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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민족시대의 한국한문학
    탈민족 시대의 한국한문학국어국문학과 유영한1. 들어가며2. 민족주의와 제국주의3. 민족주의의 시대별 경향1) 20세기 초기2) 20세기 초기이후3) 21세기 현재4. 나가며5. 참고문헌1. 들어가며20세기 한국한문학은 식민지 상황에서 나타난 민족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민족주의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면서 한국한문학에 영향을 준다. 여기서는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관계를 알아보고 제국주의를 극복하고자 나타난 민족주의가 오히려 제국주의의 특징을 가지며 지배 담론화 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이러한 민족주의가 한국한문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시대별로 분석해 보았다. 나아가 세계화 시대인 21세기의 탈민족주의의 환경에서 한국한문학은 어떤 모습으로 의미 있게 자리 잡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자.2.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연관성제국주의란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힘을 사용하여 주변부 국가들의 주권을 침해하고 지배하는 중심부 강대국들의 자기 절대화적인 정책과 실천과정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제국주의 국가에서 자행한 오류는 토착민의 후진성에 대한 가정과 이들이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하기엔 부족하다는 가정이었다. 그들의 기저에는 우월하고 문명화된 자신들이 열등하고 원시적인 국가를 문명화한다는 우월의식이 깔려있었다. 이러한 제국주의는 식민지의 민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수모와 굴종을 강요하고, 소수 민족의 문화를 말살하고, 천연자원을 착취하는 괴물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일본 제국주의(1895~1945)의 지배 강점기에 한국인에게 각인(刻印)되어 있다.민족주의란 근대적 산물이자 민족의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나 민족이 겪은 ‘역사적 경험’ 만큼 다양하다는 논의를 인정할 때, 민족이란 개념은 보편적 지역현상보다는 특수적 역사경험에 더 큰 비중이 주어진다. 다시 말해, 종족, 조상, 언어, 공통의 문화유산, 관습 등의 객관적 기준을 민족의 기초로 한다고 할지라도,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속성, 즉 민족공동체에 자신을 귀속시키고)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즉 항상 주변부였던 자아에 대한 인식을 민족주의는 지속적으로 일깨워 주었고, 개발과 발전을 위한 내부 동력으로 재생산되고 사용되었기 때문에 제국주의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며, 지배 담론으로서의 폭력성을 동반하게 되었다. 또한 지배체제로 편입을 원했던 전후 상황으로 인해 내부적 국가 통합은 필수였고, 하나로 뭉쳐야 할 국민이어야 할 민족 내부의 타자는 부정되어야 했다.20세기가 끝나가면서 탈민족주의라는 새로운 경향이 출현하게 되었고, 금기시 되던 민족주의에 관한 담론이 해석되면서부터 민족주의가 갖는 제국주의적 폭력성에 대해 새로운 논의들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재평가와 인식을 통해 민족주의가 갖는 내재적 모순을 돌이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3. 민족주의가 가진 시대별 경향1) 20세기 초기20세기 초 초창기 국문학 연구의 경향은 일제식민지 통치에 맞서서 민족문학으로서의 국문학을 정립하고 전대의 한문학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청산하여 국문문학의 정통성을 찾아보려는 자주적 사고의 발상에서 나온 시대적 성격을 띠고 있다. 당시 주시경, 최현배 등은 국어학 연구와 한글연구를 통해 민족주의적인 활동을 하였다. 언어민족주의)라고 일컫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한글을 한 민족의 언어로 정립하려고 했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훈민정음 창제 후 한글을 사용하였으나 여전히 중화사상에 빠진 지배계급의 문자는 한자였다. 한자를 사용하는 지배계급은 한글을 쓰는 민중들과 철저히 단절됨으로써 그들만의 지배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화기시기부터 언어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신문 발간과 근대적인 학교를 세우면서 신학문을 보급하였다. 한문이 아닌 한글을 통해 이러한 교육을 하면서 구지배 세력과 새로 지배할 세력 간의 단절을 시키고자하였다.) 한글 전용론을 내세우며 새로운 문자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근대화와 더불어 신지식인들은 한글을 보급하고 한자를 배척하면서 민족주의를 자연스럽게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다. 이후자와의 차이를 인정하는 평화적인 공존의 체계를 구축하는 ‘차이’가 아니다. 다윈에서 발현되어 스펜서의 ‘사회적 진화론’ 류의 이른바 하나의 잣대만이 통용되는 단선 진화론적 사고의 바탕 아래서 민족주의의 원동력인 경계 짓기는 차별과 정복을 잉태할 수밖에 없다. 자본의 팽창을 위한 정복의 잔인함을 정당화시켜주는 논리체계로서 민족주의는 기능하게 된다. 때문에 근대의 태동과 함께 발현한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의 한 단면인 줄도 모른다.한국에서의 민족주의는 이른바 ‘저항적 민족주의’라고 일컫어진다. 일본 제국주의와의 투쟁에서 민족주의의 선택은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고통 받는 한민족’과 ‘휘황찬란한 근대의 신문물’이라는 일본 제국주의의 양면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혹은 ‘선택한’ 당시의 자화상은 ‘고통 받은 한민족’이라고 보여 진다.민족주의는 공통의 망각과 공통의 기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민족의 핵심은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망각해 주어야한다는 사실이다’) 근대문물에 욕동 하는 당시의 자화상은 지워버리고 일제의 총칼에 피 흘리는 남성과 일본 군인의 욕망의 노리개가 되어버리는 여성을 상상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공통의 기억속에서 한민족과 한국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이미지의 공유 속에 성립한 일제시기의 저항적 민족주의는 제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도구로서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자체가 대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했을지언정 대외적으로 추구된 자존과 독립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국주의의 행태인 정복의 양상을 띨 가능성은 농후하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60, 70년대의 경제적 성장기를 거쳐 90년대를 넘어서며 저항적 민족주의라는 기원을 ‘망각하고’ 하위제국주의의로의 변모를 보인 것도 한국인의 속성 때문이라는 속설과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접점에 해당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라는 정치학적 분석보다는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자체에서 기인하는 속성이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자본론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다. 한문을 문어체로 장기간 사용하는 동안 차차 토착화되면서 중국과는 별개인 독특한 우리 한문학으로 발전해왔으며, 심지어 우리 나라 안에서도 기호학파의 한문학과 영남학파의 한문학이 다르다고 할 정도)로 변질되어 왔던 양상은 한국의 한문학을 독자의 문화라고 긍정하는 입장에서 서술하자면 긍정의 중요한 논거가 될 수 있지만 한국한문학이 뿌리 없는 이식문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그 비판점을 상실했고 그에 따라서 사회와 국제정서의 변화를 짚어내지 못한 무신경의 증거라고 파악한다면 ’지나 담론‘의 중요한 논거 또한 될 수도 있다고 본다.국문학의 범주를 설정함에 있어 한문학의 양적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국문학에서 배재해버린 시기를 배타적 국수주의 시각에서의 인식)이라고 평가한다면 이병기, 조윤제등의 학자는 국문학 1기의 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한문학에 대한 배타적 시각과는 조금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이들의 시각은 1기의 분류에 대한 반성과 부분적 수용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인식이 전면적 수용에까지 이르지 못한 점은 한문학의 양적 방대함과 창작 당시 최고 엘리트층의 결과물이라는 질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그 객관적 실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데까지는 인식의 전환이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조선 문학을 두 가지로 나누어 하나는 순정한 조선 문학, 또 하나는 광범한 조선 문학이라고 한다.) 라는 서술에서 이병기 선생은 순수한 조선 문학 한국어, 한글로 표기된 시, 소설, 희곡 장르만을 가리키고 한문학은 광범한 조선 문학 속에 ’다른 나라 말로 쓴 순수한 문학작품과 광범한 문학작품‘이 포괄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1기와 2기가 한문학의 완전한 배제와 부분적 수용이라는 양상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면 3기는 통합에의 모색과 구체화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3기는 국문학 연구의 제2세대에 해당한 분들의 통합에의 방향을 모색하는 시기와 2세대들에게 국문학을 전수받은 제3세대들이 이론적으로 정비하여 국문문학과 한문문학의 통합을 지각이 싹트게 된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7, 80년대 시작된 세계냉전체제의 해체의 조짐도 우리의 현실과 사고를 바꾸어 놓은 점도 아울러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민주화 운동이 아래로 확산되면서 민중문화운동이 활발하게 되었다.한문학연구와 한문학에 대한 자각이 위와 같은 민중문화운동의 일면적 원인에서 시작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농업국가에서 산업사회로의 진입을 위한 국민단결을 위한 국가이데올로기로서 민족주의 박정희 정권의 표현으로는 ‘국민총화’이념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같은 민족주의 이념은 표출은 박정희정권뿐만 아니라 신군부정권에서도 다른 형태나마 표출된다. 12.12쿠데타와 5.18 광주의 피를 묻히고 일어선 신군부정권이 그 피의 기억을 망각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대표적인 행사가 ‘국풍’이 아닐까. 전통과 민속, 예술에 대한 관심을 불어 일으키기 위함이라는 명분이 있지만 그 근본에는 망각과 공통의 기억의 재생이라는 문법을 가진 민족주의의 어두운 면을 볼 수 있다.이처럼 민족주의를 촉발시킨 원인이 군부정권주도의 것이건, 아래로부터의 민중문화운동으로부터건 60년대 이후 한국사회를 추동하는 중요한 힘은 민족주의였으며, 이같은 민족주의의 물결이 전통에 대한 관심과 재조명을 재촉했고 한문학의 위상의 변화에 한 축을 담당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감히 해본다.이처럼 한국학의 국문학에의 ‘편입’은 배제, 부분적 수용, 국문학에의 통합으로 거칠게나마 결론지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문학사에의 편입의 과정은 한문학 자체의 논리와 특수성을 인정받으며 이뤄진 것이 아니다. 첫째 국문문학과의 연계성 문제에 천착함으로써 한문학 내부의 자체적인 발전과정의 연구에는 소홀했다는 평가가 있으며, 둘째 서구의 장르이론에 집착한 결과 혹은 대중문화의 소비수단으로 취사선택되는 과정에서 한문학의 정통은 ‘소설’이나 ‘패관잡기’가 아닌 ‘대설’ 또한 ‘소품’이 아닌 ‘대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의 주류인 ‘大’에 대해서는 버리고 옛날의 잔 나부랭이인 ‘소’에 대해서만 귀중한 문학인 있다.
    인문/어학| 2007.11.05| 4페이지| 1,000원| 조회(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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