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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비판이론 평가B괜찮아요
    1. 문제 제기일반적으로 사회 철학은 "사회 과정의 기초가 되는 원리에 대한 철학적 비판"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회 과정은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벡크가 지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사회, 사회적 및 정치적 가치, 국가 그리고 권력과 권위, 법과 원리, 정치적 의무, 정의 등의 요소가 복합되어 있는 것이 사회 과정이다. 따라서 사회 과정은 사회제도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파악되지 않으면 안 될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비판 이론의 등장 배경에는 (1)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2) 당시의 경제 공황 (3) 유태주의 (4) 막스의 유물변증법사관 등을 말할 수 있다. 이 사회 비판 이론은 호르크하이머에 의하여 등장하였다.2. 초기 비판 이론의 특징」초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으며 (1) 전체적 체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다는 것 (2) 메타 비판이 자체의 성격상 체계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 (3) 비판 이론의 변화가 사회 과정의 변화 및 그의 사회 인식의 변화를 뜻한다는 것을 암시하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호크 하이머의 초기의 이론은 다분히 막스주의적 내지는 막스의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초기의 목적은 "가능한 통찰의 상태에 따라서 사회생활의 과정을 파악하는" 탐구이다. 그러므로 완성되고 고립된 현실 이론은 불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독단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는 모든 탐구 과정을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으로 본다. 이렇게 하면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생산과 재생산이다. 그러므로 그는 헤겔의 역사관을 배격하며 역사를 이성, 본질 또는 정신을 가진 것이 아니고 사건들의 개념적 총체로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막스의 유물변증사관을 그대로 계승하는 하이머는 자신의 이론에 심각한 난점이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역사라는 것은 산업적이며 기계론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인 다양한 요소의 산물이라는 것이다.3. 중기 이론중기에는 그는 (1) 마르크스 이론과의 결별을 (2) 자신의 주장의 독립성을 추구하였으며 (3) 염세주의의 성격을 가지며 후기 이론의 하나의 과정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는 아도르의 정신분석학을 비판 이론에 채용하였다. 도구 이성을 비판한 점, 도구 이성과 연관하여 전통이론과 비판이론을 대립시킨 점과 계몽의 성격을 정의 한 점이 중기 이론의 학문적인 성과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는 폐쇄적인 사회 과정의 원인이 이성의 도구화에 있다고 보았으며 , 이러한 이성 도구화는 바로 전통이론을 기초로 삼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비판 이론을 엄밀한 학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을 한다. 따라서 실천문제를 해결하는 이런데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전통이론의 배경을 업고 이성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소멸시키고자 시도하였던 것이다. 이성 자체란 인간의 해방과 자유를 보장해 주는 인간의 능력을 일컬으며, 결코 인간의 활동방식을 제한시키고 폐쇄시키는 전통적인 의미의 수학적, 자연 과학적인 이성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계몽 또한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계몽은 우선 인간 해방을 이루려고 하였지만 나중에는 더 이상 초기의 의미를 지니지는 않았다. 단지 기술 지배의 역할을 행하며 따라서 결국에는 지배기술과 동의어가 되고 만다. 따라서 계몽은 맹목적인 지배원리를 제공하며 궁극적으로 전체적인 대중기만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계몽은 비판이론적인 이성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가면을 쓰고 이성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인간해방 및 자유의 기능성을 제거함으로써 끊임없이 폐쇄 사회를 조장한다. 계몽은 개인에게도 도구 이성을 제동함으로써 개인은 이성을 자기 유지에 필요한 도구로 여기고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신화를 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모든 이론을 폐쇄적인 것으로 몰아가는 것은 하이머의 단편적 사고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전통 이론을 기초로 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몽이 지배기술의 역할을 행한다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인정이 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 해방을 위한 계몽이 단지 도구 이성적으로만 보는 호크하이머의 입장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는 것이다.4. 후기 비판이론후기 이론에 있어서의 가장 큰 변화는 결국 이성의 도구화는 포기된다는 것이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영향 아래에서 학문은 기술세계의 생산력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세계의 허위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본다. 현실이 모순에 가득 차 있고 이론이 현실을 해결 할 수 없다면 이론은 결국 완전하다고 할지라도 이론 자체로 단절된 것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후기 이론데서 그는 진리에 대한 사색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하이머의 이론에서 그는 항상 일관된 입장을 취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의 비판이론은 체계성을 잃게 되며 철저한 사회이론도 그렇다고 철저한 메타비판도 되지 못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그가 중기의 비판이론에서 제시한 이론자체의 엄밀성은 그의 후기 비판이론의 염세주의적인 색채에도 불구하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후계자에게 이론과 실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1.11.07| 3페이지| 1,000원| 조회(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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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철학 평가D별로예요
    1. 철학에 있어서의 소외의 문제철학에서 소외가 본격적으로 문제시되기 시작한 것은 헤겔에서부터 시작된다. 의식으로부터 자기 의식이 전개될 때 자기 의식은 이미 의식에 대하여 소외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씨앗과 싹의 관계를 놓고 볼 때 싹은 씨앗에 대하여 소외된 것이다. 특히 소외는 헤겔의 노동 개념에서 잘 나타난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볼 때, 노예는 주인을 위하여 노동하므로 노예의 노동은 더 이상 노예의 것이 아니고 소외된 노동이다. 철학에 있어 소외 개념이 헤겔로부터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고 할 것 같으면 철학에서 그것이 절정에 달한 것은 다름 아닌 마르크스에게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의식의 자기 소외를 정치 경제학의 차원에서 받아 들여서 노동과 소외를 밀접히 연관시킨다. 마르크스의 정치 경제학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에 있어서의 인간의 소외는 노동자의 노동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생긴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관점으로부터 소외를 고찰한다. 인간의 물질적인 자유가 조직되는 터전인 사회적인 조건들의 영역은 바로 사회적 노동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성립되는 최초의 과정"이며,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은 자기의 행위를 통해서 자연과의 물질 대사를 중재하고, 통제하고 조절한다. 인간의 의식 형성과 자유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물질적 조건은 노동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 관계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관계는 바로 사회 안에 살고있는 개인들이 처해 있는 물질적 조건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런 물질적 조건의 전제하에서 개인들의 사회적이며 개별적인 자유는 발전된다. 개별적인 실존은 그가 처해있는 사회의 물질적 조건들의 구조를 전제로 한다. 즉 사회는 개별적 실존의 실존조건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교적인 동물일 뿐 아니라 사회 속에서만 개별화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실존하고 있는 사회의 물질적인 조건들은 우선 필요한 음식물의 생산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이다.2. 자본가와 노동자마르크스의 사회 철학의 배경은 불란서 혁명, 영국 경제학 그리고 독일 철학이다. 그는 불란서 혁명으로부터 인간해방, 곧 자유를 받아들였으며, 영국 경제학으로부터는 자본주의 경제의 생산 관계를 고찰하였고, 독일 철학에 있어서는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도입하였다. 노동자의 삶을 좌우하는 수요는 부자와 자본가의 기분에 달려있다. 사회의 자본이 몰락하던가 아니면 발전하든 간에 마르크스에 의하면 곤궁 속에서 허덕이는 것은 노동자이다. 만일 사회의 자본이 발전함으로 인하여 노동 임금이 높아지면 노동자는 모든 시간을 희생하여 노예 노동의 상태로 전락하여 버린다. 즉 "노동자의 고유한 노동은 더욱 더 그에게 낯선 소유로 나타나며 그의 존재와 활동의 수단은 더욱 더 자본가의 수중으로 집약된다." 마르크스의 이 말은 자본의 축적은 노동 분화와 아울러 노동 시간을 증대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지주에게 있어서도 사유 재산이 증대되어 결국 "독점 형식으로" 산업적인 토지 소유가 성립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견해이므로 그의 입장에 의하면 농민이 "최소의 것"으로 환원되어 노동 임금이 저하되면 마침내 그것은 "필연적으로 혁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마르크스는 아직 본격적으로 사회혁명에 관한 이론을 제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경제철학원고"의 첫 번째 원고에서 농민에 의한 사회혁명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동시에 노동자에 의한 혁명도 시사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3. 노동자의 소외문제마르크스가 보기에 이 세계는 비인간화된 세계이다. 마르크스는 독단적으로 세계를 기대하고자 하지 않고 지나간 것을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자 한다. 즉 그는 비인간화, 말하자면 소외를 해명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소외는 인간의 근원적인 현상이므로 노동자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오직 생산관계에서만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마르크스는 당시와 동일하게 노동을 정의하는 것이 무리일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도 암암리에 인정하고 있었던 것처럼 인간 의식에 의하여 자신과 세계를 이분화 할 때 그는 자신의 소외를 인식하게되는 것이다. 이렇게 착취당하고 소외된 노동 양식과 생산양식 하에서는 결국 두 개의 사회적 계급이 가진자와 못 가진 자로 서로 대립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생산방식이 생기게 되는 원인은 사회적인 분업으로 보고있다. 왜냐하면 분업과 더불어 "동시에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불평등한 노동 생산물의 분배를 초래했다. 이런 불평등한 노동의 분배는 사회의 양 계급 사이에 물질적 자유를 조직할 기회를 불평등의 소수의 수중에 사회적으로 생산된 부가 축적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다수의 생산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팔 때 지불되었던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이제 소수의 유산 계급은 생산 수단에 대한 처리권을 통하여 노동 대중을 지배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생산 수단이 바로 노동 대중이 지니는 힘의 물질적인 토대이기 때문이다.4. 마르크스의 변증법의 노동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적 노동은 노동의 긍적적인 부분만을 보구 부정적인 부분은 보지를 못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헤겔 자신만이 알며 인정하는 노동은 추상적이며 정신적인 노동이다" 마르크스의 지적대로 헤겔은 근대 국민경제의 입장에서 있으므로 노동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헤겔의 이론을 마르크스가 도용함에 있어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는 소외라는 개념이 반영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질적인 자유 조직이 민주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근본 조건은, 기존의 사회 상황에 대한 철저한 비판으로서의 이론과 혁명적인 변혁으로서의 실천을 매개로 삼아야 한다. 매개된 근본 조건은 노동에 대한 근본 조건은 노동에 의해 물질적으로 조직된 사회적 자유의 가능성을 민주적으로 획득한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철학, 즉 억압받는 대중에 봉사하는 철학과 혁명적이고 해방적인 실천은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 매개한다. 즉 이런 해방 작업의 머리는 철학이고 그 가슴은 프롤레타리아이다. 철학은 프롤레타리아가 지양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으며 프롤레타리아는 철학이 실현되지 않고서는 지양될 수 없다.
    인문/어학| 2001.10.29| 4페이지| 1,000원| 조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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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철학이란? 평가B괜찮아요
    1. 과학철학이란 무엇인가?철학은 원래 만학의 여왕(Queen of Sicences)라 불리었다. 모든 학문의 기원을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역사가 발전하면서 물리학, 생물학, 화학의 체계가 생겨나왔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심리학, 사회학 같은 분야도 독립적인 학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정치학도 고대에는 철학자의 몫이었다. 그 증거로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초기의 철학자들의 저서가 다룬 주제가 무척 광범위함을 들 수 있다. 플라톤의 은 이른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가 무엇이겠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즉 플라톤은 엄밀한 의미에서 최초의 정치철학자였던 것이다.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보다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 탁월한 철학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의 제목만 보아도 그것이 증명된다. 그는 , 과 같은 순수 철학적인 저서를 지었을뿐 아니라 , 에 관한 관심도 있었고, 인간의 영혼에 대한 와 같은 심리학적 색채를 띤 책도 썼다. 그의 형이상학은 가히 그를 최초의 생물학자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만큼 선구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철학의 광범위한 영역은 차츰 분업화되기 시작하면서 여러 학문들이 가지를 치면서 분과학문화 되는 길을 걸었다. 물론 상당 기간 동안 철학자는 동시에 과학자이고 수학자이라 말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분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 근대에 이르러서이다.물론 최초의 과학자가 누구였는가 묻는다면, 우리는 그것이 근대적 의미의 과학자인지 아니면, 과학의 독립분과화 과정이 일어나기 이전의 전통적인 의미의 과학자인지를 구분하여야 할 것이다. 확실히 플라톤 이전에도 과학자라 불릴만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른바 자연철학을 그들의 주 관심사로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만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관심이다. 탈레스와 같은 사람은 만물은 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또 근대과학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입자이론(분자설, 원자설)도 사실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데모릴레오와 뉴튼에 의한 과학혁명 이래로 자연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고,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그리고 양자론의 출현으로 세계와 우주에 대한 이해가 과거 어느때 보다도 깊어졌다. 게다가 18-9세기를 통해 불어닥친 산업혁명과 기술문명의 도래는 인간의 삶에 과학의 힘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게 되었는가를 잘 보여주게 되었다. 철학자들은 그러한 엄청남 힘을 발휘하는 과학이라는 것의 정체에 대해 철학적으로 연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20세기의 역사적 배경1920년대 초반 비엔나 대학에서 수학자, 철학자, 물리학자, 사회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모임을 결성하고, 매주 모여 과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새로운 철학의 정립을 시도하였다. 이 모임은 이른바 비엔나 써클(Vienna Circle)로 명명되었으며, 공식적인 대표자는 슐릭(Moritz Schlick)이었으며, 그 외에 카르납(Rudolf Carnap), 노이라트(Otto Neurath), 한(Hans Hahn), 파이글(Herbert Feigl), 바이스만(Friedrich Weismann) 등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20세기초 러셀과 프레게에 의해 확립된 새로운 논리학과 과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모든 학문을 하나의 통일된 학문으로 만드려는 원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18세기 계몽주의를 진정으로 완성시키는 작업으로 보았는데, 바로 합리적 이성의 산물인 과학에 의해 세계를 바라보려는 시도였다. 과학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물리학으로 모든 학문을 환원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러한 비엔나 써클의 의도는 곧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로 전개되었으며, 이는 20세기 영미철학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논리실증주의는 철학을 논리적으로 명료한 체계로 이해하려는 시도이며, 실증주의적 과학관을 적용함으로써 종래의 철학과는 매우 색다른 분석철학이 귀결되었다. 그래서 좁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우리가 다룰 과학철학은 이러한 분석철학의 한 분과로 이해되어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실증주의자들은 단순히 검증될 수 없고 반증될 수 없는 이론은 모두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심지어 자연 과학의 맥락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실증주의의 두 번째 이념은 감각적 관찰이 모든 참된 지식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실증주의는 때때로 종교와 형이상학을 공격하였다. 그리고 자연 과학과는 반대로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탐구는 진정한 지식이 될 수 없음을 보이려고 하였다. 따라서 어떤 폭넓은 입장이 종교와 형이상학을 포괄할 수 있다 할지라도 실증주의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근대 과학은 관찰 불가능한 것에 관한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세 번째 실증주의는 흄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념은 인과에 대한 논의는 사건 형태들 사이의 항상적 결합에 대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해킹도 지적하였듯이 뉴턴 자신도 중력에 대한 야심찬 태도를, 물리적 필연성과 관련하여 철학적으로 고무된 회의주의에로의 길을 활짝 여는데 일조하였다. 확실히 라이프니치를 포함한 뉴턴의 동시대인은 중력 이 세계에 존재하는 관찰된 규칙성을 지시하는 간접적인 방식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중력은 설명될 수도 없고 해명될 수도 없는 마술적인 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그것을 거부한다.네 번째 이념은 원인에 대한 실증주의자의 적대감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과학에서 심층적 설명의 역할과 기능성에 대한 불신이다. 만일 물리적 필연성에 의해 사건이 발생하지 않고 또한 세계 안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이 단지 사건들의 형태들 사이의 단순한 규칙성뿐이라면 우리가 설명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은 더 넓은 영역에 걸친 규칙성을 가정하는 것뿐이다. 더 넓은 패턴 안에 존재하는 현상이 현상의 실재와 관련을 맺어야만 한다거나 맺고 있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만일 심층적인 차원에서 필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차원에서도 필연성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기 전에 어떤 논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기 때문이다. 관찰 불가능한 존재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일단은 이성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입장은 전적인 회의주의나 데카르트주의적인 회의주의와는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이 실증주의자들의 주장이다.여섯 번째 이념은 실증주의자들은 형이상학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반실증주의자들이 경험적인 이론을 구성함에 있어서 형이상학적인 관념들이 인식적으로 의미있게 개입된다는 사실에 주의를 돌릴 경우, 실증주의자들은 발견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형이상학의 의의를 경험적인 연구를 인도함에 있어 단순히 유용한 설명의 형식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지적하는 것 이상으로 그것에 대해 우리는 언급을 함에 망설이게 된다. 예를 들면 원자론과 기계론과 같은 어떤 형태의 설명이 실재 세계를 설명함에 있어 왜 그토록 고도로 성공적인 것으로 증명되었는가에 대한 설명해야만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사실상 실증주의자와 실증주의에 대한 실재론적 반대자 사이의 논쟁은 하나의 어떤 이론이 특정 시점에 대한 실재론적 반대자 사이의 특정 시점에서 관찰적인 데이터에 대한 설명이라는 사실로부터 이끌어 내려고 라는 결론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3. (1) 포퍼의 과학철학귀납적 방법과 귀납적 증명이 안고 있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을 제공한 철학자가 포퍼이다. 포퍼는 뉴턴의 이론과 같은 대담하고 포괄적인 이론을 생산하기 위하여 자유로운 상상력을 이용한다. 이런 이론은 세계의 존재 방식에 의해 그 이론은 가능한 엄격한 테스트를 거치고 문제가 있는 이론은 폐기된다. 과학 이론의 반증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포퍼는 이론의 증명과 반증 사이의 비대칭에 주의를 기울인다. 모든 행성은 타원형 궤도로 운행한다는 보편 언명은 결정적으로 증명될 수는 없다. 우리는 결코 모든 행성을 관찰하거나 그것들이 항상 그것들이 타원형으로 운행하는지에 관하여서는 우리는 관찰할 숭 없다. 이렇듯 기존의 증거에 의해 반박당하지 않는 이론을 허용하면서, 반짓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제한 조건과 예외로 둘러싸여 있는 이론보다는 테스트 가능성이 높다. 이 이론은 세계에 의해 거짓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포퍼는 과학의 확인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확인의 정도는 항상 다른 이론의 성공에 대해 상대적이며, 단순히 과거 성취에 대한 보고라고 주장한다. 엄격한 테스트를 통과한 이론만이 그는 미래에도 성공적인 이론이 라는 것을 명백한 확인의 정도를 귀납적인 확증의 정도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우리가 과학에서 얻으려는 것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미래에 행하는 행동의 기초를 확립하는 것일 것이다. 포퍼는 자연의 조작이나 통제를 과학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 점은 베이컨적이라기 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다른 란 이론에 대한 실용적인 선호라고 부른는 것을 우리가 과학에서 정당한 방식으로 유도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곧 우리는 우리가 행동을 해야 하는 경우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합리적인 근거 위에서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대담한 가설을 제안하고 그 가설을 엄격하게 테스트하는 것보다 더 합리적인 방법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 방법의 결과에 의존하여 행동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이론이 과거에 그 이론이 수행한 거에 비추어 미래에 수행할 합리성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포퍼는 인정한다. 이 점에서는 포퍼주의자들과 그들에 대한 비판자들 사이의 논쟁은 약간 비현실적인 분위기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포퍼주의자들은 우리가 가장 잘 테스트된 이론에 근거하여 행동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할 것이고, 반면에 비판자들은 우리가 반대할 이유가 없다 는 것 이상의 다른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라고 주장할 것이다. 포퍼주의자들은 우리는 어떤 이론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곧 우리는 높은 건물에서 내려올 때 계단을 이용하는 것보다 창문을 이용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라는 이론은 반박되오T지만 계단이 안전하다는 이유는 반박되지 않았기 때문다.
    인문/어학| 2001.06.13| 7페이지| 1,000원| 조회(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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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이상학 평가D별로예요
    형이상학의 제 1 원리로서 일자의 등장· 일자는 존재 이상이기에 하나의 대상이 아니다.플로타누스는 모든 것이 일자로부터 나오는 이유는, 그것안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만큼 존재가 있기 위해서 일자 자체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아버지어야만 하며, 그래서 존재는 그의 첫 아이인 것이다.· 일자가 존재이전인것의 필연성 ­ 각각의 가별적 존재는 통일성 자체를 분유하지만 통일 성 자체는 아닌 하나의 개별적 단위.· 존재가 있기 위해서는 일자 자체가 존재가 아니라 존재는 산출하는 것이어야 함.· 인식과 존재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일자는 복합체인 우리로서는 사유불가능 그리고 스스 로도 어떤 자기 인식도 갖지 않는다. 만약 그러한 인식을 갖는다면 그것은 여러부분으로 된 하나의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일자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 이다. 왜냐하면 너무도 선하여 어떤 것일수가 없기 때문이다.일원론과 범신론의 문제· 제 1원리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있지 않다는 사실.플로티누스의 교설을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기독교의 형이상학은 지 1 원리가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함으로 범신론은 폴로티누스 교설과는 모순된다. 또 있지않 은 제 1원리의 존재를 세계가 분유하는 일은 있을수 없기에 일원론과도 구분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나타난 존재와 일자제 1 원리가 있다고 가정 - 당신이 있기(Thou att)때문이 아니라면 무엇인가?를 플라톤 적인 일자로 보면 - 당신이 있지 않기(Thou att not)때문이 아니라면 무엇인가로 고쳐야 될 것이다.일자에서 유출된 최고 지성이 곧 존재· 존재와 그 자체로는, 존재를 갖지 않는 제 1 원리사이에는 존재에 관한 어떠한 공통성도 있을수 없다. 그러나 모든 존재들이 그것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모든 존재들인 것이 아 니라 오히려 그들 중의 어떤 것도 아니기에 그들 모두를 유출하게 될 바의 것이다.· 존재와 인식은 하나인가?플로티누는 - 있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라는 파르메니데스의 정의를 사 용한다. 사유 가능하다는 것, 즉 있다는 것은 하나의 가능적인 사유 대상이기 위해서 필 연적으로 요구되는 속성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알려진다는 한 실제로 있 다거나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는 입장이 아니라 가지적 관계들이 그것으로부터 존재가 만 들어지게 되는 그런 재료라는 것이다.· 플로티누스의 누스 - 통일성에 녹아있는 모든 가지성. 일자 다음에 즉시오는 일자의 가 지성 전체 플로티누스가 보는 신.· 어떤것에 대해 자기적 성명을 시도하면 다수의 용어와 관계를 사용해야 하고 이것은 사 물의 통일성을 상실시킨다. 통일성을 회복시키려 해보아도 가지적 관계의 수를 증가시키 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존재는 일정한 한계안에 고정되고, 거기에 머물러야만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안정적 조 건이 가지적 볼질중에 있어서 이 본질들의 정의이고 형상이다.· 안정적 조건으로부터 본질들은 마찬기로로 자신들의 실재성을 이끌어 낸다. 존재가 실존 적인 면에서 제 1원리로 기여할수 없다는 것을 증명.
    인문/어학| 2001.06.03| 3페이지| 1,000원| 조회(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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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상학과 문화주의
    아방성,이방성,상호 문화성1.중심주의들에 대한 비판1)자아 중심주의와 자기 문화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상호 주관성과 상호 문화성의 차원에서 타자나 이방적인 것을 다루는데 있어서 우리는 중심주의로는 자아 중심주의와 자기 문화 중심주의를 들수 있다. 자기 문화 중심주의는 서구 철학의 전통에서 발견되는 자아 중심 주의를 자기 종족 내지는 민족으로 확대한 것이다. 19세게와 20세기에 나타난 자아 중심적 철학의 특징은 타자 경험을 감정 이입 이론이나 유추 이론에 근거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데 있다. 늘 우리의 경험 도식에 의해서 이해되는 알려진 이방성, 즉 아방적인 것의 단순한 변형으로써 이방적인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아 중심주의에서는 자아에 속하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이 자아를 중심으로 하는 주변으로 바뀌게 된다. 자기 문화 중심주의는 자기가 속해 있는 종족에 중심을 두어서 자기 문화의 생활 형식들, 규범들, 가치관을 그리고 종교적 확신 등을 유일하게 참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경험에서 자아가 타자들과 동일화하는 것을 넘어서 한 그룹의, 한 종족의, 한 민족의 집단을 우리로 확대된 것을 뜻한다. 이것은 동시에 다른 문화에 대해서는 자기 종족 우월주의를, 반대로 다른 민족에게는 자기 문화에 대한 열등 의식을 심어 줄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철저한 문화 상대주의에 있지는 않다. 풍요로운 문화가 열등한 문화보다 모든면에서 우월하다고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자아 중심적 철학이 타자의 이해나 타자 구성을 자기의 경험으로부터 유추해서 이루어지듯이 자기 문화 중심주의도 이방적인 것과 이방성을 자기 문화의 도식에 의해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자아 중심주의나 자기 문화 중심주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타자나 이방성을 자기 문화의 도식에 의해 이해하게 된다.2) 자아 중심주의와 자기 문화 중심주의의 대체로써 로고스 중심주의와 이에 대한 비판자아 중심주의나 자기문화 중심주의가 로고스 중심주의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플라톤 철학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상대주의자인 소피스트들의 주장을 극복하려 하였다. 상호 문화성이라는 측면에서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는 이방적인 전통을 아테네의 자기 문화 중심주의에 대하여 대안으로 제시하는 모험을 가맹하도록 한 것이다. 아테네인들이 갖고 있는 반변방인에 대한 태도와 연결되어 있는 이 보편주의적 로고스 중심주의는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로고스에 의해서 모든 자아적인 것과 이방적인 차이를 포괄하는 절대적인 이성으로써의 로고스를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소크라테스-플라톤의 보편주의적 로고스 중심주의에서 방법론으로 채택된 '대화법'에서는 여기서 논의되는 상호 문화성에 '상'라는 개념이 갖는 '사이' 개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플라톤적인 철학적 대화 이전부터 전제된 변하지 않는 이념들과 그 체계를 찾아가는 공동적인 철학 작업이다. 따라서 이 대화는 처음부터 궁극적인 최고선 에 일치하지 않는 것을 배제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사이 하나의 로고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하나의 로고스, 즉 독백이다.2. 대안으로서의 상호 문화성1) 후설에 있어서 두 가지 대립되는 상호 문화성의 길(1) 이방자에 대한 휴머니즘 길타자가 처음의 인간이지 내가 아니다 라고 훗설은 이야기를 하였다. 훗설은 이방적인 것에 대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설명에 머물지 않고 이방적인 것 에 고유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즉 이방성 은 하나의 근원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확증할 수 있는 접근 가능함 에 기초한다. 즉 그의 설명은 타자를 자신의 인식 도식에 의해 폭력적 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자의 권리를 인정해주고 이방자의 인식 도식에 의해서 이방자를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2) 자아 중심주의와 유럽 중심주의훗설에 의해서 발견된 페러독스에 의해서 지지된 이방자의 휴머니즘은 그라 이 패러독스를 계속 진행시키지 않음으로써 끝난다. 이방적인 것은 원초적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경험,즉 원래 스스로 부여하지는 않지만 지시된 것을 일관되게 확증하는 경험의 그 기초 지어진 방식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이방성은 아방성에 의해서, 즉 고유한 문화적 생활 형식들, 규범들, 세계관들에 의해서 궁극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되며, 따라서 자신의 문화적 형태들로는 완전하게 담아낼 수 없는 진전한 낯설음과 이방성은 없게 된다. 다양한 문화의 차이를 갖고 있는 생활 세계들이 보편적인 하나의 생활 세계로 흡수 통합됨으로써 문화적 차이가 극복되고, 마침내는 문화적인 다양성까지 해소되는 것을 보여준다. 훗설의 선험 철학의 길은 서구에서 발전한 초합리주의에 의존함으로써 유럽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치는 것이다.(3) 이방성의 구축에 대한 비판적 대안우리는 서구 철학이 이방적인 것에 대한 문제 해결로서 내세운 자아 중심주의와 자기 문화 중심주의가 결국 자기 것을 중심으로 하거나 기초로 하여 이방적인 것을 구축하고 제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반적인 것에 대한 또 하나의 문제 해결로서 로고스 중심주의는 아방적인 것과 이방적인 것을 하나의 거대한 로고스로 흡수시키고 궁극적으로 이 두 개 모두를 로고스라는 하나의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사유 공간 안에서 종합시키는 것이다. 이점에서 유럽 중심주의는 자기 문화 중심주의와 로고스 중심주의의 결합이라고 볼수 있다. 이런 자아 중심성과 로고스 중심성은 합리성의 담론에서 이성 개념을 좁게 제한시켰기 때문에 메를로-퐁티가 말하고 있는 확장된 이성이 요구된다. 메를로-퐁티는 이성의 확장에 대해서 우리들과 타자에게 있어서 이성보다 앞서있고, 이성을 넘어서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이성에 부여하기 위해서 이성을 확장해야 하는 과제를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이다. 변증법적 사유가 많은 운동 과정들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정립과 이에 대립하는 반정립이 합에서 화해하여 하나의 통일을 이루는 데 그 본질이 있다면 형태론적 사유는 비 구분 의미에서 분리는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성호 문화성을 다른 이런 일련의 시도가 아주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주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는, 이방적인 것 자체를 구축하거나 악화시키지 않고 이바적인 것을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찾는데 있다. 이 점은 중심주의에 대한 극복의 대안을 찾는 근본적인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아방성과 이방성이 서로 얽혀 있다는 것과 궁극적으로 방계적 합리성에 기초를 두어서 망구조로써 상호 문화성의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경험에 대한 성격 규정을 새롭게 하고자 한다.(4) 토론적 논쟁으로서 경험경험 그 자체에서 우리는 이방자를 만나게 된다. 이 점에서 우리는 근세 철학에서 설명되는 경험에 대한 정의를 수정하고자 한다. 근세 철학 이후의 지배적인 인식론에 따르면 주관은 대상적으로 주어진 것을 형성하고 구성하는 주체로 드러나며, 이는 주관적인 목적들과 초주관적인 규범들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오히려 경험은 경험하는 사람 과 경험된 것 그리고 함께 경험하는 사람 사이의 공동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사이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이런 점에서 감정 이입을 통해서 타자를 이해라는 것보다 앞서서 우리는 타자에 대해서 동감과 반감을 갖고 있으며, 타자는 우리 앞에 설정되어 있다. 여기서의 경험,특히 이반적 것에 대한 경험은 물음과 답의 구조를 갖고 있음을 알수 있다. 이방적인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도전으로, 자극으로, 요청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물음과 답의 논리학에 따라서 자기것과 이방적인 것에 대한 정의는 결코 완결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경험이 타자들과 함께 하는 것인 한, 그것이 인류학적인 경험인 한에서는 더더욱 나의 경험은 더 이상 나의 순수함에 의해서만 이루어 질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경험속에 타자의 경험이 이미 들어와 있고 따라서 우리 문화와 이방 문화는 이미 서로 얽혀있고 교차되어 있다. 이것은 이방 문화가 익명성으로서 우리 문화에 내재해 있다는 것을 뜻한다.(5) 자기것과 이방적인 것의 얽힘과 교차상호 문화성이라고 말할 때 상호는 두 문화 사이의 공허하나 중간을 뜻하는 것도, 두 개의 문화의 단순한 결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호 문화성은 문화들의 얽힘과 교차를 뜻한다. 상호 문화성이라는 망에서 촘촘하게 또는 느슨하게 서로 얽혀 있다. 우리 문화의 이방 문화 사이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 보다는 강조와 무게에 따라 관계를 맺는 느슨한 경계가 있을 뿐이다. 자기 것은 이방적인 것으로부터 구분되어서 드러날 때에 비로소 자기의 본래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동시에 두 개사 아닌 제3 문화의 대비 속에서 다시 두 개의 상이한 문화가 유사성과 함께 두 문화 사이의 영향사를 읽어낼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로고스에 중심을 둔 로고스 중심주의는 다양한 여러 로고스들로 분할됨으로써 궁극적으로 아방적인 것과 이방적인 것의 엄밀한 배제의 경계를 해소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1.06.03| 4페이지| 1,000원| 조회(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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