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의 道의 시학적 해석달은 어찌하여西方까지 가십니까.無量壽佛 전에報言 빠짐없이 사뢰주소서.誓願깊으신 尊 우러러 바라보며願往生 願往生두 손 곧추 모아그리는 이 있다 사뢰주소서.아아, 이 몸 남겨두고四十八大願 이루실 수 있겠습니까.이 10句體의 원왕생가의 외부 구조는 S1(1구와 2구),S2(3구와4구),S3(5구~8구), S4(9구와 10구)로 되어 있다.이 가운데 이 향가의 표면적인 주제와 정조가 가장 깊이 드러나 있는 곳은 S3이다. 이 향가 전체의 분위기를 ' 원왕생 원왕생 '의 반복 형식에 의한 淨土에의 왕생에 대한 기원과 간절한 염원, 그리고 아직 이 숭엄한 절대적 願望이 실현되지 않음을 한탄하는 비애감으로 가득차게 하고 있다.S1은 하나의 물음이다. 달의 운행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그것은 달에 향한 물음일 수도 있고 그 스스로 품은 내적인 물음일 수도 있다. 이 '달이 왜 西方까지 가십니까' 하는 물음은 무량수불이라는 천체 운행의 주제가에게 향한 물음일 수도 있다.이 S1의 물음이 궁극적으로 삶의 진리를 묻고 있는 시적 자아의 스스로에 향한 물음이며 동시에 우주의 총체성을 향한 물음임을 알 수 있게 된다.달이 서방으로 가는 의미를 묻고 있는 것은 곧 시적 자아가 왜 서방으로 가야하는가를 묻는 물음이며 동시에 왜 우주는 서방으로의 진행에서 그 섭리를 완성하는가의 물음인 것이다. 달의 서쪽으로 감에 대한 물음은 시적 자아가 스스로에게 던진 화두인 것이다. 이 화두에 대한 응답 속에 답하는 자의 깨달음의 깊이가 드러나게 된다. 화두로서의 이 S1의 물음은 그러므로 현상에 감추어져 있는 본체에 대한 물음인 것이다.달의 언어는 빛의 언어이며 침묵의 언어이다. 이 달의 언어는 기호로서의 언어나 표상으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언어의 언어, 즉 존재를 개명하는 비은폐성으로서의 언어인 것이다. 이 빛과 침묵의 언어는 사물들을 類와 種으로 가르거나 세계를 이원적 대립상으로 구별하는 언어일 수 없다. 무량수불의 전언을 빛으로 세계에 전하고 인간의 기원을 침묵으로 전하는 달의 모습이 광덕이 말을 건네고 있는 달인 것이다.S3의 원왕생가 왕생의 기원은 무엇을 다시 기원하는 것인가 '다딤 기프신 밑링옷 빛라 울워러'의 제 5구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그 안에 담고 있다. 서원 깊은 繹尊을 바라보며 숭앙하는 마음의 표현인 이 구의 문맥 속에서 왕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광덕의 왕생사상은 정토사상과 화엄사상의 종합된 화엄정토사상임을 알 수 있다.이에서 '원왕생원왕생'의 기원은 사후의 정토로의 왕생 뿐만 아니라 현세의 세간에서 정토가 이루어질 것을 기원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확대 해석할 수 있게 된다.S1, S2에서 보이는 정관의 세계와 S3에서 보이는 원왕생원왕생하고 기원하는 두 모습은 결국 행위의 선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승의 경지에서 돈오와 점수가 합치된 마음의 통일성을 二門으로 병렬하여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그렇다면 S4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무량한 전체 중생을 빠짐없이 정토에 왕생하게 하여 구원하고자 한다고 할 떠 나를 남겨 두고는 그 본원을 성취할 수 없으니 당연히 나를 왕생케 할 것이다는 신념이 수사적 의문법으로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물음의 의미를 이러한 표면적 해석에 머물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향가의 앞 부분에서 이미 광덕의 왕생은 아미타불의 힘에 의존하여 他力的인 구원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보다는 그리고 그 왕생이 사후의 극락에 들게 됨을 의미하기 보다는 현재의 삶의 공간에서 완성될 존재에의 염원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아아!'의 영탄에는 두 가지 정조가 함께 하고 있다. 기원의 마음에 내포되어 있는 현재에 대한 탄식 즉 왕생을 이루지 못한 자기 한계에 대한 한탄과 달빛의 편재성에 대한 종교적 인식에서 오는 정토 세계는 언제나 그를 둘러싸고 있음에 대한 신념이 주는 和平의 정조가 그것이다.'아아'의 영탄은 태초의 자아의 한계성에 대한 비극적 탄식을 넘어서 존재 완성의 미래를 현재화하여 체험하는 내적 희열이 터져나온 외침인 것이다. 道의 완성을 예감하는 기쁨의 외침인 것이다.달이 동에서 떠서 서로 가는 운행이 우주의 필연의 섭리이듯이 예토의 시적 자아가 지성의 염원으로 왕생을 노래할 때 정토에 드는 일 또한 필연인 것이다. 종교적 정각에 대한 이와 같은 절대적 신앙은 시적 자아의 생의 구조 역시 달의 운행 원리와 하나임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