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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한컴과 마이크로소프트 비교분석 평가A+최고예요
    Ⅰ.서론'아래아한글'과 '워드'. 한글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10년 가까운 공격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세계 유일의 토종 문서편집기이고, 워드는 MS의 돈줄 구실을 하는 '오피스'의 핵심 소프트웨어다. 워드는 이미 우리나라를 제외한 세계 문서편집기 시장을 싹쓸이했다. 두 소프트웨어가 새 천년 첫해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정면대결에 나섰다.워드는 이번에야말로 기어코 한글을 제압하고 세계 문서편집기 시장을 말 그대로 '평정'하겠다는 기세다. 한글 역시 더 밀리면 앞서 간 다른 문서편집기들처럼 벼랑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라 배수진을 치고 반격에 나서고 있다.MS는 1992년 9월 '한글워드 1.2'를 내놓은 뒤부터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한글을 몰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소프트웨어 성능 개선에도 힘써, 기능과 사용의 편리성 등에서 한글을 능가할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사용자 비율은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MS에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한컴이 경영난에 빠져 소프트웨어 개발이 중단될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한글 소프트웨어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한글 살리기 운동이 펼쳐지면서 한글은 다시 살아났다. 사용자 비율이 오히려 높아졌다. 특히 출판분야 등 문서편집기 활용도가 높은 사용자들은 여전히 한글 사용을 고집했다. MS가 워드를 공짜로 준다고 해도 먹혀들지 않았다. 조합형을 지원할 수 있는 한글 소프트웨어의 기술적 우위와, 한글문서편집기 시장을 MS가 독점하게 놔둘 수 없다는 소비자들의 자존심이 어우러진 결과였지만, 가장 큰 원동력은 사용자 손에 익숙해진 단축키 덕분이었다고 한컴은 풀이한다.MS의 한글 단축키 지원은 바로 이 한컴의 가장 큰 보호막을 무력화시키는 시도인 셈이다. 물론 한컴도 '한글 2002'부터는 워드의 단축키를 쓸 수 있도록 맞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한컴의 대응은 공세적이라기보다는 방어적 성격이 짙다. 한컴 관계자는 워드 단축키 지원에 대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워드를 사용하다 한글로 바꾼 고객을 도원결의'가 일을 낸 것이다. 이찬진 사장은 심심풀이 장난은 아니었지만 '일'이 지금처럼 커질 줄은 우리 셋 다 아무도 몰랐다고 저서 에서 당시를 회상했다. 순식간의 성장이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천재로 잘 알려진 이사장은 실제론 아래아한글 개발의 주역은 아니라고 한다. 아래아한글 개발주역은 서울대 후배인 김형집과 우원식. 이사장의 공로는 89년 방위병 복무시절 용산 러브리컴퓨터를 통해 ‘아래아한글1.0’을 처음 상용화한 것이었다. 1990년 10월에 직원 네 명으로 한컴 회사가 세워졌다. 그리고 그 후 1년마다 [1.52판] [2.0판] [2.1판] 등 판올림 개발이 계속됐다. 당시 한컴 관계자가 "제품이 나오기 무섭게 팔렸다"고 할 정도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리고 93년에는 당시 대대적인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에 힘입어 매출액 1백억 원을 넘어서는 굴지의 벤처기업으로 부상했다.한컴의 위기1992년 도스의 시대가 저물고 윈도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반마이크로소프트 전략으로 1995년에야 뒤늦게 윈도용 한글을 내놓았다. 이로 인해서 많은 사용자층의 이탈이 뒤따랐다. 그리고 1997년 9월에 출시된 한컴의 오피스 97도 마이크로 소프트의 오피스 보다 뒤늦게 출시되는 등 전략적 실패를 거듭했다. 주력사업인 워드 프로세서 분야에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하자 '한글'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전망이 안팎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이사장은 사업다각화를 시도했다. 인터넷 서비스 사업, 컴퓨터 교육 사업, 인터넷 검색엔진 사업(심마니), SI사업 등 숱한 시도를 했으나 실패를 거듭하고 만다. 이찬진 사장은 이런 상황에서 한글 개발에 힘쓰지 않고 국회의원 진출을 모색했다. 이런 이찬진 사장의 국회의원 진출은 한 우물을 파는 벤처기업인의 이미지마저 퇴색시켰다. 당시 한컴 직원은 "사실상 [한글]은 포기한다는 결심이 서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었다고 한다.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확실한 수익구조 없이 무리한 다각화로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닥쳐온 사용자의 불법복제 방지보다는 기업시장을 적극 개척했어야 했다고 말했다.사실 불법복제는 소프트웨어의 제품 인지도를 높이고, 빠른 확산을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그래서인지 '의도적인 불법복제 조장'을 시장장악 전략의 하나로 사용하는 기업도 있고, 한컴 역시 초기에는 불법복제의 덕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도스 시절 수많은 워드프로세서들이 개발되었으나 불법 복제된 아래아 한글이 이들 프로그램의 시장진입을 막아버렸으니 말이다. 그 예로 당시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던 한 고교생이 만든 상용 워드프로세서 [백상]은 [한글]의 불법복제판 때문에 시장에서 사라져버렸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전략은 MS 사를 비롯한 많은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초기에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목적으로 시도되고 있다.한계에 다다른 아래아 한글의 기능아래아 한글의 지속적인 시장점유율 하락에는 전반적인 기능이 경쟁제품인 MS 워드에 비해 크게 처졌다는 점도 한몫 했다. 엑셀, 파워포인트 등과의 완벽한 호환성을 무기로 시장을 공략한 워드에 비해, 아래아 한글은 로터스의 스마트슈트와 결합된 어색한 오피스 패키지로 대항했고, 윈도 환경에 최적화된 워드에 비해 윈도의 변화/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사실 아래아 한글의 윈도 95용 3.0 버전은 도스용 아래아 한글 3.0을 그대로 플랫폼만 바꾼 것에 불과했고 윈도 95 운영체제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으며, 이후 아래아 한글 96과 아래아 한글 97 역시 동일한 HNC 라이브러리에 기반 하여 사용자 편의성을 조금더 확대하는 것에 그쳤을 뿐, 진정한 메이저 업그레이드라 할 수 있는 커널 업그레이드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정부의 정책 부재정부 역시 한컴 사태의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그동안 수없이 벤처기업 육성을 부르짖었으나,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기업의 몰락에 대해 어떠한 대책도 세우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래아 한글이 한국 정부의 표준 워드프로세서인 것을 감안하면, 좀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부는 오히려 불법복제의 대다.MS 사의 공격적 마케팅MS사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경쟁제품의 개발을 봉쇄하는 대가로 자본을 투자한다는 이 전례 없는 계약의 당사자인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한컴 몰락의 주된 요인이다. 경쟁사를 경쟁에서 탈락시키는 것은 기업경영의 당연한 이치지만, 그 과정은 좀더 상식적이고 페어플레이로 전개되었어야 했다. 만약 사용자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에 의해 아래아 한글의 퇴출과 워드의 독점이 이루어졌다면, 과연 지금처럼 국민적인 반발이 일어났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세계에서 유일하게 압도적 우위를 점하지 못한 한국 시장을 위해 MS는 전례 없는 마케팅 정책을 진행해왔다. TV광고와 각종 판매 이벤트, 특히 최근의 워드 100만 카피 무상 증정 등은 지나친 감이 있었다. 그동안 MS에 맞서왔던 수많은 기업들의 몰락을 생각하면, 한컴의 몰락 역시 예견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 자본의 논리를 동원, 사용자에게서 소프트웨어 선택의 자유를 빼앗은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경영정책의 실패초창기 한컴의 정책은 한글을 완벽히 표현할 수 있는 워드프로세서를 만들어 보다 많은 사용자에게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성과를 거두어 순식간에 시장점유율 90%를 차지하는 워드프로세서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의 한컴은 '몸집 불리기'라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지나친 사업다각화 전략을 채택,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했다. 지오시스템, 나라소프트, 한마이크로시스템즈 등 수많은 군소개발업체들을 합병하는가 하면, 한컴서비스, 한컴프레스, 한컴교육나라, 한컴네트 등 수많은 자회사를 양산,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전략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이렇게 무리하게 진행한 기업 확장 및 사업다각화 전략은 경제가 총체적인 난국에 빠지자 금세 한계에 부닥치게 되었다. 결국 97년과 98년에 잇따른 기업 매각 및 별도법인 분리, 임직원 정리를 통해 한때 300여 명에 달하던 한컴 직원은 불과 30여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급기야는 막대한 빚을 이기지 못해 적군의 맹주였던 김근 마이크로소프트(MS) 아 태지역 마케팅 총괄이사(42)를 한컴 제3대 대표이사 사장으로 받아들여 세간을 놀라게 했다. 당시 한컴의 전략은 '지피지기 백전백승'을 위한 것이었다.김사장은 서울대 사범대 영어교육과와 미 시카고대 경영학석사(MBA) 마케팅전공을 거쳐 한국휴렛팩커드(HP), 한국MS, MS 아 태지역 홍콩본부에서 근무해온 100% 다국적 기업 IT맨이다. 10여년간의 다국적 기업맨이었던 그는 토종기업 한컴을 맡은지 3개월째를 맞았다.Ⅱ. 본론2 -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1. 시작과 성장1) MS 기반의 마련 - 알테어 베이직지금은 세계 최대의 독립 소프트웨어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는 2명의 대학 중퇴생, 빌 게이츠와 폴 앨런에 의해 출발했다. 이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은 1974년에 나온 저렴한 가격의 알테어(Altair) 덕분이다. 이 두 사람은 시장에 PC 키트인 알테어가 출시 됐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이것이 사업에 뛰어들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사실 알테어는 키트 형식의 PC인만큼 현재 라디오 키트만큼이나 조잡한 내부 구조와 형편없이 떨어지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알테어를 더욱 기능적인 기계로 탈바꿈시킬 프로그래밍 언어를 찾게 되었고 이에 따라, 베이직(Basic)의 한 버전을 창조하게 되었다.그들은 베이직을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경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끝내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베이직의 훌륭한 기능을 이해시키게 만들었고, 사람들이 그들의 베이직을 사용하게끔 만들게 되었다. 그러다 알테어 베이직의 인기가 올라가자 그들이 어렵게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무분별하게 복사를 하여 많은 해적판들이 돌게 되었다. 그래서 빌 게이츠는 신문에 알테어 베이직의 지적 재산권에 대한 호소를 하게 되는 등의 활동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컴퓨터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높은 인지도를 갖게 되었다.2) MS의 시작 - MS-DOS의 개발빌 게이츠는 폴 앨런과 함께 1976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마이크.
    경영/경제| 2002.11.29| 9페이지| 1,000원| 조회(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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