000만원까지 ’무보증 대출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LG는 올해는 200여개의 대리점 개설과 2000억원의 매출 달성을 목표로잡고 있다.부엌가구 전문업체 한샘(www.hanssem.co.kr)도 올해를 종합 인테리어 업체로 변신하는 원년으로 삼고 주방과 거실을 중심으로 적용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한샘은 인테리어 유통사업도 적극 확대할 계획이며 올해 이분야 매출 목표를 1000억원으로 설정했다.중견 인테리어 유통업체인 까사미아(www.casamia.co.kr)도 지난 6일 인천 구월동에 600평 규모의 인테리어 직영점을 개설하고 각종 인테리어상품판매와 시공을 포함하는 종합 인테리어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최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종합 인테리어 업체들도 영업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새집닷등
THE CLASH OF CIVILIZATIONSSamuel.P.HuntingtonSamuel.P.Huntington 그는 이 글 속 에서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지금 민족이 중요한 행위 인자가 될 것이며,타협의 여지가 있었던 이데올로기와는 달리 문명은 해결하기 힘든,복잡한 양상의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특히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문명에서 찾게 된 이 시점에서문명간의 충돌은 불가피한 사실로 보고 있습니다.▶ Samuel.P.Huntington새뮤얼 헌팅턴 (Samuel P. Huntington)정치학자. 미국 하버드대 알버트 웨더헤드 석좌 교수이자, 존 올린 전략문제연구소의 소장이다. 동서 냉전 종식 이후 달라진 세계 정치의 성격을 규명하려는 시도로 '문명 충돌론'을 제기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군사정치학, 비교정치학 분야에서 왕성한 학문적 활동을 벌인 그는 , ,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그의 활동은 현실 정치 참여로 이어져, 월남전에서 '전략촌' 정책을 수립하고, 카터 행정부에서 외교안보 보좌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시사 전문지 '포린 팔러시 Foreign Policy'를 창립하여 공동 편집인으로 활동하였으며 미국 정치학회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Media review헌팅턴은 96년 문제의 논문 `문명의 충돌`에서 냉전의 종언 과 함께 국제정치의 가장 심각한 분쟁은 문명들간의 충돌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대립하던 냉전은 두 이념 모두 유럽에서 발생한 이데올로기이고 또 유럽문명권 국가인 미국과 소련에 의해 주도된 것인 만큼 유럽문명내의 갈등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데 불과하다.... - 강정인(서강대교수, 정치학)경향신문 :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이자 존 올린 전략문제연구소장으로 재직중인 헌팅턴이93년시사잡지「포린 어페어」지에 기고한 「문명의 충돌」을 개작한 책.서구문명과 비서구문명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세계 정치구도를 조망한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 세계 평화에 가장 큰 위협요소』라고 주장한다.그는 또 『문명화합에 바탕을 이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생산의 새 지평을 열고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들어낸다. 경제적 근대화는 하나의 일관된 과정이다. 모든 사회는 문화가 각기 다르다 해도 경제적 근대화의 기본 법칙을 따른다. 그리고 시장은 가장 효율적인 경제발전의 추진제 역할을 한다.역사를 움직이는 두 번째 힘은 헤겔이 얘기한 ‘인정(認定) 투쟁’(struggle for recognition)이다. 인간은 물질적 안락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엄성을 인정받고자 한다. 정치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인정에 대한 욕구가 깔려 있다. 각 민족의 종교에서부터 집단적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인정욕구의 대상은 다양하다.그러나 “모든 인간은 도덕적 행위자로서 동등한 존엄성을 갖는다”는 보편적 인식이야말로 가장 합리적인 형태의 인정이다. 이는 독일의 이상주의적 전통에서 다듬어진 것이다. 근대 자유민주주의는 이러한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정치제도들의 집합체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는 오늘날 미국의 권리장전이나 세계인권선언 그리고 대다수 민주국가의 기본법에 깃들여 있는 것을 가리킨다.논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 공공정책의 영역으로 들어가 보자. 미국 외교정책의 밑바탕에는 소위‘민주주의 연역법(democratic syllogism)’을 구성하는 세 가지 명제가 깔려 있다.▲첫째,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서로 싸우지 않으며 기존의 민주국가들은 이른바 민주적 ‘평화지대 (Zone of Peace)’를 확대함으로써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명제다.민주주의와 평화의 상관관계 문제는 지난 수년간 열띤 논쟁거리였다.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 전제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우선 이른바 민주주의적 평화의 진정한 제도적 기반이 되는 것은 민주주의라기보다는 자유주의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정도와 평화는 단지 상관관계가 있을 뿐이지 서로 철석같이 맺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상관관계는 구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군비감축 사례에서도 잘 드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기술의 혁명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오늘날 어떤 나라도 세계의 미디어와 정보의 흐름에서 자신을 차단할 수가 없다.아시아 및 신흥시장의 경기 사이클이 실제로 바닥을 친 것이라면 나의 민주주의 연역법은 타당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 태국과 한국은 IMF의 충고를 따르며 상당히 회복해 가고 있다. 이자율은 위기 이전 수준보다 떨어졌고 재정수지는 흑자로 돌아섰다. 태국의 경우 새로운 민주헌법이 제정됐다. 한국의 재벌, 일본의 종신고용, 동남아의 족벌사업체제 등 아시아적 경제관행은 심각하게 재검토돼야 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다음 세기에까지 잔존하지 못하고 서구와 같은 보다 투명한 경제제도로 대체될 것이다.미국과 IMF의 정책적 오류내가 세계화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현재의 세계 정치·경제 질서가 모두 훌륭하다고 단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재까지 진행돼 온 상황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일들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는 ‘역사의 종언’에 대해 비판하면서 민주주의와 시장으로 향한 진보를 예언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이 불가피하다고 믿게 함으로써 자기만족에 빠지도록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다.아시아와 러시아에 경제위기가 터졌을 때 일차적인 비난대상이 된 것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정책적 과오를 거듭해 온 그 나라 정부였다. 그러나 미국 및 미국이 거의 좌지우지하고 있는 국제금융기구들 역시 비난받아 마땅한 공범이다1989년 이후 워싱턴의 정책입안자들이 펴온 세계경제정책은 지나치게 소박하고 오도된 것이었다. 그들은 개도국들에 시장자유화 및 경제개혁을 주문하면서 정치체제 및 사회·문화적 요인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아울러 경제구조의 세계화에 따른 제도적 장치의 마련에도 미흡했다. 거센 금융시장 개방요구에 따라 한국과 태국은 90년대 초 국제 투기자본에 대한 적절한 규제장치도 만들어 놓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을 자유화했다가 금융위기란 철퇴를 맞았다.90년대 초 워시대를 지배하는 원칙으로 볼 때, 과학적 연구나 기술의 발전을 정치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정받게 될 것이다. 설사 우리가 원한다고 해도 실제로 제한을 가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정보기술의 이용에는 일부 제한이 필요할 수도 있다. 예컨대 인터넷을 통해 어린이 포르노그래피나 사제폭탄 제조기술을 보급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이를 막으려 해도 실제로 막기가 거의 불가능하다.정보기술의 분산적 성격 그리고 국경이 따로 없는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세계화의 흐름을 가속시킨다. 또 어느 한 국가 단위에서 정보기술의 사용을 통제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다. 싱가포르와 중국은 인터넷을 통한 반정부운동을 통제하려 해왔지만 역부족이다. 자국 내의 웹사이트에 대해 프랑스어 사용을 강제하려는 프랑스의 시도는 별 효과도 못보고 비웃음만 사고 있을 뿐이다. 현대사회에서 정보 기술의 사용을 통제하려면 지구적인 차원의 통치질서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존재하게 될 것 같지 않다.생명공학의 이용을 통제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공학이 가져다주는 이점이 너무 크고 명백하기 때문에 도덕적인 문제는 옆으로 제쳐놓게 된다. 리탈린과 프로작의 예는 이런 면에서 시사적이다.사회적 행동을 통제하는 중요한 혁명이 지난 10여년간 요란한 팡파르도 심각한 논쟁도 없이 진행돼 왔다. 이 혁명은 오로지 제약회사들의 이윤추구 차원에서 추진돼온 것이다.세계화로 인해 각 주권국가들은 생명공학의 이용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게 됐다. 예컨대 미 의회가 인간복제를 금지할 경우 원하는 부부는 케이맨군도나 멕시코로 가서 자신들의 복제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국가간의 경쟁은 유전자 조작에 대한 메스꺼움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만일 어느 한 나라가 생명공학 기술 이용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유전적으로 우수한 개인들을 양산해낸다면 다른 나라들도 이를 따라잡으려 할 것이다. 자유주의적 경향 그리고 세계통치체제 대한 헌팅톤의 강조는 문명의 충돌이라는 비관적 전망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헌팅톤은 차이에 기초한, 그리고 차이를 인정하는 공존을 설파하기 위해서 문명권을 분할한 것이 아니라, 이 분할을 통해 문명간의 갈등과 충돌의 불가피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대규모의 문명 전쟁을 사전에 방지하려면 핵심국들이 다른 문명 내부의 분쟁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충고한다. 요컨대 문명간의 경계를 명확히 그어 다른 문명과 만나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면적을 최소화하는 정치만이 문명의 충돌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세계의 암흑시대라는 전대 미문의 현상이 인류를 집어삼킬지 모른다"고 헌팅턴은 경고하며, 확산일로에 있는 대량살상무기 때문에 온 지구가 핵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끔찍한 시나리오 역시 제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The Nature of Civilization1부: 문명들의 세계 `이데올로기 충돌`에서 `문명 충돌` 로세계 정치는 문화적 특성에 따라 재구성되고 문명 공동체가 냉전 시대의 낡은 블록들을 대체해가고 문명간의 단층선 지대가 세계 정치의 갈등 무대로 부상한다. 헌팅턴은 1부에서 세계를 중화권, 일본권, 힌두권, 이슬람권, 크리스트교권, 라틴아메리카권, 아프리카권의 7개 문명 권역으로나누고 각 문명권은 핵심국을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계속한다는 문명 패러다임을 전개한다.문명이란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가장 광범위하며 최상위의 결집체이다. 또한 그 속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강렬한 정체성을 느끼는 가장 포괄적인 수준의 공동체이다.문명은 방대한 인구를 거느릴 수도 있으며, 아주 적은 인구를 가질 수도 있다. 문명은 하나의 국가일수도 있고, 여러 국민국가를 포함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명은 그 구분이 모호할 지라도 의미있는 실재이며, 발흥, 쇠멸, 융합, 분열을 거듭하는 역동적인 실재이다.문명의 정의역사속에서 문명은 사람들에게 가장 폭 넓은 자기 동일성의 틀을 제공해 왔다.1 단일(singular)문명과 복수(plura 있다.
南澗精舍우암 송시열 선생이 숙종 9년(1638)에 지은 강학당으로 유림과 제자들을 모아 성리학을 강론하던 곳이다.남간이라 함은 주자의 시구`운곡남간`에서 따온 것으로 `볕바른 곳에 졸졸 흘러가는 개울`이라는뜻을 가지고 있다.운래 남간정사는 연못에 집 한 채 뿐이었지만 지금은 동구 소제동에 있던 송시열의 별당인 기국정도 옮겨다 놓았다.남간정사는 정면 4칸,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가운데 네 칸이 대청인데 그 아래로 물길을 낸 매우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동쪽과 서쪽의 방은 축대위에 걸쳐져 있고 대청은 다리를 걸친 듯 공중에 떠있으며 특이하게도 앞이 아닌 뒤로 출입하게 되어있다.기국정 건물은 효종 5년(1645)에 방죽을 쌓고 그 위에 지은 건물로 주변으로 구기자와 국화가 무성히 피어난다 하여 `기국정`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정면 3칸,측면 2칸으로 된 건물로 연못을 메우면서 1926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다 놓았다.남간정사의 연못은 정사 뒷편의 샘물이 흘러 남간정사 대청아래로 흐르고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남간정사와 기국정사이를 흘러 못으로 흘러 들어간다.가장자리로는 바윗돌을 그대로 드러내어 놓고 가운데에는 동그란 섬을 만들어 퍽이나 아담하고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한국의 건축관자연 경관을 거스르지 않고 경관 속에 인간의 감성을 용해시키고 있다.자연스런 계곡, 생긴 그 대로의 경관, 나무 한 그루도 해치지 않고 경관 속에비집고 들어가 집을 세우는 것이 우리의 건축관이다.( 경북예천의 초간정사 '굽이쳐 돌아가는 강가 바위 위에 자연스럽게 건물을 올려 놓음으로써 경관 속에 건축이 녹아들게 된다.소쇄원 광풍각 '들어열개'로 삼면을 만들고 이 문을 들어 열면 벽하나만 남틔다. 내부공간이 외부공간으 로 동화된다.대전 송용억 가옥 사랑대청 '들어열개'를 올려 놓고 마루에 않아 있으면 자연경관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 다.)자연에 도전하려는 개념이 서양의 자연관이라면 동양의 자연관은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두 동일한 존재로 생각하는 개념이다. 말하자면 자연에서 인간만도 겨울을 느끼고, 여름정원에 들어가면, 겨울에 보아도 여름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자연을 인위적으로 가장 근접하게 만드는 개념이 중국의 건축관이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은 복잡한 자연현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려는 특징이 있다. 연못의 섬은 수석을 몇 개를 놓음으로서 대신하고, 연못의 물은 자갈을 깔아 파도문양을 그어 놓는다. 서로 색갈이 다른 자갈을 문양에 따라 깔기도 한다. 이 자갈은 바다를 상징하기도 한다. 나무는 극히 성장을 억제하여 수석에 심어둔다. 배치하는 방법과 색갈, 방향과 종류에 따라 음과 양을 상징하고, 오행을 표현하고 있다. 누가 보아도 한눈에 인위적으로 만든 것 임을 알 수 있다. 자연현상을 함축된 기호로 표현하려는 생각이 일본의 건축관이다. 우리의 생각은 어떤가 자연 경관을 거스르지 않고 경관속에 인간의 심성을 용해시키고 있다. 자연스런 계곡, 생긴 그대로의 경관, 나무 한그루도 해치지않고 경관속에 비집고 들어가 집은 세우는 것이 우리의 건축관이다. 지극히 조그만 손길이나 바위에 글 몇자 새겨넣는 것으로 인간의 심성이 경관속에 녹아들게한다. '들어열개'라는 창호가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온 창호이다. 고려때 만든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수덕사 대웅전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것을 들어열음으로써 외부의 자연과 건축 내부공간이 하나로 동화된다. 내부공간에 앉아있지만 결코 내부공간이 아닌 자연속에 앉아 있게 된다. 말하자면 인공공간은 곧 보다큰 하나의 공간으로 확대되어 외부의 자연공간과 일체가 되어 곧 자연인으로 동화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와같이 집은 자연처럼, 자연은 집처럼 여겼던 것이다. 마치 '자연속에 집'이 있고 '집속에 자연'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한다. 우리가 집을 이야기 할 때 우선 집의 모양과 집의 곳곳에 담겨진 의미를 새겨볼 줄 알아야 한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형태나 구조를 이해하는 것 만으로 우리의 건축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이해방법은니라 많은 중국의 고전에 정사를 만들어 기거하거나, 강학을 했다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이같이 중국에서 정사는 학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학사(學舍), 서재(書齋), 사숙(私塾)을 의미하는 곳이었다.그 후 중국의 많은 유학자들이 개인적으로 정사를 세워 생도를 가르쳤고, 남송때의 대학자 주자는 일생에 무이(武夷)정사를 비롯하여 세번의 정사를 세워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한다.우리나라에서 정사경영은 중국 유학의 영향을 받아 주로 사대부들이 개인적으로 세운 사제(私第), 서재(書齋) 등에 기인하고 있다.사대부나 선비들의 사재나 서재를 흔히 별업(別業), 별서(別墅), 별장(別莊), 별당(別堂), 정사(精舍), 암(庵), 방장(方丈), 려(廬)라고 부르는데, 어떨때는 정(亭), 당(堂), 루(樓)라고도 한다.조선시대의 성리학은 크게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로 나뉘게 되는데 이는 우연히도 따르는 학맥이 지역에 따라 크게 두 지역으로 구분되는데서 부르게 되었다. 이들 각 학파의 유학자들은 정사건립에 있어서도 선학(先學)의 예를 따르고 있다.영남학파의 거두 퇴계 이황은 회재 이언적의 옥산정사(玉山精舍)를 이어받아 롱운정사(瓏雲精舍)를 건립하였고 정구(鄭逑), 유성룡도 스승 퇴계의 예를 따라 무흘(武屹)정사와 원지(遠志)정사를 건립하였다.기호학맥의 정사건립은 율곡의 석담(石潭)정사와 은병(隱屛)정사로 부터 비롯되어 그의제자 사계 김장생을 거쳐 우암의 남간정사로, 이어서 김수증의 곡운(谷雲)정사로 이어졌다.남간정사노론의 거두로써 당대 최고의 정치가이며 성리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대전의 소제동에 거주하면서 후학을 가르치는 서당을 건립한 것이 남간정사(南澗精舍)이다. 이 명칭은 주부자(朱夫子)의 '운곡남간(雲谷南澗)'에서 유래하였고 주자를 사모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조선 숙종 8년(1683)에 세워졌고, 정조때 한 차례의 중건과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가장 최근에는 1976년에 수리되었다.남간정사(南澗精舍)의 조경은 계족산 줄기가 남으로 뻗으면서 응봉산으로 솟았다가 다시 이어지면서 고흐르는 암반 위 양편에 축대를 쌓아 마루밑은 넓게 패여있다. 간수가 흘러 나오는 수로 위에 8각 초석을 3자 높이로 세우고, 그 위에 기둥을 얹어놓으니 자연히 대청마루가 높이 뜨게 되어 삼복더위에도 마루밑을 흘러내리는 간수와 연못을 스쳐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가 달아나고 만다.옛 사람들의 자연을 즐기는 멋을 가히 집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 기가막힌 만남이다. 간수가 흘러나오는 수로 위에 8각 초석을 약 3자 높이로 세우고, 그 위에 기둥을 얹었다. 구릉지에 입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단은 자연적으로 생긴 지반 위에 돌을 깔아 다져만든 자연기단이다.대청마루를 제외하고 다른 부분은 모두 토단(土壇)위에 초석을 얹어 놓았다. 주초석은 자연석과 8각으로 가공한 초석을 여기저기에 혼용하였고, 모서리 추녀 끝에는 활주를 세웠다.이 건물의 출입은 정면이 아니라 뒤로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뒤로 출입하는 건물은 그리 흔치 않다.건물의 구조를 보면, 연못에 면한 부분은 팔각 주초석을 사용하고 물이 흐르는 대청 밑부분은 팔각 장초석을 사용하였으며, 이들 주초석 위에는 원주를 세우고 그 기둥머리는 초익공 계통의 공포로 꾸며져 있다. 기둥위에 홈을 파서 창방과 대들보를 함께 끼워 맞추었다.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이며 대청은 연등천정으로, 온돌방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였다. 가구(架構)방식은 전후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종보를 받치고 종도리는 제형대공으로 지지된다. 처마가 길게 내어지는 경우 그 처짐을 보완하기 위해 세운 기둥을 활주라고 부르는데, 남간정사의 네 모서리에 모두 활주가 세워졌다. 이 활주도 원기둥으로 하고 굵기는 6∼7치 정도이다. 활주에 받쳐둔 초석은 네개 모두가 서로 다른 모양이다. 활주의 단면은 원형이며 활주를 받친 초석은 네 개 모두가 서로 다른 모양이어서 아마도 중수하는 과정에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대청과 우측 누마루의 창호는 모두 4분합 띠살 들어 열개문이고 온돌방으로 통하는 문은 팔각 정자살의 불발기 들어 열개문이다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사당과 제기고의 바닥은 마루를 깔고, 천장을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천정이며, 정면 1칸은 툇마루를 두어 제례시 확장하여 쓸 수 있도록 하였다. 남간정사의 뒤편 경사지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정면과 측면, 후면에도 석축을 두고 있다.일제 때 이곳으로 옮겨 짓는 과정에서 원래 목재를 거의 그대로 사용한 것 같으나 건물의 용도를 사당으로 변경 하기위해 원래의 모습에서 일부는 변경한 것 같아 보인다.건물은 사당으로는 보기 드문 모양이다. 이러한 4칸의 모습이 사당 앞에 있는 남간정사의 평면을 그대로 따르려고 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사당과 제기고의 내부바닥은 전부 마루바닥으로 만들고 천정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천정으로 하였다. 기국정과 함께 다른곳으로 옮겨질 예정이라고 한다.한국의 고건축 -남간정사·기국정·남간사- 「건축문화 51호」 1885.8남간정사의 자연과 건축남간정사에는 자연숭배사상, 신선사상, 유학사상이 배경으로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자연에 도전하려는 서양의 개념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써, 즉 자연앞에서는 동물이나 식물이나 동일한 존재로 생각하는 개념이다. 말하자면 자연에서 인간이 유일한 존재가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개념이다. 이러한 사상은 불교, 힌두교, 유교, 도교 등 거의 모든 동양사상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사대부들 사이에 건축 기술은 몰라도 원림(園林)을 꾸미는 것은 알아야 하는 것이 그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중 하나였다.그러기에 우리나라에서 조경의 역사는 기술사적인 측면으로 접근해서는 완벽한 해석이 불가능하며 여기에는 정신사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병행되어져야 하는 것이다.한 시대의 조경개념은 동일한 배경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나 표현되는 조형개념은 생활의 유형에 따라서 서로 달리 표현된다. 예를들면 궁원(宮苑)과 사원(寺苑), 별서원(別墅苑) 나아가 주택의 조경은 하나의 개념으로 출발하고 있지만 시대에 따라 서로 달리 표현되었던 것이다.남간정사의 조경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과 돌이다. 이 두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