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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방송] 동아일보 비평
    동아일보의 파도타기0021058 신문방송학과 박차현지난해 신병철씨(디씨전 파트너 대표)가 동아일보 신입 기자들을 상대로 특강을 했었다. 그런데 기자들은 이제 메이저신문사의 기자가 되었다는 자만심 때문인지,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거만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 광경을 그대로 볼 수 없었던 신병철 대표는 갑자기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보수신문 하면 조선일보 이고 젊은 색션신문 하면 중앙일보 입니다. 그렇다면 동아일보는 도데체 무엇입니까?’ 기자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신병철 대표는 여유있게 한마디를 더 던지며 기자들의 수업태도를 바로잡았다. ‘여러분은 정체성도 없는 이 신문사의 기자가 된 것이 자랑스러우십니까?’‘일장기 말소사건’ 동아일보의 정체성?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의 손기정 선수가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체육부 소속이었던 이길룡 기자는 8월 25일자 신문에서 시상대에 있던 손기정 선수 가슴의 일장기 사진을 지워버린다. 이게 동아일보가 ‘동아일보의 정체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냈다’며 그토록 자랑하는 일장기 말소 사건이다. 1976년 발간된 ‘동아일보 사사’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이런 민족의 아픈 가슴을 달래기 위하여 민족의 대변지를 자임해 온 본 동아일보가 그냥 무심히 넘길 수 없었던 것은 누구의 지시도 아니, 명령도 아닌 거의 자연발생적인 본보의 체질에서 우러난 것이었다’그러나 이길용 기자에게 쏟아지는 지금의 찬사와는 달리 당시에는 파면이라는 냉혹함만이 있을뿐이었다. 사주였던 인촌 김성수는 ‘몰지각한 소행에 노여움과 개탄을 금할 없다’라는 표현까지 썼다.(인촌 김성수전 1976) 이밖에도 속속 드러나는 동아일보의 친일행각은 ‘민족지’임을 무색하게 한다. 중일전쟁을 역사적 감격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면(1937.7.7) ‘원병에게 영예다 불굴의 혼이다’라는 기사까지 싣는다. 일체가 명절로 꼽았던 명치절에 대해서는 ‘명치천황의 어성덕을 흠앙하는 3일의 명치절! 이날의 아침부터 구름 한점 없이 맑게친일논조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는 조선과 함께 1940년 8월 폐간된다. ‘이즈음 동아ㆍ조선 양대지의 논조와 색채는 이미 매일신보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퇴색해 있었다’(민족과 더불어 80년)라며 스스로 인정했듯이 동아일보가 항일을 해서 폐간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일제가 조선어말살정책과 전시하 물자절약 차원에서 결행한 것이었다.진정한 민족지로서의 동아일보친일행각을 일삼던 일제시대와는 달리 적어도 70년대까지 동아일보는 진정한 언론의 모습이었다. 한민당과 이승만의 결별을 계기로 야당지로 변모한 동아일보는 국부(國父)라는 칭호를 들으며 군림했던 이승만 대통령을 마구 비판할 줄 아는 강단이 있었다. 특히 1952년 이승만이 제창한 정부통령 직선제 및 양원제 개헌안을 반대하는 등 날카로운 비판을 가해 정부로서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승만 정권말기, 제 2신문이던 경향신문이 폐간되는 일련의 분위기 속에서 모든 신문들이 친 독재적 성향으로 돌아섰지만 동아일보만은 굴복하지 않았다. 4ㆍ19민주 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독재정권을 끊임없이 괴롭혔다.국민들은 이런 동아일보를 선택했고 1967년에는 발행부수가 50만부를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군부 독재체제하에서도 동아일보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정부의 언론통제가 극에 달하고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커져갈 무렵 180여명의 동아일보 기자들이 편집국에 모여 10ㆍ24 동아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한다.(1974.10.24) 민주화와 자유언론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언론의 자성과 맞물리면서 언론인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고자 하는 실천의 시발점이었다. 국제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는 ‘자유언론의 실천을 통해 불의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동아일보에 경의를 표한다’라는 전문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 후 동아일보는 유신반대 집회와 시위를 다룬 기사를 본격적으로 실었으며, 국민들은 그런 동아일보를 격려했다. 박정희 유신정권에게 동아일보는 실로 눈엣가시였다. 1974년 12월 26일 동아일보의 광고란에는 하하고 동아일보를 아사(餓死)시켜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동아일보에 한결 같은 애정을 보여줬고 쇄도하는 격려광고는 ‘오늘 격려광고 일부는 지면부족으로 내일로 미룹니다’라는 안내문이 나갈 정도로 빈자리를 가득 채웠다. 돼지저금통을 들고 온 어린이들부터 담배를 끊고 담뱃값을 모았다며 찾아온 칠순노인까지, 동아일보는 이미 국민의 언론이었다.동아일보는 지금 어디에…2004년, 어린아이가 돼지저금통을 들고 정부와 맞서 싸우는 동아일보를 찾아 갈 일은 없어보인다. 모든 면에서 현재의 동아일보는 더 이상 국민의 언론이 아니다.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대표적인 보수신문으로는 조선일보가 손꼽힌다. 젊은 섹션신문은 중앙일보다. 조선에 맞서는 진보지로는 한겨례 신문, 할말은 하는 독립신문은 경향신문이다. 동아일보는 도데체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는가.물론 ‘조중동’이라는 이름하에 현 정권과 지루하고 힘겨운 신경전을 펼치고 있고 선거기간만 되면 네티즌들로부터 포화의 대상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셋을 분리시켜 놓고 볼 때 조선은 조선 하나만으로도 보수의 색깔일 짙게 띠고 있다. 중앙은 젊은 색션신문의 기치로 ‘조중동’으로부터의 탈피를 노리며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 이 둘 사이에서 동아일보는 우왕좌왕하고 있다. 젊은 이삼십대의 건전한 보수층을 겨냥하고 있다지만 젊은층은 중앙일보가, 보수층은 조선일보가 장악하고 있다. 이미 열독률과 구독률에서도 조선과 중앙에게 밀리고 있다.(열독률:조선일보 13%, 중앙일보 11.1%, 동아일보 10.5%, 구독률: 조선일보14% 중앙일보 12.4% 동아일보 11.1%, 프레시안 2002.9.26)악순환의 연속이다. 등 돌린 독자들을 잡기위해 동아일보는 자극적이고 옹졸한 내용을 싣는다. 여기에 독자들은 환멸을 느끼고 또 외면한다. 1998년 7월 1일자 신문에서 연합통신 김종철 사장선임에 대해 ‘낙하산식 인사’라는 표현으로 매우 부정적인 보도를 했다. 김종철 사장이 동아일보 해직 기자 출신이고 그 동안 ‘조중동’에 입바른 소리를 동아일보 사주의 아들이 입사 몇 년만에 이사대우로 승진한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무조사 이후 동아일보는 또 앙심을 품고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집권이후 각종 선거에 사용되었다는 이한동 당시 총재권한대행의 발언을 대서특필한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라는 변명으로 이한동씨가 얼버무렸지만 동아일보의 치졸함이 또 한번 드러나는 대목이다.최근에도 동아일보에 대한 실망은 그치지 않는다. 2003년 7월 16일자 1면 톱기사에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으로 구속된 윤창열씨가 김원기 민주당 고문,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등 5명에게 거액을 건네줬다고 보도했다. 해당 당사자들은 어이없는 기사라며 법적 대응을 진행했고 오보일 가능성이 제기되자 결국 24일자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보도했다며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현 정권에 대한 편파적인 보도는 점입가경이다. 지난 2002 대선에서부터 그 예를 찾을 수 있는데 2002년 11월 한달동안 이회창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일때는 신나게 그 결과를 보도하다가 막상 노무현 후보에 전세가 역전되자 11월 27일자 신문에 한면 전체를 털어서 ‘여론조사는 그야말로 조사일뿐’이라는 제목으로 여론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 의미를 축소시키려고 했다. 지난 총선에서도 열린우리당의 승리를 무척 씁쓸하게 바라보며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총선 직후인 4월 16일자 사설에서는 ‘민의를 존중해 상생의 정치를’이라는 제목으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민주당에게 충고를 하는 형식의 글을 실었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린우리당에게는 ‘정체성일 불분명한데다가 비주류 의식마저 몸에 베에 국정운영을 잘할지 걱정이다는’식의 불안을 한나라당에게는 ‘이번 패배가 건전보수로 거듭날 절호의 기회다’라는 위로를 건네고 있다.그래도 동아일보다.사회부의 이종훈 기자는 앞으로 동아일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건강한 중도보수 계층을 겨냥하여 앞으로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될 지금의 20대와 30대 초반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저 신문중에 극우신문도, 재벌의 하수인도 아닌 진정한 보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권위지가 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신문은 그래도 동아일보이다. 아직 색깔이 불분명한 만큼 확실한 색깔을 씌울 수 있는 기회는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으로는 조선일보의 아류밖에 될 수 없다. 현 젊은층을 과소평가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들은 중도보수층이 가져야 하는 사고방식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이토록 극단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데 젊은 중도보수층에게 어필이 가능할까.보다 넒은 아량으로 권위지의 모습을 찾았으면 한다.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에 꼬투리를 잡는 ‘gotcha journalism’에서 탈피하여 잘한 것은 칭찬하고 못한 것에는 서릿발 같은 비판을 가하는 여유있는 권위지의 모습으로 남길 바란다.어떤 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단 관심을 끌어야 한다. 비평가들이 찬사를 하던 비판을 하던 간에 그만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자연스럽게 눈이 쏠리고 영화는 성공한다. 수많은 안티를 거느리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런 측면에서 이미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단 한 개의 안티 사이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저널리즘의 정도를 걸으며 정체성을 확립함으로써 옛 명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극단적인 기사로 사람들의 관심을 얻으려는 무모한 생각을 버리고 신선하고 공정한 기사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친일행각을 벌이다가도 민주화 투쟁의 첨병이기도 했고 이제는 뚜렷한 색깔없이 수구 보수지의 오명만 뒤집어 쓰고 있다. 이처럼 동아일보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동안 파도타기를 하듯 오르내렸다. 이제 내려올 만큼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참고문헌동아일보 사사인물과 사상 1998년 10월호(동아일보에게 보내는 고언, 강준만)46년 구독한 동아일보를 끊으며(윤용식)동아일보의 추락을 어떻게 볼것인가(김동민)동아일보 80년사 HYPERLINK "http://www.donga.com" www.donga.com HYPERLINK "http://www.pressian.c 기자
    사회과학| 2004.07.15| 5페이지| 1,000원| 조회(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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