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강을 읽고..조정래 소설 한강은 1950년 말부터 1980년 초까지 우리의 삶을 글로 옮겨 놓았다.4·19와 5·16, 10월유신과, 광주민주화운동등 우리 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문제들을 그렸다. 또한 급속한 경제 성장이 가져온 빈익빈 부익부의 깊은 골,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가져온 분단의 비극을 현실의 고통으로 체감하며 살아가는 월북자의 아들 유일민과 유일표, 변화되는 시대에 따라 새로운 권력에 빌붙으며 살아가는 정치인 강기수, 가난한 집안의 아들들로 태어나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출세를 꿈꾸는 젊은 법조인 이규백과 김선오, 독립투사 집안이지만 가난에 찌든 허진, 그리고 시대가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골 깊어가는 가난과 불평등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과 애환, 저항과 불굴의 세월을 담고 있다.한강의 배경은 60~70년대에는 노동운동이 거의 전무했으며 노동운동을 했더라도 빨갱이로 몰리기 쉽상이었다. 노동운동의 한 휙을 그은 사람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다. 전태일은 동대문의 봉제공장의 재단사로 일하고 있었다. 전태일은 재단사 월급이면 가족이 살아가는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다른 노동자를 위해 노동운동에 나선다. 당시 봉제공장들은 사업주가 창고비를 줄이기 위해 천장을 2층으로 나누어 1층은 작업장 2층은 창고로 사용했다. 1층을 둘로 나누었기 때문에 1,5m도 안되는 높이에서 허리도 제대로 피지 못한채 미싱사, 시다, 재단사들이 일을 했다. 또 공원들이 일을 하다 한눈을 팔까봐서 인지 건물의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막아버려 옷감에서 나오는 먼지들을 그대로 다 마실 수밖에 없었다. 열악한 작업환경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공원들은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고 하루에 열시간이 넘도록 일을 했으며 잦은 야근과 휴일근무를 해야만 했다. 전태일은 이를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시청을 찾아가 보지만 공무원들은 그를 귀찮게만 생각한다. 결국 그는 기자들의 힘을 얻어 신문에 동대문 공장들의 실상을 알리고 데모를 계획하지만 졍부와 기업의 방해로 실패로 돌아간다. 이를 지켜본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고 외치며 분신자살을 한다. 그의 분신자살을 동대문 공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자신들을 못살게 굴고 공장장과 사장의 편인 재단사가 자신들을 위해 희생을 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전태일은 그 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고 또 본격적인 노동운동이 시작되게 된다.얼마 뒤 유일표도 재건대 야학을 하면서 노동운동을 하게된다. 유일표는 재건대 야학생들을 기업에 취직시켜 노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기업과 정부는 노조라는 것이 만들어지면 기업은 망하게 된다고 생각해 어떻게든 노조의 결성을 막기 위해 폭력을 쓰기도 하고 부당한 해고를 하기도 한다.아직도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것 중에 하나가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이다. 빈익빈 부익부는 IMF 이후에 더욱 심각한 수준이 되었다. 가끔 돈이 돈을 벌어 준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한강에서 등장하는 성남.... 그 성남은 현재의 개발 된 곳이 아니다. 무작정 먹고살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무허가 판자촌에서 어렵게 살던 가난한 사람들이 아파트 재개발로 판자촌이 철거되자 무작정 쫑겨 가게 된 곳이다. 하지만 그곳은 기본적인 주택이나 직장등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일자리가 없어서 굶어 죽는 일이 생기고 어떤 임산부가 자신이 낳은 아이를 너무 배가 고파 삶아버렸다는 끔찍한 소문이 돈다. 일하기 위해 서울에 가야하는데 차편이라고는 하루에 몇 편 있는 버스가 전부라 그 버스는 언제나 더 이상 들어갈 곳 없는 만원이었고 굶주림을 참지 못한 아이들은 몸을 팔기도, 가게에서 라면을 훔치다 주인에게 매를 맞기도 한다.가난으로 인한 비참한 생활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아픈 훈이엄마를 업고 하루종일 김전도사는 병원을 돌아다니지만 보증금이 없어서 결국 훈이 엄마는 김전도사의 등에서 숨을 거둔다. 김전도사의 사람이 죽어가고 있으니 보증금은 어떻게라도 갚을테니 제발 치료를 받게 해달라 고 사정하지만 사람들은 매정하게 뿌리치고 만다.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혜경은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한다. 당시에 아파트에도 설치하기 힘들었던 엘레베리터를 집안에 설치해 놓는다.요즘 선거철을 맞아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지역감정이다. 다른 때는 잘 모르고 있더라도 선거철이 다가오면 지역감정을 이용해 당선되려 하는 후보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사실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생긴 것은 불과 30~40년 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왜이렇게 지역감정이 우리의 인식속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것인지 모르겠다.잠깐이지만 김선오(?)가 집안의 가난함 때문에 가정교사자리를 구한다. 가정교사자리를 구하기 위해 면접을 보던 중 김선오는 자신이 전라도 사람인 것을 들키고 만다. 그러자 마주앉아 있던 부자 집 부인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다음에 연락을 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정교사 자리라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을 숨겨야 하는 현실이 비참하게 느껴진다.
Ⅰ.기획의 유형구분1. Millett의 분류Millett는 그의 풍부한 정부실무에 관한 경험을 살려 제 2차 세계대전후에 정부기획론 을 출간하고, 그 이후에도 정부기획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가지 저술을 한 일이 있는데 그는 일관해서 정부기획을 정책기획과 운영기획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정책과 기획을 엄격히 분리하고 정책형성에 보다 높은 비중을 둔 적이 있는 Millett는 대부분의 환경아래에서 정책결정은 기획의 수립에 선행해야 하며, 정책결정은 기획수립의 목적과 기본적 윤곽을 제시하고 입법과의 관련성이 깊고, 흔히 법률의 형태로 표현되며, 보다 개괄적이어서, 정부활동의 목표와 원칙을 결정하기 때문에 가치를 내포한다. 반면에 기획은 결정된 정책을 행정활동으로 이행시키는 노력이며 보다 구체적인 설계이다. 따라서 정책은 기획이 아니다 라고 구분 지으면서 두 가지 기획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1) 정책기획정부의 기획과정의 일부는 정책과 관련된 것이다. 정책기획은 정부활동에 관한 광범위한 일반적 개요를 발전시키는 것이며 통상적으로 새로운 입법이나 기존 입법의 수정을 포함한다. 정책기획에는 정부활동의 기본적이고 사회적인 목적을 설정하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의례히 내포된다.(2) 운영기획운영기획은 현존하는 공공정책의 범위 안에서 행정기관이 구체화해야 할 특정 목적과 행정기관에 의하여 채택될 절차를 준비하는 것이다. 즉, 정책기획이 행정활동을 위하여 설정해 놓은 광범위한 일반적 한계를 구체적 행동으로 이행시키는 탐색과정이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는 주어진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자세한 운영 또는 활동계획이 창출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행정노력의 지침이 되며 행정활동의 의의나 목적을 지니게 하는데 불가피한 것이다. 그리고 행정기관은 이 두 가지 기획을 모두 수행해야 한다.2. Galloway의 분류Galloway는 미국의 기획전반에 관한 체계적인 고찰을 의하여1941년 미국을 위한 기획 이라고 하는 제명 아래 각 분야별 전문가 30여명을 동원하여 하고 있다.(1) 국제기획관세업무, 우편업무, 전쟁억지(2) 국가경제기획미국에 있어서 전시의 경제조직 또는 전시, 평시를 막론한 사회주의국가에서의 경제조직과 관련된 기획(3) 광역기획미국의 테너시강유역, 태평양 북서해안, 건조분지지대와 같은 주요한 지리적 여건에서 수행된 것과 같은 기획(4) 도시기획기획기능이 민간부문의 업무에 있어서와 같이 자연적으로 수용되어지고 있는 가장 역사가 길고 발달된 기획분야(5) 자원기획이와 같은 기획가운데 대체로 지식과 기술을 원용하며, 특히 1933년에서 1943년까지의 10여년 동안에 워싱턴 소재 국가자원기획위원회에서 시도한 것과 같은 기획(6) 행정기획행정가가 과거의 경험을 참작하여 장래의 사업을 설계하는 수단이며, 이 정차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다.(7) 작업기획이것은 기획기능의 운영적 국면이지만 대체로 보아서 기획의 일부라기 보다는 감독기술이다.4. Waterston의 분류1965년에 발전기획론 이란 저서를 출간한 Waterston은 기획의 유형을 다음과 같은 4가지로 분류하였다.(1) 전시기획주로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시행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서 전쟁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하여 경제활동에 대한 구제를 가하고 시장의 수요, 공급 기능을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잇는데, 이 방법에 있어서는 영국과 미국사이에 많은 차이가 난다. 결국 혼합경제국가에 있어서도 전시에는 사회주의국가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 전시기획의 특성이라 하겠다.(2) 읍면기획읍면기획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서 제도화되기는 2차대전 이후의 일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읍면기획은 토지의 활용, 빈민굴의 재배치와 개선, 신도읍의 건설, 산업중심지의 건설, 위성지역의 개발과 교통망의 정비, 구획정리, 주택계획등 무질서하게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후에 들어서서 이것들이 보다 체계화되고 제도화됨으로써 그대상도 점차 확대되었다.(3) 반경기순환기획반경기순환기획은 지배적인 경제체계안에서 인플레를 방지하고 소득중대와 완이며 본질적으로 단편적이다. 기능적 기획의 사례로는 생산기획 상업기획, 재정기획, 물적기획에 속하는 도로기획, 판로기획에 속하는 광고기획 등이 여기에 속한다.(3) 포괄적 기획포괄적 기획은 전체적 사업을 남김없이 포함하며, 그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 요소까지도 포함한다. 이 기획은 물적 또는 기능적 기획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이 기획이 적용되는 전체문제에 대해서 포괄적이고 전망적이며 조정적이다. 즉, 포괄적 기획은 다양한 다른 부분적 기획활동을 통합하고 있다.(4) 총체적 혼합기획총체적 혼합기획은 이과 같은 세 가지의 기획에 속하는 각종의 요소를 여러 가지 유형으로 결합시킨 기획이다. 총체적 혼합기획의 사례로는 사회보장을 위한 정부기획을 들 수 있는데 이 안에는 건물, 토지, 사람, 투자, 실업, 보건과 조세들에 관한 다양한 기획이 포함되는 것이다.6. Branch의 분류(1) 포괄적 기획포괄적 기획은 조직체의 목표를 지속적으로 수립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조직체의 활동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장래이익을 위한 기획은 충분한 자기판단에 의해서 행할 수 있는 어떤 조직이나 제도, 기관도 포괄적 기획의 주체가 될 수 있다.(2) 기능적 기획기능적 기획은 전체 문제를 구성하는 요소별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대 민간기획으로서는 도로건설 또는 산림보호 등이 이에 해당되고, 군사기획으로서는 군수병참 또는 해군기지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며, 민간부문에서는 제조, 재정 또는 PR등이 여기에 속하는 기획이 될 것이다.(3) 물적기획물적기획은 지상에 있어서의 위치와 배치, 3차원적 요소에 관한 기획이다. 이 기획에는 비용과 다른 많은 요소들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공간적 설계가 분석의 중심이 되며, 그 최종산물은 공업적, 건축학적 방안을 내포하는 지역적 모형으로 나타난다.(4) 정부기획, 군사기획, 경영기획정부기획, 군사기획, 경영기획이란 용어는 이와 같은 활동영역 안에서의 기획과정의 적용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획은 그 범위에 있어서 활동적 가진다.그러나 장기기획은 장기적인 발전전망과 비젼 아래 구조적인 변화와 지속적인 개발을 추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구체화하지 못하여 집행기획으로서의 실제성이 약하여 기획기간이 경과함에 따라 실제와 유리되기 쉽다.(2) 중기기획중기기획은 약 5년 동안을 기간으로 하여 설정한 일종의 목표기획으로서 장기기획에서 제시된 장기적 소요 또는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한 중간단계로서 5년 뒤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실제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단기기획에 대한 기준과 지침을 제공한다. 이러한 중기기획이 가장 적용가능성이 높아 제일 많이 이용되고 있다.(3) 단기기획단기기획은 한 회계연도를 기간으로 하여 연차사업을 수행하기 귀하여 수립하는 기획으로서 중기기획에서 제시된 기준과 지침 가운데 목표회계년도의 연도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정부가 해야할 모든 사업을 포함한 각 분야별, 부처별 연차계획의 형태로 수립된다. 정부예산은 이에 입각하여 편성되고, 그 시행절차가 마련된다.2. 지역수준에 의한 유형(1) 지방기획도시나 농촌의 지역사회 단위 즉, 시, 군 단위의 기획을 가르킨다. 그러나 반드시 행정구역과 일치할 필요는 없으며 통상의 도시기획과 농촌개발기획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따라서 기획제도의 발달은 도시기획 부문에서 가장 현저하게 발달했으며, 최근에는 도, 농끼리의 격차 해소를 위해 농어촌지역개발기획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전형적인 사례로는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을 들 수 있다.(2) 지역기획지역기획은 대체로 광역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특정 지역의 중점적 개발과 지역끼리의 균형 있는 발전을 목적으로 수립되는 기획이다. 우리나라의 국토종합개방계획에 의하면 전국의 국토를 5대도시생활권, 17개재방도시생활권, 6개농촌도시생활권으로 설정하여 총 28개 지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설정된 권역들을 대상으로 한 개발기획이 곧 지역기획이며, 낙후지역의 개발, 특정 지역의 전략적인 개발 등을 목적으로 한 국가기획의 하위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3) 국가기획국가 전체를 지역적 다.(1) 사업별 기획사업별기획 작성방식은 개발기획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로서 공공투자사업들을 나열해 놓은 데 지나지 않는 형태이다. 민간부문의 투자사업들은 거의 포함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 사업들도 서로의 연계없이 계획기간 동안에 추진하려는 사업들을 망라해 놓은 데 불과한 계획을 말한다.(2) 통합적 공공투자기획이 기획은 사업별기획보다 진일보한 것으로서 공공부문의 투자만큼은 체계적으로 연결되고 총괄적으로 분석된 형태이다. 통합적 공공투자기획은 공공부문의 가용투자재원을 추계하고 이것을 분야별, 기관별로 배분한 다음, 제시된 사업들을 재원과 예상되는 효과에 비추어 우선순위를 설정한다. 각 사업들의 우선순위를 비교하여 기획기간 동안 추진할 사업을 선정하되 부문끼리 재원을 재조정하기도 하며 마지막에는 체계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공공투자기획을 작성하게 된다.(3) 종합기획종합기획은 기획의 강장 발전된 형태로서 통합적 공공투자기획과 민간 부문기획을 포함한 총괄적인 것이다. 종합기획은 거시적 관점에서 총괄적이고도 장기적인 대책을 강구하여 수립되어야 하며, 개별기획에 대한 합리적이고도 권위 있는 지침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4. 강제성 정도에 의한 유형(1) 중앙집권적 강제기획집권적, 강제적 기획방식은 소련과 중국, 동구권 국가등 대부분의 과거 공산주의 국가에서 채택되었던 경제기획체계이다. 이러한 체계아래에서는 아주 소규모생산수단을 제외하고는 모든 기업과 생산시설, 유통기구들이 국가에 의해서 소유되고 운영된다 거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들이 중앙기획기구에 의해서 배분되고 각 민간부문의 생산량과 상품가격, 임금에 이르기까지도 중앙이나 지방의 기획기구에 의해서 결정된다.(2) 민주사회주의기획민주사회기획은 경쟁적 사회주의기획이라고도 하며 어느 정도 개인우선적 임과 동시에 독재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혼합형에 해당한다. 이 체계아래에서의 자원배분은 직접적인 할당이나 배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여나 교환, 보조 등에 의해서 조정되며, 각 민간부문에 생산목표나 원료사용한도를 부 둔다.
불량국가를 읽고.......불량국가는 정치적 담론의 많은 용어들과 마찬가기로 두가지의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선별된 적국들에 대해 적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국제질서에 구속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국가들에 적용되는 것이다. 국제규범들이 언제나 엄격하게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국제사법재판소 판결등을 비롯한 다양한 규약이나 조약들을 자신들은 면제되는 양 행동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냉전체제 와해 이후로 더욱 심해졌으며 결국 미국의 패권주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의 오만함은 더 심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미국의 오만함은 하루 이의 일이 아니었다. 미국은 자신들의 국익이나 위협에 대해서는 국제법을 무시하고서라도 어떤일을 행하려고 해왔고 또 실제로 행해졌다.그 대표적인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이 있다.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사건이나 쿠바에 대한 지원, 코소보 사건등이 그것이다.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임은 1975년 12월 미국의 외교지원과 무기원조를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즉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에서 일어난 잔인한 인도네시아 정부군의 학살은 미국의 지원하에 이루어 졌다. 동티모르의 학살이 가장 심했을 때 미국의 무기지원은 최고에 달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진압에 쓰인 무기들의 대부분은 미국의 것이었으며 또한 미국으로부터 훈련을 받은 특공대들이 동티모르에서의 인종청소작전 을 벌였다. 이 당시 동티모르 전 주민의 85%인 75만명이 추방됨에 따라서 동티모르는 사실상 초토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학살극의 주범인 수하르토 장군이 통제력을 상실하고 혹독한 IMF의 명령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함으로써 미국의 은총을 잃기 전까지 미국은 수하르토 장군을 우리사람 이라고 표현하며 감싸 안았다.동티모르에서 이러한 학살극이 일어나고 있을 때 미국은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오리려 무기와 훈련으로 인도네시아군의 무력을 강화시켜 줄 뿐 이었다. 미국은 동티모르라는 조그맣고 힘도 없는 나라보다는 풍부한 자원과 전략적 위치로서 중요한 인도네시아를 원했다. 때마침 미국에 충성을 다하는 수하르토가 사실상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또한 동티모르가 독립을 하게 된다면 독립적이고 민족주의라는 바이러스 가 인도네시아에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도 탄압을 좌시하게 된다. 여기서 바이러스 란 어떠한 나라가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정부가 수립되게 된다면 그 주위의 나라들에게 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그 나라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듬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CIA나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이를 막으려 했다. 이는 동티모르뿐만 아니라 콜롬비아, 중남미의 여러 국가에서도 볼 수 있다. 미국은 호주의 항의와 국제사회의 압력이 증가하자 인도네시아에 그만 하라는 제스쳐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미국은 이후 호주가 주도한 유엔파견군에 대해 한 푼의 자금도 제공하지 않았으며 동티모르에서 학살의 증거를 찾아내려는 노력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호주의 리처드 버틀러 외교관은 동맹의 실상은 미국이 주로 그 자신의 이익과 위협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그에 비례하여 대응한다는 것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동티모르의 학살은 끝났고 독립을 이루었지만 그 이전에 일어났던 학살에 대해서 미국이나 서방의 강대국들이 취했던 자세에 대해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Ⅰ. 한국기획제도의 역사1.초기의 국가기획(1) 네이산 리포트한국의 국가기획의 시초는 국제연합한국부흥위원다(UNKRA)의 위촉을 받아 네이산 자문단이 작성한 한국경제재건계획이었다. 이 계획을 흔히 네이산 리포트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의 전후부흥을 위한 광범위한 5개년계획으로서 1954년 3월에 UNKRA)에 의해서 발표되었다나 한국정부가 이를 채택하지는 않았다.이 리포트는 이와 같은 종합적이 기획을 작성하게 된 목적으로서1재건기획의 각 부문끼리 균형을 이루도록 하며, 2외국정부의 대한 원조의 필요성과 타당한 용도를 제시하고, 3경제재건을 휘한 노력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며, 4최소한의 외국원조로 최단시일 안에 최대한의 부흥을 이룩하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이 리포트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한국경제의 보유자원에 대한 기술,2재건기획 제안,3재건을 위한 정책과 조직,4경제의 각 부문별 재건 기획등이다. 네이산 리포트는 한국의 국내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지원만 충분하다면 경제적인 자립을 이룰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여기에 몇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하였다. 즉, 우선 휴전이 준수되고 남북 사이에 적대행위가 그쳐야 하며 군사비 지출이 과도하지 않을 것과 다음에 자유세계국가들이 한국의 경제자립을 위해 충분한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과 한국정부가 경제재건을 위해 현명하고 민주적인 리더쉽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이 리포트는 재정과 금융정책, 국제수지, 주택, 보건, 교육, 행정 등 국가발전을 위한 전반적인 사항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소득계정과 산업별소요추계들 선진기획기법들을 적용한 종합적인 기획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나 네이산 자문단이 한국정부와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고 UNKRA에 의해 단독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 못함으로써 이 계획은 채택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2) 타스카 리포트1953년 4월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뒤 헨리 타스카를 단장으로1962)6·25동란의 휴전 후 한국경제는 해외원조에 크게 의존하여 점차 안정이 되어 갔으나 기간산업이 발달되지 못한 채, 불균형적이 산업구조와 무역수지의 적자는 자립경제의 성장을 어렵게 하였다. 이에 정부는 자립경제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게 되었다. 3개년 경제계획은 인적·물적 자원 등 각종의 국가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한국경제의 해외의존도를 줄이고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경제적 자립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공업화와 노동생산성의 증가에 역점을 두었다. 따라서 이 계획의 기본목표는 1제2차 산업을 확대함으로써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2고용증대를 통해서 실업율을 감소시키며, 3수출증대와 외국인투자를 촉진하여 국제수지를 개선하는 것 등이다.이는 한국정부가 스스로 수립한 최초의 국가 발전기획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수 있으나 정권유지에 부심하고 있던 당시 집권당인 자유당은 이 기획의 실시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1960년 4·19의거로 자유당정권이 붕괴됨에 따라 집행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단지 기획으로만 끝나고 말았다.(4) 5개년 장기개발계획5개년 장기개발계획은 민주당정부의 장면 국무총리의 지시에 의하여 산업개발위원회가 1961년 5월 10일 작성·완료한 계획이다. 이 기획은 앞의 3개년 계획의 자료를 기초로 하여 수립되었으나 종전의 기획들에 비해 보다 종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즉, 경제개발과 관련하여 금융과 재정, 경영분야의 관리기술의 증진뿐만 아니라 행정능력과 정부구조를 개선하는 문제까지 다루고 특히 국토건설분야에 큰 비중을 두었다. 이 기획기간 동안 연평균 6.1%의 성장을 이룩하여 GNP를 기준연도인 1960년의 약 23억불에서 목표연도인 1966년에 약34억불로 46.8%증가시킬 것을 목표로 하였다. 기획의 기본 목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공업화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데 두고 주요 선도부문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었다.이 기획은 5·16군사혁명으로 인하여 실행되지는 못하였으나 뒤이어 군사정부가 추진한 제 1차 경험을 토대로 보다 건실성과 신뢰성이 높은 계획으로서 경제성장의 실적이 목표치보다 크게 상회하였으므로 경제전문가들이나 일반국민들로 하여금 경제계획의 수립과 실시를 통한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에 대하여 한층 큰 희망과 자신감을 갖게 하였다.(3) 제 3차 계획(1972∼1976)제3차 계획은 정책기조를 1성장과 안정, 균형의 조화, 2자립적인 경제구조의 실현, 3국토종합개발과 지역개발의 균형에 두고 기본목표는 1농어촌경제의 혁신적 개발, 2수출의 획기적 증대. 3중화학 공업의 건설 등을 설정하였다. 3차 계획의 작성시에는 외국인자문의 참여의 범위와 역할이 감소되었으나 반면에 국내학자들의 참여가 크게 확대되었다. 특히 제 1,2차 계획에 비해서 정부부처 끼리의 협조와 국내민간학자들의 참여를 확대시켰다는 의미에서 보다 분권화된 계획이었다는 점을 하나의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제 3차 계획 기간 동안에는 국민총 생산액이 연평균 10.1%로 크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1973년부터 시작된 유류파동과 이에 따른 자원민족주의 의 대두로 해외부문의 인플레이션 요인을 확대·심화 시켜 받아들임에 따라서 계획기간동안 도매물가는 연평균 20.1%로 폭등하게 되었다.(4) 제 4차 계획(1977∼1981)제 4차 계획은 계획기조를 성장과 형평, 능률에 두고 기본목표로 1자력성장구조의 실현, 2사회개발을 통한 형평의 증진, 3기술혁신과 능률의 향상, 4산업구조의 고도화 등을 설정하였다. 이들을 달성하기 위한 주요 정책과제는 1투자재원의 자력조정,2국제수지균형의 달성.3산업구조의 재편과 국제경쟁력 제고, 4고용기회확대와 인력개발, 5새마을 사업의 확대. 6생활환경의 개선, 7과학기술투자의 확대, 8경제운용과 제도의 개선 등으로 설정하였다.(5) 제 5차 계획(1982∼1986)제 5차 계획은 정책기조를 안정과 능률, 균형에 두고 기본목표를 1경제안정기반의 정착을 통한 국민생활의 안정과 경쟁력 강화, 국제수지의 개선, 2지속적 성장기반의 견고화, 3고용기회의 확대와 소득의 증대, 4소득계층 계획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실상 중단하고 말았다. 김영삼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의 고도성장으로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경제는 지금 안팎으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1962년부터 국가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잠정중단하고 자신의 통치철학을 담은 신경제 5개년계획을 창출하였다.3. 신경제 5개년 계획(1) 1980년대 중반까지의 우리 경제우리나라는 1962년 경제개발을 본격적으로 착수한 이래 정부주도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함으로써 1988년에 이르러서는 국민총생산이 세계 17위, 무역규모는 세계12위의 중진공업국가로 부상하게 되었다. 즉, 지난 30년 동안 권위주의 체계 속에서 정부의 지시와 통제로 국내외의 가용자원을 정책적으로 필요한 분야에 동원시킬 수 있었던 것이 경제개발의 기본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이와 함께 양질의 풍부한 노동력과 비교적 저렴했던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효과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고도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2) 국내외의 여건변화1) 국제여건의 변화1 기술, 경제경쟁의 심화세계2차대전 이후 지속되었던 동·서 끼리의 이념 대결이 종식되면서 그 대신 국가끼리의 경제적 이해 관계와 경쟁이 치열해지는 기술과 경제전쟁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더욱 치열해지구 다극화되어 가는 국제환경에 적응하고 공동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인접국 또는 경제적 이해를 같이 하는 국가들이 결속하는 지역주의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한편, 선진국 사이에는 국경을 초월한 기업끼리의 전략적 기술제휴가 증대되는 반면에 개도국에 대해서는 자기나라 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경향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2 후발개도국의 추격세계경제질서가 재편되는 가운데 중국과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후발개도국의 추격도 빨라지고 있다. 이들 국가는 선진국의 해외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이 확대되는 가운데 낮은 임금과 왕성한 경제개발의욕을 바탕으로 노동집약적 제품 등에 있어서 우리의 수출 시장을 크게 잠식할 것으로 전망된다.2) 국내여건의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신경제 5개년 계획은 다가올 통일에 대비하여 그 경제적 비용을 감내하기 위한 경제적 기반을 굳건히 하는 데 또한 목표를 두고 있다.(4) 신경제 5개년계획의 추진전략1 신경제건설의 성패가 첫 100일에 달려있기 때문에 신경제 5개년 계획의 본격적인 추진에 앞서 그 디딤돌이 되는 신경제 100일 계획을 우선 수립하는 전략을 설정, 추진하였다.신경제 100일 계획은 개혁과 변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기 위하여 약화된 경제체질을 강화하여 개혁정책의 기반을 조성하고, 위축된 경제를 움직이는 경제로 전환시켜 모든 국민이 신경제건설에 동참할 수 있는 기초환경을 만들어 가는 데 목적이 있다.2 신경제의 발전원동력인 모든 국민의 참여와 창의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생활과 기업의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경제발전을 위한 모든 국민 각자의 기여에 대해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경제정의가 확립되어야 한다. 작은 정부를 구현하여 민간에 대한 정부의 지시와 통제가 줄어들고 땀 흘린 만큼 열매를 거둘 수 있을 때 진정한 참여와 창의가 우러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경제 활동에 대한 구제를 완화하고 경제정의를 구현하기 위하여 재정, 세제, 금융, 경제행정규제 등 경제제도 전반을 획기적으로 개혁해 나가는 한편, 제도개혁의 효과를 더욱 높이고 앞당기기 위하여 모든 경제주체에 대한 의식개혁을 제도의 개혁과 병행하여 추진해 나갈 것이다.(5) 우리 경제의 미래상1) 선진경제 기반구축국민생활과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불합리한 경제제도의 개혁과 경제 사회의식의 개혁이 이루어지고, 잠재성장능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과제들이 차질 없이 추진되야 한다. 또한 산업구조조정의 촉진과 기술개발의 확대, 기술인력의 양성, 사회간접자본의 원활한 공급등 현재 기업활동에 애로가 되고 있는 분야를 해결해 나가는 데 주력함으로써 새로운 성장의 원동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2) 효율과 형평의 균형있는 발전경제제도와 의식을 개혁함으로써 공정한 준.
1. 고이즈미 일본총리의 방북 계기"실무자끼리 아무리 얘기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겠습니까. 아예 양국 정상이 만나는 것이 더 빠르지 않겠습니까."지난 8월 평양에서 열린 북-일 외무성 국장급 회담에서 북한측이 느닷없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정상회담을 평양에서 열자고 제안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하루종일 북한의 의도와 정상회담이 가져올 득실을 따진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소득이 없을 경우 '북한에 놀아났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저녁 무렵에야 "북한의 변화 의지가 거짓이 아닌 것 같고, 의외로 좋은 결실이 있을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방북을 최종 결정했다.1) 고이즈미 방북 배경기본적으로 양측의 정치적 계산이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인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가능성이라는 대외적 불안감과 경제개혁 조치의 가속화라는 대내적 필요성 때문에 북한은 북-일 정상회담이라는 '깜짝 카드'를 뽑았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당분간 일본과의 정상급 회담 기회를 찾기 어려운 데다 계속되는 미국의 압박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과 관계개선의 물꼬를 튼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의도라는 것이다.고이즈미 총리가 방북을 결심한 것은 국내 정치적 고려가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일본 정계의 한 소식통은 "경제불안과 지지율 하락으로 집권기반이 불안해짐에 따라 대북 외교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북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고이즈미 총리의 지지율이 10%나 상승한데서도 그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2) 무얼 노리나북한은 경제재건을 위해서는 서방과의 관계개선이 불가피하고, 이를 위해서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일본도 국교정상화를 통한 냉전구도 종식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북한과의 대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남북, 북미 대화와 보조를 맞춘다는 전략이다.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도 "전후 양국관계를한반도 등 동북아의 긴장은 획기적으로 완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또 북한의 개방과 국제사회 복귀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이 이번 회담을 통해 노리는 것은 회담 상대인 일본과의 관계보다는 대미관계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2. 방북 전의 북한과 일본과의 관계일본의 대북 접촉이 시작된 것은 1965년 국교를 정상화한 한국보다 훨씬 늦은 1981년 3월 북한 노동당과 일본의 동북아시아 지역 반핵, 평화지대 창설 공동선언을 발표한 때부터였다. 하지만 북일관계는 1983년 랑군 폭파 사건과 1988년 1월 김현희의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으로 수년간 공식적인 접촉이 없이 냉각되었다. 그러다 소련이 붕괴하고 한국의 북방 외교가 본격화되면서 1991년 북일 교섭이 재개되었다. 하지만 일본측의 이은혜 납북 문제와 북한의 핵 문제를 제기하자 북한은 다시 회담을 중단시켜 버린다. 일본과의 수교협상 중지 후 1993년 3월 불한이 IAEA탈퇴를 선언하자 수교협상이 전면적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이 후 북일 비밀 접촉이 이루어지던 1995년까지 북한과 일본과의 관계는 냉각되었다. 1995년 재개된 북일 접촉은 일본의 쌀 지원 약속, 일본인처 일본 방문 실현, 경수로 협상 타결이라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1998년 8월 북한의 광명성 1호 발사로 다시 한번 회담이 중단되게 된다. 2000년 4월 제9차 국교 정상화 회담이 7년4개월만에 개최된다. 그리고 2002년 북한과 일본의 수교 협상은 북일 정상회담이라는 급 물살을 타게 된다.3. 방북 과정▶1990.9 일본 자민, 사회당 의원단 방북, 정부 간 수교 교섭 추진 합의▶91.1 평양에서 제1차 국교 정상화 회담▶92.11 제8차 국교 정상화 회담에서 '납치 일본인 이은혜' 문제로 북한이 반발, 교섭 결렬▶97.9 북.일 간 첫 적십자 회담▶97.11 북한 거주 일본인처 일시 귀국 일본 의원 대표단 방북▶97.12 2차 북.일 적십자 회담▶99.12 무라야마 전 총리 등 일본 의원 대표단 방북▶2000.4 제9차 국1.5 김정남(김정일 장남) 추정 인물 일본 입국▶2000.12 일본, 북한 배 추정 괴선박 동중국해에서 격침▶2002.4 북.일 적십자 회담(베이징)▶2002.7 북.일 외상 회담(브루나이)▶2002.8 북.일 적십자 회담(평양)▶2002.8 북.일 외무성 국장급 회담(평양)▶2002.9.17 북.일 정상회담 평양에서 개최4. 방북 내용[공동선언문 전문]일·북 정상은 양국 간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현안을 해결해 실질적인 정치·경제·문화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양국의 기본이익과 일치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전에 크게 기여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1) 쌍방은 이 선언문에 담긴 정신과 기본원칙에 따라 빠른 시간 내에 국교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이를 위해 2002년 10월에 국교정상화 교섭을 재개한다. 쌍방은 서로 간의 신뢰관계에 기초, 국교정상화를 이루는 과정에서도 양국 간 현안에 대해 성실하게 임한다는 강한 결의를 밝힌다.(2) 일본은 과거 식민지 지배에 의한 조선인들이 엄청난 손해와 고통을 입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국교정상화 이후 쌍방이 합의한 적절한 시간이 지난 뒤에 무상자금협력, 저금리 장기차관 제공이나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적인 지원 등 경제협력을 실시한다. 또 민간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국제협력은행 등에 의한 융자·신용 제공 등을 실시하는 것이 공동선언의 정신에 일치한다는 것이 기본인식이다. 이를 위해 국교정상화 협의 과정에서 경제협력의 구체적인 규모와 내용을 성실하게 협의하겠다.양국은 국교정상화를 위해선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일에 대해선 국가와 국민이 모두 재산청구권을 포기한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 국교정상화 교섭에서도 이에 대해 구체적인 협의를 한다. 재일조선인의 지위에 관한 문제와 문화재 문제에 대해서도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성실하게 협의한다.(3) 양국은 국제법을 준수하고, 상호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로 확인했다. 또 일본국민의 생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확인했다.(4) 쌍방은 북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 이 지역의 관련국들 사이에 서로의 신뢰에 기초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관련 국가들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지역의 신뢰구축을 위해 (안보질서) 틀을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쌍방은 한반도의 핵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 모든 관련 국제합의를 준수하기로 했다. 또 핵 문제와 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안전보장상 모든 문제에 관해 관련국가 간의 대화를 촉진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북한은 이 선언의 정신에 따라 미사일 발사 유예를 2003년 이후에도 또 연장시킬 의사를 표명했다. 쌍방은 안전보장에 관한 문제에 관해 협의를 하기로 했다.5. 앞으로 북일외교와 북미외교1) 북일외교 방향일본 외무성 관리들은 21일 중국베이징에서 북한 관리들과 향후 양자회담일정을 논의하기 위한 비공식 협의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접촉에서 납북 일본이 유가족 및 친척들의 북한 방문 시기와 방법, 양국 관계 정상화 협상 재개 일정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측은 납북자 가족들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북한을 방문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또한 일본측이 납북 일본인 문제를 거론하려는 상호 안보자문기구의 첫 회의 개최 일정도 논의할 예정이다.이번 북일 정상회담에서 보면 김정일 위원장이 무척이나 서두른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북한의 어려운 경제상황과 미국의 대 테러전쟁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압력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북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실무 협상의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앞으로 일본은 더욱 냉정하게 나가고 북한은 서두를 것 같다.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재개의 최대 걸림돌은 일본인 납치사건이다.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에 대해 시인하고 사과함으로써 해결되는 듯 했으나 납북된 일본인들에 대한 정보가 조작, 은폐되었을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수교를 개시하겠다고 말해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일본의 악화된 여론은 북일외교 협상에서 일본이 협상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카드가 될 것이다.이번 북일 정상회담 성공이후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100억 달러 정도의 지원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인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지원조건을 까다롭게 함으로써 일본의 북한 지원문제는 북미간의 관계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2) 북ㆍ미외교미국은 이번 북일 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대북 강경 노선으로 급선회하였으며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북미 관계는 악화되었다. 하지만 이번 북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간에도 대화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 북미 대화의 손짓은 북한이 먼저 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미국과의 대화창구를 열어 놓고 있으며, 이를 미국에 전해달라"는 요청을 함으로써 이루어 졌다. 또한 미국이 문제삼았던 미사일 발사실험과 핵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미국과의 대화를 희망했다.이에 미국은 10월 3일부터 5일까지 제일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에 파견하기로 하였다. 미국은 구체적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 탄도미사일 등 미사일개발 및 수출 ▲ 탈북자에 대한 인도적인 처우 ▲ 휴전선 인근에 집중된 북한의 재래식 군비문제 ▲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평양지도부의 확실한 태도변화 ▲ 신뢰구축 등의 의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불량 국가(rogue country)로 낙인을 찍은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는 한편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시켜 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또 ▲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의 해제 요구 ▲ 식량지원 ▲ 2003년 완공목표인 경수로 건설지연에 따른 보상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미국의 이런 특사 파견은 한국과 일본의 적극적이 대화 종용, 신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